송강 정철은 누구인가
by 송화은율송강 정철
송강 정철(松江 鄭澈 : 1536~1593)
조선 선조(14대) 때의 명신이면서 문인으로 자는 계함, 호는 송강이며, 시호는 문청이다. 율곡 이이와 동갑나기인 정철은 돈녕부판관을 지낸 정유침의 아들로서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면앙정 송순 등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우리 나라 시가사상 고산 윤선도와 쌍벽을 이루는 가사 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지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조선 선조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유배 가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포 김만중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중국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離騷)에 비겨, 동방의 이소(離騷)라고 절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에 있는 경치 좋은 광주호 주변에 있는 식영정과 호남의 명산인 무등산 북서쪽의 원효계곡 자락에 있는 성산(별뫼)의 모습을 연결시켜 노래한 성산별곡은 정극인의 상춘곡, 면앙정 송순의 면앙정가, 정해정의 석촌별곡으로 이어지는 호남 가단의 중요한 맥을 형성하고 있다. 송강 정철은 또한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관동지방의 해금강, 내금강, 외금강 등의 절승지와 관동팔경을 중심으로 한 기행 가사인 관동별곡을 짓기도 했다. 또한 송강 정철은 본래 성질이 곧아서 바른 말을 잘하는 데다, 당시 조정의 당파 싸움에 연루되어 거의 평생을 귀양살이로 마쳤지만, 학문이 깊고 시를 잘 지어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즐겨 회자되고 있다. 송강의 시비(詩碑)가 강원도 원주시 치악 예술관 입구에 있는데, 이는 송강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도민((道民)을 교화하기 위해 훈민가(訓民歌) 16수를 짓고 관동별곡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송강의 사후에 담양 창평의 송강서원(松江書院)과 경북 영일의 오천서원(烏川書院) 별사(別祠)에 제향(祭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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