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추악한 한국인과 공간의 사회학 / 강준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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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한국인과 공간의 사회학  / 강준만

'한국으로 유학 온 한국인'
무감각, 타성, 매너리즘은 무서운 것이다. 잘못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단지 '전에도 그래왔기 때문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반복해댄다면 그걸 어찌 무섭지 않다고 할 수 있으랴. 우리는 그런 무서움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대주의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 특히 서양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걸 몹시 궁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 회화를 처음 실습하는 사람도 미국인에게 그 질문부터 던지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기자들도 미국인과 인터뷰를 하라고 하면 그 질문부터 던져댄다. '니가 보기에 우리 어떠니?'
그러나 제대로 된 답을 얻기는 어렵다. 우문우답이라고나 할까? 판에 박은 질문에 판에 박은 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게 영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은 박상이의 [한국으로 유학 온 한국인](가지 않은 길, 1998)이라는 책에서 조금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나도 습관적으로 해오던 행동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묻는 이 책에서 내게는 자연스러웠던 것을 새롭게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상이 씨는 현재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재미교포 1.5세다. 그는 어렸을 때 이민을 가서 미국의 죠지아 주에서 자랐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한 후 로스쿨에서 공부하던 중 94년 가을 한국에 유학을 왔다. 20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그는 한국에 유학오기 몇 년 전에 한국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가 본 한국의 모습은 어땠을까?


"15년만의 한국 여행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무 곳에나 쓰레기가 널려 있는 지저분한 거리, 저녁부터 새벽까지 끊이지 않는 소음, 지옥 같은 교통 상황, 아무 곳에나 침을 뱉고 소변보는 사람, 밀거나 발을 밟아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사람, 길을 묻는 데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여자를 마구 때리는 아저씨, 슈퍼나 가게에서 앞사람이 뻔히 줄을 서 있는데도 돈부터 먼저 내미는 아줌마, 웃음이 무언지도 모르는 불친절한 휴게소 아가씨. 한마디로 예의, 질서, 친절, 양보라는 단어들의 의미가 실종된 사회였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알고 갔던 대한민국은 그때 같이 여행하던 한 친구의 말을 빌자면 '동방무질서국'이었다."
 
'별 이상한 놈이 다 있네'
'동방무질서국'의 품목에 서울에서 수십 년을 산 한국인에게도 가끔 공포의 대상인 택시를 빼놓을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겪은 경험은 좀 이채롭다. 그는 신촌에서 버스가 끊어진 시간에 용케 잡은 택시에 뛰어 올라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아저씨, 서울시 마포구 도화2동, 00호, 00번지로 가 주세요." 운전 기사는 그를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나가, 임마!" 그가 화가 난 운전사의 표정에 기겁을 하고 택시에서 내리자 그의 뒤통수를 향해 이런 중얼거림이 들렸다고 한다. "얼굴은 멀쩡하게 생긴 놈이…"


박상이 씨에겐 대단히 미안하지만 나는 그걸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진짜 얼굴은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그랬다지?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는 택시 합승하는 법을 눈치로 배우고 나서 택시를 향해 '마포'를 외쳤다고 한다. "마포 어디 갑니까?" "아저씨, 마포구 도화 2동이요." "아니, 아니. 도화동 어디냔 말이야." "도화 2동, 00호, 00번지요."


우리의 현명한 독자들은 그런 식으론 절대 택시 합승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 당연히 박상이 씨는 택시 타는 걸 포기하고 2시간 넘게 걸어서 동생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똑같은 1.5 세대 재미교포이면서도 한국에 먼저 와 어느 정도 적응을 한 여동생은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배를 잡고 방을 뒹굴면서 웃었다고 한다.


"오빠, 한국에서는 택시 운전사한테 집 근처 유명한 곳 이름을 말해 줘야 해. 그러니까 여기에 오려면 가든 호텔을 말했어야지."


하긴 그렇다.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택시 운전 기사들의 불친절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버스는 어떨까? 박상이 씨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나서 운전 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바로 앞에 간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말씀 좀 전해 주세요. 제가 추위에 떨며 20분 넘게 기다렸는데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갔어요…."


"앉아, 임마. 나한테 부탁하지 말고 네가 직접 해."


그렇다고 기죽을 우리의 박상이 씨가 아니다. 그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는 버스를 내리면서 그 편지를 앞 버스 기사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했고 버스 운전 기사는 놀라는 눈치를 보이더니 기가 찬 듯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 참. 그래 갖다 줄게. 별 이상한 놈이 다 있네."
 
'영어를 코란처럼 대하는 사람들'
과연 박상이 씨가 '이상한 놈'일까? 아니면 버스의 횡포에 순응하는 우리 모두가 '이상한 놈들'일까? 누가 이상하건 이상한 일은 계속 벌어진다. 그는 신림동의 한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하숙집엔 남자 5명, 여자 2명이 살고 있다. 모두 다 대학생인 것 같다. 그는 하숙집에 들어간 첫 날 고참 하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말이 조금 서툴어서 영어 단어를 대화 도중에 몇 개씩 사용했던 모양이다. 그의 방에서 이사 나가던 남학생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무척이나 불쾌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봐요, 당신이 한국 사람인지 미국 놈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영어로 씨부렁대지 말아요."
아, 한국인의 영어에 대한 그 처절한 콤플렉스여! 만약 박상이 씨가 섞어 쓴 외국어가 제3세계 국가의 언어였다면 그런 말은 결코 나오지 않았으리라. 아닌게 아니라 박상이 씨는 한국인의 '영어 콤플렉스'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는 영어 회화 선생님으로 대접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그 누구보다 그것에 대해 할 말이 많으리라.


"한국에서는 영어가 사람 평가의 최고 기준으로 작용했다. … 영어가 국제 공용어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분위기에서 영어를 도외시할 수야 없겠지만 …. 한국은 영어에 언어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어느새 능력 판단의 기준으로 자리잡은 영어는 사람들을 억압했다. 토익은 입사의 당락을 결정짓는 잣대로 작용했고 영어에 미숙한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뒤 처진다고 생각했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하니 영어를 코란처럼 대하는 사람들의 열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 미국인의 '서울 찬가'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몇 가지 대충 거론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지만 나는 박상이 씨의 책이 재미와 더불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부정적인 지적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서울의 풍경에 대한 그의 지적은 꽤 설득력이 있긴 있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미국이 한국보다 나을 게 뭐가 있느냐고 항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다 제쳐놓고 범죄 한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니 보는 시각에 따라선 미국인이라도 서울을 예찬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균형 감각을 갖기 위해 한국관광공사 자문으로 있는 데이비드 리치 씨가 [주간조선] 98년 4월 30일자에 기고한 다음과 같은 평가를 살펴보자.


"서울 생활을 3년 남짓 해본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서울은 우선 놀라울 정도로 안전한 곳이다. 한밤중에 사무실에서 집으로 걸어가면서도 절도나 봉변을 당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의 워싱턴이나 볼티모어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게다가 서울은 깨끗하다. 길거리에 마구 내버려진 쓰레기더미를 보기란 쉽지 않다. 미국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험상궂은 모습의 '야만족'들도 거의 없다. 서울은 풍족하고 활기찬 문화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깔끔한 음식점과 멋진 공원들, 편리한 교통시설 등 …. 서울의 장점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울을 싫어할까.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늘 불평을 쏟아낸다. '나는 서울이 싫어. 사람들이 너무 냉정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불친절하고 예의가 없어', '너무 시끄러운 곳이야 …' 마치 다른 나라 도시를 흉보듯이 말한다. … 지난해 아시아 위크 지는 서울을 '아시아의 베스트 10 도시' 중 한 곳으로 꼽았다. 서울 시민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곳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나라 도시에서도 살아보고, 이곳 서울을 더 좋아하게 된 한 외국인이 하는 말이다."


리치 씨가 한국관광공사 자문역을 맡고 있다 해서 정치적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 보기에 따라선 서울은 얼마든지 아름다운 도시다. 문제는 관점일 것이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이미 익숙해 있는 그 어떤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서울에선 안 되는 게 전주에선 가능하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거의 20년간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울에 익숙했다. 지난 89년 초 내가 직장 때문에 처음 전주로 내려왔을 때 나는 전주가 너무 답답했다. 사람들의 행동이 느려터진 것까지 불만이었고 삶의 여유마저도 활력이 없는 것으로 볼만큼 나의 전주에 대한 인상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제 나의 전주 생활은 10년째에 이른다. 그리고 나는 웬만해선 서울에 가질 않는다. 길에다 내버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숨이 더 막힌다. 박상이 씨가 처음 서울에 대해 느낀 심정과 거의 비슷한 것이다.


나는 나를 통해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 환경이 사물을 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절감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인물과 사상] 작업도 내가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서울에 산다면 막 말로 '뜯어먹을' 게 많고 그래서 그런 유혹에 빠지다 보면 너무 바빠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또 지방에 살다보니 자신의 처지에 대해 그 어떤 박탈감을 느껴 비판에 몰두하게 된 그런 점도 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들도 있겠지만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거리 두기'가 가능한 공간적 환경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적 권력과 부가 집중돼 있는 서울에 살다 보면 인적 교류 때문에라도 '거리 두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 아닌가.


나는 똑같은 미국인이라도 대도시에서 자란 사람과 소도시에서 자란 사람의 서울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촌놈의 특성'이라는 것도 기실 따지고 보면 공간적 환경과 크게 관련된 것이 아닌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보아 우리 나라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사람들끼리 몸을 부딪히는 것에 대한 예의 범절이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낮은 나라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간적 환경이 모든 걸 정당화시켜주는 건 아니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을 보더라도 우리는 일본에게 배울 게 많다. 공간과 더불어 역사라고 하는 것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 기간 누적된 역사적 상처에서 비롯된 우리의 부정적 행태에 대해선 끊임없이 우리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반성하면서 고칠 건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인을 지배하는 '6.25 신드롬'
최근 '추악한 한국인'을 주제로 삼은 책들이 여러 권 나왔다. 심지어는 외신까지 가세하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의 최대 일간지 클라린이 백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민족을 묻는 질문에 대해 21.1%가 한국인을 꼽았고 나머지는 집시 및 칠레인(18.7%), 볼리비아인(16.3%), 유태인(13.5%), 파라과이인(7.6%)을 지적했다고 한다. 이들이 한국인을 혐오하는 이유는 '폐쇄적이다'(24.5%), '더럽다'(15.1%), '노동력을 착취한다'(11.3%), '의류 상권을 장악했다'(10.4%) 등이었다고 한다.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는 여론 조사다. 혐오하는 민족을 묻다니 그런 돼먹지 않은 여론 조사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흥분만 할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우리 나라 사람들, 아니 더욱 정확히 이야기하면 한국계 외국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에게 '6.25 신드롬'이 있다고 하는 점이다.


'6.25 신드롬'은 돼먹지 않게 내가 만들어낸 말인데, 나는 이게 우리 나라 국민의 행태를 설명하는 데에 아주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전시 체제의 삶의 행태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가족 중심으로 살아야한다는 그 처절할 정도로 강인한 삶의 의지는 칭찬 받아 마땅할 것이나 문제는 평화 체제에서도 그런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하고 조급하고 여유가 없다. 전쟁은 형태를 달리 해 계속 치뤄지고 있는 것이다. 휴전선 못지 않게 무서운 전선이 바로 대학 입시 전선이 아닌가. '6.25 신드롬'이 완화되지 않은 가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젠 실업 전선까지 가세했으니 정말 걱정되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딱 부러지는 대안과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늘 우리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박상이 씨의 책은 매우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조국에 대한 그의 뜨거운 사랑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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