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과학이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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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인가 / 곽영직(수원대교수)                                            

  우리는 흔히 과학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과학적 사고, 과학적 통계, 과학적 체계 등등. 그러나 정작 과학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히 '정확'하고 '완벽' 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단순히 옳고 정확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냐 아니냐는 단순히 참이냐 거짓이냐의 의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부터 곽영직 교수님이 쓰신 『과학 이야기』에 실린 글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과학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현대에 와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 온 어떤 변화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보다 빨라서 과학의 발전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원자력에 의한 대량 파괴의 위험성이 심각하게 거론되자, 과학의 발전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이루어진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빈곤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고, 많은 질병을 치료했으며, 교통과 통신 수단을 발전시켜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등 여러 면에서 생활의 질을 향상시켰다. 그래서 과학에 대한 일부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보다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과학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과학을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위험한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그리고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는 낙관적인 시각도 옳은 것이 아니다.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 과학이 무엇인지 좀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이 크게 발전한 것과는 달리 과학 그 자체의 역사를 공부하고, 과학의 가치와 과학 발전의 사회적 원인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는 학문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전이 사회와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자 이제 과학을 과학자들의 전유물로 둘 수 없다는 자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자각의 결과로 과학의 역사를 다루는 과학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과학 방법론과 과학 철학 같은 과학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과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 인류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이라는 말이 본래의 뜻과는 달리 '정확하다', '완벽하다' 또는 '좋다'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혼란은 오히려 과학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게 만들었고, 과학 방법에 충실한 과학을 그렇지 못한 유사 과학과 구별하는 것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흔히들 '과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구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주장하는 바가 진실이면 과학이고, 주장하는바가 거짓이면 비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학의 내용은 항상 완전하고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구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이러한 정의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이 궁극적으로 진리인지를 가려내는 능력과 방법이 없다면 과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결론이 참이냐 거짓이냐에 의해 결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과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결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 의해서 구분해야 한다. 과학이란 인간이 인간의 이성을 이용해서 합리적으로 진실을 추구해 가는 사고 체계이다. 따라서 어떤 결론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그 결론이 유도되는 과정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을 결론의 학문이 아니라 과정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운동 선수가 경기에 이기기 위해 시합 전에 머리를 깎지 않는다고 하면 그런 생각은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그 선수의 그런 결론이 오랫동안의 통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면 그가 얻은 결론을 비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머리를 깎지 않으면 승률이 올라가는지를 밝히는 것이 과학이 풀어내야 할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결론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그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 올바른 과학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 방법은 기본적으로 귀납법과 연역법이라고 하는 큰 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귀납법은 실험, 관찰, 통계와 같은 방법으로 개별적 사실로부터 일반 원리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반면에 연역법은 우리가 확연히 알 수 있는 공리(公理, 명백한 진리로 승인되어 딴 명제의 전제가 되는 근본 명제)에서부터 논리적 추론에 의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실제 과학 연구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과학 방법은 연구 대상과 목적, 그리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어떤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학 방법이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사회학, 생물학, 의학 같은 분야에서는 수학적 연역보다는 관찰과 통계에 의한 귀납적인 방법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분야에서는 수학에 의한 연역에 의해 결론이 도출되고, 이 결론은 실험적으로 검증을 거쳐야 한다.

  문학이나 종교와 같이 인간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 분야는 과학적이지 않은 대표적인 분야이다. 문학이나 종교에서 다루는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관한 것을 다룬다. 따라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객관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객관화할 필요도 없다.


  반면에 심리학, 교육학 등은 과학적인 면과 비과학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이런 분야에서는 과학에서 사용하는 관찰과 통계를 이용하는 관찰과 통계를 이용해서 결론에 이르지만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게 된 원인의 설명은 매우 주관적일 때가 많다. 어떤 자극에 대해 어린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지만 그렇게 반응하게 되는 원인은 어린이들의 이기심, 경쟁심과 같은 가장 비과학적인 인간의 심리에서 찾는 것이 그런 예이다.

  과학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문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얻어진 결과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학은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추구해 가는 자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도출해 낸 결론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으로 얻은 결론이므로 인간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얻어진 결론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과학 발전의 과정에서 많은 이론이나 학설들이 새로운 이론이나 학설에 의해 부정되었다. 인류가 알아낸 가장 완벽한 자연 법칙이라고 생각했던 뉴턴 역학(빛의 속도에 비하여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을 뉴턴의 운동 법칙에 기초하여 설명하는 역학 체계)도 상대성 이론(아인슈타인에 의하여 확립된 물리학이론)과 양자론(물질의 근원이 되는, 원자보다 더 작은 물질인 소립자들의 움직임과 그 성질을 다루는 학문)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했던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진리이지만 과학으로 얻어낸 결론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충실하게 과학 방법을 적용하여 얻어진 결론도 이와 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충실하게 과학 방법을 적용하지 않고 얻어낸 결론이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없는 분야에서 상반된 결론들이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 분야의 특성상 엄밀하게 과학 방법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특히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에서 이런 오류가 자주 빚어지는 것은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한계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로 과학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공헌할 것이냐 아니면 인간을 파멸로 이끌 것이냐 하는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는 논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은 컴퓨터나 원자 폭탄 같은 물리적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결론을 이끌어 나가는 사고 체계이기 때문이다.


  자연 형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자연을 인간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부작용의 문제도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과학 입국이니 과학 시대니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런 말의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최신 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나라나 시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나라,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시대라는 뜻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만큼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독서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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