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배
by 송화은율
최현배(崔鉉培, 1894-1970, 외솔)
· 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 출생(최병수 님의 맏아들)
· 어렸을 때부터 총명, 동네 어른들로부터 칭찬. 산수에 능했으며 12살 때에 동네 서당을 대표 하여 바둑대회에 참가했을 정도로 바둑에도 능했음
· 14살 때 울산 병영에 신설된 일신학교 입학, 신식교육 수학
· 대한 매일신보에서 나라 정사가 글러져 감을 개탄하여 어렸을 때부터 나라 걱정으로 목놓아 울기도 했음을 자신의 글에서 알 수 있음
· 17살 때(1910.4) 경기 중고등학교 전신인 한성고등 보통고등학교 75명 모집에 1,200명이 응모 한 가운데 최우수성적으로 입학 (그 이후 바둑을 일절 두지 않고 학업에 전념)
· 입학하던 해 8월, 교명이 경기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고 일인들에 의해 운영, 실망을 함
· 그리하여 고향 친구 소개로 주시경 선생이 가르치는 조선어(한글)강습원에 나가기 시작하며 주시경 선생의 뜻을 충실히 이어 받음.
· 22세에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에 유학함(한문, 교육학 전공)
· 29-32살 때 교토대학 철학과 입학, 사회학 연구
· 1926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 민족 갱생의 도>를 통해 조선 민족이 살아갈 길을 제시 하기도 함
· 1926년-1938년(33-45살) 연희전문학교 교수 재직
·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겸직(33-38살)
· 연희전문 학교 복직
· 1942.10-1945.8.15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동안 옥중생활
· 중일전쟁이 극심해 갈 적에 서울에 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이 몸(외솔)이 죽기 전에 우리 한 글 동지들이 연구한 결과를 적어, 뒷 세상에 전하기 위해 삼년 동안 노력 [한글갈]을 펴냄
· 연대 부산분교에 있은 학술 강연 뒤 그곳 제자들이 택시로 동래온천장으로 모시려고 했을 때 거절, 전차를 탔으며 연회석상에서 아예 술은 자시지 않았고, 콜라도 외국 상표라하여 드시시 않으셨음
· 광복 직후 군정시, 6·25동란 시 문교부 편수국장 시절, 매일 도시락 지참
· 1946년부터 서울사대 국어말본 강사로 지냄.
· 1949년 한글학회(조선어학회 개칭) 이상장 취임, 상무를 봄
· 1954년(61세) 연희대학교 교수로 다시 취임
· 연세대학교 재직시절 부총장의 보직을 맡았을 때 승용차를 거절, 걸어다니시며 나라 걱정을 한 일화도 유명함(62세)
· 1968년 세종대황 기념사업회 대표 이사 취임
· 1970.3.23(77세) 새벽 3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
· 사회장으로 엄수, 경기 양주 진접면 장현리에 안장
· 1993년 10월의 문화인물
· 저서로는 [조선민족 갱생의 도], [우리말본], [글자의 혁명],[한글갈], [나라사랑의 길] 등
▲ [나라 사랑의 길] ‘머리말’에 실린 최현배 시조 4수
임이여 어디갔노 어디메로 갔단 말고
풀나무 봄이 되면 해마다 푸르건만
어찌ㅎ다 우리의 임은 돌아올 줄 모르나. //
임이여 못살겠소 임그리워 못살겠소
임떠난 그날부터 겪는 이 설엄이라
임이여 어서 오소서 기다리다 애타오. //
봄맞이 반긴 뜻은 임올까 함이려니
임을랑 오지 않고 봄이 그만 저물어서
꽃지고 나비 돌아가니 더욱 서러하노라. //
강물이 아름아름 끝난 데를 모르겠고
버들가지 출렁출렁 물속까지 드리웠다.
이내 한 길고 또 길어 그칠 줄이 없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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