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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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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옛날 옛적에 장군 화운이라는 사람이 태평부에서 죽을 때에 그의 부인곡씨도 남편을 좇아 죽으매 어린 아이는 물속에 던져 버리더라.

 

그러나, 웬 일인지 이 아이는 이렛동안이나 물속에 있다가 죽지 않고 살아 나왔으니 어찌 천명이 아니리요.

화운의 칠대손 욱이 여양후 벼슬로 명나라 세종황제가정십삼년 시절에 과거하여 벼슬이 형부상서에 이르고 이십삼년에 길양을 쳐서 파멸한 공으로 여양후가 되었는데 화욱은 위인이 방정엄숙하고 정사에 연달하므로 천자를 그를 중히 여기시고, 벼슬을 돋우시와 병부상서 도찰원 도어사를 삼으시고, 협서군무사를 총득케 하시더라.

 

이때 화욱의 서울집이 경성 만세교 남쪽에 있었는데 원비심씨는 공부시랑 심학의 딸이요, 차비 요씨는 태자소부 요관의 딸이요, 삼비 정씨는 이부시랑 정웅의 딸이더라. 심씨를 말을 잘하고 자색이 절등하되, 마음이 매우 사납고 게다가 그 여자의 아들 춘이란 놈이 품격이 매우 범용한 자여서 공은 심씨를 그다지 사랑하지 아니하더라.

 

정부인은 숙덕이 있고, 요부인은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버렸는데 요부인은 임종 때에 그 여자의 소산인 딸 하나를 정부인에게 부탁했고, 정부인은 이 딸을 잘 보호하고 교훈 하기를 친 소생이나 다름없이 하는지라, 화욱은 이 때문에 더구나 정부인을 애중히 여기더라.

 

가정 이십오년 봄에 화욱은 묘한 꿈을 꾸었는데 옥기린이 품에 든 것이더라. 과연 이달부터 태기가 있기 시작한 정부인은 잉태 십삭에 사내 아이를 낳았으니, 아이는 골격이 대단하고 울음소리가 또한 웅장한 기남자여서 공은 이 아이를 기뻐하고 매우 기특히 여기더라.

 

이때 화욱의 누이가 있었으며 누이는 태상경 성염의 아내였고, 성염은 일찍 과거하여 처남과 한 집에 살았으며, 이 성염이란 자가 위인이 현명강직하고, 집안 다스림이 또한 법도 있어서 화욱은 이 매부를 섬기기를 엄형과 같이 하더라. 집안 일을 죄다 그에게 맡겨 버리고 그의 말을 잘 들었으며 또 성염의 아들 준이란 놈이 기이한 재주가 있어서 화욱은 그의 면학을 주장하고, 공부를 권장하기까지 하더라.

 

원비 심씨는 남편이 자기 소생은 사랑치 아니하고, 정씨 소생만 사랑하는 지라 언제나 은근히 이를 질투했으므로 엄숙한 남편과 또 현명강직한 성부인 내외가 두려워서 감히 어쩌하지도 못하고 있더라.

 

정씨의 소생은 어느덧 세 살이 되었고, 그렇건만 벌써부터 이 아이는 용모가 풍영쇄락하고 자질이 남에게 뛰어나, 한 가지 말과 한 가지 일이 그때마다 남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없더라. 정씨는 언제나 효경을 읽고 있었는데, 이럴 때면 이 아이는 어미의 책상 옆에 단정히 앉았다가 어미의 글 읽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그것을 외워 그 글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더라. 뿐만 아니라 이 천재적인 소년은 다른 모든 범절이 다 이와같이 신통하고 대견한 것이더라.

 

(중략)

윤혁은 화진의 인물에 매우 감탄한 듯하더라. 그는 어린 화진을 칭찬하며 화욱에게 또 이렇게 말하더라.

"영랑이 이미 정혼함이 있나뇨?"

"아직 정한 곳이 없노라."

 

그러자 윤혁은 잠시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듯이 상대방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입을 떼어 말하기를,

"소제 나이 40에 이르도록 슬하에 한낱 자식이 없더니, 하늘이 어여삐 여기시어 일태에 자식을 쌍득하니, 지금 나이 12세라. 그다지 범용치 않기로 저의 배필을 정코자 하되 합의한 곳이 없더니, 아자는 진평중의 딸과 정혼하였고, 여아는 천하를 주유하여 아름다운 사위를 널리 구하더니, 금일 다행히 영랑을 만나 보게 되는 어찌 천행이 아니리요. 아지 못하겠노라. 형의 의향이 어떠하뇨?"

"아자의 나이 약관에 이르되, 궁향벽처에 청하여 어진 규수를 얻지 못하여 주야 초심하더니, 형이 돈아를 더럽다 아니하시고 동상을 허하시니, 어찌 감사함을 금치 않으리요."

하고, 화욱은 즉석에서 기쁜 듯이 허락해 버리더라. 화진은 불려 들어와 이 장래 장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장인은 또 사위의 손을 잡고 한동안 기쁨과 찬미와 애정을 금하지 못하더라. 그러자 그는 또 말하기를,

"소제 구구한 정회 있으니, 혹시 들어 주시리이까?"

"무슨 정회이온지 어서 말씀하오시라."

하고 화욱은 재촉하니.

"저즘께 남자평이 악주로 귀양하다가 수적을 만나 가중 상하가 모두 해를 입고 홀로 화를 면하였는지라. 소제 거두어 의녀로 정하여 이제 산동에 있으니, 나이 또한 여아와 동갑이요. 그 재품은 비록 예전 숙녀라도 미치지 못할까 하노라."

"슬프다! 자평이 필경 독한 해를 입었도다!"

하고, 화욱은 복바쳐오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지도 못하고 슬픈 듯이 이렇게 외치기를,

"성상이 한낱 엄숭을 위하사, 그릇 직신을 죽이시되, 노신이 일찍 벼슬이 보도하는 위에 있어 마침내 일이 이에 미치게 하였더니, 더욱 죽을 죄를 면치 못하리로다.

"소제의 여아는……."

하고, 윤혁은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하니라.

"남씨의 자양한 색덕을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정경을 측은히 여겨 잠시 서로 떠나지 않아 화복길흉을 같이 하려 하고, 소제 역시 생각건대 저와 같은 아름다운 배필을 구하여 적이 자평의 수중 원혼을 위로할까 하나, 천하에 어찌 다시 영윤과 같은 자를 얻으리요. 이제 영랑의 상을 보니, 준수하여 반드시 귀히 될지라. 족히 두 아내를 거느릴지니, 원컨대 형의 소제의 양녀를 한가지로 맞아 소제로 하여금 망우에게 낯이 있게 하고, 버금 여아의 원을 좇게 함이 어떠하뇨?"

화욱은 이러한 윤혁의 요구도 들어 주더라.

 

남자평의 불행한 딸이라니, 더구나 그러한 특별한 요구를 아니 들을 수도 없는 일이더라. 이렇게 해서 화진의 배필은 한꺼번에 둘이나 간단히 결정되더라. 지금 같으면 매우 곤란한 이야기이나, 만고의 성군으로 존경을 받는 세종 대왕조차도 부인이 열 손가락을 죄다 꼽아야 될 정도였으니, 당시의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

 

윤혁은 장래가 유망한 천재 사위를 이토록 손쉽게 얻어 놓고 화욱과 두어 날을 같이 보냈고, 그런 중에도 서로는 사돈의 예의를 정중히 갖추고, 화진과는 벌써부터 사위이니 장인이니 부르면서, 서로는 대단한 친절과 애정과 존경을 쏟기 시작하더라. 눈꼴사납다고 할 정도로 그것은 지극히 애정에 쌓인 것이더라. 돌아갈 때 그는 사돈에게 말하기를,

"소제, 형의 후은을 입어 두 딸을 영랑에게 맡겼으니 마음이 족한지라. 그러나 길이 머니, 소식이 쉽지 못할지라. 혼인을 정하고, 영랑의 신물을 받아 돌아가서 두 딸에게 주고자 하노라."

 

화욱은 그렇게 대답하고, 아들을 시켜서 홍옥 팔찌와 청옥 패물을 상자에서 내어 윤 사랑에게 전하라 분부터라.

"이 물건이 소제의 세전지물이니, 영애 양인에게 나누어 주소서"

하고, 그는 아들의 손에서 기쁜 듯이 신물을 받아 드는 윤혁을 지켜 보며, 미소를 띠고 말하더라.

 

윤혁이 만족해서 돌아간 이 날 밤, 화욱은 부중으로 돌아와 성 부인과 정 부인을 만났더라. 그리하여 이 두 여자에게 아들의 정혼한 이야기를 설명해서 들려 주더라. 그러자 성 부인이 먼저 말하기를,

"가군이 계실 때에 항상 윤 사랑의 위인을 일컬었으니, 이제 그 딸이 반드시 덕성이 있음을 알 것이요, 또 남 어사는 맑은 이름, 곧은 절개가 있으니, 그 딸이 어찌 심상하리요."

 

정부인은 아무 말도 없었으며, 이 숙덕 높은 총명한 부인은 잠시 그대로 묵묵히 앉아 있는 듯했으나, 마침내 이런 말을 하더라.

"이제 태강이 또한 비녀 꼽기에 이르렀거늘, 상공이 구혼할 뜻이 없고, 먼저 진이의 혼사를 정하시니, 첩의 마음이 미안하고, 또 첩이 순녀 이래로 정신이 혼미하니, 차생의 불구함을 스스로 알 것이요. 매양 요 부인의 임종시 부탁을 행각하면 두려워하건대 지하에 돌아가 서로 대할 낯이 없을까 하나이다."

 

눈앞에 닥친 아들의 행복을 제쳐놓고 그 기쁨에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이토록 남의 소생에게 대해서 먼저 근심한다고 하는 것은, 어쨌든 그 여자의 관후한 덕의 소치가 아닐 수 없더라. 화욱은 감격 때문에 성 부인도 감격하고, 아내를 더욱 존경하고 싶어진 화욱은 즉시 몇몇 매파를 동원하여 신랑감을 찾기 시작하더라.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유 광록의 아들 성양을 추천해 왔고, 군자지풍이 있다는 것이더라. 화욱은 원래 유 광록의 청덕을 알고 또 동향인지라 이를 기뻐하고, 성준을 시켜서 가 보도록 했으며, 성준은 갔다가 유성양의 단아 정직한 인물됨을 고했다. 화욱도 반가워하며 즉시 통혼하니, 상대방 유 광록 역시 화 소저의 요저 숙녀됨을 기뻐하고 쾌히 허혼하더라.

선혼은 다음 해 봄으로 정했고, 정 부인은 소원 성취가 된 듯이 이를 대단히 기뻐하더라. 아들의 혼사보다 그 여자는 더욱 기뻐하고 있는 것이더라.

 

그러나 이 해 11월에 화욱 내외는 홀연 득병하여 날로 위중하니라. 화진과 태강 서저의 슬픔은 말이 아니더라. 그들은 크게 슬퍼하여 옷과 띠를 끌지 않고 주야로 목욕재계하여 하늘게 기도하고만 있더라.

 

그러나 화욱 내외의 천명이 이미 진한 데야 어찌하랴. 그들의 정성이 아무리 열렬하다 하더라도 백약도 무효한 부모의

불행은 어찌할 수가 없더라. 부인이 이미 길지 못할 줄 알고, 이에 소저의 옥수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더라.

"선부인의 부탁을 받아 하나도 성사한 것이 없고, 한갓 너에게 슬픔을 끼쳤을 뿐이니, 지하에 돌아가 무슨 낯으로 부인을 대하리오. 다만 너는 몸 가지기를 정숙히 하여 다른 날 군자를 잘 섬기며, 덕과 복을 심어 유자유녀하여 나와 선부인으로 하여금 지하에서 웃음을 머금게 하라.

 

정 부인이 죽은 후 불행은 또다시 겹쳐, 불과 3일 만에 화욱이 눈을 감으면서 자녀의 장래를 단 하나 신뢰할 수 있는 성 부인에게 맡겨 두니라.

 

공자 남매는 경각에 천붕지통을 당하게 되어 부르짖어 울기를 마지 아니하며, 여러 번 기절하는지라. 성 부인이 일변 붙들어 보호하고 아들 준으로 하여금 예로써 장사를 마친 후 가정사를 다스릴 새, 위엄과 덕이 병행하여 공의 생시나 조금도 다름이 없더라.

 

유 광록이 공의 부고를 듣고 추연히 탄식하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향자에 화공이 내 집에 구혼함에 내 허락함은 진실로 화공의 덕의를 사모함이더니 이제 화공이 비록 기세하였으나 언약을 배반치 못하리니, 너는 장가에 자주 가 반자지의를 다하라."

유생이 수명하고, 매일 화부에 이르러 공자의 과애함을 위로하고 정의 관곡하니, 화 공자 또한 유생의 유신함을 감격하여, 정의가 더욱 친밀하더라.

 

슬프다! 덕이 사람을 감화함은 본디 피차가 없거늘, 홀로 화춘에게 미쳐서는 어떠한 심사임을 알지 못하겠노라. 화춘이 부친을 대신하여 가사를 총섭하면서부터 포악함이 날로 심하여 약한 누이와 병든 아우를 잡기를 불유여력하고 비복을 악형으로 다스려 위엄을 세우니, 집안 사람이 두려워 감히 성 부인께 고해 바치지 못하되, 춘이 성부인을 두려워 크게 장난하지는 못하더라.

 

(중략)

 

조씨 여자는 임 소저를 몰아 내고자 하여 주야로 춘에게 참소하니, 춘이 마침내 말하기를,

"임씨의 죄는 족히 내가 짐작하되, 형옥이 필경 말을 할 것이요, 또 임씨의 성품이 강정하니, 무슨 괴변이 생길까 두려하노라."

 

조녀가 박장대소하며 말하기를

" 상공은 형이요, 한림은 아우라. 형이 아우 아내를 내치는데 아우가 어찌 감히 간섭하며 또 설혹 임녀가 스스로 죽는다 하더라도 상공께 해됨이 없거늘, 상공이 한 추부를 저어하여 장중에 있는 일을 결단치 못하니, 첩은 그윽히 상공을 위하여 애석히 여기나이다."

 

화춘이 오히려 머뭇거리기를 마지아니하더니, 하루는 범한과 장평과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꾀를 결단한 후, 죽우당에 이르러〈사기〉한 권을 빼어 보는 체하다가 책을 덮고 한림더러 묻기를,

"옛적에 한나라 무제는 진황후의 투기함을 능히 알고 폐하였으니, 그 임군의 일이 어떠하뇨?"

 

한림은 형의 흉계를 알지 못하고, 바른 대로 대답하여 말하기를,

"남자는 양덕이요 여자는 음덕인고로 양덕이 음덕을 이긴 연후에야 가도가 정해지니, 한무제는 본디 호색지심으로 그 결발지처를 폐한 것이지마는 여자의 투기는 칠거지악이기에 이로써 내쳤나이다."

 

춘이 대희하여 뛰어들어가서 심씨에게 말하기를,

"임녀의 죄악은 소자가 이미 절통히 알고 있는 바로되, 지금까지 참고 내치지 아니함은 성 고모의 총애하심이 너무도 편벽되고, 또 형옥이 임녀의 편당인 연고러니, 이제 형옥의 말이 여차하고 또 성 고모는 복건에 가고 없으니, 이 때를 타서 임녀를 내치고 조녀로 정실을 삼으려 하나이다."

 

성씨는 놀라서,

"임부의 죄는 불과 가부를 침석에 들이지 않는 것뿐이니 어찌 투기가 있으리요. 또 나의 정들음이 굳으니 가히 요동치 못하리라."

하고 결연히 대답하더라. 춘이 재삼 간청했으나, 심씨는 종시 듣지 않으려 하더라. 조씨 여자는 시녀 난수라는 년으로 하여금 범한을 사통하여 모주로 삼고, 또 계행 등과 결탁하여 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심씨의 침소이 많이 묻고, 또한 계행 등으로 하여금 그 흉물을 파내는 체하여 심씨에게 말하기를,

"임씨의 소위라!"

 

심씨는 그제서야 대로하여 임 소저를 꾸짖고 부외에 내치니, 비복 등이 실성 호읍하며 윤 부인과 남 부인이 앙천방탕하고, 한림이 갓을 벗고 맨발로 계하에서 통곡하니, 심씨는 또 대로하며 말하니라.

"임녀의 죄악이 위나라 황후보다 더한지라! 공연히 장부를 거절하여 침석에 용납지 아니하니, 경옥이 이미 궁형지인이 아닌 즉 어찌 통분치 않으며, 또 조녀가 들어온 후로 임녀의 투기는 날로 심하여 천고에 없는 요악지변이 나의 침방에까지 미치니, 어찌 참고 내치지 아니하리요!"

 

한림이 애읍하고 간하고, 머리를 땅에 부딪쳐서 유혈이 낭자 한지라, 심씨가 꾸짖으며 소리치기를,

"내가 내 며느리를 내치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고, 창두로 하여금 한림을 떠밀어 내치니, 한림이 백화헌 뜰에서 통곡함을 마지아니하더니, 이 때에 범한이란 놈이 당상에 앉아 있다가 황망히 내려와서 꿇어 엎드리고 묻되,

"상공은 무슨 사정입니까?"

 

한림은 비분 중에 이 말을 듣고 노기가 대발하여, 건장한 창두로 하여금 수십 바퀴를 끌어 휘두르고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 같은 적자가 감히 재상가의 가법을 탁란함이 이에 미치나뇨!"

범한은 기운이 촉급하매, 입만 벙긋거리고 능히 말을 못하거늘 또 수십 번을 끌어 부문 밖에 아예 내쳐 버리더라.

 

이 날 임 소저가 집을 걸어나와 장차 교자에 오를새, 상서의 사당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재배하며 하직하고, 개연히 교자에 오르매, 유모와 시비 등이 울며 뒤를 따르더라.

 

이 때 화부의 부중 사람이 심씨 모자와 조 부인 외에는 눈물을 아니 흘리는 자가 없었고, 이 때에 임 소저의 오라비 임윤이 벼슬을 삭탈 당하고 하남 본댁에 와 있으매, 소저는 하남으로 돌아가니라.

 

화춘이 크게 위의를 베풀고 종족을 모아 장차 조녀를 세워서 정실을 삼으려 하거늘, 한림이 통곡하며 충고하기를,

"제나라 환공의 맹세에 가로되, 첩으로써 정실을 삼지 말라 하셨으니, 이제 형장이 연고 없이 현처를 내치고 미천한 여자로써 외람되어 조선 향화를 받들게 하니, 욕됨이 이보다 더함이 없으리로소이다."

"너는 양처가 있거늘, 내가 홀로 일처로 두지 못하랴!"

하고, 화춘은 성을 벌컥 내며 소리를 지르더라.

 

그가 마침내 조녀를 정실로 삼으니, 조씨 여자는 양양자득하여 행동거지가 표홀망칙하여 치마 끝에 바람이 나며, 우둔한 지아비를 농락하여 간특한 교태와 발연한 노색으로 희희낙락하니 화춘은 분주 승명하여 발이 땅에 붙지 않는지라, 비복 등이 도리어 부끄러워하고 일일이 임소저를 사모하니라.

 

이러므로 부중이 해이하여 기강이 바이 없더라.

 

하루는 조 부인이 돌연 비춘당에 들어가니, 남 부인이 마침 자리에 있는지라. 조 부인은 윤 부인을 향하여 이렇게 말을 하니라.

"첩이 들으니, 이 집에 세전하는 두 가지 보물이 있어서 반드시 종부를 주는 것인데, 선존 구고께오서 임녀는 불초하다 하시어 주지 않으시고 백화헌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부인 자매에게 나눠 주었다 하니, 이제 자네들은 차부의 몸으로서 외람히 종가 세전지물을 가짐이 명실에 합당치 못하고 사리에 틀린지라. 임녀가 인륜을 어지러이 하여 가도가 망칙할 때에는 명실과 사체를 의논할 방 아니려니와 이제인즉 가내가 청명하고 만사가 법도 있으매, 종부와 차부의 절엄함이 천지 같거늘, 종가의 세전지물이 실로 부인의 신상에는 불길하도소이다."

"원래 여차하던가? 첩 등은 실로 알지 못하였나니,그 보물 이름이 무엇이라 하더이까?"

하고, 윤 부인이 청파에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묻더라.

"하나는 이름이 홍옥차니, 선조께서 금릉을 치실 때에 순정 마황후 고씨 부인께서 주신 바요, 또 하나는 이름이 청옥패니, 고조 동국공이 남방을 평정하실 때에 교지왕이 드린 패물 중에서 제일 중보라. 이러므로 대대로 전하여 반드시 유덕유모한 종부에게 전하여 오더니, 덕이 아름다우신 우리 존고에게 전하지 않고, 그릇 자네 등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찌 애닯지 않으리요."

 

윤 부인은 즉시 상자를 열고 홍옥차를 내어 주며 말하되,

"명교가 당연하도다!"

 

조 부인이 받아 가지고 두세 번 완롱하매, 희색이 만면하거늘, 남 부인은 정색단좌하여 묵연히 말이 없고 시종 내어 줄 뜻이 없으니, 조 부인은 앙앙하여 홍옥차만 가지고 나가 버리더라.

 

남 소저가 윤 부인더러 말하기를,

"이 두 옥보는 아등의 신물이어늘, 군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어찌 경솔히 타인을 주시나이까?"

"군자도 오히려 능히 스스로 보전치 못하려든, 하물며 우리를 염려하며, 우리도 능히 보전치 못하는데 하물며 보물을 염려하랴. 시전에 하였으되, 혁혁종주를 포사멸지라 하였으니, 정히 이를 이름이로다!"

하고, 윤 부인이 의젓하게 대답하니라.

 

며칠 후, 조 부인이 정당에서 임 소저의 허물을 말하매, 윤 부인은 청이불문하고 남 부인은 불승분개하여 정색하여 말하기를,

"낭자는 장부의 은총을 믿고 말씀이 너무 무례하니 고인이 일렀으되 난초가 불붙으매 혜초가 탄식하고 토끼가 죽으매 여우가 슬퍼한다 하였나니, 낭자는 홀로 백두 궁녀의 반 첩여 조롱하던 말을 듣지 못하였으냐!"

 

이 말을 듣고 조 부인이 악연실색하자, 심씨가 대로하여 남 부인을 꾸짖더라.

"조 소저는 명위가 그전과 다르거늘, 너희들이 어찌 감히 낭자라 부르리요!"

남 부인은 자리를 옮겨.

"입에 익은 말을 갑자기 고치지 못하고 엄교를 범하였사오니 황송하오이다."

하며 사죄하더라.

 

(중략)

 

윤학사는 대희하여 길일을 잡아서 성례를 하니, 백부인과 진부인은 이러한 남편의 길복을 친히 다스려, 그 아름다운 덕성의 발로는 말할 나위가 없더라.

 

한편, 성학사는 소흥에 이르매 성부인 심부인의 수서를 보고 기뻐하여 자기 아들더라 말하기를

"이 일을 보건대 사람의 성품이 본디 착하다함이 과연이로다!"

 

성부인이 경사로 올라오자, 진공 형제가 나가서 가묘를 맞이하니라.

 

진공의 심사는 그만두더라도 경옥이 면관도수하여 체루횡륙하거늘 성부인이 경옥의 손을 잡고 아름다이 여겨 말하기를,

"노신이 죽어 지하에 돌아가 망제를 보아도 할 말이 있을지로다!"

 

또, 성부인은 심부인과 감개무량한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이어서 임소저와 윤부인, 남부인에게 말하기를,

"옥을 쫒지 아니한즉 그릇을 이루지 못하나니, 군등이 금일 영화함이 어찌 곤액중으로부터 난 것이 아닌 줄 알리요!"

 

그러자, 제인이 다 수명돈사하고 심부인은 더욱 기뻐하더라.

 

요점 정리

 

연대 : 이조 숙종 때 (17c)

작자 : 조성기

성격 : 교훈적, 유교적

형식 : 고전 소설, 가문 소설, 도덕 소설

주제 : 충효사상의 고취와 권선징악

출전 : 한글본 - 구활자본(신구서림판)

줄거리 : 병부상서 화욱(花郁)은 심부인(沈夫人) · 요부인(姚夫人) · 정부인(鄭夫人) 등 부인이 셋이 있었다. 요부인은 딸 태강(太姜)을 낳고 일찍 죽었고, 정부인이 낳은 아들 진(珍)은 매우 영특하였으나, 그가 장성하기 전에 정부인이 죽는다. 심부인이 낳은 아들 춘(瑃)은 이복형제 가운데서도 가장 맏이었으나 사람됨이 용렬하였으므로 화욱은 진을 편애하여 심부인과 춘의 불만을 사게 된다.

 

화욱은 조정에 간신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맏아들 춘을 성혼시켰지만 딸 태강과 아들 진은 정혼만 한 채 성혼시키기 전에 죽는다. 화욱이 죽은 뒤 심부인과 화춘은 갖은 방법으로 화진과 그의 아내를 학대한다.

화진은 과거에 장원하여 벼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생의 출세를 시기하던 화춘은 불량배와 결탁하여 윤리와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모함하여 귀양을 가게 하였고, 그의 아내도 누명을 씌워 내쫓는다. 그러나 화진은 물론 그의 아내도 심부인과 화춘에 대하여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화진이 유배지에서 도사인 곽공(郭公)을 만나 병서를 배우고 있을 즈음에 해적(海賊)인 서산해(徐山海)가 변방을 소란스럽게 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화진이 백의종군하여 해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운다. 화진의 능력을 인정한 조정에서는 그를 정남대원수(征南大元帥)에 봉하여 남방의 어지러움을 모두 평정하게 한다. 화진이 남방을 평정하고 개선하자, 천자는 그에게 진국공(晋國公)의 봉작을 내린다.

한편, 심부인과 화춘도 개과 천선하여 착한 사람이 되었으며, 내쫓겨 종적을 감추었던 화진의 아내도 돌아와 심부인을 지성으로 섬겨 가정의 화목을 이룬다.

의의 : 이 작품은 주제 의식이 전통적 관념의 고수에 있기 때문에 참신성은 없지만, 치밀한 구성으로 소설적 흥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또, 창작 동기 면에서 <구운몽>과 같이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구성 면에서는 <사씨남정기>와 유사성이 많아 17세기 소설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씨남정기>나 <창선감의록> 등은 구성상 부녀자들의 역할이 돋보여 <규방 소설>로 일컬어지기도 하며, 여성 독자들에 의해 애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독자 계층이 여성으로 확대됨에 따라 고전 소설은 비약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구성

발단

명의 상서 화욱의 세 부인 심씨, 요씨, 정씨 중, 요씨가 일찍이 딸을 낳아 정씨에게 부탁하고 죽었고, 화욱은 심씨 소생의 장남 춘이 용렬하매, 정씨의 소생의 아들 진과 요씨 소생의 딸 빙선을 편애하였고, 이에 심씨는 과부가 되어 집에 와 있는 시누이 성부인의 위엄으로 불만을 표하지 못하였다.

전개

간신 엄숭이 득세하자 화욱은 사직하고 낙향했는데, 이 때 춘은 부덕을 갖춘 임소저와 혼인하며, 또, 화욱은 진의 배필로 윤 소저와 남 소저를, 빙선의 신랑으로 유 공자를 정해 놓고 죽고, 성부인이 집을 비우자, 심씨와 춘은 진과 빙선을 학대하였으나, 그들은 조금도 노여워하지 않았고, 성부인이 돌아와 진과 빙선을 각각 성례시켰으나, 심씨는 진의 부인 윤, 남 두 소저를 미워하였고, 춘은 방탕해져서 불량배 범한, 장평과 사귀면서 임소저를 내쫓고 간사한 조씨를 정실로 삼았으며, 이때 진과 성 부인의 아들 성준, 빙선의 남편 유생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고 있었다.

위기

심씨는 조씨와 결탁하여 남 소저를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진은 춘의 참소로 투옥되며, 조씨가 범한과 간통을 하자, 춘은 장평과 짜고 그들을 없애고, 윤소저를 엄숭의 아들에게 주려 한다.

절정

그러나 윤소저의 동생이 어사가 되어 악당들을 처벌하며, 한편 유배지의 진은 신인을 만나 도술과 병법을 배워 해적의 반란을 평정하는 무공을 세운다.

결말

심씨와 춘이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와 가문이 화락하게 된다.

내용 연구

 

영랑 : 남의 아들에 대한 높임

소제 : 말하는 이가 대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윗사람을 상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

범용 :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함. 또는 그런 사람.

주유 : 두루 다님

약관 : ① 남자가 스무 살에 관례를 한다는 뜻으로, 남자 나이 스무 살 된 때를 이르는 말. ② 젊은 나이. 비슷한 말로 약년(弱年).조세(蚤歲)

궁향벽처 :아주 외딴 시골

초심 : 애를 태움

돈아 : 어리석고 철이 없는 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아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

동상 : 사위의 별칭

구구한 : 잘고 용렬한

악주 : 중국 호남성의 지명, 악양의 옛이름

재품 : 재주와 인품

직신 : 강직한 신하

노신 : 화욱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

보도 : 도와서 잘 인도함

자양 : 자애로써 양육함

색덕 : 여자의 고운 얼굴과 덕행

영윤 : 영랑, 화욱의 아들을 지칭함.

양녀 : 남자편의 딸을 가리킴

망우 : 죽은 벗, 남자평

버금 여아 : 제2의 딸, 곧 자평의 딸

후은 : 두터운 은혜

신물 : 신패로 뒷날에 보고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윤시랑 : 윤혁

세전지물 :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물건.

영애 : 남의 딸에 대한 경칭.

부중 : 문중

성부인 : 화욱의 누이

가군 : 남편

심상 : 대수롭지 않고 예사로움

숙덕 : 정숙하고 단아한 여자의 미덕

이제 태강이 ~ 이르렀거늘 : 혼인할 나이에 이르렀거늘. '태강'은 빙선을 말함.

혼미 : 정신이 흐리고 사리에 어두움.

차생의 불구함 : 머지 않아 죽을 것임.

관후 : 너그럽고 후함.

유광록 : 유섬. 광록경은 관직명.

군자지풍 : 군자다운 품성

청덕 : 맑고 조촐한 덕행

성준 : 성 부인의 아들.

요조숙녀 :말과 행동이 품위가 있으며 얌전하고 정숙한 여자.

목욕재계 :부정(不淨)을 타지 않도록 깨끗이 목욕하고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

옥수 : 고운 손

선부인 : 돌아가신 부인. 태강의 생모 요부인을 말함.

군자 : 여기서는 '남편'을 뜻함.

공자 남매 : 진과 태강을 가리킴.

경각 : 아주 짧은 시간

천붕지통 :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라는 뜻으로, 제왕이나 아버지의 죽음을 당한 슬픔을 이르는 말. 망극지통.

추연히 : 처량하고 슬프게

기세 : 세상을 버림. 죽음.

반자 : 아들이나 다름없이 여긴다는 뜻으로, '사위'를 이르는 말

수명 : 명을 받음.

화부 : 화씨 문중

과애 : 지나치게 슬퍼함.

관곡 : 매우 정답고 친절함.

총섭 : 전체를 몰아 잡음.

불유여력 : 있는 힘을 다함.

조씨 : 춘의 첩실.

임소저 : 춘의 정실.

참소 : 남을 헐뜯어 고해 바침

형옥 : 화진의 자

강정 : 성품이 굳세고 올바름.

박장대소 :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

한림 : 화진의 아우를 말함.

추부 : 더러운 여자.

저어하여 : 두려워하여.

장중 : 손바닥 안.

장중에 있는 일 :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

죽우당 : 건물의 이름.

호색지심 :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

결발 : ① 예전에, 관례를 할 때 상투를 틀거나 쪽을 찌던 일. 또는 그렇게 한 머리.

② '성년(成年)'을 달리 이르는 말. 옛날 중국에서는 남자 20세, 여자 15세가 되면 남자는 관을 쓰고 여자는 비녀를 꽂았다.

③ 원복(元服)을 입을 나이.

④'본처(本妻)'를 달리 이르는 말.

칠거지악 : 예전에,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일곱 가지 허물. 시부모에게 불손함, 자식이 없음, 행실이 음탕함, 투기함, 몹쓸 병을 지님, 말이 지나치게 많음, 도둑질을 함 따위이다.

절통 : 몹시 원통함.

편당 : 같은 편의 무리

여차 : 이와 같음.

가부 : 남편

침석 : 잠자리

요동 : 흔들림

사통 : 몰래 정을 통함.

모주 : 일을 주장하여 꾀하는 사람.

더러운 물건 : 상서롭지 못한 물건, 제웅, 칼 등 민속에서 금기로 여기는 물건.

소위 : 소행.

호읍 : 목 놓아 큰 소리로 욺. 또는 그런 울음.

양천방탄 : 하늘을 향해 크게 탄식함.

계화 : 섬돌 아래.

경옥 : 화춘의 자

궁형 : 중국에서 행하던 오형(五刑) 가운데 하나. 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이다.

요악지변 : 요사하고 간악스런 변고.

애읍 : 슬프게 욺

창두 : 노복

적자 : 불충, 불효한 자.

탁란 : 흐리고 어지럽게 함.

교자 : 가마.

개연히 : 변함이 없이

삭탈 : 삭탈관직

환공 : 춘추 시대 제나라의 왕, 관중을 등용하여 패주가 됨.

외람되이 : 분수에 넘치게.

조선 향화 : 조상에 대한 제사.

양양자득 : 뜻을 이루어 꺼드럭거림.

표홀망칙 : 얼씬거리는 모양이 재빠르고 망칙함.

간특 : 간사하고 악함.

발연 : 성을 내는 태도가 세차고 갑작스러움

분주승명 : 명을 받드느라 바빠서 겨를이 없음.

바이 : 전혀

종부 : 종가의 며느리, 큰며느리.

구고 : 시부모.

불초 : 어버이의 덕망이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함. 또는 그렇게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불초자.

명실 : 이름과 실상

사체 : 사리와 체면. 곧 언행이 이치에 합당하여 체면을 보존하는 일.

절엄 : 지엄. 매우 엄함.

청파에 : 끝까지 듣고

존고 : 시어머니, 심씨를 가리킴.

유덕부모 : 덕성을 갖추고 돌아가신 부모를 사모함.

명교 : 사람이 행하여야 할 길을 발히는 가리침.

완롱 : 장난감이나 놀림감처럼 희롱함.

앙앙하다 : 마음에 차지 않아 원망함.

혁혁종주 포사멸지 : 빛나고 빛나는 주나라를 포사가 망쳤다.

포사 : 중국 서주(西周)의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의 총희로 유왕이 포국(褒國:陝西省 褒城의 남동쪽)을 토벌하였을 때 포인(褒人)이 바쳤으므로 포사라 하였다. 왕의 총애를 받아 아들 백복(伯服)을 낳았는데, 이상한 출생의 전설을 지닌 그녀는 한 번도 웃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유왕은 그녀를 웃기려고 온갖 꾀를 생각한 끝에 외적의 침입도 없는데 위급을 알리는 봉화(봉수)를 올려 제후들을 모았다. 제후들은 급히 달려왔으나 아무 일도 없었으므로 멍하니 서 있자, 그것을 본 포사는 비로소 웃었다고 한다. 뒤에 유왕은 왕비 신후(申后)와 태자 의구(宜臼)를 폐하고, 포사를 왕비로, 백복을 태자로 삼았다. 신후의 아버지 신후(申侯)는 격분하여 BC 771년 견융(犬戎) 등을 이끌고 쳐들어와 유왕을 공격하였다. 유왕은 다시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는 한 사람도 모이지 않았다. 왕과 백복은 살해되어 서주는 멸망하였으며, 포사는 납치되었다고 전한다.

정당 : 몸채의 대첩. 주가 되는 건물.

청이불문 : 들려도 못 들은 척함.

불승분개 : 분함 마음을 이기지 못함.

반 첩여 : 한나라의 여류 시인. 성제 때 뽑혀서 첩녀가 되었으나 조비연 자매에게 미움을 받아 장신궁으로 물러가 태후에게 시중드는 동안 '원가행'을 지었음.

악연실색 : 깜짝 놀라 얼굴빛이 달라짐.

이해와 감상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본 · 한문본이 있다. 작자에 대하여 김태준(金台俊)은 그의 ≪ 조선소설사 ≫ 에서 정준동(鄭浚東) · 김도수(金道洙) 등을 기록한 바 있다. 뒤에 나온 증보판에서는 조재삼(趙在三)의 ≪ 송남잡지 松南雜識 ≫ 에 선조 졸수공(拙修公)이 어머니를 위하여 〈 창선감의록 〉 과 〈 장승상전 張丞相傳 〉 을 저작하였다는 기록을 들어 조성기(趙聖期)가 지었다는 설을 첨가하였다.

김태준이 김도수 저작설을 제시하게 된 것은 전언인지 문헌에 의거한 것인지 밝힌 바 없고, 또 저작과 관련되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믿기 어렵다. 정준동 저작설의 근거는 한남서림본(翰南書林本)의 서언에서 나온 듯하나, 그 서언이 저작 당시의 것이 아니고 활자본으로 출판될 때 쓴 것이므로 확인할 만큼 믿을 것이 못 된다.

이와같이 김도수 · 정준동의 저작설은 믿기 어렵기 때문에 조성기의 저작으로 보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830년(순조 30년)에 필사된 한문본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저작연대는 1830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이본으로는 〈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 〉 · 〈 창선감의록 昌善感義錄 〉 · 〈 창선감의록 創善感義錄 〉 · 〈 감의록 感義錄 〉 · 〈 원감록 寃感錄 〉 · 〈 화진전 花珍傳 〉 · 〈 화문충효록 花門忠孝錄 〉 · 〈 화씨충효록 和氏忠孝錄 〉 · 〈 화형옥전 花荊玉傳 〉 등이 있다.

14회의 장회소설로서 한문본에는 각 회제(回題)가 한문 대구로 되었으며, 국문본의 회제는 한문본 회제의 음역에 불과하다. 또 양본을 면밀히 대조해 보면 국문본이 한문본보다 자구의 누락이 많은 것으로 보아 한문본이 원본일 가능성이 높다.

병부상서 화욱(花郁)은 심부인(沈夫人) · 요부인(姚夫人) · 정부인(鄭夫人) 등 부인이 셋이 있었다. 요부인은 딸 태강(太姜)을 낳고 일찍 죽었고, 정부인이 낳은 아들 진(珍)은 매우 영특하였으나, 그가 장성하기 전에 정부인이 죽는다. 심부인이 낳은 아들 춘(瑃)은 이복형제 가운데서도 가장 맏이었으나 사람됨이 용렬하였으므로 화욱은 진을 편애하여 심부인과 춘의 불만을 사게 된다.

화욱은 조정에 간신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맏아들 춘을 성혼시켰지만 딸 태강과 아들 진은 정혼만 한 채 성혼시키기 전에 죽는다. 화욱이 죽은 뒤 심부인과 화춘은 갖은 방법으로 화진과 그의 아내를 학대한다.

화진은 과거에 장원하여 벼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생의 출세를 시기하던 화춘은 불량배와 결탁하여 윤리와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모함하여 귀양을 가게 하였고, 그의 아내도 누명을 씌워 내쫓는다. 그러나 화진은 물론 그의 아내도 심부인과 화춘에 대하여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화진이 유배지에서 도사인 곽공(郭公)을 만나 병서를 배우고 있을 즈음에 해적(海賊)인 서산해(徐山海)가 변방을 소란스럽게 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화진이 백의종군하여 해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운다. 화진의 능력을 인정한 조정에서는 그를 정남대원수(征南大元帥)에 봉하여 남방의 어지러움을 모두 평정하게 한다. 화진이 남방을 평정하고 개선하자, 천자는 그에게 진국공(晋國公)의 봉작을 내린다.

한편, 심부인과 화춘도 개과천선하여 착한 사람이 되었으며, 내쫓겨 종적을 감추었던 화진의 아내도 돌아와 심부인을 지성으로 섬겨 가정의 화목을 이룬다.

이 작품은 조정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쟁탈이나 변경에서 해적과 싸우는 전쟁 등의 사건이 있으나, 내용의 중심무대는 화진의 가정이다. 결국 가장 강조된 사상은 ‘ 효사상 ’ 이며 부차적으로 강조된 것은 형제간의 우애와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을 부귀와 연관시켜 ‘ 위선자필창(爲善者必昌) 위악자필패(爲惡者必敗) ’ 한다는 관념에 따라 귀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작품의 서두에 ‘ 인생은 남녀와 귀천을 막론하고 충효로써 근본을 삼고 여타의 다른 덕행은 모두 이에서 나온다 ’ 고 적고 있는 부분을 통해 뒷받침된다. 또 작품의 종결에서도 ‘ 충효는 성(性)이요 사생과 화복은 명(命)이니, 운명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성만을 다할 뿐 ’ 이라 한 것도 참고된다. 이로써 보면 당시의 전통관념을 중심으로 한 도덕소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작품은 내용에 반영된 주제가 전통관념을 고수하여 비록 참신성은 없다 할지라도 구성이 치밀하고 무리가 적을 뿐만 아니라, 소설적인 흥미도 많은 작품으로서 우리나라 고소설 가운데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대학교 도서관 · 고려대학교 도서관 · 장서각도서 등에 소장되어 있고, 개인 소장의 이본이 많이 전하고 있다.

≪ 참고문헌 ≫ 朝鮮小說史(金台俊, 學藝社, 1939), 彰善感義錄譯註(車溶柱, 螢雪出版社, 1978), 韓國古典小說硏究(金起東, 敎學社, 1983).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조성기(趙聖期)

1638(인조 16)∼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임천 ( 林川 ). 자는 성경(成卿), 호는 졸수재(拙修齋). 아버지는 군수 시형(時馨)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참의에 증직된 정양(廷揚)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일찍이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여 사마시에 여러번 합격하였으나, 몸에 고질이 생겨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심실(深室)에 들어앉아 공부하기를 30년간이나 계속하여 천지만물과 우주의 이치에 통관하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이미 〈이기설 理氣說〉을 지어 이와 기에 대한 고차원적인 정의를 내려 이기는 서로 혼합되어 분리할 수 없음을 주장하였으며, 20세에는 〈퇴율양선생사단칠정인도이기설후변 退栗兩先生四端七情人道理氣說後辨〉을 지어 이황 ( 李滉 )·이이(李珥)의 학설을 논변한 바 있다.

이 글에서 사단칠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하여 본연명물(本然命物)·승기유행(乘氣流行)·혼융합일(渾融合一)·분개각주(分開各主) 등 4종의 설을 세웠다. 임영 ( 林泳 )과 학문적으로 깊이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한문소설인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과 문집 ≪졸수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人物考, 三淵集, 拙修齋集, 松南雜識.

작품의 의미

이 소설은 플롯이 복잡하지만, 주제 의식은 남녀 귀천을 막론하고 충효를 근본으로 해야 하며 형제간의 우애나 선행은 다 여기서 나온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시종일관 교훈적이고,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진은 큰어머니 심씨와 이복형 춘이 터무니없이 자신을 모함하여도 변명하려 하지 않는데, 이는 자기가 변명하여 사실을 밝혀 심씨와 춘이 화를 당하게 하깁다는 차라리 자기가 누명을 쓰는 쪽을 택한다. 이것은 뛰어난 효성심의 발로이며, 작가는 이런 인물을 독자가 본받기를 바라고 있다.

이 소설은 다른 고전소설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이 50여명이나 되며, 인물의 유형은 고전소설이 다 그렇듯이 선인과 악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인물들은 전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개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런 개성적인 인물들을 표현하여,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이 되고 있다.

인물 처리 방식

고전 소설에서 악행이 드러나는 방식이 대개 '춘향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처럼 선인이 악인의 죄를 밝히는 것이 있고, '창선감의록'처럼 악인들 사이의 내부 갈등에 의해서 그들의 죄상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악인들이 처벌을 받는 것보다 악인을 선별처리하여 개과시켜 구제하고 있다.

문학적 의의

14회장(回章)의 한문소설로 작품의 구상과 묘사가 치밀하여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 버금가는 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내용은 중국 명(明)나라를 배경으로 하여 일부다처와 대가족제도 아래서 일어나는 가정의 풍파, 즉 제2부인 소생(所生)을 제1부인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는 줄거리로서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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