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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전(趙雄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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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전(趙雄傳)

조웅전 상권(上卷)

송(宋) 문제(文帝) 즉위 23년이라. 이때는 시절이 태평하여 나라에 일이 없고 백성도 평안하여 태평성대를 즐겨 노래하더라. 이듬해 가을 9월 병인일(丙寅日)에 문제께서 충렬묘(忠烈廟)에 나아가는데, 원래 충렬묘는 만고 충신 좌승상(左丞相) 조정인의 사당이라. 승상 조정인이 이부상서(吏部尙書)일 때는 황제 즉위 10년이었는데, 불의에 남란(南亂)을 당하니 사직(社稷)이 위태함에, 구원할 방도가 없었다 이에 그는 송나라 왕실의 옥새(玉璽)와 함께 문제를 모시고 경화문을 나와 무봉 고개를 넘어 광임교에 다달아 보니, 성 밖과 성 안에 울음 소리가 진동하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구르고 넘어지면서 도망하고 있었다. 이에 남산 북악이 마치 때아닌 봄에 오색 도화(桃花)가 활짝 핀 듯하였다. 승상이 문제를 모시고 급히 달아나니, 피란하는 사람이 산을 덮을 듯한지라. 그는 뇌성관까지 일백오십 리를 가서 자고, 이튿날 또 출발하여 길을 나아갔다. 이때에 승상이 문제를 모시고, 사방을 두루 달려 원병(援兵)을 구해 삼삭(三朔)만에 남란을 소멸하고 사직을 보전하니, 문제의 은덕은 하늘과 땅같고 승상의 충렬은 해와 달같은지라. 문제께서 조 승상을 정평왕(靖平王)에 봉하였으나 승상이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아니 하니, 마지 못하여 그를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겸 좌승상에 봉하시고 부인 왕씨는 공렬부인(功烈夫人)에 봉하셨다.

이러구러 세월을 보냈는데, 시운(時運)이 불행하면, 그것이 마치 '나는 새가 없어지니 활을 활집에 넣어 두게 되고, 날랜 토끼가 죽어 없어지니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인지라. 이럴 즈음에 간신이 시기하였는데, 우승상 이두병(李斗炳)의 참소함을 보고 조 승상이 미리 음독 자살하였다. 이에 문제께서 애통하여 제문(祭文)을 지어 조상(弔喪)하시고 충렬묘를 만들어 화상(畵像)을 그려 넣어두고 때때로 거동하시곤 하였는데, 이날 또 거동하여 사당의 화상을 알현하시고 옛 일을 생각하여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다.

병부시랑 이관(李寬)은 이두병의 아들인데, 왕을 모시고 있다가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폐하를 모시는 신하 중에 어찌 조정인만한 신하가 없겠사오며, 옥면(玉面)에 슬픔이 가득하시니 신하된 도리에 어찌 충렬묘라 하시겠습니까? 이후는 거동을 마시고 충렬묘를 헐어 버리시기를 바라옵니다."

 

황제께서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이관의 죄상을 신문(訊問)하라 하시고 종일토록 머물러 계시다가 석양에 환궁하신 후에, 조승상 부인의 품계를 높여 정렬부인(貞烈夫人)에 봉하기고 금과 은을 상으로 많이 내리신 후, 하교(下敎)하시기를,

"내가 들으니 조정인에게 아들이 있다 하니 데려와서 보이어 짐의 답답하고 상심한 마음을 덜게 하라."하셨다.

왕부인이 잉태한 지 일곱 달만에 승상을 여의고, 열 달을 채워서 해산(解産)하니 활달한 기남자(奇男子)이므로 이름을 웅(雄)이라 하였다. 부인은 8년이 지나도록 소복을 벗지 아니 하고 그 아들 웅을 의지하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날 황제께서 충렬묘에 거동하셨다 함에 더욱 슬퍼하였다. 황제께서 환궁하신 후 명령을 받은 관원이 나와서 정렬부인 가자(加資)와 함께 상으로 내리신 금, 은을 드리거늘, 부인이 황공하여 계하(階下)에 내려 국궁(鞠躬)하여 받아 놓고 황제의 궁궐을 향하여 국궁 사배(四拜)하고, 명관을 인도하여 외당(外堂)에 앉히고 황은(皇恩)을 치사하였다. 또 조웅을 인견(引見)하라 하시는 패초(牌招)를 보고 더욱 황공하여 웅을 보내니, 웅의 나이 비록 7세나 얼굴이 관옥(冠玉) 같고 읍하며 드나드는 자태는 어른을 압도하는 듯했다.

조웅이 명관을 따라 옥계(玉階) 아래에 다달아 국궁하니 임금께서 오래도록 보시고 크게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충신의 아들은 충신이요 소인의 아들은 소인이로다. 내가 오늘날 너의 거동을 봄에 충효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 하리오. 또한 나이가 7세라 하니 짐의 태자와 동갑이라 더욱 사랑스럽도다."

하시고, 이어서 태자를 인견하여 하교(下敎)하시되,

 

"저 아이는 충신 아무의 아들이라. 너와 동갑이요, 또한 충효를 겸하였으니 후일에 더불어 국사(國事)를 함께 모의하라. 짐이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 나이에 정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얻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 하리오."

라고 말씀하시니 태자도 즐거워하더라.

웅이 다시 엎드려 아뢰기를,

"명령을 받드는 아랫사람으로서 극히 황공하오나 소신의 나이 아직 어리고 또한 나라의 법이 각별히 엄하오니 어찌 벼슬 없는 여염집 아이가 궐내에 거처하오리까? 국정에 극히 편하지 못하옵고 또 국사가 지중하옵거늘 이제 폐하께서 어린 아이를 대하여 국사를 의논하옵시니 어찌 두렵지 아니 하오리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소신은 물러갔다가 입신(立身)한 뒤에 다시 폐하를 알현하오리다."

 

하며 지극히 간하니, 임금께서 들으시고 비록 어린 아이의 말이나 이치가 당연하고, 다시 바라보니 매우 엄숙한지라. 한참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의 말이 가장 옳도다. 그리하라."

하시고 다시 하교하시기를,

"너의 나이 13세 되거든 품직(品職)을 내릴 것이니 그때를 기다려 국정을 도우라."

하시니, 웅이 사배하고 물러나와 태자께 하직하니 태자도 못내 연연(戀戀)해 하시더라.

이때에 천자께서 조정 신하들을 모아 놓고 조웅을 칭찬하시고 말씀하시되,

"시신(侍臣) 중에 이관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신하가 다 이관의 형세를 두려워 하는지라 우승상 최식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충렬묘에 거동하실 때 죄상을 신문하라 하셨기에 파직을 당하여 쉬고 있습니다."

 

황제께서 깨달으시고 마음 속으로 한참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저의 말이 한때 경솔하였으나 이제 용서하라."

하셨다.

원래 이두병은 아들이 오형제인데 벼슬이 다 일품(一品)에 이르렀기에 온 조정의 신하가 다 그 형세를 두려워하여 이관 등의 말대로 하는지라. 이날 황제께서 조웅을 사랑하심을 보고 이관이 크게 근심하여 의논하기를,

 

"조웅이 벼슬하면 그 아버지의 원수를 생각할 것이니 어찌 근심되지 아니 하리오. 미리 없앰이 마땅하나 아직 벼슬도 하지 않은 아이에게 어찌 죄를 주겠는가?"

 

하고 모두 모여서 계교를 의논하더라.

 

이때 웅이 집에 돌아와 어머니 왕부인을 뵈오니, 부인이 즐겨 물어 말씀 하시기를,

"네가 황상을 뵈었느냐?"

 

웅이 대답하기를,

"입시(入侍)하옵거늘 대면하여 뵈었습니다. "

 

부인이 말하기를,

"황상을 대변하니 두렵지 아니 하였으며, 마땅히 묻는 말씀이 있었을 것이니 어찌 대답하였느냐?"

 

웅이 문답했던 말과 '13세 되면 품직하리라.'하시던 말씀과 황제께서 태자 사랑하던 말씀을 낱낱이 고하니 부인이 일희 일비(一喜一悲)하여 말하기를,

"황상의 넓으신 덕택이 하늘 같고 바다 같아서 갚기를 의논치 못하거니와, 네가 만일 벼슬하면 마땅히 소인들의 참소를 입을 것이니 어찌 하려 하느냐?"

 

웅이 말하기를,

"어머님은 염려하지 마소서. 사람의 죽살이는 하늘에 달려 있고, 영광과 욕됨은 수양하기에 달려 있으니 어찌 염려가 있으며, 또 자식이 되어 어찌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를 눈 앞에 두고 그저 있사오리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면 무슨 묘책이 있어야 할 것이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어머님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소서."

하고, 말을 마친 후에 모자가 서로 통곡하니 그 정상이 참혹하더라.

 

 

이때는 병인년 섣달 그믐이라. 황제께서 명당(明堂)에 전좌(殿座)하시고 조정의 여러 신하들을 다 조회(朝會)받으시고 국사를 의논할 때 말씀하시기를,

"오호라. 짐의 나이가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이로구나. 세월이 사람의 죽음을 재촉하는데 태자가 아직 어리니 국사가 가장 망연한지라. 경들의 소견으로는 어찌 해야 짐의 근심을 덜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흥망성쇠는 마음대로 못하옵거니와 국사가 아직도 장원(長遠)하옵거늘 어찌 동궁의 어리심을 근심하시나이까?"

 

예부상서 정충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폐하 춘추 많으심과 동궁의 어림을 어찌 근심하십니까? 승상 이두병이 있사오니 앞날의 국사는 아무런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조정 신하들이 모두 두병의 권세(權勢)를 두려워하기에 일시에 아뢰기를,

"승상 이두병은 한(漢)나라의 소무(蘇武)와 같은 신하이온대, 어찌 국사를 근심하십니까?"

 

임금께서도 오히려 그렇게 여기시지만 그러나 정녕 믿지는 아니 하시더라. 이날 진시(辰時)에 경화문으로 난데없는 백호(白虎)가 들어와 궐내에 횡행하거늘 만조백관(滿朝百官)과 삼천 궁졸(宮卒)이 황겁하여 어떻게 할 줄을 모르더니, 이윽고 궁녀 하나를 물고 후원을 뛰어 넘어 달아나 간 데 없거늘 임금께서 크게 놀라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시나 여러 신하들이 또한 알지 못하고 궁중과 장안이 요동하여 앞날의 길흉을 알지 못하더라.

 

황제께서 이 일을 근심하여 침식이 평안하지 아니 하니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수일(數日)동안 북풍이 대취(大吹)하고 한 자가 넘는 백설(白雪)이 산야를 덮었기에 여러 날 주린 범이 의지할 곳 없을 뿐 아니라 기갈(飢渴)을 견디지 못하여 백주(白晝)에 내달아 갈 곳이 없어 수풀인 줄 알고 왔으니 폐하께서는 어찌 그것으로써 근심하시옵니까?"

 

황제께서 마음을 놓으면서도 일면 재변(災變)인 줄 짐작키도 하시더라. 이럴 즈음에 왕부인의 사촌인 한림(翰林) 왕렬(王烈)이 이 변을 보고 왕 부인께 편지하여 보냈는데, 이때 마침 왕부인은 웅을 데리고 독서도 권하며 나라의 옛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더니 시비(侍婢)가 들어와 편지를 드리거늘 떼어 보니 그 편지에 이르기를,

 

"일전에 황제께서 명당(明堂)에 전좌(殿座)하시고 조신(朝臣)을 모아 국사를 강론하고 계셨는데, 그날 경화문으로 난데없는 백호가 들어와 작난하다가 궁녀를 물고 달아나 간 데 없사오니, 이것이 극히 괴이하온지라. 황제께서 근심하시고 조정이 또한 화복을 가리지 못하오니 누님은 이를 해득하여 알게 하소서."

하였더라.

 

왕부인이 편지 읽기를 마치고는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답서를 하여 보낸 후 웅에게 말하기를,

"국가에 이러한 재변이 일어나니 네 앞으로 벼슬을 하면 간신의 망측지환(罔測之患)이 있을 것이니, 이를 어찌 면하리오."

 

웅이 말하기를,

"모친은 그런 염려 마옵소서. 사람의 영욕은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옵거니와, 대개 배꽃과 복숭아꽃이 가득 핀 가운데 계수나무 꽃이 한 가지만 피어나도 그 무리에 섞이지 않고 배꽃은 배꽃이요 계수나무 꽃은 계수나무 꽃입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조정에 가득차 있은들 내가 백옥처럼 무죄하온데, 죄 없이 모해하겠습니까?

 

부인이 말하기를,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도다. 형산(荊山)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함께 타는 안타까움이 있거늘 이제 국가가 불행하게 되면, 너의 원수들이 너를 죄없다 하고 그냥 두겠는가? 아이의 소견이 저토록 예사롭거늘 어찌 마음놓고 믿으리오."

하시니 웅이 이에 대답하기를,

"사람이 일을 당하여 근심을 깊이 하면 애가 타서 백 가지 일이 다 불리하옵니다. 이 때문에 죽은 곳에 떨어진 이후에도 살아날 길이 있고 망할 곳에 팽개쳐진 이후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 하였으니 우린들 하늘이 설마 무심하겠습니까?

부인이 속으로 아이 뜻이 활달한 줄 알고 염려를 덜게 되었다.

이때에 왕한림이 왕부인이 답서에 씌어 있는 것을 보니,

"놀랍고 놀랍도다. 머지 않아 내란이 일어날 것이니 너는 부질 없이 벼슬을 탐하지 말고 일찍이 관직을 그만 두고 돌아가기를 황제께 요청하라."

하였거늘, 이에 한림이 문득 깨달아 병을 핑계하여 조정에 나가지 아니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니라. 이때는 정묘년 정월 십오일이라. 만조 제신이 다 하례할 때에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연전(年前)에 짐이 조웅을 보니 인재가 거룩하고 충효가 거룩하매 이정지표(釐正之表)가 될 만하니 동궁을 위하여 데려다가 짐의 안하(案下)에서 서동(書童)을 삼아 두고 국사를 익히게 하고자 하나니 경들의 소견은 어떠한가?"

 

여러 신하들이 다 묵묵하되 이두병이 아뢰기를,

"나라의 법이 각별히 엄하오니 벼슬 없는 여염집 아이를 이유없이 조정에 둠은 극히 잘못된 줄로 아옵니다."

 

상이 말씀하시기를,

"충효의 인재를 취함이라. 어찌 아무런 이유없이 취하려 하겠는가."

 

두병이 다시 아뢰기를,

"인재를 보려 하시면 장안을 두고 이르더라도 조웅보다 열 배나 더한 충효의 인재가 백여인이요, 조웅 같은 이는 수레에 싣고 말[斗]로 그 양을 헤아릴 정도로 아주 많습니다."

 

황제께서 윤허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문답이 없는지라 승상이 시대(侍臺)에 나와 조신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후에 만일 조웅을 말하여 천거하는 자가 있으면 죄를 받으리라."

하니, 백관이 누군들 겁내지 아니 하리요. 이즈음에 왕부인과 조웅이 이 말을 듣고 부인은 못내 두려워하고 웅은 분기 등등하더라.

 

천운이 불행하여 황제께서 우연히 기후(氣候)가 불편하시더니 열흘이 지나도 조금도 차효(差效)가 없고 점점 병이 깊어지니, 장안 인민과 조야(朝野)의 백성들이 다 하늘에 축수하여 병이 나아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랬지만 소인배들의 조정이라 회복을 어찌 기대하리오?

정묘년 삼월 삼일에 황제께서 붕어(崩御)하시니 태자의 애통하심과 만민의 곡성이 천지에 사무치고 왕부인 모자는 더욱 망극하더라. 어느 사이에 국법과 권세가 두병의 말대로 돌아가니 백성이 망국조(亡國調)를 일삼고 산중으로 피란하더라. 이때에 조신(朝臣)이 극례를 갖추어 사월 사일에 황제를 서릉(西陵)에 안장(安葬)하였다.

하루는 조신이 노소없이 시종대(侍從臺)에 모여 국사를 의논할 때 이두병이 역모(逆謀)에 뜻을 두고 옥새를 도모코자 하니 조정 백관 중에 그 말을 좇지 아니 할 사람이 없었다. 시월 십삼일은 문제(文帝)의 탄일이라. 모든 관원이 종일토록 국사를 의논할 때 이두병이 물어 말하기를,

 

"이제 동궁의 나이는 팔 세라. 국사는 매우 중대한데, 팔 세 동궁의 즉위는 일이 매우 위태한지라. 법령이 점점 쇠하고 사직이 위태할 지경이면 그대들은 어찌 하려 하느뇨?"

 

여러 신하들이 일시에 대답하여 말하기를,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조정은 십대(十代)의 조정이 아니라. 이제 어찌 팔 세 동궁에게 제위(帝位)를 전하리오. 또한 황제 붕어하실 때 '승상과 정사를 의논하라' 하신 유언이 있었지만 나라에는 두 왕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하늘이 없으니 어찌 협정왕(協政王)을 두리이까?"

 

여러 신하들의 말이 모두 한 입에서 나온 듯하더라.

"이제 국사를 폐한 지가 여러 날이라. 엎드려 빌건대 승상은 전일의 과업을 전수하여 옥새를 받으시고 제위를 이으셔서, 조야(朝野) 신민(臣民)의 실망지탄(失望之嘆)이 없게 하옵소서."

 

하며, 모든 대소 관원이 일시에 당 아래 땅에 엎드려 사배(四拜)하니 그 위엄이 서릿발 같은지라. 궐내가 떠들썩하여 창황(蒼黃) 분주하고 장안이 진동하여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분노하니 마치 병란을 당한 것과 같았다.

이 때 이두병이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국법을 새로이 하여 각국 열읍(各國列邑)에 공문을 보내 벼슬도 올려 주는지라. 여러 신하들이 모여 동궁을 폐하여 외객관(外客館)으로 내치니, 시중(侍中) 빈환(嬪宦)과 내외궁(內外宮)의 노비 등이 하늘을 부르짖고 땅을 치며 끝없이 슬프고 마음 아파하니 푸른 하늘이 부르짖는 듯하고 태양도 빛을 잃은 듯하더라, 이때에 왕부인이 이러한 변을 보고 크게 놀라 실색(失色)하여,

 

"마땅히 죽으리로다."

 

하며, 주야로 하늘을 향해 축수하여 말하기를,

 

"웅의 나이 팔 세에 불과하니 죄없는 것을 살려 주소서."

 

하며, 애걸하니 그 정상을 차마 보지 못하겠더라. 웅이 모친을 붙들고 만가지로 위로하여 말하기를,

 

"모친은 불효자식을 생각하지 마시고, 천금 같이 귀하신 몸을 보존하소서. 꿈 같은 세상에 유한한 간장을 상하게 하지 마소서. 인생에서 죽는 일 하나만은 제왕도 마음대로 못하옵거늘 어찌 한 번 죽음을 면하오리까? 짐작하옵건대 이두병은 우리의 원수요, 우리는 저의 원수가 아니오니 어찌 조웅이 이두병의 칼에 죽겠사오리가? 조금도 염려치 마옵소서."

하며 분기를 참지 못하더라.

 

이 때 이두병이 큰 아들 관으로 동궁을 봉하고 국호를 고쳐 평순황제(平順皇帝)라 하고 개원(改元)하여 건무(建武) 원년(元年)으로 삼았다.

 

이즈음에 송 태자를 외객관에 두었더니, 조신(朝臣)이 다시 간하여 태산계랑도에 정배(定配) 안치(安置)하여 소식을 끊게 하였다. 이날 왕부인 모자가 태자께서 정배되었다는 말을 듣고 망극하여,

"우리 도망하여 태자를 따라 사생(死生)을 한 가지로 하고 싶으나 종적이 탄로나면 이에 앞서 죽을 것이니 어찌 하리오?"

 

하며 모자가 주야로 통곡하더라. 하루는 웅이 황혼의 명월을 대하여 원수 갚을 묘책을 생각하더니, 마음이 아득하고 분기탱천(憤氣?天)한지라. 울적한 기운을 참지 못하여 부인 모르게 중문에 내달아 장안 큰 길 위를 두루 걸어 한 곳에 다다르니 관동(冠童)이 모두 모여 시절 노래를 부르거늘, 들으니 그 노래는 이러하더라.

국파군망(國破君亡) 하니 무부지자(無父之子) 나시도다.

문제(文帝)가 순제(順帝)되고 태평(太平)이 난세로다.

천지가 불변하니 산천을 고칠소냐.

삼강이 불퇴(不頹)하니 오륜을 고칠소냐.

맑고 밝은 하늘에서 소슬히 내리는 비는

충신원루(忠臣怨淚) 아니시면 소인(騷人)의 하소연이로다.

슬프다 창생(蒼生)들아,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사해에 노니다가 시절을 기다려라.

웅이 듣기를 다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루 걸어 경화문에 다다라 대궐을 바라보니, 인적은 고요하고 월색은 뜰에 가득한데 오리와 기러기 몇 쌍이 못에 떠 있고, 십 리나 되는 화원에 전 왕조의 경치와 풍물 아닌 것이 없더라. 전 왕조의 일을 생각하니 일편단심에 구비구비 쌓인 근심이 갑자기 생겨나는지라. 조웅이 담장을 넘어 들어가 이두병을 만나서 사생(死生)을 결단하고 싶으나 강약(强弱)이 같지 아니할 뿐더러, 문 안에 군사가 많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지라 할 수 없이 그저 돌아서며 분을 참지 못하여 필낭(筆囊)에서 붓을 내어 경화문에 대서특필(大書特筆)하여 이두병을 욕하는 글 수삼구(數三句)를 지어 쓰고는 자취를 감추어 돌아오더라.

이날 왕부인이 잠자리에서 한 꿈을 얻었는데, 승상이 들어와 부인의 몸을 만지며,

"부인은 무슨 잠을 그리 깊이 자는가? 날이 밝으면 큰 화를 당할 것이니 웅을 데리고 급히 도망하소서."

하거늘, 부인이 망극하여 묻기를,

"이 깊은 밤에 어디로 가리이까?"

 

승상이 말하기를,

"수십 리를 가면 자연히 구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니 급히 떠나소서."

하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웅을 찾으니 또한 없었으므로 대경실색하여 문 밖으로 내달아 두루 살펴보니 인적이 없었다. 왕부인이 정신이 창황하여 이윽히 중문을 바라보니 웅이 급히 들어오거늘, 부인이 크게 놀라 묻기를,

"이 깊은 밤에 어디를 갔더냐?"

 

웅이 말하기를,

"마음이 산란하여 월색을 따라 거리를 배회하다가 돌아오나이다."

부인이 목이 메어 말하기를,

"아까 한 꿈을 얻으니 네 부친이 와서 이리이리 하라 하셨으니, 가다가 죽을지라도 어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느냐? 바삐 행장을 차려라."

하시니, 웅이 놀라 말하기를,

"소자가 아까 나가서 동요를 듣사오니 그 내용이 이러이러하옵거늘, 분한 마음에 경화문에 다달아 이리이리 쓰고 왔나이다."

 

부인이 매우 놀라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어린 아이가 이렇듯 일을 망령되이 하느냐? 그렇지 아니 하여도 마음이 우물가에 어린 아이 세워둠과 같거늘 어찌 그리 경솔한가? 밝은 날에 그 글을 보게 되면 경각에 죽을 것이니 바삐 행장을 차려 도망하자."

하시고 모자가 힘닿는 대로 약간의 의복과 행장을 가지고 곧바로 충렬묘에 들어가니, 화상의 얼굴이 붉고 땀이 나 화안(畵顔)을 적셨거늘 모자 나아가 안하(案下)에 엎드려 크게 울지는 못하고 체읍(涕泣)하여 가슴을 두드리며 애통해 하니 그 모습이 불쌍하고 가련하더라.

정신을 진정하여 일어나 화상을 떼어 행장에 간수하고 급히 나와 웅을 앞세우고 걸음을 재촉하여 수십 리를 나와 대강(大江)에 다달으니 물새는 하늘에 닿았고 달은 떨어져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려 길을 분별하기 어려웠다. 마침 물 가에 빈 배가 매여 있되 사공은 없는지라. 배에 올라 부인이 손수 삿대를 들고 아무리 저은들 매여 있는 배가 어디를 가리오? 벌써 동방이 밝아오고 갈 길은 아득하여 하늘을 우러러 목놓아 울부짖다가 물에 빠지려 하거늘, 웅이 붙들고 무수히 애걸하니 차마 죽지는 못하더라. 마침 바라보니 동남쪽 대해(大海)에서 선동(仙童)이 일엽주(一葉舟)에 등불을 돋워 달고 만경창파에 살같이 오기에, 반겨 기다렸더니 순식간에 지나가거늘 부인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선주(船主)는 급한 사람을 구원하소서."

하시니, 선동이 배를 멈추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어떠한 사람이 바삐 가는 배를 만류하나이까?"

 

하며, 오르기를 재촉하거늘 부인이 반겨 배에 오르니 매우 편안하고 배를 젓지 아니 하여도 빠르기가 화살 같은지라. 부

인이 묻기를,

 

"선주는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만경창파(萬頃蒼波)에 육지같이 다니느뇨?"

선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남악선생께서 '강호의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받자와 사해팔방(四海八方)을 두루 다니나이다."

하며 삽시간에 강둑에 다달아 내리기를 청하거늘, 모자가 행장을 메고 배에서 내려 백배 사례하여 말하기를,

"선주의 덕을 입어 대해(大海)를 무사히 건넜으니 은혜가 망극하여 갚을 길이 없거니와, 묻나니 여기는 황성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느뇨?"

 

선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까 온 길이 수로(水路)로 일천삼백 리요, 육로로 삼천삼백 리로소이다."

 

부인이 말하기를,

"어디로 가야 살 수 있겠사옵니꺄?"

 

선동이 말하기를,

"잠깐 곤란하고 급박하지만 어찌 죽사오리까? 이제 저 산을 넘어 가면 인가가 많으니 그곳으로 가소서."

하고는 배를 저어 가버리더라.

 

이날 밤에 황제의 꿈이 몹시 흉하고 참혹하기에 날이 밝기를 기다려 여러 신하들을 입시(入侍)하여 꿈 속의 일을 의논할 때, 경화문을 지키던 관원이 급히 고하여 말하기를,

"밤이 지나고 나니 문밖에 없던 글이 있기에 등서(謄書)하여 올립니다."

 

황제께서 그 글을 보니,

"송나라 황실이 쇠미(衰微)하니 간신이 조정에 가득하도다! 만민이 불행하여 국상(國喪)이 나셨도다! 동궁이 장성하지 못했으니 소인이 득세하는 때로다! 만고 소인 이두병은 벼슬이 일품이라. 무엇이 부족하여 역적이 되었단 말인가? 천명이 온전하거늘 네 어이 장수하리오. 동궁을 어찌하고 네가 옥새를 전수하느냐? 진시황의 날랜 사슴 임자 없이 다닐 때에 초패왕의 세상 덮는 기운과 범증의 신묘(神妙)로도 임의로 못 잡아서 임자를 주었거늘, 어이할까 저 반적아! 부긔도 좋거니와, 신명을 돌아보아 송업(宋業)을 끊지 말라. 광대한 천지간에 용납 없는 네 죄목을 조목조목 생각하니 일필(一筆)로도 난기(難記)로다.

이 글은 전조 충신 조웅이 삼가 쓰노라."

하였더라.

 

황제와 여러 신하들이 보고나서 놀라며 분기 등등하여 우선 경화문 관원을 잡아들여 그때에 잡지 못한 죄로 곤장을 쳐서 내치고는 크게 호령하여 조웅 모자를 결박하여 잡아들이라 하니 장안이 분분한지라. 관원들이 조웅의 집을 에워싸고 들어가니 인적이 고요하고 조웅 모자는 없는지라. 금관(禁官)이 돌아와서 도망한 사연을 주달(奏達)하니, 황제께서 서안(書案)을 치며 크게 노하여 대신을 매우 꾸짖어 말하기를,

 

"조웅 모자를 잡지 못하면 조신(朝臣)에게 중죄(重罪)를 내릴 것이니 바삐 잡아 짐의 분을 풀게 하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매우 급하고 두려워하여 장안을 에워싸고, 또한 황성 삼십 리를 겹겹이 싸고 곳곳을 뒤져 본들 벌써 삼천 리 밖에 있는 조웅을 어찌 잡으리오. 끝내 잡지 못하니 황제께서 분기를 참지 못하여 크게 호령하기를,

 

"우선 충렬묘에 가서 조정인의 화상을 가져오라."

 

하였는데, 금관(禁官)이 명을 듣고 말을 달려 충렬묘에 가서 화상을 찾으니 또한 없는지라. 금관이 황망히 돌아와 화상도 없는 연유를 아뢰어 보고 하더라. 황제가 서안을 치며 좌불안석(坐不安席)하여 '경화문 관원을 다시 잡아들이라'하니, 시신(侍臣)이 창황 분주하여 넋을 잃더라.

 

순식간에 경화문 관원을 잡아들이니, 황제께서 매우 화가 나 '불문곡직하고 끌어내어 효시(梟示)하라' 하니, 즉시 끌어내어 목을 매단 후에 아뢰니 황제께서 또 명을 내리기를,

 

"충렬묘와 조웅의 집을 다 불태워라."

하고도 침식이 불안하므로, 여러 신하들이 여쭈기를,

 

"웅은 나이가 팔 세이고, 그 어미는 여인이라서 멀리 못 갔을 것이니, 각도 열읍(列邑)에 급히 공문을 보내면 우물에 든 고기를 잡듯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황제께서 옳다고 여겨 각도의 열읍에 행관(行關)하여 '조정 관료나 서민을 막론하고 조웅 모자를 잡아 바치면 천금의 상과 함께 만호후(萬戶侯)에 봉할 것이리라' 하였더니, 각도 열읍이 행관을 보고 방방곡곡에 지휘하여 조웅 모자 잡기를 힘쓰더라.

 

이즈음에 조웅 모자는 배에서 내려 선동(仙童)이 일러준 대로 한 뫼를 넘어가니 인가가 많고 송죽이 빽빽한 고요하고 깨끗한 마을이었다. 마을 앞에 앉아 인물을 구경하니, 사람의 거동이 유순하고 한가하더라.

우물가의 물 긷는 사람에게 물을 얻어 마시고, 여러 사람에게 하룻밤 지내기를 청하니, 그 중에 한 사람이 인도하여 한 집을 가리켜 주더라. 그 집에 들어가니 적막하고 고요하여 남자가 없고 다만 나이 많은 여인이 젊은 처녀를 데리고 있거늘, 나아가서 예를 표하고 방안을 둘러보니 매우 맑고 깨끗하여 사람이 비칠 듯하더라.

 

주인이 묻기를,

"부인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시나이까?"

부인이 대답하기를,

"신수가 불길하여 일찍 남편을 여의고, 또 가정에 화를 만나 신명(身命)을 도망하여 어린 자식을 데리고 갈 곳 없이 다니옵더니, 천우신조로 주인을 만났기에 묻자오니 이곳은 어디오며 마을 이름은 무엇이옵니까?

주인이 말하기를,

"계량섬 백자촌이라 하나이다."

하고, 여아를 시켜 저녁밥을 지어왔는데 보니 음식이 소담한데다 종류가 많고 향기가 좋은지라. 모자가 포식하고 주인을 향햐여 무수히 치사(致謝)하니, 주인이 도리어 사양하기를,

"변변치 못하게 차린 밥으로 큰 인사를 받으니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옵니다."

 

부인이 더욱 치사하고 바깥 주인의 유무를 물으니, 길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팔자가 기박하여, 남편이 일찍 계량태수를 지내고 이 마을이 한적하고 외진 곳이기에 이 집을 짓고, 오십 후에 다만 한 딸을 두고 별세하므로 혈혈단신(孑孑單身)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땅 백성이 되어 목숨을 부지하고 있나이다."

부인이 차탄(嗟歎)하고 그 집에 머무니, 일신은 편하나 고향을 생각하니 상심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일월이 무정하여 세월이 저무는데, 객지에서 해를 보내니 층층한 수회(愁懷)와 무한한 분기(憤氣)는 비할 데 없더라.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부인의 나이는 마흔이요, 웅의 나이는 구 세라. 원래 백자촌은 백 가지 약이 나서 마을 사람들이 약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백자촌이라 하더라. 하루는 주인이 부인에게 그윽이 이르기를,

 

"꿈 같은 세상에 부평초 같은 인생이 백세를 편히 살아도 여한이 무궁한데, 부인의 나이는 방년이요 곤궁하기가 막심하니, 세상의 궁박(窮迫)을 혼자서 지고 어찌 살려 하나이까?"

 

부인이 웃고 말하기를,

"나도 세상이 덧없고 허무한 줄 알거니와 내 신세가 이러하고 남은 생이 멀지 않았으니 이제 얼마나 살리요. 자식이 있사오니 후사나 이을까 하여 그것만 믿고 남은 목숨을 보전하나이다."

 

주인이 말하기를,

"부인의 말씀이 참혹하고 불쌍하여 차마 보기 어렵도다. 천지가 생겨날 때 청탁(淸濁)을 가려서 사람과 만물을 구분하여 만들어 냄에, 각각 짝을 정하여 음양의 즐거움을 이루었거늘, 부인은 무슨 일로 인연이 끊어진 남편을 생각하여 무정한 세월을 재미없이 보내다가, 흐르는 세월이 백발을 재촉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고 다시 젊어지기가 어려운지라. 다만 내가 청하는 바는 내 사촌이 이 마을에 사는데, 룬은 나이에 부인을 잃고 마땅한 혼처를 정하지 못하여 밤낮으로 배필을 찾아 널리 구하옵더니, 하늘이 인연을 보내시어 부인을 만나게 되니 마음에 마땅합니다. 부인은 늙은이의 말을 욕되다 여기지 마시고 빙설(氷雪)같은 정절을 잠깐 굽히시면, 부귀가 극진하고 생전에 무궁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니 깊이 생각하옵소서."

 

부인이 이 말을 들음에 이마가 서늘하고 분한 기운이 치밀어 오르나 늙은이의 말이기에 이윽히 진정하고 변색하여 대답하기를,

 

"고향을 떠나면 천해진다 하지만, 어찌 사람의 심정을 모르고 욕설로써 창부 대접하듯 하십니까? 인간의 천성은 같을 망정 각자 가진 마음이 다르거늘, 욕설이 이러할진대 어찌 살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노기(怒氣)가 등등하니, 주인이 물러 앉아 부인이 말을 듣지 않을 줄 알고 다시 달래기를,

"나는 부인의 어려운 신세를 불쌍히 여겨 이른 말씀이옵더니, 이토록 성을 내시니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하며, 갖가지로 달래서 성난 기운을 풀게 했지만, 부인은 이 말을 들은 후로 행여 무슨 화가 있을까 밤낮으로 염려하게 되었다. 그 늙은이가 저의 사촌에게, 부인과 수작하던 말을 이르고는, '그 마음이 빙설(氷雪)같아 돌이킬 방도가 없겠다'고 하니, 이 사람은 본디 강포(强暴)한지라, 이 말을 듣고는 분하게 여겨 대답하기를,

 

"아직은 그냥 두십시오. 그물에 든 고기이오니 장차 어떻게 할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하더라.

하루는 웅이 부인께 여쭈기를,

"우리가 여기에 온 지 거의 팔년입니다. 황성의 소식이 망연하옵고, 또한 이런 깊은 골짜기에 묻혀 있으면 사람이 우매하고 심장이 상하오니, 소자가 잠깐 나가서 두루 다니며 황성 소식도 듣잡고 선생을 정하여 공부도 하고 싶습니다."

 

부인도 욕설을 들은 후로 잠시라도 머물 뜻이 없었는데 이 말을 듣고서는,

"내 마음이 설령 편한들 너를 내보내고 어찌 이곳에서 혼자 머물겠느냐? 네 말이 당연하니 나와 함께 가자."

하시고 이튿날 행장을 꾸려 주인께 하직하기를,

"주인의 은혜가 하해(河海) 같은데 조금도 갚지 못하고 떠나기가 매우 안타까우나 은혜를 한 사람에게만 끼치기가 어렵사와 떠나려 하옵나이다."

 

라고 하직하고서 불시에 길을 나서니 주인은 망연하여 손을 잡고 이별을 못내 슬퍼하며 후일에 다시 만날 것을 당부하였고 부인도 못내 슬퍼하며 길을 떠났다. 부인이 웅을 데리고 조금씩 조금씩 걸어 수십 리를 가니 발이 붓고 기운이 다한지라. 웅이 모친의 거동을 보고 짐을 모두 합쳐 지고 앉으며 일어나며 겨우 십 리를 가서 주점을 찾아 쉬고는, 또 이튿날 짐을 갈라 지고 반나절이 되도록 갔으나 주점이 없는지라. 배가 매우 고프고 힘이 다하여 길가에 앉아 있었더니 마침 말 탄 사람이 오거늘, 웅이 반겨 먹을 것을 청하니 그 사람이 말에서 내려 말하기를,

 

"내 집이 가까우면 함께 갔으면 좋으련만 어찌할 수 없구나!"

하고, 바랑에서 다과를 내어 주거늘 웅이 치사(致辭)하고 다과를 가지고 돌아와 모자가 먹고 목마르고 배고픔을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이러구러 삼 일만에 한 곳에 이르니 그곳은 해산현 옥구역이라. 해는 남아 있으나 발이 붓고 몸이 피곤하여 쉬려고 들어가니 그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말하기를,

 

"새 황제께서 각도 열읍에 공문을 보내어 '조웅 모자를 잡아 바치면 천금의 상과 만호후(萬戶侯)에 봉할 것이라'하니 우리도 천행으로 그들을 잡으면 벼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며, 행인들을 살피곤 했다. 웅의 모자가 이 말을 들으니 가슴이 섬뜩하고 정신이 없는지라, 급히 몸을 숨겨 그 역촌 마을을 떠나 도망가니 피곤한 기색도 없어지고 걷기 어렵던 발도 아프지 아니한지라. 깊은 산중에 들어가 바위 아래에 숨어 서로 붙들고 울며 말하기를,

 

"이제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죽을 것이니 어찌하리오."

 

하며 무수히 통고하니, 그 정상은 차마 헤아리지 못할러라. 곧 날이 저물어 밤이 되니, 이때는 춘삼월이라. 온갖 꽃이 만발하고 수목이 울창한데 어두운 밤 적막 산중에 어디로 가리오? 바위를 의지하여 밤을 지샐 때 승냥이와 이리가 울고 호랑이와 표범이 왕래하였으나 조금도 두렵지 아니한지라. 이윽고 삼경에 뜬 달은 나무 그늘에 내려와 은은히 비추어 천봉만학(千峰萬壑)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무심한 잔나비의 울음소리는 나그네의 심정을 더욱 슬프게 하고, 한을 품은 두견새는 꽃떨기에 눈물을 뿌려 점점이 맺어 두고 불여귀(不如歸)를 일삼으니, 슬프다! 두견새 울음 소리에 그 심사를 생각하니 우리와 같도다! 이러한 공산(空山) 중에 아무리 철석(鐵石) 간장인들 아니 울고 어이하리.

 

부인이 웅을 붙들고 무수히 통곡하니, 청산이 찢어지는 듯하고 목석이 다 서러워하는 것 같은지라. 애통으로 밤을 지내니 하룻밤 사이에 눈이 붓고 얼굴이 크게 상하여 다른 사람 같더라. 날이 밝은들 어디로 갈 것인가. 또한 기갈이 심하여 한 걸음도 옮길 기운이 없는지라. 부인이 기운이 다하여 우거진 수풀 위에 누워 있는데, 웅이 비록 어리지만 꽃을 가져다가 부인께 드리니, 부인이 말하기를,

 

"아무리 배가 고픈들 이것이 어찌 요기가 되겠느냐?"

 

하고 서러워하더니, 마침 무슨 소리가 나기에 한편 반기며 한편 겁을 내어 살펴보니 대여섯 명의 여승이 오고 있었다. 부

인이 여승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느 절에 있으며 어디로 갑니까?"

하니 그 중이 묻기를,

"부인은 어디에 사시길래 이런 산중에 외로이 계십니까?"

 

부인이 말하기를,

"길을 잃고 이곳에 들어와 기갈이 심하여 오가지도 못하고 앉아 있나이다."

 

그 중들이 불쌍히 여겨 각각 가진 다과와 밥 두어 그릇을 주기에, 웅의 모자가 감사히 받고 사례하여 말하기를,

"죽게 된 인생을 구하여 주시니 은혜를 잊지 못하겠거니와, 이곳에서 절까지는 얼마나 됩니까?"

 

중들이 대답하기를,

"산중에는 절이 없삽고, 저희들이 있는 절은 여기에서 백여 리쯤 되는데 험한 산길을 어찌 혼자 가시겠습니까? 저희들이 절에 가는 길이라면 모시고 가고 싶으나, 이 고을 태수가 새로 부임하였기에 문안 가는 길이라 형편상 어쩔 수 없거니와, 이 길을 수십 리를 가오면 마을이 있사오니 그곳으로 가소서."

하거늘, 부인이 여승들과 하직하고 돌아와 그 밥을 둘이 먹으니 요기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에 웅이 일어나 행장을 수습하여 길을 나서자고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어디로 가잔 말이냐? 반드시 관원들에게 잡힐 것이니 어찌 남의 손에 죽으리오? 차라리 이 산중에서 굶어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시니, 웅이 여쭈기를,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사오니 하늘이 죽이면 죽을 것이오 살리면 살 것이오니, 어찌 사람을 두려워하여 이 산중에서 굶주려 짐승의 밥이 되리이까?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고 마을로 나가사이다."

가기를 재촉하니, 부인이 슬퍼하며 말하기를,

"너는 종시 큰 말을 말아라. 우리 둘이 길을 가면 반드시 행색(行色)으로 인하여 잡힐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내가 생각하니 행색을 달리하면 좋을 듯하다. 내가 삭발하여 중이 되고 너는 상좌(上佐)가 되면 누가 알겠느냐?"

 

웅이 말하기를,

"목숨을 보전하는 것도 중하지만, 어찌 유한(有限)한 머리카락을 없애오리까?"

부인이 달래어 말하기를,

"삭발을 한들 본래 중이 아닌데 행색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너는 추호도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결단코 삭발하리라."

하니, 웅이 울며 말하기를,

"그렇게 하신다면 소자도 삭발하겠습니다."

"너는 답답하구나. 어린 아이가 삭발을 하면 보는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또한 의심할 것이다. 네 소견이 이러하니 어찌 그리도 미련한가."

 

웅이 부인의 뜻이 그치지 아니할 것임을 알고,

"그리 하사이다."

라 말하니, 부인이 행장 속에서 가위를 내어 웅에게 주며 말하기를,

"머리를 깎아라"

히시니, 웅이 가위를 들고 머리를 깎으려 하나 눈물이 솟아나 차마 깎지를 못하고 통곡하니, 부인이 크게 책망하여 말하기를,

"내가 여태까지 산 것은 너를 위해서이다. 너는 비회(悲懷)를 없애고 나를 위로해야 옳거늘, 네가 먼저 나의 비회(悲懷)를 자아내고 말을 듣지 않고 한결같이 거역하니, 내가 어찌 살겠느냐?"

하시니, 웅이 두려워하여 울음을 그치고 가위를 잡아 머리를 깎으니,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더라. 가위를 던지고 머리를 안고 통곡하니, 목석이 눈물을 머금고 일월이 빛을 잃은 듯하더라.

 

부인과 웅이 머리를 만지며 무수히 통곡하니, 그 모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더라. 부인이 웅의 눈물을 닦아주고 어루만져 달래어,

"웅아 울지마라. 내 마음 둘 데가 없다."

하시며, 옥같은 뺨 위에 흐르는 눈물을 거두지 못하는지라. 웅이 울음을 그치고 어머니를 위로하여 말하기를,

"너무 서러워 마시고 마음을 진정하소서."

부인이 마지못해 정신을 차려 행장 속에서 의복을 꺼내 장삼을 지어 입고 머리에 일척(一尺) 포(布)를 쓰니, 웅이 모친의 거동을 보고 엎드려 무수히 통곡하더라. 부인이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해 웅을 붙들고 무수히 달래어 앞세우고 죽장(竹杖)을 짚고 마을로 내려오니 누가 능히 알겠는가. 마을에 나아가 밥을 빌어 먹고 다니더라.

하루는 한 곳에 장이 열렸기에 그곳에 가서 행장 속의 깎은 머리카락을 꺼내어 웅에게 주어 팔아오게 하니 겨우 돈 닷 냥을 받아왔거늘, 다행히 여겨 더러 요기도 하고 남은 돈은 행장에 갈무리하여 가지고 잠깐 주점에 머무르고 있었다. 밤이 깊은 후 잠결에 들으니 여러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서 마을이 요란하거늘, 이상히 여겨 내다보니 도적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부인이 크게 놀라 담을 넘어 도망하다가 생각하니 웅을 버리고 왔는지라. 간장이 끊어지는 듯하여 돌아보니 벌써 마을에 불기둥이 솟고, 도적 또한 고함을 치고 길을 덮으며 쫓아왔다. 가슴을 두드리며 웅을 부르니 벌써 도적이 가까이 오는지라. 부인이 어두운 밤에 길을 분간하지 못하여 하늘을 우러러 통고하며 '웅아, 웅아' 불렀더니,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나기에 내달아 보니 어떤 집이 있어 반기며 들어가니 이는 비각(碑閣)이라. 비석 뒤에 몸을 숨겨 도적을 피했다.

이날 밤에 웅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도적이 들어와 웅의 발을 잡아 문밖으로 내치거늘, 웅이 잠결에 놀라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도적이 또한 짐을 빼앗아 가기에 웅이 급히 따라가 도적을 붙들고 애걸하여 말하기를,

 

"짐은 가져가도 몇 푼 안되고 짐 속에 돈이 있으니 돈만 가져가고 짐은 주소서."

하며 극히 애걸하니, 그 중에 늙은 도적이 웅을 불쌍히 여겨 짐을 헤쳐보는데. 다만 돈 석 냥과 화상이 들어있거늘, 그 도적이 돈과 화상을 꺼내고 짐을 주거늘 웅이 울며 말하기를,

 

"나를 죽이고 화상을 가져가소서."

하니 그 도적이 물어 말하기를,

"화상은 어인 화상인가?"

 

웅이 말하기를,

"나는 대사의 상좌입니다. 우리 대사는 원근출입(遠近出入)에 불상을 가지고 다니시는데, 오늘 스승을 모시고 이 주점에서 자고 있었는데, 스승도 잃고 또 불상을 잃으면 소생이 스승을 대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절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갈 곳 없는 어린 아이가 굶어 죽을 것이니 쓸데없는 불상은 주고 가십시오."

 

하며 무수히 애걸하니, 늙은 도적이 여러 도적에게 권하여 불상을 돌려 주거늘, 웅이 받아 가지고 나와 짐 속에 넣고 물어 말하기를,

 

"이제 어디로 가면 스승을 만나리이까?"

 

그 도적이 말하기를,

"네 스승이 반드시 저 길로 갔을 것이니 그리로 가거라."

 

웅이 사례하여 말하기를,

"노인의 은덕으로 살아났으니 은혜가 백골난망(白骨難忘)입니다. 이후에 혹 만나 뵈올지라도 사시는 곳과 성명을 알고 싶습니다."

 

도적이 말하되,

"도적의 사는 곳을 알아 무엇하겠느냐? 빨리 가거라."

하거늘, 웅이 다시 하직하고 노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면서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했지만 이미 밤은 깊고 인적이 고요하여 찾을 길이 없어 지향없이 가더라.

 

이날 밤에 부인이 비각에서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승상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웅이 이 앞으로 지나가거늘 부인은 어찌하여 그것도 모르고 잠만 자나이까?"

하기에, 문득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비각 밖으로 달려나가니 어디서 슬피 우는 소리가 나거늘, 귀를 기울여 들으니 웅의 소리였다. 어두운 길에 구렁을 살피지 못하고 소리를 크게 하여 말하기를,

"웅이냐?"

 

웅이 말하기를,

"예, 웅이로소이다."

하고 달려 들거늘, 부인이 웅을 붙들고 통곡하여 말하기를,

"너는 도적의 화를 어찌 면하였느냐?"

 

웅이는, 도적의 화를 면하고, 돈을 잃고 화상을 찾은 사연과, 늙은 도적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길을 인도받아 어머니를 찾아 온 사연을 낱낱이 아뢰니,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어찌 그리 행장을 위하였는가? 네가 살아 화상을 찾아 왔으니 극히 다행이구나! 나는 도적에게 쫓겨 천지를 모르고 달아나다가 '네가 분명 죽었을 것이다.' 라고 여겨 어두운 밤에 어찌할 줄 몰라 자결코자 하였는데, 마침 이 비각이 있어 머물렀더니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승상이 와서 이리이리 하더라."

 

말씀을 다하고 웅의 모자는 날이 새면 떠나려고 비각에서 기다렸는데 닭 울음 소리가 나면서 날이 밝았다. 웅의 모자가 나아가 비석을 보니 비를 맞은 듯한지라. 이상하여 자세히 보니 그 비명에 금자(金字)로, '대국충신(大國忠臣) 병부시랑(兵部侍郞) 겸 각도진무어사(各道鎭撫御使) 조정인의 만고불망비(萬古不忘碑)'라 새겨져 있고, 비문에는,

 

"황상이 밝게 살피시어 위왕을 죄주셨는데, 백성은 무슨 죄로 흉년을 만났는고? 살기를 도모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니, 황제가 명하여 어진 신하를 보내시니, 그 신하 만민의 부모가 되어 백성을 살려내니, 그 은덕을 의논하건대 태산이 오히려 가볍도다. 갚을 것을 생각하니 천지의 끝없음과 같은지라. 어리석은 백성들아 만세를 잊을소냐."

하였더라.

 

웅의 모자가 비명을 보고 승상을 뵈온 듯하여 비석을 붙들고 매우 애통해 하니, 산천 초목이 다 우는 듯하고 온갖 짐승이 눈물을 흘리는 듯하였다. 웅이 모친을 위로하고 말하기를,

 

"부친의 비각이 어찌 여기에 와 있습니까?"

 

무인이 말하기를,

"이 비석을 보니 여기는 위나라의 경계로다. 네 부친이 병부시랑으로 있을 때에 위왕 두침(杜侵)은 포악한 사람으로 걸주(桀紂)와 같은지라. 이에 백성이 모두 도탄(塗炭)에 빠져 서로 동요(童謠)를 지어 불렀으되, '우리 임금은 언제나 망할까? 하루가 여삼추(如三秋)라. 언제나 나라가 망할꼬?'라 하니, 이 동요가 온 나라에 퍼졌더라. 그 즈음에 위왕이 역모의 뜻을 품고 대국을 탈취하려고, 요망스러운 도사의 말을 듣고 십오 세 된 남녀 둘을 잡아 각각 포육(脯肉)을 떠 음양에 맞추어 하늘에 제사지내고, 병사를 일으켜 대국을 향하여 나오다가 변양 땅에 이르렀다. 이에 하늘이 신병(神兵)을 몰아 위왕을 쳐서 죽이고, 삼년 동안 비를 내리지 않게 하니 흉년이 매우 심해 백성이 사방으로 흩어지니 이에 황제께서 근심하시어 네 부친을 택하여 내보내시니, 부친이 마지못해 그곳에 가서 소와 양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 비를 얻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 백성을 구휼(救恤)하였다. 이에 돌아오는 길에 백성이 비를 세우고 많은 사람이 모여 앞다투어 하직하였다."

하고,

 

"네 부친이 생시에 익히 말하던 것을 들었는데, 이제와서 이 비석을 볼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하시며 필묵을 내어 비문을 베껴 가지고 통곡하며 하직하고 떠나려 하는데, 동서남북 어디로 향할 수 있으리오? 슬프다! 떠도는 몸이라 행장에 한푼도 없어 굶어 죽은들 누가 살려내리오?

 

웅이 말하기를,

"이제 또 주점을 찾아다니다가 무슨 화를 당할 줄 모르니 절을 찾아 가사이다."

 

부인도 또한 옳게 여겨 절을 찾아가며 행인을 만나면 절을 물으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중이 절을 모르는데 속인(俗人)이 어찌 알리오?"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세히 가리켜주기도 하였다.

슬프다! 세월이 물같이 흘러 떠돌아 다닌 지 삼 년에 웅의 나이가 십 일세라.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족히 어른을 능가하는지라. 길을 가다가 혹 강을 만나면 어머니를 업고 건너기도 했다.

하루는 종일토록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인가도 없는지라. 기갈이 심하여 길가에 앉았는데, 동남쪽 산골짜기의 험한 길에서 한 무리의 중들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거늘 웅이 반겨 그들을 기다리니, 그 중들이 와서 반기며 다과를 내어 부인에게 드리며 말하기를,

"다니기에 시장하실 것이니 요기나 하소서."

하거늘, 웅의 모자가 다행히 여겨 다과를 받아 먹으니 요기가 착실히 되는지라. 부인이 감사하여 말하기를,

"과연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기갈이 심하여 죽게 되었는데 뜻밖에 활인지불(活人之佛)을 만나 배부르게 먹으니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

하니, 그 중이 웃고 말하기를,

"잠깐 요기하신 것을 은혜라 하실 것 같으면, 소승은 부인께 천금을 얻어 왔사오니 그 은혜가 어떻다 하리이까?"

부인이 놀라 말하기를,

"소승은 본래 가난한 중이라, 사방에 다니며 걸식을 면치 못하옵거늘 내가 어찌 천금의 재물을 알리오?"

 

그 중이 웃고 말하기를,

"대국 조충공의 부인이 아니십니까? 일신(一身)을 감추고 굳게 변장하고 다닌들 소승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부인과 웅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말하기를,

"이제는 우리의 종적이 드러나 여기에 와서 잡혀 원수의 칼에 죽을 것이로다."

하고, 모자가 통곡하며 그 중에게 애걸하여 말하기를,

"우리를 잡아 황성에 바치면 천금의 상과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지겠지만, 세상의 부귀는 일시에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광풍의 한 조각 구름 같고, 물 위의 거품과 같은지라. 한 순간의 영화를 생각하지 말고 인명을 살려 주소서. 중은 또한 부처의 제자이니, 어진 도(道)로써 인명을 구제하시면 후세에 반드시 부처가 되올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존사(尊師)는 남은 목숨을 보전케 해 주십시오."

하며 붙들고 애걸하니, 그 중이 웃으며 말하기를,

"부인은 조금도 겁내지 마옵소서. 소승은 부인을 잡아갈 중이 아니오니 진정하시고 소승의 말씀을 자세히 들으소서."

 

부인이 정신을 차려 다 듣고 나자 중이 말하기를,

"부인은 살펴보소서. 어찌 소승을 모르시나이까? 소승은 부인댁 승상의 화상을 그리던 중 월경(月鏡)이로소이다. 그 때

승상의 화상을 그리옵고 부인께 보여드리니, 부인께서 천금을 주시기에 받아갔는데 부인은 어찌 소승을 모르시나이까?"

 

그제야 부인이 자세히 보니, 그때 화상을 그리던 중과 비슷하지만 세상일을 어찌 알리오?

"천금을 줄 때에는 확실했겠으나 마음에 분명히 새겨둔 일이 아니라서 이를 기억하지 못하니, 존사(尊師)는 꺼리지 말고 바른대로 일러 주소서."

하고 긴히 애걸하니, 그 중이 민망하게 여겨 위로하여 말하기를,

"부인께서 유한한 간장을 객지에서 여러 해 근심하였기로 정신이 상하여 잊으신 것 같습니다. 소승의 또한 명백히 밝힐 증거가 있으나 가져오신 화상을 내어보십시오."

 

부인이 대경실색하여 말하기를,

"빌어먹는 사람이 무슨 화상이 있사오리까? 존사는 무지한 인생을 대하여 숨기지 말고 바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는 도마 위에 오른 고기인지라, 죽고 살기는 존사의 처분에 달려있으니 마음대로 하소서."

하며 무수히 통곡하니, 중이 절박하여,

"어찌 이토록 의심하시나이까? 그 때 화상을 그려서 부인을 뵈었는데, 잉태하신 지 일곱 달이었기에 짐작되는 일이 있삽기로 부인의 상을 보고 앞날의 어려움을 기록하여 화상의 등에 넣어 두었사오니, 화상을 내어 그 글을 보시면 의혹을 풀고 소승의 허실을 쾌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부인이 마음 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여겨 그제서야 화상을 내어 등의 종이를 떼고 자세히 보니 과연 글을 지어 등에 넣었는지라. 그 글에 쓰여있기를,

"꽃같이 아름다운 왕부인이 삭발은 무슨 일인고? 파강(破江) 천경파(千頃波)에 거북을 만나도다. 성주(城主)는 뉘시던가. 굴삼려의 충혼(忠魂)이라. 복중(服中)에 끼친 혈육 활달하 기남자라. 공자(公子)로 상좌 삼고 변장을 굳게 한들 화상이 불변커늘 필법조차 고칠소냐.

 

이 글은 위나라 산양땅 강선암 월경이 삼가 쓰노라. 경오년 추 칠월 십오일 상봉(上封)."

이라 하였더라.

부인이 보기를 다하고 대경 대희(大喜)하여 월경을 붙들고 슬피 통곡하여 말하기를,

"어찌 그리 몰라 볼소냐. 우리는 신명(身命)을 도망하였거니와, 지금 황제께서는 우리를 잡아들이라 하고 열읍(列邑)에 행관(行關)하였다 하기에, 마음에 겁이 많아 변장하고 다니다가, 하늘의 은혜로 이곳에 이르러 존사를 만났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 하며 또 어찌 슬프지 아니 하리오."

하고, 그제야 신승(神僧)인 줄 알고 못내 즐기며 전후 고생하던 사연을 다 말하니 월경대사가 듣고 스스로 탄식하여 말하기를,

"대강은 아옵거니와, 흥망성쇠와 존비(尊卑)귀천(貴賤)이 모두 하늘에 달렸으니 한탄한들 어찌 면하겠습니까? 소승은 오늘날 이렇게 만날 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먼저 와 기다려야 했을 것을, 절에 일이 있어 늦게 와서 뵙게 되니 몹시 황공하옵니다."

하고, 부인과 공자를 모셔 험한 산길로 들어가니, 첩첩이 쌍인 석벽은 좌우에 병풍이 되고, 무수한 수목은 빽빽히 높이 솟아 산을 가리었고, 그 사이에 잔잔한 시냇물은 구비구비 폭포되고, 은은한 석경(石磬) 소리가 쟁쟁이 가까워져 석양에 바쁜 나그네가 듣기에 반갑도다.

 

단교(斷橋)를 건너 석문에 다다르니 천봉만학(千峰(萬壑)은 사방에 성이 되고, 그 가운데는 매우 넓어 큰 못에 물이 넘치니, 십여 명의 중이 조각배를 타고 기다리고 있는지라. 제승(諸僧)이 배에서 내려 극진히 예를 표하며 반기는 듯하더라.

배에 오르니 좌우에 연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옷에 스며들고, 무심한 백구(白鷗)들은 오락가락 하는지라 구경하며 들어가니 표연한 선경(仙境)이더라. 절 앞에다 배를 매고 형당에 들어가니 선경이요 참으로 별천지였다. 절은 새로 고쳐 지어 매우 맑고 깨끗함이 극진하더라. 부인이 말하기를,

 

"오늘날 존사(尊師)를 구경하니 진실로 선경입니다. 지극히 천한 세속의 나그네가 선경을 들어오니 마음이 불안하여이다."

 

여러 승들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누추한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시니 매우 영광스러우나, 중들이 가난하여 수간(樹間) 암자가 풍우에 퇴락하여 무너지게 되었는데, 연전(年前)에 월경대사께서 황성에 가셨다가 부인께 천금의 재물을 얻어 와 절을 중수하였삽거니와, 가난한 산승이 부인이 은혜를 어찌 갚사오리까?"

 

제승(諸僧)이 백배 사례하고 덕을 칭송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적은 것을 시주하고 큰 인사를 받으니 오히려 부끄럽소이다."

 

중들이 예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대접하여 별당에 모셔 침식을 편하게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대사는 웅을 데리고 글도 의논하고 신통한 술법도 가르치니, 웅이 온갖 일에 민첩하여 한 일을 가르치면 열 일을 아는지라. 부인이 한가하여 일신이 평안하고 웅이 점점 자라매 근심하는 마음을 족히 덜 수 있게 되었더라.

 

세월이 물같이 흘러 웅의 나이가 15세라. 골격이 장대하고 기운이 남보다 뛰어나더라. 하루는 웅이 어머니께 청하여 말하기를,

"소자의 지금 나이가 십오 세요 이곳이 선경인지라 가히 살만한 곳이나, 남자가 세상을 살아감에 한 곳에서 늙을 것이 아니옵고, 신선도 두루 돌아다녀 박람(博覽)한다 하거늘, 소자가 슬하를 잠깐 떠나 산밖에 나가 세상을 구경하고 황성 소식도 듣고자 하나이다."

 

부인이 크게 놀라 꾸짖어 말하기를,

"천리 타향에 너는 나만 믿고 나는 너만 믿어 서로 의논하여 부지하거늘, 네가 한 순간인들 내 슬하를 떠나게 된다면, 내가 어찌 너를 내보내고 한 순간인들 잊을 수 있겠는가? 네가 어디고 갈 것이면 나도 함께 갈 것이다. 이후로는 그런 마음을 두지 말아라. 심히 어긋나는구나."

 

하시니, 웅이 다시는 아뢰지 못하고 나와서 월경대사에게 의논하여 말하기를,

"제가 이제 세상에 나가도 남에게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요, 또한 제가 중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산중에 있사오니 황성 소식도 모르고, 저의 심중에 품은 일도 아득하와, 얼마 전에 어머니께 사정을 여쭈었더니, 도리어 꾸중만 하시기에 다시 거역을 못하였삽거니오, 대사께서는 저를 위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돌려 저의 품은 뜻을 펼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대사가 말하기를,

"공자가 말하는 것이 반반한 장부의 말이로다."

하고 부인 앞에 가서 고금의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공자의 품은 큰 뜻을 여쭈니, 부인이 말하기를,

 

"말은 당연하나 만리 타국에 보내고 내 어찌 적막강산(寂寞江山)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한데 잠시인들 잊을 수 있겠으며, 또한 저의 나이가 어리고 세상 일에 어리석은지라, 어지러운 세상에 나가서 어찌 될 줄 알겠나이까?"

대사가 말하기를,

 

"부인의 말씀도 당연히 옳지만 이제 공자를 어리다고 하시지만, 천병만마(千兵萬馬)에 시석(矢石)이 비오듯 하여 살기 충천한 중에 놓아 두더라도 조금도 염려할 바 없을진대, 부인은 어찌 사람의 신명을 의심하십니까? 홍문연 살기(殺氣) 중에서도 패공(沛公)이 살아났고, 파강상 천경파에서도 부인이 살아났거늘, 어찌 천명을 근심하리오? 소승 또한 공자의 환란을 짐작하지 못하면 어찌 세상에 나감을 권하며, 공자가 세상에 나가더라도 부인은 소승과 함께 세월을 보낼 것인데 어찌 외로운 근심을 혼자 하리이까?"

 

이러한 말로써 만단개유(萬端改諭)하니 부인이 한동안 생각하여 말하기를,

"만일 존사의 말씀과 같지 못하면 어찌 하겠습니까?"

 

월경대사가 말하기를,

"공자의 평생 영욕을 다 알았사오니 조금도 염려하지 마옵소서."

부인이 마지 못하여 허락하였다. 대사와 웅이 기뻐 이튿날 길을 떠날 때 부인께 하직하니, 부인이 애처롭게 여겨 빨리 돌아오기를 당부하였고, 또 제승에게 하직하니, 월경이 절 입구까지 나와 악수하며 서로 이별하고 길을 가리켜 호송해 주었다. 길을 떠나 세상에 나오니 심신이 광활하여 눈앞에 두려운 것이 없더라.

이러구러 세상에 나온 지 반년이라. 하루는 어느 곳에 다다르니 그곳은 강호 땅이라. 천문만호(天門萬戶)에 인물이 번성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웅장하고 매우 거룩한지라. 시중(市中)의 큰 길을 두루 걸으며 백물을 구경하다가 한 곳에 이르니 반백(斑白) 노인이 거친 옷에 흑대(黑帶)를 띠었는데, 거동이 단정하고 깨끗하여 세상 사람 같지가 않더라. 삼척검(三尺劍)을 앞에 걸고 단정히 앉았거늘 웅이 그 칼을 보니 모양이 웅장한지라. 웅이 갖고 싶은 욕심이 간절하나 행장에 돈이 없고 또한 파는지 안 파는지를 몰라 멀리 앉아 거동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시장 사람들이 칼을 사려고 하니 노옹이 말하기를,

 

"값을 말하자면 천금이 넘습니다."

 

하니 사람들이 웃고 갔다. 웅이 더욱 욕심이 간절하나 '천금이라' 하니 묻지도 못하고, 값은 만금이라도 사고 싶지만 한 푼도 없는지라. 날이 이미 저물어 장이 파하니, 노인이 칼을 소매에 넣고 가거늘 뒤를 쫓아 보니 멀리 가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웅이 돌아와 주점에 묵고 이튿날 다시 장에 가니 아직 오지 아니하였거늘 주인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제 칼을 팔려던 노인은 어디 있으며 오늘은 어찌 아니 오나이까?"

 

주인이 말하기를,

 

"그 노인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나, 칼을 팔려고 왕래한 지 한 달이 넘었으되 값도 높을 뿐 아니라 혹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도 즐겨 팔려고 하지 않더이다."

 

하기에, 웅이 멀리 앉아 기다렸더니 그 노인이 또 와 소매에서 칼을 내어 걸고 앉거늘, 웅이 불만(不滿)하여 주인에게 돌아와 아무리 생각하여도 살 방도가 없는지라. 혼자 혀를 차며 탄식하고 주인에게 말하기를,

 

"오늘 그 노인의 사는 곳을 물어봐 주십시오."

 

하거늘 주인이 노인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떤 아이가 노인의 거주와 칼값을 묻더이다."

하니 노옹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그 아이의 행색이 어떠했습니까?"

 

주인이 말하기를,

"거동이 이러이러 하더이다."

 

노옹이 말하기를,

"그 아이 거주를 압니까?"

 

주인이 말하기를,

"알지 못하지만 기다려 보십시오. 다시 올 것입니다."

 

노옹이 마음에 민망히 여겨 기다렸지만 멀리 앉아 거동만 보는 조웅을 어찌 알리오. 날이 저문 후에 그 노인이 칼을 끌러 가져가며 무수히 탄식하더라. 웅이 주점에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았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또 가보니 그 노옹이 또 칼을 걸고 앉았거늘 수 삼 일을 욕심만 낼 따름이라. 그 노옹이 주인에게 당부하여 말하기를,

"이 칼의 임자는 분명 그 아이라. 기다리되 보지 못했으니 내일 또 오거든 부디 만류하여 나를 보게 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하였다.

 

이때 웅이 생각하되, '내일은 칼 값을 물어보고 결단하여 강선암에 가 월경대사에게 돈을 취해 값을 주리라'하고 이튿날 그 노인을 찾아가니, 칼을 또 걸고 무슨 글귀를 갓 위에 붙였거늘 나아가서 살펴보니,

화산도사일수중 華山道士一袖重

월패가의매검사 月牌可擬賣劍士

인언일검가기허 人言一劍價幾許

옹도삼시오유사 翁道三時吾有俟

분분시장기남자 紛紛市場幾男子

전과천인불원매 前過千人不願賣

웅아소식문수지 雄兒消息問誰知

좌즉지체기원시 坐則支滯起遠視

이라 하였는데, 이 글은,

화산도사의 한 소매가 무거우니,

행색이 칼 파는 선비같도다.

사람마다 칼 값을 물으니,

노인이 말하기를 내 기다리는 사람이 있노라.

번잡한 저자거리에 몇 남자를 모았는가?

이미 천명의 사람이 지나갔어도 팔기를 원치 않았노라.

웅의 소식을 누구에게 물어 알리오?

앉으면 턱을 괴이고 서면 멀리 보는지라.

와 같은 뜻이더라.

 

웅이 보기를 다하자 크게 놀라고 기뻐하여 노인에게 극진히 예를 표하고 칼 값을 물으니, 노인이 한참을 보다가 웅의 손을 잡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대 이름이 웅이냐?"

대답하기를,

"제가 웅입니다만, 어르신께서는 어찌 소자의 이름을 아십니까?"

 

노옹이 말하기를,

"자연히 알거니와, 하늘이 보검을 주시기에 임자를 찾아 전하고자 하여 사해 팔방을 두루 다녔는데, 몇 달 전에 장성이 강호에 비쳤거늘 찾아와 몇 달을 기다렸으나 도무지 만나지 못하였다. 매우 괴이하여 밤마다 천기를 보니, 강호에서 떠나지 아니 하고 그대의 행색이 비할 데 없이 곤궁하고 절박하여 분명 유리걸식하는 줄 짐작하였거니와, 찾을 길이 없어 방(榜)을 써 붙이고 만나기를 기다렸는데 그대를 만남이 어찌 이러 늦은가?"

하며 칼을 내어 주거늘, 웅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칼을 받아 보니 길이가 삼척이 넘고 칼 가운데 금자로 새기기를 '조웅검'이라 하였거늘, 웅이 다시 절하고 말하기를,

"귀중한 보배를 그냥 주시니 은혜가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온데 무엇으로써 갚을 수 있겠습니까?"

 

노옹이 말하기를,

"그대의 보배라. 나는 잠시 전할 따름이니 어찌 은혜라 하리오?"

하고, 웅을 데리고 며칠을 묵고 못내 사랑하다가 이별하여 말하기를,

"마음이 홀가분하거니와 그대의 갈 길이 바쁘니 부디 힘을 써 대명(大命)을 이루도록 하여라."

웅이 말하기를,

"어디로 가면 어진 선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하기를,

"이제 남방으로 칠백 리를 가면 관산이란 산이 있고 그 산중에 철관도사가 있으니, 정성이 지극하면 만나 보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낭패할 것이니 각별히 살펴 선생을 정하여라."

하고, 서로 악수하며 이별하고 웅이 허리에 삼척 장검을 차고 남쪽으로 향해 간 지 여러 날만에 관산을 찾아 들어가니, 산세가 기이하고 경치가 빼어난지라. 만장(萬丈) 절벽 사이에 개벽하여 천지를 열었고 수간 모옥에 석문을 열었거늘, 두 손을 마주 잡고 예를 표하면서 천천히 들어가니 지당(池塘)에는 연꽃이 만발하고 층계(層階)에는 국화로 둘렀더라. 외당(外堂)이 고요하고 여러 명의 동자가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거늘, 웅이 나아가 선생의 유무를 물으니, 동자가 일어나 읍(揖)하고 말하기를,

"요즘은 천렵에 골몰하시어 벗님을 데리고 나가셨으니 늦게야 오실겁니다."

 

웅이 낙심하여 묻기를,

"어느 때에 오시겠습니까?

 

동자가 대답하기를,

"황혼에 달이 뜨면 돌아오실 것입니다."

웅이 석양이 되도록 기다려도 형적이 없는지라. 주인 없는 집에 유숙하지 못해 산 밖으로 나와 마을에서 자고, 이튿날 또 가니 초당이 적막하거늘 동자를 청하여 물으니 대답하되,

"삼경에 돌아와 새벽에 나가셨나이다."

하거늘, 웅이 낙심하여 마음을 둘 데가 없는지라. 또 반나절이 되도록 종적이 없거늘, 다시 마을에 와서 밤을 지내다가 삼경에 가니 또 없었다. 웅이 민망하여 동자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첫 닭이 울면 나가시나이다."

하거늘 웅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십 년을 정성드려 선생을 찾아 왔는데 뵙지 못하오니, 바랍옵건대 동자는 가는 곳을 가르쳐 주소서."

 

동자가 웃고 말하기를,

"나뭇꾼이 기러기를 쏘아 맞히지 못함에 제 공부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활과 살을 꺾어 버리니, 그대도 나무꾼과 같도다. 그대 정성이 부족한 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주인이 없음을 원망하니 매우 우습도다. 다만 선생께서는 이 산중에 계시건만 천봉이 높고 만학이 깊었으니 종적을 어찌 알리오?"

하거늘, 무료하여 다시 묻지 못하고 반나절을 기다렸으나 종적이 망연한지라. 울적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붓을 잡아 못 보고 가는 뜻으로 글을 쓰고 동자를 불러 하직하고 나오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러라.

 

이때 철관도사가 산중에 그윽이 앉아 그 거동을 보더니 벽에 글을 쓰고 가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급히 내려와 벽의 글을 보니 그 글은 이러하다.

기작십년객 幾作十年客

영견만리외 迎見萬里外

몽택용유비 夢澤龍有飛

시성미달야 是誠未達也

도사가 보기를 다하고 크게 놀라 급히 동자를 산밖에 보내 웅을 청하니, 웅이 동자를 보고 묻기를,

"선생이 오셨습니까?"

 

동자가 말하기를,

"이제야 오셔서 청하시나이다."

 

웅이 반겨 동자를 따라 들어가니 도사가 사립문에 나와 웅의 손을 잡고 매우 기뻐하여 웃으며 말하기를,

"험한 산길에 여러 번 심히 고생하였도다."

하고 동자로 하여금 저녁밥을 재촉하여 주거늘, 웅이 먹은 후에 치사하여 말하기를,

"여러 날 굶주린 배에 좋은 밥을 많이 먹으니 향기가 뱃속에 가득한지라 감사하여이다."

"그대의 먹는 양을 어찌 알아서 권하였으리오?"

하고 책 두 권을 주며,

"이 글을 보아라."

하거늘, 웅이 무릎을 꿇고 펼쳐보니 그것은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 웅이 다 본 후에 다른 책을 청하니, 도사가 웃고 육도삼략(六韜三略)을 주기에 받아 가지고 큰 소리로 읽으니, 도사가 더욱 기특하게 여겨 천문도(天文圖) 한 권을 주거늘, 받아 보니 기묘한 법이 많은지라. 도사가 가르치는 술법을 배우니 뜻이 넓어지고 눈 앞의 일을 모를 것이 없더라.

 

하루는 석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새들이 자려고 숲으로 들어갈 때 광풍이 크게 일며, 무슨 소리가 벽력같이 산악을 울려치거늘 웅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곳에 어찌 짐승이 있나이까?"

하니, 도사가 말하기를,

"다름이 아니라 내 집에 매우 늙은 암말이 있는데 수척하므로 날이 새면 산중에 놓아 길렀더니 하루는 천지가 진동하며 산중이 요란하거늘, 이상하게 여겨 말을 찾아 마장(馬場)에 들어가니 말은 보이지 않고 오색 구름이 산에 가득하여 지척을 분별하지 못하더니, 한참 후에 뇌성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자 말이 젖은 채 정신 없이 섰거늘, 진정하여 말을 이끌고 집에 와 여물과 죽을 먹였더니 새끼를 배어 낳으니, 몇 달이 못되어 어미는 죽고 새끼는 살았으되 사람이 마음대로 이끌지 못했다. 점점 자라남에 사람이 근처에 가지 못하고 날이 새면 산중에 숨고 밤이면 마구간에 자고 새벽바람에 고함치고 나가니 사람이 상할까 걱정이니라."

하거늘, 웅이 다시 보니 높고 높은 층암 절벽으로 나는 듯이 오르고 내리기는 비호라도 당하지 못할러라. 한참 후에 말이 들어 오거늘 웅이 내달아 소리를 크게 지르니 그 말이 이윽히 보다가 머리를 들고 굽을 치며 공순하거늘 웅이 경계하여 말하기를,

"인마역동(人馬亦同)이라. 임자를 모르느냐?"

그 말이 고개를 들고 냄새를 맡고 꼬리를 치며 반기는 듯하거늘 웅이 크게 기뻐하여 목을 안고 굴레를 갖추어 마굿간에 매고 도사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이 말의 값을 따져 보면 얼마나 하나이까?"

 

도사가 말하기를,

"하늘이 용마를 내심에 반드시 임자가 있거늘, 이는 그대의 말이라. 남의 보배를 내 어찌 값을 따져 말하리오? 임자 없는 말이 혹시나 사람을 상할까 염려하였더니, 오늘 그대에게 전하니 실로 다행이로다."

 

웅이 감사하고 절 하여 말하기를,

"도덕문(道德門)에 구휼하신 은덕이 망극한데, 또 천금의 준마를 주시니 은혜가 더욱 난망(難忘)이로소이다."

도사가 말하기를,

"곤궁(困窮)함도 그대의 운수요, 영귀(榮貴)함도 그대의 운수라. 어찌 나의 은혜라 하리오?"

웅이 도사를 더욱 공경하여 선술(仙術)을 배우니 일 년이 지나자 신통 묘술을 배워 달통하니 진실로 괄목상대(刮目相對)일러라.

 

하루는 웅이 도사께 아뢰기를,

"객지에 어머니를 두고 떠나 왔삽더니, 잠깐 가서 어머니를 뵈어 근심을 덜어 드리고 돌아올까 합니다."

도사가 허락하여 말하기를,

"부디 빨리 돌아오너라."

하시니, 웅이 하직하고 말을 이끌어 사립문밖에 나와 타고 채찍질을 한 번 하니 말은 가는 줄을 모르되, 마음에 날개를 얻어 공중을 나는 듯한지라. 순식간에 칠백 리 강호에 이르니, 날은 넉넉하나 노곤함이 매우 심하여 객점(客店)을 찾으니 마침 한 사람이 길가에 있다가 인도하거늘 따라가니 집이 아주 깨끗하고 경치가 매우 거룩하더라.

원래 이 집은 위나라 장진사의 집이니, 진사는 일찍 죽고 부인이 한 딸을 두었으되, 인물이 절색이고 시서를 통달하였기에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지라. 그 모친 위부인이 소저와 같은 배필을 얻고자 하여 객실을 깨끗하게 짓고 왕래하는 손님을 청하여 인물을 구경하더니, 이날 웅이 초당에 나아가 주인을 청하니, 시비(侍婢)가 나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이 비상하였다. 웅이 마음 속으로 기특히 여겼더니, 이때 부인이 외당에 손님이 왔다는 말을 듣고 시비를 불러 손님의 거동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시비가 아뢰되,

"어떤 어린 아이 과객이더이다."

 

부인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세월이 물같이 흘러 여아의 나이가 열여섯 살이라. 저와 같은 배필을 볼 길이 없다."

하고 스스로 탄식하니, 소저가 위로하여 말하기를,

"불초녀를 생각하지 마시고 천금 같은 몸을 보중하십시오."

하며, 온갖 방법으로 위로하더라.

 

조웅이 혼자 초당에서 생각하기를, '이 집에 규중 절색을 두고 인재를 구한다고 하더니 끝내 몰라 보는구나! 형산 백옥이 돌 속에 묻힌 줄을 지식없는 안목이 어찌 알리오?' 황혼의 명월을 대하여 풍월도 읊으며 노래도 부르더니, 한참 후에 안으로부터 맑고 깨끗한 거문고 소리가 들리거늘 반겨 들으니, 그 곡조에 이르기를,

초산의 나무를 베어 객실을 지은 뜻은 인걸을 보려함이었더니,

영웅은 간 데 없고 걸객만 많이 온다.

석상의 오동을 베어 금슬(琴瑟)을 만든 뜻은 원앙을 보려함이었더니,

원앙은 오지 않고 까마귀와 참새만 지저귄다

아이야, 잔 잡아 술 부어라. 만단 회포를 지워 볼까 하노라.

라고 하였다. 웅이 듣고 심신이 맑아 혼자 즐겨 말하기를, '이 곡조를 들으니 분명 신통한 사람이로다.이러한 가운데 내 어찌 노상걸객(路上乞客)이 되어 상대를 못하리오' 하고 행장에서 퉁소를 내어 거문고 소리가 그친 뒤, 초당에 높이 앉아 달빛 아래서 구슬프게 부니, 위부인과 소저가 퉁소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 급히 중문에 나와 들으니 초당에서 부는지라. 그 소리가 쟁영(錚嶸)하여 구름 속에서 나는 듯한지라. 그 곡조에 이르기를,

십년을 공부하여 천문도를 배운 뜻은

월궁에 솟아 올라 항아를 보려함이었더니,

속세에 인연이 있었지만, 오작교가 없어 은하에 오르기 어렵도다.

소상의 대를 베어 퉁소를 만든 뜻은 옥섬(玉蟾)을 보려함이었더니,

달빛 아래 슬피 분들 지음(知音)을 뉘 알리오?

두어라, 알 이 없으니 원객(遠客)의 근심과 회포를 위로할까 하노라.

부인과 소저가 듣기를 마치자 상쾌한 마음이 하늘에 오를 듯하여 문에 비스듬이 서서 그 아이의 거동을 보니 얼굴이 관옥(冠玉) 같고 거동이 비범하여 보던 중에 으뜸이라.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성인이 나심에 기린이 나고 경아(瓊兒)가 남에 영웅이 나도다."

하니 소저가 부끄러워하여 일어나 별당으로 가서 등촉을 밝히고 침금에 의지하여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부친이 나타나 이르기를,

"너의 평생 배필을 데려 왔으니, 오늘 밤에 가연(佳緣)을 읽지 말아라. 천지에 집 없이 떠도는 나그네이기에 한번 가면 만나기 어려울지라."

하고 손을 잡고 나오거늘, 소저가 부친께 이끌려 초당으로 나오니 황룡이 오색 구름에 싸여 칠성을 희롱하다가 소저를 보고 머리를 들어 보거늘, 소저가 놀라 안으로 급히 들어오니, 그 용이 따라와 소저의 소매를 물고 방으로 들어와서 소저의 몸에 감기거늘 소스라쳐 깨달으니 평생 대몽이라. 몸에 땀이나 옷이 젖었거늘 잠시 후 진정하여 벽에 기록하고 풍월을 읊으니, 이때 웅이 퉁소를 그치고 달? 아래 배회하며 무슨 소식이 있을까 하여 바랐는데 도무지 아무런 기미가 없는지라, 웅이 스스로 탄식하여 말하기를,

 

"다만 거문고 곡조만 알 따름이요, 퉁소 곡조는 알지도 못하고 예사 나그네의 퉁소로 아는가 싶으니 애닯도다."

하고 스스로 탄식만 하였다. 잠시 후에 풍월을 읊는 소리가 공중에 솟아나기에, 들어보니 산호 부채를 들어 옥 쟁반을 깨치는 듯하더라. 웅이 활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중문을 열고 후원에 들어가니 인적은 고요하고 달빛은 삼경이라. 후원 별당에 등촉이 영롱한테 풍월 소리가 나는지라. 조용히 방문을 열고 완연히 들어가 앉아 사면을 둘러보니 여자가 거처하는 방안에 병풍이 둘렸는데, 풍월하던 옥녀가 침금에 의지하고 있다가 웅을 보고 크게 놀라 침금을 덮어쓰고 온몸을 감추거늘 웅이 등불 아래에 앉아 예를 표하고 말하기를,

 

"소저는 놀라지 마시오. 나는 초당에 묵고 있는 나그네인데 객지에서 달 밝은 밤을 맞으니 근심 걱정이 많아 배회 하다가 풍월 소리가 들리기에 행여 귀댁의 공자인가 하여 시흥(詩興)을 탐하여 들어왔삽더니, 이리 깊은 규방에서 남녀가 서로 만났사오니, 바라건대 진퇴할 수 없는 자취를 인도하여 주소서."

소저가 침금 속에서 아무리 생각하여도 피할 길이 없는지라. 마지 못해 대답하기를,

"천지가 나누어 가려짐이 있고 예절이 끊어지지 아니 하였거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이렇듯 범죄하니 빨리 나가 잔명을 보존하소서." 웅이 답하기를,

 

"꽃을 본 나비가 불인 줄 어찌 알며, 물을 본 기러기가 어옹(漁翁)을 어찌 두려워 하리오? 목숨을 아낀다면 이렇듯 방자하리이까? 바라건대 소저는 빙설(氷雪)같은 정절을 잠깐 굽혀 외로운 나그네와 이웃을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며 다가 앉으니, 소저는 형세가 매우 급한지라 잠시 생각하다가 애걸하며 말하기를,

 

"요조숙녀(窈窕淑女)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 첩인들 어찌 빈 방에서 혼자 자기를 좋아하리오마는, 조상을 생각하니 구대(九代) 진사(進士)의 후예인지라. 부모의 명령이 없삽고 육례(六禮)를 행치 못하였사오니, 어찌 몸을 허락하여 조상님께 죄인이 되고, 가문에 욕이 미치오면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바라건대 마음을 돌이켜 돌아가 뒷날을 기약하소서."

 

웅이 들으니 말은 당연하나 사랑하는 마음이 염치를 가리었으니 예절을 어찌 분별하리오. 이에 대답하기를,

"성현의 문하에도 남의 집 여자에게 탐심을 가지고 몰래 담을 넘는 경우가 있삽고, 명령과 육례는 제왕과 부귀한 사람의 호사스런 사치라. 나는 혈혈단신인데 어찌 육례를 바라리오? 다만 내 몸이 매파되고 서로 만난 것으로 육례를 삼아 백년을 기약코자 하나이다." 하고, 침금 속에 들어가니 모기가 태산을 짊어진 꼴이요, 우물에 든 고기라. 원앙과 비취의 즐거움을 뉘라서 금하리오. 인연을 맺었으니 도망키 어렵도다. 소저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 몸이 규중의 처자요, 사대부의 후예로서 이렇듯 죄인이 되어 가문에 욕을 끼치니 살아서 무엇하리오."

 

하며 슬퍼 울거늘, 웅이 위로하여 말하기를,

 

"난들 어찌 죄인이 아니리오?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부인을 맞았으나 불효가 이보다 더 큼이 없건마는 거문고 한곡조를 퉁소로 화답하니 어찌 천생연분 아니리오? 하늘이 정하신 바라. 어찌 내 마음대로 왔다 하리오?"

은은한 정으로 밤을 지내고 삼경이 지나 멀리서 닭울음 소리가 들리는지라. 웅이 일어나니 소저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 낭군을 보려 하시니 오늘은 머물러 어머니를 보시고 훗날 가소서." 웅이 대답하기를, "내가 어머니를 천리밖에 두고 떠난 지 삼 년이라. 일각이 삼추(三秋)와 같아 하루가 바쁜데 어찌 잠시인들 머물러 있으리오?" 소저가 옷자락을 붙들고 슬피 우며 말했다.

 

"낭군께서 이번에 가시면 어찌 소식을 알리오. 사람의 연고를 모르오니 다음에 만날 때 증거로 삼을 것이 없사오니 무슨 표시를 주어 신물로 삼게 하소서."

 

웅이 옳게 여겼지만 행장에 가진 것이 없고 다만 손에 부채 뿐이기에 부채를 펴 글 두어 구를 써주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뒷날에 신표를 삼으소서." 소저가 받아보니,

퉁소장화옥녀금 洞簫將和玉女琴

적막심규광부지 寂寞深閨狂夫至

금안야랑수가아 金顔冶郞?家兒

장씨방연조웅시 張氏芳緣趙雄是

문장취벽괘일포 紋帳翠壁掛一布

분도화연농가희 奔到華筵弄佳姬

신풍수어엄누사 晨風數語掩淚辭

소식망망부도시. 消息茫茫不道時

라 하더라. 이 글은,

퉁소로 옥녀의 거문고를 화답하고

고요한 깊은 규방에 미친 흥이 들어갔는지라.

멋쟁이 풍류객은 뉘 집 도령인가?

장씨의 꽃다운 인연은 조웅이 분명하도다.

아름다운 무늬의 휘장을 친 푸른 벽에 도포를 걸고

예도 갖추지 아니 하고 규방에 들어 아름다운 여인을 희롱하는도다.

새벽 바람이 두어 마디에 눈물로 하직하니,

소식이 망망하여 재회를 기약치 못하리로다.

라고 하였더라. 조웅이 하직하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 나오니, 소저가 나와 문에 기대어 웅의 가는 거동을 보니 천리 준마에 표연히 높이 앉았으니 광풍에 한 조각 구름 같은지라. 이날 밤에 위부인이 한 꿈을 얻으니, 황룡이 별당에 들어가 소저를 업고 구름속으로 올라가거늘, 놀라

 

발을 구르며 소저를 부르다가 소리에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급히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날이 이미 밝았는지라. 일어나 별당에 가니 소저가 잠을 깊이 자고 있기에 부인이 깨워 말하기를,

"날이 밝았거늘 무슨 잠을 자느냐?" 소저가 놀라 일어나 묻자오되,

"어찌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나이까?" 부인이 말하기를,

"네 거동을 보니 정신이 없어 보이는데 몸이 곤하냐?" 소저가 말하기를,

"간밤에 달빛을 구경하고 잤더니 자연히 곤한 것 같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달빛을 오래도록 보면 병이 아니 되느냐? 너는 매우 철이 없구나."

하시고, 시비로 하여금 외당에 음식을 보내려 하니 시비가 말하기를,

"외당의 손님은 벌써 가고 없나이다." 부인이 크게 놀라 묻기를,

"어느 곳에 갔느뇨?" 시비가 아뢰기를,

"언제 갔는지 모르나이다." 부인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대접을 잘 못하기에 말도 하지 아니 하고 갔도다!" 하며 종을 불러 말하기를,

"행여 멀리 가지 않았으면 바삐 나가 데려 오너라."

하시니, 종이 영을 듣고 급히 달려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본들, 벌써 천리 준마를 탔으니 어찌 찾을 수 있으리오. 끝없이 넓고 멀어서 종적이 아득하고 망연한지라. 돌아와서 사연을 아뢰니 부인이 낙심하여 말하기를,

"나의 팔자 무상하다. 몇 해를 걱정하여 그런 수재(秀才)를 만났다가 즉시 잃으니 내가 살 마음이 없도다."

하고 무수히 슬퍼하시니 소저가 위로하여 말하기를,

"어머니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그 사람이 우리 집과 인연이 있사오면 갔다 한들 어찌 다시 소식이 없으리오? 세상 만사를 뜻대로 못하니 너무 마음 쓰지 마옵소서." 하며, 누차 위로하더라.

 

이즈음에 왕 부인이 웅을 떠나 보내고 밤낮으로 근심하여 침식이 불안하시니 여러 중들이 위로하여 세월을 보내더니, 하루는 월경대사가 부인에게 말하기를,

"부인은 근심하지 마옵소서. 공자가 어진 선생을 만나 몸을 의탁하옵고 값진 보배를 많이 얻었사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 하리이까?" 부인이 묻기를,

"대사께서 어찌 아십니까?" 월경대사가 말하기를, "오늘 밤에 한 꿈을 얻으니, 공자를 만나 얘기 하다가 벽에 무엇이라 기록하고 큰 소리로 읽기에 그 소리에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매우 신기하여 불전에 분향 재배하고 공자가 쓴 글을 생각하니, '삼달위수(三達渭水)하고 양득천진(兩得天津)이라' 였습니다. 소승이 천문(天文)을 약간 알기에 즉시 점괘를 해득해 보니, '삼달위수'는 위수(渭水)에서 여상 같은 선생을 만났기에 활달한 거동이요, 또한 '양득천진'이라 하였으니 천진은 용마가 있는 물이기에 응당 용마를 얻었을 것이요. 둘을 모두 얻었으니 이 밖에 또 무슨 보배가 있겠습니까?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하였으니 금을 얻었을 것이오. 금은 칼이라, 칼과 말을 얻고 어진 선생을 정하였사오니 부인은 소승의 말씀을 망녕되다 꾸중마시고 뒷날에 공자를 만나오면 징험할 수 있을 것이니 조금도 근심하지 마옵소서." 부인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대사의 말씀과 같을진대 어찌 염려하리오?"하며, 이러구러 세월을 보내더라.

하루는 부인이 한 꿈을 얻으니, 범을 안고 있는데도 무섭지 아니한지라.

놀라 깨달으니 꿈이거늘 대사를 불러 꿈 얘기를 들려주니 대사가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공자가 곧 올 것입니다."

하기에 부인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사가 말하기를,

"흉즉길이라. 범 호자는 좋을 호자이니, 이제 부인께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 공자를 만날 꿈이니 어찌 즐겁지 아니 하리이까?" 부인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언제 만나 보리이까?" 대사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공자의 걸음이 백리 안에 있으니 오늘 진시(辰時)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분명 그렇다면 나와 평생 내기를 합시다." 대사가 허락한 뒤 부인을 모시고 석문에 나와 기다렸는데, 문득 동구밖 좁은 길에서 들리는 소리 분분하고 천리마 위에 선동이 표현히 앉아 채찍을 들어 구름을 헤치고 들어오거늘, 부인과 대사가 보니 과연 공자라. 웅이 말에서 내려 부인께 엎드려 절 하니, 부인이 웅을 붙들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늘, 대사가 위로하여 안심시키자 웅이 다시 절하고 말하였다.

 

 

"어머님은 그동안 기체(氣體)일향(一向)하셨습니까?"

 

부인이 슬픔을 머금고 말하기를,

"나는 잘 있었거니와 너는 그 동안 어디서 머물렀으며 저 말과 칼은 어디서 얻었느냐?"

 

웅이, 칼과 말은 이리이리 하여 얻었고, 이러저러한 도사를 만나 묵었던 사연을 차례로 아뢰니 부인과 월경대사가 듣고 크게 놀라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인도하신 것이로다. 나는 네가 떠나간 후에 내 한 몸은 편했으나, 다만 너를 생각하여 일년 삼백육십일과 하루 열두시를 잠시라도 어찌 너를 잊을 수 있으리오? 이러구러 지내다가 한 달 전에 대사께서 꿈을 얻어 해몽해 주셨고, 내 또한 꿈을 얻고 대사와 내기하여 네가 오는 줄 알고 나와 기다렸는데,

과연 오늘 만나게 될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하며 못내 즐거워 하시니, 웅이 대사와 제승에게 감사드리며 말하기를,

"불효 막대한 사람의 근심을 대신해 여러 해 동안 수고해 주셨으니 그 막대한 은혜를 어찌 다 갚사오리까?" 하며, 무수히 치사하니 대사가 사양하며 말하기를,

"그동안 지낸 일은 헤아릴수 없이 많으나 공자가 만리 밖에 가 일년 동안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무사히 돌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하며, 모두 반기는 것이 헤아릴 수 없더라.

 

하루는 여러 중들이 잔치를 열고 웅의 모자를 윗 자리에 앉히고 여쭈기를,

"소승들이 가난하여 부인의 은혜를 조금도 갚지 못한 것이 한이옵더니, 오늘 여러 해 동안 그리시던 공자를 만났으니, 이런 경사가 없기에 빈승(貧僧)들이 만든 바 약간의 물건으로써 즐거운 마음을 위로드리고자 하나이다." 하고, 제승이 경쇠를 치며 일어나 재배하며 희희나락하니 공자가 일어나 감사드리며 말하기를,

"존사의 넓으신 덕으로 갈 곳 없는 사람을 여러 해 동안 구휼해 주신 은혜가 끝이 없는데, 또 이토록 염려하시며 관대하게 대해 주시니 오히려 불편하여 머물기에 염치 없나이다,"

하니, 제승이 더욱 칭찬 하며 사례하더라.

 

세월이 물같이 흘러 웅의 나이 십육 세라. 하루는 부인이 웅을 보고 근심하여 말하기를,

"네가 장성하였으나 사고무친척하고 만리 타국에 종적이 없이 빌어먹는 사람인지라, 누가 중매를 서서 너를 위해 짝을 맺어주겠느냐? 슬프다! 흐르는 세월이 늙은이의 죽음을 재촉하니, 내가 생각하기에 생전에 네 짝을 못 볼까 근심이 되는구나."

하시며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니, 웅이 또한 슬픔 마음을 감추고 위로하여 말하기를

"어머니는 슬퍼하지 마십시오. 천지간에 만물이 혼자 사는 일이 없사오니, 사람이 설마 짝이 없으리까?"

하고 엎드려 불효한 죄를 청하니 부인이 크게 놀라 말했다.

"우리 모자는 죄인이라서, 마음이 상해 숲에 앉은 새와 같거늘, 너 밖에 나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웅이 두려워하여 일어나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 남에게 죄를 지었겠사옵니까? 다만 모자지간에 불효 막심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 소자 스승을 떠나옵더니 ……."

하고, 강호에 이르러 장소저를 취한 사연을 아뢰니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죄 지은 자는 살지 못한다는 말이 옳도다. 본래 급한 마음에 무슨 죄를 짓는 법이니, 네가 미리 겁을 먹고 놀랬구나." 하고 다시 묻기를,

"장씨를 내가 보지 못하였으나, 네 말을 들으니 진정 너의 짝이로구나. 그 또한 하늘이 시키신 것으니 어찌 인력으로 취하였으리오? 그러나 우리 형편이 이러하니 어찌 예절을 기다리리오? 죄가 될 것이 없으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시며, 다시 그동안의 사정과 장씨 가문에 대해 묻기에 웅이 장소저와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아뢰니, 부인과 제승이 다 듣고 기이하게 여기며 칭찬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인도하신 것이니 어찌 기특하지 아니 하리오?" 월경대사가 말하기를,

"부인은 소승이 전에 드린 말씀을 이제야 증험하셔서 논단(論斷)하오소서."

부인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우매한 소견으로 어찌 대사의 신기함을 알리오?"

하고, 대사에게 항복함을 마지 아니 하더라.

이즈음에 대사가 웅을 데리고 신통한 술법을 의논하며 지냈는데 이러구러 삼 년이 되었는지라.

 

하루는 웅이 부인께 여쭈기를,

"소사가 처음 이리로 올 때에 선생 앞에서 약속을 정하고 왔으니, 이제 어머니 곁을 잠깐 떠나 선생님께 실망을 드리지 않게 해야 하리이다." 하니, 부인이 새로이 슬퍼하며 말하였다.

"여러 해 그리던 마음을 다 펴지 못하고 또 가려 하니, 네 말은 당연하나 정리(情理)에 절박하고, 또 사람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네가 다시 돌아옴이 더딜 것인데 거처를 어디 가서 찾으리오?"

 

월경이 끼어 들어 말하기를,

"부인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공자의 거처는 소승이 알고 있습니다."

 

부인이 이미 대사의 신기함을 알고 있기에 말하기를,

"만일 대사가 아니면 객지에서 어찌 우리 모자가 서로 의지하겠습니까?"하고 말하기를,

"부디 네 선생님을 뵙고 빨리 돌아오너라."

당부하시니, 웅이 하직하고 말을 달려 여러 날만에 관산에 이르니, 이전에 보던 산천이 모두 반기는 듯하더라. 석문에 다다르자 동자가 마중나와 있기에 손을 잡아 예를 표하고 안으로 들어가 선생을 뵈오니, 도사가 못내 반기며 말하기를,

"신의있는 선비로다. 기약을 잊지 아니하니 기특하구나." 하며 말하기를,

"네 어머니는 평안하시더냐?"

 

웅이 일어나 절하고 못내 고마워하니, 도사가 또 웃고 말하기를,

"그대의 거동을 보니 전과 다른지라, 분명 배필을 정한 것 같아 보이니 기쁘구나."

하니 웅이 부끄러워서 엎드려 죄를 청해 말하기를,

"신명(神明)하신 선생님께 막대한 죄를 지었으니 어찌 사제지간의 정당한 도리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머리를 숙여 무수히 사죄하니, 도사가 웅의 손을 잡고 위로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지시하여 인도한 것이니 어찌 불효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다 알고 있으니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말아라." 하였다.

 

웅이 선생을 모시고 신통한 술법을 배우는지라. 도사가 말하기를,

"그대의 문필은 족하여 두루 쓰기에 넉넉하다. 또한 요긴 책이 있으니 이 글을 공부하라."

하고, 육도삼략을 주고 장수로서의 지략을 가르치니, 한 번 보면 잊지 아니 하여 모르는 것이 없으니 대사가 더욱 사랑하여 밤낮으로 가르쳐 논하였다. 하루는 도사가 맑고 밝은 달밤에 웅을 데리고 큰 바위에 올라 천도를 강론하다가 웅에게 말하기를,

"네 저것을 아느냐? 천심(天心)은 이러이러하고 장성(將星)은 저러저러하고 아무 별은 이러하니, 대국이 네 손에 회복될 것 이로다." 하니, 웅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자부하더라.

 

다음날 새벽에 도사가 웅의 상을 보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그대의 상을 보니 앞날에 큰 근심이 있을 것이다." 웅이 크게 놀라 묻기를,

"무슨 말인지 선생님은 자세히 가르쳐 주소서." 도사가 이윽히 보다가 말하기를,

"그대의 빙가(聘家)에 죽을 화가 눈 앞에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빨리 가서 구하여라."

하고 환약 세 개를 주시니, 웅이 그 약을 받아 가지고 말을 달려 강호로 향하니라.

 

이때 장소저는 조공자를 보내고 종적을 알 수 없자, 이로 반해 병이 되어 눕고 일어나지 못하니,

위부인이 놀라고 당황하여 의약으로 치료하였으되, 온갖 약을 써도 효험이 없는지라. 부인이 하늘에 축수하며 애걸하나 선약(仙藥)이 없으니 누가 살려 내리오. 불쌍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지라. 이날 웅이 필마(匹馬)로 장진사댁에 이르니 은은한 곡성이 안에서 들리며 비복들이 분주하거늘, 웅이 더욱 놀라 시비를 불러 물으니, 시비는 낯이 익은 사람이라서 경황 중인데도 반기며 말했다.

"지금 내당 소저의 병환이 극히 위중하여 사경을 해매고 있으니 박정하지만 다른 곳에 가서 거처를 정하소서." 웅이 말하기를,

네가 들어가서 부인께 아뢰어라.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로되 의약을 아나니 병세를 자세히 알아오면 살릴 방도가 있으니 그대로 아뢰어라."

시비가 들어가 부인에게 아뢰기를,

"아무 때에 왔던 수재가 밖에 와서 이리이리 하나이다."

 

부인이 울기를 그치고 반가와서, 시비로 하여금 '객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대접하라.' 하고 병세를 적어 보내니, 웅이 그것을 보고 지니고 온 환약을 내어주며 말했다.

" 이 약을 먹으면 차도가 있을 것이니, 그 즉시 음식을 자주 권하라."

 

시비가 약을 드리고 말씀을 아뢰자, 부인이 그 약을 갈아 소저를 흔들며 먹이니, 과연 소저가 소리하고 깨어나 부인을 향하여 음식을 청하거늘,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한편으로는 음식을 권하며 또 한편으로는 초당에 나와 조웅의 손을 잡고 무수히 치하하며 말했다.

"그대가 지난 번에 왔을 때 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한이 되었더니, 이렇듯 급한 때를 당하여 죽을 목숨을 구완하여 살려주니 그대는 실로 우리집의 은인이라. 공자께 진정으로 한 말씀 부탁하노니, 집에 혼기(婚期)가 찬 딸이 있으되 용렬하여 마땅한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더니 이제 공자를 만났기에 여식의 일생을 부탁코자 하노니, 공자는 허락을 아끼지 말고 나의 바라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라."

 

웅이 감사드리며 말하기를,

"떠돌며 구걸하는 나그네를 더럽다 아니 하시고 감격한 말씀으로 부탁하시니, 매우 감사하여 감히 사양 하지 못하옵거니와, 어머니가 계시니 돌아가서 즉시 소식을 사뢰어야겠습니다."

 

부인이 못내 기뻤지만, 그 시일이 더딤을 안타까워하시더라.

이튿날 웅이 하직하고 떠날 때, 부인이 못내 애처러워하며 말하기를,

"부인의 회답을 빨리 알게 해달라."

하며, 계란 만한 무공주(無孔珠) 한 쌍을 주며 말했다.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고 나는 아들이 없으니 내 한 몸도 그대에게 맡기노니, 이것은 나의 소중한 물건이니 신물을 겸하여 굳게 간수하라."

 

웅이 받아 가지고 떠나 관산으로 돌아와 도사를 뵈니, 도사가 반겨 말하기를,

"그대 곧 아니었던들 하마터면 위태로울 뻔했도다."

 

웅이 말하기를,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소자가 어찌 살렸겠습니까?"하고 무수히 치사하더라.

하루는 도사가 웅을 데리고 큰 바위에 올라 천기를 보고 크게 놀라 말했다.

"너는 저것을 아느냐? 아무 별은 저러하고 아무 방(方)은 이러하고, 중국은 이러하여 각성(角星) 방위가 차례를 정하지 못하니 시절이 크게 요란하다. 지금 서번(西番)이 강성하여 대국을 뺏으려 하니, 네가 나가 큰 공을 이루되 형세를 보아 위국을 돕고 인하여 대성을 회복하라."

 

웅이 이 말을 들음에 마음이 울적하여 말하기를,

"소자의 재주로 어찌 공을 얻겠습니까? 화살과 돌이 비온 듯 하는 전쟁터에서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도사가 말하기를,

"너는 큰 공을 이룰 것이니 조금도 염려 말고 나가서 중원을 회복하고 평생의 원수를 갚아라."

하였다. 웅이 즉시 행장을 꾸려 위국의 노정기(路程記)를 받아 가지고 선생께 하직하니, 도사가 손을 잡고 못내 연연해 하며 말하기를,

"슬프다! 이별이 오랠 것이니, 무사히 가서 큰 공을 이루어라."

하였다. 웅이 하직하고 곧바로 길을 떠나 여러 날만에 강선암으로 가서 부인을 뵈오니, 부인이 웅을 붙들고 못내 기뻐하더라. 웅이 강호 장소저의 병을 고친 일을 여쭈니, 부인이 도사의 신기함을 못내 칭찬하더라.

(하략)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연대 : 미상(18∼19세기일 것으로 추정)

형식 : 고소설, 국문 소설. 영웅 소설, 군담 소설(軍談小說)

성격 : 영웅적, 낭만적

구성

전반부

주인공 조웅의 고행담과 결연담 - 이두병의 모해를 피하기 위해 조웅이 겪게 되는 고난과 장소저와 만나 혼인을 약속하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룸

후반부

영웅적인 무용담 - 이두병 일파를 처단한 뒤 태자를 등극시키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룸

주제 : 진충보국(盡忠報國 :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은혜를 갚음)과 자유연애

특징 : 구성이 비교적 복잡하면서도 통일을 이루었으며, '유충렬전(劉忠烈傳)'과 구성에 비슷한 점이 있으나 사건이 더욱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일부분은 혼전 정사는 춘향전의 이몽룡과 성춘향이를 연상케 하고, 한시(漢詩)가 빈번하게 인용되는 것도 이 소설의 한 가지 특징이다.

 

대체로 명산 대천에 기도를 드림으로써 아들을 얻게 되는 기자(祈子) 치성 이야기가 없고, 주인공이 천상의 고귀한 신분을 가졌으나 특별한 인연으로 지상에 하강한다는 식의 전생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또, 장 소저와 혼전에 동침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갈등 :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

이두병의 참소로 인해 조웅의 아버지 조정인이 자살함

이두병이 조웅마저 모해하려 하자 조웅이 피난함

아버지 조정의 죽음에 따른 숙명적인 것

조웅과 번왕의 대립

위국의 왕을 도와 서번을 격파함

서번을 격파하는 중에 쫓겨난 태자가 위험에 처하자 태자를 구출함

부친이 위왕과 우호 관계였기 때문에 형성된 것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

위국으로 간 조웅은 다시 군대를 모아 이두병의 군대를 물리침

태자를 다시 황제로 모시고 왕실을 회복함

 

인물들의 관계

월경도사,

철관도사

조력

조웅

대립

이두병

월경도사는 술법과 지혜를, 철관도사는 병법과 무술을 지도함

 

이두병에게 아버지를 잃음

태자와 친구처럼 지냄

두 도사에게 술법과 무예를 배움

 

조웅의 부친을 참소하여 자살하게 함.

태자를 폐하고 황제가 됨

조웅을 제거하려함

 

 

장소저

대립

자사

 

 

조웅와 혼인을 약속함

 

장소저를 후처로 삼으려 함

줄거리 : 배경(背景)은 중국 송(宋)나라로, 주인공 조웅과 문제(文帝)의 태자가 간신 이두병(李斗柄)의 발호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후일을 기약하고 작별한다. 방랑하던 조웅이 장소저(張小姐)를 만나 장래를 약속한 뒤, 위기에 빠진 태자를 구출하고 수십만 대군으로 간신 이두병을 무찔러 송나라를 회복시킨다는 이야기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송나라 문제(文帝) 때 공신(功臣)이자 좌승상일 조정인은 간신(姦臣)인 우승상 이두병의 참소(讒訴)를 입고 음독 자살(自殺)한다. 천자는 조 승상의 죽음을 애석히 여긴 나머지 조 승상의 아들 조웅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태자와 함께 있게 하고, 태자는 조웅을 형제(兄弟)처럼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두병은 천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조웅을 후한이 두려워 죽이려고 한다. 하루는 조웅이 거리에 나가서 이승상에 대한 욕을 거리에 써 붙이고 돌아오는데, 그 날 밤 조웅의 어머니가, 이 승상이 조웅을 죽이려고 한다는 몽조(夢兆)를 얻고 아들을 데리고 피신한다.

조정(朝廷)에서는 문제(文帝)가 세상(世上)을 떠나고 태자가 등극(登極)한다. 이에 간신 이두병이 권세를 마음껏 부리다가 마침내 어린 황제(皇帝)를 외딴 섬으로 축출(逐出)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자칭 천자(天子)라 하니, 만조 백관이 복종(服從)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조웅 모자는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방랑하다가, 부친(父親)의 초상을 그려 준 월결 대사를 만나 산사로 들어가 의탁(依託)하게 된다. 어느덧 15세가 된 조웅은 모친(母親)과 대사에게 출세(出世)할 결심을 말하고 도승(道僧)을 찾아가는데, 낙산 도사로부터 3척 신검을 얻고, 찰관 도사를 만나 병법과 무술을 공부하게 된다. 조웅이 하루는 모친을 만나러 가는 도중 위국공 장 진사 의 집에 우연히 들려 장 진사의 딸 장 소저와 남몰래 백년가약을 맺는다. 조웅을 보내고 장 소저는 연모 끝에 병이 들어 죽는다. 조응은 도사로부터 장소저가 병으로 죽었다 는 말을 듣고, 도사가 주는 선약(仙藥)을 가지고 가서 소저를 소생(蘇生)시킨다.

이에 장 진사는 자기 딸과의 결혼(結婚)을 승낙(承諾)한다. 조웅은 산사(山寺)에서 공부를 마치고, 도사의 분부를 받들어 변방의 오랑캐들과 역적 이두병을 격멸하고 송나라 황실을 회복하기 위하여 나선다. 도중에서, 서번이 침입(侵入)하였을 때 출전(出戰)하였다가 전사한 황군의 영혼으로부터 갑주와 보검을 얻는다. 이 때, 서번이 위국을 침공하므로, 위국으로 달려가서 위왕을 도와 서번군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는다. 조웅은 위왕과 이별하고 태자를 구출하기 위해 남해 절도로 간다. 한편 강호 자사가 상처하고 후실을 구하던 중, 장소저가 지혜롭고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매파를 보내어 청혼(請婚)하다가 거절을 당하자 강제로 취하고자 한다. 장소저가 이를 피하여 산양사에 있는 강선 암으로 가서 조웅의 모친과 같이 지내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안 조웅이 남해로 가던 도중 강호 자사를 베고, 강선암으로 가서 모친(母親)과 장소저를 만나 보고는 즉시 떠난다. 태자가 있는 곳에 도달하여 마침 이두병이 사자를 보내어 태자를 죽이려는 것을 물리치고 태자를 구출(救出)한다.

서번왕이 조웅을 죽일 흉계를 꾸미고 기다리고 있다가, 조웅이 태자(太子)를 모시고 오는 것을 보고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도리어 조웅에게 곤욕을 당한다. 조웅은 다시 서번왕의 항복을 받고 중국으로 와서 영웅·명장을 규합하여 이두병이 임명한 지방 관리들을 차례차례로 처치하면서 위국으로 들어간다. 조웅은 위왕의 청에 의하여 위왕의 장녀(長女)를 태자의 비로 삼고, 차녀(次女)는 자신의 부인으로 삼은 뒤 강선암으로 가서 모친과 소저를 찾는다. 그 뒤 위왕과 연합하여 수십 만 대군으로 황성을 처서 이두병을 베고, 태자(太子)를 등극시킨다. 이에 황실(皇室)이 회복(回復)되니 조웅의 명성(名聲)은 천하(天下)에 널리 떨치게 되고, 조웅을 제후(諸侯)로 봉한다.

내용 연구

 

정묘년 삼월 삼일에 황제께서 붕어(崩御)하시니[임금이 세상을 떠남 / 이두병이 발호하여 역모를 꾀하는 계기가 됨] 태자의 애통하심과 만민의 곡성이 천지에 사무치고 왕부인 모자는 더욱 망극하더라[망극지통(罔極之痛) : 한이 없는 슬픔으로 임금이나 어버이의 상사에 쓰는 말]. 어느 사이에 국법과 권세가 두병의 말대로 돌아가니 백성이 망국조(亡國調)를 일삼고 산중으로 피란하더라. 이때에 조신(朝臣)이 극례[지극한 예법]를 갖추어 사월 사일에 황제를 서릉(西陵)에 안장(安葬)하였다. - 황제가 죽음

하루는 조신이 노소없이 시종대(侍從臺)에 모여 국사를 의논할 때 이두병이 역모(逆謀)에 뜻을 두고 옥새를 도모코자 하니[황제의 자리를 노리니] 조정 백관 중에 그 말을 좇지 아니 할 사람이 없었다[지록위마(指鹿爲馬) :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가리키는 말]. 시월 십삼일은 문제(文帝)의 탄일이라. 모든 관원이 종일토록 국사를 의논할 때 이두병이 물어 말하기를,

“이제 동궁의 나이는 팔 세라. 국사는 매우 중대한데, 팔 세 동궁의 즉위는 일이 매우 위태한지라. 법령이 점점 쇠하고 사직이 위태할 지경이면 그대들은 어찌 하려 하느뇨?”

여러 신하들이 일시에 대답하여 말하기를,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조정은 십대(十代)의 조정이 아니라. 이제 어찌 팔 세 동궁에게 제위(帝位)를 전하리오. 또한 황제 붕어하실 때 ‘승상과 정사를 의논하라’ 하신 유언이 있었지만 나라에는 두 왕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하늘이 없으니 어찌 협정왕(協政王)[신하와 정사를 의논하여 나라일을 돌보는 왕(권력이 미약한 왕)]을 두리이까?”

여러 신하들의 말이 모두 한 입에서 나온 듯하더라.

“이제 국사를 폐한 지가 여러 날이라. 엎드려 빌건대 승상은 전일의 과업을 전수하여 옥새를 받으시고 제위를 이으셔서, 조야(朝野) 신민(臣民)의 실망지탄(失望之嘆)이 없게 하옵소서.”

하며, 모든 대소 관원이 일시에 당 아래 땅에 엎드려 사배(四拜)하니 그 위엄이 서릿발 같은지라. 궐내가 떠들썩하여 창황(蒼黃)[어찌할 겨를이 없이 매우 급함. 창졸(倉卒)] 분주하고 장안이 진동하여 자중지란(自中之亂)[자기네 패 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질]이 일어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분노하니 마치 병란을 당한 것과 같았다.

이때 이두병이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국법을 새로이 하여 각국 열읍(各國列邑)에 공문을 보내 벼슬도 올려 주는지라. 여러 신하들이 모여 동궁을 폐하여 외객관(外客館)으로 내치니, 시중(侍中) 빈환(嬪宦)[여관과 환관]과 내외궁(內外宮)의 노비 등이 하늘을 부르짖고 땅을 치며 끝없이 슬프고 마음 아파하니 푸른 하늘이 부르짖는 듯하고 태양도 빛을 잃은 듯하더라. 이때에 왕부인이 이러한 변을 보고 크게 놀라 실색(失色)하여, - 동궁을 폐하고 이두병이 황제가 됨

“마땅히 죽으리로다.”

하며, 주야로 하늘을 향해 축수하여 말하기를,

“웅의 나이 팔 세에 불과하니 죄없는 것을 살려 주소서.”

하며, 애걸하니 그 정상을 차마 보지 못하겠더라. 웅이 모친을 붙들고 만 가지로 위로하여 말하기를,

“모친은 불효자식을 생각하지 마시고, 천금 같이 귀하신 몸을 보존하소서. 꿈같은 세상에 유한한 간장을 상하게 하지 마소서. 인생에서 죽는 일 하나만은 제왕도 마음대로 못하옵거늘 어찌 한 번 죽음을 면하오리까? 짐작하옵건대 이두병은 우리의 원수요, 우리는 저의 원수가 아니오니 어찌 조웅이 이두병의 칼에 죽겠사오리까? 조금도 염려치 마옵소서.”

하며 분기를 참지 못하더라.

이때 이두병이 큰 아들 관으로 동궁을 봉하고 국호를 고쳐 평순황제(平順皇帝)라 하고 개원(改元)[연호를 고침. / 왕조·임금이 바뀜]하여 건무(建武) 원년(元年)으로 삼았다. 이즈음에 송 태자를 외객관에 두었더니, 조신(朝臣)이 다시 간하여 태산계랑도에 정배(定配)[배소를 정하여 죄인을 유배시킴] 안치(安置)[안전하게 잘 둠]하여 소식을 끊게 하였다. 이날 왕부인 모자가 태자께서 정배되었다는 말을 듣고 망극하여,

“우리 도망하여 태자를 따라 사생(死生)을 한 가지로 하고 싶으나 종적이 탄로 나면 이에 앞서 죽을 것이니 어찌 하리오?”

하며 모자가 주야로 통곡하더라. 하루는 웅이 황혼의 명월을 대하여 원수 갚을 묘책을 생각하더니, 마음이 아득하고 분기탱천(憤氣天)[분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이 북받쳐 오름]한지라. 울적한 기운을 참지 못하여 부인 모르게 중문에 내달아 장안 큰 길 위를 두루 걸어 한 곳에 다다르니 관동(冠童)[남자 어른과 남자 아이]이 모두 모여 시절 노래를 부르거늘, 들으니 그 노래는 이러하더라.

 

국파군망(國破君亡)하니 무부지자(無父之子) 나시도다.

문제(文帝)가 순제(順帝)되고 태평이 난세로다.

천지가 불변하니 산천을 고칠소냐.

삼강이 불퇴(不頹)하니 오륜을 고칠소냐.

맑고 밝은 하늘에서 소슬히 내리는 비는

충신원루(忠臣怨淚) 아니시면 소인(騷人)의 하소연이로다.

슬프다 창생(蒼生)들아,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사해에 노니다가 시절을 기다려라.[이두병이 황제가 된 것에 대한 분노와 한탄이 담긴 시로 민심의 뜻을 전달함]

 

웅이 듣기를 다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루 걸어 경화문에 다다라 대궐을 바라보니, 인적은 고요하고 월색은 뜰에 가득한데 오리와 기러기 몇 쌍이 못에 떠 있고, 십 리나 되는 화원에 전 왕조의 경치와 풍물 아닌 것이 없더라. 전 왕조의 일을 생각하니 일편단심에 구비구비 쌓인 근심이 갑자기 생겨나는지라. 조웅이 담장을 넘어 들어가 이두병을 만나서 사생(死生)을 결단하고 싶으나 강약(强弱)이 같지 아니할 뿐더러[조웅이 나이가 어려 힘이 약해 이두병을 물리칠 수 없다는 의미], 문 안에 군사가 많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지라 할 수 없이 그저 돌아서며 분을 참지 못하여 필낭(筆囊)[붓을 넣어 차고 다니는 주머니]에서 붓을 내어 경화문에 대서특필(大書特筆)[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특히 두드러지게 글자를 크게 씀.]하여 이두병을 욕하는 글 수삼구(數三句)를 지어 쓰고는 자취를 감추어 돌아오더라. - 이두병의 행동에 대해 조웅 모자가 분노와 슬픔을 느낌

이날 왕부인이 잠자리에서 한 꿈을 얻었는데, 승상이 들어와 부인의 몸을 만지며,

“부인은 무슨 잠을 그리 깊이 자는가? 날이 밝으면 큰 화를 당할 것이니 웅을 데리고 급히 도망하소서.”

하거늘, 부인이 망극하여 묻기를,

“이 깊은 밤에 어디로 가리이까?”

승상이 말하기를,

“급히 떠나소서.”

하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꿈과 같이 헛된 한때의 부귀영화. 남가지몽(南柯之夢)]이라. - 승상이 꿈에 나타나 도망가기를 당부함

이해와 감상

 

영웅 소설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로 널리 읽혀졌던 작품이다. 전반부는 주인공의 고행담과 결연담(結緣談)이며, 후반부는 영웅적 무용담(武勇談)으로, 구성이 상당히 복잡하나 전체적인 통일성은 유지되고 있다. 대부분의 영웅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주인공의 영웅적인 활동을 도술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또한 두 명의 부인을 거느리도록 꾸며 놓았는데 이는 동양적인 중세 남성들의 이상적인 애정관을 표현하려고 한 데에서 모든 영웅 소설이 동일하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충렬전'과 유사한 구성이나 사건이 좀더 현실적이며, 한시(漢詩)의 삽입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해와 감상1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 필사본. 군담소설 ( 軍談小說 )류 중 가장 널리 읽혔던 작품으로 많은 이본들이 전하고 있다. 간혹 ‘ 조원수전 ’ 으로 표제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필사본 160여 종을 비롯하여 판각본으로 경판 · 완판 · 안성판으로 간행된 바 있으며, 활자본은 약 20여 종이나 알려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본들은 대체로 단편의 경판계(약 20장, 혹은 30장)와 장편의 완판계(전 3책, 각 책 약 30장)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양종의 내용을 상세히 대비하여 보면, 이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전체적 구성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 조웅과 번왕의 대립,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순으로 전개되어 간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국 송나라 문제 때 승상 조정인이 이두병의 참소를 당하여 음독자살하자, 외아들 조웅도 이두병의 모략을 피하여 어머니와 함께 도망간다. 온갖 고생을 하며 유랑하던 조웅 모자는 다행히 월경도사를 만나 강선암으로 들어가 지내게 된다.

그 뒤 도사를 찾아가 병법과 무술을 전수받은 조웅은 강선암으로 돌아가던 도중 장진사 댁에서 유숙하다가 우연히 장소저와 만나 혼인을 약속한다. 이 때 서번이 침입하여 조웅이 나아가 이를 물리친다.

한편, 스스로 천자라고 한 이두병이 조웅을 잡기 위한 군대를 일으켰으나 도리어 조웅에게 연패한 끝에 사로잡히고 만다. 천자는 이두병 일파를 처단한 뒤 조웅을 제후로 봉한다.

이 작품은 ‘ 영웅의 일생 ’ 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비하여 특이한 점은 주인공의 탄생에 있어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정성이나 태몽, 혹은 천상인의 하강과 같은 모티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전체분량의 약 3분의 1이나 되는 군담도 구체적 · 사실적이기보다는 추상적 · 설명적이고, 도술로 바람과 비를 일으키거나 호랑이와 표범으로 변하는 등의 도술전도 제거되어 있다.

다른 군담소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천상계 인물의 후신으로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하여가는 데 비하여,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의 힘보다는 초인의 도움으로 운명을 개척해 간다.

이 작품의 애정담은 특히 전통적 유교윤리와는 어긋나는, 부모의 허락 없는 혼전성사(婚前性事)를 그리고 있어 이채롭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타나는 7언의 삽입가요는 모두 10여 개나 되는데, 그 중에는 88구나 되는 장편도 있다.

작자는 조웅을 철저한 천명사상 ( 天命思想 )으로 무장시켜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식을 잘 그리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도서에 있으며, 그 밖에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구 김동욱 소장본) 등에 소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 趙雄傳(曺喜雄, 螢雪出版社, 1978).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조웅전 판본들

이 작품은 필사본과 목판본이 있으며, 목판본도 경판, 완판, 안성판으로 간행되었고, 활자본은 10여 종이 알려져 있다. 경판계는 단편으로 약 20∼30장, 완판계는 각 30장 안팎의 상·중·하 세 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웅의 아버지 이름이 완판계는 '됴졍인(조정인)'으로 되어 있는데 경판계는 '됴정(조정)'으로 된 점과, 내용의 자세하고 간략함이 다를 뿐, 근본적인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송나라 문제 때 승상 조정(인)이 이두병의 참소를 입고 음독 자살하니, 외아들 조웅은 이두병의 모해를 피하여 어머니와 함께 도망한다. 온갖 고생을 하며 유랑하던 조웅 모자는 다행히 월경 도사를 만나 강선암으로 들어가 의탁하게 된다. 그 뒤 도사를 찾아가 병법과 무술을 전수받은 조웅은, 강선암으로 돌아가던 도중 장 진사 댁에서 유숙하다가 우연히 장 소저와 만나 혼인을 약속한다. 이 때 서번 (西藩)이 침입하매 조웅이 나아가 이를 물리친다. 한편, 천자를 자칭한 이두병이 조웅을 잡기 위한 군대를 일으켰으나 도리어 조웅에게 연패한 끝에 사로잡히고 만다. 천자는 이두병 일파를 처단한 뒤 조웅을 제후로 봉한다. 문학교과서에 실린 것은 이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다.

군담 소설

 

주인공이 전쟁을 통하여 영웅적 활약을 전개하는 이야기를 흥미의 중심으로 하는 고전소설. 작품의 소재를 어디에서 취하였는가에 따라 창작군담소설·역사군담소설·번역군담소설로 나뉜다.

 

창작군담소설은 작중인물이나 사건이 허구인 작품으로, 〈소대성전〉·〈장풍운전〉·〈장백전〉·〈황운전〉·〈유충렬전〉·〈조웅전〉·〈이대봉전〉·〈현수문전〉·〈남정팔난기〉·〈정수정전〉·〈홍계월전〉·〈김진옥전〉·〈곽해룡전〉·〈유문성전〉·〈권익중전〉 등 수십 종이 있는데 작자와 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다. 대체로 한글로 쓰여졌고 필사본·방각본·구활자본의 세 가지 형태로 유통되었다.

대개 작품의 배경은 중국이고 외적의 침입과 간신의 반란을 평정하는 가공적 전쟁이 등장하며, 주인공은 명문대가에서 기자치성을 드려 출생하며 어려서 많은 고난을 겪다가 도사를 만나 도술과 무예를 배우고, 국가 위기에 등장하여 적을 물리치고 왕권을 수호하는 영웅적 활약을 전개하여 그 공로로 높은 벼슬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창작군담소설이 출현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분분하나, 1794년에 쓰여진 야마다(山田士雲)의 〈상서기문 象胥記聞〉에 〈소대성전〉·〈장풍운전〉 등의 작품명이 등장하고 1736년 중국에서 간행된 〈설인귀정동전전 薛仁貴征東全傳〉의 영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18세기 중엽 이후에 창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창작 시기는 작품에 따라 다르며 비교적 초기에 창작된 작품은 〈소대성전〉·〈장풍운전〉 등이고, 다음으로 〈조웅전〉·〈유충렬전〉 등이 나타났으며, 그 후 군담소설이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자 소설의 상업적 출판이 성행하면서 20세기 초까지 많은 작품이 지어진 것으로 본다.

창작군담소설은 충신과 간신의 대결로 정쟁에서 몰락했던 가문이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으로 국가에 큰공을 세우면서 부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도술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기술되고 표면적으로는 전통적 유교윤리가 강조되면서도 이면에는 충(忠)이나 열(烈)에 대한 전통윤리로부터의 일탈이 심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변혁에 관심이 많았던 평민층이 향유하던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히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정수정전〉·〈홍계월전〉 등의 작품은 여성 주인공이 군담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남성보다 우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군담소설이 여성층에게까지 애독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군담소설로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쓰여진 〈임진록〉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쓰여진 〈임경업전〉·〈박씨전〉이 있다. 〈임진록〉은 임진왜란의 체험을 통해 형성된 설화가 후대에 결집되어 이루어진 소설로서, 이순신(李舜臣)·권율(權慄)·사명당(四溟堂, 惟政)·김덕령(金德齡)·곽재우(郭再祐) 등 난중에 활약한 역사적 인물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 전개는 역사적 추이를 따르고 있으나 의병장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비현실적 도술에 의한 전쟁 양상을 기술하고 있다.

〈임경업전〉은 병자호란 당시 활약한 임경업 장군의 전기를 소설화한 것으로서,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임경업의 영웅성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둔 작품이며, 〈박씨전〉은 추녀였던 이시백의 아내 박씨의 이인적 면모를 드러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역사의 실상과는 달리 임경업은 호왕이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명장으로서 호병을 물리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이 무능하여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고 간신배에게 희생되는 것으로 그려지며, 박씨는 호란 당시 도술로써 적장 용홀대를 혼내준다.

역사군담소설은 주로 외적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민족적 능력을 과시하여 전란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하려는 의식과, 외침을 당하여 무능을 드러낸 집권층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번역군담소설은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등이 널리 애독되고 창작군담소설이 인기를 얻게 되자 중국의 연의소설 중 특히 군담이 흥미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을 초역하여 독립 작품으로 간행한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일부를 초역하여 독립 작품으로 간행한 작품이 가장 많은데, 이러한 작품에는 〈삼국대전〉·〈적벽대전〉·〈조자룡전〉·〈화룡도실기〉·〈관운장전〉 등이 있다.

〈초한연의 楚漢演義〉를 축역한 작품으로는 〈초한전〉·〈장자방실기〉 등이 있고, 〈설인귀정동 薛仁貴征東〉을 축역한 작품으로 〈설인귀전〉·〈서정기 西征記〉가 있으며, 〈설정산정서 薛丁山征西〉를 축역한 작품으로는 〈설정산정서〉·〈번이화정서전〉 등이 있다. 그 밖에 〈봉신연의 封神演義〉를 축역한 〈강태공전〉, 〈진당연의秦唐演義〉를 초역한 〈울지경덕전〉 등이 있다.

군담소설은 대체로 주인공의 고난 극복과 영웅적인 호쾌한 활약을 보여주는 통속소설이다. 군담소설은 판소리계 소설과 함께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인기소설로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염원을 도선적 신비주의에 근거한 상상을 통하여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일반 대중의 흥미의 성향과 상상력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군이다.

≪참고문헌≫ 군담소설의 구조와 의미(徐大錫,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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