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창(槍) / 요점정리 / 최창학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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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최창학(崔昌學: 1941- )

전북 익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68년 중편 <창(槍)>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여 등단함. 서울 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그는 현실 속에서의 삶의 왜곡과 훼손의 실상을 밝힘으로써 존재의 자아 상실을 그려내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적(敵)>, <긴 꿈 속의 불>, <먼 소리 먼 땅>, <형>, <도예가의 마을>, <물을 수 없는 물음들>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창>은 1968년 <창작과 비평>지에 발표된 중편소설로서, 최창학의 등단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기존 형식을 완전히 무시한 일종의 실험 소설]이라고 말한다. <창>에는 일정한 줄거리도 없이 일상적인 의식의 흐름만이 작품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

주인공 이상(李常)은 불문학을 전공한 문학 청년이면서 출판사 교정원이다. 그는 이상(李箱)과 르 끌레지오의 분위기를 풍기는 지친 의식의 덩어리 같은 존재이다. 자의식의 과잉에 빠져서 정신적으로 심하게 앓고 있던 그는 마침내 "이 세상에 자기(人間)은 존재하지 않고 '상(人間)'이라는 글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다분히 현상학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또, 그는 이 세상의 부조리와 무의미함에 대해 남보다 조금은 더 예민하게 자각할 줄 알 만큼 지적(知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각이라고 하는 것은 무력한 자각일 뿐이며, 그 자각의 연장 선상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무의미함만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데 작용하는 자각일 뿐이다. 그가 하는 나날의 행위나 사고도 남들과 조금 다른 특이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 뿐이다. 그 대표적 예가 거리나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의미 없는 유치한 상상(想像) 행위이다.

작품의 끝에서 자신이 지나치게 관념 속에 칩거해 있었다는 반성을 하고 '세상을 살기=속물이 되기'라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말하곤 있지만, 결론적으로 얻은 그 깨달음이란 것이 '시 쓰기, 자살' 따위의 지극히 단순하고 관념적인 것인 것으로, 역(逆)으로 그가 추구하고 생각했던 것을 보충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즉, 그 깨달음의 허구성은 이 세상 전체가 '창(槍)'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공격 콤플렉스를 유발하고,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다분히 관념적인 것이긴 해도, 산업화 기계화되어 가는 집단의 삶 속에서 개인이 존재의 자기 동일성을 상실하게 되어 모두 똑같은 자로서 익명화되어 간다는 사실에 대한 중대한 경고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긱계화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신문엔 한참 심장 이식 수술 최초로 성공, 두 번째 성공, 세 번째 성공, 네 번째 성공. 또는 개(犬) 머리와 뒷다리를 이식하는 데 성공. 멀지 않아 뇌 이식 수술도 가능…… 등 속의 토픽이 토픽 아닌 평범한 기사로 오르내리던 무렵, 주인공 이상(李常)이 꾸었던 밤마다의 악몽은 무서운 악몽이라기보다는 희극적인 것이었다. 그 악몽이라는 것이 '자신의 머리와 J양의 머리가 바뀌어져 붙어 있다면 목 이하 부분은 자신의 것인데 머리만은 J양의 것이다' 라거나 '한쪽 눈알을 뽑아 새끼손가락 끝에 달고 다니다가 사물을 볼 때는 그 새끼손가락을 내밀어서 본다'는 식이다.

주인공 이상(李常)의 이러한 꿈은 산업화 기계화에 따른 인간성 상실에 대한 예리하고 섬뜩한 경고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관념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약간은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 최창학은 이 세계의 왜곡된 체제 속에서, 이 세상을 어둡게 사는 사람 즉 소외된 사람들과 남보다 무언가 더 알고 있고 꿋꿋한 의지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인간 상실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헤침으로써 약간은 공허한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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