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긴 꿈 속의 불 / 요점정리 / 최창학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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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최창학(崔昌學: 1941- )

전북 익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68년 중편 <창(槍)>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여 등단함. 서울 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그는 현실 속에서의 삶의 왜곡과 훼손의 실상을 밝힘으로써 존재의 자아 상실을 그려내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적(敵)>, <긴 꿈 속의 불>, <먼 소리 먼 땅>, <형>, <도예가의 마을>, <물을 수 없는 물음들>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긴 꿈 속의 불>은 1980년 <문예중앙> 여름호 별책으로 발표된 작품으로서, 오욕의 역사와 닫힌 사회, 어지러운 세월 속에서의 삶의 방향을 그린 장편 소설이다.

젊은 정신과 의사인 현민은 별거 중인 미국인 아내,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 그 어머니를 광적으로 거부하는 형 등으로 인하여 가정이 복잡하다. 그런데 거기다가 최동인, 유혜주, 지사 노인 등 각기 독특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심한 곤욕을 겪는다. 그러나 모두 상징적인 존재들인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이 일으키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도 현민의 끝까지 주저앉지 않는다.

<긴 꿈 속의 불>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환자들의 자세한 병력(病歷)과 그들을 치료하고자 애쓰는 의사 현민의 노력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환자들의 양태는 다양하기 그지없다. 최동인은 학생 운동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간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어 일종의 거절증(拒絶症) 증세를 보이는 환자이며, 유혜주는 잇따른 결혼 실패로 인해 성 도착(性倒錯) 증세를 보이는 환자이고, 한 노인은 일제 때 사랑하던 여인이 일경에게 난행을 당한 일이 원인이 되어 일종의 결벽증(潔癖症) 증세를 보이는 환자이다. 현민의 주위에는 이런 병원 환자가 아니더라도 최동인의 아버지인 최 장로, 유혜주를 쫓아다니다가 그녀의 동생 유혜림을 유괴 살해한 이정태 등의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환자가 많다는 것은 현민으로서는 크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 준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그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민의 그 자부심은 작품의 뒷부분에서, 정신병의 치료가 오히려 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정신과 의사인 나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가 미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생기면서 여지없이 깨져 버린다.

이러한 의구심과 자괴심은 직접적으로 서술되기도 하지만,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현민의 죽은 형 영민의 친구인 화가 김린이 정신병 치료를 받은 후에는 자신의 넋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여 과거의 실험 정신이나 강한 개성이 사라지고 없는, 기계적이고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화가 김린이 아직도 남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작품이 치졸하고 진부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치졸스럽고 진부한 자신의 그림이 마냥 경멸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김린의 다음과 같은 말은 광기에 젖은 병은 시대적 상황에 기인된 병증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르겠어. 이런 세월을 살다 보니 어떤 게 더 건강한 건지……. 어떻게 생각하면 그때가 더 건강했던 것 같기도 하거든. 그때, 자네의 병원에 갇혀 지내던 그때 말이야."

김린으로서는 무심중에 뱉은 말이겠지만, 따져 보면 현민으로서는 화라도 내어야 할 만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김린의 말대로라면 도대체 현민 자신은 뭐란 말인가.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광기로 가득한 세월을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백 번 타협을 하며 살아가려고 해도 잘 되어지지 않는다."

이 말에서 병은 그 의미의 폭이 다양하게 확대고 있다.

즉, 개인의 병에서 시대의 병으로, 그 시대의 체제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특히 심하게 앓고 있는 병으로,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인도 모두 앓고 있는 병으로, 단순히 치료하려 애써야만 될 게 아니라 전염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에 같이 휩쓸려 거기에서 애정을 느껴야 하는 병으로 그 병의 의미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광기(狂氣)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현민이 선택할 삶의 양태(樣態)도 달라진다.

그 삶의 양태란, 끝끝내 나는 미치지 않는다는, 정신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그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으로 돌아간 아내 애니의 편지대로 이 미친 세월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 버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 땅에 남아 같이 피를 묻히며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치료에 애쓰며 살아가는 방법도 또 하나의 삶의 양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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