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 철학과 참여 민주주의
by 송화은율참여의 철학과 참여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가 한국 사회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미 고대 그리스부터, 가까이는 1960년대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주요 담론을 이루었으며, 한국의 근대사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던 이 참여 문제는 특히 최근 들어 참여 민주주의로 형상화되어 사회 운동의 주요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 만큼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실질적인 민주주의로의 발전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있게 된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 회의와 비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히 그 대안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가는데, 이미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거친 후이어서인지 참여 민주주의가 그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참여 민주주의는 '형상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참여'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여란 무엇인가
참여란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라틴어의 'par'에서 유래된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같이한다' 혹은 '부분을 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여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정치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참여는 전문화된 개념 규정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정치 사회적 차원에서 참여의 용어를 정의한 다음, 그것이 다진 다면성에 주목하면서 그 실체를 살펴 볼 것이다.
1) 참여의 개념
참여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참여의 개념은 '사회의 보통 구성원이 의사 결정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행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개념 정의는 몇몇 중심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각각의 의미를 명확히 하게 되면 참여의 개념도 자동적으로 명료해질 것이다.
먼저 참여 주체를 보면, '사회의 보통 구성원'이다. 직업적인 의사 결정자가 의무나 권한으로서의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참여가 아니다. 관료나 정치인, 법정 대리인, 로비스트, 그리고 노조 내로 국한할 때의 노조 간부 등은 참여의 주체에서 제외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위로부터 아래로'가 아닌 '아래로부터 위로'의 행동만이 참여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참여의 목적은 '의사 결정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의사 결정의 지위를 가진 공직자를 선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로 의사 결정자에게 압력을 행사하거나 소환이나 집회 등의 직접적인 방법으로 법률 및 규칙의 제정 등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목적의식하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참여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목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적어도 몇 사람 사이에 공유되는 것이라야 한다.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목적 추구와는 상관없이 위로부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동원'은 그 외형과는 달리 참여로 간주되지 않으며, 개별적 효용극대화를 위한 시장 참여는 그 용어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말하는 목적의 참여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또한 비록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통치자의 시혜에 의해서나 운이 좋아 얻어진 경우에는 참여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매우 중요한 것은 참여는 '행동'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투표 행위만이 아니라 시위, 집회, 캠페인, 청원에의 서명, 기부, 조직의 설립 및 조직에의 가입과 활동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행동을 포괄한다. 심리적 개입이나 동조, 관심 혹은 선호 등과 같은 것은 참여적 행동의 근거는 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곧 참여는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행동을 기피하거나 필요성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 대통령 선거 경쟁을 흥미 본위로 관찰하거나 이미지 위주로 보도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투표 참여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적 참여를 막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참여는 어디까지나 행동이기 때문에 운동, 에너지, 그리고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 참여의 다면성
참여의 개념이 이와같이 정의된다 해도 참여는 고정적이거나 획일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매우 다면적이며 실제 양과 질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참여의 다양성으로 인해 참여의 이론적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자도 나타났지만, 사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리를 세울 수 있어 단일의 통합적 개념으로 다루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이 방면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이 회의론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참여라는 것이 일종의 '우산 개념'이라고 할지라도 그들 역시 상이한 변수 각각이 핵심 정의에 들어맞는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으므로, 참여의 개념에 관한 한 그 다양성을 어떻게 체계화하여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때 가장 단순한 체계화는 참여의 양을 기준으로 한 외연과 강도의 두 차원으로 구분하고 실제 영향력의 차이를 권력 기반 혹은 자원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다. 참여를 다섯 차원으로 세분해 보면, 참여의 범위, 참여의 외연, 참여의 양식, 참여의 강도, 참여의 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참여는 매우 다면적이고 다양하다. 위의 다섯 가지 차원 각각, 혹은 그 조합에서 서로 많은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이 다섯 차원을 가지고 참여의 다양성을 체계화한다면 그것들을 참여의 단일 개념에 포괄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의 체계화를 통하여 참여 이론과 철학은 더욱 풍부해지고 더욱 현실 정합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믿는다.
한 사회 내에서 또 시기별로 참여 이슈의 범위가 다르고 이슈별 참여의 외연, 양식, 강도, 그리고 참여의 실제적 유효성 등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 많은 이슈에 더 많은 사람이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한층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참여의 실제 유효성도 증대되며, 바로 이러할 때 그 사회가 참여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다섯 차원을 가지고 '참여 사회'나 '참여 민주주의'의 절대적인 기준을 확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참여의 범위, 외연, 강도 등이 증대하고 질적으로 향상됨에 따라 그 양식도 다양하게 전개되는 과정으로서 참여 사회나 참여 민주주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로널드 메이슨이 "참여는 광범하고 유효한 것이어야 한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참여의 가치
참여는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이기에 인간 사회 특히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중하게 다루어지는가를 이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 성취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 내에서 끊임없는 자기 개발을 통한 자아 실현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참여는 곧 소외로부터 벗어난 사회적 정체성의 획득을 의미하고 그 자체가 자아 실현의 통로가 되며(본래적 가치), 실제 참여 과정을 통하여 참여자의 자기 개발이 이루어진다(자기 개발 가치). 또한 참여는 사회 구성원 스스로의 이익을 보호하는 한편 그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심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도구적 가치). 이상의 세 가지는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참여의 의의
참여는 민주주의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참여는 민주주의의 근본이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척도가 된다. 참여는 단순히 '인민에 의한 지배'를 구현하는 도구로서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아 실현과 자기 개발을 통하여 사회적 안정과 정통성이 담보되는 '강한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참여 민주주의는 이러한 참여의 가치와 의의를 실현하기 위한 좀더 넓은 의미의 정치 체제이다. 현실적으로 표방되고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삼' 참여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그러한 '현실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참여를 결여하거나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참여의 심각한 결여가 이미 전면적으로 드러난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현실 사회주의의 와해 이후 민주주의의 이름을 더더욱 독점하게 된 자유 민주주의에서도 실제 사회 구성원의 광범한 참여의 제약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무색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의 근본인 참여의 철학에 충실하고자 하는 참여 민주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현실 민주주의의 대안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한계는 흔히 그것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 민주제가 민주적 대표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실제 제도적 차원에서 지적되고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자유주의 철학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앞에서 지적되었듯이 자유주의는 정치와 사회 경제의 영역을 엄밀하게 분리한다. 사회적 의사 결정은 이렇게 설정된 좁은 의미의 정치가 독점하게 되고 따라서 사회구성원의 참여는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좀더 파고들어가 보면 이는 자유주의의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거기서 인간은 원자화된 상태에서 개별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태적인 존재로 상정된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인간관을 시장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치 사회적 행위에도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위한 개별적인 게임 수행자로서 인간의 존재를 상정하게 되고, 따라서 공익을 위한 사회 구성원의 참여 행동의 중요성은 물론 필요성까지 외면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인간관은 한마디로 시장주의에 입각한 정태적 인간관으로서, 자아 실현이나 자기 개발과 같은 참여의 동태적 가치에는 눈을 감거나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단지 기능적으로 참여의 도구적 가치를 오직 효율성, 좀더 정확하게는 좁은 시야의 시장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왈가왈부할 뿐이다.
이에 비한다면, 대의제가 갖는 대표성 문제는 제도적인 차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속성을 외면한 원자론적 인간과, 개별 이익 추구로만 한정하는 시장주의적 인간관, 그리고 자아 실현과 자기 개발을 도외시하는 정태적 인간관이 참여를 외면하고 심지어는 위험시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인간관이 극복된다면, 반드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사회 구성원의 대표성이 확보되는 대의제는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가능하다.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에서도 현실적으로 규모의 문제나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만큼 대의제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참여의 철학 혹은 참여주의에 기초한 한층 넓은 의미의 정치 체제이지, 대의제의 대안으로서의 좁은 의미의 정치 제도를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참여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자동적으로 실현되거나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안 체제로서의 참여 민주주의는 목적의식적인 행동의 대상이며, 이 행동은 다름 아닌 그 제도적 확보를 위한 참여 행동이다. 광범한 참여를 기반으로 그 유효화를 위한 조직적인 참여 운동이 요구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작업장 민주주의는 참여 민주주의의 핵심 고리가 된다. 참여가 결여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며, 참여 운동 없이 참여 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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