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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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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개벽 25, 1922. 7)

* 즈려 : 살짝 눌러 발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평안북도 사투리)


작가(1) : 김소월(1902-1934)

본명은 정식(廷湜). 평북 정주 출생. 오산학교 졸업. 일본 동경 상대 수학. 1920창조낭인의 봄, 그리워등을 발표하며 등단. 영대(靈臺)동인.

 

민요시인, 국민시인, 전통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전통적 율조와 정서를 성공적으로 시화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이별과 그리움에서 비롯하는 슬픔눈물정한 등을 주제로 하며,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해 독특하고 울림이 큰 표현을 이룩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바로 이와같은 특징이 그를 한국 현대시인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가장 많이 연구된 시인이 되도록 한 것이다.

 

시집으로는 진달래꽃(매문사, 1925)이 있으며, 그가 작고한 후 이에 기타 발표작을 수습첨가해 많은 시집이 발간되었다.

 

 

작가(2) :

김소월 (金素月,1902-1934): 본명은 정식. 본적은 평북 정주군 곽산. 평북 구성군 와인동 소재 외가에서 출생하여 오산 학교와 배재 고등 보통학교를 다녔다. 김 억의 추천으로 19203창조5호에 낭인의 봄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이 간행되었으며, 소월이 작고한 뒤 은사인 김 억의 손으로 소월시초김소월의 행장』 『김소월의 추억및 소월의 유일한 시론인 시혼을 곁들여 1939년에 발간되었다. 그후 100종에 가까운 소월 시집이 다투어 출판되었으며, 서울 남산에 소월 시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소월의 시작 활동은 그의 학창 시절이 끝나고 사회 생활이 시작되는 1924년을 분기점으로 하여 크게 두 시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심리적 갈등이나 압박이 심각하지 않은 때로 민족의 보편적 정서와 민요조의 율격을 나름대로 소화한 작품을 써서 안서가 편집을 맡고 있던 개벽지 문예란을 주무대로 하여 발표하였다.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대부분의 작품이 이 시기의 것이다. 후기는 직접 세파에 부대끼면서 좌절과 절망에 휩싸였던 동아 일보 지국장 시절로서, 지금까지 소홀히 다루어진 이 시기에 쓰여진 시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과 평가가 앞으로 남은 소월 시 연구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소월의 유일한 소설 작품으로는 1922개벽에 발표된 함박눈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시는 한국적 정한(情恨)의 세계를 시적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우리 전통 시가의 맥을 이루는 이 정한(情恨)’의 세계는 고려가요 가시리서경별곡’, 그리고 전통 민요인 아리랑으로 이어져 내려온 정서이다. 그리고 이 시가 결코 천박한 이별의 슬픔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그 을 또한 스스로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7.5조의 3음보를 주조로 하고 있다. 3연의 고조된 수미쌍관의 결구법으로 이 작품을 끝맺고 있다.

 

연을 구분하여 살펴보면 1연을 여성적 순응주의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보기가 싫어서 떠나는 임에게 어떠한 불평도 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것이 1연의 내용이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듯한 이 시적 진술 속에는 한 마디로 단정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하고 야릇한 감정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그 어법에서 볼 때 여성으로 짐작되는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적어도 임과 언제 이별하더라도 무방하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진심을 그 속에 숨겨 놓고 있다. 표면적인 과장과 허세가 역설적으로 그의 내면적 진실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특유의 과장은 제 2, 3 연에서 확인된다. 임의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뿌릴 테니 그것을 즈려 밟고 가 달라고 화자는 말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는 사람 앞에 꽃을 뿌린다는 것을 물론 비현실적 행위이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이 변함없다는 데 있다. 그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花功德)-임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그 걸음을 평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표면적인 뜻에 매달려 시를 이해할 때, 우리는 거기서 한 여인의 비현실적이고 싱거운 포부밖에는 발견하지 못한다. 이 축복의 이면에는 오히려 가겠다는 임을 강력하게 만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가겠다는 임을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그를 붙잡아 두는 최상의 방법임을 그는 자각했던 듯하다.

 

4연은 반어법이 구사된 부분이다. 정작 임이 자기 곁을 떠나면 슬프고 분하여 오열에 젖거나 자살이라도 할 계제요 심각한 고비인데 오히려 결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마저 흘리지 않겠다는 것은 임을 이별하게 될 때의 화자의 극도의 슬픔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죽어도 아니 눈물같은 적절한 생략적 도치법은 인상적 변화의 묘미를 가져다 준다. 이를 유교적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감정이란 측면에서 보기도 한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소월시의 정수(精髓),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시적 자아로 하여 전통적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공무도하가,가시리,서경별곡,아리랑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 한다.

 

412행의 간결한 시 형식 속에는 한 여인의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체념과 극기(克己)의 정신이 함께 용해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동양적인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떠나는 임이지만, 그를 위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절대적 사랑, 임의 가시는 걸음 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을 때,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그리고 그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忍苦)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은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 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표상하기 위하여 선택된 시적 자아의 분신이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 공덕(散華功德)’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저 이별을 노래하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의 문제로도 확대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월은 그의 다른 대표작인 산유화에서처럼, 여기서도 진달래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원리로 설정함으로써 마침내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그는 더 나아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버림받은 여인과 떠나는 남성 간에 발생하는 비극적 상황이 초점을 이루는 설화적 모티프- 여성의 인종(忍從)과 남성의 유랑(流浪) 및 잠적(潛跡)-를 원형(原型)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여성 편향의 드리오리다뿌리오리다가시옵소서흘리오리다등의 종지형을 의도적으로 각연마다 사용함으로써 더욱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피학적(被虐的)이던 시적 자아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마지막 시행과, ‘걸음 걸음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에서 나타나듯이 그저 눈물만 보이며 인종하는 나약한 여성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떠나는 남성이 밟고 가는 진달래꽃한 송이 한 송이는 바로 여성 시적 자아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꽃을 밟을 때마다 자신이 가학자(加虐者)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아는 시적 자아는 그러한 고도의 치밀한 시적 장치를 통해 떠나는 사랑을 붙잡아두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감상의 길잡이 3 >

승화된 이별의 정한(情恨)이라고 일단 이해할 수 있는 이 시의 주제는 전통적 시가인 󰡔가시리󰡕나 황진이의 시조 어저, 내 일이야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에서 그러한 주제를 이끌어 내는 것만으로 작품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듯한 이 시적 진술 속에는 한마디로 단정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하고 야릇한 감정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여성으로 짐작되는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적어도 결코 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진심을 그 속에 숨겨 놓고 있다. 표면적인 과장과 허세가 역설적으로 그의 내면적 진실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 특유의 과장은 제2,3연에서 확인된다. 임이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뿌릴 테니 그것을 즈려 밟고 가 달라고 화자는 말한다.

 

떠나가는 사람 앞에 꽃을 뿌린다는 것은 물론 비현실적인 행위이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이 변한없다는 데 있다. 그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花功德)’ , 임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그 걸음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표면적인 뜻에 매달려 시를 이해할 때, 우리는 거기서 한 여인의 비현실적이고 싱거운 포부밖에는 발견하지 못한다. 이 축복의 이면에는 오히려 가겠다는 임을 강력히 만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양하(李敭河) 교수는 소월의 진달래와 예이츠의 꿈에서 그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B.Yeats, 1865-1939)하늘 나라의 옷을 읽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예이츠의 은 소월의 진달래에 상응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가진 모든 것 즉, 혼신의 사랑을 의미한다. 특히, 진달래는 그것이 지닌 붉은 색감에 의해 불타오르는 사랑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준다. 그리하여 사뿐히 즈려 밟고라는 말은 나의 사랑을 무참히 짓밟지는 말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사랑이 여성화된 꽃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 감상의 길잡이 4 >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시그러나 가장 잘못 읽혀져 온 시그것이 바로 김소월의진달래꽃이다거의 모든 사람들은진달래꽃이 이별을 노래한 시라고만 생각해왔으며 심지어는 대학입시 국어 문제에서도 그렇게 써야만 정답이 되었다하지만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 우리다라는 그 첫행 하나만 조심스럽게 읽어봐도 그것이 결코 이별만을 노래한 단순한 시가 아니라는 것을 간단히 알 수가 있다왜냐하면가실 때에는…」「…드리우리다와 같은 말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듯이 이 시는 미래 추정형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영문 같았으면「If」로 시작되는 가정법과 의지 미래형으로 서술되었을 문장이다이 시 전체의 서술어는「…드리우리다」「…뿌리우리다」「…옵소서」「…흘리우리다로 전문에 모두 의지나 바람을 나타내는 미래의 시제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 의미로 보면 지금 님은 자기를 역겨워하지도 않으며 떠난 것도 아니다오히려 그들은 지금 이별은커녕 열렬히 사랑을 하고 있는 중임을 알 수가 있다그런데도 이 시를 한국 이별가의 전형으로 읽어온 것은 미래추정형으로 된진달래꽃의 시제를 무시하고 그것을 현재나 과거형으로 진술한 이별가와 동일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고려때의 가요가시리에서 시작하여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아리랑의 민요에 이르기까지 이별을 노래한 한국시들은 백이면 백 이별의 그 정황을 과거형이나 현재형으로 진술해왔다오직 김소월의진달래꽃만이 이별의 시제가 미래추정형으로 되어 있고 시 전체가만약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해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진달래꽃의 시적 의미를 결정짓는 것그리고 그것이 다른 시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바로 이같은 시의 시제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미래추정형의 시제를 실제 일어났던 과거형으로 바꿔서나보기가 역겨워 가신 그대를 말없이 고이 보내 드렸었지요로 고쳐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그것은 이미 소월의 진달래꽃과는 전혀 다른 시가 되고 말 것이다그렇기 때문에진달래꽃을 이별의 노래라고 생각한다는 것은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이라는 옛가요를 듣고 그것이 백만장자의 노래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시 음치에 속하는 일이다그같은 오독이진달래꽃을 읽는 시의 재미와 그 창조적인 의미를 얼마나 무참히 파괴해버렸는가는 췌언할 필요가 없다그러한 오독으로 인해서고이보내 드리 우리다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와 같은 시의 역설이 한국 여인의 부덕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급기야는 이 시를 명심보감이나 양반집 내훈의 대역에 오르도록 했다자기를 역겹다고 버린 님을 원망은커녕 꽃까지 뿌려주겠다는 인심좋은 한국 여인의 관용이그리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겠다는 극기의 그 여인상이진달래꽃의 메시지였다면 그 시는 물론이고진달래꽃의 이미지조차도 우스워진다그렇다그런 메시지에 어울리는 꽃이라면 그것은 저 유교적 이념의 등록상표인국화매화일 것이다

 

진달래꽃은 결코 점잖은 꽃자기 억제의 꽃이라고는 할 수 없다그것은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진 가축화한 완상용 꽃이 아니다오히려 겨우내내 야산의 어느 바위틈이나 벼랑가에 숨어 있다가 봄과 함께 분출한 춘정을 주체할 바 모르는 야속(野屬)의 꽃인 것이다더구나 영변 약산에 피는 진달래꽃은 그 색깔이 짙기로 이름나 있다온 산 전체를 온통 불태우는 꽃으로, 신윤복의 그림연소 답청에서 보듯 남자들과 나귀 타고 산행을 하는 기녀들의 머리에 꽂았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인 것이다그런 진달래가 이별의 슬픔을 억제하고 너그러운 부덕을 상징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꽃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유교사회에 있어 진달래꽃은 그 흔한 화조병풍이나 화투장에서마저도 멀찌감치 물러나 앉은 반문화적 꽃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째서진달래꽃이 어둡고 청승맞은 4·4조의 우수율이 아니라 밝고 경쾌하며 조금은 까불까불한 느낌조차 주는 7·5조의 기수율로 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그것은 이별가의 침통한 가락이 아니다약간은 수줍게 그러면서도 철없이 불타오르는진달래꽃같은 사랑의 언어들때로는 장난기마저 깃든 천진난만한소녀의 기도소리의 율동을 들을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밤의 어둠을 바탕으로 삼지 않고서는 별빛의 영롱함을 그려낼 수 없듯이 이별의 슬픔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기쁨을 가시화할 수 없는 역설로 빚어진 것이 바로 소월의진달래꽃인 것이다즉 이별의 가정을 통해 현재의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낸 시이다이별을 이별로써 노래하거나 사랑을 사랑으로 노래하는 평면적 의미와 달리 소월은 사랑의 시점에서 이별을 노래하는 겹시각을 통해서 언어의 복합적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라는 대립된 정서대립된 시간 그리고 대립된 상황을 이른바반대의 일치라는 역설의 시학으로 함께 묶어 놓는다그래서 사랑을 반기고 맞이하는 꽃이 여기에서는 반대로 이별의 객관적 상관물이 되고향기를 맡고 머리에 꽂는 꽃의 상부적 이미지가 돌이나 흙과 같이 바닥에 깔리거나 발에 밟히는 하부적 이미지로 바뀐다그러한 꽃의 이미지 때문에 가벼움을 나타내는사뿐히와 무거움을 나타내는밟다라는 서로 모순하는 어휘가 하나로 결합하여사뿐히 즈려밟고의 당착어법이 되기도 한다

 

소월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산에 핀 진달래거나 혹은 여인의 머리나 나무꾼의 지게에 꽂아진 진달래의 그 아름다움밖에는 모를 뻔했다그러나 반대의 것을 서로 결합시키는 소월의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바위 틈에서 피어나는 진달래만이 아니라 슬픈 발걸음 하나하나에서 밟히우면서 동시에 희열로 피어나는 또 다른 가상공간의 진달래꽃의 아름다움과 만난다

 

그것이 바로 이별의 슬픔을 통해서 사랑의 기쁨을 가시화하는 역설 또는 아이러니라는 시적 장치이다그렇게 해서 얻어진 시의 복합적 의미는 반드시 한 항목만을 골라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 사지선다의 객관식 답안지로는 영원히 도달될 수 없는 세계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의 마지막 구절을 눈여겨 보면 산문과는 달리 복합적 구조를 가진 시적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알게될 것이다어느 평자도 지적한 적이 있지만 산문적인 의미로 볼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우리다는 조금도 뜻이 다를 것이 없다그러나 부정을 뜻하는아니눈물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로 시적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아니가 뒤에 올 때에는 단순히 평서문으로서 그냥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진술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하지만 아니가 눈물 앞에 올 때에는 그 부정의 의미가 훨씬 강력해진다.「아니라는 말이 의도적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다짐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강력한 부정일수록 긍정으로 들리는 시의 역설이 생겨나게 된다

 

김소월의진달래꽃은 한 세기 가까이 긴 세월을 두고 오독되어온 셈이다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니다역겨움과 떠남이 미래형으로 서술되고 있는 한사랑은 언제나지금인 것이다사랑을 현재형으로이별을 미래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소월의 특이한 시적 시제 속에서는 언제나 이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랑의 기쁨과 열정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구실을 한다그러한 모순과 역설의 이중적 정서를 가시화하면 봄마다 약산 전체를 불타오르게 하는, 그러면서도 바위틈 사이에서 하나 하나 외롭게 피어나는 진달래꽃잎이 될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5 >

주지하다시피 한과 애수로 일컬어지는 한국적 고유 정서와 전통적 민요조 가락은 소월시를 이루는 두 원소(元素)이자, 소월시를 존재하게 하는 두 원인(原因)이다. 민족 최대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소월이 남긴 150여편의 시는 생전에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으로 묶였고, 사후(死後)에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1939)에 이어 지금까지 수많은 시집이 간행되어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전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게 된 원동력과 흡인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소월시가 남과 다른 숭고한 이념이나 사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요, 시대적 고뇌를 온몸으로 포용하고 있는 지사적(志士的) 풍모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모두(冒頭)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작품 속에는 민족의 고유 정서와 맞닿아 흐르는 어떤 소박하고 진솔한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간결하고 소박한 가락,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구화체(口話體)를 활용한 75조의 대중적 리듬과, 이별그리움체념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적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 전통적 정서에 닿게 되어 소월시만이 갖는 처절한 호소력과 강렬한 감동을 전수받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소월시의 정수(精髓),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시적 자아로 하여 전통적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가시리>, <서경별곡(西京別曲)>, <아리랑>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한다.

 

412행의 간결한 시 형식 속에는 한 여인의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체념과 극기(克己)의 정신이 함께 용해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동양적인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떠나는 임이지만, 그를 위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절대적 사랑, 임의 가시는 걸음 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을 때,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그리고 그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忍苦)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은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 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표상하기 위하여 선택된 시적 자아의 분신이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華功德)’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저 이별을 노래하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의 문제로도 확대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월은 그의 다른 대표작인 <산유화(山有花)>에서처럼, 여기서도 진달래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원리로 설정함으로써 마침내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그는 더 나아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버림받은 여인과 떠나는 남성 간에 발생하는 비극적 상황이 초점을 이루는 설화적 모티프 여성의 인종(忍從)과 남성의 유랑(流浪) 및 잠적(潛跡) 를 원형(原型, archetype)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여성 편향(女性偏向, female complex)드리오리다뿌리오리다가시옵소서흘리오리다등의 종지형을 의도적으로 각 연마다 사용함으로써 더욱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피학적(被虐的, masochistic)이던 시적 자아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마지막 시행과, ‘걸음 걸음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에서 나타나듯이 그저 눈물만 보이며 인종하는 나약한 여성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떠나는 남성이 밟고 가는 진달래꽃한 송이 한 송이는 바로 여성 시적 자아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꽃을 밟을 때마다 자신이 가학자(加虐者, sadist)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아는 시적 자아는 그러한 고도의 치밀한 시적 장치를 통해 떠나는 사랑을 붙잡아두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감상의 길잡이 6 >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될 때 그것을 붙잡고자 함은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간곡하게 붙잡음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면 그런 때는 어찌할 것인가? 그런 일을 스스로 겪어 보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 있는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진달래꽃은 하나의 시적 해답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의 인물은 님이 떠나실 때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노라고 한다. 2, 3연에서는 영변의 약산에 핀 진달래꽃을 한아름 따다 길에 뿌려 놓을 터이니 그것들을 걸음마다 밟고 가시라고 한다. 그리고는 한번 더 강조하여, 님이 떠나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노라고 한다. 어차피 떠날 수밖에 없는 님이라면, 그리고 떠나는 것이 진실로 님이 바라는 일이라면 굳이 붙잡지 않겠노라는 비장한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의미가 전부라면 진달래꽃은 별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 되지 못 할 것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문제는 위의 내용이 작중 인물의 진심과는 다른 반어적 표현 내지는 역설이라는 데 있다. 비록 말의 표현에서는 떠나는 님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고 하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말이 아니다. 진심은 그 반대이다. 그는 님이 떠날 때 도저히 그렇게 보낼 수 없을 만큼 절실한 사랑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구절들은 그 깊은 의미에서는 오히려 표면의 문맥과는 반대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제2, 3연의 말들을 좀더 깊이 음미할 수 있게 된다. 님이 가시는 길에 뿌리는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곧 그 꽃처럼 붉고 아름다운 그의 사랑이기도 하다. 가시는 걸음마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 달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깊은 사랑을 떠나는 님에게까지도 아끼지 않으려는 정성의 표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마 그 아름다운 사랑을 밟으며 떠날 님에의 원망과 한이 서리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애절한 사랑과 슬픔 그리고 한을 나지막한 호소의 말씨에 실어 노래한 데에 진달래꽃의 간절한 뜻이 나타난다. 그것은 흔히 말하듯 고려 가요의 가시리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가시리의 작중 인물이 님에게 `가시는 듯 돌아오십시오'라고 말하는 기다림의 여유가 있었던 데 비해 이 작품은 그만한 기다림도 가질 수 없는 절망적인 분위기와 슬픔을 띠고 있다. [해설: 김흥규]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소월의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인구에 회자(人口膾炙)하는 명작의 하나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순수 서정이 시 속에 깊게 깔려 있다. 또한, 음악성과 사투리가 주는 향토적 정감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보내고 싶지 않은 여인의 내심이 어디에 있는지 포착해 보고, 행간에 서려 있는 ()’의 본질은 어떤 감정인가를 구명(究明)해 보자.

1922개벽지에 발표된 소월의 대작으로 고려가요[가시리]와 접맥되어 있다. 시의 경향은 유교적인 휴머니즘이며 4연으로 짜여진 민요조의 자유시, 님과의 이별의 한을 전통적 정서로 표현하고, 동어를 반복하여 씀으로써 청각적 리듬 감각을 살린 작품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정한을 체념으로 정화시킨 유교적 휴머니즘이 기본바탕이 된 이 시의 주제는 이별의 설움과 한이다.

성격 : 토속적, 민요적

어조 : 여성적 어조

경향 : 유교적 휴머니즘

미감 : 애상미(哀傷美)

운율 : 3음보의 율격, 각운

표현 : 반복적인 리듬과 음악성이 돋보임

특징 : 토속적 사투리와 사랑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처리한 서정시의 백미

순종의 미덕이 잔잔하게 깔려 있으면서 내면으로는 여성의 강한 만류의 뜻이 담겨 있음.

구성 : 1: 이별의 정한

2: 떠나는 임에 대한 축복

3: 원망을 초극한 헌신적 사랑

4: 슬픔의 극복

제재 : 진달래꽃

주제 : 승화된 이별의 정한

 

 

<연구 문제>

1.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리겠다는 것은 그 행위가 지니는 표면적인 의미와 내면적 진실이 상반된 것일 수 있겠다. 그 상반된 의미를 설명해 보라.

표면적으로는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그 걸음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를 지니지만, 내면적으로는 차마 나의 사랑을 짓밟고 가시지는 못하리라는 만류의 뜻이 담겨 있다.

 

2. 에는 한국 여인의 인고(忍苦)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태도와 관계가 깊은 4자의 한자 성어를 쓰라.

애이불상(哀而不傷) (또는 애이불비(哀而不悲))

 

3. 이라고 말한 이유를 35자 정도로 쓰라.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슬픔을 이지적으로 참아, 임의 가시는 발길에 축복을 보내고 싶은 화자의 임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다.

 

4. 이 시와 고려 가요 󰡔가시리󰡕에서, 작품 속의 화자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를 한 문장으로 쓰라.

☞ 󰡔진달래꽃󰡕의 화자는 이별의 슬픔을 역설적으로(극적으로) 드러낸 반면, 󰡔가시리󰡕의 화자는 그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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