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직업으로서의 학문 / 해설 / 막스 베버

by 송화은율
반응형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이인화 이와여대 국문과교수

 

직업으로서의 학문 20세기 최대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죽기 1년 전인 19년 뮌헨대에서 행한 강연 원고다그래서 이 책에는 베버의 사회과학 사상이 가장 쉽고 원숙한 형태로 요약되어 있다고 말해진다이 강연의 화두는 단순히 학문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주술로부터 세계를 해방시킨 합리화 과정이라는 베버 사상의 중심 주제가 놓여 있어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고전적이고도 의미심장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막스 베버는 근대 사회의 합리화 과정이 야기하는 발전과 파행의 양면성을 냉철하게 인식했던 사상가였다베버에 따르면 자유의 이념을 배태한 근대문명은 바로 그 자신의 합리화 과정 때문에 자유의 실현을 좌절시킬 조건들을 창출해내고 있다바로 가장 순도 높은 합리성에 도달했다고 말해지는 시장과 관료조직이 새로운 예속의 틀을 만들어 무력한 개인들을 강압하게 되는 것이다베버는 근대사회의 합리화 과정을 그 뿌리부터 해부함으로써 이러한 현실의 모순으로부터 인간의 자율성이 구현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베버의 작업은 당대의 무책임한 호언장담들 속에서 매우 이채로운 빛을 발한다베버가 활동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는 세기말의 우울한 데카당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의 발전에 대한 계몽주의적 낙관론이 지배하던 시대였다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타이태닉(1997)은 베버가 활발한 토론과 저술활동을 하던 191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이 영화의 첫 장면사우스햄튼 항구를 막 출발하려는 타이태닉호의 어마어마한 위용은 당시 진보와 발전의 신화 속에 거칠 것 없이 항진해가던 서구 자본주의 사회 그 자체였다

 

베버가 이야기한 `세계의 주지주의(主知主義)적 합리화'는 산업의 확장과 과학의 발명들로 가시화되었다1900년에 1천명도 안되던 미국의 사무직 여성이 1910년엔 346천명을 돌파했고런던 롬바드 거리의 증권거래소는 유례없는 호황으로 흥청댔다하늘엔 비행기라는 것이 날기 시작했으며 집집마다 전기세탁기라는 것이 들어섰다끊임없는 경이의 시대였고 영광의 시대였다베버는 바로 이같은 장밋빛 낙관의 시대에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이 갖는 가치 상대주의의 위험을 직시함으로써 그것이 곧 부닥치게 될 거대한 빙산의 모습을 우리 앞에 보여주었다.

 

 

베버에 의하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합리화되는 세계다합리화되는 세계에서 기존의 기독교적 증세가 가졌던 통일적 세계상은 붕괴되며 가치영역들은 분화된다미의 모든 가치를 함축하고 있던 유일신의 세계는 진미라는 각각의 가치 질서들이 분리되어 상충되는 다신교(多神敎)의 세계로 변해간다이같은 세계에서 여러 신들가령 참됨의 신(객관주의적 근대과학)과 선함의 신(보편주의적 법과 도덕)아름다움의 신(자율화된 예술)들은 서로를 용납하지 않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은 선은 아니지만 아름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선이 아니라고 하는 바로 그 점이 아름다울 수 있다이것은 니체 이래 다시 인식되고 있으며또 벌써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더구나 아름답지도 않고신성하지도 않고또 선량하지 않은데도 참될 수 있다는 것아니 참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지도 않고신성하지도 않고선량하지도 않은 까닭이라는 것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상식에 속한다

 

베버에게 학문은 바로 이같은 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그렇기 때문에 베버는 대학에서 학문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주관적 당파적 입장을 배제하고 엄정하게 가치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단언한다그것은 자신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사실의 진정한 인식을 방해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학문이 앞서와 같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여러 신들의 투쟁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택한 신이 성스럽듯 다른 신도 그것을 택한 사람에게는 성스러운 것임을 인정하며 이 신들 사이의 갈등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버는 이렇게 수행되는 근대 학문의 한계를 다음과 같은 말로 압축하고 있다.『너희가 하나의 신을 경배할 때 그것은 다른 신들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 인생의 진상은 서로 다른 가치들을 표상하는 여러 신의 영원한 투쟁이다학문을 하는 사람은 그 가운데 하나의 신진리의 신에게 봉사하고 있을 뿐이다만약 선함과 아름다움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든 알 가치가 있는 것은 알아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학문을 하는 사람은 최악의 악마로 보일 수도 있다

 

당시 독일의 현직 대학교수로서 베버는 평생 직업으로서의 학문이 갖는 악마성에 대해 고민했다요행이 지배하는 대학교수의 임용유대인은 아무리 유능해도 받아들여주지 않는 인종주의적 편견완고하고 오만하며 걸핏하면 강의실을 국수주의 선전의 연단으로 바꿔버리는 보수적인 교수들에 대한 고뇌가 솔직한 태도로 학문의 외적 조건을 털어놓는 이 강연의 편편에 스며 있다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베버 자신의 학자적 생애에 대한 고해서(告解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버는 주의하라악마는 늙었다때문에 악마를 이해하려면 너도 늙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로 학문의 가치를 옹호한다학문이 갖는 지적 통찰의 가치가 다른 가치들과 상충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학문의 한계를 확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베버는 근대 학문의 사명과 자신감을 회복한다근대는 진리와 선아름다움이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어두운 시대며 서로 다른 가치들을 중재할 보편규범이 공동화된 텅 빈 시대다이러한 시대에 엄격한 가치중립성을 지키면서 지적인 공정성과 지적인 정의의 의무를 다하는 근대 학문의 길그것은 악마의 작업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고결한 악마들의 작업일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