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 해설 / 정약용 '목민심서'
by 송화은율정약용 '목민심서'
〈이찬규 중앙대 국문과 교수〉
성인(聖人)이 난지 오래고,그 말도 없어져 그 도가 어두워짐에 지금의 사목(司牧)하는 이들은 오직 이익 추구에만 급하고,어떻게 목민(牧民)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그래서 백성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들어 구렁텅이에 줄을 이어 그득히 넘어졌는데도 목민관들은 아름다운 옷에,기름진 옷에 혼자 살이 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목민심서' 서문 중에서>
다산이 목민심서(牧民心書,1818년)를 지은 지 1백80년이 흘렀다.우리나라는 당시 농업국가에서 이젠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했다.그러나 1백80년 전 한 지식인이 나라를 걱정해 써 놓은 이 책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군주의 주권으로부터 국민의 주권이 되었고,조직은 분화되고 제도는 민주화됐다고 하는데,다산이 그렇게 염려하고 걱정하던 관리들의 자세는 이 책의 염려로부터 단 몇 걸음이나 벗어났는지 의문이다.그러니 다시 이 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다산은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관리나 수령의 청빈을 강조하고 있다.`율기육조(律己六條)'에서 `청렴이란 관리의 본무요,갖가지 선행의 원천이요,모든 덕행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자신이 쓰는 돈이 백성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란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부임육조(赴任六條)'에서도 `수행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청렴한 선비의 행장은 겨우 이부자리에 속옷 그리고 고작해야 책 한 수레쯤 싣고 가면 될 것'이라고 하여 역시 청빈,검소함을 목민관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삼고 있다.부를 탐하는 수장은 그 아랫사람들까지 물들여 하나같이 축재만을 일삼게 되며,이는 곧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도적떼와 같은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오늘날 월급만 받고 산 공무원이나 법관들의 재산이 수십억원이라면 누가 그의 청렴함을 믿을 것이며,어찌 그들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목민관의 몸가짐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이전육조(吏典六條)'에선 `아랫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바르게 행동하면 명령 없이도 잘 되고,자신이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잘 듣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이는 자신이 바로 서야 기강이 서고 원칙이 중시되는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오늘날에도 단체의 수장이라면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할 말이라고 본다.
권력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목민관의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그 범위와 방법을 소상히 제시해 놓았다.공금으로 선심을 쓰거나,권문세도가를 지나치게 후히 대접해서는 안되며,가족이나 형제와의 관계는 항상 사적이어야 하고,심지어 친구와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까지도 실례를 들어 설명하였다.`봉공육조(奉公六條)'에서는 상사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민생들에게 해독을 끼칠 때는 의연한 태도로 맞서야 한다고 하였다.지난날 그토록 상하관계가 중시되던 사회에서도 임금에게 끝까지 상소하다가 혹자는 유배당하고,혹자는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오늘날 자기 상사의 불의를 보고 맞서는 관리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퇴보하는 역사도 있는가 보다.
다산은 실학사상을 받아들였으되,성리학의 도를 폐기했다기보다 오히려 그 바탕에서 실천적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그리하여 관리는 먼저 법도를 지키고,그와 아울러 제도개혁과 이용후생을 꾀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사람을 씀에 있어서도 `아첨을 잘 하는 자는 충성되지 않고,바른 말을 잘 하는 자는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충신을 으뜸으로 삼고,재주는 그 다음으로 보아 강직하고 진실됨을 인사(人事)의 기준으로 삼았다.오늘날 재주만 있고 국가관이 없는 많은 관리들이 탐재에만 힘쓰다 나라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보면 인사에는 꼭 참고해 볼 만하다.
당시가 성리학에 바탕을 둔 봉건사회였음을 감안할 때,목민심서에서 제시한 백성을 위한 각종 제도와 실질적인 조처들은 상당히 진보적인 것들이었는 바,이것을 조정에서 과감히 수용해 반영하였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일제에 침탈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만큼 그가 제시한 제도나 실천요강들은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며,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개혁조처를 담고 있다.
각종 정책에서도 유교의 법리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실천적인 도를 강조하였으며,백성이 곤란을 당하게 되면 이를 제도적으로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도와준다는 것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라고 하여 일시적 구호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매년 같은 재해가 반복되는 우리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이 지속적인 관심은 제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군대와 병무에 관한 병폐를 일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군대 조직과 외침에 대한 전략,소송과 판결,집행,제례나 교육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밝혀놓아 이대로만 하면 누구라도 목민관직을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을 정도다.특이한 것은 죄수들의 인권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데,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감히 생각해볼 수 없는 부분으로 다산의 휴머니즘적 인간관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목민심서'의 마지막 부분은 `해관육조(解官六條)'다.이는 목민관이 관직을 벗게 될 때의 자세와 백성들의 반응을 기록한 부분이다.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벼슬이란 반드시 바뀌는 법이다.바뀌더라도 놀라지 않고,잃더라도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그를 존경할 것이다.떠나는 길에 백성들이 석별의 정을 말씨에 나타낸다면 역시 이 세상의 지극한 영광일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하는 관리의 자세에 대한 그의 태도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