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부 / 해설 / 소동파
by 송화은율소동파 '적벽부'
〈유중하 연세대 중문과교수〉
소식(蘇軾․1037~1101)은 북송의 문인으로 지금은 쓰촨성(四川省)에 속하는 미주(眉州) 미산(眉山)출생이다.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황주(黃州)에 유배되었을 때 그 인근의 동파라는 곳에 설당(雪堂)을 짓고는 동파거사로 호를 지었다.아버지 소순(蘇洵),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일컬어지며,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이들 삼부자가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로 문장에 뛰어난 집안 출신이다.아울러 서예와 회화에도 탁월한 성취를 이뤄 가위 전통 문인의 완전한 상을 구현한 인물로 일컬어진다.1069년 처음으로 벼슬에 들었으나 당시 신종(神宗)은 왕안석(王安石)이 주동이 된 변법(變法)을 채택했는데,소식은 거기에 반대하여 구법(舊法)을 주장했다.중국 각지를 떠돌면서 유배생활을 하거나 지방관리를 지내면서 도처에 그의 족적을 남긴 바 있는데,특히 항주(杭州)에서 재직하던 시절 그곳 절경의 하나인 서호(西湖)에 쌓은 제방을 소동파의 이름을 따 소파(蘇坡)라 이름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에 속한다.
동아시아의 문인들이 가장 즐겨 다룬 소재는 무엇이었던가.통계를 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마 술과 달일 것이다.서양문학의 두 뿌리를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 잡았을 때 아폴론이 바로 태양을 의미하는 것과 날카로운 대비를 이룬다고 보면 그리 틀린 진단은 아니겠다.해와 달의 대조는 서양과 동양을 가르는 문명적 상징에 다름아닌 것이다.지금부터 약9백여년 전인 1082년의 어느 하루,동아시아라는 달나라의 한 문인이 읊은 달밤의 정취가 세월의 단절을 넘어 아직도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물론 그것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라는 천하의 명문을 통해서다.
오뉴월 더위가 물러나고 추(秋) 칠월도 보름을 넘긴 이튿날,기망(旣望)이다.황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동파는 그 달을 즐기는 일을 잊을 리 없었다.마침 부근 강가에 적토(赤土)와 암벽이 수려한 곳이 있어 뱃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술을 마련하고 손을 불러 강에 배를 띄웠다.청풍이 소슬하게 불고 달은 휘영청 밝았겠다.술잔을 들어 권커니 잣거니 몇 순배가 돌자 주흥이 도도해지면서 절로 노랫가락이 좌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어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마침 좌중에 피리를 잘 부는 손이 있어 피리소리가 흥을 돋우면서 은은히 울려퍼지는데 소동파가 듣자하니 곡조가 흥에 겨운 것만은 아니었다.원한을 품은 듯 그리움을 펴듯,우는 듯 호소하는 듯 하면서 외로운 뱃전에 울려퍼지는 것이었다.술자리를 마련한 동파는 옷깃을 여미고는 피리 부는 손에게 그 까닭을 물을 수밖에.그러자 피리를 불던 손이 답하기를 『`달빛이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月明星稀 嗚鵲南飛)는 구절은 조조(曹操)의 시구가 아니옵니까 손은 바야흐로 예전의 `적벽대전'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옛적 오나라 손권(孫權)의 장수인 주유(周瑜)가 위나라의 조조를 쳐부수던 적벽의 옛일을 회고한 것도 지당한 일이라.강가 저 건너편으로 그 적벽과 흡사한 광경이 펼쳐져 있거늘.싸움에 임하여 강에 당도한 바,절경을 앞에 놓고 창을 내려놓은 다음 시를 지어 경관을 읊은 것이 어찌 영웅다운 행동이 아닐손가.하지만 지금 그들 두 영웅은 간 곳이 없고,강건너 적벽만이 남아 그들을 떠올리게 할 따름이니 어찌 인생무상이 아닌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피리 불던 손은 인생이란 본시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장강의 무궁함이 부럽기만 했던 것이다.하지만 소동파가 누군가.송대 문인의 정점에 소동파가 자리하고 있다 함은 그가 단순히 글재주를 농간하던 인물이 아니라 그의 세계를 보는 눈높이야말로 가위 천고의 일품이기 때문이 아닌가.
동파는 넌지시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한 구절을 끌어들여 공자의 가르침을 떠올린다.『흐르는 물이 저와 같아서 주야를 가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含晝夜).그리고는 흐르는 장강 물을 바라보며 손에게 이렇게 한 수 가르친다.물은 줄었다 늘었다 하는 모양새가 변화하기를 무상키도 하건만 불변하는 만물의 본체(本體) 입장에서 보자면 물(物)과 아(我),곧 객관 사물과 주체가 무한한 생명에 뿌리박고 있지 않은가.그리 본다면 장강의 무궁함이 무엇이 부러울 게 있는가.하늘과 땅 사이에 터잡고 있는 일체가 제각기 주인이 있어 실로 나 개인의 소유일 수 없나니.터럭 한 자락도 취할 것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강 위를 부는 맑은 바람과 산중의 밝은 달이 있어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눈으로 마주치면 빛을 발하는 법이라.아무리 취해도 막을 자 없으며,아무리 쓴다 해도 다함이 없거늘.이를 두고 조물주의 무진장한 창고라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물과 아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청풍과 명월이 바로 내것이 아니면서도 온전히 내것일 수 있는 까닭은 내가 바로 청풍이고 명월인 탓이 아닌가.사심을 떠난 경지에 이르면서 지공무사(至公無私)의 경지에 이르면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주객의 이분법 장벽을 훌쩍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소동파가 손에게 들려준 대답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묘리란 자명하다.탐욕을 버리고 개아(個我)를 넘어서는 것이 그것이다.나아가 `무소유'를 통한 `충만'함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서구의 근대적 합리주의란 실은 이른바 타자를 제 이익에 맞게 취하고 재단하여 억지로 동일하게 만드는 탐욕에 기인한 것임은 이미 탈현대의 여러 사조들이 누누이 지적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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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한가위다.이런 멋진 달밤을 맞아 독자들이여.소동파의 `적벽부'를 한번 읊조리는 것도 멋지지 않겠는가.한가위 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가족과 단란(團欒)의 정을 나누는 것도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네 고유의 정분을 나누는 방식이 아닐까마는,이번 보름달에는 새로운 염원을 달에 빌어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다.그런 점에서 북송 때 소동파라는 한 문인이 내세운 바 있는 `쓰임새를 절검함으로써 취함에 분수를 기하라'(節用以廉取)는 견해나 `널리 이익만을 탐하는 무리'(廣求利之門)를 흰눈으로 흘겨보는 소동파의 눈길이 케케묵은 낡은 소리일 수만은 없음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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