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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차별과 지역 감정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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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차별과 지역 감정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출신 지역에 애착을 갖는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런 경향일 것이다. 그 곳을 오래 접하는 동안 잘 알게 되고 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죽마고우나 학교 동창이 흉허물없이 친근한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꼭 친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동향의 사람들은 말씨도 같고, 생활 환경이나 음식 등 경험의 공유가 많고, 연줄이 이리저리 얽혀 있기 때문에 더 친근감을 갖게 된다. 반대로 타지역 사람들은 다른 말씨, 공유 경험의 부족, 무연고 등으로 해서 웬지 서먹서먹하고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출신 지역에 애착을 갖는 이런 자연스런 성향을 향토애나 애향심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긍정적인 감정이나 가치관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향토애를 포괄하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지역 감정이라는 말은 자신의 출신지에 대한 좋은 감정이나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보다는 자기 출신지 이외의 지역이나 사람을 배척하고 차별하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타지역이나 그 출신을 배척하고 차별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이런 지역 감정이 팽배한 우리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지역 차별이 단순히 친근한 것에 대한 애착심과 소원한 것에 대한 거리감이라는 감정이나 심리의 차원에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물질적인 이해 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지역 차별이 처음에는 그런 감정적, 심리적 차원에서 생겼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물질적인 차원으로 연결된다. 아니 그보다는 물질적인 이해 관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감정적인 것이 동원된다는 것이 더 바른 선후 관계일 것이다. 지역 차별은 차별하는 쪽이 차별 받는 쪽에 대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고 기왕에 얻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 이득에 대한 독점이나 과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차별 받는 쪽에 문제가 있는 듯이 말한다. 이런 피해자 나무라기가 차별하는 쪽이 동원하는 사악한 지역 감정인 것이다.

 

이해 관계 특히 기득권이 지역 차별과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역 차별이나 지역 감정이 기득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면 지역 차별이나 지역 감정이 손쉽게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득권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당연시하고 쉽사리 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지역 차별이나 지역 감정을 더욱더 강화하고 따라서 그것들이 손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게 된다. 더구나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만일 잃게 되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더욱더 공격적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지역 차별은 이해 관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흔히 자원 분배와 관련된 정치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정치적 지역 차별은 특히 호남 지역에 대한 것이다. 호남 지역에 대한 정치적 차별이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런 주장은 현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근거도 없고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호남에 대한 정치적 차별이 부각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정권적인 차원에서 호남에 대한 차별을 노골적으로 조장한 것은 박정희 정권때부터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더구나 삼선이다 유신이다 하여 민의에 반하는 독재정권을 강화하고 연장했다. 그럴수록 안정적인 권력기반과 무조건 충성하는 자들을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출신 지역인 대구, 경북, 그리고 좀더 나아가 영남 지역을 권력기반으로 삼아 지역 개발을 그 곳에 편중시키고 그 곳의 출신들을 주로 등용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이효상 등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타지역 출신들 특히 그의 최대의 정적이었던 김대중 씨의 출신 지역인 호남인들을 배척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역시 영남 정권인 5공과 6공에서는 더욱더 심화되었다. 특히 신군부가 집권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고의로 유발한 혐의가 짙은 광주 항쟁은 호남 출신을 불온시하는 경향마저 낳았다. 게다가 3당 야합은 영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호남을 배제하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김영삼 정권에서 호남출신이 소외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박정권 이래 계속적인 영남출신들의 집권과 그들의 지역차별적 정책으로 타지역과 그 출신들은 점점 더 소외되었다. 한 지역 출신들이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요직을 독차지한 결과 타지역 사람들은 밑에서부터 배제되는 경향마저 나타났다. 그래서 그들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타지역 인물을 내세우려 할 경우에 마땅한 사람이 없어 애를 먹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반대로 타지역 출신 가운데에는 이른바 '인물'이 없어서 등용하고 싶어도 등용할 수 없다는 차별합리화의 구실이 된다.

 

이런 지역 차별이 오래 지속되면서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낳았다. 이제는 차별을 하는 쪽이나 차별을 받는 쪽이나 모두 지역 감정을 갖게 되었다. 차별을 하는 쪽은 차별의 합리화를 위해서 공격적 지역 감정을 그리고 차별을 받는 쪽은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방어적 지역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 감정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차별하는 쪽의 공격적 지역 감정이 더 나쁘다. 왜냐하면, 그것은 차별 받는 쪽의 방어적 지역 감정을 유발한 원인일 뿐만 아니라 방어적 지역 감정보다 더 음모적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의 지역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이제는 영남 지역과 호남 지역만이 아니라 충청 지역에서도 강한 지역 감정이 대두되었다. 정치가는 적극적으로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이용하여 권역을 얻고, 언론은 은근히 그것을 부추기고 그것에 편승하여 이익을 얻는다. 지역 감정의 폐해를 잘 알고 그것을 해소해야 할 지식인조차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유롭기는커녕 집권 세력 즉 차별을 하는 쪽에 유리한 논리로 지역 감정을 합리화하거나 부추기는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지역 감정은 이제 우리의 대인 관계에서, 혼인 관계에서, 고용 관계에서, 승진 관계에서,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거의 모든 일상에서 우리를 지배한다. 출신지가 우리들의 사교나 혼인이나 출세 등의 범위와 정도를 한정하게 되었다. 출신지가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지역감정은 우리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와 판단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작용한다.

 

오늘날 지역 차별과 지역 감정은 서로를 강화하고 있다. 지역 차별은 강한 지역 감정을 낳고, 역으로 지역 감정은 지역 차별을 더욱 조장한다. 흔히 망국적이라고 표현되는 이러한 지역 차별을 하루 빨리 해소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역 차별의 결과로 발생했으면서도 거꾸로 지역 차별을 강화하는 지역 감정도 해소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악화하기만 하는 고질병들이 단순한 당위론적 설교나 도덕적 운동으로 손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 차별이나 지역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역 감정이라는 관념은 이해 관계에 기초한 지역 차별이라는 현실적인 물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물적 토대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그에 기초한 관념도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역 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지역 감정을 해소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역 감정의 해소를 위해서는 먼저 집권 세력이 지역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취해야 한다. 지역 차별이나 지역 감정은 말로써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정책으로써만이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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