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주막(酒幕)에서- 김용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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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酒幕)에서-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酒幕) 

 

수없이 많은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엄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 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후략>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인생을 나그네 길로 보고, 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야만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 작품. 길가는 나그네가 거쳐가는 주막의 정서와 막걸리의 소박한 맛이 어우러져 순박한 서민들의 삶의 애환(哀歡)을 잔잔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석양 무렵 주막에서 이 빠진 사발로 마시는 막걸리의 맛과 취흥이 인생을 관조하게 하고, 그를 통해 주막을 거쳐간 서민들의 삶이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의 주인들의 호화롭고 영광스런 삶이나 결국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허무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노을 비낀 가없는 길인생의 끝없는 삶은 그러나 계속될 뿐이라는 다소 숙명적인 체념도 느껴진다.

성격 : 관조적, 서정적, 감각적

어조 : 영탄적 어조, 차분한 어조

특징 : 삶에 대한 시인의 성찰과 관조적인 자세가 보임.

표현 : 관용적 표현(맵고도 쓴 시간,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 등)과 참신한 표현(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이 조화를 이룸.

구성 : 주막에서 마시는 막걸리의 맛(1-3)

삶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허무한 것임(4)삶에 대한 관조

삶의 고달픈 길을 회고함(5-7)삶의 애환

제재 : 주막, 인생(人生)

주제 : 삶의 애환(哀歡) 또는 인생살이에 대한 관조

 

 

<연구 문제>

1. 화자의 현실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시구를 2개 찾아 쓰라.

<모범답> 이 빠진 낡은 사발, 노을 비낀 길

 

2. 삶의 고달픔을 감각적으로 드러낸 시구를 있는 대로 찾아 쓰라.

<모범답> 맵고도 쓴 시간,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

 

3. 이 시에서 대조적 이미지로 쓰인 시어를 찾아 각각의 의미를 간단히 쓰라.

<모범답> (1) 막걸리 : 서민들의 삶의 모습

(2) 송덕비 : 서민들과 대조되는 삶의 모습.(허황된 영예의 삶)

 

4. , 의 상징 의미를 각각 두 어절로 쓰라.

<모범답> 인생의 길, 인생의 황혼(여생)

 

 

< 감상의 길잡이 1 >

김용호는 초기에 일제하의 암울한 사회상을 짙은 감상의 언어로 노래하였고, 6·25 전후에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에 대한 언민의 정을 노래하였다. 후기에는 현실적, 사회적 경향이 짙은 시를 발표하였다.

 

이 시는 그의 시 경향상 중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주막, 막걸리 등의 소재를 통해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구성상 7연으로 되어 있으나, 시상의 흐름으로 보아 3단락으로 나누어 감상해 보자.

 

1-3연은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이 어울리는 주막에서, 낡은 사발로 막걸리를 마시며 상념에 젖는다. ‘정처럼 옮아 오는 / 막걸리 맛에서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삶을 그윽히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지닌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4연은 막걸리의 맛을 음미하듯 서민들의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본다. 수많은 서민들이 스쳐갔을 주막과 거기에 묻혀 있을 서민들의 애환, 그리고 저만치 떨어져 그들을 굽어보고 있는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가 대조되어 나타난다. 주막 위로도 그리고 송덕비 위로도 인생의 신고(辛苦)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고, 그들의 자취는 결국 지금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절대적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낮은 서민도, 송덕비의 주인도, 삶도 죽음도 허망한 것일 뿐이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 덧없기만 한 인생을 깨닫는다.

 

5-7연에서는 주막을 나선다. 주막을 나서는 것은 현실로의 회귀이다. 막걸리에 스며 있던 정감도 취흥도 사라지고 나자 그가 당면하는 것은 바로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이다. 현실은 이처럼 각박하고 고단하기만 하다. 그러나 노을 비낀 길을 우리는 가야만 한다. 인생은 끝없는 나그네길이라는, 그리고 이 길은 또 누군가가 내 뒤를 이어 걸을 것임을 안다. 마치 내 입술이 닿았던 사발에 그 누군가가 또 입술을 대듯이말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김용호는 1936년경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노자영(盧子泳)이 주재한 󰡔신인문학󰡕에 시 <첫여름 밤 귀를 기울이다>를 발표한데 이어, 민족의 비분을 읊은 장시 <낙동강>(1938)을 발표한 후, 󰡔󰡕 동인이 된다. 현실 인식이 남달리 강했던 그는, 일제말 붓을 꺾고 침묵을 지키다가 제2시집 󰡔해마다 피는 꽃󰡕(1948)에서 민족의 암담한 시절의 비분을 노래한다. 그 후 시집 󰡔푸른 별󰡕에서는 소시민의 인정과 애환을 다루는 서정적인 경향으로 기울었으나, 후기의 시집 󰡔의상세례󰡕에서는 다시 역사적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인생을 나그네길에 비유하여, 나그네가 거쳐가는 주막의 소박한 분위기와 막걸리의 털털한 맛이 어우러져 순박한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잔잔히 느끼게 해 주는 감상적인 서정시이다.

 

1연은 도입부로 길옆주막을 각각 한 행으로 처리하여 어디든 멀찌감치 통하는주막의 위치를 소개하고 있다. 2연은 서민적인 주막의 정취를 읊은 부분으로, ‘수없이 입술이 닿은 / 이 빠진 낡은 사발에화자인 도 입술을 대고 있다. 3연에서는 화자가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을 느낀다고 함으로써 그가 낡은 사발을 사용했던 서민들의 삶에 대해 애정을 느끼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4연에서는 서민들의 인정과 나그네의 고독, 그리고 민중들의 애환을 간직한 곳이 주막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송덕비의 하찮음에 대한 비웃음까지 드러내고 있다. 5연은 세월이여!’라는 탄식을 통해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허망함뿐 아니라, 삶에 지친 화자가 주막을 나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6연은 나그네 같은 인생길의 끝없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7연에서는 내일 이런 무렵에자신이 마시던 그 사발에 누군가 입술을 대고 술을 마실 것인가를 반문하는 표현을 통해 서민들의 소박한 인정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3 >

인생을 하나의 나그네 길로 보고, 그 고단하면서도 덧없는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가야만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 작품이다.

 

인생을 가리켜 `덧없는 나그네 길'이라 하는 것은 그럴싸하면서도, 너무나 흔히 써서 통속화된 말이다. 이 작품 역시 주제면에서는 그런 통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이 작품을 시로 살려주는 요소는 바로 `이 빠진 낡은 사발'이라는 사물이다. 주막집을 들르는 사람마다 막걸리 한두 잔쯤을 담아 마신 사발. 내 앞에 간 수많은 이들이 고단한 여로에 잠시 목을 축였고 내 뒤에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입술을 댈 사발, 바로 이것이 인생의 보편적 모습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하는 중심적 형상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인생관은 다분히 소극적이고 체념적이다. `위엄 있는 송덕비'의 영광도 `맵고도 쓴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허망한 것이고, 삶이란 `가없이 길고 가늘'게 펼쳐져 있는 고단한 길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시인은 누군가의 입술이 닿았던 사발을 보면 인생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느낀다. [해설: 김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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