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집 / 전문 / 이광수
by 송화은율제비집
내 집을 지은지 사년만에 제비가 들어와서 집을 지었다.
나는 이 집을 지은 후로 몇 달을 살다가는 떠나고 또 며칠을 묵다가는 떠
나서 지난 사년 동안에 들어서 산 것은 모두 일년 턱이 못된다. 아마 그래
서 제비도 집을 안 짓는 모양이었다.
재작년 여름에 소위 소개통에 아이들이 이른 여름부터 이 집에 나와 있었
다. 그때 어느 날 제비 두 마리가 집에 들어와서 처마 밑으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열 일곱살 먹은 아들이 보꾹에 못 두 개를 박고 지푸라기로 얽어
서 제비가 집을 짓기에 편하도록 해주고는 날마다 제비가 들어오기를 기다
렸으나 이내 집을 안 짓고 말았었다.
금년에는 천만염외에 ── 그야말로 천만염외다 ── 하루는 제비들이 들
어와서 집자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 삼사일을 두고 그들은
집에 들어와서는 여러 번 여러 번 처마 밑을 두루 살폈다. 아들이 만들어
놓은 집터를 처음에는 아마 위태하고 의심스러운 물건으로 보는 모양이었으
나 차차 의심도 풀려서 거기 올라가 앉아 보는 일도 있었다.
마침내 그 터에 집을 짓기로 정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사흘째 되는 날부터
는 우리 집 차양 밑 철사에 내외가 가지런히 앉아서 자고 있었다.
이튿날 그들은 흙을 물어 들여서 집터 위에 기초 공사를 개시하였다.
『자, 인제야말로 집을 짓는다.』
하고 나는 자신 있는 듯이 자랑을 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은근히 걱정
이 되었다. 조것들이 집을 짓다가 중도이폐를 하고 가버리면 어찌할꼬 함이
었다. 제비들이 보기에 내가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의탁할 만할까. 나 자신
의 복력에 자신이 없는 나는 제비들의 신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만 같았
다.
나는 제비들의 편리를 위하여 마당에 줄을 매어 주었다 그들을 만류하는
호의를 보이자는 것이다. 과연 그 줄에 올라 앉아서 좋아라고 지저귀었다.
나는 기쁨을 누를 수가 없었다.
「不知吾屋是明堂(부지오옥시명당)」
「海燕雙雙飛入樑(해연쌍쌍비입량)」
이러한 소리를 썼다.
하루 울안 부지런히 집짓기에 바쁜던 제비들은 웬일인지 이튿날은 역사를
중지하였다. 내 실망은 컸다. 역시 그들은 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다. 내
집에는 그들이 의탁할 만한 복력이 없는 것이다.
그 이튿날도 그들은 역사를 계속하지 아니하였다. 이웃의 W씨는,
『괜히 믿지 마셔요. 제비 집은 틀렸소이다.』
하고 빈정거렸다.
이튿날도 제비는 일할 생각은 아니하고 내가 매어 준 줄에 앉아서 재재거
리기만 하였다.
대관절 무슨 변괴가 난 것일까. 줄에 가만히 앉았는 것을 살펴보면 수놈은
연해 암놈을 싸고 돌고 지껄이는데 암놈은 몹시 새침하고 있었다. 시무룩하
다는 것이 더욱 적당할 것 같았다.
<내외간에 불화인가.>
나는 이런 걱정을 하였다. 내 이 걱정에는 이유가 없지 아니하였다. 그것
은 하오에 한 두 차례씩 난데 없는 제비가 한 마리 날아 들어와서는 우리
집 수놈과 한 바탕 승강이를 하고 가는 일이다. 우리 수놈은 이 침입자를
멀리로 내어 쫓고 돌아와서 아직도 줄에 새침하고 앉았는 암놈의 곁으로 가
까이 가나 암놈은 야멸치게도 패끗패끗 몸을 비켜서 수놈의 호의를 귀찮은
듯이 물리쳤다. 그러면 수놈은 하릴없이 줄에 올라앉아서 목을 놓아 한바탕
울었다. 마치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옳지, 이놈이 남의 계집을 빼앗아 왔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 계집이 다른
수놈의 놀림을 받고 있다?>
나는 이런 궁리를 하게 되었다. 두 가지가 다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이 날 U대사가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우리 집 제비가 하루 역사를 하고는
사흘째나 쉬고 있다는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나 자신의 덕과
목을 의심하여서 걱정이 된다는 말까지는 아니하였다.
U대사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제비 중에도 그런 놈이 있어. 제 집을 두고도 동넷집에 댕기면서 여기도
집을 좀 지어 보고 저기도 집을 좀 짓다가는 내버리고, 그런 버릇 가진 놈
이 있습니다. 아마 그런 놈인가 보오.』
하고 줄에 앉아 지저귀는 우리 제비를 바라본다.
『하, 하.』
하고 나는 U대사의 말을 재미있게 생각하였다. 그러면 우리 제비가 과연 그
런 놈인가. 그렇다 하면 그는 나를 모욕하는 괘씸한 놈이다. 그러나 역사를
쉬면서도 제비내외는 우리 집에서 사는 것을 보면 다른 데 집을 두고 우리
집을 장난 터로 아는 제비는 아닌 성싶었다. 혹시 수놈이 딴 계집을 데리고
나온 것일까. 그래서 날마다 찾아와서 한 바탕씩 야단을 치고 가는 제비는
그 본서방일까, 또 본여편네일까. 그 어느 편이라 하여도 괘씸한 일이어서
집에 붙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우리 제비들은 역사를 계속하였다.
『야아, 우리 제비가 역사를 한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나는 동네방네 다 듣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인제 망신살을 벗었다.
제비가 집을 짓다가 고만두고 갔대서야 낯을 들 수가 있는가. 나는 제비들
에게 절을 하고 싶도록 고마왔다, 기뻤다.
제비들은 참말 열심으로 흙을 물어 들였다. 조것들이 지치지나 아니할까
하리만큼 부지런히 흙을 물어다가는 대가리를 마치 삼아 흔들면서 만년가도
무너지지 말라고 힘있게 꼭꼭 박는다.
집은 당일로 한 치 이상이나 올라갔다. 검불이 너슬너슬 달린 것을 제비는
입으로 물어서 나꾸채었다.
『허, 허, 금년에도 큰물 나겠는 걸.』
하고 T노인이 걱정하였다. 제비집에 티검불이 너슬너슬 달리면 큰물이 나고
맹숭맹숭하면 크게 가문다고 한다.
『금년에는 암만해도 큰물이 올 듯해. 꿩이 산꼭대기에 알을 낳았단 말
야.』
하고 Y노인이 또 한숨을 쉬었다.
내게는 큰물보다도 또 걱정이 생겼다. 이튿날 또 제비가 역사를 쉬었다.
그러고는 마치 무슨 일 난 집 식구들 모양으로 제비들은 후줄근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줄에 앉아서 웅숭그리고 있었다. 대체 또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
고.
또 이삼일을 지나서 다시 제비들은 역사를 시작하여서 이날은 더욱 부지런
하게 서두르는 모양이더니 당일로 집이 낙성이 되고 말았다.
『정말 다 지어 놓았구려.』
하고 괜히 믿지도 말라고 빈정대던 W씨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또 이삼일을 쉬었으나 인제는 나도 제비들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태연하였
다. 그들이 역사를 쉰 것은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니요 게으름을 핀 것도 아
니요 흙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나는 그것을 모르고 마음
을 졸인 것이었다.
집이 보송보송하게 마르기를 기다려서 그들은 보드라운 털을 물어 들이기
시작하였다. 이제야말로 알을 낳아 놓을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놈은 연해 암놈을 건드렸다. 암놈은 집이 다 되기까지는 몸을 허하지 아
니하였으나 인제는 보금자리도 다 되었으니 마음 놓고 남편의 요구에 응하
는 것이었다. 내가 암놈을 새침하다고 보고 야멸치다고 보고 남편에게 이심
을 품었다고 본 것은 전연히 내 무식에서 나온 오해였다. 안놈이 새침한 것
은 남편의 철없음을 타이르는 것이었었다.
『아이, 알 자리도 되기 전에!』
하고 뿌리치는 것이었었다.
그들은 인제는 새로 깐 새끼들에게 벌레를 물어다가 먹이기에 바쁘다. 제
비새끼 모양은 아직 아니 보이나 그 집 밑에 가까이 가면 짹, 짹하는 가련
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 털도 안 나고 노란 주둥이만 커다란 보기 흉한 괴
물일 것이다. 그렇지마는 개 어미 아비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여운 아들과
딸들이다. 제 자식 못난 줄을 아는 총명은 사람도 가진 이가 없다.
그들은 내외가 같이 잠자리를 찾고, 같이 역사를 하여서 집을 짓고 알을
낳는 것은 암놈이지마는, 안기도 내외가 번갈아 하고 새끼가 까면 벌레를
잡아다가 먹이는 것도 둘이 다 하고 있다. 암놈이 알을 안고 앉았을 적에
수놈은 줄에 앉아서 망을 보며 소리를 하지마는 그러는 동안에도 연해 집
있는 쪽을 돌아보고 가끔 집에 날아가서는 암놈이 무사히 있는 것을 보고야
또 줄에 나와 앉는다. 옆에서 보기가 애처로와서 차마 못할 만큼 애를 쓰고
있다. 우리 조상네가 제비에게 집자리를 빌려 주고 그들에게 무한 애정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인가 한다.
새끼를 둔 제비가 가장 무서워할 것이 뱀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고양
이도 그의 원수다. 뱀으로 보면 갓 깐 제비 새끼는 참새 새끼와 아울러 가
장 탐나는 밥일 것이지마는 고양이도 어지간히 이런 것을 좋아하는 식성이
다.
동넷집 어떤 할머니가 와서 고양이가 제비를 잡아 먹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
밤에 방문을 열 때에 불빛에 놀라서 처마 밑에서 자던 어미 제비가 떨어진
것을 마침 옆에 있던 고양이가 덥석 집어 먹었다. 그 이튿날부터는 아비 제
비 혼자서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들을 먹이고 있었다. 둘이서 물어 와도 넉
넉치 못한 것을 혼자서 대자니 저도 힘들고 새끼도 배고플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삼사일 후에 아비 제비는 어디서 후처를 얻어 왔다. 후처도 남편과
함께 전실 자식을 먹이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새끼 한 마리가 집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튿날 또 한마리가 떨어지고 그 이튿날 또 한마리가 떨어
졌다. 주인은 이상히 여겨서 떨어져 죽은 새끼의 배를 갈라 보았더니 가시
돋고 단단한 엉겅퀴 열매가 하나씩 뱃속에 들어 있었다. 제비 계모가 전실
자식을 죽이는 약이 아마 이것인가 보다고 그 할머니는 웃지도 않고 말하였
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날마다 찾아와서 헤살을 놓는 그 제비가 연인지 놈인지
미상하나 필시 무슨 악의를 품은 놈인 것 같아서 염려가 되었다. 어미 아비
가 다 나가고 없는 틈에 들어와서 새끼를 어떻게 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여
나는 가끔 제비 집을 바라본다. 아직도 대가리를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새끼들은 무척 어린 모양인데, 이것들이 어버인지 남인지도 몰라 보고 철없
이 원수가 주는 독약이나 받아 먹지 아니할까. 아마 이러한 걱정은 나보다
도 제 어미 아비가 더할 것이다. 대체 그놈은 제집도 배우도 없는 놈이란
말인가. 벌써 남들은 새끼를 다 깠는 데도 혼자 돌아다니며 헤살군 노릇만
하고 있으니 그놈의 소갈머리는 어찌 된 것인가.
제비들 속에는 언제부터 어찌하여서 악이 생겼는고. 고렇게도 얌전하고 적
은 몸을 가지고도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는 것이 사람과도 같아라.
그러나 누가 무에라 하더라도 우리 제비는 선량한 제비다. 그들은 정식 부
부요, 또 자녀를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다. 나는 그들은 몇대조 조상 적부
터 선량한 혈통을 가지고 오는 제비라고 믿는다. 도적 제비도 아니요, 남의
집에 헤살을 놓으러 다니는 난봉 제비도 아니요, 수놈은 군자요 암놈은 숙
녀인 제비라고 믿는다. 나는 이 제비의 자손이 더욱더욱 번창하고 더욱더욱
착하게 되어서 적게는 제비 종족을 건지는, 크게는 일체 중생을 건지는 가
문이 되기를 바란다.
(丁亥六月十七日[정해육월십칠일] 思陵[사릉]에서)
출처 :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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