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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토 / 전문 / 이광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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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 土 [인 토]

 

나는 파리와 모기가 싫다. 소가 제일 싫어하는 것도 이것인 모양이다.

의 꼬리는 전혀 모기와 파리를 날리기 위하여서 있는 모양이다. 닭도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잔다. 아마 날짐승 길짐승을 여름에 제일 못 견디게 구는

것이 파리와 모기인가 보다.

소위 물것이란 것으로는 모기 파리 밖에도 이, 벼룩, 빈대가 있다. 모기와

파리는 소나 말이나 다 귀찮아 하는 것이지마는 이와 빈대는 사람을 전문으

로 먹는 놈이다. 이에는 닭의 이라는 놈도 있다. 벼룩은 사람과 개에 공통

이요 진드기와 개파리는 개만을 전문으로 파 먹고 등에는 소를 먹거니와 사

람도 먹는다.

제비도 참새도 이를 잡는다. 깐지 열흘도 못 되는 제비 새끼도 이를 잡고

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같이 물것이라는 것을 태고 적부터 물려가지고

오거니와 이것은 마음의 죄에 상당한 것인가 보다.

새로운 지식으로 보면 회충, 촌백충, 십이지장충, 무좀, 어루러기, 모발충

같은 벌레지는 물론이어니와 매독, 임질, 결핵, 이질 등 모든 미균도 우리

몸에 붙어서 사는 생물들이다. 홍역, 마마, 감기 같은 것은 아직 어떻게 생

긴 물건으로 되는 것인지 모른다 하거니와 우리 몸이 가려운 것, 아픈 것,

앓는 것, 죽는 것이 결국 대부분은 이 미생물의 장난이니 우리 조상님네가

귀신이라고 하던 것이 결국 이것이다. 우리 눈에 아니 보이니 귀신이요,

아낼 수 없으니 귀신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깍두기가 익게 하는

것도 귀신이요 술이 고이게 하는 것도 귀신이다. 이러한 귀신의 이름을 발

효균이라고 한다. 이런 귀신은 다 우리에게 좋은 귀신이려니와 뱃속에 들어

오는 염병, 이질 같은 병이 나게 하는 흉악한 귀신을 잡아먹는 것도 유산균

이라는 고마우신 귀신님이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 피의 적혈구 백혈구는 말할 것도 없이 먹기도 하고 숨

도 쉬고 싸움도 하고 단결도 하고 배척도 하는 생물이지마는 우리의 내장으

로부터 힘줄, 껍질, 머리카락, 손톱, 발톱에 이르기까지 세포라고 일컫는

미생물이 아님이 없으니 이로 보건댄 우리 몸이 곧 한 나라요 한 우주다.

수억 수십억 인구(?)가 모여서 각기 분업을 하고 얼키설키 엉키어서 사는

대집단이다. 대집단이기 때문에 반란도 일어나고 외적의 침입도 있어서 이

것이 병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 뭉친 이들의 한 부분이 맥이 빠지고

염증이 났을 때에 죽음이 오는 것이다. 오다가다 만난 내외가 오다가다 흩

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나 뭉치면 좋을까 저렇게나 뭉치면 편안할

, 가지각색으로 팔자를 고쳐 보아도 신통한 것이 없어서 또 헤어지고 또

만나고 하는 것이 곧 우리가 나고 죽음이다. 부자가 되어 보아도 별 낙이

없고 미인으로 태어나 보아도 생각던 것과는 다르다. 하나도 완전한 것은

없고 어디나 흠이 있고 빈 구석이 있다.

산 자는 죽고 젊은 자는 늙는다. 있던 것은 없어지고 재미있던 것은 싱거

워진다. 단것을 먹으면 훗입이 쓰고 술이 취하여 흥에 겨운 뒤에는 목이 컬

컬하고 머리는 띙하다. 남녀의 사랑이 인생의 지극한 낙이라고 하나 그것도

술에 취한 것과 같아서 마음의 괴로움과 몸의 고단함이 뒤를 따른다. 큰 희

망과 큰 수고로 아들 딸을 길러놓으면 어느 틈에 좀이 먹었는지 믿던 바와

같은 자식은 되지 않는다. 친한 벗은 마음이 변하고 남편과 아내의 사랑에

는 틈이 버은다.

농사를 하려면, 모낼 비를 바랄 때에는 가물고 보리말리을 볕을 기다릴 적

에는 장마가 진다. 벼를 심었건마는 피가 성하고 김을 매었으나 벌레가 꾄

. 추수할 날을 앞에 두고 우박이 쏟아지고 산삭이 가까운 태모에게 부증

이 온다. 이런 것을 일러서 뜻대로 아니 되는 세상이라고 하고 사람들은 한

숨을 쉬고 부화를 낸다. 그러기로 별수가 있나. 아무리 원망하고 반항한댔

자 그물에 든 고기의 날침과 한가지다. 인과의 그물을 벗어날 길은 없고 마

침내는 아아 할 수 없다하고 단념하고 늘어질 수 밖에 없다.

뉘 마음에 편안함이 있는고? 저마다 생각해 보고 제가 아는 사람들을 생각

해 보라. 어느 집에 안락함이 있는고? 제 집과 아는 집을 보라! 장안 만호

에 숨막히는 연기가 아니 나는 것 있으며 낯 찌푸릴 냄새 아니 나는 사람

있던가. 번드르한 몸은 색헝겊으로 싼 것이요 희끄므레한 얼굴은 분으로 칠

한 것이다. 잇새에 썩은 밥찌끼와 고기 부스러기를 생각할 때에 어느 미인

의 입에서 향내가 날까보냐. 부지런히 이를 닦고 양치질을 하여서 겨우 구

역 나는 구린내를 막는 것이 우리의 입이다.

이러므로 세상을 괴로움의 바다라고 부르고 불붙는 집에다가 비긴다. 뱀은

밖에서 노리고 구더기는 안에서 끓는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짐승이 다 그렇고 초목도 그러하다. 벌레 안 붙은

초목 있나.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해는 때때로 태우는 불이 되고 그들을 먹

여서 기르는 물도 가끔 그들을 뿌리채 둘러엎는 무서운 힘이 된다. 공기가

없이도 못 살지마는 그 움직임은 또 줄기와 가지를 부러뜨린다. 사랑의 중

매가 되는 바람은 곧잘 꽃과 열매를 피기도 전에 익지도 않아서 송두리째

흔들어 떨꾸는 사정 없는 일도 한다.

농사를 뉘라서 한가하다 하는고? 농사는 싸움이다. 땅 속에, 공중에, 기는

, 나는 놈, 농작물을 먹는 놈은 수없이 많다. 흙 속에 숨었다가 트는 싹

을 잘라먹는 검벌레, 돼지벌레, 연한 잎이 너불너불하기가 무섭게 떼를 지

어서 덤벼드는 딱정벌레, 순을 집어 먹는 놈, 꽃봉오리를 따 먹는 놈, 톱질

하듯이 대를 자르는 놈, 벼에는 느치, 강충이, 무 배추에는 청벌레, 감자

고구마에는 두더지, 땅강아지, 농사하는 우리는 여름내 이 벌레들하고 전쟁

을 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농작물은 우리의 것이지마는 벌레들이 보기

에는 당연히 저의가 먹을 것이다. 벌에게서는 꿀을 빼앗고, 누에의 집재목

인 실을 빼앗고 닭, 돼지와의 살과 피를 제 것으로 여겨서 먹는 우리로서는

소리개가 병아릿마리나 채 간다고 나무랄 염치도 없는 것이다.

오곡이 다 여물거든 새와 주둥이 넓적한 오리, 기러기 같은 무리가 한몫

끼려 하고 다 거두어 광에 넣은 뒤에는 쥐와 좀이 제 몫을 찾는다. 끓여서

우리 입에 들어가게 다 된 때에도 파리가 먼저 발을 벗고 덤비고 더운 기운

이 가시기가 무섭게 각색 균들이 제 세상이라고 모여 들어서 쉬게 하고 썩

게 하여서 제 자손의 먹을 판을 삼는다. 겨우 우리 목구멍을 넘어간 뒤에도

내것이 다 된 것은 아니다. 위에는 회충이 등대하고, 곱창에는 채독이 노리

고 있고 창자 속에는 촌백충 등속이 모두 우리에게 묵은 빚을 채근하다.

이러한 상태를 다아윈은 생존 경쟁이라고 부르고 이 싸움판에 간신히 이겨

서 살아 남는 것을 적자 생존이라 하고 우승 열패라고 한다. 게다가 또 사

람끼리도 싸워야 한다. 땅싸움, 물싸움은 드러난 싸움이지마는 마음 속으로

는 끊임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형제의 유산 싸움, 시어미와 며느리,

올케와 시누이, 시앗과 시앗의 싸움은 가끔 피눈물을 자아내는 비극을 이루

지마는 전차나 기차의 자리싸움, 잘사는 놈, 못 사는 놈의 으르렁거림에서

강한 민족과 강한 민족의 싸움, 약한 민족과 강한 민족의 갈등, 멸시,

, 시기, 질투, 음해, 모해, 비방, 암살, 구타, 욕설, 악담, 대체 싸움의

종류도 팔만 사천이어니와 싸우는 쟁기도 팔만 사천이다.

이럼에로 옛날 이스라엘의 전도자는 죽은 자는 산 자보다 낫고 아니 난

자는 죽은 자보다 낫다 하여 제가 난 날을 저주한 것이다. 나는 것이 모든

고생의 장본이니 아니 나기만 하면 고만인 것이다. 그러나 인과의 그물 속

에 든 우리는 아니 나려도 아니 나지를 못하니 어찌하랴. 씨가 들면 나는

것이다. 석가여래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고 죽는 것이 끊어짐이 없다고

하셨다. 제비는 애욕 때문에 집을 짓고 애욕의 결과가 알이 되고 새끼가 되

고 수없는 벌레를 물어다가 먹이는 수고가 되고 찌재, 찌재, 찌재 하고 뱀

같은 적을 무서워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 새끼들이 제 힘으로 날아다

니게만 되면 또 애욕의 일을 하여서 끝 없이 나고 죽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집도 마찬가지다. 저 대문 있고 굴뚝 있는 집에는 다 남녀가 있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어서 나고 죽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는

생일과 혼인 잔치를 하고 사자밥과 제사 메를 짓고 있다. 나는 것은 좋아라

고 웃고 죽는 것은 설워라고 운다. 그러나 신랑 신부의 찬란한 가마가 들어

가는 대문으로 적으로 싼 관이 나오는 것이다. 웃는 입은 동시에 우는 입니

. 그나마 빚장이와 의사만 안 들어오고 사는 날까지 산다면 그런 큰 복은

없을 것이다. 사위, 며느리의 옷감과 함께 수읫감을 두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 기막힌 일이다. 식구마다 환갑 진갑 다 지나고 항렬 차례로만 죽어도

큰 복이지마는 늙은 부모가 젊은 자식을 묶어내는 일도 드물지 아니한 것이

서러운 일이다. 생일 고기를 굽던 불에 약을 달이니 못 믿을 손 사람의 일

이다. 게다가 내외 싸움은 의례히 있는 것으로 알게 되다시피 하였지마는

부자 싸움, 모녀 싸움도 희한한 일이 아니니 한숨질 노릇이다. 미움에는 아

첨의 사탕을 바르고 탐욕에는 거짓의 껍데기를 씌워서 서로 속이고 속고 의

심하고 넘겨 짚고 살아가는 것이 소위 교제란 것이다. 웃음 속에는 칼날이

들고 언약에는 배반이 감추여 있다. 다 같이 인형을 썼건마는 그 속에는 독

사도 있고 능구렁이도 있고 여우도 있고 승냥이도 있다. 세상을 걸어가는

것이 마치 맹수와 녹충이 들끓는 열대의 정글 속을 가는 것과 같다. 누구

믿을 이가 있고 어디 몸 둘 곳이 있는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고 여

우도 돌아갈 굴이 있건마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예수께서 탄식하

셨다. 남과 같이 거짓의 갑옷과 미움의 칼을 들고 나서지 않는 사람의 심정

을 이르심이다.

그러면 그들의 거짓과 미움은 얼마나 한 효과를 거두는고? 과연 다들 잘

사는가. 그들은 목적한 행복을 얻었는가. 돌아보니 모두들 가난방이요 초라

한 무리들이다. 얼굴에나 눈매에는 궁상과 천상과 간악한 상이 드러나지 아

니하였는가. 종각 모퉁이에 서서 온종일 그 앞으로 지나가는 남녀의 상을

보라. 참으로 복상과 덕상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나? 약고 영악한 상은

있다. 밥술이나 먹을 상도 있다. 그러나 턱 믿어지고 정이 푹 쏠리고 저절

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얄밉고 빤빤스럽거나 투미하고 음

충맞은 꼴은 얼마나 되나. 그러고 집에 돌아가 제 얼굴을 거울에 비취어 보

.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요 지난 일의 총 목록이다. 어떻게 하면 속일 수

가 있나. 사자는 사자답고 여우는 여우답다. 올빼미의 음충맞음, 곰의 미련

함이 다 그의 얼굴에 그려 있지 아니하냐. 사람이 제 마음을 제게는 속여도

남에게는 못 속인다. 낯바닥에 대서특서로 써 붙인 것을 무엇으로 가리우

. 그렇건마는 눈 가리우고 아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이니 살기가 힘이 들고 재미가 없다. 이 인과의 세계라는 것이

원체 물결 위에 떠서 흐르는 헐고 물드는 조각 배와 같아서 언제 들여엎일

는지 어디서 부서질는지도 모르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니 그 속에 같이 탄 사

람들끼리나 서로 믿고 사랑해야 잠시의 위로라도 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속에서도 서로 미워하고 속이고 자리 다툼을 하고 눈을 흘기고 잔소리를

하고 아우성을 하고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니 이거 어디 살 수 있는가.

인생을 이렇게 보아서 소부(巢父)가 되고 디오게네스가 되는 것이다. 그들

은 세상이 보기가 싫고 사람이 대하기가 싫어서 숨어버린 것이다. 거짓된

사람보다도 도리어 정직한 짐승들로 벗을 삼으려 한 것이다. 소위 염세주의

라는 것이다.

성인이라는 이들도 다 세상을 이렇게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버리

려 하지 아니하고 좀 살기 좋게 고쳐보려 하였다. 비새는 데는 가리우고 내

나는 데는 발라서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모든 성인들

의 사업이었다.

세상을 고쳐보는 데 처음으로 쓴 것이 법이었다. 법이란 말라는 것을 정해

놓고 그것을 어기는 놈을 벌하는 것이다. 법의 큰 항목은 살인, 도적, 간통

이다. 목숨, 재산 아내가 사람에게 그중 소중하기 때문이다. 살인자는

」── 사람을 죽인 자는 죽어, 이것이 법이요 벌이다. 법을 세우려면 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주권자다. 그에게는 오라 줄이 있고 감옥

이 있고 몽둥이와 칼이 있다. 사람이 늘어가니 죄가 늘고, 죄가 느니 법이

늘고, 법이 느니 형벌이 늘었다. 삼천년 전에 벌써 주 나라 에서는 오형 지

속이 삼천이라고 하였다. 목을 벰, 귀를 자름, 코를 뗌, 발뒤꿈치를 깍음,

불알을 밟음, 이마에 글자를 새김, 집과 재산을 빼앗음, 삼족을 멸함, 수족

을 비끌어매어서 어두운 방에 가두어 둠, 형문을 침, 볼기를 때림, 어떤 나

라에서는 등덜미와 발바닥을 때림, 불에 구움, 팔다리를 발겨서 찢어 죽임,

독약을 먹임, 이 모양으로 형벌의 수를 이루 다 세일 수가 없었다. 한길에

이마빼기에 도적도 자를 새긴 놈, 코 없는 놈, 귀 없는 놈이 돌아다니는 꼴

은 그리 유쾌한 풍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형벌을 엄히 하여도 죄는 갈수록 늘었다. 이에 성인이 착목

한 것이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길을 취함이었다.

성인은 사람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있는 것을 보았다. 죽이자는 마음과 함께

살리자는 마음이 있고 빼앗자는 마음과 동무하여 주자는 생각이 있음을 보

았다. 또 제가 많이 먹겠다는 욕심과 이웃하여 남을 많이 먹이겠다는 욕심

이 불붙는 것을 보았다. 강도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제가 사랑하는 자에

게 주고 싶은 것임을 보았다. 억지로 남을 부려 먹는 자가 있으면 해 달라

지도 않는 일을 하여 주기를 즐거워 하는 자도 있다.

성인들은 이 속에서 사람들이 좀 더 잘 살아갈 길을 찾았다.

빼앗지 말고 주면서 살아 보세.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면서 살아 보세.

속이지 말고 서로 믿고 살아 보세.

싸우지 말고 서로 돕고 살아 보세.

이것이다.

이러한 모양으로만 살면 이 세상도 살아갈 만한 세상이 된다. 忍土[인토]

란 그러한 세상이란 말이다.

애인들의 눈에는 삼라만상이 모두 아름답다. 사랑하는 눈으로 보면 이 세

상이 곧 천국이요 극락인 것이다. 그러나 싸움을 하는 내외는 세간을 막 부

순다. 모두 미워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의 눈에는 무엇이나 사랑스러운

것과 같이 미워하는 눈에는 무엇이나 다 밉다. 시어미의 눈에 며느리의 발

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하거니와 발뒤꿈치가 달걀 같으면 귀여울 것이다마는

시어머니의 눈에는 밉다. 그러나 손주의 발뒤꿈치가 달걀 같은 것은 귀엽

. 아내가 마음에 들면 처갓집 말 말뚝에도 절을 한다. 사람들의 마음의

스위치를 돌려서 미움을 가리키던 바늘을 사랑에만 대어 놓으면 그 순간으

로 강산은 꽃동산이요 동포는 그리운 임들일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벌써

세상은 인토를 넘어서 극락이 된다.

같은 값이면 기쁜 것이 좋다. 구태여 화를 낼 것은 없다. 그럴진댄 같은

값이면 사랑하는 것이 좋다. 구태여 미워하여서 두통을 앓을 까닭은 없다.

미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 눈을 굴리고 음악가는 좋은 멜로디를 찾아서

귀를 기울인다. 이 우주에는 아름다운 빛도 있고 듣기 좋은 소리도 있는 것

이다. 귀찮은 파리도 발을 비비고 볕에 앉았는 것을 보면 내 벗이고 몸을

가볍게 하는 이나 벼룩도 빙그레 웃음거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고연 놈, 죽일 놈이라는 사람들도 누구나 한 두 사람의 사랑을 받

고 있다.

사람들아,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비 새고 벌레 끓고 연기 드는 집을

바르고 꾸며서 살기 좋은 집을 아니 만드려는가. 다들 짜증내는 눈살을 펴

고 서로 원망하는 일을 한 번 잘 닦고 나서 화평한 웃음과 유쾌한 노래를

불러보지 아니하려는가.


출처 : 공유마당

이용조건 :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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