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교원 시대 / 나혜석

---

나의 여교원 시대 / 나혜석

 

지금으로부터 二十年前[이십년전] 일이다. R이 東京留學[동경유학]이엇

다. R의 아버지는 兩班[양반]이고 富者[부자]고 爲人[위인]이 々하다는

바람에 M과 婚姻[혼인] 말을 거니고 R에게 速[속]히 歸鄕[귀향]하라 하고

甚至於(심지어) 學費[학비]지 주지를 아니 하야 할 수 업시 歸鄕[귀향]을

하엿스나 R에게는 임의 愛人[애인]이 잇서 鐵石(철석)같은 約束[약속]이 있

든 때이었다.

 

R이 歸鄕[귀향]한 後[후] R의 아버지는 날마다 M에게 시집가라고 졸넛고,

甚至於[심지어] 회차리를 해 가지고 리며 시집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R은

敢[감]히 嚴父[엄부] 압헤서 言約[언약]한 곳이 잇다는 말은 못하고,

「저는 혼자 살어요」

하면

「이년 혼자 얻어케 사니」

「제가 버러서 저 혼자 살지」

「기가 막힌 세상이다」

하시고 기가 막히고 드를 것 갓지 아니하야 고만 흐지부지하는 이엇다.

R은 母校[모교] C學校[학교] Y先生[선생]에게 잠간 단녀가라고 편지하였다.

Y先生[선생]은 R의 在學中[재학중]에 極[극]히 貴愛[귀애]하든 先生[선생]

이었다.

 

Y先生[선생]은 곳 내려왓다.

「先生[선생]님 제 請[청]을 드러주서요」

「무어시오 듯다 이겟소」

「이대로 집에 잇을 수는 업스니 어대로 敎員[교원]으로 보내주서요」

「그야 어렵겟소 마침 請求[청구]하는 곳도 잇으니 多幸[다행]이오」

「그러면 이리々々 하서요」

R은 Y先生[선생]이 아버지에게 말삼듸릴거슬 일너주엇다. 조곰 잇다가 아

버지가 드러오신다.

「아, Y선생이시오 언제 오섯소」

「오늘 아참에 왓습니다」

「그러면 아침이나 잡수섯소」

「네, 먹었습니다. 그런데 急[급]히 말슴드릴 거시 잇서々 왓습니다」

「무슨 일이오 말삼하시오」

「다름이 아니라요 學務局[학무국]에서 女敎員[여교원]을 擇[택]해 오라 하는대

令孃(영양)이 마침 歸鄕[귀향]해서 집에서 놀고 잇으니 보내줍시시

는 말삼입니다」

「년 말삼이오 인제 女功[여공]을 가라처 시집을 보내도록 해야지오」

「女功[여공)]은 제게 닥치면 다 려 가는 法[법]입니다」

아버지는 대접으로

「보내면 어대로 보냄닛가」

「驪州(여주)올시다」

「그러면 얼마 동안이오」

「그야 지금 말삼듸릴 수야 잇겟습니가」

「얘, ○○아」

「녜」

「이리 나오너라」

R은 Y先生[선생]과 아버지와의 對話中[대화중]에는 안으로 드러가 잇섯다.

「너 驪州公立普通學校敎員(여주공립보통학교교원)으로 갈내」

「Y先生[선생]님이 그갓치 말삼하시니 안갈 수 잇습닛가」

「그러면 가 보아라」

R은 Y先生[선생]과 눈을 꿈벅하며 우섯다.

Y先生[선생]이 서울 올너간 後[후], 몇칠 아니 되어 辭令書(사령서)와 旅

費(여비)가 내려왓다. R은 驪州公立普通學校敎員[여주공립보통학교교원]으

로 가서 R의 아버지의 親舊[친구]인 K郡守[군수] 집에 留宿(유숙)하고 잇섯

다.

 

正月[정월]이 되엿다. C 學務委員(학무위원) 집에서 敎員[교원] 一同[일

동]을 請[청]하야 국 待接[대접]을 하엿다. 女敎員[여교원]으로 혼자인 R

은 안으로 드러갓다. C氏[씨] 宅[댁] 마냄은 도라가고 안 게시고 젊은이들

이엿다. 그 中[중]에는 R과 同甲[동갑]인 H와 I, 四寸間[사촌간]의 두 妻

女(처녀)가 잇섯다.

 

以來[이래] 두 妻女[처녀]는 다토아가며 R을 사랑하엿다. 국을 리면 請

[청]해다 먹이고, 을 하면 男[남]동생 T를 식혀 싸 보냇다. 客地[객지]에

외로운 R과 어머니 안게신 두 妻女[처녀]와는 情[정]이 오고가고 하야 날마

다 맛나보다십히 하엿다.

 

하로는 달밤이엿다. R이 드러누어 잘냐고 할  달은 중천에 올라 R의

방창에 비최여 잇섯다. 이에 창을 々 뚜듸리는 자가 잇섯다. R은 처음

은 바람에 문풍지인가 하다가 그거시 안인 줄 알자 창문을 열엇다. 거긔는

구십春光[춘광]의 흐느러진 머리를 척々 어느린 I이 서잇다. 「이게 왼일이오」

R은 벌덕 이러나 손목을 잡앗다.

 

「놀낫지」

「아니 그런대 이 밤중에 왼일이야」

「보고 십허서 견댈 수가 잇서야지」

R은 그제서야 안심하면서,

「드러와」

「드러갈가」

「그럼 드러와야지」

I은 房[방]안으로 드러갓다.

「그런대 엇덧케 왓서 門[문]이 다 닷첫슬터인대」

「담 터진 대로 넘어왓지」

군수 집 뒤담이 나직하고 좀 터저잇섯다.

「도둑놈이라면 엇절나고 월담을 해 백죄」

「고만이지」

「하々々히 ……」

「이것 먹어」

「무어시야 」

「우리 집에서 송편 조곰 햇기에 친구를 생각하고 가저 왓지」

I은 사발에 송편을 소복이 담고 뚜겅을 덥고 보재기에 쌋든거슬 풀너논는

다 R은 고맙단말 아모말업시 多感多情(다감다정)한 I을 물그럼이 쳐다보고

안젓다

「왜 사람을 그러케 보아」

I은 R의 무릅을 집는다.

「하도 고마워서」

「이 밤이 지나면 이 굿을가보아 가지고 온 거시니 어서 좀 집어 봐」

「먹지」

R은 맛있게 먹으면서 빙긋이 웃는다.

「사람  죽인다」

「누가 죽이는지 모르겟다」

「물먹고 먹어」

거기 잇는 물그릇을 드러 먹인다.

「맛이 있는대 출々하든 판에」

「만히 먹어 응」

I은 滿足[만족]히 권한다. 이 에 멀리서 닭 우는소리가 들닌다.

R은 작 놀나,

「I, 고만 가 느저서 안되 아버니 아시면 큰일 나지」

언젠지 I이 R을 차자보고 갓다가 커다란 게집애가 행길로 왓다갓다(씨게는

썻지만) 한다고 지람 밧엇단 말을 생각하였다.

「관게치 안아」

「문여는 소리 드르시면 큰일나지」

「아버지는 연회에 가서 늦게 드러오시고  H와 다  노코 왓스니 관

계 업서」

R은 그래도 마음이 아니 노여서

「고만 가 내일  맛나지」

「나는 자고 갈 걸」

「너부다 내가 더 붓잡고 십다만 고만 가」

 

달빗아래 두 妻女[처녀]는 보내고 가고, 그 의연한 정을 노칠 길이 업섯

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맛나면 러진 줄 몰느게 오고가고  오고가고 하

야, R은 하학 후에 두 妻女[처녀] 만나보는 것이 큰 樂[낙]이엇고, I, H난

午后[오후]만 가디리고 잇섯다. 하로갓치 지낸 일년 동안이 되엿다.

 

R은 月給[월급]을 貯金[저금]하야 東京[동경]으로 다시 가서 배호든 學業

[학업]을 繼續[계속]할 準備[준비]를 하고 一年[일년]만에 辭表[사표]를 提

出[제출]하고 떠나왓다. 두 妻女[처녀]와 R은 날마다 울엇다. 그러나 난

다는 事實[사실] 은 無情[무정]하엿다. 울고 매달리는 두 妻女[처녀]를 

치고 날 수밧게 업섯다. 오직 두 처녀에게 치고 가는 것은 R의 寫眞[사

진] 한 장과 住所[주소] 쓴 종의 한 장이엇다.

 

以來[이래] 書信往復[서신왕복]이 數次[수차] 잇섯스나 R은 學課[학과]에

專力[전력]하는 外[외]에 이 事仵[사건] 저 事仵[사건] 接觸[접촉]하난 동

안, 卽[즉] 現在[현재]에 切迫[절박]한 者[자]로 過去[과거]의 親舊[친구]

를 生覺[생각]할 아모 餘裕[여유]가 업섯다. 그리하야 自然[자연] 絶信[절

신]지 된 거시다. 間々[간간] 生覺[생각]나든 것도 아주 이저바리도록 되

엇다.

 

十餘[십여] 年[년] 後[후], R이 京城[경성] 崇二洞[숭이동]에서 살  意

外[의외]에 I의 男[남]동생 T가 차자왓다. 조고마튼 그는 長成[장성]한 靑

年[청년]이엇다. R은 퍽 반겨햇다. T가 R의 집에서 몃칠 묵으면서 R 內外

[내외]의 周旋[주선]으로 商業學校[상업학교]에 들게 되엿다. 이 H와 I의

消息[소식]을 듯건대, 발서 시집가서 아이지 나핫다고 한다. 其後[기후]

다시 從無消息[종무소식]이엿다. R은 이 生活[생활]노 저 生活[생활], 저

生活[생활]노 이 生活[생활] 어, 다시 故鄕[고향]을 차자 水原[수원] 와

서 五間[오간] 草屋[초옥] 가온대 업대려 身病[신병]을 蘇生[소생] 中[중]

이엿다. 하로난 저녁 後[후]에 누웟으랴니 甥姪[생질]이 名啣[명함] 한

장을 들고 드러와서,

「아주머니, 이 사람이 차저왓서요」 한다.

그 名啣[명함]에는

華城金融組合[화성금융조합] 副理事[부이사] C O T라고 씨워잇다.

R은 얼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生覺[생각]하야,

「올치 안다 알어, 이 사람 어대 잇서」

「只今[지금] 이 門[문] 압헤 섯서요」

R은 허둥지둥 나갓다.

「이게 왼일입닛가」

T은 아모 말 업시 有心[유심]이 본다. 늙고 病[병]들은 R의 模樣[모양]이

초라하엿든 貌樣[모양]이었다.

「드러오십쇼」

房[방]으로 案內[안내]하엿다.

「그새 安寧[안녕]하섯습니가」

「녜 나는 잘 지냇사외다. 아주 틀맨이 되섯소 그래」

「녜, 커졋지요」

「그런대 얼마 만이오」

「그 崇二洞[숭이동] 宅[댁]에서 뵙고 못 뵈왓지요」

「한 十年[십년] 되지요」

「그러케 되지요」

「그런대 누님들은 엇더케 되섯나요」

「H누님은 서울 사시는데 東一銀行[동일은행] 東大門支店[동대문지점] 代

理[대리] 夫人[부인]이요, I누님은 利川[이천] 사시는대 설흔 둘에 과수가

되엿서요」

「그래요 악가운 사람이」

「그래 祖合[조합] 滋味[자미]가 조흐십닛가」

「늘 밧붐니다. 都會地[도회지] 갓흔대서는 事務時間[사무시간]만 직히면

그만이지만 地方[지방]에서는 細々[세세]한 事務[사무]지 責任[책임]지게

되니 滋味[자미]있고 구치안타면 구치안슴니다」

「모든 事物[사물]을 藝術化[예술화]하면 辛酸[신산]이 업지요」 「그러치요」

「그런대 누님을 뵈올 수가 업슬가요」

「오시라고 하면 곳 오실 것입니다」

T는 約[약] 한 時間[시간]쯤 놀다가 도라갓다. R은 그 잇흔날노 I에게 편

지 하엿다.

 

사랑하는 친구!

이거시 二十年[이십년]만 아니오 信義[신의] 잇는 季氏[계씨] T氏[씨]에

차져주심으로 나는 친구의 消息[소식]을 알게 되엿소. 우리에게 얼마나 고

마운 양반인지 모르겟소. 季氏[계씨] 말삼이 친구를 오시라면 곳 올 수 잇

다니 나를 맛나러 곳 와주시오.

남은 말은 맛난 다음에 합세다.

 

二三日後[이삼일후]에 왓다는 通知[통지]가 왓다. R은 여갓다. 살이 포

군々々하고, 빗치 윤택하고 얼골이 하고 치렁々々 느리엿든 처녀는

아니엿고 주름살이 잡히고 얼골빗이 검고 머리를 인 中年夫人[중년부

인]이엇다.

「아이구머니」

두 사람은 손을 붓잡고 눈물이 글성글성해진다. 둘이  어 안는다. 두

뺨이 서로 다앗다.

「이게 몃해 만이야」

「 二十年[이십년] 만일세」

「엇제면 그러케 消息[소식]이 업섯서」

「자연 그러케 되엿서」

「나는 신문지상, 잡지상으로나 인편으로 친구의 장하게 출세한 말은 드럿

스나 어대 잇는 줄을 알어야지. 이금 사진을 듸려다보고 혼자 울고 웃고

하엿슬 이지」

「그래 잘 잇섯서 그러나 혼자 되엿다지」

R은 I의 뺨을 어루만진다. I은 눈물이 글성々々 해진다. R도 눈물이 핑 도

랏다. 한참 默(묵)々 하엿다. 날마다 오고가고 가고오고 하야 或[혹] 水原

城[수원성]을 一週[일주]하기, 或[혹] 西湖[서호] 模節場[모범장] 求景[구

경], 或[혹] 절에 갓다오다가 외탕 기, 或[혹] R의 寫生處[사생처]를 차

자와 畵具[화구]를 드러다주기, 或[혹] 밧뚜덩 논뚜덩으로 다니며 쑥 어

다가  해 먹기, 或[혹] 가서 자기, 或[혹] 와서 자기, 이러케 두 사람 사 이의

友情[우정]은 날로 두터워갓다. I은 女[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가려운

症[증]으로 溫陽[온양] 溫泉[온천]을 간다고 하엿다. R도 마침 몸이 개려워

서 同行[동행]하엿다. 溫泉[온천]을 하고 와서 밤에 느런이 두러누엇슬 

세 女子[여자]는 사접씨를 깨틔리엇다. R이 어린애를 고 두러누운 I의 동

생을 며

이러케 이틀 밤을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고 지내고 왓다.

I은 自己[자기] 살님사리 關係[관계]로 오래 잇지를 못하고 도라갓다. R

사이에는 다시금 그리움이 막혀 잇게 된다.

 

世上[세상]에는 親友[친우]가 從々[종종] 잇다. 일을 爲[위]한 親友[친

우], 趣味[취미]가 갓흔 親友[친우]이다. I과 R사이 友情[우정]은 이 모든

條件[조건]을 超越[초월]한 親友[친우]일다. R이 쏘들대 업는 情[정] I가

쏘들대업는 情[정]이 合[합]하야 아람다온 友情[우정]이 될 이다. 그러나

遺憾[유감] 되는 거슨 멀니 잇서 자조 못 보난 것일다. 世上萬事[세상만사]

가 다 하고저 하는 대로 될진대 不平不滿[불평불만] 업시, 恨[한] 업이, 사

람을 怨罔[원망]할 것 업시, 便安[편안]하게 世上[세상]을 보낼 것이다. 그

러나 마음대로 못 되는 것은 世上事[세상사]일다.

 

하나 우리는 어대지든지 現狀[현상]을 維支[유지]할냐고 하는 것이 아니

다. 넘오 조혀 지내고 십지 안타. 언제지 갓가이 지내는 동안은 반드시

소오함이 오난 거시다. 우리는 큰 눈으로 크게 깊게 넓게 보고 십다. 四方

八面[사방팔면]을 보고 십흔 것이다.

 

우리에게는 肉[육]의 世界[세계]와 靈[영]의 世界[세계]가 잇다. 肉[육]의

世界[세계]는 좁고 얏흔 反面[반면]으로 靈[영]의 世界[세계]는 넓고 크다.

우리는 肉[육]의 世界[세계]에서 살아오지만 그 以上[이상] 靈[영]의 世界

[세계]가 잇슴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사는 意義[의의]가 잇다. 어대지든지

無盡藏(무진장)으로 사러갈 수 잇는 이 靈[영]의 世界[세계]에서 노는 I,

R, 사괸 I, R, 肉[육]의 외롭고 그리운 情[정]을 가진 I, R, 靈[영]으로 매

진 友情[우정]이 以後[이후] 어느 모에 가서 그 彼此(피차)의 生[생]을 도

읍게 될지 뉘알니.

 

R은 오직 沈黙[침묵] 가온대서 그림을 그리고 잇슬 이오 영리한 I은 어

려운 시집사리에 올망졸망 子息[자식]들 다리고 沈默[침묵] 中[중]에 무슨

決心[결심]을 품고 希望[희망]을 좃차 날마다 일하고 잇다. 하누님, 이 외

로운 두 님의게 오래々々 健康[건강]을 베프소서

 

(『三千里[삼천리]』, 1935.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