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정전(鄭秀貞傳)
by 송화은율정수정전(鄭秀貞傳)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 목판본 · 활자본. ‘ 여장군전 ( 女將軍傳 ) ’ 이라고도 한다. 필사본은 장서각도서에 1책이 있다. 목판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3종이 있는데, 2종은 각각 1920년과 1921년에 경성 한남서림(翰南書林)에서 간행한 것이고, 1종은 간행 연도 미상이다.
1905년 경성 합동(蛤洞)에서 간행된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 나손문고 소장(舊 金東旭 소장본) 1종이 있고, 같은 경판(京板)으로 오한근(吳漢根) 소장 1종이 있다.
활자본은 ‘ 여장군전 ’ 이라는 표제가 붙은 것이 1915년에 세창서관 ( 世昌書館 )에서 간행되었고, 역시 같은 곳에서 1915년에 간행된 〈 정수정전 〉 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있다.
송나라 태종황제 시절 병부상서 겸 표기장군 정국공은 혈육이 없어 근심하다가 뒤늦게 딸 하나를 낳으니, 이름을 수정이라 하였다. 이 때 이부상서 장운에게 연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정공이 장상서의 집에 놀러 왔다가 그 아들을 보고 청혼하니 그들은 그 자리에서 혼약하였다.
이 때 정공이 황제께 간신인 진공을 멀리하기를 간하니, 진공이 이를 알고 정공을 모해해 결국 절강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정공이 그곳에서 죽으니 부인 양씨도 죽고 잇따라 장상서도 죽었다.
의지할 곳 없게 된 수정은 남복을 하고 무예를 닦아 과거에 응시해 급제하였다. 정공에게 아들이 없음을 고하는 진공을 수정이 대칙하니, 상이 진공의 간교함을 깨닫고 강서로 귀양보냈다.
이미 과거에 급제해 한림학사가 된 장연을 만난 수정은 장연과 혼약한 사람은 죽은 자기 누이라 하니, 이 말을 믿은 장연은 위승상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 때 북방 오랑캐가 침범하니 정수정이 대원수가 되고 장연이 부원수가 되어 출정하였다. 기주에서 호왕 마웅과 부닥친 정수정은 적군을 쳐부수고 대승을 거두어 황성으로 회군하였다.
크게 기뻐한 황제가 정수정과 장연을 부마로 삼으려 하자 정수정은 더 이상 임금을 속일 수 없어, 표를 올려 사실을 밝혔다. 이에 황제는 수정을 청주후로 봉하고, 예부에 명해 장연을 정수정과 혼인시키고 또 공주와도 혼인시켰다. 모두 화락하게 지내던 중 정수정이 장연의 총희(寵姬) 영춘의 방자함을 징계해 목을 베자 시어머니가 대로하고, 장연 또한 수정에게 냉랭하게 대하였다.
이에 수정은 청주로 돌아가 군사를 훈련시켰고, 철통골이 다시 침략하자 대원수가 되어 적을 쳐부수었다. 이 때 장연은 군량을 수송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제 때에 대지 못하자 수정은 장연을 결장(決杖) 열 번으로 다스렸다. 황성으로 회군하던 도중 진공의 목을 베어 부모의 원수도 갚았다.
수정이 돌아오니 임금이 친히 마중을 나오고 시어머니인 태부인은 시녀를 보내어 화해를 청하니, 다시 일가가 화목하게 자손을 낳고 75세까지 수를 누리다가 동시에 채운을 타고 승천하였다.
이 소설은 여성 독자를 의식한 작품이다. 즉, 불행이 닥쳤을 때 여성들이 소극적으로만 대처해 그대로 감수하는 것이 아니고, 남장을 하고 과감하게 남성 세계에 뛰어들어 국가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또한 남편과 시어머니와 대등한 위치에 섬으로써 현실에서 오는 맹종의 열등감을 해소하려 하였다.
이런 점은 〈 박씨전 朴氏傳 〉 에서도 볼 수 있는데, 박씨는 가정 안에서 자체의 변화를 일으켜 활약하는 데 반하여, 수정은 가정 밖으로 나가 능력의 변화를 얻어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는 구성의 차이점이 흥미롭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