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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동새 / 김소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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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동새 /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소월(金素月)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7.5조 3음보격의 변형)

성격 : 전통적. 애상적. 민요적. 향토적

심상 : 청각적

어조 : 애절한 목소리

특징 : 의성어를 통해 육친애의 정을 표출. "죽음 - 비련 - 비탄"의 구조

구성 : '접동새'의 기본 구조는 '죽음 - 비련 - 비탄'의 골격으로 짜여져 있다. 여기서의 죽음은 '의붓어미 시샘'에서 비롯된 타의적 결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한(恨)을 품은 죽음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살아 남은 자의 한(恨)이 아니라 죽은 자의 원(怨)이며, 동시에 그것을 말하는 자의 한(恨)이다.

 

1연 - 접동새의 울음소리

2연 - 진두강 강가에서 우는 접동새(죽은 누이의 울음 소리)

3,4연 - 접동새의 전설(죽은 누나 = 접동새 )

5연 - 접동새가 우는 이유(애절한 혈육에의 정한)

제재 : 서북 지방(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지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접동새 설화

주제 : 육친(肉親)과의 애정(愛情)에서 숨어있는 정한(情恨). 식민지 지식인의 허무 의식(방황하는 모습), 현실의 비극적 삶을 초월하려는 애절한 혈육의 정, 접동새가 된 누이의 한(恨)

출전 : <배재>(1923)

관련 설화 : 계모는 누이가 혼인을 맺은 도령이 예물을 많이 주자 시기심으로 장롱 속에 넣어 불을 질렀다. 그러자 누이는 접동새가 되어 날아올랐다. 이에 관가에서 계모를 똑같이 죽였다. 그러자 까마귀가 되었다. 접동새가 된 누나는 까마귀가 무서워 늦은 밤에야 동생들이 자는 곳에 와 울었다. 

 

내용 연구

접동새[두견-이(杜鵑-) : 두견과의 새. 편 날개의 길이는 15~17cm, 꽁지는 12~15cm, 부리는 2cm 정도이다. 등은 회갈색이고 배는 어두운 푸른빛이 나는 흰색에 검은 가로줄 무늬가 있다. 여름새로 스스로 집을 짓지 않고 휘파람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휘파람새가 새끼를 키우게 한다.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귀촉도,두견(杜鵑), 두견새, 두백(杜魄), 두우(杜宇), 두혼(杜魂), 망제(望帝), 불여귀, 사귀조(思歸鳥), 시조(時鳥), 자규(子規), 주각제금, 주연, (周燕), 촉백(蜀魄), 촉조(蜀鳥), 촉혼(蜀魂), 촉혼조. (Cuculus poliocephalus), 두견이 목에 피 내어 먹듯 남에게 억울한 일이나 못할 짓을 하여 재물을 빼앗음을 이르는 말.] 

 

접동(접동새의 울음 소리를 형상화함)

 

접동

 

아우래비( '아홉 + 오래비'의 활음조 현상 즉, 아홉 명의 남동생, '아우오래비(남동생)'로 보는 견해도 있음.) 접동[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은 AABA형, 접동새는 그 울음 소리가 구슬퍼서 한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문학의 소재로 등장한다. 여기서 접동새의 울음 소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슬픔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아우래비'라는 말을 넣어서 그 슬픔이 혈육에 대한 그리움 때문임을 암시한다.]

 

- 접동새의 울음 소리 

진두강(津頭江)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누님'이 아니고 '누나'인데 이 시의 유연성(柔軟性)이 한결 돋보임.]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 죽은 누나의 울음 소리와 재생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아버지의 후실, 의모(義母)] 시샘에 죽었습니다.(이미 오래 전에 우리 나라 먼 뒤쪽 국경 지대의 진두강 강가로 시집 가서 살던 누나, 그는 시집의 의붓어미 시샘에 시집살이를 못 견디고 죽었습니다. 누나의 비극성을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 의붓어미 시샘에 죽은 누이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몹시 서러워의 평안도 방언)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의붓어미의 시샘에 원통하게 죽은 누나의 한이 접동새로 변신하여 나타났다. 원한이 많은 넋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방황한다는 것은 우리의 민속 신앙이다. 여기서는 촉(蜀)나라의 망제(望帝)가 죽어 새가 되었다는 중국 고사에 연결, 누나의 넋이 접동새로 옮겨졌다.]

-죽은누나와 접동새의 동일화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여자가 자기 남동생을 일컬을 때 하는 말)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 삼경 무렵의 밤. 삼경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동안.)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친정의 아홉이나 되는 많은 남동생들을 죽어서도 못잊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남들이 다 자는 깊은 밤이면 친정 마을의 산에 와서 웁니다. 새라는 것은 비상하는 것이 본연의 일인데 동생들 걱정이 되어서 자유로이 날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서 영원히 슬피 울어야 하는 천형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접동새'는 훨씬 더 한스러운 이미지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혈육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애절한 정한 

 

 

이해와 감상

 민담에서 소재를 시화한 작품이다. 즉, 시집간 누나가 시아버지의 후실인 의붓어미의 시샘을 견디지 못해 원통하게 죽었고, 그리하여 그 누나의 원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접동새가 되어 밤마다 고향집 동생들을 찾아와 슬피 운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월의 시 세계가 '한(恨)'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있어 '한'만큼 깊게 자리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 소월이 그리려고 한 감정의 음영(陰影)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이 한이었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이 개인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한국인 모두에 공유되었다고 볼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설화에 있어서이다. 설화는 역사를 흘러 오면서 집단적 정서가 반영된다. 보편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화소(話素)는 사라지게 되고,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만 고스란히 전하게 된다. 원형(archetype)이 반복되면서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정서적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이다.

 

 이 시는 바로 설화의 세계에서 보이는 원형적 한과 화자 개인의 정서가 교묘히 결합하면서, 보편적 한의 정서를 개인적 한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1연. 접동새 울음소리를 제시하며 시상의 전개를 준비한다. '아우래비'는 '아홉+오라비'를 활음조로 줄인 말이다.

 2연. 접동새는 누이의 원혼(?魂)이었다. 누이가 살던 곳을 잊지 못하여 접동새로 화해서 계속 진두강 언저리를 맴돈다고 화자는 바라본다.

 3연. 2연의 이유가 제시된다. 민담(民譚)을 시화(詩化)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민담은 집단적 성격을 지니고, 민담 속에 서린 정한(情恨)은 우리 민족의 집단화한 정서이다. 이런 면에서도 소월은 민요시인으로서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누이가 죽은 이유를 설화적 진술을 통해 드러낸 것이 그것이다.

 4연. 서정적 자아의 감정이 개입하여 노출되고 있다.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 중심에 있는 까닭은 화자의 아픔이 절실했던 나머지 그 속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담의 제재의 정한(情恨)은 민족의 한(恨)이며 동시에 나의 한(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누나'가 '우리 누나'로 탈바꿈한다.

 5연. 오랍 동생을 못 잊어 깊은 밤에 슬피 울며 찾아오는 접동새의 한을 노래한다.

 이 시는 소월의 기본 율조인 7.5조 3음보의 율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전통적 음악성의 율조에 실린 민담적 소재는 향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도 남는다. 더구나 여성 어조에 담긴 한의 정서는 독자에게 아픔을 준다. 

 

 

이해와 감상1 

 다음은 이 시의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설화의 내용이다.

  "옛날 진두강 가에 10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다. 계모가 포악하여 전실의 자식들을 학대했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 박천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었다. 부자인 약혼자 집에서 소녀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 왔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소녀를 농 속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그러자 재 속에서 한 마리 접동새가 날아올랐다. 접동새가 된 소녀는 계모가 무서워 남들이 다 자는 야삼경에만 아홉 동생이 자는 창가에 와 슬피 울었다."

 

 이 작품은 가장 흔하고 전형적인 한의 주제를 지니고 있다. 계모와 의붓딸의 갈등, 한을 남기고 죽은 혼의 되살아남, 혼이 되살아난 접동새의 울음 등 한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소재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계모와 의붓딸 사이, 그것은 이 땅에서 지속된 인간 관계 중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의 하나였다. 계모가 악녀가 아닐 때에라도 의붓딸은 피해 의식에 의해 쉽게 상처받는 존재가 된다. 계모가 실제로 악녀일 때 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이 뻔하다. 이렇게 해서 계모와 의붓딸 사이는 민담이나 조선조 소설이 보여 주는 것처럼 한의 온상 구실을 오랫동안 다해 온 것이다.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우리 주변의 설화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전형적인 한의 정조를 주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북부 지방에 널리 퍼져 있는 '장화홍련전'의 모티프를 이용했는데, 계모가 전처 소생 등을 구박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 주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죽은 누나와 살아 있는 동생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계모와 의붓딸의 갈등, 한(恨)을 남기고 죽은 혼의 되살아남, 혼이 되살아난 접동새의 울음 등 한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주제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1연에서는 실감을 나타내기 위해 접동새의 울음을 의성법으로 표현하였다. 2연에서는 '누님'이 아닌 '누나'라는 시어를 선택하여 이 시의 유연성이 돋보인다. 3연에서는 비극적인 누나의 죽음이 처리되어 있으며, 4연에서는 원한이 많은 넋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방황한다는 우리의 민족 신앙을 바탕으로 촉의 망제가 죽어서 새가 되었다는 중국 고사와 연결, 누나의 넋이 접동새로 옮겨졌다. 결구인 5연은 다시 1연과 관련을 맺고 있다. 

 

 

심화 자료

 

두견-이(杜鵑-) :

 

두견이과에 속하는 새. 우리말로는 접동새라 하고, 한자어로는 두우(杜宇)·자규(子規)라고도 한다. 국어사전에는 소쩍새라고도 되어 있는데, 소쩍새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로 두견이와는 그 생김새가 다르다. 학명은 Cuculus poliocephalus poliocephalus LATHAM이다.

 

크기는 날개길이 152∼171㎜, 꼬리길이 119∼139㎜, 부리길이 17∼20㎜, 부척 16∼19㎜이고, 무게는 54∼74g이다. 두견이는 암·수의 색채가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하다. 수컷의 머리·뒷목·등·허리는 석판 잿빛이고, 턱밑·멱·윗가슴은 잿빛으로 중앙은 다소 엷은 색이다.

 

깃털 끝은 황갈색을 띠며 아랫가슴과 배는 흰색으로 드문드문 검은 갈색의 가로띠가 있다. 암컷은 수컷과 비슷하나 배면의 잿빛은 다소 엷은 색이고, 멱과 가슴은 붉은 갈색을 띤다.

 

우리 나라에는 5월경 동남아시아에서 날아와서 9월경에 남하하는 여름철새로, 단독으로 생활하며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때가 많은데, 산중턱과 우거진 숲속에서 노출되지 않고 있어 자취를 보기 힘들다.

 

산란기는 6월 상순에서 8월 하순까지인데, 직접 둥우리를 틀지 않고 휘파람새의 둥우리에 알을 위탁시켜 포란과 육추(育雛:알에서 깐 새끼를 키우는 것)를 시킨다. 이밖에 굴뚝새·산솔새·검은지빠귀·긴꼬리홍양진이·촉새 등의 둥우리에도 산란한다.

 

이러한 습성은 두견이과에 속하는 새들의 공통된 습성으로, 매사촌은 쇠유리새·큰유리새·힝둥새·유리딱새의 집에, 뻐꾸기는 산솔새·동박새·삼광조·때까치의 집에 알을 낳는다.

 

알은 주로 위탁하려는 새의 알과 비슷한 색이며 자기 알보다 작은 알을 낳는 새에게 위탁한다. 이것은 자기가 낳은 알보다 큰 알은 그대로 두지만 작은 알은 버리는 가짜 어미새의 습성 때문이다.

 

다른 새의 집에 알을 낳을 때는, 어미새가 집을 떠났을 때 재빨리 낳으며 1개만을 낳는다. 이것은 가짜 어미새의 양육 능력을 고려한 행동으로 추측된다. 알은 9, 10일이면 부화되는데, 이것은 가짜 어미새가 낳은 알보다 3, 4일 일찍 부화되는 것이다. 부화 직후의 새끼는 나체 그대로로 초생우(初生羽)는 없다.

 

새끼는 부화 후 2, 3일 사이에 가짜 어미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우리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둥우리를 독점해서 자기 혼자 먹이를 받아 먹고 자란다. 곤충류를 주식으로 하여, 나비·벌·파리·딱정벌레·메뚜기 등의 유충과 성충 및 알을 먹으며, 그 밖에 다족류도 먹는다.

 

두견이는 대체로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한(恨)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가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일찍이 고려시대에 정서(鄭敍)가 지은 〈정과정 鄭瓜亭〉에는 “내 님을 그리瑯와 우니다니 산접동새勘 이슷悧요이다.”라고 하여 유배지에서의 외로운 신세를 산접동새에 비기어 노래하고 있다.

 

또한, 이조년(李兆年)이 지었다는 시조에도 자규가 등장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아랴마는/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여기서 자규는 달 밝은 밤 삼경에 울어춘심을 자극하는 새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요 〈새타령〉에는 “성성제혈염화지 귀촉도불여귀(聲聲啼血染花枝歸蜀道不如歸)”라고 두견을 읊고 있다.

 

〈군밤타령〉에서는 “공산야월 두견이는 짝을 잃고 밤새어 운다.”라고 하였으며, 〈닐니리야〉에서는 “공산 자규 슬피 울어 아픈 마음 설레이네.”라고 하였다.

 

한편, 〈정선아리랑〉에서는 “어지러운 사바세계 의지할 곳이 바이 없어 모든 미련 다 떨치고 산간 벽절을 찾아가니 송죽 바람 슬슬한데 두견조차 슬피우네 귀촉도불여귀야 너도 울고 나도 울어 심야 삼경 깊은 밤을 같이 울어 새워볼까.”라고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두견이는 한결같이 공산야월의 시공(時空)에서 외롭고 슬픈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는 새로 등장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남에게 억울한 일이나 못 할 일을 하여 재물을 빼앗는 행위를 가리켜 “두견이 목에 피 내어 먹듯”이라고 하는 속담까지 생겼다. 강원도 영월에는 단종이 지었다는 〈자규시〉가 전한다. “제궁을 다 버리고 벽산에 머무르니/가슴에 타는 심정 두견이 아랴마는/하늘도 모른체 하여 내 더욱 서러와라.”

 

또한 경상북도 성주군에서는 〈두견노래〉라는 민요가 전승된다. “추풍화굴 빛나실 때 애벌 같은 저 두견아/허당공상 다 바리놓고 내창전에 니 왜우노/밤중이면 니 울음소리 억지로 든 잼이 다 깨노라.” 이처럼 두견이는 고려시대 이래 우리 시가문학에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소재로 지속적으로 등장하였고, 현대에 와서도 김소월의 시를 비롯한 많은 작품 속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두견이에 관한 설화로는 〈접동새 유래〉가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조사된 자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아들 아홉과 딸 하나를 낳아 기르다가 죽었는데, 계모가 들어와서 전실 딸을 몹시 구박하였다. 그래서 그 딸은 혼인날을 받아 놓고 죽었는데 그 딸의 넋이 접동새가 되었다.

 

한편 계모는 죽어서 까마귀가 되었는데 그래서 까마귀와 접동새는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접동새 울음소리가 “구읍 접동”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홉 오라버니 접동”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접동새는 억울하고 한 맺힌 새로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韓國歌唱大系(李昌培, 弘人文化社, 1976),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7).

 

 

접동새설화(―――說話)

계모에게 박대받던 처녀가 죽어 접동새가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 동물 유래담의 하나로 변신담에 속한다. ‘까마귀와 접동새의 유래’로도 불리고 있다. 구전설화로 전국에 널리 분포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채록된 설화는 많지 않은 편이다.

 

옛날 어느 부인이 아들 아홉과 딸 하나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후처로 들어온 부인이 딸을 몹시 미워하여 늘 구박하였다. 처녀가 장성하여 시집갈 때가 되었으므로 많은 혼수를 장만하였는데, 갑자기 죽어버렸다.

 

아홉 오라버니가 슬퍼하면서 동생의 혼수를 마당에서 태우는데 계모가 주변을 돌면서 아까워하며 다 태우지 못하게 말렸다. 화가 난 오라버니들이 계모를 불 속에 넣고 태우니 까마귀가 되어 날아갔다.

 

처녀는 접동새가 되어 밤만 되면 오라버니들을 찾아와 울었다. 접동새가 밤에만 다니는 이유는 까마귀가 접동새를 보기만 하면 죽이므로 무서워서 그렇다고 한다.

 

이 설화는 까마귀와 접동새의 생태계내의 관계와 접동새 울음소리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전통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못된 계모를 둘러싼 가정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소재는 비단 설화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문학작품의 중요한 원천으로 작용하여 많은 계모형 소설들을 형성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유형은 김소월(金素月)의 시 〈접동새〉의 직접적인 소재적 원천으로서 우리 문학의 비극적 정서환기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배경 설화(서북 지방)와 해설 

'옛날 어느 곳에 10남매가 부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의 붓 어미가 들어왔는데, 의붓어미는 아이들을 심하게 구박하였다. 큰누이가 과년해지자 이웃 부잣집 도령과 혼약하여 많은 예물을 받게 되었다. 이를 시기한 의붓어미가 그녀를 친모가 쓰던 장농에 가두었다가 불에 태워 죽였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타고 남은 재를 헤치다 거기서 접동새 한 마리가 날아올라 갔다. 죽은 누이의 화신인 것이다. 관가에서 이를 알고 의붓어미를 잡아다 불에 태워 죽였는데, 재 속에서 까마귀가 나왔다. 접동새는 동생들이 보고 싶었지만 까마귀가 무서워 야삼경에만 와서 울었다.'

이를 통해 표상하고자 하는 시인의 내면 의식은 모(母) 상실 의식이며, 주된 정서는 모 상실 의식에서 기인된 한(恨)이다. 동시에 이 시는 신인이 그 자신의 실제적인 삶으로서 이러한 불행을 신화화시켜 현실이 주는 부단한 역사적 압력과 그에 맞서야 할 구체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음도 보여 주고 있다.

 

시인이 이 설화를 시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그 나름의 의도가 있어서이다. 4연에서 설화 속의 주인공인 누나가 시인의 누나로 동일화되고 있는 데에서 그 사실이 드러난다. 즉 시인은 제3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다가 제4연에 오면 그 자신이 설화의 주인공이 되어(일인칭 시점)자신의 현실을 설화와 동일화시킨다. 시인이 처음에 일인칭의 시점으로서가 아니라 3인칭의 시점으로 설화를 기술하고 있었다는 것은 제3연이 설명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3연에서 시인은 누나를 4연에서처럼 '우리 누나'가 아니라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소월 시의 '이별'과 만해 시의 '이별' 김소월의 시와 만해의 시는 공통적으로 '임'과의 '이별' 을 가장 중요한 시의 모티프로 삼고 있다. 그러한 두 시인에게 '이별'이 지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김소월에게서 '임'과의 '이별'이 지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김소월에게서 '임'과의 '이별'은 어쩔수 없이 강요된 것으로, 그 이별의 상태가 극복될 가능성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초혼(招魂)' 같은 시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김소월에게 있어서 '임'은 항상 과거의 존재, '나' 와 근원적으로 합일될 수 없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만해 에게 있어서 이별'은 다른 의미로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서 '이별' 은 외부에 있어서 강요된 것이라기보다는 새롭고 높은 차원의 '임'과 만나기 의해서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해의'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방법적 계기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별' 속에는 '임'과의 만남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김소월의 시에서는 억누를 길 없는 비애와 절망을 안으로 삭이는 한의 정서가 강조되는 반면, 만해의 시에서는 이별로 인한 비애와 슬픔이 새로운 만남의 대한 기대와 예견의 의해 극복되어 가는 모습이 강조된다. 

 

 

고전 소설 접동새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표지에 ‘丙午聊八月筆志(병오윤팔월필지)’라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창작연대는 알 수 없다.

 

이상공의 아들 이시랑은 병으로 영천에 낙향하여 부인 강씨의 정성스러운 간호를 받지만, 세상을 떠난다. 강씨는 이시랑의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하는데, 이상공의 사위 이화삼이 재산을 탐내서 강씨를 없애기 위하여 무사를 보낸다.

강씨는 여종과 함께 접동소에 빠져 죽는다. 그 뒤 접동소에서는 두 마리의 청조(靑鳥)가 나와서 슬피 울고, 영천원님은 부임하자마자 죽는다. 그러한 일이 13년이나 계속되다가 영천은 폐읍이 된다.

 

이 때 현종임금이 즉위하여, 밤늦게 잠자리 옆 오동나무에서 슬피 우는 접동새 소리를 듣는다. 임금은 오동나무에 새가 새긴 ‘怨(원)’이라는 글자를 보고 어명안찰사를 보내 사정을 살피게 한다.

 

안찰사는 접동새의 인도를 받아 경상도지방으로 내려가 강씨의 원수 이화삼을 찾아낸다. 강씨의 재산을 가로채어 부자가 되어 있던 이화삼은 강씨의 유복자인 이효자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 뒤 이효자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지만, 마침 왜적 평수길의 침입으로 임금을 모시고 피란하던 중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간다. 왜왕의 신하 되기를 거부한 이효자는 유배당한다.

 

이효자의 아들 필식은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가서 아버지를 구출하여 온다. 임금은 필식의 효행을 칭찬하고 그를 안동부사에 임명한다. 필식은 선정을 베푸는 업적을 남기고 퇴임하여 부모를 모시고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

 

이 작품은 단편이지만, 한 집안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강씨의 죽음과 원혼이야기가 전반부의 중심을 이룬다. 후반부는 강씨의 아들 이효자가 임진왜란을 만나서 일본에 잡혀간 것과 이효자의 아들이 그를 구출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에는 민간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신원설화(伸寃說話)’와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충신설화’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이효자가 일본왕의 신하 될 것을 거부한 내용에서 반일감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舊 金東旭 소장본)에 있다. 

 

≪참고문헌≫ 아랑型說話考(金基鉉, 새국어교육 14, 1971), 寃魂型傳說硏究(姜秦玉, 口碑文學 5,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월 시의 한(恨)과 민요와의 관계 

 소월 시의 저변에 흐르는 한(恨)은 한민족의 심층에 깔린 정서이다. 이것은 고려속요나 시조에서 살펴볼 수 있거니와, 그 외에도 구전(口傳)하는 민요나 민담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여러 민요를 살펴보면 소월이 그의 시에서 노래한 이별의 한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요에 내포된 한의 정서는 특히 비기능요(非機能謠-노동요 같은 어떤 기능성을 띤 노래가 아닌 민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한국 민요의 정서가 소월 시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은 여러 평가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김소월의 시사적(詩史的) 위치 

김소월의 시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민요적 율격에 밀착되어 있다. 표면에 그리움, 슬픔, 한(恨) 등 비극적 사랑의 정감이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심층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고자 하는 초극(超克)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참뜻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소월 시는 서구 편향성의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서 한국적인 정감과 가락의 원형질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민족시, 민중시의 소중한 전범(典範)이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향토성(鄕土性) : 그의 시는 거의가 향토적인 풍물, 자연, 지명을 소재로 삼고 있다.

(2) 민요풍(民謠風) : 오랜 세월 동안 겨레의 정서 생활의 가락이 되어 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졌다.

(3) 민족 정서(民族 情緖) : 시의 주제와 심상은 민족의 설움과 한(恨)의 정서를 활용, 민족의 보편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소월의 시 세계 

 김소월의 시는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와 민요적 율격에 밀착되어 잇다. 표면에는 그리움, 슬픔, 한 등 비극적 사랑의 정감이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정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심층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고자 하는 초극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소월의 시는 서구 편향적인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서 한국적인 정감과 가락의 원형질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민족시, 민중시의 소중한 전범이 된다. 그의 시는 우리의 향토적인 풍물,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의 가락이 되어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의 주제와 심상은 민족의 설움과 한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정식(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성도(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한때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 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이돈화(李敦化)·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시작활동은 1920년 ≪창조 創造≫에 시 〈낭인(浪人)의 봄〉·〈야(夜)의 우적(雨滴)〉·〈오과(午過)의 읍(泣)〉·〈그리워〉·〈춘강 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작품발표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년 ≪개벽≫에 실린 〈금잔디〉·〈첫치마〉·〈엄마야 누나야〉·〈진달래꽃〉·〈개여울〉·〈제비〉·〈강촌 江村〉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삭주구성 朔州龜城〉·〈가는 길〉·〈산 山〉, ≪배재≫ 2호의 〈접동〉, ≪신천지 新天地≫의 〈왕십리 往十里〉 등이 있다.

 

그 뒤 김억을 위시한 ≪영대 靈臺≫ 동인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 무렵에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을 게재지별로 살펴보면, ≪영대≫에 〈밭고랑 위에서〉(1924)·〈꽃촉(燭)불 켜는 밤〉(1925)·〈무신 無信〉(1925) 등을, ≪동아일보≫에 〈나무리벌노래〉(1924)·〈옷과 밥과 자유〉(1925)를, ≪조선문단 朝鮮文壇≫에 〈물마름〉(1925)을, ≪문명 文明≫에 〈지연 紙鳶〉(1925)을 발표하고 있다.

 

소월의 시작활동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1925년 5월 ≪개벽≫에 시론 〈시혼 詩魂〉을 발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집에는 그동안 써두었던 전 작품 126편이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그의 전반기의 작품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당시 시단의 수준을 한층 향상시킨 작품집으로서 한국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민요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생에 대한 깨달음은 〈산유화〉·〈첫치마〉·〈금잔디〉·〈달맞이〉 등에서 피고 지는 꽃의 생명원리, 태어나고 죽는 인생원리,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원리에 관한 통찰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시 〈진달래꽃〉·〈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먼후일〉·〈꽃촉불 켜는 밤〉·〈못잊어〉 등에서는 만나고 떠나는 사랑의 원리를 통한 삶의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민요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생에 대한 인식은 시론 〈시혼〉에서 역설적 상황을 지닌 ‘음영의 시학’이라는, 상징시학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집 ≪진달래꽃≫ 이후의 후기 시에서는 현실인식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부각된다.

 

민족혼에 대한 신뢰와 현실긍정적인 경향을 보인 시로는 〈들도리〉(1925)·〈건강(健康)한 잠〉(1934)·〈상쾌(爽快)한 아침〉(1934)을 들 수 있고, 삶의 고뇌를 노래한 시로는 〈돈과 밥과 맘과 들〉(1926)·〈팔벼개 노래〉(1927)·〈돈타령〉(1934)·〈삼수갑산(三水甲山)-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1934) 등을 들 수 있다.

 

시의 율격은 삼음보격을 지닌 7·5조의 정형시로서 자수율보다는 호흡률을 통해 자유롭게 성공시켰으며, 민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독창적인 율격으로 평가된다. 또한, 임을 그리워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의 목소리를 통하여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적 정감을 눈뜨게 하였다.

 

1981년 예술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시비가 서울 남산에 세워져 있다. 저서로 생전에 출간한 ≪진달래꽃≫ 외에 사후에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 素月詩抄≫(1939), 하동호(河東鎬)·백순재(白淳在) 공편의 ≪못잊을 그사람≫(1966)이 있다. 

 

≪참고문헌≫ 文學과 人間(金東里, 白民文化社, 1948), 現代詩論(鄭漢模, 民衆書館, 1973), 꿈으로 오는 한 사람(吳世榮編, 文學世界社, 1981), 詩와 想像力의 構造(金賢子, 文學과 知性社, 1982), 金素月硏究(申東旭編, 새문社, 1982), 韓國現代詩人硏究(金載弘, 一志社, 1986), 임과 집과 길(柳宗鎬, 世界의 文學, 1977.봄호), 金素月全集(金容稷,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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