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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 김소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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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소월

성격 : 민요적, 전통적, 관조적,낭만적

어조 : 애상적, 영탄적 어조

심상 : 회화적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기 - 자연의 순환 - 생명의 탄생
  승 - 고독한 자아의 운명적인 모습
  전 - 고독을 긍정하고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 - 꽃, 새 - 고독하고 순수한 존재
  결 - 자연의 운행과 순환 - 생명의 소멸
-    (1연) : 삶이라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꽃'은 쉼없는 생성의 순환 작용을 하며, '산'은 존재의 만상(萬狀)을 포괄하는 우주적 공간이자 시적 자아의 인생관이 반영된 구체적 삶의 현장을 의미한다.

(2연) : 꽃과의 거리감이 나타난다. 생명체의 대유물(代喩物)인 꽃과의 시적 자아의 거리감을 '저만치 혼자서'라는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써 나타내었다. 이 때의 거리감은 자연과 인간, 존재와 존재의 상호 격리된, '접근할 수 없는 물리적 거리이자 정감의 거리인 소외 의식으로 이해된다.

(3연) : 꽃과 새와의 거리감을 나타낸다. 위의 거리감을 구체화함으로써 절대 고독에 처한 시적 자아를 엿보게 된다. 산속에 존재하는 '새'는 근원적인 슬픔을 지닌 탓에 아름답게 핀 '꽃'도 슬프게 보일 수 있고 꽃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울 수도 있다. 따라서 '새'는 고독과 연민의 시적 자아로, 꽃은 생명체의 대유로 볼 수 있다.

(4연) : 소멸의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꽃의 연속적인 소멸은 1연의 쉼없는 생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계절적인 '봄, 여름, 갈'의 순환에 따라 인생이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고독을 '~지네'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특징 : 반복적 변조, 규칙적, 회화적

주제 : 인생과 자연에서 느끼는 존재의 근원적 고독감 

출전 : 진달래꽃, 매문사, 1924 

 

 

내용 연구

산['산유화'는 산에서 피는 모든 꽃을 상징한다. '꽃'이 생명체 혹은 존재를 상징한다고 볼 때 '산'은 이러한 존재의 생성과 소멸이 반복 순환되는 근원적 고독감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임]에는 꽃[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피네[화자의 감정이 절제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종결 어미. '-네'의 반복으로 운율 형성]


꽃이 피네
갈['가을'의 준말. 율격을 의식하고 쓴 말(시적 허용)] 봄 여름 없이[순서를 바꾼 것은 운율을 살리기 위해서]
꽃이 피네(꽃의 생성)     - 자연의 순환 - 기 - 생명의 탄생 - 갈 봄 여름 없이 산에서 피는 꽃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화자의 정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시어. 저만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자연과 서정적 자아와의 거리감을 표현한 말] 혼자서 피어 있네(꽃과의 거리감으로 이 구절의 '저만치'에 대해서는 '작중 화자와 꽃 사이의 거리', '인간과 자연의 거리'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혼자서'라는 말과 함께 해석해 볼 때, 이것은 작중 화자와 꽃 사이의 거리이자, 하나의 꽃과 다른 꽃들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혼자서'의 의미를 살펴볼 때, 이 시에서 꽃이 '저만치 혼자서' 있다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와 거리가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 꽃이 다른 꽃으로부터도 떨어져서 외로이 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나'만이 아니라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도 외로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저만치'는 거리가 아니라, 중의적(重意的) 표현으로 보아 '저처럼'이라는 양태를 나타낸다고 보는 설도 있다.)   - 존재의 고독한 모습 - 승 - 저만

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꽃과 마찬가지로 고독한 존재, 서정적 자아의 감정 이입이 된 대상. '새' 역시 자아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즉, 화자의 감정이 새에게 부여되어 있는 표현이다. 그 감정은 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이 다 외로운 대로 쓸쓸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산다고 하네, 꽃과 새와의 거리감)[ 2연에서 화자는 꽃과의 거리 '저만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꽃과 만나는 화해(和解)의 모습으로 결국 산(山)이라는 영원자(永遠者)에 포용되는 일체감을 나타내고 있다.]                  - 운명적 고독을 긍정하는 모습 - 전 -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작은 새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계절의 순서를 바꾼 의도는 자연의 시간을 뒤집어 낯설게 함으로써 변화를 꾀하고, 율격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이다.]
꽃이 지네(꽃의 소멸과 순환을 암시) - 자연의 순환 - 결 - 갈 봄 여름 없이 지는 꽃 - 생명의 소멸

갈 : '가을'의 준말. 율격을 의식하고 쓴 말(시적 허용)

저만치 : 저만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자연과 서정적 자아와의 거리감을 표현한 말

사노라네 : 산다고 하네

갈 봄 여름 없이 : 계절의 순서를 바꾼 의도는 자연의 시간을 뒤집어 낯설게 함으로써 변화를 꾀하고, 율격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이다.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이 구절의 '저만치'에 대해서는 '작중 화자와 꽃 사이의 거리', '인간과 자연의 거리'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혼자서'라는 말과 함께 해석해 볼 때, 이것은 작중 화자와 꽃 사이의 거리이자, 하나의 꽃과 다른 꽃들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혼자서'의 의미를 살펴볼 때, 이 시에서 꽃이 '저만치 혼자서' 있다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와 거리가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 꽃이 다른 꽃으로부터도 떨어져서 외로이 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나'만이 아니라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도 외로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저만치'는 거리가 아니라, 중의적(重意的) 표현으로 보아 '저처럼'이라는 양태를 나타낸다고 보는 설도 있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 서정적 자아의 감정 이입이 된 대상. '새' 역시 자아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즉, 화자의 감정이 새에게 부여되어 있는 표현이다. 그 감정은 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이 다 외로운 대로 쓸쓸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꽃이 좋아 / 산에서 / 사노라네. : 2연에서 화자는 꽃과의 거리 '저만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꽃과 만나는 화해(和解)의 모습으로 결국 산(山)이라는 영원자(永遠者)에 포용되는 일체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단지 깊은 산 속에서 홀로 피는 꽃을 사실적으로 노래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산유화'는 김소월 자신과 그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와 같은 한국인들이 사는 모습 -가난하고 고독하고 권세 없는, 모든 명리적(名利的)인 현실과는 저만치 거리하여 떨어져 있으나 제 보람에 웃고, 제 보람에 울며, 가장 맑고 가장 순수하게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에 비유될 수 있는 하나의 영상으로서의 '산유화'를 노래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산유화'에다 위에서 설명한 의미를 부여하여 노래한 것이다.

 

 또한 김소월은 자연에서 조화와 순환의 법칙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 같은 환경을 지닌 죄 없고, 가난하고, 아름답고, 외롭고, 그 자체의 가치밖에는 지닌 것이 없는 사람들의 순수한 생애를 간접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임'으로 상징되는, 김소월의 부름의 대상에 대한 정서는 일반적으로 억제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산유화'에서는 이와 달리 감정을 절제하고, 인간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그리움의 세계를 '저만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계절의 순환을 안고 있는 산(인생, 자연) 속에 피는 꽃과 '꽃이 좋아 산에 사는' 시적 자아(새)는 되풀이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단 한 번도 새로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절대 고독의 그늘에서 다만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시적 자아는 '꽃이 피네', '꽃이 지네', '저만치' 등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써 고독의 절규를 감추며 자연 현상을 관조적으로 읊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사색의 태도와 깊이를 더하게 한다.

 

 또, 감정과 언어의 절제 못지 않게 흔한 말을 쓰되 의미 전달에 적절한 리듬을 잘 살렸다. 특히 이 작품은 소월 시의 여러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꽃을 통하여 이 세상 모든 곳에 가득 차 있는 근원적 외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겉모습은 그러한 의미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매우 단순해 보인다. 첫 연과 마지막 연은 형태가 거의 같은데, 앞에서는 가을·봄·여름 없이 꽃이 핀다고 하고, 뒤에서는 또 꽃이 진다고 한다. 산에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범상한 일이듯이 그것을 노래하는 이 부분의 말씨 또한 평범하여 보인다. 그러나 이 평범함 속에는 만만치 않은 의미가 들어 있다.


 그 실마리는 둘째 연과 셋째 연에 나타난다. 특히, 둘째 연이 주목된다. 여기서 김소월은 산에 피는 꽃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다고 한다. 이 때 `저만치'란 대체 무엇과 무엇 사이의 거리일까? 어떤 해석자는 작중 인물 `나'와 꽃 사이의 거리, 즉 인간과 자연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만으로는 그 다음에 있는 `혼자서'라는 말이 불분명하다. `혼자서'란 주위에 벗삼을 만한 누가 없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꽃이 `저만치 혼자서' 있다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와 거리가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 꽃이 다른 꽃으로부터도 떨어져서 외로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나'만이 아니라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도 외로운 것이라고 시인은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외로움은 셋째 연의 새에게서 다시 나타난다. `산에서 우는 작은 새'는 꽃이 좋아서 산에 산다고 한다. 그러나 둘째 연에서 보았듯이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외로운 존재이다. 그러니 새도 외롭지 않을 수 없다. 새는 꽃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마치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저 혼자만의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런 뜻에서 작은 새는 `나'와 마찬가지의 외로움을 가진 존재이다.


이렇게 꽃도 새도 사람도 외로운 세계에서도 모든 사물은 주어진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 안에서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이 다 외로운 대로 쓸쓸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이 이 작품에 깃들이어 있는 은밀한 주제이다. [해설: 김흥규]

 

이해와 감상2

 이 시의 주제는 한 마디로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극복할수 없는 거리에 대한 자각과 그로 인한 고독과 소외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산' 으로 표상된 세계는 무한한 순환적 질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자기 충족적인 세계(자연)이다. 이 세계 속에서 꽃은 끝없이 피고 지지만, 이러한 소멸과 생성의 운동은 그 자체가 이 세계의 순환적 질서와 일치하는 것이다. 

 

 시적 자아는 이 세계의 순환적 질서, 그리고 그 무한성에 합일되고자 하는 강열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결코 합일 될 수 없다. 시적 자아는 유일한 존재이며, 단독자(單獨者 )이자 개별자(個別者)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적 자아와 세계와의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은 3연의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에서 절묘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이 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저만치'라는 부사 속에 함축된 시적 자아의 고독과 소외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화 자료

이 시의 어조
 

 시인은 자연에 합일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산이라는 대자연에 포용되어 있는 꽃과 새를 한없이 부러워하는 서정적 자아의 소외와 고독에 공감하고 동경하고 있다. 자연과의 합일을 소망한다.

 순간자, 찰나적인 존재인 서정적 자아인 '나'는 영원자, 영원한 존재인 산과, 그 산에 합일되어 있는 꽃과 새를 심히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서정적 자아가 고독해 하는 이유다.
 

이 시의 율격
 

 율격은 3음보격으로, 동량적(同量的) 반복에 따른 대립 구조를 보이고 있다. 곧, 산에는/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여름 없이/꽃이 피네//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혼자서/피어 있네//와 같은 율격 구조이다. 이와 같은 운율과 연 구성은 이시의 1연과 4연에서 제시된 내용인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반복적인 순환과 긴밀하게 조응하는 것이다.
 

이 시의 형태
 

 이 시의 각 연은 4줄씩 배분되어 등량감(等量感)을 표출, 정서를 단선적(單線的)으로 전개함으로써 3음보격의 속성인 슬픔을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으며, 단순한 등량 구조를 넘어 회화적(繪畵的) 균제미(均齊美)로써 완결된 율격적 승화를 실현하고 있다. 이것을 형태로 나타내 보이면, 시행의 배열과 연의 구조가 규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소월의 시사적(詩史的) 위치
 

 김소월의 시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민요적 율격에 밀착되어 있다. 표면에 그리움, 슬픔, 한(恨) 등 비극적 사랑의 정감이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심층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고자 하는 초극(超克)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참뜻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소월 시는 서구 편향성의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서 한국적인 정감과 가락의 원형질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민족시, 민중시의 소중한 전범(典範)이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향토성(鄕土性) : 그의 시는 거의가 향토적인 풍물, 자연, 지명을 소재로 삼고 있다.

 (2) 민요풍(民謠風) : 오랜 세월 동안 겨레의 정서 생활의 가락이 되어 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졌다.

 (3) 민족 정서(民族 情緖) : 시의 주제와 심상은 민족의 설움과 한(恨)의 정서를 활용, 민족의 보편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만치에 관한 논의

 김동리는 "소월이 '저만치'라고 지적한 거리는 인간과 청산과의 거리이며, 이 말은 다시 인간과 자연 혹은 산에 대한 향수의 거리라고 볼 수 있다"고 하여 소월의 고독을 청산과의 거리로 보았다. 이에 대하여 김춘수는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자유 의지에 의해 새로운 자기를 스스로 창조해 가는 '대자적' 존재인 인간은, 자유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받기 때문에 때로는 '즉자적' 존재(외적인 힘에 의해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김소월의 경우도 즉자적인 존재인 꽃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김용직은 '저만치'를 애매성을 지닌 시어로 보고,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한편 오세영은 이 말을 '역설적 거리'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소월 시에 표상된 거리감을 자아와 세계 혹은 주관과 자연의 불연속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문덕수는 '저만치'를 '추상적 거리'라고 말하고 '그것은 소월이 자연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했음을 증거하는 거리'이며 '소월이 끝내 구원을 받지 못한 비극적 거리요, 조국을 상실한 현실 상황을 끝내 초탈하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저만치의 지시적 의미

1. 저만한 정도로: 그는 저만치 떨어져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2. 저쯤 떨어진 곳으로: 저만치 가 있어라.

저만치의 함축적 의미

산유화에서 저만치는 거리감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저만큼’, 또는 상태나 모양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저렇게로 해석할 수 있다.

저만치의 다양한 의미

저만치의 다의성(多義性, ambiguity)_

저만큼으로 해석: 화자가 저만치’[저만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거리감] → 화자와 꽃의 거리[인간과 자연의 거리 = 자연에 동화되고자 하는 갈망]

저렇게로 해석: 화자가 꽃처럼 그 무엇과 저만치’[저렇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다른 꽃들과 떨어져 홀로 피어 있는 꽃의 상태나 모양] → 화자와 그 무엇과의 거리[존재의 근원적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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