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전통(傳統, Tradition)의 개념
오랜 과거가 현재에 물려준 신념, 관습, 방법 등, 오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한 집단의 ‘문화’를 현재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의 관련성에서 바라본 것. 전통은 이렇게 현재까지 미치는 전반적인 흐름인 동시에, 여러 가닥의 적은 흐름들을 포괄하고 있다. 문학의 전통은 그 한 가지이며, 문학은 문학대로 또한 여러 적은 가닥들을 포함한다. 이 적은 가닥들이 또한 적은 전통을, 즉 현재에 미치는 흐름을 형성한다. 우리는 시조라는 장르의 전통이 현재에 미치는 흐름을 형성한다. 우리는 시조라는 장르의 전통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어떤 의의가 있는가, 다시 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으며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라는 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향가라는 신라 시대의 시(그 형식과 정신)의 전통을 논한다면, 그것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어떤 문화적 유산에 숨기어 있는가를 논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문학사가 조윤제는 한국문학의 기질적 전통은 ‘은근’과 ‘끈기’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 주장은 옛 문학과 오늘날의 한국 문학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고는 전통으로 내 세우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문학사 전체를 규정하는 단일한 전통론은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4‧4조라는 율격의 전통(형식), 전원주의의 전통(문학적 사조)등은 과거 문학의 해석뿐만 아니라 현대 문학에 대한 조명 및 미래에 대한 관망을 상당히 가능케 해준다.
그런데 전통이란 말, 특히 ‘전통적’이라는 형용사는 때로는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독창성이 없는’, ‘보수적’, ‘반동적’, ‘회고적’ 등등 나쁜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전통에 대해서는 반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전통에 대한 논의는 전통이라는 개념의 그 상반된 의미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집중되는 것을 본다. 분명히 과거가 물려주는 유산을 현재는 거부할 수는 없다. 현재의 문학은 우선 과거의 문학이 사용했던 언어를 계속 사용하지 않을 수 없고, 언어와 동시에 그 표현력과 표현 내용을 많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중압에 비하면 현재에 속한 개인의 독창력이라는 것은 대단히 미미하다. 그러나 한편 과거의 중압이 미치는 초점은 막연한 현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작품 창작에 임하고 있는 개별 작가들이다. 개별 작가가 전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엘리어트는 개인의 ‘역사 의식’을 들어 유명한 설명을 하였다. 개인의 역사 의식이란 과거의 과거스러움과 또한 그것의 현재스러움을 투철하게 깨닫고 자기의 개체스러움, 유별남을 계속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비개성주의 문학론이 생긴다.) 이러한 자기 소멸은 무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날카로운 역사 의식을 가지고 애써 결단한 결과이다. 전통은 비유하자면 오래 살아있는 고목으로서 그 본체(아이덴티티)는 변함이 없으나 해마다 새로운 가지가 돋아남으로 말미암아 엄밀한 의미에서 그 전체적 형체는 끊임없이 변모한다. 새 가지는 지엽적 현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큰 등걸과 뿌리와 생명적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 즉 새 가지는 뿌리와 등걸에 철저히 소속될 때(개별성의 소멸)의의가 있지만, 또한 그 나무로 보면 새로운 성장임에 틀림없고, 그러한 새로운 성장이 많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나무는 계속 살아남게 된다. 엘이어트는 ‘전통은 그저 상속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을 갖기 원하거든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통을 살아있는 힘으로 삼기 위하여서는 그냥 묵수하든가 답습해서는 안 되고 현재의 내가 열심히 연구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의 전통은 과거의 유산을 깊이 받아들인 현대 작가에서 뜻하지 않은 형태를 취하여 나타날 경우가 많고, 오히려 그런 경우가 전통을 창조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진정 옳을지 모른다. 과거가 물려난 문학적, 문화적 유산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존경이 반드시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닮은 까닭으로 낳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는 까닭으로 해서 그 전통은 더욱 다양하게 번성한다.
▷ 이상섭, 문학 비평 용어 사전, 민음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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