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전상국 - 아베의 가족(엄숙주의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반응형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아베의 가족
엄숙주의에 대하여
金允植

 

 

1. 작가의 소명의식

 「동행(同行)」(1963년)에서「아베의 가족(家族)」(1979년)까지 16년의 거리와 경력을 가진 작가 전상국(全商國)을 검토하는 일은 우리 소설사에서는 퍽 긴요하다. 여기서 우리는〈우리 소설사〉라는 표현을 썼거니와 이런 진술 속에 우리 소설의 정통으로서 엄숙주의 혹은 반 작품성(半作品性)이라는 이름의 한 성격의 의미가 내포된다. 우리의 근대적 소설사는 나라의 잃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인식함이 보통일 것이며, 따라서 소설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 민족의 생존방식의 문제가 알게 모르게 작용되었다. 계급주의 이데올로기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든 반식민주의를 향한 저항의 자세가 창작 방법론을 암묵적인 상태에서 뒷받침하고 있었다고 판단되며, 이로 인해 공적인 것, 민족적인 것을 창작의 주류로 승인해 왔다. 이러한 것의 축적은 이미 하나의 힘이자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띤 것이기도 하여 긍정적으로 작용되었지만, 또한 부정적으로도 작용되었음이 사실로 인정된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인 이상, 칼 만하임의 지적대로, 허위의식을 깡그리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서는 이러한 공적인 것, 민족적인 것, 다시 말해 민족사와 관련된 역사성이 하나의 정통성이랄까 그런 권위를 얻어 오고 있는 것이 사실로 인정된다. 이 속에 허위의식이 얼마나 끼어 있을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사람들은 얼른 이런 형상을 소재주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 소설의 근대적 성격이 역사에의 책임을 의식함을 중요한 과제를 삼아 왔다는 것, 그러한 계기가 육이오 이후 소위 1950년대(전후세대)에 와서 불식되기는커녕 더욱 강화되어 왔음을 또한 부정하기도 어렵다.

  관점에 따라서는 우리의 소설다운 출발이 전후세대 이후라고 보아질 수도 있지만 작가의 역사에서 소명의식이랄까 사명감 같은 것을 문제삼을 적이면 1950년대는 오히려 작가의 소명의식을 대범하게 보아 앞 세대에서 물려받았거나 더욱 보강하였음에 틀림없다. 이를 엄숙주의라 부를 수가 있다. 우리 소설사에서 이 엄숙주의는 하도 정통성으로서 완강한 것이어서 작가는 물론 독자도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을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러한 소재나 제재는 그 자체가 긴장을 띤 것이어서 창작되기도 전에 이미 예술의 자리에 올라서 버린 형국을 취한다. 육이오의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든가 분단 문제라든가 그런 민족적 터부 에서 제재를 취하면 영락없이 그 작품은 소재만으로도 이미 독자나 작가를 압도해 버린다. 여기에는 많은 비판과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람 눈을 속이는, 덕지덕지 붙은 허위의식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숙주의는 소설사 내지 문학사의 주류임에도 변함이 없다. 어째서 그러한가를 우리는 계속 물을 수 있는데 그러한 물음은 창작 방법론에서도 오며, 문학적의 관습의 힘에서도 오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작가가 창작에 임할 적에는 자기가 체득한 제재나 주제에만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사적 축적이 막강한 힘으로 작용하여 들어오고 있다. 독자의 경우도 같다. 비유가 꼭 적절하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혁명 후 소련 문학은 그들 정부 당국의 검열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유별나고 엄격했거니와, 이런 현상은 혁명 이전의 짜르 독재 아래서의 철저한 검열제도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러한 전통을 가진 곳에서는 작가나 독자의 의식은 그러한 어떤 장치의 그물에 알게 모르게 낯익어서 창작 방법상의 모종의 특질을 형성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작품의 제재란 어쩌면 대부분 그 나라 문학사 자체가 되는 것임을 우리는 자주 잊고 있다. 가끔 책상물림들이 있어, 문학개론 수준의 지식을 내세워 문학 예술설을 주절대는 것을 볼 경우도 있거니와 문학은 그 나라 문학의 버릇이나 인식의 정도를 고려에 넣지 않는다면 모조품 논의에서 멀어지지 못한다. 어떤 외국 이론가는 예술적·시인을 예언자로 다루는 것을 센티멘털한 무지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이 소속된 사회나 집단의 문학적 관습을 알아내는 일이다. 이 점을 건너 뛴다면 공허한 울림에 멈출 따름이다.

 2. 엄숙주의의 계보

  작가가 역사에의 책임을 나누어 갖는 소명의식의 계보는 대략 다음 두 가지로 나눠 살필 수 있다. 첫째는 인간다움의 회복이랄까 민주주의적인 것으로서, 1960 년대이래 집요하게 추구된 계보이다. 보통 참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 것으로서 어느 면에서는 김수영(金水暎)으로 대표시킬 수도 있음 직하다. 인간다움의 회복은 평등의식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며, 현실의 부조리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임으로써 늘 몸이 가벼운 것이다. 몸이 가볍기에 민첩하지만, 그들의 출발점이 모더니즘이었다는 점은 결코 무시될 수 없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예술의 속성을 가장 완벽하게 지닌 것이기에 가장 난해하면 가장 개인적 비교적(秘敎的)으로 흐르는 것이어서, 이를 극복한 단계에서도 여전히 몸이 가벼워 민첩함을 과시한다. 그 민첩성이 1960년대 우리 문학계를 휩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편이냐 하면 여전히 한국적인 상황보다도 보편적 역사의 큰 방향성을 향한 것이어서 추상적임을 면하기 어려웠음도 사실로 시인된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 이 계보에서는 특출한 작가 황석영(黃晳暎)을 만나게 된다.「객지」(1071년)라든가「한씨년대기」등 괄목할 만한 성과는 경박성을 우려하며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보편적 방향성을 가장 확실히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보는 계속 우리 문학의 엄숙주의를 지탱하는 등뼈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동문제를 다룬 작품이 그 문제가 해소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던가, 평등 추구의 이념이 역사상 과연 실현되자마자 잿더미로 변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는 논법이 증명되지 않는 한, 엄숙주의의 그 푸름의 색깔은 결코 바래질 수 없다.  

  둘째로, 엄숙주의의 또 다른 것으로는 보편적 방향성과는 약간 구별되면서 한국적인 특수성(역사성)에 주된 관심을 두는 계보를 들 것이다. 안수길(安壽吉)의「북간도」(1961년)라든가 선우 휘(蘚于煇)의「불꽃」(1957년)을 예로 든다면 사람들은 대번에 이 계보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계보에는 분단 문제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어서, 작가와 독자도 이런 문제가 얼굴을 내밀기만 하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버림이 보통이다. 더구나 이런 주제는 7·4공동성명 이후에는 더욱 그 얼굴을 자주 드러내는 것이어서 서서히 그 강도를 잃어 가기에 이르렀다. 해방 30년도 지나고, 육이오 30년도 지난 시간성 속에서 분단의 아픔은 일종의 환상을 낳아, 그 환상 속에 안주하고자 하는 센티메털리즘을 조성하는 기미마저 있다. 이러한 판단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면 우리는 이 두 번째 계보 중, 분단 문제의 센티멘털리즘적인 것, 즉 진리 미달의 공허한 울림을 제기하는 자리로 옮겨 앉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분단 문제가 이데올로기의 기능으로 군림하여 허위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내기에 이른 것으로 볼 여지가 아주 없지 않았다. 그 대신 이에 대치하는 것으로  해방 공간에 있어서의 좌우익 이데올로기,  육이오에 있어서의 좌우익 이데올로기 문제가 크게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신상웅(新相雄)·김원일(金源一)·현기영(玄基榮)등의 작품들이  에 속하는 것이라면  에는 전상국을 대표적인 작가로 내세울 수 있다.  과  가 함께 한국사가 개인의 정신에 상흔으로 작용하여 그 개인의 성장사에 어떻게 흡수 변형되었으며, 그로 인한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문제점을 묻는 창작 방법론을 보여 주는 것으로, 가장 엄숙주의다운 풍모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닥의 엄숙주의 계보를 자세히 분석하기 전에, 1970년대에 있어 반엄숙주의의 풍조와 대비시켜 살피는 일이 일반성을 이해하는 지름길로 보인다. 그것은 1970년대 화려하게 등장한 작가 박완서의 모습을 살피는 일에서 발단을 삼을 만하다. 장편「나목」(1970년)으로 등장한 박완서의 「부처님 근처」(1973년)나「겨울 나들이」(1975년)등이 발표되었을 적에는 비평가들조차도 이 작가의 등장이 우리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든가 「지렁이 울음소리」계통의 작품이 현대 물질문명 비판 혹은 인간 소외의 일반적 주제로 흡수되는 듯한 것으로 보여진 이 여류작가의 작품에서 뭔가 새로움을 인식하기는 했으나, 정작「겨울 나들이」같은 작품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기 전에 이 작가의 다른 면이 너무 전면으로 나와 버렸던 것이다. 소위 그 다른 면이란 이 작가로 하여금 1970년대 중반 이후에 크게 활약케 한 대중성을 말한다. 우리는 물론 이 경우 대중성을 통속성과는 구별함을 물론이며, 뒤에 바로 설명하겠지만 차라리 반엄숙주의라 표현함이 적당할 것이다.

 「겨울 나들이」의 내레이터인 〈나〉는 중년의 여인, 처자를 두고 월남한 무명화가와 결혼하여 딸을 낳고 살았는데, 출가한 딸을 모델로 하여 남편은 그림에 열중한다. 그 그림이 결국 이북에 두고 온 처자의 이미지임을 알아 차렸을 때〈나〉의 서글픔이랄까 섭섭함은 가눌 길 없어 훌쩍 여행이라고 떠난다는 게 온천장으로 왔고, 호텔도  버리고 일부러 자학증을 유발시켜 허름한 여인숙에 깃든다. 그 여인숙은 중년의 여인이 도리질만 치는 노파와 함께 사는 그런 곳이었다. 마치 이범선의 가작「오발탄」(1959년)에서의 〈가자!〉라는 말만 외치는 노파 모양. 〈수척했으나 흰머리를 단정히 빗어 쪽찌고 동정이 정갈한 비단 저고리에 폭신한 모직 스웨터를 걸치고 꼿꼿이 앉았는 모습에 특이한 우아함〉까지 느끼게 하고, 그렇기에 지극히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이 노파는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도리질뿐이었다. 노파의 이 도리질은 25년간 할 줄 모르는 노파의 이런 생리는 육이오에서 비롯된 발작증세였다. 육이오의 그런 발작 비극을 여기서 세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다. 그 후로 노파는 치매(癡 ) 상태에서 도리질만을 계속하면서 여태껏 살아 오고 있고 노파의 며느리는 외아들을 데리고 여인숙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이 고부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를 드러냄에 있어 이 작품은 놀랄 만큼 산뜻한 것이었다. 오직 서울서 대학 다니는 외아들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애태우면서도 정결하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이 여인 앞에 내레이터인〈나〉는 돌연 도리질하는 노파의 그 일이 하나의〈대사업〉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부처님 근처」도 육이오의 비극적 희생의 장본인 노파들이 등장하거니와「겨울 나들이」에서의 주제는 어느 누구의 작품 속의 그것보다 심각하면 했지 그 심각성이 처지거나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에서는 그러한 심각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모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나 작가의 사상 및 세계관과 창작 방법간의 모순은 물론, 사상 및 세계관과 일상적 삶과의 모순조차도 이 작가가 느끼지 않은 자리에서 창작에 임하고 있음에서 근본적으로 연유되었던 것이다(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 「창작 방법 논의에 대하여―현기영론」참고). 한 생활인으로서의 사상과 실천 사이의 모순·갈등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것만은 엄청나게 희귀한 일일 터인데, 이 작가 모양 세계관과 창작 방법 사이의 모순·갈등마저 일시에 초극해 버렸다는 것, 아니 그런 모순에 직면한 적조차 없었다는 것은, 혹은 적어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쁘게 말하면 이 작가에겐 작가 의식이라 흔히 부르는 그런 것이 아예 없으며, 따라서 작가의 역사에의 소명감이라든가 임무 같은 거룩한 명제는  실로 코웃음이 나오는 것일 따름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기에「부처님 근처」「겨울 나들이」또「카메라의 워커」를 쓰다가도 대번에「지렁이 울음소리」라든가 배추장수 아주머니 얘기도 쓰고,「조그만 체험기」같은 맥없이 주눅들린 여편네 얘기를 쓸 수도 있다. 이처럼 몸이 빠르다는 것은 또한 독자의 구미랄까 체질을 변화시킴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그것이 기품을 문제삼지 않은 저 1970 년대 적인 대중성의 정체성일 것이다. 분단이나 육이오 또 무슨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하여 씌어진 소설에서 작가의 얼굴이 하도 근엄하게 작품 뒤에 버티고 섰기에 독자들은 숨도 채 쉴 수 없도록 주눅들렸음이 부분적으로 사실이기도 하였다면 1970년대의 대중성은 이런 것에 대한 반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에의 책임이라는 이즘의, 문학의 소명의식은 많건 적건 그 밑바닥엔 우등생의식 혹은 엘리트의식이 깔려 있음이 틀림없다. 이런 해석은「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의 문맥에서 단순히 유추해 낸 판단이 아니다. 요컨대 박완서라는 한 특출한 작가의 출현은 종래의 엄숙주의라든가 엘리트의식을 의견이나 비난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작품 자체로서 가장 확실하게, 그리하여 결정적으로 비판해 놓았던 것이다. 참된 소설은 종래의 소설에 대한 비판이라 말해지는 것(가령 티보데가「돈 키호테」의 출현을 두고 한 지적)이라고 한다면 박완서의 작품도 비록 기품이 적다 할지라도 그런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음 직하다.

  이 천대받고 한쪽 구석으로 몰리기까지 한 것으로 보였던 엄숙주의가 1970년대 말기로 향하면서 다시 우람한 거봉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그런 문제적 작가로 우리는 전상국을 꼽음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 1970년대 중반에 팽배했던 상업주의가 산업화의 속도와 함께 필연적 현상이었다 할지라도 한국 문학의 많은 좋은 점을 부패시켰음은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12명의 작가 그룹으로 형성된《작단(作壇)》이 문단에 큰 세력으로 솟아오름에 우리가 새삼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엄숙주의가 비록 우리 소설의 주류에 틀림없다 할지라도 1970년대 상업주의 및 대중성의 세례를 깊이 받는 마당에서는 그 나름의 재정비랄까 새로운 내용의 충전이랄까 혹은 당면한 새로운 과제와 사태에 대처하는 유연성이 획득되지 않으면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아베의 가족」이 그러한 새로운 도전일 수 있느냐를 검토하는 일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또한 이른바 제3군으로서의《작단》의 그룹성이 이를 재촉하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3. 개인과 민족의 역사적 유착 현상

  강원도 홍천 출신의 작가 전상국(1940년)의 데뷔작「동행」은 눈 쌓인 겨울 강원도 시골을 배경으로 하여 씌어진 것으로 두 가지 점이 특징적으로 지적될 수 있다.

  첫째는 여로형(旅路型) 소설 구조에 입각했다는 점, 눈 쌓인 강원도 길, 고향 와야리까지 범인과 형사가 서로 신분을 감추고 동행하는 이 소설은 출발점에서 도달점까지의 여로의 길이와 사건의 길이가 가장 알맞게 배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로 한가운데 놓인〈고개〉로 하여금 사건의 고비에 해당케 함으로써 여로형 소설구조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운명이〈길〉이라는 구상적인 일직선 위에서 줄타기하는 형국이어서 광대의 줄타기 모양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실상은 낯선 눈 쌓인 밤길을 혼자서가 아니라 동무 삼아 걷는 그런 안정감을 획득하고 있다. 줄에서 떨어지면 광대가 죽거나 다치듯이 여로에서의 이탈은 파국을 의미한다. 줄타기놀이에서 그 줄이 높고 추락의 위험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흥미가 증대되듯이 소설 구조에서도 여로는 그러한 유추 위에서 구축되어 있다. 전상국에 있어 데뷔작이 이런 것으로 되었었다는 것은 지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엄숙주의를 가능케 하는 구조의 견고성이랄까 구조의 확실성, 또는 긴장을 동반한 안정감을 우리는 이끌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동행」속에 담긴 제재의 견고성과 긴장감을 들 것이다. 이 제재 및 주제야말로 이 작가의 정신적 외상이자 개념으로서의 육이오다.  

  "난 기어코 득술 죽이고야 만 것입니다. 거 왜, 사변 때 말입니다. 파리새끼 죽이듯 사람 막 쥐길 때 말이죠. ‥‥‥하여튼 난 득술 죽이고야 말았다 이겁니다. 허나 그뿐인 줄 아슈? 육친을, 즉 제  아비까지 잡아먹은 게 바로 나요. 이 최억구라는 인간입니다"(「동행」)

  이 대목에서도 잠깐 엿볼 수 있듯이 주인공 최억구는 마을에서는 가장 가난하고 천한 집안의 아들이다. 가진 자들에 의해 어릴 적부터 온갖 수모와 천대 속에서 자랐다. 육이오가 닥쳐 세상이 바뀐다. 동네에서 범죄자로 추방당한 무식하고 천하고 거친 억구가 나타나 정해 놓고 인민위원장이 되어 악질 반동들을 처단한다. 다시 국군이 와 닥치자 이번엔 마을 사람들의 보복에 의해 처형당하거나 야간도주를 하거나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억구의 법의 처단으로 징역살고 아비 원수를 찾아 다시 보복 살인하고 그 아비 무덤에서 죽으러 고향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 구조는 너무 도식적이어서 마치 저질의 텔레비전 소재의 그것과 가릴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이오를 이런 식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소설 구조상과 안정감과 함께 엄숙주의를 유발하기에 일단 필요한 방식이다. 그만큼 육이오의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강렬성을 말해 주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반공을 사회적 규범의식으로 갖고 잇는 우리 사회의 통념과도 일치될 수 있었다.

  처녀작「동행」이 갖는 견고성 혹은 안정감이 소설 구조에서도, 제재에서도 함께 연유되고 있었음을 위에서 잠깐 보았거니와 이 사실이 전상국에게 얼마나 기본적인 것인가를 우리는 그의 첫 번째 중편이자 작가적 한 단계를 마무리짓는 것으로 보이는「하늘 아래 그 자리」(1978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이 작품은 3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서울의 거물 여당 정치가의 대학생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고향이자 표밭이기도 한 강원도 산골 하암리에 간다. 하루에 한두 번 있는 시골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80여 리를 걷게 되는 대학생은 18년 만에 감옥에서 나와 고향 상암리(하암리와 마주보는 상놈 마을)에 가는 마필구라는 노인과 우연히 동행하게 된다. 이 제1부의 내레이터는 대학생〈나〉이며, 그의 입을 통해 여당의 거물인 아버지가 부정으로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획득했다는 것, 마을 문중에조차 비판 세력이 있다는 것, 이 모두는 표면상 풍수지리설에서 발단되었다는 것 등이 부분적으로 암시된다. 제2부의 시점은 마필구 노인이다. 18 년만에야 출옥하여 곧바로 고향으로 달려온 마필구 노인의 지난 한 평생이 육이오를 중심으로 하여 펼쳐진다.

  "동무가 하암리 책임자요?"

  그의 성분과 하암리에서 쫓겨난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감투를 씌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감투를 쓰고 당장 하암리로 치 뛰고 싶었다. 그때 그의 심정이 그런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더럭 겁부터 났다. 무슨 일이든 풀리지 않고 매몰차게 등을 돌리는 자신의 시운 불행이 뼈저리게 저려온 때문이다. 그가 감투를 쓰기를 머뭇거리자 그들이 몰아 붙였다.

  "이 사람, 하암리 살더니, 하암리 다 됐군!"

  "하암리 사람한테 거길 맡길 수야 없지!"

  "그렇잖고, 이렇게 혁명정신이 약한 친굴 시켜 봤자‥‥‥"

  그러면서 그들은 그에게 씌우려던 감투를 상암리 사람한테 맡겨야 하암리 반동분자를 모조리 잡아낼 거라는 얘기였다. 듣기에 벌써 상암리 사람들이 하암리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거였다. 거기다가 칼자루까지 쥐어 준다면 얘기는 더욱 달라질 것이다.

  그는 감투를 썼다. 하암리 인민위원회 위원장 겸 우촌면 내무서 하암리 연락원이 되어 그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하암리를 향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오면서 기죽은 얼굴을 했다.

  "눈이 있으면 봤을 거 아니어, 옛날에 웬수진 놈 찾아 개 패듯 죽여도 죄 안 되는 세상이란 말이여" (「하늘 아래 그 자리」)

  이 대목을 보면 사람들은 대번에〈아, 또 그 소리 군 !〉할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의 소설을 계속 읽어 온 독자라면「동행」의 주인공 최억구가 바로 여기서의 마필구 노인임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약간 신중한 독자라면「동행」의 최억구가 단독행위의 사건에 끝나 있고 망설임이 없는 단순성, 직선적 행동에 다름 아니었지만 마필구의 경우는 위의 인용에서 보듯 무엇보다 망설임이 동반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행동에 망설임이 동반된다는 것은 음미되어야 할 사항이 아니면 안 된다. 사람은 자기 혼자가 아님을 알아차릴 적에는 그의 행위를 망설임이 동반된다. 육이오라고 해서, 혹은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바뀌었다고 해서 간혹 예외도 있겠지만, 사람 축에도 못 드는 불한당 깡패가 일거에 인민위원장이 되어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다던가 아무에게나 총질을 감행한다는 투로 세상을 해석한다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하물며 모르는 사이에 인간 심리의 기미(機微)라든가 사회의 운용 법칙을 파악하는 고도의 훈련을 쌓았다는 전제에서 출발되는 작가에 있어서이랴.  

  마필구의 원수갚기의 망설임은 이 작가의 제재상의 성숙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만하다. 작가에 있어 제재는 극히 제약되어 있다고 했지만 그 제재는 심화됨으로써 깊고 넓어질 수 있음이 이에 증명된 셈이다. 마필구의 망설임은 그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 하암리와 상암리에 그가 함께 관련되어 있음, 또한 그의 맹인 조부, 외팔이 조상 등의 핏줄의 계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육이오로 인한 세상의 바뀜도 가진 자의 마을 하암리와, 없는 자의 마을 상암리가 함께 역사에 참여하며 성장하며 성장되고 있는 것, 따라서 서사적(敍事的) 공간 속에 모두가 놓일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마필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그의 자식을 위해 명당 자리에 자기의 조상 뼈를 안고 스스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행위 자체는 한갓 미욱한 미신에 불과하지만 이를 계기로 하암리 청년들과 상암리 청년들이 대치하는 장면의 드러남은 서사적인 공간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실마리로 파악될 수 있다. 소설이 감당할 수 있는 고유한 방식이 서사 공간(敍事空間)이라 한다면 또한 그것은 장편의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육이오로 인한 최억구나 마필구형의 인민위원장 앞잡이를 종래의 소설에서는 상투적인 흑백논리로 처리해 왔음을 우리는 익히 보아 왔거니와, 잘 생각해 보면 단편소설의 틀을 선택했음에서도 그 원인이 있다. 서사적 세계 속에 이 주제를 놓는다면 육이 오 속의 이데올로기 문제는 어느 쪽을 택하든 집단간의 갈등이어야 하고 따라서 망설임이 수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 전상국은 아직도 이 단계에까지 진입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느긋하지 못하고 늘 쫓기듯 여로의 끝에 닿고자 하는 것이다. 단편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는 그의 이러한 조급성은 치유되기 어렵다.「하늘 아래 그 자리」에서도 사정은 같다. 제 3부에서는 다시 제 1부와 같은 시점, 즉 대학생〈나〉의 시점으로 서술될 따름이다.〈나〉를 맞아들인 문중에서는, 김씨 문중의 국회의원인〈나〉의 아버지에 대한 비난이 들리고 상암리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빈틈없는 선거인 명단이 작성되어 있었고, 드디어 마필구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나〉는 그 북새통에 서울로 향해 출발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끝난다.

  작품「하늘 아래 그 자리」는 다음 몇 가지 의문에 대답하지 못하기에 실패작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시점을 바꾸기로 했는가가 첫째 물음이다. 윤흥길의「아홉 차례의‥‥‥」라든가 조세희의 「난장이가‥‥‥」와 같은 성공한 계열형 연작의 흉내를 내고자 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자기 세계를 확고히 갖고 있고, 또 언제나 재주놀음보다는 우직할 이만큼 정서대로 작품을 구성해 온 이 작가에 있어서는 위의 의문은 해명되기 어렵다. 시점의 이동 때문에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둘째로, 내레이터인〈나〉의 미숙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거물급 정치가의 막내아들인 대학생의〈눈〉으로 세상을 보여 주겠다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배부른 권력과 부 속에 자란 철부지 대학생이 데모대의 앞장을 섰다던가 아비를 약간 비난한다던가〈부끄러움〉을 한순간 느꼈다고 해서, 그런 피상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마필구의 고민을 이해한 듯이 그린다는 것이 과연 작가의 눈일 수 있는 것일까. 가령 그 대학생이〈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전제된 내 걸음은 그처럼 절실하고 당당한 것이었다. 또 한 사람, 우리들 이웃 어딘가에 살아있을 육손이 노인(마필구―인용자)의 아들을 만나고 싶은 지금 내 가슴속 열망 또한 할아버지와의 만남 못지 않게 절실한 것이었다.〉(「하늘 아래 그 자리」끝 부분)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작가의 주장〉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헛소리일 것이다. 〈나〉의 실감이 아니라, 작가가 염치도 없이 얼굴을 드러내어〈주장〉을 멋대로 하고 있는 형국이 아닐 것인가.

 4. 제재 선택의 불가능성

  이러한 작품성의 결함은 아마도 이 작가의 결벽성이랄까 자존심의 일부가 허물어졌거나 다소 과욕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음 직하다. 그런 것의 하나로 단편형식에 대한 신념과 그것으로부터의 이탈에서 오는 안정감 상실을 들 수 있다. 이 작가는 완강히 단편의 정석을 지켜왔다. 바로 이 결벽증이 그의 소설로 하여금 엄숙주의를 낳게 한 형식상의 강점이자 방법론의 힘이기도 하였다. 고쳐 말해 이 형식에의 강렬성이 내용의 엄숙주의를 유발케 한 것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전상국의 작품이 육이오라는 역사적 사건과 그것이 한 개인의 성장성에서 어떻게 큰 정신상의 상처를 입혔는가라는 것, 그로 인한 보이지 않는 비극의 아픔을 유래 없이〈밀도 있게〉혹은〈철저하게〉드러내었음을 두고 감탄해 왔음이 보통이었다. 과연 그러하다. 「맥」이 그러하다「고려장」이 그러하였다. 특히 이 두 작품은 가장 전 상국다운 것으로 평가될 수 있거니와 이와 같은 성공작이 단편형식의 강렬한 인식에서 달성 될 수 있었음을 살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고려장」의 내레이터 현세(「사형(私刑)」의 연장이기도 하거니와)는 셋방살이하는 말단 공무원이다. 워낙 고지식하여 셋방살이를 면치 못한다. 아이들 셋에다 망령 들린 노모를 모시고 산다. 그 노모의 얘기가 이 작품의 내용이다. 노모의 정신 이상 상태와 이를 참고 견디는 현세 가족의 인내가 한계점에 달했음을 작가는 놀랄 만한 집착성과 치밀성으로 부각시켜 놓았다. 마치 몰이꾼이 짐승을 몰아 가다가 취약점의 어느 길목에 그물을 쳐놓았거나 총질을 하듯 차근차근 순서대로 사건의 원인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방법으로 전개하는 것, 그것이 전상국의 장기이다. 이를 우리는 조작형(操作型) 창작 방법이라고 이름지어도 될 것이다. 이른바 〈답답한 완벽주의〉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거니와 이 자리에서 이 점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기로 한다. 이른바 조작형이란 조작적인 것(operation)과 관련이 있다. 원래 조작적이란 외과의의 전문 용어이다. 수술을 할 적에 취하는 외과의의 방식은 엄밀한 순서에 의해 이룩된다. 피부를 열고, 핏줄을 끊고, 신경 줄을 피하고 환부를 도려낸다. 목적을 달성한 후 이를 봉합하는 과정 역시 엄밀한 순서에 의해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훌륭한 작가나 작품 치고 이러한 정밀한 방법론에 입각하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전상국의 작품에 이런 용어가 알맞아 보이는 이유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그가 다루는 대상의 비정상적, 병적인 것, 혹은 비틀어진 것의 원인(환부)이 육이오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 더 자세히는 육이오로 인해, 혹은 그것과 관련된 일로 인해 벌어진〈주검〉그리고〈죽음〉과 직결되어 있음에 관련된다. 그 육이오와 그것과 관련된 일이 이데올로기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은 새삼 지적될 일이 못 된다. 우리 문학에서 육이오나 혹은 해방 공간에서의 좌우익 대립이 이데올로기적 이념 투쟁으로 파악된 작품은 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 황순원(黃順元)의「카인의 후예」(1953년)에서의 개털 오빠 청년이나 도섭 영감이 그렇고, 특출한 작품으로 평가된 박경리(朴景利)의「시장과 전장」(1964년)에서의 인텔리로 등장하는 주인공 공산주의자도 실상 낭만주의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전상국에 있어 육이오가 탈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은 그만의 특징이라 할 수 없다. 이 사정은「어둠의 혼」을 쓴 김원일(金源一)에서도 같다. 달리 말하면 도대체 우리 작가들에 있어 육이오는 한갓 천재지변일 뿐〈역사〉와는 별반 관련성이 없다고 비판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벼락이 쳤다던가 대홍수가 통과한 것과 가릴 바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제거한 육이오를 다루는 한도에서는 조만간 제재의 한계에 부딪치거나 작품의 빈혈상을 면하지 못한다. 사상 소설이 우리에겐 처음부터 금기로 되어 있었기에 이런 사태가 유발되었는지, 그런 문학적 전통 결여가 원인인지는 속단될 수 없지만 요컨대 이것은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엄숙주의가 되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유독 조작적인 방법이라고 말해지는 전상국의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주검〉과〈죽음〉의 육이오적인 결합에 관련되어 있다. 주검은 감각적인 세계이며〈죽음〉은 관념적인 세계이다. 전상국의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무식한 사람(농민이거나 여인이거나)이며 또한 반드시 내레이터와의 혈육 관계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기에〈죽음〉은 따라서〈주검〉으로만 부각된다.

  현세가 모친과 함께 허겁지겁 달려갔을 때는 논바닥에 서울 사람들의 구두 자국만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봇도랑에 거꾸로 처박힌 채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죽은 남편을 발견한 것은 현세 모친이었다.‥‥‥산 속으로 끌려가던 현세형이 손이 묶인 채 뛰었다. 현세 모친이 같이 뛰었다. 그러나 몇 발짝 못 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고려장」)

  그래, 한형은 많은 죽음을 우리한테 얘기했지. 자기 아버지가 빨갱이로 죽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도 남산 소나무에 목매달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 열 세 살 난 계집애,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흘러가면서 눈 덮인 길에서 목격한 여러 형태의 죽음, 아버지 발에 밟혀 죽은 7대 독자라는 그 어린아이, 피난민 수용소에서의 여동생의 죽음, 피난민 수용소에서의 여동생의 죽음, 강기슭 그 폐광 촌에서 열병으로 버리고 고향으로 떠나게 된 그날 아침 정임이 이모라는 처녀와 그 언니의 안개 속에서의 죽음‥‥‥.(「그 먼길 어디쯤」)

  이처럼 죽음은 관념의 형태로 체계화되거나 논리화하지 못하고 감각적 레벨에 닿아 있을 뿐이다. 그것은 어떤 자극만 주어지면, 생생한 이미지로 눈에 잡힐 듯이 되살아나는 것이어서 이 억제하는 힘이 약화되기만 하면 어제라도 표면으로 분출해 올라와 스스로는 물론 주변을 태워 버리는 화산의 용암과도 같은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이 용암을 막고 있는 지각의 압력을 이 작가는 빈틈없이 두들겨 보고 측정하고 점검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용광로가 분출될 수 있는 지각의 취약점을 민첩하게, 또한 순서대로 한 꺼풀 두 꺼풀 정을 치고 비위를 뚫듯 탐색해 들어간다. 이 과정이야말로 조작적이라는 표현에 알맞은 것이다.

  이러한 조작적 과정과 용암의 뜨거운 분출이 전상국이 보여 주는 단편의 형식상의 힘이며, 소위 결벽증일 것이다. 용암의 분출의 뜨거움이 실상 형식의 규제력에서 연유된 것이라는 유리의 가설이 만일 옳다면 앞에서 우리가 그의 중편「하늘 아래 그 자리」가 실패작이라고 한 이유의 해명을 이로써 한 셈으로 된다. 이 진술 속에는 이 작가의 조작적 방법론, 그 형식에의 결벽성이랄까 집중성으로 말미암아 중편이라든가 장편에의 전환의 어려움이 암시되어 있다. 동시에 이 진술 속에는 한국 소설의 주류에 속하는 엄숙주의가 장편에로 전화(轉化)되기가 극히 어렵다는 의미가 내포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엄숙주의란 제재나 주제가 가공되지 않은 채 긴장력을 획득해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제재나 주제 상태에서 이미 반 예술(半藝術)을 획득해 버렸기에, 달리 표현하면 제재나 주제가 그대로 물신적(物神的) 성격을 갖추어 버린 것이어서 형식의 통제도 이에 이끌려가기 쉬운 약점을 갖는다. 전상국의 경우 워낙 그의 형식에의 통제가 강했기에 어느 정도 균형을 취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 터였다.

  이런 상태에서 탈출해 나오지 않고는 장편에로 전화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억지를 부린다던가 기교를 도입한다던가 제재 및 주제를 변경할 수는 없다. 그러한 변경은 통속소설이랄까 멜로드라마 작가에게 가능한 일이지 진짜 작가에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리얼리즘(참된 작품이란 뜻에서의)이란 특정 작가가,  작가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사상 및 세계관과 창작 방법간의 모순 단계를 거치고,  그 다음엔 작가로서, 사상 및 세계관과 창작 방법간의 모순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전혀 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쳐 말해 작가에 있어 체험과 분리되지 않은 것은 제재 및 주제이며 이것은 임의로 선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작가에 있어 체험 영역은 극히 제약되어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혹자는 제재는 체험과 전혀 무관하여 상상의 영역이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런 것은 속견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한 작가는 같은 제재나 주제의 되풀이에 시중할 운명이란 말인가. 이 물음에의 답변은 원칙적으로는〈그렇다〉라고 말해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 장르의 속성이〈동어반복성〉이라는 점에서, 또 리얼리즘의 창작 방법상의 측면에서도 위의 사실은 수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렇다〉는 원칙은 많은 경우 여러 단서가 붙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작가에 있어 제약된 제재 및 주제는 심화·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전상국의「아베의 가족」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아베의 가족」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흠을 잡아낼 수 있다. 하버드 대학생 GI가 등장한다던가, 버스 정류장에서 한국인 여대생을 낚아챈다던가, 더구나 작품 끝에 가서〈이것이 한국의 참모습이다〉라고 내레이터가 뇌며 이 참된 모습을 미국 친구인 하버드 출신의 GI토미에게 보여 주겠다고 덤비는 것 따위는 상식에도 어긋나는 억지이며 과장이다. 마치 작가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도 물러서지 못하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꼴이어서 민망할 지경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아베의 가족」은 이 작가에 있어서는 물론 엄숙주의 계보에 있어서도 한 단계 성장을 보여 준 것으로 평가함에 인색할 이유가 우리에겐 없다. 한마디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제재 및 주제의 폭과 넓이의 심화·확대를 이룩한 것이다. 내레이터인〈나〉의 이복형제 아베는 육이 오 때 미군에 강간당한〈나〉의 어머니의 아들이었고,〈나〉의 가족이 몽땅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세계 일등 국가의 시민이 되었어도 여전히〈나〉와〈나〉의 가족은 아베를 떠날 수 없고 끝내〈아베의 가족〉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 기본 항은 작가 전상국의 제한된 제재 및 주제이다. 그러니까 작가에 있어 제약된 제재 및 주제의 심화와 확대는 늘 상보적(相補的)인 관계에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알아차릴 수 있다. 심화와 확대의 관계란 일정한 수준에 달하면 내용이 형식으로, 형식이 또한 내용으로 전화되는 변증법과 같은 관계임을 작품「아베의 가족」이 마침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소설사는 이로써 요란하기만 하고 실속 없었던 1970년대의 마지막 고비, 1980년대의 문턱에서 하나의 작품에 대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아베의 가족」이 이런 찬사에 값하려면 창작 방법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온전해질 수 있으리라. 이런 일은 작가적인 역량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이론(철학)의 뒷받침이 없이는 다시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5. 제재와 주제 사이의 철학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결국은 제재 및 주제의 심화·확대와 병행관계에 있을 것이다. 현기영의 「순의 삼촌」(1973년)이나 김원일의 장편「노을(1978년)」, 신상웅의「타자의 마을」등은 물론 전상국의 작품에서의 제재 및 주제가 대범하게 보아 육이오라는 것,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제재와는 거리가 30년에 접어들였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30년이면 법적 시효가 지난 것이어서 이제는 다소 묻혔던 사건을 거론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풍기려고 애를 쓴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일은 실상은「순이 삼촌」의 경우만을 제하면 작가의 엄살에 가까운 것임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30년의 법적 시효와 그들이 내세운 제재 및 주제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자세히 보아 온 바와 같이 육이오 때의 사건이나 그 이전의 좌우익 관계를 다룬 사건에서 한결같이 이데올로기 문제는 회피하고 기껏해야 동네의 천대받던 변두리 인간이 인민위원장이 되어 옛 상전이나 자기를 구박한 자들에게 원한을 갚는 극히 도식적인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오락용 텔레비전물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태로 봄이 오히려 솔직한 것이다. 까막눈인 백정이 일제시대 징역을 살고 나와서는 빨갱이에 이용당해 죽는다는 얘기라든가, 머슴이나 깡패나 백정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공산당의 수족 노릇을 하고, 이용만 당하다 죽는 말로를 그림으로써 이런 제재가 상당한 기간 동안은 육이오의 비극을 작품으로 수용함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물론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제재의 심화·확대에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매너리즘에서 헤어날 수가 없음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즉 이데올로기적 문제에도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백정 개삼조(「노을」)를 조종하는 일본 유학생이며 부잣집 아들인 남로당 극렬분자 배도수의 이념이 기껏해야 낭만주의거나 허무주의 또는 어쩌면 주자학적인 이데올로기인지도 모른다는 점을 당시의 상황과 역사성 속에서 분석할 힘이 작가에게는 있어야 할 것이다. 「고려장」의 경우도 사정은 같다. 한 인간을 마침내 귀신 모양 발광케 하는 것의 정체가 남편의〈주검〉, 아들의〈주검〉이라는, 감각적 사실이라고 파악되는 한도에서는, 그러한 제재나 주제는 물신적인 성격을 띠고 만다. 말하자면 논리적으로 사건이 분석 처리되지 않는다면 논리적 극복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심리적 상혼을 물신적으로 파악한다면, 즉 그 사건이나 상혼이 주인공의 자리에 오고 인간이 그것이 종속물로 되고 말 적에는 그 작품은 샤머니즘의 차원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고려장」에서 노파가,「수렁 속의 불꽃」에서는 산 속의 여인이, 그리고「우리들의 날개」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맥」에서도 이 점을 느낄 수가 있다. 좀 심한 표현을 쓰면 청승스러움이랄까 귀기(鬼氣)가 스며들기 쉽다. 귀기는 공포의 세계로 내 닿게 되며, 이 공포를 없애는 것들을 길들이어 순환시키는 것이 이른바 문화일진대 이런 원칙에서 보면 창작 방법은 철학을 마침내 필요로 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물신적 차원의 위험성이야말로 우리가 표제로 삼은 엄숙주의의 위험성이 아니면 안 된다.「아베의 가족」은 이 작가의 상당한 역량을 보인 성공작이고 우리가 말하면서도 새로운 철학이 요청된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이로써 어느 정도 드러났을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