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의전(赤聖儀傳)
by 송화은율적성의전(赤聖儀傳)
(전략)
차시에 항의가 불량한 마음이 뱃속에 들어 날로 커져 갔다. 마음속으로 헤아리기를, ‘모후께서 성의를 본디 사랑하시거늘 만일 약을 얻어다가 환후가 회복된다면 성의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니 온 나라에 그 아름다운 이름이 진동할 것이다. 그리되면 내 어찌 왕위를 바라겠는가.’ 하며 한 계교를 생각하고 부왕과 모후께 아뢰었다.
“성의가 서역으로 간 지 거의 반년이 되도록 소식이 까마득합니다. 소자가 도중에 나가 소식을 탐지해 보고, 만일 풍파에 불행한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소자가 서역에 들어가 약을 구하여 오겠습니다.”
하며 하직을 아뢰고 배를 준비하여 사공과 무예 있는 자 10여 명을 데리고 서역으로 향하였다.
행선한 지 3일 만에 풍파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가 겨우 강변에 닿아 배를 머무르고 밤을 지낼 때 창강수 맑은 물에 가을 달이 돋아 원근에 비추었다. 문득 서쪽으로부터 한 척 작은 배가 나는 듯이 왔다. 항의가 뱃사람들에게 외쳐 말하기를,
“저기 가는 배는 안평국 대군이 타신 배가 아닌가?”
하며 크게 부르고는 의심하여 주저하는데, 그 배가 살같이 다가왔다. 슬프다! 사람의 운수는 하늘이 정하신 것이라 어찌 인력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세자 항의의 불측한 흉계를 성의가 어찌 알리오. 이윽고 배를 돌리어 같은 곳에 대고 보니 이는 곧 세자였다. 성의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바삐 배에서 내려 배례하니 항의가 답례하여 말하기를,
“동생이 안개 짙은 파도 속 만 리 길을 혼자 간 것이 위태로워서 부왕의 명을 받들어 도중에 와서 맞이하는 것이거니와, 그대가 일영주를 구해 왔는지 모르겠구나?”
하니 성의가 그 형의 불량하고 흉악한 마음을 모르고 즉시 일영주를 내드리며 모후의 병환을 물으니 항의가 말하기를,
“환후는 스스로 회복되셨으니 이제 일영주가 도리어 소용이 없을 듯하도다.”
하거늘 성의가 말하기를,
“환후는 비록 쾌차하였을지라도 일영주를 쓰시면 더욱 상쾌해지실 것입니다.”
하니 항의가 문득 배 위의 높은 곳에 앉아 큰 소리로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거짓으로 서역에 가서 일영주를 구하여 오겠다 하고 병든 어머니를 잊어버리고 불도에 침혹하여 이제야 돌아오니 어찌 사람의 자식 된 도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천하의 불효라. 모후께서 너를 보시면 병세가 더하실 것이니 너희들은 빨리 물에 빠져 부왕의 명을 순순히 받들라.”
하였다. 성의가 이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하여 묵묵히 앉았다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소자가 진심으로 천신만고 끝에 서역에 들어가 정성으로 약을 얻어 돌아온 것은 모후를 위함이었는데, 이 무슨 의심스러운 일로 도중에 나와 부왕의 명령을 칭탁(稱託)하고 형님께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해 하고자 합니까. 이는 진실로 날랜 토끼를 다 잡고 후에 사냥개마저 삶아 먹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 몸은 이 물에 빠져 죽어도 조금도 섧지 않습니다. 다만 병중에 계신 부모 얼굴을 다시 뵙지 못하고 해중고혼이 될 것이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며 천추의 무궁한 한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나 때문에 수십 명의 사람이 죄없이 죽을 것이니 그 아니 가련하리오. 슬프도다! 하늘과 땅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초목도 모두 슬퍼하는 듯하였다.
선인(船人)들이 또 성의를 붙들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우리 수십 명이 공자를 모시고 창파만경에 도달하여 선경에 들어가 일영주를 얻어 와서 왕후의 환후를 나으시게 하면 우리들이 중한 상을 받을까 하고 바랐는데, 죄 없는 죽음을 당하니 어찌 망극하지 않으리오? 우리들의 소견으로는 대군을 모시고 대궐에 들어가 일영주를 바치고 왕의 처분을 기다려 죽으면 여한이 없을까 합니다.”
하니 항의가 이 말을 듣고 대로하여 무사를 재촉하여,
“죽여라.” / 하니 선인들이 소리치며 꾸짖어 이르기를,
“대군과 우리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죽이려 합니까? 머나먼 하늘 끝 서역에 가 큰 공을 이루어 돌아왔거늘 남이 이룬 공을 도중에서 탈취하고, 아울러 인명을 살해하려 하니 하늘이 무심하신 탓이로다. 절절히 원통하도다. 12세 우리 대군의 지극한 효성 천지도 무심하고 귀신들도 야속하네. 정성으로 일영주를 얻어 돌아 온 태산같이 높은 공이 아무런 보람도 없게 되었구나. 우리들이 죽는 것은 그렇게 서럽지 않으나 12세 청춘 공자는 모친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다가 골육상쟁하는 까닭에 바닷속 고혼이 되겠으니 어찌 분통하지 않겠는가. 더러운 너희들의 손을 빌어 죽을 바가 아니로다.”
하고 서로 목을 껴안고 슬피 우니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선인들이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 대군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겠는가?”
하고 서로 손을 잡고 공자를 위로하여 배 가운데 앉히고 애고 소리를 외치며 배 안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만경창파에 뛰어들어 죽어가니 이 거동은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때 항의가 무사에게 눈짓하여 성의를 죽이려고 하는데 무사 중 태연이라 하는 사람이 큰 소리로 이르기를,
“세자께서 비록 왕명을 칭하나 어찌 동기간의 인륜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공자는 지극한 효자이신데, 세자께서는 어찌 인정이 이와 같습니까?”
하고 칼을 들어 모든 무사를 물리쳤다. 항의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성의의 두 눈을 칼로 찔러 빼니 성의가 배안에 엎어지며 두 눈의 피가 흘러 얼굴을 적셨다. 이어서 성의가 탄 배의 조각을 깨뜨려 한 조각 위에 그를 앉히고 물결 위로 밀어 버리니 궁금하도다. 그가 죽을지 살지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천지신명께서 효자를 보존케 하실지 그 종말을 두고 볼지어다. (하략)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갈래 ; 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
성격 : 불교적, 유교적, 도교적, 교훈적, 전기적
구성 : 집을 떠나서 모험과 고난 끝에 무엇을 찾고 돌아와 명예를 얻는 구조
발단 - 안평국 왕비가 병이 들어 성의가 병을 치료할 일영주를 구하러 서역으로 떠나감.
전개 - 성의가 선관의 도움으로 서방 세계에 이르러 일영주를 구함.
위기 - 항의가 성의가 구한 일영주를 탈취한 후 성의의 눈을 멀게 함.
절정 - 항의가 천자의 사위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성의를 죽이려고 하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함.
결말 - 성의는 안평국의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풂
주제 : 불교적인 인과응보와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간의 우애, 고난 극복과 승리의 쟁취.
특징 : 불교적인 인과응보와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간의 우애 등을 강조함. 탐색주지(집을 떠나서 모험과 고난 끝에 무엇을 찾고 돌아와 명예를 얻음)의 서사구조를 지녔고, 권선징악, 불전 설화를 바탕으로 형제간의 갈등이 빚어낸 고난과 그 극복 과정, 효도와 우애를 동시에 강조한 작품이면서 주인공 선의는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선한 마음과 친화의 힘으로 지향 욕망을 성취하고, 도덕적으로 선하면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존재의 우월성을 인정받아 기존 세력에 영예롭게 편입되는 과정을 그린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으로 고전 소설 '육미당기'와 '김태자전'에 영향을 미침.
인물 :
- 적성의 : 안평국의 둘째 왕자로 재주와 덕성을 겸비한 인물로, 형 항의에 의한 역경을 딛고 왕이 됨.
- 적항의 : 안평국의 첫째왕자, 동생 성의를 시기하여 그 공을 가로채고 성의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다가 결국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됨.
- 채란 공주 : 중국의 공주이자 성의의 아내로 선견지명이 있으며, 용의주도하고 대범함.
내용 연구
(전략)
차시[이때, 지금]에 항의가 불량한 마음[동생을 제거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뱃속에 들어 날로 커져 갔다. 마음속으로 헤아리기를, ‘모후께서 성의를 본디 사랑하시거늘 만일 약을 얻어다가 환후가 회복된다면 성의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니 온 나라에 그 아름다운 이름이 진동할 것[유방백세 : 流芳百世 -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함]이다. 그리되면 내 어찌 왕위를 바라겠는가.’ 하며 한 계교[요리조리 생각해 낸 교묘한 꾀]를 생각하고 부왕과 모후께 아뢰었다.
“성의가 서역으로 간 지 거의 반년이 되도록 소식이 까마득합니다. 소자가 도중에 나가 소식을 탐지해 보고, 만일 풍파[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불행한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소자가 서역[중국 역사상, 좁게는 지금의 신장 성(新疆省) 일대를, 넓게는 중앙아시아·서부 아시아·인도를 이름. 동서 무역의 중요한 교통로였음]에 들어가 약을 구하여 오겠습니다.”
하며 하직을 아뢰고 배를 준비하여 사공과 무예 있는 자 10여 명을 데리고 서역으로 향하였다.
행선[배가 감. 또는 그 배]한 지 3일 만에 풍파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가 겨우 강변에 닿아 배를 머무르고 밤을 지낼 때 창강수 맑은 물에 가을 달이 돋아 원근[먼 곳과 가까운 곳.]에 비추었다. 문득 서쪽으로부터 한 척 작은 배가 나는 듯이 왔다. 항의가 뱃사람들에게 외쳐 말하기를,
“저기 가는 배는 안평국 대군이 타신 배가 아닌가?”
하며 크게 부르고는 의심하여 주저하는데, 그 배가 살같이 다가왔다. 슬프다! 사람의 운수는 하늘이 정하신 것이라 어찌 인력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세자 항의의 불측한 흉계를 성의가 어찌 알리오[서술자가 개입하여 발생한 사건에 대해 논평하고 있다. 편집자적 논평]. 이윽고 배를 돌리어 같은 곳에 대고 보니 이는 곧 세자였다. 성의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바삐 배에서 내려 배례하니 항의가 답례하여 말하기를,
“동생이 안개 짙은 파도 속 만 리 길을 혼자 간 것이 위태로워서 부왕의 명을 받들어 도중에 와서 맞이하는 것이거니와, 그대가 일영주를 구해 왔는지 모르겠구나?”[일영주를 구해 왔으면 죽일 생각을 가지고 있음]
하니 성의가 그 형의 불량하고 흉악한 마음을 모르고 즉시 일영주를 내드리며 모후의 병환을 물으니 항의가 말하기를,
“환후는 스스로 회복되셨으니 이제 일영주가 도리어 소용이 없을 듯하도다.”
하거늘 성의가 말하기를,
“환후는 비록 쾌차하였을지라도 일영주를 쓰시면 더욱 상쾌해지실 것입니다.”
하니 항의가 문득 배 위의 높은 곳에 앉아 큰 소리로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거짓으로 서역에 가서 일영주를 구하여 오겠다 하고 병든 어머니를 잊어버리고 불도에 침혹[무엇을 몹시 좋아해 정신을 잃고 빠짐]하여 이제야 돌아오니 어찌 사람의 자식 된 도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천하의 불효라. 모후께서 너를 보시면 병세가 더하실 것이니 너희들은 빨리 물에 빠져 부왕의 명을 순순히 받들라.”
하였다. 성의가 이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하여 묵묵히 앉았다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소자가 진심으로 천신만고 끝에 서역에 들어가 정성으로 약을 얻어 돌아온 것은 모후를 위함이었는데, 이 무슨 의심스러운 일로 도중에 나와 부왕의 명령을 칭탁(稱託 : 어떠하다고 핑계를 댐)하고 형님께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해 하고자 합니까. 이는 진실로 날랜 토끼를 다 잡고 후에 사냥개마저 삶아 먹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토사구팽 兎死狗烹 : 토끼가 잡혀 죽으면 사냥개는 쓸모없게 되어 삶아 먹힌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이와 유사한 말로 조진궁장鳥盡弓藏 - 새를 다 잡고 나면 활은 창고(倉庫)에 넣는다는 뜻으로, 이용(利用) 가치(價値)가 없어지면 버림을 받게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내 몸은 이 물에 빠져 죽어도 조금도 섧지 않습니다. 다만 병중에 계신 부모 얼굴을 다시 뵙지 못하고 해중고혼이 될 것이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며 천추의 무궁한 한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나 때문에 수십 명의 사람이 죄없이 죽을 것이니 그 아니 가련하리오. 슬프도다! 하늘과 땅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초목도 모두 슬퍼하는 듯하였다.[과장적 표현]
선인(船人 : 뱃사람)들이 또 성의를 붙들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우리 수십 명이 공자를 모시고 창파만경[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나 호수의 물결]에 도달하여 선경[신선이 산다는 곳. 선계. 선향(仙鄕).]에 들어가 일영주를 얻어 와서 왕후의 환후를 나으시게 하면 우리들이 중한 상을 받을까 하고 바랐는데, 죄 없는 죽음을 당하니 어찌 망극하지 않으리오? 우리들의 소견으로는 대군을 모시고 대궐에 들어가 일영주를 바치고 왕의 처분을 기다려 죽으면 여한이 없을까 합니다.”
하니 항의가 이 말을 듣고 대로[크게 화를 냄]하여 무사를 재촉하여,
“죽여라.” / 하니 선인들이 소리치며 꾸짖어 이르기를,
“대군과 우리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죽이려 합니까? 머나먼 하늘 끝 서역에 가 큰 공을 이루어 돌아왔거늘 남이 이룬 공을 도중에서 탈취하고, 아울러 인명을 살해하려 하니 하늘이 무심하신 탓이로다. 절절히 원통하도다. 12세 우리 대군의 지극한 효성 천지도 무심하고 귀신들도 야속하네. 정성으로 일영주를 얻어 돌아 온 태산같이 높은 공이 아무런 보람도 없게 되었구나. 우리들이 죽는 것은 그렇게 서럽지 않으나 12세 청춘 공자는 모친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다가 골육상쟁[가까운 혈족끼리 서로 싸움. 골육상전]하는 까닭에 바닷속 고혼[외로운 혼]이 되겠으니 어찌 분통하지 않겠는가. 더러운 너희들의 손을 빌어 죽을 바가 아니로다.”
하고 서로 목을 껴안고 슬피 우니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선인들이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 대군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겠는가?”
하고 서로 손을 잡고 공자를 위로하여 배 가운데 앉히고 애고 소리를 외치며 배 안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만경창파에 뛰어들어 죽어가니 이 거동은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때 항의가 무사에게 눈짓하여 성의를 죽이려고 하는데 무사 중 태연이라 하는 사람이 큰 소리로 이르기를,
“세자께서 비록 왕명을 칭하나 어찌 동기간[형제자매간]의 인륜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공자는 지극한 효자이신데, 세자께서는 어찌 인정이 이와 같습니까?”
하고 칼을 들어 모든 무사를 물리쳤다. 항의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성의의 두 눈을 칼로 찔러 빼니 성의가 배안에 엎어지며 두 눈의 피가 흘러 얼굴을 적셨다. 이어서 성의가 탄 배의 조각을 깨뜨려 한 조각 위에 그를 앉히고 물결 위로 밀어 버리니 궁금하도다. 그가 죽을지 살지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천지신명께서 효자를 보존케 하실지 그 종말을 두고 볼지어다.[서술자의 개입]
(중략)
황제 내전의 드르샤 성의 말을 일컬어 애석하시니, 황후 왈
“그 아해 맹인이라 니 무슨 허물이 이스리오. 한번 보사이다.”
황제 즉시 승전[임금의 뜻을 전함]으로 성의를 인도하여 들어오거 상이 자리를 주시고 피리를 부르라 하시고 한 곡조를 들으시니 그 곡조 과연 비상하여[평범하지 아니하고 뛰어나] 세상음이 아니라, 짐짓 신선의 음악이어늘. 황후 문 왈,
“그대 고향은 어디며, 부모의 성명을 아는다?” 성의 대 왈,
“삼세에 부모를 잃었삽고 유리표박하였사오니 거주와 부모 성명을 모르나이다.” (중략) [성의가 거짓말을 한 부분으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있음]
“우연이 그대와 음률을 화답하니 비록 예도에 어긋나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다시 청하여 월색에 시를 화답고져 니 그대 즐겨할소냐?”
고, 시녀를 명여 한 잔 술을 권니 성의 슐을 먹지 못나 공주 주심을 사양치 못하여 받아 먹은 후의 시를 읊프니 그 시에 왈,
“일신이 만리에 유락[타향살이]함이여! 어느 때 고향 생각이 없으리오! 홍안[기러기로 소식을 전해주는 전달자의 의미]조차 무정하니 소식 전 하기 어렵도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이 창해를 더하는도다!”
하였거늘, 공주 재삼 보다가 화답니, 그 시 왈,
“우연이 원객을 만나니 그 아니 연분인가! 한 곡 피리 맑은 소리 사람의 심회를 돕는도 다! 만사 임의로 못하나니 일배주로 위로할 뿐이로다!”
읊은 후 문 왈,
“시는 과연 마음으로 나온다 하니 본디 천인은 민간에서 살고 왕조는 궁중에 사나니, 청 컨대 심사를 숨기지 말라!”
성의 자연 심사 처창하여[몹시 구슬프고 애달파] 귀를 기울여 들으니 소리 점점 가까워 중천에서 금각당으로 돌아다니며 울거 공주와 좌우 시녀 나와 하을 우러 피며 심히 고이히 여기고 성의는 혼백이 날아올라 생각하되,
“이 즘이 반드시 나의 기르던 기러긴가 보다!”
고 어린 듯 취한 듯 앉았더니 기러기 두 날개를 펴고 점점 나려와 성의 앞에 앉으며 몸을 늘이여 슬피 울거 성의 그제야 쾌히 본국 기러기 온 줄 알고 급히 두 손으로 기러기를 고 그 등을 어루만지며 울어 왈,
“이제 오믄 반드시 중전이 승하시도다!”
고 업더져 혼절거 좌우 시녀 놀나 급히 구할새, 공주 살펴보니 기러기 좌편 다리의 일봉서를 매었거늘 끌러 본즉 겉에 ‘안평국 모[성의의 어머니]는 아자 성의게 부치노라’ 하엿거, 공주 기이히 여겨 닐오,
“기러기 발의 봉서 달렷으니, 그대는 졍신을 수습하여 사연을 들으라!”
하고, 봉서를 떼어 보니 하였으되,
“모년 월일의 안평국 모 읍혈[눈물을 흘리며 슬프게 욺]고 아자 성의게 붓치노라. 슬푸다[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냄]! 나의 슬하를 떠난 지 거의 수 년이라. 망망 천지간의 어느 곳의 가 죽엇냐 랏냐! 네 출천지효로 나의 병을 위여 황당 도사의 말을 듣고[성의가 집을 나오게 된 이유] 좋은 궁궐을 바리고 만리창파에 일신을 편주에 붓치여 서천의 가약[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약]을 얻었으니, 네 효성을 하늘이 감동하심이나 네 돌아온다는 소식이 업스니, 슬프다! 우리 아희야! 어별[바다 동물]의 밥이 되엇냐! 어느 지방의 머무르느냐! 네 형이 소식을 탐지코자 고 가더니 무슨 연고인지 너는 아니오고 다만 일영주만 가지고 왔으며 네 형의 말을 드른즉 네 머리 깎고 중이 되어 경에 잠심[어떤 일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함]하여 부모를 바리고 부귀를 부운같이 여긴다 하니, 그 말을 가히 믿지 못하리로다. 그러한즉 너의 사생존망을 어찌 알리오! 일영주를 먹은 후의 백병이 모두 물러나 완인이 되니, 네 효성은 대순 증자에 미칠지라. 슬푸다! 세상 모든 일이 다 탁하여도 네 형의 불효부제한 행실은 천고의 드문지라. 너를 시기하여 오는 길에 불측한 화를 만나 돌아오지 못함이냐![형으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음] 월명심야의 일모황혼의 끝없는 천지를 부앙하고 부르짖어 슬퍼할 따름이러니 하루는 너 잇던 별당의 가 옛적의 피리를 살펴본즉 다만 티끌이 쌓이고 외기러기 슬피우니 이 곧 너의 기르던 즘인고로 경계고 부탁즉 이것이 사람의 심신을 요동하는지라. 구만리 창천의 지향무처하나 일봉서를 부치나니 행여 명천이 감동하샤 소식을 전할까 바라노라. 기러기 돌아오는 편에 반가온 답서를 볼까 축수하여 천만다행으로 소식을 들을진대 구천에 돌아가도 한이 없을까 하노라. 만단정회를 펴고져 하나 피눈물이 먼저 가리기로 그치노라.”
하였더라. 성의 듣기를 다함에 가슴이 무너지고 간장이 스러지는 듯하는 중의 일변 반가와 정신이 깨끗하여지며 바삐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할 제 문득 두 눈이 번개같이 뜨이니 구년지수[오랜 세월을 두고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름]의 햇빛을 본 듯 침침한 밤의 달을 만난 듯 황천에서 살아온 듯 청천에 뛰어오른 듯하여 생신지 꿈인지 깨닫지 못여 도로 어린 듯 취한 듯 정신이 황홀한지라.
이해와 감상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 필사본 · 목판본 · 활자본. 한자로는 翟成義傳 · 狄成義傳 · 狄城義傳 · 涇 成義傳 · 涇 聖義傳 · 赤聖義傳 · 積成義傳 등의 여러 표기로 쓴다. 또한 ‘ 적씨화행록 ’ · ‘ 적씨효행록 ’ 이라고도 한다. 동화 · 전설의 소설화 및 윤리소설 · 가정소설 · 도덕소설 등으로 분류되어 다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그 사본이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낙선재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경판 · 완판 · 안성판 등의 목판본과 영창서관 · 세창서관 등에서 발간된 수종의 활자본이 전하여지고 있다. 작품의 창작연대를 영 · 정조 이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적성의전 〉 은 효도와 우애를 동시에 강조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도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불교적인 소설로 보기도 한다. 주인공 성의의 효성과 개안(開眼)은 〈 심청전 〉 의 그것과 비슷하나, 〈 적성의전 〉 이 〈 심청전 〉 의 모방작이라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 육미당기 六美堂記 〉 와 〈 김태자전 金太子傳 〉 같은 작품이 〈 적성의전 〉 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 적성의전 〉 의 근원에 대하여는 한용운 ( 韓龍雲 )이 ≪ 현우경 賢愚經 ≫ 의 선사태자입해품(善事太子入海品)에서 왔다는 것을 말하였고, 인권환(印權煥)이 ① 사분율 ( 四分律 ) → 선생태자(善生太子) → 적성의전, ② 사분율 → 경률이상(經律異相) → 선생태자 → 적성의전, ③ 사분율 → 범어원전(梵語原典) → 보은경 → 현우경 → 적성의전 등 세 갈래의 가능성을 도식화하는 연구를 이룩하였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강남 안평국왕의 맏아들 항의는 괘씸하고 엉큼한 마음을 가졌고, 둘째 아들 성의는 남다른 기풍이 있으며 재덕을 겸비하여 사랑을 받았다. 왕비가 병이 들어 수많은 약이 효험이 없자 도사의 말에 따라 성의는 격군 10여명을 데리고 일영주(日映珠)를 구하러 서역으로 떠났다.
선관의 도움으로 서방세계에 이른 성의는 천성금불보탑존사(금강경천불도사)를 만나 일영주를 얻어, 동방삭의 도움으로 파초선을 타고 약수(弱水 :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 속의 강)를 건너온다.
한편, 항의는 사공과 무사 수십 명을 데리고 나가 일영주를 빼앗고, 성의의 두 눈을 칼로 찔러 바다에 빠뜨린 뒤 돌아와 일영주로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 맹인이 되어 표류하던 성의는 안남국에 사신으로 갔다오던 호승상에게 구출되어 천자의 후원에 머물게 되고, 채란공주와 사귄다. 어머니가 기러기 발에 매어보낸 편지를 공주가 읽는 순간 성의는 두 눈을 뜨이고, 장원급제하여 가약을 맺는다. 성의를 죽이려던 항의는 죽음을 당하고 성의는 안평국왕이 되어 요순(堯舜)의 정치를 한다.
이 작품은 성의가 일영주를 구하러 오는 과정, 공주와의 결혼과정, 세자로 책봉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내용은 ‘ 집을 떠나서 → 모험과 고난 끝에 무엇을 찾고 → 돌아와 명예를 얻는 ’ 서사구조이다. 이를 탐색주지서사유형(探索主旨敍事類型)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의는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선한 마음과 친화(親和)의 힘으로 지향욕망(指向慾望)을 성취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도덕적으로 선하면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존재의 우월성을 인정받아 기존 세력에 영예롭게 편입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 참고문헌 ≫ 적성의전 根源說話硏究(印權煥, 人文論集 제8집, 高麗大學校文科大學, 1967), 적성의전에 관한 한 考察(신동일, 국어국문학 75, 국어국문학회, 1977), 적셩의젼(崔正洛, 韓國古典小說作品論, 集文堂, 1990).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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