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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춘전(柳遇春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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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춘전(柳遇春傳)

서기공은 음악에 통달해서 아는 것이 많고 또 손님을 좋아했다. 그는 손님이 오면 곧 술상을 차리고, 거문고를 뜯으며 피리를 부는 등 손수 연주를 한다. 그리고 한 곡이 끝나면 손님에게 술을 권하곤 했다.

나는 그를 찾아서 즐겁게 놀고, 돌아오는 길에 해금까지 얻었다. 한 번 시험 연주를 해볼 생각으로 소리를 가다듬어 벌레와 새 소리 같은 음률을 시도해 보았다.

기공은 듣고 크게 놀란다.

『모이 한 줌을 내 주어라. 이건 거친 베옷을 입은 촌사람의 거문고 소리구나.』

 

나는 그 말의 뜻을 잘 알지 못했다.

『무슨 말씀인지요?』

『딱하도다. 자네는 음악을 모르는군. 나라에는 두 가지 음악이 있지. 하나는 아악이요, 하나는 속악일세. 아악이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음악이고, 속악이란 오늘날 들을 수 있는 음악이지. 사직이나 문묘에서는 아악을 쓰고, 종묘에 참배할 때에는 속악을 쓰네. 속악은 당나라 현종의 이원에서 주로 하는 음악이 아닌가. 그것을 군대에서 쓰고 미묘한 소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므로 보통 잔치놀이에도 흔히 쓰지. 여기에는 철의 거문고, 아늬 피리, 동의 요고, 북의 필률 등이 모두 동원되네. 유우춘이나 호궁기는 모두 해금의 명수인데, 자네는 왜 그들에게 가서 배우지 않고 이런 비렁뱅이 같은 거문고 솜씨로 만족하는가? 비렁뱅이들은 남의 집 문에 기대서서 늙은 할아범이나 할멈 아니면 갓난애나 온갖 짐승, 닭, 오리 등 백 가지 벌레 소리를 내다가 곡식을 주면 가 버리곤 하지. 자네의 거문고 솜씨가 이런 따위가 아닌가.

나는 기공의 이 같은 설명을 듣고 크게 부끄러웠다. 거문고를 얻긴 하였으나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자루 속에 넣어 집에 달아매어 놓고는 그대로 몇 달이 지났다.

 

하루는 집안 사람으로 금대거사라는 이가 찾아왔다. 이 사람은 옛날 현감을 지낸 유운경의 아들이다.

운경은 젊어서부터 협기가 뛰어나서 말타기, 활쏘기 등을 잘하였으며, 영종 때 무신년에 이인좌등 난신의 토벌에 공을 세웠다. 그는 이 장군 집의 계집종을 좋아해서 자식을 둘 둔 바 있다. 그러니까 거사에게는 모두 배다른 아우라 할 것이다.

나는 은근히 물었다.

『두 아우는 모두 자들 있는가?』

『아아, 그 아이들 말인가. 다 잘 있네. 네니 내니 하는 옛 친구가 변방의 고을에서 태수를 지내고 있기에, 발을 싸매고 2천리를 달려가서 돈 5천냥을 얻어다가 이 장군 집에 들러 몸값을 치렀지. 큰애는 남문 밖에서 망건을 팔고, 아우는 용호영에 적을 두고 있네. 해금을 잘 뜯어서, 요즘 그 「유우춘의 해금」이라고 떠드는 것이 바로 이 아이일세.』

 

나는 거사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리고 비로소 서기공의 말이 생각났다. 이런 명문의 자손이 군졸의 신세가 되다니. 그러나 한 가지 예술로써 유명해져서 그것으로 생계를 삼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반갑기도 했다.

나는 거사를 따라서 십자교 서쪽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초가집일망정 집 안팎이 청결하고, 그 어머니가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노파는 옛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계집종을 불러 우춘이 간 곳을 찾아보라고 하니, 계집종은 휑하니 나갔다가 돌아왔다.

『손님이 있사와요.』

 

우춘에게 해금을 배우러 온 손님이 있다는 말일 게다.

이윽고 우춘이 돌아왔다. 함께 세상일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가 충직하고 근실한 무인임을 알았다.

그 뒤 어느 달 밝은 밤이었다. 집에서 등불을 마주하고 독서를 하고 있는데,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 네 사람이 기침 소리를 내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우춘이었다.

그들은 큰 술병과 돼지 어깻죽지 한 짝, 그리고 오륙십 개는 들었음직한 침시 한 자루를 둘러메고 들어왔다. 이것들을 세 사람이 나누어 가지고 왔다.

 

우춘은 소매를 툭툭 털며 크게 웃고는,

『오늘밤에는 서생을 한 번 놀라게 해볼까.』

그러더니 한 사람에게 술을 올리라 했다.

『잘들 해보게.』

 

우춘이 세 사람을 돌아보며 말하자, 각기 피리와 해금, 횡적 등을 꺼내더니 합주를 하기 시작했다.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 우춘은 거문고를 가진 사람에게, 거문고를 빼앗으며,

『유우춘의 해금을 어찌 듣지 않고 견디겠나』

 

하더니, 손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조용하고 느릿느릿 뜯기 시작했다.

슬프고도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강개한 곡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아직 슬픈 감흥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에 우춘은 해금을 휙 던지더니 크게 웃고 나가 버렸다.

금대거사는 떠나가기에 앞서 아우인 우춘의 집에서 해장을 꾸렸다. 그 날 밤, 우춘은 술을 장만하고 나를 청했다.

술자리 옆에 커다란 구리 항아리 하나를 놓아두었기에 내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취하면 토하려고 놓아 둔 거야』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술잔이 돌아올 때에야 나는 그의 말뜻을 알았다. 술잔이 아니라 사발이었다.

 

다른 방에서는 소 염통을 구워 들여왔다. 술 한 순배가 돌면 썰어서 손을 쓰지 않게 쟁반에다가 담아 젓가락 하나를 받쳐 계집아이더러 올리라 했다. 이 법도는 여느 벼슬아치나 양반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것과는 달랐다.

이 때 나는 오랫동안 자루 속에 넣어 두었던 해금을 가지고 갔었다. 그것을 꺼내서 그에 게 보이며 말했다.

『이 거문고가 어떤가? 옛날에 나는 자네가 솜씨를 자랑하는 예술을 배울까 해서 짐작대로 벌레나 새가 우는 소리를 흉내낸 적이 있네. 그 때 남들이 「비렁뱅이 거문고」라고 해서 내 딴에는 마음속으로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네. 어떻게 하면「비렁뱅이 거문고」를 면할 수 있을까?』

 

우춘은 손바닥을 두드리며 크게 웃고 이렇게 말했다.

 

『오괴하도다, 자네의 말은. 생각해 보게나. 저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나 파리가 윙윙대는 소리, 온갖 대장장이의 뚝딱거리는 소리, 글을 읽는 선비들이 개구리처럼 개골개골 글 읽는 소리 등, 세상 모든 소리치고 밥을 빌어먹는 것과 다른 것이 있는가? 그러니 내 거문고나 자네의 비렁뱅이 거문고나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나? 단지 나는 늙은 어머님이 계시니, 내가 거문고를 배우면서 거문고도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고서 어찌 어머님을 섬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네. 그러니 내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라고 해서 어찌 저 비렁뱅이 거문고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순박한 그 아름다움을 따라가겠는가? 뿐만 아니라 내 거문고와 자네의 그 비렁뱅이 거문고는 재료가 다 같네. 말의 꼬리로써 활을 만들고 송진으로 필을 했지. 이는 현악기라고도 할 수 없고 관악기라고도 할 수 없네. 뜯는 것 같기도 하고 부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아닌가. 처음 내가 거문고를 배울 때, 비록 3년 만에 기초가 이루어졌으나, 다섯 손가락에 못이 박히고 기술이 진보했다고는 하지만 진보할수록 보수가 나아지지 않을뿐더러,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갈수록 많아지는 것이야. 이제 자네 비렁뱅이 거문고는 깨어진 물건으로서, 그것을 얻어 이제 몇 달 동안 연습을 하면 듣는 사람이 벌써 어깨를 비벼대며 몰려들 거야. 그러나 그뿐인가. 한 곡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는 그 뒤를 따르는 자가 몇 십명이요. 하룻동안 얻은 것을 헤아리면 곡식은 말이나 되고 돈은 한 움큼에 차곤 할 것일세. 이것은 곧 알아주는 자가 많은 까닭이야. 그런데 지금 유우춘의 거문고는 나라 안 사람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그것은 유우춘의 이름을 듣고 아는 것일 뿐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그 몇 명이나 되겠는가. 종실의 사람들이나 높은 대신들이 때로 악공을 부르는 일이 있지. 악공들은 부름에 응하여 저마다 익숙한 악기를 가지고 무릎을 질질 끌면서 입대하지. 마루에 오르면 등촉이 환하고, 시종들이 나와서 「잘 하면 상을 내리실 거야.」하고 말하곤 하지. 악공들은 굽실거리면서「예 예」얼빠진 대답을 하고는 연주를 시작하는 거야. 현악을 하는 자나 관악을 하는 자는 서로 상의하는 법도 없이 길고 짧고, 날카롭거나 느리거나, 소리를 하나로 조화시키지도 않고 멋대로 연주하다가 문득 소리가 동시에 약해지거나, 소리를 하나로 조화시키지도 않고 멋대로 연주하다가 문득 소리가 동시에 약해지거나 끊어지는 경우가 있지. 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으면서 주인은 흘긋 돌아보고는 잠자코 의자 등에 몸을 기대고 조는 듯하다가는, 오래지 않아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그만두어!」 하지. 악공들은 「예이!」대답을 하고는 엉금엄금 물러 나오는 거야.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면, 제가 연주하고 제가 들은 격이야. 또 그뿐 만인가. 왕공, 귀족의 자제들이나 내노라 뽐내는 명사들이 벌이는 청담을 평하고 혹은 과거에 오른 자기들의 문명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술에 잔뜩 취하게 되는 거야. 그러면 지필을 내어 시를 짓는다 하는데, 뜻은 높지만 문장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므로, 등불을 가물가물하는 가운데 종이에 붓이 닿자 뭉개 버리고 종이는 허공 중에 날아가네. 그러다가 문득 나를 돌아다보면서, 「너는 이 거문고의 역사를 알고 있느냐.」하고 묻는 거야. 나는 굽실거리면서「모르옵니다.」 그러면, 「옛날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었던 해강이 처음 만든 거야.」하지. 나는 다시 굽실거리며 「그렇습죠.」하네. 그러면 옆 사람이 껄껄 웃으면서 「해금이란 해 자는 해부에 있고 거문고란 뜻이지 해강의 해 자는 아닐세.」하면서 좌중이 소란해지는 거야. 이러한 담론이 내 거문고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 이런 경우도 있네. 봄바람이 건들건들 불고 수양버들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궁중의 시종, 무사들이나 술집을 드나드는 젊은이들은 장안을 빠져 저 무계의 냇가에 나가 놀이를 벌인다네. 그러면 바느질하는 기생들이나 약 달이 그 위에서 걸터앉은 모습으로 그치지 않고 몰려와서, 가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유희를 벌이지. 그러면 익살꾼들이 그 사이사이에 끼여들면서 왁자지껄 농을 붙이는 거야. 처음에는 요취곡을 연주하다가 나중에는 영산관음놀이로 변하는 거지. 이 때 쯤 되면 악기를 연주하는 손은 갑자기 바빠지고 굳었던 악상이 다시 풀리면서 목이 메었던 것이 다시 확 뚫리면, 저 벙거지나 지나 수염장이 녀석들이 찌그러진 관이나 덜어진 옷은 돌보지 않으면서 머리를 끄덕끄덕 눈을 끔뻑끔뻑, 제법 악곡을 안다는 듯이 「아아, 좋아, 좋아!」해가면서 흥을 돋우는 거야. 그들은 호방하고 유쾌하면 그것으로 만족일 뿐. 악곡이 신기하지도 대단치도 않은 것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네. 그러나 이 모든 사람은 다 그만두고 나의 친구 호궁기만은 그렇지가 않네. 한가한 날이면 서로 만나서 거문고 주머니에서 악기를 꺼내 그것을 매만져 가면서, 눈은 저 하늘을 향하고, 손은 마음이 움직이는 바를 따라서 해금을 뜯고 하지. 조금이라도 음색이 틀린 데가 있으면 껄껄 웃고 돈을 실리는 거야. 그러나 많은 돈을 허비하는 일은 없네. 그래서 나는 말하지.「나의 거문고를 알아듣는 사람은 궁기 밖에 없다.」고. 그렇다고 해도 그가 아는 나의 거문고는 내가 내 스스로를 알고 있는 것보다는 못해. 그처럼 정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야... . 이제 이야기는 끝났네. 자아, 그래도 자네는 공력을 적게 들이고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솜씨를 버리고, 괴롭고도 긴 연마를 통해 굳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문고를 연주할 텐가? 이 또한 생각해 볼 일 아닌가?』

우춘의 이와 같은 논평은 많은 은유를 시사해 주었다.

그 후, 우춘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자신도 거문고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나를 방문하는 일도 없었다.

『기술이 더욱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가 남긴 이 말은 어찌 해금에 한해서만 진리가 되랴.

요점 정리

작자 : 유득공

형식 : 한문 소설

성격 : 의지적

주제 : 기예가의 일생을 그림

이해와 감상

유득공 ( 柳得恭 )이 지은 한문단편소설. 악사 유우춘(柳遇春)의 생애를 전기화한 작품이다. 작자의 문집인 ≪ 영재집 那 齋集 ≫ 에 실려 있다. 〈 유춘우 〉 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공(徐 翹 公)은 음악을 즐기며 손님을 좋아했다. 내가 해금 ( 奚琴 )을 켜자 그는 내 실력이 비렁뱅이 거문고라고 나무라면서 유우춘과 호궁기(扈宮其)의 거문고를 배우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금대거사(琴臺居士)의 안내로 십자교 밑에 있는 초가집으로 유우춘을 찾아가 그의 해금솜씨를 듣고 내가 비렁뱅이 거문고를 면할 수 있는 방도를 물었다. 우춘은 또 자신의 친구 가운데 호궁기가 거문고에 빼어남을 말하였다.

자신의 거문고 솜씨는 궁기만이 알 뿐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배우려는 나의 거문고 교습을 의심하였다. 우춘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업(業)도 버리고 내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효자였다.

유우춘의 말에 “ 기술이 더욱 진보될수록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 하였으니 어찌 해금에서만 그럴 뿐이겠는가? 우춘의 거문고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르는 자 없건마는 그의 이름을 듣고 아는 것이다. 참으로 그 거문고를 듣고 아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이것은 음악이 극치에 달할수록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아는 자가 적어짐을 이른 말이다. 내가 유우춘을 만난 뒤인 어느날 나를 찾아온 네 사람의 악객(樂客) 가운데에 우춘이 켜는 해금을 들은 감격을 “ 슬프고 보드랍고 감개한 소리 ” 라고 칭찬하는 이가 있었다.

〈 유우춘전 〉 은 그 당시 천시하던 기예(技藝) 가운데 해금으로 독보하던 유우춘의 일생을 전기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서기공의 음악에 대한 조예와 유우춘의 음악을 향한 의욕이 어우러져 있다. 청중의 기호에 영합하기보다 차라리 고독을 감수하더라도 예술을 심화하여야 한다는 작자 유득공의 근대적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 참고문헌 ≫ 那 齋集, 傳의 近代文學的性格(蘇在英, 近代文學의 形成過程, 한국고전문화연구회, 1983).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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