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어우야담 / 해설 / 유몽인

by 송화은율
반응형

유몽인 `어우야담'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옛날에 명화로 일컬어진 그림이 있었다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밥을 떠먹이는 그림이었는데흡사 신채(神采)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세종대왕이 이를 보고는 󰡒이 그림이 비록 좋지만 무릇 사람이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는 그 입이 자기도 모르게 벌어지는 법인데그림에는 다물고 있으니 크게 실격이 된다󰡓고 하였다이로부터 마침내 버린 그림이 되었다화가가 정작 놓친 것은 사소한 관찰이 아니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떠먹이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또 채수가 손자 채무일을 업고 눈 위를 걷다가 시 한 구를 지었는데 `개가 달려가자 매화가 떨어지네(犬走梅花落)'이라 하였다무슨 말인고 하니개가 눈밭 위로 달려가자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마치 매화 무늬가 되더라는 것이다그러자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채무일이 `닭이 지나자 댓닢이 이뤄지네(鷄行竹葉成)'라고 대답하였다그러고 보니 닭의 발자국은 흡사 댓닢과 같으니응수로는 절묘한 짝을 이루었다이때 채무일의 나이는 불과 56세였다

 

모두 유몽인(柳夢寅1559~1623)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유몽인은 자신이 견문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모아 이 야담집을 엮었다`어우야담'은 한글로 번역돼 읽혔을 정도로 두고 두고 폭넓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현재 전하는 이본만도 20여종에 달하고5백개가 넘는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그 내용은 다채롭고도 재미있어 오늘날 읽기에도 참으로 흥미진진하다주로 역대 인물들과 관련된 일화를 많이 담았고시문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에서 폭넓은 독서에 바탕한 해박한 식견을 보여주는 기록들삶의 경계로 삼을 만한 풍자와 해학이 담긴 교훈적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그는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필치로 당대의 인물 군상이 빚어내는 삶의 여러 단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왕실과 명공귀인의 일사(逸事)부터 역관과 상인천민과 기녀 및 무당의 수문(搜聞)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의 삶이 작가의 시선을 거쳐 다채로운 프리즘으로 반사되고 있다

 

매의 생태를 이용해 새끼 매를 잡는 방법이나 명나라 장수로부터 배운큰 소나무를 죽이지 않고 옮겨 심는 방법 등이 자세히 실려 있고 각종 지명에 얽힌 전설도 흥미롭다초서를 잘 썼던 황기로와 성수침그리고 서예가 최흥효와 화가 안견임꺽정에게 붙잡히고도 피리를 잘 불어 풀려났던 종실 단산현감 이야기 등 당대 예인(藝人)들의 이야기도 그 시대의 이면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단서를 준다김시습이 5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어 오세(五歲)라고 호를 지었는데 이를 오세(傲世)즉 세상을 오만히 본다는 뜻을 담았다고 해석한 것은 그답게 재치있는 관찰이다이밖에도 홍유손이나 장응두박지화와 정희량 등 체제 밖의 방외(方外)로 떠돌았던 은사(隱士)와 도류(道流)들에 관한 기록도 매우 풍부하다꿈에 얽힌 이야기귀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십 항목에 달할 만큼 많다단순한 흥미거리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대한 풍자나 교훈을 깃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자신 재기가 발랄한 문인이었던 만큼 시인이나 문사들의 창작과 관련된 이야기가 특히 많아시화(詩話)의 구실도 감당할 만하다글을 쓸 때 초고를 마련하지 않고 한참 생각한 후에 종이에 점도 찍고 동그라미도 그리고`대저' `오호' 따위의 글자만 써놓고는 바로 답안지에 정서하면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는 박충원과 베개를 베고 누워 관을 벗어 얼굴을 덮어 가린 뒤 자는 듯 누웠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글을 썼다던 신숙의 글쓰기에 대한 소개 끝에 `무릇 글을 지음에 어려운 점은 뜻을 세우는 것(命意)이지 문자는 단지 붓끝에 달린 것일 뿐이다󰡓라고 한 것은 오늘날 글쓰는 사람들이 한번쯤 음미해봄직한 말이다또 제목이 나오기도 전에 외워 써간 답안지를 베껴 쓰기 바쁜 과거시험장의 풍경을 풍자한 이야기들은 오늘날 논술시험의 답안지 모습과도 흡사한 점이 있다

 

유몽인은 애초엔 우계 성혼(成渾)의 문인이었다문장에 특히 뛰어나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젊은 시절 월사 이정구가 자신을 조정에 천거했다는 말을 듣고는 󰡒지난 해에는 기근이 들어 아이들이 떡을 다투기에 막상 가서 살펴보니 콧물이 끈적끈적하더군요몽인은 강호에 있으면서 한가하여 일이 없어지난해에는 `춘추좌씨전'을 읽었고 금년에는 두시를 외우니 이것이 진실로 해를 보내는 벗입니다이로써 여생을 보내면 그뿐이지요아이들과 더불어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라는 편지를 올린 일이 있다그의 호방하고 얽매임 없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다

 

그러나 재주가 지나치게 비상해 경솔하다는 평도 없지 않았고이런 저런 빌미로 인조반정 직후 역모사건에 연좌되어 사형당했다`어우야담'도 이 바람에 바로 출간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게 되었다오늘날 전해지는 20여종의 이본도 필사자에 따라 이야기의 출입이 적지 않고원본을 확정하기 어려운 것도 모두 이런 사정에 연유한다

 

우리나라의 야담집은 이전에 `태평한화골계전'이나 `촌담해이'`어면순'`용재총화' 같은 것들이 있었으나표제에 `야담'을 표방하면서 이전과는 구분되는폭넓은 소재를 다룬 본격적인 야담집은 `어우야담'이 최초다`어우야담'이 나오자 이를 이어 `계서야담'`청구야담'`동야휘집'`동패낙송' 등 야담집이 속출하였다

 

이전의 설화집들이 주로 귀신 이야기나 성()과 관련된 소화(笑話)에 치중한 것과는 달리 `어우야담'에서는 앞서 보았듯 인간 삶의 제측면을 포괄하는 다채로운 사건에 관심을 기울여 그 서사의 폭을 크게 확장시켰다또한 후대의 야담집이 획일화된 구조로 정형화된데 반해 `어우야담'은 아직 그런 정형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생동감 있게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다오늘날 독자들을 위한 번역본도 출간되어 있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