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寂寞)한 식욕(食慾) - 박목월
by 송화은율적막(寂寞)한 식욕(食慾) - 박목월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일상 생활의 체험 영역을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목월의 초기시에서 보여 준 감각적 단순성을 벗어나는 중기시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일상의 체험을 서정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그는 현실에서의 갈등이나 대립을 초극하기 위한 의지를 노래하지 않는 대신, 자기 정서의 자연스러운 반응만을 드러냄으로써 목월 특유의 서정성이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삶의 애환을 포괄하면서도 그 현실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내세우는 법이 없이, 목월은 그 천품(天稟)의 가락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일상의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식욕을 바탕으로 한 실존적 자아의 모습을 극명히 보여 주는 이 시는 제목 ‘적막한 식욕’의 ‘적막’과 ‘식욕’으로 상징되는 삶의 속성을 제시하고 있다. 식욕이란 삶의 기본적인 속성이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가장 기초적인 욕구이다. 이러한 삶의 기본적 욕구가 앞의 ‘적막한’이라는 수식을 통해서 쓸쓸하고 조용한, 그리고 막막한이라는 정서적 속성과 결합되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존재의 속성을 표출한 상징적 음식이 바로 ‘모밀묵’이다.
연 구분이 없는 전 12행의 단연시이지만 의미에 따라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행으로 ‘모밀묵이 먹고 싶다’는 화자의 ‘적막한 식욕’을 진술하는 부분이며, 둘째 단락은 ‘모밀묵’의 속성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싱겁고 구수하고 /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모밀묵은 마치 ‘촌 잔칫날 팔모상에 올라 / 새 사돈을 대접하는’ 데 적격(適格)일 것 같은 수수하고 소탈한 속성의 음식임을 보여 주고 있다. 셋째 단락은 그러한 ‘모밀묵’에 대하여 화자가 의미를 부여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 허전한 마음이 / 마음을 달래’며 먹는 음식으로 ‘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고독하게 살아가며 ‘인생의 참뜻’을 깨달은 자가 ‘너그럽고 넉넉한 / 눈물’로 제 삶을 반추하며 먹는 음식이다.
이 시는 ‘모밀묵’이 갖는 속성이 ‘봄날 해질 무렵’이라는 시간의 이중적 속성(‘봄날’은 생명성이 발현되는 시간으로 상승적 이미지인 데 비해, ‘해질 무렵’은 낮에서 밤으로 가는 시간으로 하강적 이미지임)과 결합하여 ‘마음 = 꿈’이라는 추상적 공간으로 화자의 고독한 존재 양상을 보여 준다. 한편, 이 시는 모밀묵을 먹는 사람들의 식성과 모밀묵을 먹는 사람들의 삶의 속성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싱겁고 구수하고 /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모밀묵과 같은 모습으로 결국 자연과 동화될 뿐 아니라, 수직적․수평적 인간 관계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우리라는 테두리 속에서 살아가는 평상인이 되며, ‘인생의 참뜻을 짐작한 자’들이 된다. 이 시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실존적 모습을 ‘모밀묵’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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