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 해설 / 정의홍
by 송화은율
장날 / 정의홍
이해와 감상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체취가 강하게 묻어나는 곳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산업화 이전의 농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 장날의 풍경이라고 답할지 모른다. 며칠마다 열리는 장날에는 일상의 부족을 채우는 만족의 기쁨이 어려있는 한편으로 궁핍을 더욱 예각화시키는 빈곤이 어려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의홍의 「장날」은 결코 풍족하지만은 않았던 장날에 대한 풍경을 담고 있다. 그가 장날의 정경 묘사를 시작한 시간은 사람들로 흥성거리는 시간을 지나 파장(罷場)에 가까운 시간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장터에는 장보는 사람 대신 쓸쓸한 장바닥에 몇 톨의 작은 참깨만이 굴러다닌다. 누군가의 고달픈 장바구니에서 빠져나와 외롭게 장바닥을 굴러다니는 참깨는 쓸쓸한 파장의 풍경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2연은 장날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저마다 땀흘린 노력의 산물들을 장에 내어보지만 궁핍한 얼굴을 감출 수 없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 공복(空腹)을 채우기에 부족한 장날은 고달픈 생의 한 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기대 속에서 장에서 한나절을 보낸 얼굴들은 며칠 동안 못 보았기에 웃음 머금기를 잊지 않는다. 기울어 가는 태양은 팔리지 않은 채 구석에 놓인 과일에게도 비추어 주며 그 옹색함을 위로한다. 기대와 좌절이 교차하던 장터에 어둠이 깔린 후에도 몇 알 동떨어진 깨알이 여전히 뒹굴고 있다.
떠들썩한 장날 한 구석의 허름함과 옹색한 풍경을 통해 삶의 그늘진 풍경을 담아낸 시인의 풍경화는 단아하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그 풍경화 속에서 우리는 삶의 쓸쓸함을 어루만지는 한 줄기 따스한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해설: 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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