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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林巨正) / 요점정리 - 홍명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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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홍명희(洪命熹: 1888-1968)

충북 괴산 출생. 호는 가인(假人, 可人), 백옥석(白玉石), 벽초(碧初). 이광수와 함께 일본 동경 타이세이(大成) 중학에서 수학. 1910년 귀국 후 오산 고보 교장, 연희 전문 교수, 중앙 불교 전문 교수 등을 역임. <조선일보>에 <임꺽정>을 연재(1928.12.21-1939.3.11)하여 등단.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라고 일컬어지기도 함. 해방 직후 월북하여 활동하다가 병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점정리

 갈래 : 장편 역사 소설.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봉건 사회의 모순과 하층민의 억압을 타파하려는 의지가 싹트던 조선
          조의 황해도 청석골.
 주제 : 소외된 하층민의 저항과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려는 한 인간의 삶과
          의지.
 인물 : 임꺽정 - 신분 제도의 타파와 신분 상승의 추구라는 모순된 양면성을
          지닌, 초인적인 힘 과 의지를 가진 산적 두목.

 

이해와 감상

  <임꺽정>의 문학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당시 사회 변동의 전모를 그림으로써 역사소설의 독특한 성격을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다.

둘째, <임꺽정>은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로서 인물 설정과 세부 묘사가 1930년대의 다름 소설과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셋째, 조선 시대 민중들의 삶에 대한 의식과 정조를 일관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넷째, 상층 사회의 타락에 대한 반성과 하층 사회의 변혁 의지를 통한, 사회 개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민중 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러한 사실은 1930년대에 성행한 한국 역사 소설을 현실 도피나 비유적 장치, 복고주의로만 특징지을 수 없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의 리얼리즘 정신은 1970년대에 들어서 <장길산>이나 <객주> 등의 장편 역사 소설로 계승되었다.

 

줄거리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골 백정인 임돌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놈'인데, 부모를 걱정시킨다고 '걱정'이라고 하던 것이 '꺽정'으로 되었다.

꺽정은 열 살 때 갖바치의 아들과 결혼한 누이를 따라 서울로 와서 갖바치와 같이 살면서 그에게 글을 배운다. 양주팔은 본래 학식이 높은 데다 묘향산에 가서 도인 이천년에게 천문 지리와 음양 술수를 배우고 와서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학문에 두루 통달하여 당대의 명망 높은 조광조 등과 교유한다. 꺽정이는 글공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검술을 익힌다. 이 때 박유복과 이봉학은 임꺽정과 의형제가 된다.

갖바치는 기묘사화를 보고 나서 혼란스런 정국을 예견하고 임꺽정을 데리고 전국을 유랑한다. 꺽정은 곳곳에서 백성들의 고난에 찬 삶의 모습들을 접하게 되며 백두산에 가서 황천왕동이 남매를 만나고 황천동이의 누이 운총과 결혼하여 양주로 돌아와 아들 백손을 낳고 평범하게 산다.

그러나 임꺽정은 서른 다섯 살이 되자 여러 도적과 합세하여 봉산 황주 도적이 되며, 38세 때, 6명의 산적 두령과 함께 의형제 결의를 맺는다. 그들은 황해도 산적들의 소굴인 청석골을 차지해서 도적질을 하면서 평산에서 관군과 접전해서 승리한다. 그러는 가운데 한양 나들이를 갔다가 여러 첩을 맞아하여 방탕하게 지낸다. 그러다 다시 청석골로 돌아왔는데, 부하와 부인이 관군에게 잡히는 위기를 당한다. 전옥을 파괴하고 부하와 부인을 구출한 꺽정은 위험을 느끼고 소굴을 여러 군데로 분산시킨다. 그 해 관군과의 접전을 벌인 평산 싸움에서 관군이 패하고 임꺽정이 승리한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마지막 대단원으로, 임꺽정이 잡혀 처형되는 생애의 마지막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소설 [임꺽정]의 대미(大尾)부분 일부 <자모산성>편 발견

- 출판인 정해염씨, [조선일보] 연재분에서 확인

 

소설 [임꺽정]의 대미(大尾)부분이 발표된지 50여 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1928년부터 39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임꺽정] 중에서 지난 39년 3월 17일부터 7월 4일까지 연재된 <자모산성>편 36회(200자 412장 분량)가 처음으로 확인돼 발굴했다. 출판인이자 계간 [창작과 비평]의 편집 고문인 정해염씨가 일제 때인 39년과 40년에 출간된 을유문화사판(48년) 및 사계절판(85년) 등을 조선일보 보존판의 연재분과 대조해본 결과 지금까지 단행본 [임꺽정]이 모두 <자모산성>편을 누락시겼고, 모든 임꺽정 연구자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새로 발견된 <자모산성편>은 임꺽정의 부하였던 서림이 관군에 귀순한 뒤 조정에서 강원도와 황해도 순경사를 임명, 임꺽정의 본거지인 청석골을 치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임꺽정과 심복들이 거처를 자모산성으로 옮길 것인가를 숙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현재 유일하게 결정본으로 구할 수 있는 사계절판 [임꺽정](전9권)은 지난 48년 전6권으로 출간된 을유문화사판을 현대표 기법으로 고쳤고, 벽초가 지난 40년 [조광]지 10월호에 발표한 부분(200자 약 85장)을 마지막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벽초 홍명희가 광복 직후 월북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겼고, 북한에서도 완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최근 확인됐다.

 

이 <자모산성>편은 [조광] 발표 부분의 앞에 놓이는 부분으로서, 임꺽정이 단순한 화적패들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조와민중이 벌인 정면대결을 형상화했음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작품 평가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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