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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 해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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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 - 해설

 

닳아지는 살들19627󰡔사상계󰡕 109호 발표하여 제7호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타난 고향 상실의 주제는 개인적 내면 의식보다 전쟁으로 인한 민족 분단의 역사적 상황을 결부시키며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분단 상황은 판문점(1961),닳아지는 살들에게 상황성의 작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닳아지는 살들의 의미는 역사에 대한 전망이 부재한 현실을 단절된 공간으로 인식하여 그 역사적 전망으로부터 차단되어 버린 공간을 극대화시켜 주는 상징적 의미이다. 작품 표면상 뚜렷한 사건 전개가 없으면서도 등장 인물 사이에 대화 내용이 단절된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은 좁은 극장의 무대처럼 지극히 제한된 소설 공간과 압축된 구성의 소설 미학을 보이고 있다.

 

1960년대초 5월 어느 날, 저녁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한 가정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닳아지는 살들은 분단 상황에서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역사적 소외 의식을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형성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였으나 실상 두드러진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가족이 응접실에 모여 앉아 벽시계를 지켜보며 맏딸이 밤 열두 시 사이에 돌아오는 것, 그것뿐이다. 귀가 먹고 백치가 다 된 칠순이 넘은 아버지 ,시아버지를 모시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 며느리 정애, 스물아홉 살의 노처녀인 막내딸 영희, 아내와의 애정이 동결된 채 이층 자기 방에 칩거하는 작곡가 지망생 성식, 그리고 이북으로 시집가는 20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맏딸의 시사촌 동생 선재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 배치나 응접실의 분위기는 흡사 정물화처럼 조용하다. 다소 활동적인 인물들이 있다면 영희의 약혼자 선재와 자유스럽고 활달한 식모뿐이다. 활력을 보이는 부분은 선재가 집을 드나들며 외부와 끊임없이 교섭하거나 영희와 2층에서 관계를 맺은 일 등이 그것이다. 식모 역시 주인 영감이 백치가 된 후 도리어 이 집에서 자유스럽고 뻔뻔해지며 외출이 잦은 편이다.

 

기다리는 그들의 귀에는 꽝당 꽝당하는 불길한 쇠붙이 소리만 간헐적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윽고 시계가 열두 시를 치고, 모두의 사건이 시계와 노인의 얼굴로 향했다. 이때 복도의 문의 열리며 기묘한 웃음을 띤 식모가 나타난다. 발작이나 일으킨 듯 영희는 식모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언니가 왔다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한 손을 허공에다 대고 허우적거렸고, 성식과 정애도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꽝당 꽝당쇠붙이 소리만 밤새 이어질 모양이다.

 

이 작품의 구성상 특징은 첫째로 사건 진행이 단일한 공간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분위기가 응접실을 초점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층이나 복도의 장면조차도 결국 이 집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제한 된 시간 속에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오월의 어느 날 저녁에서 시작하여 밤 열두 시에 이르러 결말을 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공간적 제약과 시간적 제약의 필연적 결과로서 모든 작중 인물들의 행동은 서로 공통된 진행 속에 흡수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적이라기보다 드라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우기 작품에 일관하는 침체된 분위기조차도 안톤 체홉의 무대에서 느끼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이 작품의 내적 세계는 응접실이라는 조용하고 답답한 분위기로 채색되어 있다. 이 같은 소설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소재가 이다. 이호철의 소설에서 상황의 비극성을 구현하는 의미로서이 자주 사용된다. 이를테면, 나상(1956)의 베란다, 판문점(1961)의 상반된 상황,닮아지는 살들(1962)의 응접실 출입문 등은 모두 닫힘의 공간을 그린 것이다. 이 때 은 두 개의 상황과 두 개의 공간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된 세계에서는 의 존재 가치가 없다. ‘또한 열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닫혀 남북 분단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작중 인물들의 행동 사이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꽝당 꽝당과 같은 쇠붙이 소리는 단순한 물질적 음향이 아닌 인간 정신에 어떤 상처를 주는 암시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 음향을 자의식의 심층에서 받아들이는 영희, 그리고 단순한 음향으로 받아들이는 정애와 선재의 경우에서 확연히 구별된다. 이 작품은 결국 이와 같은 자의식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그린 것이다.

 

작품 요약

 

주제 : 분단 상황의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역사적 소외 의식.

인문 : 영의 ­이 집의 막내딸이며 스물아홉 살의 노처녀. 가족들의 의미 없는 삶에 불만을 토로한 정적 인물.

정애 ­이 집의 며느리이며 성식의 아내. 남편에게 무감각하며 시아버지를 모시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정적 인물.

아버지 ­은행에서 퇴직하고 거의 백치가 다 된 70세의 노인. 언제부터인가 맏딸을 기다리는 일에 익숙한 정적 인물.

성식 ­아내와의 애정이 동결된 채 이층 자기 반에서 칩거하는 작곡가 지망생.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패배주의적 정적 인물.

선재 ­이북으로 시집가서 20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맏딸의 시사촌 동생.

 

배경 : 1960년대초 5월 어느 날, 저녁부터 밤 열두 시까지.(공간적 배경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몰락해 가는 어느 가정이며, 시간적 배경은 저녁부터 밤 열두 시까지 현재의 상황에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이 삽입된 일상적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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