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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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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李陸史, 본성명 이활·李活, 이원록, 이원삼 1905-1944)

· 시인, 독립운동가.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 생. 진성 이씨. 퇴계 이황의 14대 손

· 5세 때부터 조부로부터 한문 수학, 그후 신학문 수학, 20세 때 대구 남산동 662 번지로 이사

· 1927년 형(원기), 동생(원조-문학평론가, 원일)과 함께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 군정서 <의열 단(義烈團)>에 가입하여 독입운동을 하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의 피의자로 검거, 이 때 학생인 원조는 풀려 나오고 3형제는 2년 7개월간 옥고를 치름 (아호인 ‘육사’는 이 때의 수인 (囚人) 번호 64 혹은 264번의 음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929년(26세)에 조선일보 대구 지사를 경영하면서 기자로 활동

· 1930년(27세) 대구격문사선에 연루되어 원일과 함께 대구경찰서에 피검, 6개월간 옥고를 치 르고, 외삼촌의 독립운동 자금관계로 만주에 들어갔다가 군관학교 학생모집을 위해 귀국, 원조 를 포함한 3인을 데리고 북경으로 가는 도중, 만주사변이 발생하여 3인은 3개월만에 돌아오고 육사는 봉천에 머물렀다.

· 1932년(29세)에 만주의 군관학교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에 입교, 30세 졸업. 31세에 서울서 일본헌병에 피검되는 등 생전 17회 이상 투옥됨

· 데뷔작은 1930년 1월 3일자 [조선일보] 발표작인 <말>이다. 그후 [조광]지에 <계절의 표정> 을 발표한 1942년까지 약 13년간 작품활동을 함

· 1932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여 등단

· 1937년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 등과 [자오선] 동인. --- 󰃫 < 김광균>

·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 투옥.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옥사.

· 이상화, 윤동주와 함께 대표적 저항시인.

· 대표작 : <절정>, <교목>, <광야>, <청포도> 등 한결같이 남성적 어조로 민족사의 창조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음.

· 유고시집 : [육사시집]

· 사후 그가 환갑이 되는 1964년에는 그의 큰조카 이동영(모 전문대교수)이 신석초, 이효상, 조 지훈 등의 협조를 얻어 [육사시집]을 [청포도]로 개제하여 다시 증보 발행하기도 했으며, 1968 년 어린이날에는 안동 낙동강 가에 육사시비를 세웠으며 여기에 <광야>가 새겨져 있다.

· 이육사의 작품 세계

- 초기 : 일제 강점하의 현실 소재, 강렬한 저항의식 - <광야>, <절정>

- 중기 : 실향 의식과 비애 표출 - <청포도>, <자야곡>, <교목>

- 후기 : 향토색을 띤 목가풍의 서정시로 높은 인간애 - <황혼>

---  시 <꽃>, <광야(曠野)>, <절정(絶頂)>, <청포도>, <교목(喬木)>, <자야오가>

 

󰏐 김광균(金光均)과 이육사(李陸史)

일제 강점 하의 후반에 활동했던 김광균, 이육사는 모두 ‘어둠’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 예로 김광균의 <설야>, <와사등>, 이육사의 <광야>, <절정>을 들 수 있다. 이는 30년대의 불안한 상황의식을 반연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 김광균 : 지향없는 방황의식, 불안의식을 극복하고자 하는 휴머니즘

- 이육사 : 독립투사로서의 강렬한 저항 의지

 

󰏐 육사의 시어(詩語)

 

󰊱 백철

① 강렬성, ② 전통성(고전성), ③ 수식성, ④ 광활성, ⑤ 다양성(한자어, 서구식 외래어, 신어(新語), 방언, 어미의 활용기교)

 

󰊲 정한모

① 강렬한 시어 선택에 의한 저항적, 투쟁적 이미지 형성, ② 원대하고 광활한 풍모의 수사법 활용에 상응하는 심미적 표현 가치의 획득, ③ 세련된 성형의식과 리듬에 대한 배려로 하여 시의 내면적 의미와 아울러 예술적 가치를 확대시키는 원동력을 이루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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