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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 - 이육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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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 - 이육사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5월의 병상(病床)에서

 

(신조선, 1935.12)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자가 처해 있는 배경인 골방황혼의 함축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골방은 화자가 처해 있는 밀실(密室)이지만 도피의 공간이 아니고, 번민과 고뇌를 통하여 지구의 반쪽을 내다볼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다.

황혼은 스스로는 사라지면서도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품안에 안을 수 있는 사랑, 평화, 안식의 시간을 뜻한다.

성격 : 서정적, 상징적

어조 : 독백과 기원의 어조

특징 :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함.

관념을 이미지화하여 표현함.

표현 : 상징과 비유(의인, 직유)

구성 : 자신과 인간의 처지 인식(1)

인간에 대한 애정의 갈망(2)

애정의 대상 제시(3,4)

아쉬움과 내일의 기대(5)

제재 : 황혼(黃昏)

주제 : 따뜻한 인간애(人間愛).(황혼을 통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추구)

 

<연구 문제>

1. 이 시의 시작 동기가 압축되어 나타나 있는 시행을 찾아 쓰라.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2. 1920년대 초기의 낭만파 시인들이 흔히 쓰는 밀실(密室)’과 이 시의 은 의미상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70자 내외로 설명하라.

1920년대의 밀실은 도피처로서의 폐쇄적 공간을 뜻하지만, 이 시의 골방은 지구의 반쪽을 내다볼 수 있는 곳으로, 열려진 공간이다.

 

3. 이 시의 이 상징하는 의미를 쓰라.

현실과 이상 세계의 통로.(죽어가면서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

 

4. 이 시에서 은 여러 가지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1)그러한 시어들을 찾아 쓰고, (2)그 이미지들이 지닌 공통점을 쓰라.

(1) 별들, 수녀들, 수인들, 행상대, 토인들

(2) 이 이미지들은 소외 당하고 고통 받는 존재라는 공통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1)

시적 발상의 계기는 첫 연과 마지막 연에서 드러난다. 시인은 5월의 어느날 골방의 커튼을 걷으며 황혼에 젖은 바다와 그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본다. 보기에 따라 아주 예사로운 이 정경은 그러나 시인에게 심상치 않은 인생의 기미를 느끼게 해 준다.

 

김영무 교수에 의하면, “황혼은 죽어 가면서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안아 들이는 크나큰 사랑이며 그는 자신이 황혼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자아의 밀실[골방]의 커튼을 열고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날 별과 외로운 수녀, 감옥의 죄인들, 사막의 행상대, 아프리카의 토인 등 모든 외롭고 괴로운 존재들을 부드럽게 안아 뜨거운 입맞춤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초연하고도 관조적인 태도로 막연한 인류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모순 속에서 버림받고 의지가지 없는사람들의 편에 서서 뜨거운 입술을 보내는 점이다. 입맞춤의 대상은 제2,3,4연에 열거되고 있는데, 그것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에서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2연의 모든 것이 제3연에서는 별들’, ‘수녀들’, ‘수인(囚人)로 제시되고, 4연에서는 행상대’, ‘토인들’, ‘지구의 반쪽으로 확산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점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는 결국 골방이라는 좁은 공간으로부터 지구의 반쪽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골방1920년대의 시인들의 시에 흔히 나타나는 밀실이나 동굴의 폐쇄적인 공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지구라고 하는 대신 지구의 반쪽이라는 말을 쓴 것일까? 무엇보다 제4연에 열거된 낙타 탄 행상대활 쏘는 토인들의 의미를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우리는 앞에서 그의 사랑의 대상이 의지가지 없는사람들이기에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온통 제국주의의 활극장을 이루고 있을 때, 그들은 아직도 낙타를 타고 을 쏘는, 소위 비문명국으로 남아서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한 사정은 당시의 우리 나라도 비슷하다. 세계가 온통 지배자의 나라와 피지배자의 나라로 양분되다시피 한 사정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구의 반쪽의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감상의 길잡이>(2)

이 시는 육사의 실질적인 등단작으로 골방에 있는 화자가 청자인 황혼에게 말을 건네는 독특한 화법으로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자가 처해 있는 골방황혼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골방20년대 초 󰡔백조󰡕 동인으로 대표되는 감상적 낭만주의 시인들이 일률적으로 추구하던 밀실과 같은 현실 도피의 공간이 아니다. 골방은 화자인 시인이 번민과 고뇌의 비극적 자기 인식을 하게 되는 공간이며, ‘황혼은 식민지 현실 상황의 화자에게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세계이다. 그러기에 화자는 커튼을 걷으며 외부와 차단된 고독감 속에서 안식과 평화의 황혼을 맞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이 시의 형태는 520행에, 각 연이 4행씩 조금의 변형도 없는 정형적 형태이다. 이로 미루어 육사의 시 의식이 한시나 시조와 같은 전통적인 시 형태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연의 시 형태를 시상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이 3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1연으로 전제 부분에 해당하며 화자의 독백 형태로 되어 있다. 2단락은 234연으로 황혼이라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소망을 기원문 형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본문 부분이다. 3단락은 5연으로 다시 화자의 독백 형태로 되어 있으며 해결 부분에 해당한다.

 

1연에서는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인 골방황혼의 대립적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커튼은 황혼의 우주와 골방의 중간 위치에 존재하며 걷고’ ‘맞아들이는화자의 행위에 의해 외부 세계를 그의 내면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통로 구실을 한다. 이에 따라 온 세상으로 번지고 스며들어 끝없이 확대되는 황혼골방으로 비쳐 들어오게 됨에 따라 골방의 폐쇄성은 황혼이 펼쳐진 우주로 개방, 확장될 수 있다.

 

2연에서는 존재의 외로움을 인식한 화자가 황혼의 손에 입을 맞추던 소극적 행위에서 황혼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에게 / 나의 입술을 보내는 적극적 행위로 변모하게 된다. 이로써 화자는 골방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황혼만큼 확대되게 된다. 그 모든 것이란 바로 3연에서의 수녀수인, 4연에서의 행상대토인들, 2연에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들이 34연에 이르면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분명해진다. 이것들은 모두 버림받은 것, 쓸쓸한 것, 외로운 것들로 화자는 그들을 부드럽게 안아 뜨거운 입맞춤을 보낸다. 이렇게 끝없이 확대되는 황혼에 의해 그 외로움이 해소되게 함으로써 화자와 대상 사이에 있는 거리감이 무너지게 되고, 공통된 의미의 동일성으로 화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화자가 자신이 추구하려는 안식과 평화의 세계를 단지 자신에게만 실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외로운 것들에게까지 확대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포용성이 바로 육사의 조국애, 민족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그를 조국의 광복을 위해 처절한 역사 현장 속으로 뛰어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5연에서 우주를 감싸 안은 화자의 포용성과 의지는 황혼의 사라짐, 시간의 유한성에 의해 인간의 꿈과 한계를 일깨워 주고 있다. 황혼이 오늘뿐 아니라 내일도 찾아와 주리라는 확신을 가지면서도, ‘암암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를것 같다는 우려를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한 현실 상황을 극복하고 안식의 세계로 향하려는 적극적인 저항 의지로 발전함으로써 후일 <절정>, <광야>로 대표되는 항일 저항 문학의 정수를 펼쳐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편 지구의 반쪽이라는 구절은 제국주의의 지배 국가와 피지배 국가로 지구가 양분되어 있던 당시의 국제 정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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