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전문 및 해설, 이해와 감상
by 송화은율반응형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송도(松都)에 이(李)씨 성을 가진 서생이 낙타교(駱駝橋) 앞에 살고 있었다. 나이는 열여덟인데 얼굴은 말쑥하며 재주가 뛰어났었다. 일찍부터 국학(國學)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글을 읽었다. 그 때 선죽리(善竹里) 귀족집에 최(崔)씨 처녀가 살고 있었다. 나이 열대여섯쯤 되었는데 맵시는 아리땁고 자수에 능하며 시부(詩賦)에도 뛰어났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칭찬했다. 풍류 재자 이 수재(秀才)야, 반달 같은 최 처녀야. 너희 재주 너희 얼굴, 한 번 보면 배부르다. 이 서생은 일찍부터 책을 끼고 학교에 갈 때는 언제나 최 처녀의 집 앞을 지나다녔는데 그 집 북쪽 담 밖에는 수십 그루의 수양버들이 운치있게 둘러쳐져 있었다. 이 서생은 어떤 날 그 나무 밑에서 쉬다가 문득 담 안을 엿보았더니 이름있는 온갖 꽃들은 활짝 피어 있고 벌과 새들이 그 사이를 요란하게 날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누각이 꽃숲 사이에 은은히 보이는데, 구슬로 만든 발은 반쯤 가려 있고 비단 휘장은 나지막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속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고 있다가 손을 잠시 멈추고 아래턱을 괴더니 시를 읊는다. 사창(紗窓)에 기대 앉아 수놓기도 느리구나, 활짝 핀 꽃떨기에 꾀꼴새는 지저귀고, 살랑이는 봄바람을 부질없이 원망하며, 가만히 바늘 멈추고 생각에 잠겨 있네. 저기 가는 저 총각은 누구 집 도련님고, 푸른 깃 넓은 띠가 버들 새로 비쳐 오네. 이 몸이 화신하여 대청 안의 제비 되면, 죽림을 사뿐 걸어 담장 위를 넘어가리. 이 서생은 그녀가 읊은 시를 듣고는 자기의 재주를 급히 시험하고자 안달이 났다. 그러나 그 집의 담장은 높고 가파르며,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다만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로 갔다. 그는 돌아올 때에 흰 종이 한 폭에다 시 3수를 써서 기와쪽에 매달아 담안으로 던져 보냈다. 최 처녀는 시비 향아를 시켜 주워 보니 이 서생이 보낸 시였다. 무산(巫山) 열두 봉에 첩첩이 싸인 안개, 반쯤 들난 봉우리는 붉고도 푸르러라. 이 몸의 외론 꿈 수고롭게 하지 마오, 구름 되고 비가 되어 양대(陽臺)에서 만나 보세. 사마상여(司馬相如) 본받아서 탁문군 꾀어 내려니, 마음 속 품은 생각 벌써 흠뻑 깊어지네. 담머리에 피어 있는 요염한 저 도리(桃李)는, 바람에 흩어지며 고운 봄을 앗아가네. 예쁜 인연 되려는지 궂은 인연 되려는지, 부질없는 이내 시름 하루가 삼추 같네. 넘겨 보낸 시 한 수에 가약 이미 맺었나니, 남교(藍橋) 어느 날에 고운 님 만나질까. 최 처녀는 그 시를 읽고 또 읽은 후 마음 속으로 기뻐하면서 자기도 종이쪽지에다 짤막한 글귀를 적어서 담장 밖으로 던져 주었다. "도련님은 의심치 마십시오. 황혼에 뵙기로 합시다." 황혼이 되자 이 서생은 최 처녀의 집을 찾아갔다. 문득 복숭아 꽃나무 한 가지가 담 밖으로 휘어져 넘어오면서 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서생은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매달린 대광주리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 서생은 그 줄을 타고 담을 넘어갔다. 때마침 달이 동산에 돋아오고 그림자가 땅에 깔려 맑은 향기가 사랑스러웠다. 이 서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오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은 은근히 기뻤으나 몰래 숨어들고 보니 모발이 곤두섰다. 그가 좌우를 살펴보니 최 처녀는 벌써 꽃떨기 속에서 시녀 향아와 함께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 서생을 보자 방긋 웃으며,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도리(桃李) 나무 얽힌 가지 꽃송이 탐스럽고, 원앙새 베개 위엔 달빛도 곱고나. 서생도 곧 뒤를 이어서 시를 읊었다. 이 다음 어쩌다가 봄소식이 샌다면, 무정한 비바람에 또한 가련하리라. 최 처녀는 곧 낯빛이 변하면서 말했다. "도련님 저는 애당초 도련님을 끝내 남편으로 모셔 오래도록 즐겁게 지내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조금도 걱정함이 없는데 대장부의 의기를 가지고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뒷날에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그녀는 향아를 시켜 방에 들어가서 술과 과일을 가져오게 했다. 향아가 떠나버리자 사방이 적막하며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이 서생은 물었다., "여기는 어떤 곳입니까?" "이 곳은 저희 집 뒷동산에 있는 작은 누각 밑입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무남독녀이므로 여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라 이 연못가에 누각을 지으시고 시비와 더불어 화창한 봄을 즐기게 해 주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여기서 떨어진 깊숙한 곳에 계시기 때문에 비록 웃으며, 큰소리로 얘기해도 쉽게 들리지 않습니다." 여인은 좋은 술을 따라 이 서생에게 권하면서 시 한 편을 읊었다. 부용못 푸른 물은 난간에서 굽어보고, 못가 꽃밭에서 정든 님들 속삭이네. 안개는 부슬부슬 봄빛은 화창한데, 새 가락 지어내어 백저가를 불러 보세. 꽃그늘엔 달빛 비쳐 털방석에 스며들고, 긴 가지 잡아보니 붉은 꽃비 쏟아지네. 바람 속의 저 향기는 옷 속에 스미는데, 첫봄 맞은 저 여인은 흥겹게 춤만 추네. 비단 적삼 가벼이 해당화를 스쳤다가, 꽃 사이에 졸고 있던 앵무새만 깨웠어라. 이 서생도 곧 시를 지어 회답했다. 잘못 찾은 선경에는 복숭아꽃 만발이네. 하많은 이내 정회 어찌 다 속삭일꼬. 구름 같은 쪽진 머리 금비녀 낮게 꽂고, 시원한 모시 적삼 새로 지어 입었어라. 나란히 핀 꽃꼭지를 봄바람이 피워 주니, 저 많은 꽃가지를 비바람 부지 마오. 나부끼는 선녀 소매 땅위에 살랑살랑, 계수나무 그늘 속엔 항아 아씨 춤을 추네. 좋은 일엔 언제나 시름이 따르나니, 함부로 새 곡조를 앵무새에 가르치랴. 이 서생이 읊기를 마치자 최 처녀가 말했다. "오늘 일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도련님은 저를 따라 오셔서 두터운 정의를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중략) 이생은 그녀와 더불어 즐거움을 만끽하며 며칠 동안 유숙하였다. 어느 날 이생은 최랑에게 말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 계시오면 나가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방향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내 어버이를 떠나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으니, 어버이께서 응당 문에 비겨 바라실 것이오니 어찌 인자의 도리라 하겠소." 그녀는 곧 이생이 돌아가는 것을 응낙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이생은 저녁마다 그녀를 만났다. 어느 날 저녁, 이생의 아버지가 그에게 꾸지람을 내렸다. "네가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날이 저물어야 돌아옴은 옛 성인의 참된 말씀을 배우려 함이었는데, 이제는 황혼에 나가서 새벽에야 돌아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분명 못된 아이들의 행실을 배워 남의 집담장을 뛰어넘어 다니는 것이지? 이런 일이 남의 눈에 띄면 남들은 모두 내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다고 책망할 것이요, 또 그 처녀도 만일 양반집 규수라면 너 때문에 문호를 더럽힐 것이니, 남의 집에 죄를 지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서 빨리 영남 농촌으로 내려가 일꾼을 데리고 농사일을 감독하거라. 그리고 내 명령이 있기 전에는 함부로 올라오지 말지어다." 아버지는 그 다음날 바로 아들을 울주로 내려보냈다. 최 처녀는 매일 저녁 화원에 나와서 이생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여러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최 처녀는 이생이 병이 나지나 않았나 걱정이 되어 향아를 시켜 몰래 이생의 이웃 사람에게 물어 보게 하였더니 이웃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도령은 그 아버지께 죄를 얻어 영남 시골로 내려간 지가 벌써 여러 달이라오." 최 처녀는 이 소식을 듣고 상사병(相思病)이 나서 침상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녀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두서가 없었으며, 피부는 혈색을 잃었다. 최 처녀의 부모는 이를 이상히 여겨 그 병의 증상을 물어 보았으나 묵묵히 말이 없었다. 최 처녀의 부모가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더니 거기에는 딸이 이생과 서로 주고받은 시가 들어 있었다. 최 처녀의 부모는 그제야 놀라면서 무릎을 쳤다. "아이구, 까딱 잘못하였더라면 나의 무남독녀(無男獨女) 귀한 딸을 잃을 뻔했구나." 그들은 딸에게 물었다. "이생이란 대체 누구냐?" 일이 이쯤 되니 최 처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목구멍에서 간신히 나오는 소리로 부모님께 솔직히 고하였다. "고이 길러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어찌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저 혼자 가만히 여러 모로 생각하옵건대,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낌은 인간의 정리로서 중대한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결혼의 중한 시기를 잃지 말라는 것은 '시경'의 주남편에도 나오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것은 주역에 경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냇버들 같은 가냘픈 몸으로서 용색이 시드는 것은 생각지 않고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옆 사람의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삼 덩굴과 여러 이끼가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 듯이, 벌써 위당의 처녀 행세를 하게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수치가 가문에 미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장난꾸러기 도련님과 정을 통한 후에야 도련님께 대한 원망이 첩첩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약한 몸으로 괴로움을 참고 홀로 살아가려니 사모하는 정은 날로 깊어 가고 아픈 상처는 날로 더해 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해버릴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남은 목숨을 보존할 것이옵고, 만약 이 간곡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생과 저승에서 다시 함께 만날지언정 맹세코 다른 가문에는 오르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부모(父母)는 이미 그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고 타이르고 달래고 하여 그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는 한편, 중매인을 중간에 넣어 예를 갖추어 이생의 집으로 보냈다. 이씨는 먼저 최씨의 문벌을 물은 뒤에 말했다. "비록 우리 아이가 나이가 어리고 바람이 났다 하여도 학문에 정통하고 얼굴이 유다르니 장차 대과에 급제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것이니 함부로 혼사를 정하지 않겠소." 중매인은 곧 돌아와 이 말을 최씨에게 전하였다. 최씨는 다시 중매인을 이씨에게 보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귀댁의 도령은 재화가 뛰어나다 하니, 비록 지금 몹시 곤궁할지라도 장래엔 반드시 현달(顯達)할지니, 빨리 만복의 날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 나도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구하였는데, 나이가 들어도 업을 이루지 못하여 노비들은 흩어지고 친척들도 돌봐주지 않아 삶이 곤란하온데, 귀족 댁에서 무엇을 보고서 가난한 선비를 취하겠소. 아마도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이가 나의 문벌을 과장되게 소개하여 귀택(貴宅)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겠소?" 중매인이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와 최씨에게 알리자, 최씨는 또 그를 이씨에게 보내었다. "모든 예물과 의장은 전부 저희 집에서 담당할 것이오니, 다만 좋은 날을 택해 화촉의 예를 치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씨는 최씨의 간절한 요청에 마음을 돌려 곧 사람을 울주에 보낸 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이 희보(喜報)를 접한 이생은 기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여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깨진 거울 합쳐지니 이 또한 인연이라 은하의 오작(烏鵲)인들 이 가약(佳約)을 모를쏘냐 이제야 월로승 굳게 굳게 잡아매어 봄바람 살랑 불 때 접동새를 원망 마오 오랫동안 이생을 그리워하던 최랑은 그가 이 시를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병이 점점 나아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악인연이 호인연인가 옛날 맹세 이루련다 어느 때 님과 함께 저 작은 수레를 끌고 아이야, 날 일으켜라 꽃비녀를 정리하리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길일을 잡고 혼례를 치렀다. 이로부터 이 부부는 서로 사랑과 공경을 지켜, 비록 옛날의 양홍과 맹광이라도 그들의 절개를 따를 수 없었다. 그 다음 해에 이생은 대과를 거쳐 높은 벼슬에 올라 이름을 세상에 날렸다. (중략) 신축년(1361년) 홍건적이 개성을 함락시키자 왕은 복주(福州)로 피란하였다. 도적들은 집을 파괴하고 사람과 가축을 마구잡이로 죽이니, 부부나 친척들은 서로 돌보지 못한 채 동서로 달아나게 되었다. 이 때 이생(李生)은 가족과 함께 산골에 숨었는데 어떤 도적이 칼을 빼들고 이생을 쫓아왔다. 이생은 달아났지만 최랑(崔娘)은 도적의 포로가 되었다. 도적이 겁탈하려 하자 최랑은 크게 꾸짖기를, “호랑이 같고 귀신 같은 놈아, 나를 죽이고 잡아먹어라. 승냥이의 뱃속에 내 몸을 장사지낼지언정 개돼지의 짝이 되지는 않겠다.” 라고 하니, 도적이 화가 나서 최랑을 무자비하게 죽여 버렸다. (중략) 한편 이생은 황폐한 들에 숨어서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의 무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집은 이미 병화(兵禍)에 타 버리고 없었다. 다시 아내의 집에 가 보니 행랑채는 쓸쓸하고 집 안에는 쥐들이 우글거리고 새들만 지저귈 뿐이었다.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작은 누각(樓閣)에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고 보니, 완연히 한돋움 꿈만 같았다. 밤중이 거의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 주는데, 낭하(廊下)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먼 데서 차차 가까이 다가온다. 살펴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거기 있었다. 이생은 그녀가 이미 이승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앞서 의심도 하지 않고 말했다. "부인은 어디로 피난하여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은 이생의 손을 잡고 한돋움 통곡하더니 곧 사정을 얘기했다. (중략) 여기까지 말하자 슬픔이 북받치는 듯했다. 다시 말을 이어, “장차 백년 해로하리라 여겼더니, 뜻하지 않게 횡액(橫厄)을 만나 승냥이와 호랑이 같은 도적놈에게 정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스스로 진흙탕에 제 몸이 찢겨 죽는 쪽을 택하였습니다. 그대와 그 날 궁벽한 산골짜기에서 헤어진 후 저는 짝 잃어 외로이 나는 새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집안은 망하고 부모님도 잃었으니 혼백을 의탁할 데가 없게 되었답니다. 정조를 소중히 여기고 목숨은 가벼이 여겨 다행히 이 몸이 욕을 보는 일은 면하게 되었지만, 누가 산산조각난 제 마음을 가련히 여기겠습니까? 그저 애절하게 썩는 애간장에 원한만 맺힐 뿐입니다. 해골은 들판에 나뒹굴고, 내장은 땅에 흩어지겠지요. 지난날 즐거웠던 일만큼이나 오늘 근심과 원한이 깊은 듯합니다.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 오고, 제 환신(幻身)도 이승으로 되돌아와 남은 인연을 맺으려 합니다. 그대와 저는 삼세(三世)의 깊은 인연이 맺어져 있는 몸,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결코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대께서 지금도 삼세의 인연을 알아 주신다면 끝내 고이 모실까 하오니 그대께서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생이 이를 듣고 한편으로 기뻐하고 한편으로 슬퍼하며, “진실로 원하던 바요.” 하고는 서로 간곡하게 지난 일을 말하였다. (중략) 서로 쌓였던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에 드니 지극한 정이 옛날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은 이생과 함께 옛날 개령동을 찾아갔다. 거기에는 금·은 몇 덩어리와 재물 약간이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유골을 거두고 금·은과 재물을 팔아서 각각 오관산(五冠山) 기슭에 합장(合葬)하고는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모든 예절을 다 마쳤다. 그 후 이생은 벼슬을 구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살게 되니, 피난갔던 노복들도 또한 찾아 들었다. 이생은 이로부터 인간의 모든 일을 전혀 잊어버리고서 친척과 귀한 손의 길흉사(吉凶事) 방문에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으며, 늘 아내와 함께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즐거이 세월을 보냈다. 어느덧 두서너 해가 지난 어떤 날 저녁에 여인은 이생에게 말했다. "세 번째나 가약을 맺었습니다마는,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즐거움도 다하기 전에 슬픈 이별이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목메어 울었다. 이생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여인은 대답했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저와 낭군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악도 없었으므로, 하느님께서 이 몸을 환신(幻身)시켜 잠시 낭군을 뵈어 시름을 풀게 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 하더니 시비(侍婢)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이생에 술을 권했다. 도적때 밀려와서 처참한 싸움터에, 몰죽음 당하니 원앙도 짝 잃었네. 여기저기 흩어진 해골 그 누가 묻어 주리, 피투성이 그 유혼(遊魂)은 하소연도 할 곳 없네. 슬프다 이내 몸은 무산(巫山) 선녀 될 수 없고, 깨진 거울 갈라지니 마음만 쓰라리네. 이로부터 작별하면 둘이 모두 아득하네, 저승과 이승 사이 소식조차 막히리라. 노래 한 가락씩 부를 때마다 눈물에 목이 막혀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했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했다. "나도 차라리 부인과 함께 황천(黃泉)으로 갔으면 하오. 어찌 무료히 홀로 여생을 보내겠소. 지난번에 난리를 겪고 난 후에 친척과 노복(奴僕)들이 각각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임의 유골(遺骨)이 들판에 버려져 있을 때, 부인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능히 장사를 지내 주었겠소. 옛 사람의 말씀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예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도 예절로써 장사지내야 한다했는데, 이런 일을 모두 부인이 실천했소. 그것은 부인의 천성(天性)이 순효(純孝)하고 인정이 두터운 때문이니 감격해 마지 않았으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소. 부인은 이승에서 함께 오래 살다가 백 년 후에 같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떻겠소?" 여인은 대답했다. "낭군의 수명(壽命)은 아직 남아 있으나, 저는 이미 저승의 명부(冥府)에 이름이 실려 있으니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해서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에 위반됩니다. 그렇게 되면 죄가 저에게만 미칠 것이 아니라 낭군님께까지 그 허물이 미칠 것입니다. 다만 저의 유골이 아직 그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면 유골을 거두어 비바람 맞지 않게 해 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구(未久)에 여인은 말했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을 마치자 점점 사라져서 마침내 종적을 감추었다. 이생은 아내가 말한 대로 그녀의 유골을 거두어 부모의 무덤 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금오신화, 이재호 옮김) 정리 작자 : 김시습 연대 : 세조 때 갈래 : 한문소설, 전기소설, 염정소설, 단편소설, 명혼 소설, 시애소설 성격 : 낭만적, 전기적(이상한 것이나 진기한 것을 허구적으로 짜놓은 것을 가리키는 일종의 초현실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승에 없는 사람과 사랑을 한다는 설정은 이 작품의 전기 소설적 성격을 보여주고, 또한 부부의 인연을 삼세까지 이어가겠다는 구성의 전개는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한 전기소설의 한 전형을 보임), 비극적, 환상적 배경 : 시간적- 고려공민왕 때 공간적- 송도(개성) 구성 : 5단 구성(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또는 기·승·전·결 의 4단 구성으로 최 소저가 죽기 전의 내용과 죽은 후의 내용으로 된 이중 구조. (이 작품은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작품으로 전반부는 주인공은 힘겹게 사랑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효'라는 전통적인 도덕 규범과 대치하기도 하지만 이승의 현실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그 같은 강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파괴되고 좌절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다시 말해서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2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 성취시키는 것은 전기 소설로서의 구조적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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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 이생과 최랑의 만남과 사랑 | 전반부 (상승 과정) |
남녀 주인공의 자유연애 (염정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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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① | 이생 부모의 반대로 인한 일시적 이별 | ||||||||||
전개 ② | 부모의 반대를 극복한 결혼 | ||||||||||
위기 |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최랑의 갑작스런 죽음 | 후반부 (하강 과정) |
살아 있는 이생과 죽은 최랑의 사랑(전기적) | ||||||||
절정 | 살아 있는 이생과 죽은 최랑의 재회 | ||||||||||
결말 | 이생과 최랑의 영원한 이별 | ||||||||||
---- 현실 : 최 처녀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 / 초현실 : 최 처녀의 환신과 재결합과 재이별 / 현실 : 최 처녀를 장사지내주고, 이생도 죽음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작품의 구성은 서사 문학의 전통적 방식으로 사건의 시간적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세 차례의 만남과 시련 및 이별이 거듭되는 복합 구성의 양상을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세 번의 시련은 ① 부모님의 반대 ② 홍건적의 난리로 인한 최씨 부인의 죽음 ③ 삶과 죽음을 가르는 명부(冥府)의 법칙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의 시련은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으로 해결되지만, 두 번째의 위기는 해결의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나 김시습은 비극적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창작 의식으로써, 전래 설화에서 볼 수 있는 명혼(冥婚), 즉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사랑ㆍ결혼이라는 이야기 방식을 도입하여 환상적이고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서술의 시점은 가장 일반적인 수법인 3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을 활용하였다.) 내용 : 개성의 이생(李生)과 최랑(崔랑)과의 연애를 표현하고, 후반에 가서 이생이 홍건적에게 죽은 아내 최소저의 환신(幻身)을 만나 부부 생활을 하다가 헤어졌다는 내용. 사상 : 유불선 사상의 혼합(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작품으로 전반부는 이승의 현실적인 사건을 후반부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 성취시켰지만 결말에서 작가는 이생의 재회가 허무하게 끝나도록 해 놓은 것은 불교적인 무상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재 : 남녀간의 사랑 주제 :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 진실된 사랑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음 특징 :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내용을 다루고, 한문 문어체로 사물을 미화시켜 표현하고, 글의 내용 중에서 시를 삽입함으로써 등장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음. 세 차례의 만남과 시련 및 이별이 거듭되는 복합적인 구성을 취함. 의의 : 최초의 한문 소설집인 <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선 시대 한문 소설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줌. 몽유록계의 소설의 원류가 됨. 출전 : 금오신화(金鰲新話 : 한문으로 쓴 전기 소설이며 단편 소설적 구성을 가지고 있고, 고려 시대의 설화 문학을 계승하여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을 확립시켰고, 이후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전기 소설의 일반적 특징을 갖추고 있고,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줄거리 : 개성에 살던 이생이라는 젊은이가 글공부를 다니다 귀족 집안의 최랑이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발견하고 매혹된 나머지 사랑의 글을 써서 담 너머로 던진다. 그 뒤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생 부모의 반대로 시련을 겪게 된다. 최씨 부모의 노력으로 결국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이생은 과거에 오른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홍건적(紅巾賊)의 난으로 여인이 도적의 칼에 맞아 죽고 만다. 이생은 깊은 실의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인이 환신(幻身)하여 이생을 찾아와 두 사람은 다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3년이 지난 어느날 여인은 자신의 해골을 거두어 장사 지내 줄 것을 부탁하며 이생과 작별한다. 이생은 아내의 말대로 시체를 거두어 장사 지낸다. 그 후 이생은 아내를 지극히 생각 한 나머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기타 : '금오신화'는 현재 전하는 5편이 그 전부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으며, 국내에는 사본밖에 없고, 일본에서 간행된 것이 1927년 최남선의 의해 소개되었다. 김안로는 그의 '용천담적기'에서 '금오신화'가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를 본받아 지었다고 한 이래 최남선 등에 의해 다시 확인되었다. 그러나 영향 관계는 인정하되, 김시습의 세계관에 의해 창작된 창작물로 이 땅의 향토적 배경을 강조하였고, 이 땅의 주인공으로 하였으며, 작가 자신의 이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에서 느끼는 갈등과 그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모방작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독창성이 인정된다. 작품 개관 : '이생규장전'은 중세 전기 서사 문학의 흐름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인 '소설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제재로 선정되었다. '이생규장전'은 김시습이 지은 한문 소설로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에는 '용궁부연록', '취유부벽정기' 등의 다섯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에 이 같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원초적인 설화로부터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어온 문학사적 전통과 함께, 조선왕조의 새로운 지도 이념에 부합하는 주리론적 통치이념이 대두대자 여기에 대항하여 나타난 주기론이라는 철학 사상이 등장하였다는 사상사의 새로운 전개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 등 외래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내용 연구 이생규장전(이생이 담장을 엿본 이야기를 '전'이라는 형식으로 서술 / ‘규(窺)’는 ‘엿보다’라는 의미이고, ‘장(墻)’은 ‘담’이라는 의미이다. 즉 ‘이생규장’이란 ‘이생이 담장 안을 엿보다.’라는 뜻이다. 작품의 이생은 어느 봄날 길가에 있는 양반집의 담장 안을 엿보다가 최 여인을 보게 되고 시를 주고받다가 인연을 맺게되는데, 제목은 바로 이러한 두 사람의 사랑의 시작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이생은 그녀와 더불어 즐거움[(雲雨之樂) : 무산지몽(巫山之夢) : 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즐거움인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로 중국 초나라의 양왕(襄王)이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神女)를 만나 즐거움을 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을 만끽하며 며칠 동안 유숙하였다. 어느 날 이생은 최랑에게 말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 계시오면 나가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방향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내 어버이를 떠나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으니, 어버이께서 응당 문에 비겨 바라실 것이오니 어찌 인자의 도리라 하겠소." 그녀는 곧 이생이 돌아가는 것을 응낙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이생은 저녁마다 그녀를 만났다. 어느 날 저녁, 이생의 아버지가 그에게 꾸지람을 내렸다. "네가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날이 저물어야 돌아옴은 옛 성인의 참된 말씀을 배우려 함이었는데, 이제는 황혼에 나가서 새벽에야 돌아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분명 못된 아이들의 행실을 배워 남의 집담장을 뛰어넘어 다니는 것이지? 이런 일이 남의 눈에 띄면 남들은 모두 내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다고 책망할 것이요, 또 그 처녀도 만일 양반집 규수라면 너 때문에 문호를 더럽힐 것이니, 남의 집에 죄를 지음이 적지 않을 것이다[당대의 엄격했던 시대상의 분위기를 반영]. 어서 빨리 영남 농촌으로 내려가 일꾼을 데리고 농사일을 감독하거라. 그리고 내 명령이 있기 전에는 함부로 올라오지 말지어다." 아버지는 그 다음날 바로 아들을 울주(지금의 경상남도 울산)로 내려보냈다. 최 처녀는 매일 저녁 화원에 나와서 이생이 오기를 기다렸으나[학수고대(鶴首苦待) :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림. /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일각이 3년처럼 길다. 어떤 것을 초조하게 기다릴 때의 마음] 여러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먼 시골로 보내 버렸기 때문에]. 최 처녀는 이생이 병이 나지나 않았나 걱정이 되어 향아를 시켜 몰래 이생의 이웃 사람에게 물어 보게 하였더니 이웃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도령은 그 아버지께 죄를 얻어 영남 시골로 내려간 지가 벌써 여러 달이라오." 최 처녀는 이 소식을 듣고 상사병(相思病 : 남자나 여자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 나서 침상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다[이생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상심하기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두서가 없었으며[橫說竪說(횡설수설) :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임], 피부는 혈색을 잃었다. 최 처녀의 부모는 이를 이상히 여겨 그 병의 증상을 물어 보았으나 묵묵히 말이 없었다. 최 처녀의 부모가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더니 거기에는 딸이 이생과 서로 주고받은 시가 들어 있었다[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 최 처녀의 부모는 그제야 놀라면서 무릎을 쳤다.[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 나온 행동] "아이구, 까딱 잘못하였더라면 나의 무남독녀(無男獨女 : 외동딸) 귀한 딸을 잃을 뻔했구나."[딸이 왜 아픈지를 몰랐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들은 딸에게 물었다. "이생이란 대체 누구냐?" 일이 이쯤 되니 최 처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목구멍에서 간신히 나오는 소리[최 처녀가 한 일은 떳떳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로 부모님께 솔직히 고하였다.[이실직고(以實直告) : 사실 그대로 고함] "고이 길러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어찌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저 혼자 가만히 여러 모로 생각하옵건대,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낌은 인간의 정리로서 중대한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결혼의 중한 시기를 잃지 말라는 것은 '시경'의 주남편에도 나오고[매화가 떨어져 시드는 것을 처녀가 결혼의 좋은 시기를 놓친 것으로 빗대어 한 시구가"시경"의 주남편에 나옴. 이 장면은 이생을 기다리다 병이 든 최 처녀가 부모님께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부분으로, 이를 통해 최 처녀의 이생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최 처녀의 사랑은 유교 사회에서 파격적인 것으로, 자유의사에 의한 만남과 혼인을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남녀의 애정에 대한 작자의 진보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그러함에도 작자는 자유의사에 의한 만남을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유교적 장치 - 중매쟁이를 내세움- 를 주고 있어 현실에 입각한 자유 연애를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최 처녀의 이야기에서' 죽음'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 글 전체의 구조에 비추어 볼 때 복선에 해당한다고 파악 할 수 있다. / 남녀가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정리로 가장 중대한 일이라는 말을 뒷받침하는 전거],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것은 주역에 경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냇버들 같은 가냘픈 몸으로서 용색(용모와 안색을 이르는 말)이 시드는 것은 생각지 않고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옆 사람의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삼 덩굴과 여러 이끼가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 듯이, 벌써 위당의 처녀 행세('전등신화'의 '위당기우기'에 나오는 이야기. 원나라 금릉 사람 왕서생이 위당에 갔다가 그 곳 처녀를 만나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다시 말해서 원나라 때 위당의 처녀가 왕서생과 눈이 맞아 저희끼리 부부가 된 일을 두고 하는 말)를 하게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수치가 가문에 미치고 말았습니다[부모의 허락없이 사내와 눈이 맞은 것은 당대의 규율에 어긋나므로]. 저는 장난꾸러기 도련님과 정을 통한 후에야 도련님께 대한 원망[미래를 약속한 이생을 만날 수 없게 되었으므로]이 첩첩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약한 몸으로 괴로움을 참고 홀로 살아가려니 사모하는 정은 날로 깊어 가고 아픈 상처는 날로 더해 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해버릴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남은 목숨을 보존할 것이옵고, 만약 이 간곡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부모님께 하는 요청이나 내용상으로는 거의 협박에 가까움]. 이생과 저승에서 다시 함께 만날지언정 맹세코 다른 가문에는 오르지 않겠습니다." [최 처녀는 부모의 뜻에 따라 전통적인 여인의 순종적인 인간형에서 벗어나 애정 성취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적극적인 인간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최 처녀의 사랑은 당대의 유교 사회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으로, 자유 의지에 의한 만남과 혼인을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애정 성취에 대한 김시습의 진보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 자유 의지에 의한 애정 성취에 강한 의지를 보임 - 자유연애를 긍정하는 진보적 시각] 그녀의 부모(父母)는 이미 그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고 타이르고 달래고 하여 그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는[최 처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알 수 있음] 한편, 중매인(매자)을 중간에 넣어 예를 갖추어 이생의 집으로 보냈다. 이씨는 먼저 최씨의 문벌을 물은 뒤에 말했다. "비록 우리 아이가 나이가 어리고 바람이 났다 하여도[아들과 최 처녀의 사랑을 한때 바람난 것으로 여김] 학문에 정통하고 얼굴이 유다르니 장차 대과에 급제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것이니[입신양명(立身揚名) :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침. / 아들의 성공을 확신하며 혼인을 거절함] 함부로 혼사를 정하지 않겠소." 중매인은 곧 돌아와 이 말을 최씨에게 전하였다. 최씨는 다시 중매인을 이씨에게 보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귀댁의 도령(영식 : 남의 아들을 높여 일컫는 말로 딸은 영애라고 함)은 재화가 뛰어나다 하니[이씨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이생의 됨됨이를 칭찬함], 비록 지금 몹시 곤궁할지라도[벼슬이 없음 / 포의지사(布衣之士 : 베옷을 입은 선비라는 뜻으로, 벼슬을 하지 아니한 가난한 선비를 이르는 말.) ]장래엔 반드시 현달(顯達)할지니, 빨리 만복의 날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 나도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구하였는데, 나이가 들어도 업을 이루지 못하여 노비들은 흩어지고 친척들도 돌봐주지 않아 삶이 곤란하온데, 귀족 댁에서 무엇을 보고서 가난한 선비를 취하겠소. 아마도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이(호사가 : 남의 일에 특별히 흥미를 가지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가 나의 문벌을 과장되게 소개하여 귀택(貴宅)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겠소?"[최처녀의 집안을 높이고 자신의 가문을 겸손히 말하며 거절의 명분으로 삼음.] 중매인이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와 최씨에게 알리자, 최씨는 또 그를 이씨에게 보내었다. "모든 예물과 의장은 전부 저희 집에서 담당할 것이오니, 다만 좋은 날을 택해 화촉의 예를 치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최 처녀의 소원을 꼭 들어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제안] 이씨는 최씨의 간절한 요청에 마음을 돌려 곧 사람을 울주에 보낸 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이 희보(喜報)를 접한 이생은 기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여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깨진 거울[헤어져 있던 이생과 최 처녀] 합쳐지니[“고금시화(古今詩話)”의 고사를 인용한 부분이다. 진(陳)나라 서덕언(徐德言)이 세상의 흉흉함을 걱정하며 아내인 낙창공주(樂昌公主)와 거울을 깨뜨려 나누어 가졌는데, 진나라가 망하고 낙창 공주는 양소(楊素)라는 권력자의 소유가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서덕언은 아내의 거울을 파는 사람을 발견하곤 이에 시를 지어 부르니, 낙창 공주는 그 시를 전해 듣고 슬퍼하며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 뒤 양소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낙창 공주를 서덕언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 또한 인연이라 은하의 오작(烏鵲)[견우와 직녀를 연결해 주는 까치]인들 이 가약(佳約 : 부부가 되자는 약속)을 모를쏘냐[자신들의 사랑을 견우 직녀의 사랑에 비유] 이제야 월로승 굳게 굳게 잡아매어 [월하노인이 남녀의 인연을 붉은 실로 맺어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봄바람 살랑 불 때 접동새를 원망 마오 [시를 삽입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전개상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인물의 내면 심리와 감정을 함축적이고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 / 또한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주제를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도 얻는다.] 오랫동안 이생을 그리워하던 최랑은 그가 이 시를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병이 점점 나아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이생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며 다시 이생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 악인연이 호인연인가 (궂은 인연 좋은 인연으로 변하니 / 이생과 만났다 헤어져 마음고생을 했으므로) 옛날 맹세 이루련다(옛날의 굳은 맹세 마침내 이루어졌네)[금석지약(金石之約) : 쇠나 돌처럼 굳고 변함없는 약속. 유사어로 금석뇌약, 금석맹약, 금석상약.] 어느 때 님과 함께 저 작은 수레를 끌고 갈꼬[언제 시댁으로 가겠느냐는 뜻, 빨리 결혼하여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심정 / 한나라 때 환소군이 남편 포선과 함께 겨우 사슴 한 마리가 들어갈 만한 작은 수레를 끌고 남편의 고향 마을로 시집을 갔는데, 그 후 환소군은 가난한 살림에도 남편을 잘 보살펴 천하의 어진 아내로 알려졌다. 이 부분은 여기에 근거한 표현으로, 언제 시가(媤家)로 가겠느냐는 뜻이다. 빨리 결혼하여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최랑의 심정이 나타난 구절이다.] 아이야, 날 일으켜라 꽃비녀를 정리하리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길일을 잡고 혼례를 치렀다. 이로부터 이 부부는 서로 사랑과 공경을 지켜, 비록 옛날의 양홍과 맹광과 포선, 환소군의 부부[양홍과 맹광은 후한의 부부이며, 거안제미(擧案齊眉) : 밥상을 눈썹과 가지런하도록 공손히 들어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을 이르는 말.)의 고사로 유명하며, 포선과 환소군은 전한 때의 부부로 아내인 맹광과 환소군은 한평생 남편을 도와 좋은 가정을 이루었다는 고사가 전한다]일지라도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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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양홍(梁鴻)·맹광(孟光) : 한(漢)나라의 양홍·맹광 부부를 가리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던 맹광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시집을 안 가려는 이유를 묻자 “양홍 같은 훌륭한 총각만 있으면 시집을 가겠다.”라고 말했으며, 이 소문을 들은 양홍은 곧 청혼해 결혼함. 포선(鮑宣)·환소군(桓少君)의 부부: 전한(前漢) 때 포선이 일찍이 환소군의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는데 환소군의 아버지가 포선의 청빈한 지조를 칭찬하여 사위로 맞아들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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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해에 이생은 대과를 거쳐 높은 벼슬에 올라 이름을 세상에 날렸다.[입신양명] 이윽고 신축년(고려 공민왕 10년 1361년) 홍건적[홍건적의 난은 이전과 다른 사건의 발생을 유도하는 기능을 함]이 개성을 함락시키자 왕은 복주(福州)로 피란하였다[파천(播遷) :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하던 일로 고려말 홍건적이 침입했던 역사적 사실을 돋움으로 하고 있다. 홍건적의 침입은 둘의 사랑을 가로막는 '세계의 횡포'에 해당하고 외적 갈등에 해당하는데 갈등은 소설이나 희곡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 또는 등장인물과 환경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이르는 말로 외적 갈등은 인물과 인물, 인물과 외부 세계(자연, 운명 등)의 대립으로 일어나는 갈등이고, 내적 갈등은 한 인물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을 말한다.]. 도적들은 집을 파괴하고 사람과 가축을 마구잡이로 죽이니, 부부나 친척들은 서로 돌보지 못한 채 동서로 달아나게 되었다[(風飛雹散) : 사방으로 날아 흩어짐 / 혼비백산(魂飛魄散) :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말. 유사한 말로 '혼불부신'과 '혼불부체'가 있다 / 서로 보호하지 못할 만큼 상황이 다급했음을 나타냄.].이 때 이생(李生)은 가족과 함께 산골에 숨었는데 어떤 도적이 칼을 빼들고 이생을 쫓아왔다[위기일발 (危機一髮) : 여유가 조금도 없이 몹시 절박한 순간으로 유사어로 위여일발이 있음 / 명재경각 (命在頃刻) -금방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름. 거의 죽게 됨. ]. 이생은 달아났지만 최랑(崔娘)은 도적의 포로가 되었다. 도적이 겁탈하려 하자 최랑은 크게 꾸짖기를, “호랑이 같고 귀신 같은 놈아, 나를 죽이고 잡아먹어라. 승냥이의 뱃속에 내 몸을 장사지낼지[죽을지언정]언정 개돼지의 짝이 되지는 않겠다.”[최랑이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원인이 되고, 홍건적의 존재에 대한 이질감, 정조를 지키려는 최랑의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자, 최랑의 성격도 엿볼 수 있다. 최랑의 강렬한 의지와 홍건적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 라고 하니, 도적이 화가 나서 최랑을 무자비하게 죽여 버렸다. 한편 이생은 황폐한 들에 숨어서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의 무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집은 이미 병화(兵禍 : 전쟁으로 말미암은 재앙과 화)[홍건적의 난은 이전과 다른 사건의 발생을 유도하는 기능을 함]에 타 버리고 없었다. 다시 아내의 집에 가 보니 행랑채(대문간 곁에 있는 집채)는 쓸쓸하고 집 안에는 쥐들이 우글거리고 새들만 지저귈 뿐이었다[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참혹한 피해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 버린 현장에서 이생이 느낄 수 있는 정서는 인생무상의 감정 / 이생의 슬프고 암담한 내적 심리를 드러냄].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작은 누각(樓閣)에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고 길게 한숨을 쉬며 날이 저물도록 앉아서 지난 날의 즐겁던 일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돋움 꿈만 같았다. [전쟁 전후가 너무 달라서 전쟁 전의 좋았던 기억을 믿을 수 없을 지경 /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돋움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비슷한 말로 남가일몽(南柯一夢), 남가지몽(南柯之夢), 한단몽, 한단지몽, 황량몽(黃梁夢), 황량일취몽(黃梁一炊夢), 일취지몽(一炊之夢), 노생지몽(盧生之夢), 인생무상(人生無常), 수류운공(水流雲空), 설니홍조(雪泥鴻爪)]. 밤중이 거의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 주는데(비현실적 사건으로 이동을 위한 시간적 공간적 배경/귀신이 나타날 수 있는 시간적 조건), 낭하(廊下 : 건물 안의 긴 통로,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비현실적 세계로 이동]. 그 소리는 먼 데서 차차 가까이 다가온다. 살펴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거기 있었다. 이생은 그녀가 이미 이승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나[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앞서서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생의 심리 표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앞서 의심도 하지 않고 말했다.(고대 소설의 우연적, 전기적 요소가 드러나 있다. 이 장면은 이생과 최 처녀의 사랑을 좌절시키는 세계의 횡포에 대해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 극적인 모습을 제시한 것으로, 이 작품의 소설적 면모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작자는 전쟁, 죽음, 운명 등과 같은 엄청난 힘에 의해 인간의 욕망이 성취될 수 없을 때,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해결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부인은 어디로 피난하여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은 이생의 손을 잡고 한돋움 통곡하더니 곧 사정을 얘기했다. "저는 원래 귀족의 딸로서 어릴 때에 모훈(母訓)을 받아 수놓은 일과 침선에 열심이었고, 시서와 예의를 배워 단지 규중(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의 예법[정절을 목숨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 알고 그 외의 다른 일은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이 복숭아 핀 담 위를 엿보셨을 때[이 작품의 제목 엿볼 규, 담 장 / 최 처녀의 삶이 바뀐 계기] 저는 스스로 벽해의 구슬을 드려 꽃 앞에서 한번 웃고 평생의 가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깊은 휘장 속에서 거듭 만날 때마다 정[운우지정]이 백년을 넘쳤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나니 슬프고 부끄러운 마음[사대부 양반의 법도를 따라야 하는 여자로서 자신의 행실에 느꼈던 감정] 금할 길이 없군요. 장차 백년 해로[(百年偕老) : 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사이좋게 지내고 즐겁게 함께 늙음.]의 낙을 누리려 하였는데 뜻밖의 횡액(橫厄)[횡래지액(橫來之厄)의 준말로 갑자기 닥쳐 오는 불행으로 홍건적의 난을 말함 / 청천벽력(靑天霹靂) : 맑게 갠 하늘에서 치는 날벼락이라는 뜻으로, 뜻밖에 일어난 큰 변고나 사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을 만나, 끝까지 놈[홍건적]에게 정조를 잃지는 않았으나, 육체는 진흙탕에서 찢겼사옵니다[잔인하게 살해됨 / 자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가리킴]. 절개는 중하고 목숨은 가벼워 해골을 들판에 던졌으나, 혼백을 의탁할 곳이 없었습니다[이생과 헤어진 후에 느낀 감정 - 한스러움]. 가만히 옛일을 생각하면 원통한들 어찌하겠습니까?[절개는 중하고 ~ 어찌하겠습니까 : 정조를 지킨 행위는 옳은 것이었지만 이른 나이에 죽은 것과 이생과의 사랑을 다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담겨 있음] 당신과 그날 깊은 산골자기에서 하직한 뒤 저는 속절없이 짝 잃은 새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부 번역은 '그 옛날의 즐거움은 오늘의 이 비운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 흥진비래(興盡悲來) :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은 순환되는 것임을 이르는 말. 반대어 고진감래]이제 봄빛이 깊은 골짜기에 돌아와 저의 환신(실재가 아니라 환각이나 신비로운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 몸, 즉 죽은 사람이 인간의 몸을 빌려 이승에 나타남. 전기적)은 이승에 다시 태어나서 남은 인연을 맺어 옛날의 굳은 맹세를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려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이생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함께 살고자 함.] 이생은 기쁘고 또 고마워서, "그것은 본디 나의 소원이오."[불감청(不敢請) : 마음속으로는 간절하지만 감히 청하지 못함. 고소원(固所願) : 본디부터 바라던 바 / 최 처녀가 귀신인 줄 알면서도 동의하는 데에서 이생의 최 처녀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음.] 하고는 서로 즐겁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윽고 이야기가 가산(家産)[집안의 재산]에 미치자 여인은 말했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떤 산골짜기에 묻어 두었습니다." "우리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은 어디에 있소?" "하는 수 없이 어떤 곳에 버려 두었습니다." 서로 쌓였던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에 드니 지극한 정[운우지락(雲雨之樂) 으로 무산지몽(巫山之夢)에서 온 말로 무산지몽은 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즐거움인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로 중국 초나라의 양왕(襄王)이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神女)를 만나 즐거움을 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무산지몽, 운우지정]이 옛날과 같았다.[최 처녀가 사람일 때나 귀신일 때나 둘 사이의 관계는 똑같았다는 의미] 이튿날 여인은 이생과 함께 옛날 개령동을 찾아갔다. 거기에는 금·은 몇 덩어리와 재물 약간이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유골을 거두고 금·은과 재물을 팔아서 각각 오관산(五冠山)[경기도 장단 서쪽 30리 지점에 있는 산 이름] 기슭에 합장(合葬)하고는 나무를 세우고(무덤에 나무로 묘표를 만들고)제사를 드려 모든 예절을 다 마쳤다. 그 후 이생은 벼슬을 구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살게 되니[아내와의 사랑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피난갔던 노복들(죽은 노복들의 혼령)도 또한 찾아 들었다. 이생은 이로부터 인간의 모든 일을 전혀 잊어버리고서 친척과 귀한 손의 길흉사(吉凶事 : 경사스러운 일과 흉한 일) 방문에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으며(두문불출: (杜門不出) 집에만 있고 바깥출입을 아니함.), 늘 아내와 함께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즐거이 세월을 보냈다.[이생은 혼백인 최랑과의 삶을 위해 세상의 일을 잊고 지냄] 어느덧 두서너 해가 지난 어떤 날[헤어져야 하는 날] 저녁에 여인은 이생에게 말했다. "세 번째나 가약을 맺었습니다마는[이생이 글 공부를 다니다가 최랑과 시를 주고받아 인연을 맺은 것이 첫 번째,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아 혼례를 거행하고 부부가 된 것이 두 번째, 그리고 저승의 혼령이 되어 잠시동안이나마 같이 생활한 것이 세 번째 가약이다. 삼생기연], 세상 일[생사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즐거움[부부간의 인연]도 다하기 전에 슬픈 이별이 갑자기 닥쳐왔습니다."[호사다마(好事多魔) :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 하고는 마침내 목메어 울었다. 이생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여인은 대답했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명부의 법칙으로 유한한 개인과 불가피한 운명 간의 갈등). 저와 낭군의 연분(서로의 관계를 맺게 되는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악도 없었으므로[이생과 최랑의 만남에 필연성을 부여함, 환신할 수 있었던 조건], 하느님께서 이 몸을 환신(幻身)시켜[전기적 성격으로 비현실적임] 잠시 낭군을 뵈어 시름을 풀게 했던 것입니다(이생과 죽은 최랑의 만남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장치).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이승과 저승 세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 / 작가의 내세관과 영혼관이 드러남] 하더니 시비(侍婢 : 곁에서 시중을 드는 계집종)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玉樓春曲)[노래 부를 수 있도록 짓는 악곡의 이름]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이생에 술을 권했다. 도적때 밀려와서 처참한 싸움터에, 몰죽음(여럿이 한꺼번에 죽는 죽음)당하니 원앙[이생과 최랑]도 짝 잃었네.(이생이 혼자된 내력) 여기저기 흩어진 해골 그 누가 묻어 주리, 피투성이 그 유혼(遊魂 : 구천에 들지 못한 채 떠도는 혼)은 하소연도 할 곳 없네. 슬프다 이내 몸은 무산(巫山) 선녀 될 수 없고,(이별의 아쉬움을 나타내는 말로 무산선녀는 중국 초나라의 양왕(襄王)이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神女)를 만나 즐거움을 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하는 말로 양왕이 다시 만날 것을 간청하자 무산 선녀가 이별하면서, '큰 산이 막혀 직접 올 수 없으니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가깝게 모시겠다'고 한 말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무산 선녀와는 달리 다시 만나러 올 도리가 없다는 의미임.) 깨진 거울 갈라지니(환신이 되어 만났으나 또 이별을 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 마음만 쓰라리네. 이로부터 작별하면 둘이 모두 아득하네, 저승과 이승 사이 소식조차 막히리라.(이제는 더 이상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저승과 이승의 단절은 슬픔의 극대화를 줌) (홍건적의 난으로 모두 죽어 현실 세계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이별하게 된 슬픈 사연을 노래한 시로 시의 삽입 효과는 최랑의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를 용이하게 하고, 낭만적 분위기와 산문의 딱딱함을 완화시킴) 노래 한 가락씩 부를 때마다 눈물에 목이 막혀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했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했다. "나도 차라리 부인과 함께 황천(黃泉)으로 갔으면 하오(죽었으면 / 죽어도 좋으니 아내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러나 있음.). 어찌 무료히 홀로 여생을 보내겠소. 지난번에 난리(홍건적 난리)를 겪고 난 후에 친척과 노복(奴僕)들이 각각 서로 흩어지고[풍비박산(風飛雹散) : 사방으로 날아 흩어짐],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골(遺骨)이 들판에 버려져 있을 때, 부인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능히 장사를 지내 주었겠소. 옛 사람의 말씀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예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도 예절로써 장사지내야 한다했는데[혼정신성(昏定晨省) :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 이런 일을 모두 부인이 실천했소[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할 수 있도록 해 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나타나 있음]. 그것은 부인의 천성(天性)이 순효(純孝 : 효성이 지극하고)하고 인정이 두터운 때문이니 감격해 마지 않았으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소(홍건적이 쳐들어 왔을 때 홀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족을 돌보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부인은 이승에서 함께 오래 살다가 백 년 후[백년해로 (百年偕老) : 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사이좋게 지내고 즐겁게 함께 늙음.]에 같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떻겠소?"[인간적 욕망을 표현함] 여인은 대답했다. "낭군의 수명(壽命)은 아직 남아 있으나, 저는 이미 저승의 명부(冥府 : 사람이 죽은 뒤 심판을 받는 저승에 있는 장부로 전생이 기록되어 있음)에 이름이 실려 있으니(저승 사람이 되었으니)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해서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에 위반됩니다[죽은 자는 결국 저승으로 가야한다는 당위성을 강조]. 그렇게 되면 죄가 저에게만 미칠 것이 아니라 낭군님께까지 그 허물이 미칠 것입니다. 다만 저의 유골이 아직 그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면 유골을 거두어 비바람 맞지 않게 해 주십시오."(무덤에 묻어 달라는 말, 장사지내달라는 말로 세상을 떠돌지 않고 편안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으므로 / 죽음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이때까지도 최 처녀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기 때문)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구(未久 : 오래지 않아, 잠시 후에)에 여인은 말했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이 글의 서사 구조(작품의 성격, 행동, 사상이 결합하여 작품을 형성, 전개하는 방식. 플롯도 서사적 구조의 한 형식임)는 만남과 이별] 말을 마치자 점점 사라져서 마침내 종적[모습]을 감추었다[현실로 되돌아 오는 부분]. 이생은 아내가 말한 대로 그녀의 유골을 거두어 부모의 무덤 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 후 이생은 아내를 지극히 생각한 나머지 병이 나서 두서너 달 만에 그도 또한 세상을 떠났다.(진실한 사랑은 세상의 어떠한 고난, 심지어 죽음마저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아내가 없는 이승에서의 삶은 이생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삶이었기 때문에 최랑에 대한 이생의 사랑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것인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대목으로 운명의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은 따라 죽는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절개[지고지순(至高至順 :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함./ 순애(殉愛 :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침]를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주제 의식이 구체화된 부분)(금오신화, 이재호 옮김) 이생규장전과 만복사저포기의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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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규장전 | 만복사저포기 | ||||||||||
주제 | 삶과 죽음을 넘어선 소망과 사랑 | 삶과 죽음을 넘어선 신비로운 만남과 사랑 | |||||||||
구성 | 위기와 해결이 되풀이되면서 운명과의 갈등이 더 심각하게 전개됨 | 뜻밖의 신비로운 만남 뒤에 슬픈 이별이 닥쳐옴 | |||||||||
인물 | 재자가인, 진실된 사랑을 지닌 남녀 | 재자가인, 한을 남기고 죽은 여인과 사랑이 깊은 청년 | |||||||||
이윽고 신축년이 오자 홍건적이 서울을 노략하매 상감께옵서는 복주로 옮겨 가신 뒤, 놈들은 건물을 파괴하고 인축을 전멸하매 그의 가족과 친척이 동서로 분산하게 되었다. 이때 이생은 가족과 함께 산골에 숨었더니 한 도적이 칼을 가지고 뒤를 따르는지라 그는 도망하여 겨우 죽음을 면하였으나, 최랑은 도적에게 잡혀 정조를 빼앗기려 할 때 노하게 크게 부르짖었다. "창귀 놈아, 나를 먹으려나! 내 차라리 죽어서 시랑의 밥이 될지라도 어째 돼지와 같은 놈에게 짝이 되리오." 놈은 종말에 최랑을 무자비하게도 죽여 버렸다. 이생은 온 들판을 헤매다가 도적이 이미 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으니 자기의 집은 이미 병화로 오유에 돌아가고, 최랑의 집에 이르니 쓸쓸한 그 주위에 쥐와 새들의 울음만 들릴 뿐이었다.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다락 위에 올라 눈물을 거두며 길이 한숨 쉬고 날이 저물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옛일을 생각하매 완연히 한 꿈이었다. 밤중이 거의 되자 달빛은 들보에 비추었는데 낭하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점차 가까워 오는지라 놀라 맞이하매 곧 옛날의 최랑이었다. 이생은 그의 죽었음을 짐작하였으나 역시 유다른 사랑이라 다시금 의심하지 않고 갑작스리 물었다. "여보! 당신은 어디서 피란하여 생명을 보전하였고?" 최랑은 이생의 손을 잡고 통곡하였다. "저는 본디 귀족의 딸로 어릴 때 모훈을 받아 자수와 침선에 힘썼고 시서와 예의를 배워 다만 규중의 예법만 알고 그 밖의 일은 아직 못하였습니다. 마침 당신이 복숭아 핀 담 위를 엿보올 때 저는 스스로 벽해의 구슬을 드려 꽃 앞에 한 번 웃고 평생의 가약을 맺었삽고, 깊은 휘장 속에 거듭 만날 때 또한 정이 백 년에 넘쳤었습니다. 말이 이에 미치자 슬프고 부끄러움을 어찌 금할 수 있겠나이까? 장차 백년해로의 낙을 누리려 하였더니 불의의 횡액을 만나 마침내 정조를 놈에게 잃지 않았으나 육체는 사막에 찢겼사오니, 절개는 중하고 목숨은 가벼워 해골을 들판에 던졌으나 혼백의 의탁할 곳이 없었습니다. 고요히 옛일을 생각할 때 원통한들 어찌하겠나이까? 당신과 그날 깊은 골짜기에서 하직한 뒤 저는 속절없이 짝 잃은 새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봄빛이 깊은 골에 돌아오고 인생은 이승에 다시금 태어나서 남은 인연을 거듭 맺어 옛날의 굳은 맹세를 헛되이 않으려 하오니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옵나이까?" 이생은 매우 기뻐하며 감사히 여겨 답하였다. "이게 애당초 나의 소원이오!" 하고는 둘이 재미있게 수작하였다. 이생은 또 물었다. "그래, 모든 가산은 어찌 되었소?" "예, 조금도 잃지 않고 어떤 산의 골짜기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럼 우리 두 어버이의 유골은?" "하는 수 없이 어떤 곳에 버려 두었습니다!" 하고는 둘은 이야기를 끝낸 뒤 함께 취침하여 즐기니 기쁜 정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없었다. 그 이튿날 둘은 함께 옛날의 살고 있던 곳을 찾으니 과연 금은 재보를 얻고 또 부모의 유골을 거두어 금은 재보를 팔아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장례를 마친 뒤 이생은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랑과 함께 살림을 차리매 흩어졌던 노복도 점차 모여들었다. 이생은 이로부터 인간의 모든 일을 전혀 잊어 비록 친척 빈객의 방문과 길흉 대사를 모두 제쳐 놓고 문을 굳이 닫고 최랑과 함께 시구를 창수하며 금슬의 화락을 누린 지 수년이 되었다. 하루 저녁에 최랑은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일이 하도 덧없이 세 번째의 가약도 이제 장차 끝나게 되오니 한없는 슬픔을 또 어이하오리까?" "이게 웬 말이오?" "예, 저승 길은 피하지 못할 것이오라 저와 당신은 천연이 정해 있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악도 없으므로 이 몸을 잠깐 빌려 당신과 거듭 만나게 되었사오니 어찌 인간 세상에 오래 있어 산 사람을 유혹하오리까?" 문답이 끝나자 최랑은 향아를 시켜 주과를 드리고 옥루춘 한 가락을 불러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난리 풍상 몇 해련고? 옥도곤 고운 얼굴, 꽃같이 흩어지곤 짝을 잃은 원앙이라. 남은 해골 굴러굴러 그 뉘라서 묻어 주리! 피투성이 변한 혼은 하소연도 할 곳 없네! 슬퍼라 이내 몸은 비 구름이 되단 말가? 깨뜨린 종이얼사 이제 거듭 나누려니, 이 마저 하직하면 천주에 유한이라. 망망한 천지 사이 음신조차 막히리라. 노래 한 소리에 눈물이 자주 내려 곡조를 거의 이루지 못하였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여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지하로 돌아갈지언정 어찌 무료히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나이까? 이 마적 난리를 경과한 뒤 친척과 노복이 흩어지고 돌아가신 어버이의 유골이 들판에 버려졌을 때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알려 주었겠습니까? 옛 성인의 말씀이 일렀으되 '어버이 계실 적에 예로 섬길 것이오며 돌아가신 뒤에도 예로 장사할 것이라.' 하였는데, 이제 당신이 모두 실천하였사오니 내 감사의 뜻을 마지 않소. 아무쪼록 당신은 인간 세상에 오래 살아 백 년의 행복을 누린 뒤 나와 함께 진토가 됨이 어떻겠소." "예, 당신의 명수는 아직 남음이 있고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에 실렸사오니 만일 굳이 인간의 미련을 가지려면 명부의 법령에 위반되어 제게만 죄과가 미칠 뿐 아니라 당신까지도 누가 미칠까 염려하는 바입니다. 다만 제 끼친 해골이 어떤 골에 흩어져 있사오니 만일 은혜를 거듭하와 사체를 거두어 주시면 더욱 감사하여 마지 않겠나이다." 말이 끝나자 최랑의 육체는 점차 사라져 종적이 없어져 버렸다. 이생은 그 말대로 해골을 거두어 부모의 뫼 곁에 장사한 뒤 그도 병을 얻은 지 수월에 세상을 버렸다. 이 일을 들은 이들은 모두 감탄하여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가원 옮김) <금오신화> 신축년 : 고려 공민왕 10년(1361) 복주 : 지금 경북 안동시의 옛 이름. 인축 : 사람과 가축 창귀 :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호랑이의 앞장을 서서 인도하여 준다고 하는 못된 귀신 시랑 : 승냥이와 이리. 오유 : 사물이 아무것도 없이 됨. 낭하 : 건물 안의 긴 통로, 복도. 벽해의 구슬을 드려 : '벽해의 구슬'은 '여의주'를 가리키는데, 이는 '완전한 사랑'을 비유한 것. 창수 : 시구 등을 지어 노래함. 금슬의 화락 : 부부간의 사랑. 천연 : 하늘이 정해준 연분. 옥루춘 : 옥루춘곡. 악곡의 이름. 음신 : 소식, 편지. 명부 : 사람이 죽은 뒤에 심판을 받는 곳. 상사병 : 이성을 그리워하고 못 잊어서 나는 병 두서 : 일의 차례나 갈피 용색 : 용모와 안색 화하다 : 한 상태가 딴 상태로 되다. 한 물질이 딴 물질로 바뀌다. 결혼의 시기를 ~ 주남편에도 나오고 : 매화가 떨어져 시드는 것을 처녀가 결혼의 좋은 시기를 놓친 것으로 빗대어 한 시구가"시경"의 주남편에 나옴. 이 장면은 이생을 기다리다 병이 든 최 처녀가 부모님께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부분으로, 이를 통해 최 처녀의 이생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최 처녀의 사랑은 유교 사회에서 파격적인 것으로, 자유의사에 의한 만남과 혼인을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남녀의 애정에 대한 작자의 진보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그러함에도 작자는 자유의사에 의한 만남을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유교적 장치 - 중매쟁이를 내세움- 를 주고 있어 현실에 입각한 자유 연애를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최 처녀의 이야기에서' 죽음'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 글 전체의 구조에 비추어 볼 때 복선에 해당한다고 파악 할 수 있다. 위당의 처녀 행세 :'전등신화'의 '위당기우기'에 나오는 이야기. 원나라 금릉 사람 왕서생이 위당에 갔다가 그 곳 처녀를 만나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 국학(國學) : 고려 시대의 국자감(國子監)을 고친 이름. 성균관(成均館)의 옛 이름이기도 하 다. 아리아리한 : 정신이 어릿거릴 만큼 어지러운 (여기서는 휘어진 버들가지들이 가늘게 늘어져 어지러운 모양을 말한 것). 비단 장 : 비단으로 된 장막. 도량(度量) : 사물의 길이와 용적. 이승 : 이 세상. 금생(今生). 금세(今世) 양가(良家) : 양만의 집. 좋은 집안. 자수(刺繡) : 수를 놓음. 시서(詩書) : 시(詩)와 글씨 예법(禮法) : 예의의 법칙. (여기서는 부녀자가 지켜야 할 법도) 규중(閨中) : 부녀가 거처하는 안방. 규문(閨門) 법도(法道) : 지켜야 할 도리 가약(佳約) : 가인(佳人)과 만날 언약. 혼약(婚約). 회장 : 피륙으로 만든 둘러치는 장막. 사세(事勢) : 일의형세(형편). 횡액(橫厄) : 횡래지액(橫來之厄)의 준말. 뜻밖에 닥쳐 오는 재액. 삼세 : 불교에서 이르는 전세(前世)·현세(現世)·내세 (來世) 학습 활동 친해지기 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온다는 상황 설정에 대하여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자. 지도 방법 : 학생들이 작품의 상황설정에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정리해 보게 하되,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경우라도 어떤 정해진 답을 유도하지 말고 학생들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과학적인 검증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므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예시 답안 :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온다는 것은 인간이 한 번의 삶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부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꼼꼼히 읽기 1. 이 작품에는 시(詩)가 자주 등장한다. 사건의 전개, 인물의 심리 표출과 관련하여 시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소설에 삽입된 노래[시(詩)]가 하는 역할을 알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먼저 학생들에게 시(時)의 역할을 파악하기 전에 시의 앞뒤에 있는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하게 하고, 앞뒤의 내용과 시의 내용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발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때 학생들의 의견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는데 학습 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의견이라도 수용하면서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풀이 : 시(詩)는 압축적인 내용으로 의미의 함축성을 강조하여 감동을 오래도록 지속시키게 하며, 인물의 심리를 비유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주제를 집약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사건 전개의 방향을 암시하기도 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탐구 갈등의 해소 과정과 주제 소설의 주제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그 해소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예) 이생규장전 : 삶과 죽음으로 인한 갈등 - 죽음을 초월한 사랑(명혼) - 갈등의 극복 흥부전 : 흥부와 놀부의 갈등 - 흥부의 형제애 - 갈등의 극복 소설의 주제는 인물의 대립과 갈등에 의한 선과 악의 대립과 그 결과에 따라 형상화된다. 갈등의 해소 과정과 주제는 작가의 개성과 기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인물의 성격과 배경의 제시 - 선과 악의 대립과 갈등 - 대립과 갈등의 해소 - 주제의 형성 지도 방법 1. 소설에서 갈등의 해소와 주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파악하는 활동이다. 인물들 간의 대립적인 요소를 파악하게 하고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해소되는가를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그 방법이 작가가 말하려는 바는 아닌지 발표하게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2.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겪는 두ㅠ가지 큰 시련을 중심으로 다음 표를 채워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학생들이 작품의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련 과정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활동은 작품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요약하는 것이므로 학생들이 개인적인 견해나 느낌을 발표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풀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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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순서 시련의 과정 |
첫 번째 시련 | 두 번째 시련 | |||||||||
시련의 원인 | 문벌의 차이로 인한 이생 부모의 반대 |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양가의 가족들이 헤어짐. | |||||||||
시련의 내용 | 이생이 아버지에 의해 먼 곳으로 추방당함. | 최씨 부인이 도적에게 죽음을 당함. | |||||||||
시련의 극복 | 최씨 처녀가 앓아눕게 되자 그 부모가 혼인을 성사시킴. | 최 낭자의 환신(幻身) | |||||||||
3. 시련과 그 극복 양상을 중심으로 이 작품의 주제를 정리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가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주제)를 어떤 방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따라서 작품에서 핵심적이 사건을 파악하고 사건이 전개되고 해결되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풀이 : 이승과 저승의 한계를 뛰어넘은, 즉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 시야 넓히기 다음은 영화 ‘사랑과 영혼’의 줄거리이다. 이영화와 ‘이생규장전’을 비교하여 아래의 표를 채워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나타나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은 무엇이며, 그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고 극복되는지를 알기 위한 활동이다. 이 활동에서도 학생들이 주어진 작품의 내용을 충실하게 요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내용을 재구성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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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용 요소 |
이생규장전 | 사랑과 영혼 | |||||||||
남녀 주인공 | 이생과 최랑 | 샘과 몰리 | |||||||||
죽은 사람 | 최랑 | 샘 | |||||||||
죽게 된 원인 | 홍건적의 난 때, 도적의 칼에 맞아서 | 공금 부정 유출을 은폐하기 위한 친구 칼의 청부 살인으로 | |||||||||
죽은 뒤 돌아와서 한 일 | 이생과 다시 만나 함께 살고, 자신의 유골을 장사지내게 한다. | 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자신의 복수를 한다. | |||||||||
표현하기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이제까지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모둠별 협의를 통하여 다음 조건에 따라 이 작품의 내용을 각색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활동이다.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살리되, 2100년경의 지구를 상상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시해 주어도 된다. 그러나 단정적인 단서는 학생들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앞에서 확인한 서사 문학의 특성에 유의하여 표현하되 주어진 조건에 충실하도록 한다. 예시 답안 : 지구에 사는 유전 공학도 이생은 자신이 다니는 연구소에 파견 연구원으로 온 금성인 최랑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생은 그녀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자주 만나 사랑을 키워 갔다. 이를 눈치 챈 이생의 부모는 크게 노해서 이생을 다른 은하계로 보냈다. 며칠이 지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최랑은 상사병[이성을 그리워하고 못 잊어서 나는 병]이 들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최랑의 부모는 중매를 보내어 청혼을 하였다. 이생의 부모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재삼 구혼하는 바람에 결국 승낙을 하였다. 약혼이 성립되고 추방되었던 이생이 돌아오니 최랑의 병도 낫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그 후 다른 은하계에서 지구를 공격해 왔는데 그 전쟁 통에 양가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얼마 후 이생은 최랑의 죽음을 알게 되나 최랑의 시신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생이 슬픔에 잠겨 있는데 그날 밤 죽은 최랑이 꿈속에 나타나 자신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이생은 최랑의 시신을 찾아 세포를 이식하여 복제 인간으로서의 생존기간이 다 끝나게 되었음을 말하고 이생과 작별하였다. 이생은 몹시 슬퍼했으나 최랑의 육체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이생도 오래 살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참고 자료 금오신화(金鰲神話) 1. 전기적(傳奇的) 성격 현전하는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5편의 전기(傳奇) 소설로 짜여진 작품집이다. 전기(傳奇)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천상, 지옥, 용궁 등에서의 기괴한 사건이 흥미 있게 전개되는 양식으로 현실과 초현실을 구분 없이 일원적으로 인정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현실적으로 실현되기가 어려운 인간적 욕구를 비현실적 시간과 공간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2. 현실주의적 성향 ‘금오신화’의 각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현실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 이상의 세계, 영혼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는데, 봉건적 윤리 사회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한다든지, 지옥이나 수궁 또는 신선계를 넘나들며 노닌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처럼 ‘금오신화’는 전기적 특성을 보이면서도, 인간성을 긍정하고 현실의 제도나 인습, 사회 현상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함으로써 현실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3. 구성상 특징 ‘금오신화’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들의 공통적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① 주인공들이 뛰어난 재능과 감성을 지녔으면서도 현실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 ② 일상적 경험의 세계를 넘어선 신비로운 상황 및 사건 요소가 많다는 점 ③ 인물이나 지명, 시대적 배경 등이 모두 우리나라라는 점 ④ 이야기 곳곳에 많은 시가 삽입되어 주인공의 심리적 정황을 극대화한 점 4. 작품에 나타난 작가적 현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낭만적 환상이나 꿈을 통해 현실적 요구와 사회적 이상을 성취하고 있다. 이 사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은자(隱者)로서 일생을 보낸 작가의 생애와 관련이 깊다. 곧 ‘금오신화’의 주인공들은 작가의 의식과 소망이 투영된 인물이며, 그들이 처한 배경은 작가가 살고 있던 당시대의 한국 사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시습이 자신이 고뇌한 현실적 갈등을 환상적, 초현실적 시공(時空)을 이용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점 때문에 그의 작가 의식은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된다. 5. 문학사적 의의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한문소설)이라는 데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인귀 교환(人鬼交歡)설화 같은 전래 설화 문학을 계승하고, 명나라의 구우가 쓴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수용하여 소설이라는 양식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흔히, ‘금오신화’를 ‘전등신화’의 모방작 또는 아류작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두 작품은 그 구성에 유사성이 있을 뿐 소재와 표현 양식은 매우 다르다. 더구나 ‘전등신화’는 설화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작품이고 ‘금오신화’는 소설의 단계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6. 줄거리 ① ‘만복사저포기’ :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이 만복사에서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해 이긴 결과 한 처녀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녀는 수년 전 왜구에게 죽은 처녀의 환신(幻身)이었다. ②) ‘이생규장전’ : 개성의 이생은 최랑과 사랑을 나누다가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혼인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홍건족이 쳐들어와 가족이 흩어지고 최랑은 죽게 된다. 홀로 난을 피했던 이생의 앞에 아내가 나타나 한동안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헤어지게 된다. ③ ‘취유부벽정기’ : 홍생이란 사람이 평양의 부벽정에서 취흥에 겨워 시를 읊던 중, 기자 조선 시대에 죽어 선녀가 된 기씨녀를 만나 하룻밤을 시로써 즐기다가 그녀가 떠난 후 병이 나서 죽었는데, 그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④ ‘남염부주지’ : 경주의 박생은 유고에 심취하여 불교와 무속, 귀신 등을 부인하였는데, 끔에 남염부주라는 지옥에 가 염왕을 만나 귀신, 왕도, 불도 등에 대하여 문답을 한 끝에 염왕이 그의 박식에 감동하여 왕위를 물려준다. 그 후 그는 죽어서 남염부주의 대왕이 된다. ⑤ ‘용궁부연록’ : 글재주에 능한 고려 시대 개성의 한생이 꿈속에서 용궁에 초대되어 신축 별궁의 상량문을 지어 주고 극진한 환대를 받고 많은 선물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정경섭 외,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 2’, 문원각, 2000. 더 읽을거리 성택승, ‘고려 조선시대 서사문학 발전의 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95. 정주동, ‘매월당ㆍ김시습 연구’, 민족문화사, 1983. 이상익 외, ‘고전산문 교육의 이론’, 집문당, 2000. 학습 활동 ‘이생규장전’은 중세 전기 서사 문학의 흐름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인 ‘소설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제재로 선정되었다. ‘이생규장전’은 김시습이 지은 한문 소설로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에는 ‘용궁부연록’, ‘취유부벽정기’ 등의 다섯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에 이 같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원초적인 설화로부터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어온 문학사적 전통과 함께, 조선왕조의 새로운 지도 이념에 부합하는 주리론적 통치이념이 대두되자 여기에 대항하여 나타난 주기론이라는 철학 사상이 등장하였다는 사상사의 새로운 전개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 등 외래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학습 활동에서는 이 작품이 최초의 소설로 평가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활동과 이 작품의 전기 소설적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 등이 마련되었으며, 또 모둠 활동을 통해 이 작품과 같이 초현실 세계를 끌어들인 환상적인 이야기가 현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도록 하였다. 1. 서사 문학에서 갈등은 인물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흔히 인물의 욕망 충족 과정에는 그것에 대응하는 장애가 발생한다. 서사 문학에서 이야기란 곧 등장인물이 이러한 장애와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생'과 '최처녀'의 욕망은 무엇인지 말해보자. 작품의 전반기에서 이생과 최처녀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성취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작품의 후반기에서 이생과 최 처녀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에 거역하며 함께 사랑하고 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2) 두 사람의 애정 성취를 가로막는 요인이 무엇인지 말해보자. 두 사람에게 애정의 성취가 욕망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에게 장애가 되는 것은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유교적인 관습에 얽매인 부모의 반대와 최 처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전쟁이다. 후반부에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길이 갈려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이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3) 장애 요인에 대해 두 인물이 각각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아보자. 작품의 전반기에서 이생은 최 처녀보다는 소극적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 처녀와 결혼하려 한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사회적 상황에서 이생은 가족을 데리고 궁벽한 산골에 숨어사는 대응을 한다. 후반부에서 이생은 죽은 최 처녀의 환신과 함께 살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대응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최 처녀의 대응은 이생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최 처녀는 이생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부모를 설득하여 결혼을 이루었다. 그리고 홍건적에게 잡혀 정조(貞操)를 잃을 뻔한 상황에서도 이생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반항하기도 한다. 또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거스르면서 귀신이 되어 나타나 이생과 함께 살기도 하였다. (4) 작품에 등장하는 두 사람을 당대의 선비나, 규수 유형과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해보자. 이생과 최 처녀는 당대의 선비와 규수의 전형적인 상과는 달리 사회적 질서와 이념에 순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들의 사랑은 부모가 정해 준 배필을 자신의 상대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당시의 연애 관습에서 일탈적인 것이다. 이생과 최 처녀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로 자유로운 연애와 사랑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당대의 선비와 규수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5) 이러한 인물 유형을, '조신몽'에 등장하는 인물과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해 보자. '이생규장전'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계와 맞선다. 이해 비해 '조신몽'의 인물은 꿈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아가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조신은 사랑하는 여인과 애정을 성취하기 위하여 부처님 전에 빌었을 뿐, 현실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꿈 속에서도 삶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 (6) 앞의 활동을 돋움으로 이 작품이 설화가 아니라 소설로 분류되는 이유를 말해보자. 이 작품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작자 자신의 현실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세계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두 사람의 애정 성취를 제약하는 장애물은 봉건 사회의 제도라든가 전쟁이나 운명과 같은 세계의 횡포이다. 두 사람은 이러한 세계의 횡포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한다. 이 작품이 설화가 아니라 소설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7)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이야기로 엮은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현실적인 갈등을 왜 초현실적으로 해결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이생은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 처녀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어렵게 성취한 두 사람의 사랑은 난리통에 최 처녀가 죽음으로 해서 깨어지고 만다. 작자는 깨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 처녀의 환신과 이생의 사랑이라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다시 이어 놓았다. ‘죽음’이라는 욕망의 장애물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작자로 하여금 초현실 세계를 끌어들이게 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예시답안 : 현실에서 발생한 욕망을 현실에서 풀 방법이 없을 때 초현실적인 세계에서 해결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자아와 세계의 치열한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현실에서 마련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초현실로 사건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인 조건이 개인의 욕망을 현실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하게 하였음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8) 이 소설을 전기 구조에 따라 분석해 보자. 예시 답안 : 현실 : 최 처녀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 초현실 : 최 처녀의 환신과 재결합과 이별 현실 : 최 처녀를 장사지내 주고, 이생도 죽음 (9) 오늘날에도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이러한 문화적 현상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둠별로 조사한 다음 이를 정리하여 발표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고전이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귀신 혹은 영혼과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맺어지고 파탄나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은 꿈꾸기를 즐기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이라는 측면과, 현대 문화의 특수한 상황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허구적으로 꾸며낸다는 점과, 그 사건이 주로 사랑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분리해서 지도해 볼 수도 있다. 모둠별로 각각 영화, 만화, 게임, 환타지 소설 등을 조사하게 한다면 다양한 영역의 문화 현상들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예시답안 : 오늘날 귀신 혹은 영혼과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가끔씩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사랑과 영혼', '천녀유혼'과 같은 외국 영화나. ‘은행나무 침대’와 같은 한국 영화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최첨단 문화를 자랑하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먼저, 언제나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라는 점이다. 현실은 인간의 욕망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쾌락이 현실에서 허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상상적으로라도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쳐 사랑이 파국을 맞은 사람이 상상 속에서 사랑의 완성을 그려 보기도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는 어느 시대에도 몽상적인 기법을 활용한 문학 작품이나 예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런 류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인간의 인간다움을 억압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타락해 가고 세상은 불순해져 간다. 그러나 인간은 이에 맞서서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게 된다. 세상이 불순해지는 한편으로는 순수함을 추구하게 되고, 인간이 타락해 갈수록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순결함을 갈망하게 된다. 순수하지도 순결하지도 않은 사랑으로 인간 관계를 맺는 현실 생활의 이면에서.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을 꿈꾸는 욕망이 이러한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화들이 ‘이생규장전’과 같이 주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해와 감상 '이생규장전'은 이생과 최씨 낭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글은 그 발단부로, 인물과 배경이 소개되고 있다. 이 글에 이어 이생은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씨 낭자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엄격한 유교적 관습에 저항하여 자유 의사에 의해 만나고 혼인한 것은, 작자의 진보적 애정관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성공한 두 사람의 사랑은 홍건적의 난리에 최 낭자가 죽음으로써 깨어지게 되고, 이생은 난리가 끝나자 돌아온다. 여기까지가 현실의 이야기이다. 이어 작자는 깨어진 현실을 후반부인 최 낭자의 환신(幻身)에 의해 다시 이어지게 한다. 곧, 이상의 세계를 낭만적 환상의 세계에서 실현시키고자 한 것이다. 현실적 고뇌와 갈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보인 점에서 그 작가 의식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후반부로 '만복사저포기'와 같이 인귀 교환 설화(人鬼交歡說話)호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육조(六朝) 이래 중국 전기(傳奇)의 전형적인 구성 형식의 하나이며 전통적인 동양 설화의 구성 형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작중 인물이나 배경 설정에 있어서도 현세(現世)와 비현세(非現世)의 이중 구성(二重構成)을 취하고 있으며, 특히 플롯의 진행을 지배하고 있는 힘은 오직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신력(神力)에 의존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작품도 그러한 성격을 띤 것으로, 전체적으로 보아 전반부는 이승의 현실적인 사건을 다루었고, 후반부는 저승과 이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려 이중 구성의 묘미를 살렸다. 또한 부부의 인연을 삼세(三世)까지 이어가겠다는 구성의 전개는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한 전기 소설의 한 전형을 보인 것이라 하겠다.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의 전반부에는 남녀 주인공의 자유 연애를 설정해 놓았고, 후반부에서는 '만복사저포기'에서와 같은 인귀 교환(人鬼交歡)의 이야기로 구성해 놓았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이승과 저승의 한계를 뛰어넘는, 즉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 보여 준 이생과 최 여인의 현실적 사랑은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관습을 과감히 깨뜨리고 사랑을 실현한 행위는 작자의 솔직하고 대담한 애정관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성취한 그들의 사랑은 홍건적의 난리로 깨어지고 마는데 작자는 깨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 낭자의 환신과 이생의 사랑이라는 전설적 구성으로 다시 이어 놓고 있다. 이것은 자신들의 사랑을 좌절시키려는 세계의 횡포에 대해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 것이며, 그 극적 모습이 귀신과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서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에서 이 작품의 소설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하겠다. 이렇게 전반부에서 한 편의 염정 소설을 형성한 작자는, 후반부에서는 전기적(傳奇的)인 내용으로 이를 합리화하려 하였다. 한편, 이 작품은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영향을 받았으나 단순한 모방은 아니고 여러 작품에서 모티프를 빌려 왔으며, 플롯이나 테마면에서는 독창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완전한 하나의 창작 소설을 만들어 냈다. '이생규장전'은 소설의 한 본질인 흥미를 십분 살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다른 작품에 비해서도 작품성이 우수하다. 이해와 감상2 조선 초기에 김시습 ( 金時習 )이 지은 한문소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 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국내의 것으로는 김집 ( 金集 )의 수택본 한문소설집에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와 더불어 필사된 것이 있다. 〈이생규장전〉은 전반부에서는 살아 있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다룬 애정소설이다. 특히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을 주목해 명혼소설(冥婚小說)이라 부르기도 한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송도에 사는 이생(李生)이라는 총각이 학당에 다니다가 노변에 있는 양반집의 딸인 최씨녀를 알게 되어 밤마다 그 집 담을 넘어 다니며 밀연을 계속하였다. 아들의 행실을 눈치챈 이생의 부모가 이생을 울주(울산)의 농장으로 보냈다. 둘은 서로 만나지 못해 애태우다가 최씨녀의 굳은 의지와 노력으로 양가부모의 허락 아래 혼인을 하였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함으로써 행복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홍건적의 난으로 양가 가족이 모두 죽고 이생만 살아남아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최씨녀가 나타났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여자인 줄 알면서도 열렬히 사랑하는 나머지 반갑게 맞아 수 년간을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날 최씨녀는 이승의 인연이 끝났다며 사라졌다. 이생은 최씨녀의 뼈를 찾아 묻어준 뒤에 하루같이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이생규장전〉은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우리 나라 사람을 등장 인물로 하였다는 점에서 자주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전반부는 주인공이 효라는 도덕규범을 파괴해가면서까지 힘겹게 사랑을 성취해가는 과정이다.후반부는 강렬한 사랑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좌절되어 가는 과정이다. 〈이생규장전〉에는 죽은 여자가 산 사람처럼 나타나 활동하기도 한다. 이때의 죽은 여자는 전설에서처럼 문자 그대로의 죽은 여자가 아니라 열렬한 사랑의 의지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세계가 대결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역설(逆說)이다. 〈이생규장전〉에서 남녀 주인공의 혼인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심각한 장애에 부딪히는 것은 두 가문의 신분 차이 또는 문벌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15세기 후반의 신흥사류의 일원이었던 김시습의 처지 및 현실적 갈등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다. 결말의 비극성과 더불어 작품의 비극적 성격도 뚜렷한 특징을 이룬다. 〈이생규장전〉은 우리 소설사를 선도한 소설유형인 전기소설(傳奇小說) 작품이명, 정교한 구성과 강렬한 작가의식이 문학적 가치를 높여준다. ≪참고문헌≫ 金鰲新話(李家源譯註, 通文館, 1959), 韓國小說의 理論(趙東一, 知識産業社, 1977), 조선시대의 애정소설(박일용, 집문당, 1993), 韓國傳奇小說의 美學(박희병, 돌베개, 1997), 現實主義的世界觀과 金鰲新話(林熒澤, 國文學硏究 13, 서울大學校, 1971), 金鰲新話考察(金一烈, 朝鮮前期의 言語와 文學, 螢雪出版社, 1976).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3 이 작품은 조선 초기의 작품이지만, 14세기 중엽의 고려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전반부는 남녀 주인공의 자유연애를 설정해 놓았다. 즉 중앙 구귀족의 딸로 보이는 최랑과 신흥 사대부층의 아들로 보이는 이생이 어려운 고비 끝에 결합한다. 이생과 최랑의 사랑은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관습을 과감히 깨뜨리고 사랑을 실현한 행위에는 작가의 솔직하고 대담한 애정관의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는 인귀 교환의 이야기로 구성해 놓았다. 이 부분에서는 어렵게 성취한 그들의 사랑이 홍건적의 난으로 깨지는데, 작가는 깨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랑의 환신과 이생의 사랑으로 다시 이어 놓고 있다. 죽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선 간절한 소망과 사랑,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부분에서 이 작품은 전기 소설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기 소설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을 작품 속에서 이루도록 하는 문학 형식이다. 즉 현실에서 발생한 욕망이 벽에 부딪혀서 성취될 수 없을 때, 환상적인 기이함을 빌려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기 소설에서는 인간의 욕망 성취라는 인간적이며 현실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명나라 구우의 '전등 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단순한 모방은 아니고 여러 설화 작품에서 모티프를 빌려 왔으며, 구성이나 주제면에서 독창성을 충분히 발휘하였으므로 완전한 하나의 창작 소설로 볼 수 있다.(출처 : 김병국 외 4인 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이해와 감상4 〈금오신화 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송도(지금의 개성)에 사는 이생은 글공부를 하러 다니던 길에 최씨 처녀와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게 된다. 부모의 심한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혼인을 하여 행복을 누리나, 홍건적의 난으로 가족들이 모두 죽고 최씨녀는 홍건적에게 겁탈당하지 않으려다 죽어 이생만 살아남게 된다. 슬픔에 잠겨 있는 이생 앞에 최씨녀의 환신이 나타나는데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난 기쁨에 죽은 사람이라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다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최씨녀는 인연이 끝났다면서 저승으로 떠나고 이생은 최씨녀의 뼈를 찾아 장사를 지내준 뒤 병을 얻어 죽는다. 죽은 자와의 사랑은 전기성(傳奇性)을 띠기 보다는 현실의 고통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성격을 갖는다.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현실의 비극을 강렬하게 고발한 작품이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심화 자료 '이생규장전'의 주제 이 작품은 엄격한 유교적 질서 안에서 두 사람의 남녀가 자유로이 사랑을 맺고 마침내 부모(父母)의 승낙을 얻어 윤리적으로 그 사랑을 완성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 사랑이 이 작품의 핵심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이생의 부인(최 처녀)의 죽음으로 인한 가정적 파멸과 불행이기 때문이다. 작자는 이 문제를 환상적인 재회의 이야기로써 해결했다. 즉, 삶과 죽음의 세계를 가르는 법은 엄한 것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사랑으로 인해 최씨 부인은 환신이 되어 다시 이생을 찾아온 것이다. 인간의 간절한 소망과 사랑은 죽음과 같은 절대적 장벽을 넘어서까지 이어질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이생규장전'의 깊은 뜻과 감동이 나타난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의 주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선 간절한 소망과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은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것으로, 전반부는 이승의 현실적 사건을, 후반부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2단 구성으로 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드러나는 귀신과의 사랑은 이미 '수이전'의 '최치원'에 나타나 있어 작자는 이러한 전설을 돋움으로 삼아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설화의 일종인 전설이 아니고 소설인 까닭은 자신들의 사랑을 좌절시키려는 세계의 횡포에 대해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 데 있다. 그 극적 모습이 귀신과의 사랑이다. 현실적으로 좌절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 성취시키는 것은 분명 역설이지만 이 점이 소설이 전기 소설의 구조적 특징을 지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등장 인물의 성격 이생(李生) : 고루한 유교 교리를 신봉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유부단한 인간이었으나, 최랑과의 관계를 통하여 고통스러운 생활 체험을 극복해 나가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됨 최랑 : 이생과 대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진보적인 성격의 소유자. 홍건적의 위협 앞에서도 굳건히 버티며 이생과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인. 유교 도덕이 강요하는 사회 현실로부터 벗어나 개성적으로 살고 숨쉬려는 인간형 이생규장전의 구성과 시점 작품의 구성은 서사 문학의 전통적 방식으로 사건의 시간적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세 차례의 만남과 시련 및 이별이 거듭되는 복합구성의 양식을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세 번의 시련은 1. 애정 문제를 다룬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모님의 반대 2. 난리로 인한 최씨 부인의 죽음 3. 삶과 죽음을 가르는 명부의 법칙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의 시련은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으로 해결되지만, 두 번째의 위기는 해결의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나 김시습은 비극적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창작 의식으로써, 전래 설화에서 볼 수 있는 명혼, 즉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사랑·결혼이라는 화소를 도입하여 환상적이고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엮어 냈다. 서술의 시점 역시 가장 일반적인 수법인 3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 쓰였고, 시애 설화<(necrophile 시체 애호자, 시간자(屍姦者)>도 참고할 만하다. 운명의 상승과 하강 과정 ‘이생규장전’의 구조는 자아가 상황과 투쟁하면서 행복을 점진적으로 성취해 가는 운명의 상승 과정과, 상황의 도전을 받아 행복이 점진적으로 좌절되어 불행에 이르는 하강 과정의 전후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과정의 진행은 구체적으로 완전한 대응 관계를 이루고 있다. 첫 번째의 상황인 규범과의 투쟁은 자아의 의지를 상대적으로 강화하고 보다 높은 행복을 창조하는 데 기여했으나, 두 번째의 상황은 도덕적 이념을 파괴하는 무자비한 사회의 횡포로서, 도덕적 이념을 삶의 이상으로 삼는 자아를 비참하게 좌절시킨다. 이 경우, 횡포의 주체가 초월자의 의지나 불가사의한 운명이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자아는 숙명적 체념에 빠지지 않고 증오에 찬 항거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일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는 자아는 오로지 혼자의 힘만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었고, 이 투쟁에서 좌절된다. 작품에 나타난 작자의 가장 주요한 관심은 사회이고, 사회는 도덕적 측면에서 문제되고 있다. 주인공의 행ㆍ불행은 모두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성립되는 ‘사회’에 기인하고 있어, 때로는 사회와의 투쟁을 통해 삶의 욕구를 발산하고 그것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나, 종국적으로는 사회의 반도덕적 횡포에 의하여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진다. 작가적 사실과 연결시켜 볼 때, 삶의 이상적 경지는 전통적 주리론(主理論)에서 강조되어 온 도덕적 이념에 합치되는 생활이나, 사회의 횡포는 이를 부정하고 파괴함으로써 사회의 이상적인 질서를 전도시키고 있어, 전도된 사회 질서 속에서 허덕이는 삶의 비극적 양상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다. 작자는 주리론적 윤리론에 지속적인 의의를 부여하고 그것을 수호하려고 노력하나, 이미 그 근거가 되는 주리론적 존재론과 종교적ㆍ이원론적 세계관이 작자 자신에 의하여 부정되고 있기 때문에 주리론적 윤리론의 수호는 난관에 부딪힌다. 이에 작자는 자신이 수립한 주기론적 존재론에 입각하여 대결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회와 맞서 투쟁하나, 결국 좌절된다. 비참한 좌절은 사회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효과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주기론적 존재론이 주리론적 윤리관을 온전하게 지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작품은 결국 주리론적 윤리관과 주기론적 존재론을 결합하려는 노력과 그 노력에서 오는 고민을 보여 준다고 짐작된다. [김일렬, ‘“금오신화” 고찰’] - 이상택 외, “한국 고전 소설 연구”(새문사, 1993) 이생규장전 - 사랑의 열망이 빚어낸 기이(奇異) 죽은 부인이 환생(幻生)하여 남편과 살았다는 것 자체는 기이한 일이다. 이것은 ‘만복사저포기’의 사연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이루는 과정이 작품의 전반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전반부의 두드러진 특징은 여성이 애정의 성취를 주도한다는 데 있다. ‘만복사저포기’의 처녀도 그러하지만 최 씨는 더욱 적극적이다. 이생은 두 사람의 밀회가 누설될까봐 걱정을 감추지 않으나, 최 씨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문제가 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한다. 이생을 몰래 자기 방에 끌어들여 애정을 나누고 죽을 결심으로 이생과 혼인하겠다고 부모에게 주장하는 그녀의 행동은 오늘날의 세태에 비추어 보아도 놀라울 정도다. 여성이 애정 성취에 적극적이거나 주도적인 것은 당나라의 애정 전기(愛情傳奇)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것은 일종의 애정 전기 소설의 서사 문법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시습이 최 씨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애정 추구를 그린 것은 고려 시대의 애정 풍속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정(情)둔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는 ‘만전춘별사’의 화자처럼, 고려 가요에서 우리는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남녀를 거듭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의 동의를 받기 전에 동침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어찌 보면 애정의 자유를 구가하는 듯한 이 두 남녀가 오직 서로만을 사랑하고, 혼인한 뒤에는 부부의 예를 철저히 지키며 서로에게 절개와 정절도 역시 철저히 지키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서로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이룬 사랑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임을 이 두 사람은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교(禮敎)로써 애정 윤리를 규범화하기 이전에 진정한 사랑은 그 자체가 도덕적임을 이생과 최 씨는 실천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건적의 겁탈에 맞서 절개를 지켜 죽은 최 씨가 못다 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현세에 돌아오면서 이 작품에서 진짜 기이한 일이 전개된다. 이생은 그녀가 죽은 줄 알면서도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런 것을 개의치 않는다. 그는 두문불출하고 오직 부인과 함께 금슬 좋게 사는 것을 추구할 뿐이다. 이생은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등진 채 자기 집에서 오직 환생한 부인과의 애정만 추구하다가 부인이 영원히 떠나가자 그리움에 병이 들어 뒤이어 죽는다. 그래서 이생과 최 씨가 좌절된 사랑을 지속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기이의 세계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이한 일은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바를 성취하고자 하는 지극한 열망에서 형성되어 현실의 새로운 연장(延長)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기이의 세계가 한없이 지속될 수 없다는 데 비극이 있다. 사랑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자 이생이 병들어 죽고 마는 것은, 이 세상은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곳임을 말해 준다. [김종철, ‘기이로 그려 낸 고독과 울분 - 김시습의 “금오신화”’] - 김종철 외,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옛 소설 옛 노래, 고전 문학 중)”(휴머니스트, 2006) 시애설화(屍愛說話) 시신(屍身) 찬양·애무·범간(犯姦) 등 시신 사랑에 대한 설화로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문학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해왔다. 동양의 시애설화는 특히 불경에 많이 실려 있는데 비구승이 죽은 여인을 범했다는 류의 이야기 등이 많다. 중국의 시애설화는 〈후한서 後漢書〉·〈열이전 列異傳〉·〈요재지이 聊齋志異〉 등에 실려 있는데, 무덤을 도굴하다가 죽은 여인이 너무 아름다워서 범한 이야기들이 많다. 일본의 시애설화는 〈우월물어 雨月物語〉·〈천심명직 千尋明織〉 등에 실려 있는데 시신을 범하다 벌을 받는 이야기가 많다. 서양의 경우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신을 범하는 일이 있었음이 헤로도토스의 사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의 시애설화는 〈수이전〉·〈삼국유사〉 등에 실려 있다. 살아 있는 여자가 죽은 애인과 교류를 하던 중 슬픔이 극에 달한 순간 애인이 살아났다는 〈수삽석남 首揷石枏〉, 신라 후기의 문인 최치원이 두 여자의 혼백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쌍녀분 雙女墳〉, 도화녀라는 아름다운 미망인이 죽은 왕의 혼백과 사랑을 나누고 비형랑이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도화녀비형랑 桃花女鼻荊朗〉 등이 있다. 시애설화는 후대의 소설, 특히 전기(傳奇)소설에 깊은 영향을 끼쳤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금오신화의 '만복사저포기'를 들 수 있다. 이 소설은 만복사 절방에 살던 양생이라는 노총각이 죽은 여인의 혼백과 사랑했다는 내용이다. 그밖에 홍생이라는 남자가 평양에서 놀다가 수천 년 전에 죽은 기자(箕子)의 딸을 만나 놀았다는 내용의 〈취유부벽정기〉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을 소재로 한 〈양산백전〉도 시애설화를 돋움으로 한 소설이다. 시애설화는 현대문학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데, 변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의 사랑행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모두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서 주인공 백성수가 죽은 여인의 무덤을 파헤쳐서 시신을 희롱하다가 범하는 것 등은 시애설화의 수용으로 볼 수 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키스드 산드라(Sandra Larson: 몰리 파커 분)는 늘 죽은 동물의 시체에 각별한 애정을 느끼며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한다. 대학생이 된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관에 누워있는 젊은 남자의 시체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흥분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매혹적인 이 흥분에 산드라는 문제가 많은 월리스(Mr. Wallis: 제이 브레이조 분)가 운영하는 장의사 아르바이트를 자청한다. 숙련된 장의사의 능숙한 화장 솜씨가 남자의 육신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을 보자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의 꿈은 현질적인 욕망으로 그녀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욕망이 점점 커져갈 즈음 그녀의 앞에 나타난 의대생 매트(Matt: 피터 아우터브리지 분). 푸른 눈에 금발이 아름다운 청년은 산드라로 하여금 처음으로 이성에 눈뜨게 한다. 둘은 설레임과 흥분으로 사랑의 밤을 보내지만 허전함과 낯설음에 갈증이 가시지 않은 산드라는 결국 매트의 품에서 빠져 나와 장의사로 달려간다. 그리고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그 곳에서 숨막힐 듯한 긴장감과 함께 시신의 주위를 춤추듯 돌던 산드라는 말할 수 없는 환희에 빠지게 된다. 산드라가 떠난 뒤 좌절한 채 홀로 남겨진 매트의 닿을 수 없는 절망은 더해만 간다. 외로움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산드라에 대한 집착은 산드라가 사랑하는 '죽음'에 대한 질투로 변해간다. 마침내 자신의 간절한 사랑을 산드라에게 확인해 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결심을 하게 되는데..... 죽은 시체에 매력을 느끼는 어느 여성의 이상 심리를 그린 작품. 바바라 구디(Barbara Gowdy)의 단편 'We So Seldom Look On Love'를 원작으로, 영혼이 떠나간 죽은 육체에 매혹된 여성이 장의사가 되고, 죽음과 사랑, 성적 욕망을 하나로 느끼며 시체와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국내엔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선게되었고, 여러 차례 심의를 통해 몇 장면이 삭제되고, 화면처리가 되어 개봉되었다. 소재의 파격성이 문제가 되었던 듯 싶으나, 내용은 평범한 로맨스다. 칸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몰리 파커가 캐나다의 아카데미격인 제니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출처 : 네이버)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의의 '금오신화'는 비현실적 세계를 무대로 한다는 점, 주인공이 재자가인(才子佳人)이라는 점, 문장 표현이 한문 문언문으로서 사물을 지극히 미화시켜 표현한 점, 일상적·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낭만적 사랑이나 신비로운 내용의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전기라 일컬을 만하다. 또한 자아와 세계가 서로 상대에게 우위를 보이며 대결한다는 점에서 소설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야기의 결말구조가 모두 세계에 대한 패배를 형상화하고 있는 점도 시대상의 반영으로 보여진다. '금오신화'는 인간성을 긍정하고 현실 속에서 제도·인습·전쟁·인간의 운명 등과 강력히 대결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였으며, 고려 시대 설화 문학을 계승하여 소설이라는 문학 영역을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고, 후대에 쓰인 임제의 '원생몽유록'과 같은 몽유록 계열의 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김시습의 문학관 김시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일생을 살았는데, 그의 사상과 문학은 이러한 고민에서 우러난 것이라 하겠다. 성리학을 받아들여 주기론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켰고, 민생을 중시하는 민본·애민적인 사상가였다. 그리고 불교의 노장 사상을 현실주의적인 입장으로 해석했으며, 그 비합리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측면을 비판했다. 이러한 사상은 그의 시편과 산문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그는 봉건적 인습이나 사회 현실이 자신뿐만 아니라, 동시대인의 요구를 끝내 좌절시킬 때, 경험적 현실의 구속을 일부 배재하는 낭만적 환상을 빌려 자신의 현실적 요구와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거나, 원혼의 환신을 빌려 자신과 동시대인을 패배시킨 사회의 모순을 삶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하였다. '금오신화'는 이와 같이 현실적 갈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실성이 작품에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그 작자 의식은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되는 것이다. '금오신화' 속의 주인공은 작중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작자 자신의 현실적 소망을 환상적으로 투영한 작자 자신이며, 작자가 살고 있던 당시의 한국 사회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금오신화(金鰲神話)의 특징 및 의의 (1)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뛰어난 재능과 감성을 가진 재가가인(才子佳人)적인 전기적 인물이나 현실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2) 문장 표현이 한문 문어체로서 사물을 극히 미화시켜 표현하고 있다. (3) 일상의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신비한 내용을 그렸다. (4) 전기적 특성을 보이면서도, 인간성을 긍정하고 현실 속에서 제도, 인습, 전쟁, 운명 등과 강력하게 대결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점에서 현실주의적 지향이 엿보이는 소설로서 평가받고 있다. (5)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결코 모방은 아니며, 우리 설화 문학의 전통 속에서 탄생된 독창적 소설이다. (6) '금오신화'의 출현으로 소설 문학이 대두하는 동기가 되어 소설 문학 발흥의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 (7) 설화에서 소설로 이어지는 발전 단계를 알게 하여 주는 자료가 된다. 더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공들이 뛰어난 재능과 감성을 지녔으면서도 현실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둘째, 문장 표현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다운 한문 문언문(文言文)이라는 점, 셋째, 일상적 경험의 세계를 넘어선 신비로운 상황 및 사건 요소가 많다는 점 등이다. '금오신화'는 이처럼 전기(傳奇)의 특성을 지니면서도, 인간성을 긍정하고 현실 속에서 제도·인습·전쟁·운명 등과 강력하게 대결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점에서 현실주의적 지향이 엿보이는 소설로서 평가받고 있다. 전등신화(剪燈神話)의 성격 명(明)나라 구우(瞿佑)의 괴기적인 단편 소설집으로 1378년에 간행되었다. <전등신화(剪燈神話)>의 뜻은 '초의 심지를 잘라서 불빛을 밝혀 가며 읽을 진기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2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죽은 미인과 살아 있는 미남과의 사랑을 그린 '모란등기(牡丹登記)'같은 것은 그 중 대표가 될 만한 것이다. 이<전등신화>는 후일 중국 본토를 비롯하여 한국, 일본 등의 소설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 모방작만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생규장전’에서 초현실적인 배경이 갖는 의미 '금오신화'는 전체적으로 보아 불우하거나 현실에 뜻을 얻지 못한 주인공들이 비현실적 존재나 비현실적 사건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달성하거나 혹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이념의 정당성을 확인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거나 세상으로부터 자취를 감추는 구성을 취한다. 작자는 죽은 여자 귀신과의 사랑과 이별을 다루거나 용궁과 염라국의 공간을 설정하는 증, 작가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문제 의식을 던지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현실 속에서 겪는 우수와 불우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죽은 여자 귀신이나 선녀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 두 사람의 애정과 화합은 영원한 이별을 고하기 전에 일시적으로 실현되었을 뿐이며, 염라국과 용궁을 여행하여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인정을 받지만 그것 역시 꿈 속 에서 잠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사랑과 여행이 끝났을 때 그들이 겪는 고뇌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더 이상의 전망과 출구가 보이지 않기에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린 채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체험하게 되는 기이한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은 현실에서의 소외를 정신적으로 보상받는 가상의 세계인 것이다. 그 같은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금오신화'의 작품 내 주인공들의 고뇌와 불우의 이면에는 당대 최고의 비판적 지식인이었던 작자의 삶의 이력이 깃들어 있다. 현실과의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채 20대에 방랑의 길을 떠나 고독과 방황 속에서 세상의 무질서와 혼란을 질타하였던 김시습은, 경주의 금오산에서 일시 정착하여 ‘금오신화’를 지은 뒤,“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석실에 감추어 두었다고 한다. 해소할 길이 없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부조화 속에서 작가가 겪어야 하는 갈등과 고뇌가 작품내에 투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작품 내에 묘사되어 있는 현실 세계는 두 사람의 사랑을 물리적 폭력적으로 가로막는 전쟁과 살인이 자행되고 있으며, 간신이 난리를 일으키고 간악한 무리가 횡행하고 있으며, 정직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공간이다. 혼란과 부정과 폭력으로 가득찬 인간 세계와 달리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주인공이 방문한 다른 세계는 질서와 원칙이 존재하며 화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 공간에서 남녀 주인공은 시문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간의 애정과 신의를 확인할 수 있으며, 때로는 군신간의 갈등과 반목이 없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즐거움과 영화를 향유할 수 있다. 그러한 이상적 공간에서의 기이한 만남은 비록 일시적인 것이지만, 주인공은 현실 세계의 모순과 폭력을 강렬하게 비판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것에 맞서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견지해 나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랑을 갈구하는 주인공과 그것을 제지하는 적대자의 대결에서 주인공이 끝내 파멸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주체적 결단과 상호간의 신의를 통해 세상으로부터의 횡포에 굴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신의, 현실 세계의 모순가 불합리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강직한 성품 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 앞에 주인공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병이 들어 죽게 된다. 저승으로 가 버렸기에 끝이 났지만 그대로 주인공은 끝까지 괴로워하다가 파멸을 맞게 된다. 그것은 패배와 다르니, 자신의 결단과 의지에 따라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주인공의 파멸을 강요하는 세계의 횡포를 고발하기도 하며, 부정과 폭력이 횡행하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고, 운명과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되돌아 보기도 하며, 정의와 질서가 지켜지는 고뇌와 울분의 목소리가 잠재되어 있기에 작품의 호소력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소설사에서 획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전기 소설집이다. 한국 고전 소설의 발생에 관해서 논란은 있지만, 적어도 그 이전 시기까지의 서사적 전통을 이어받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뚜렷한 결정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국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평면적 관찰만으로 모방작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작품이 출현한 15세기 말은 중세적 사회 규범과 문화의 틀이 아직 완강하던 시대였다. 이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 속에서 심각한 갈등과 고뇌를 겪어야 했던 김시습은 현세적 삶의 욕망과 그 좌절 및 삶의 본질적 문제를 현실과 낭만적 환상의 절묘한 결합 방식을 통해 엮어냄으로써 우리 소설사의 지평을 확대하였다. (출처 : 정우봉 ‘김시습의 금오신화’) 전기 소설(傳奇小說)의 특징과 흐름 전기적이라는 말은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 진기한 것 초현실적인 것 곧 일상적,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을 허구적으로 짜놓은 것을 말한다. 이런 전기적 요소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한 소설을 전기 소설이라 한다. 전기 소설은 첫째, 주인공이 한결같이 재자가인적(才子佳人的) 인물이다. 둘째, 한문 문어체로서 사물을 극히 미화하였다. 셋째, 일상적?현실적이 아닌 초현실적인 괴기한 내용을 그리고 있다. 현실의 인간 세계와 초현실의 세계가 구분됨이 없이 상호 출입하는 관계 속에서 사건이 전개되어가는 것을 전기적 구조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현실(불행) - 초현실(행복) - 현실(절망) - 초현실(상승)의 구조를 가진다. 우리나라 소설은 전기적 요소를 간직한 한문 소설에서부터 출발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전기적 요소를 간직한 한문 소설은 고소설에서 출발을 보여 줌과 동시에 국문 소설이 나오기 전에 임제의 '원생몽유록` , '수성지` , '화사` 등이 가전과 몽유 양식의 전통에서 전개되었다. [출처 : 조동일, <한국 문학 통사(제3판)> (지식산업사, 1993)] 이해하기 1. 이 작품에서 최랑의 죽음과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주제 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소설의 갈래 상 특성은 인물들이 세계와 적극적인 대결의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즉, 자신의 의지를 좌절시키려는 외적 세계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 갈래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활동을 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생과 최랑은 각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였으나 뜻하지 않게 홍건적의 침입으로 생사(生死)를 달리하게 되어 또 다른 좌절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시련 앞에서 둘은 맹세한 영원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다시 돌아와 살아간다. 이런 이야기는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것이라 하겠다. 2. 서사 문학에서 이야기의 전개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성취 욕구를 충족해 가는 과정을 기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이 과정에는 장애가 따른다. 이 작품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애가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각각의 장애에 대해 주인공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정리해 보자. 문벌(門閥)의 차이로 인한 결혼의 장애, 전쟁의 장애, 죽음의 장애 교수·학습 방법 : 활동 1에서의 관점과 동일한 입장에서 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또한 줄거리를 참고하면서 각각의 장애에 대해 인물들이 보인 대응을 정리하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문벌(門閥)의 차이로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최랑은 몸져 누워 그와의 이별은 자신에게 죽음을 내린 것과 같다면서 부모에게 항의한다. 전쟁으로 인해 서로 생사를 달리했으나, 죽어 귀신으로 나타난 최랑에 대해 이생이 아무 두려움 없이 재회함으로 장애를 이겨낸다. 마침내 최랑의 명부로 돌아가게 되자 이생은 최랑의 장례를 치른 후 뒤따라 죽어 영원한 사랑을 맺는다. 3. 이 작품을 중심으로, '전기 소설(傳奇小說)`의 일반적인 성격에 대해서 조사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이생규장전` 에는 인귀 교환(人鬼交歡)과 같은 비현실적 상황이 전개되는데,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전기 소설(傳奇小說)로 규정된다. 금오신화의 다른 작품과 몽유록 계열의 소설 작품들을 참고하면서 전기 소설의 특성을 파악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주인공들의 인물 유형 : 주인공은 한결같이 재자가인(才子佳人)적 인물이다. - 이생과 최랑의 용모 및 천품은 비범하다. 표현상의 특징 : 한문 문어체로서 대상을 극히 미화한다. - '이생규장전` 에 나오는 많은 한시들 및 한문투 내용상의 특징 : 일상적, 현실적이 아닌 초현실적인 괴기한 내용을 그린다. - 이생과 최랑의 인귀 교환(人鬼交歡) 장면 확장하기 1. 이 작품과 같이 인간과 귀신이 교류하고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쓰였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이 작품이 쓰였던 당대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알아보고, 그것이 이 같은 작품 발생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추리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학생 활동 : 당시에 이 같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원초적인 설화로부터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어 온 문학사적 전통과 함께, 조선 왕조의 새로운 지도 이념에 부합하는 주리론(主理論)적 통치 이념이 대두되자 여기에 대항하여 나타난 주기론(主氣論)이라는 철학 사상의 등장, 곧 사상가의 새로운 전개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 등 외래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이기(理氣): 우주의 본체인 이(理)와 그 현상인 기(氣). 이(理) : 만물의 이치, 원리, 질서. 이(理)란 원래 옥(玉)에 나타나는 무늬를 가리켰는데, 나중에 철학적 개념으로 발전하여 '사물에 내재하는 원리', '우주의 근본이 되는 도리' 따위를 지칭하게 되었다. 특히 성리학에서는 사물의 질료적 측면을 기(氣)라 하고 원리적 측면을 이(理)라 한다. 기(氣) : 동양 철학에서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힘. 이(理)에 대응되는 것으로 물질적인 돋움을 이른다. 기가 하도 막혀서 막힌 둥 만 둥 너무 큰 변을 당하면 어안이 벙벙하여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리론(主理論) : 조선 성리학의 2대 흐름의 하나. 이(理)는 기(氣)의 활동의 근본이 되고 기를 주재하고 통제하는 실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언적·이황이 대표자이다. ·주기론(主氣論) : 조선 성리학의 2대 흐름의 하나. 우주의 근원적 존재를 추상적인 이(理)보다는 물질적인 기(氣)에서 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기대승·이이가 대표자이다. 2. `사랑과 영혼(Ghost)' 이라는 영화를 보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영화와 소설은 모두 서사 양식이다. 영화와 소설이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공통점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영상 언어의 문법에 따르고, 소설은 언어의 문법에 따르지만,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따라서 영화와 소설의 차이점보다는 이야기 양식으로서의 공통점에 주목하면서, 특히 인귀 교화(人鬼交歡 : 사람과 귀신이 서로 사귀며 즐거움을 나눔)의 설정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활동을 하도록 지도한다. (1) 두 작품의 사건 전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해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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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생규장전 | 사랑과 영혼 | |||||||||
공통점 | 귀신과 인간의 사랑 | ||||||||||
차이점 | 여성이 귀신 만남의 중재자가 없음. |
남성이 귀신 만남의 중재자가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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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작품들처럼 귀신과의 사랑을 다룬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등을 조사해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금오신화>에 실려 있는 '만복사저포기` , 우리나라 영화 '고스트 맘마` 등 금오신화(金鰲神話)에 실린 작품 요약 김시습이 경주의 금오산에서 창작한 것으로 창작 당시 몇 편이었는지 알 수 없고, 지금은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5편만 전하는 전기적(傳奇的) 한문 소설집이다. 전래되던 설화 문학을 계승하여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을 확립했다는 사실에 의의가 크다. 금오신화(金鰲神話)의 특징은 주인공이 재자가인(才子佳人)들이고, 현실(現實)과 초월(超越) 세계가 펼쳐지면서, 평범(平凡)한 남자 주인공과 귀족(貴族)이었던 여자 혼령(魂靈)과의 만남을 통해 비현실적, 낭만적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점이다. (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줄거리 :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梁生)은 어느 날 만복사의 불당을 찾아가서 부처님께 저포(樗蒲-윷과 같은 기구)놀이를 청했다. 그가 지면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릴 것이요, 부처님이 지면 그에게 아름다운 배필을 중매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기였다. 서생은 두 번 저포를 던져 이기게 되어, 불좌 밑에 숨어서 배필이 될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 때 문득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나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하소연하면서 좋은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를 본 서생이 그 여인 앞으로 뛰어나가 회포를 말하니 두 사람은 정이 통해져 하룻밤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실은 이 여인은 인간이 아니라 왜구가 침범한 난리 통에 죽은 처녀의 환신(幻身)이었다. 이튿날 여인은 서생에게 자기가 사는 동네로 가기를 권했고, 서생은 거기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사흘 뒤 그가 돌아가게 되었을 때 여인이 서생에게 신표로서 은주발 한 개를 선사하였는데 그것은 그 여인의 무덤에 매장한 부장품이었다. 다음 날 그들은 보련사(寶蓮寺)에서 다시 만나 되었다. 그러나 재(齋)가 끝난 뒤 여인은 인연이 끝나 마침내 혼자서 저승으로 떠나 버렸다. 이 날은 여인의 대상(大喪)인 동시에 재(齋)를 지내는 날이었던 것이다. 서생은 끝내 그 여인을 잊지 못하여 장가도 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면서 평생을 마쳤다. 주제 : 시공(時空)을 초월한 사랑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줄거리 : 어느 봄날, 이생은 우연히 귀족집 담장 안을 엿보다가 문득 최 낭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내 꽃다운 인연을 맺게 되었으나, 당시 귀족 집안의 엄격한 도덕과 규율로써는 이러한 야합이 허용될 수 없었다. 이 일은 눈치챈 이생의 아버지는 그를 먼 곳으로 쫓아버렸고, 아가씨는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 처녀의 부모는 매자(媒者)를 이씨네 집에 세 번이나 보내어 그들의 인연을 맺어 주었다. 그 후 나라 안에 홍건적이 침범해 와서 두 집안 가족들은 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이생은 간신히 도망하여 목숨을 보전하였으나, 아가씨는 끝내 정조를 지키어 적도의 손에 죽었다. 이생이 피난에서 돌아오니 빈집만이 남아 있었다. 조금 후에 그 곳에서 그는 아내를 만났는데, 그녀가 이미 죽은 환신(幻身)인 줄 알면서도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러고는 아내와 함께 도적에게 죽은 두 집 부모의 유골을 거두어 잘 장사지내 주었다. 그 후 아내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몸이 환신임을 말하고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면서 울음을 터뜨리고는 사라져 버렸다. 서생도 몇 달 후에 아내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제 :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선 간절한 소망과 사랑.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 (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줄거리 : 송도의 홍생(洪生)이 유람을 겸한 장사를 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서 친구들과 같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취흥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부벽정(浮碧亭) 아래에 이르러, 정자 위로 올라가서 난간을 의지하고 고국이 되어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온다. 홍생은 영명사(永明寺)의 중이 찾아오는가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한 미인이 좌우에 시녀를 거느리고 비단 부채를 들고 나타나는데, 그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정숙하여 마치 귀족 집안의 처녀 같았다고 하거니와, 홍생이 시녀의 내영(來迎)을 받아 누상으로 올라가서 그 미인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미인의 신분은 은왕(殷王)의 후예요, 기자왕(箕子王)의 딸로서, 부왕(父王)이 위만(衛滿)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로 정절을 지켜 죽기를 기다리는데, 신선이 된 선조(先祖)가 나타나 불사약(不死藥)을 주어 그 약을 먹고 수정궁(水晶宮)의 상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홍생이 부벽루에서 그 선녀와 하룻밤을 지내며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부르다가 날이 새자 그 선녀는 승천하고, 홍생은 집에 돌아와 그 선녀를 생각하며 사모하던 끝에 병에 걸렸는데, 그 선녀의 시녀가 나타나, "우리 아가씨가 상제(上帝)께 아뢰어 견우성(牽牛星) 막하(幕下)의 종사(從事)를 삼았으니 올라오라."고 일러 주는 꿈을 꾸고 난 뒤,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분향하고 누웠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빈장(殯葬)한 지 몇 달이 지나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주제 : 수천 년전의 기씨 여인과의 사랑으로 이 작품은 죽은 여자의 혼령이 산사람처럼 나타나 주인공과 함께 어울렸다는 점에서는 명혼소설(冥婚小說)이라 할 수 있으나, 상대방이 선녀이기에 육체적인 관계는 배제되어 있다. 만남이 꿈속의 일인 것 같다는 설정은 몽유소설(夢遊小說)과 상통하지만, 꿈의 시작과 끝을 불분명하게 해서 한층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도가적(道家的)인 취향과 관련된 주체적인 사관(史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켰다.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줄거리 : 박생(朴生)이 하루는 주역(周易)을 읽다가 조는 사이에 염라국으로 들어간다. 비참한 지옥의 모습을 보고 놀란 박생은 수문장이 안내를 받아 염라왕의 앞으로 가서 후한 대접을 받고, 염라왕과 문답을 주고 받는다. 염라왕은 원래 박생에게 항상 정직하고, 항거하는 뜻이 있어 세상에 살면서 굽히지 않는 박생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한다. 박생은 염라왕에게 제왕의 마땅한 자세를 역설하고 염라왕은 박생의 이야기에 동조하며 박생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 준다고 했다. 그러나 저승과 염라왕 등의 환상을 비판하고 현실 정치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펴고 이승으로 돌아온다. 주제 : 유교 이념을 기반으로 한 불교 철리(哲理)로 이 작품은 특히 김시습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 일상적, 현실적 것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을 그린 소설로서 문학사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내용은 불교를 사도로 보고 있으면서도 불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관에 대해서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다름을 말하며 왕도를 고취하고 패도를 배격하고는, 고금(古今)의 여러 왕들의 치란(治亂)이 자취를 들어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이상의 유교관(儒敎觀), 불교관(佛敎觀), 정치관(政治觀) 등으로, 작자는 전등신화(剪燈新話)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줄거리 : 고려 때 한씨(韓氏) 성을 가진 서생이 글 재주가 높아 조정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 재능을 발휘할 벼슬이나 혹은 다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꿈에 박연의 용궁에 초대되어 글 짓는 재능을 마음껏 자랑하고 용궁의 세계를 구경하는 등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꿈을 깨었어도 용궁에서 받은 선물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이러한 그의 재능이 단순히 백일몽(白日夢)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 후 그는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현실 세계의 명리(名利)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주제 : 화려한 용궁 체험과 삶의 무상감 김시습(金時習) 1435(세종 17) ∼ 1493(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 · 문인, 생육신의 한 사람.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 청한자(淸寒子) · 동봉(東峰) · 벽산청은(碧山淸隱) · 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서울 출생. 작은 키에 뚱뚱한 편이었고 성격이 괴팍하고 날카로워 세상 사람들로부터 광인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으나 배운 바를 실천으로 옮긴 지성인이었다. 이이(李珥)는 백세의 스승이라고 칭찬하기도 하였다. 〔생 애〕 그의 생애를 알려주는 자료로는 ≪ 매월당집 ≫ 에 전하는 〈 상류양양진정서 上柳襄陽陳情書 〉 , 윤춘년(尹春年)의 전기 ( 傳記 ), 이이의 전기, 이자(李 秕 )의 서문(序文), ≪ 장릉지 莊陵誌 ≫ · ≪ 해동명신록 ≫ · ≪ 연려실기술 ≫ 등이 있다. 그의 선대는 원성왕의 아우 김주원(周元)이다. 그의 비조(鼻祖)는 고려시대 시중을 지낸 연(淵) · 태현(台鉉)로 전하고 있으나 ≪ 매월당집 ≫ 의 세계도에 의하면 인존(仁存)으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증조부 윤주(允柱)는 안주목사(安州牧使), 할아버지 겸간(謙侃)은 오위부장(五衛部將), 아버지 일성(日省)은 음보(蔭補)로 충순위 ( 忠順衛 )를 지냈으며, 그의 어머니는 울진 선사장씨(仙 笑 張氏)이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외조부로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시를 지을 줄 아는 천재였다. ≪ 정속(正俗) ≫ , ≪ 유학자설(幼學字說) ≫ , ≪ 소학 ( 小學 ) ≫ 을 배운 후 5세 때에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아 그가 신동(神童)이라는 소문이 당시의 국왕인 세종에게까지 알려졌다. 세종이 승지를 시켜 시험을 해보고는 장차 크게 쓸 재목이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고 선물을 내렸다고 하여 5세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5세 때에 이웃집에 살고 있던 예문관 수찬 ( 修撰 ) 이계전 ( 李季甸 )으로부터 ≪ 중용 ≫ 과 ≪ 대학 ≫ 을 배웠고, 이후 13세까지 이웃집의 성균관 대사성 김반 ( 金泮 )에게서 ≪ 맹자 ≫ · ≪ 시경 ≫ · ≪ 서경 ≫ 을 배웠고, 겸사성 윤상 ( 尹祥 )에게서 ≪ 주역 ≫ · ≪ 예기 ≫ 를 배웠고, 여러 역사책과 제자백가는 스스로 읽어서 공부했다. 15세에 어머니 장씨를 여의자 외가의 농장 곁에 있는 어머니의 무덤 옆에서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그러나 3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그를 어머니처럼 돌보아주던 외숙모가 죽고 아버지는 계모를 맞아들였으나 병을 앓고 있었다. 이 무렵 그는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가정이 되지 못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은 인간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었고. 18세에 송광사에서 선정에 드는 불교입문을 하였다. 그 후 삼각산 ( 三角山 ) 중흥사 ( 重興寺 )로 들어가 공부를 계속하였다. 21세 때 수양대군 ( 首陽大君 )의 ‘ 왕위찬탈 ’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을 하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밤 온 장안 사람들이 세조의 전제에 벌벌 떨고 있을 때에 거리에서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을 바랑에 주섬주섬 담아다가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한 사람이 바로 김시습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관서지방을 유람하며 역사의 고적을 찾고 산천을 보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이는 ≪ 매월당집 ≫ 에 ≪ 탕유관서록 宕遊關西錄 ≫ 으로 남아 있다. 그가 쓴 발문에서 방랑을 시작한 동기를, “ 나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질탕(跌宕)하여 명리(名利)를 즐겨하지 않고 생업을 돌보지 아니하여, 다만 청빈하게 뜻을 지키는 것이 포부였다. 본디 산수를 찾아 방랑하고자 하여, 좋은 경치를 만나면 이를 시로 읊조리며 즐기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지만, 문장으로 관직에 오르기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하루는 홀연히 감개한 일(세조의 왕위찬탈)을 당하여 남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道)를 행할 수 있는데도 출사하지 않음은 부끄러운 일이며, 도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홀로 그 몸이라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 고 적었다. 26세(1460) 때에는 관동지방을 유람하여 지은 시를 모아 ≪ 탕유관동록 宕遊關東錄 ≫ 을 엮었고, 29세(1463) 때에는 호남지방을 유람하여 ≪ 탕유호남록 宕遊湖南錄 ≫ 을 엮었다. 그 해 가을 서울에 책을 구하러 갔다가 효령대군 ( 孝寧大君 )의 권유로 세조의 불경언해사업(佛經諺解事業)에 참가하여 내불당에서 교정(校正)일에 참여하라고 권유하여 열흘간 내불당에 거쳐한 일이 있었다. 1465년 원각사 낙성식에 불려졌으나 짐짓 뒷간에 빠져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 경멸하던 정창손 ( 鄭昌孫 )이 영의정이고, 김수온 ( 金守溫 )이 공조판서로 봉직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31세 때인 1465년 봄에 경주로 내려가 경주의 남산인 금오산 ( 金鰲山 )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칩거하였다. 이때 매월당이란 호를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31세 때부터 37세까지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불리는 ≪ 금오신화 ≫ 를 비롯한 수많은 시편들을 ≪ 유금오록 遊金鰲錄 ≫ 에 남겼다. 그동안 세조와 예종이 죽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성종 2) 37세에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성동(城東) 폭천정사(瀑泉精舍), 수락산 수락정사(水落精舍) 등지에서 10여 년을 생활하였으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1481년 47세에 돌연 머리를 기르고 고기를 먹으며, 안씨(安氏)를 아내로 맞아들여 환속하는 듯하였으나, 이듬해 ‘ 폐비윤씨사건(廢妃尹氏事件) ’ 이 일어나자, 다시 관동지방 등지로 방랑의 길에 나섰다. 당시 양양부사(襄陽府使)였던 유자한 ( 柳自漢 )과 교분이 깊어 서신왕래가 많았으며,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강릉 · 양양 · 설악 등지를 두루 여행하였다. 이 때 그는 육경자사(六經子史)로 지방청년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시와 문장을 벗삼아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는데, ≪ 관동일록 關東日錄 ≫ 에 있는 100여 편의 시들은 이 기간에 쓰여진 것이다. 10대에는 학업에 전념하였고, 20대에 산천과 벗하며 천하를 돌아다녔으며, 30대에는 고독한 영혼을 이끌고 정사수도(靜思修道)로 인생의 터전을 닦았고, 40대에는 더럽고 가증스러운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고 행동으로 항거하다가 50대에 이르러서는 초연히 낡은 허울을 벗어 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찾아든 곳이 충청도 홍산 ( 鴻山 ) 무량사 ( 無量寺 )였다. 이곳에서 59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유해는 불교식으로 다비(茶毗)를 하여 유골을 모아 그 절에 부도(浮圖)로 안치하였다. 그는 생시에 이미 자기의 초상화인 노 · 소(老少) 2상(二像)을 손수 그리고 스스로 찬(贊)까지 붙여 절에 남겨두었다고 하나, 현재는 ≪ 매월당집 ≫ (신활자본)에 〈 동봉자화진상 東峯自 怜 眞像 〉 이 인쇄되어 전한다. 그 밖에 작자 미상인 김시습의 초상화가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단종이 복위된 숙종 33년(1707)에 사헌부 집의(執議)에 추증되었고, 정조 6년(1782)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동 8년에는 청간(淸簡)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그가 쓴 많은 시가 유실되었으나 그의 문집은 중종 때에 정부관료들에 의해서 그의 시가 좋다고 하여 편찬이 논의되었고, 이자(李 秕 )에 의하여 10여 년 동안 수집하여 겨우 3권으로 모아졌으며, 윤춘년 · 박상이 문집 자료를 모아 1583년 선조의 명에 의하여 이이가 전을 지어 교서관에서 개주 갑인자로 23권이 간행되었다. 일본 봉좌문고와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사상과 문학〕 김시습은 지금까지 ≪ 금오신화 ≫ 의 작자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자못 다채롭다고 할 만큼, 조선 전기의 사상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 · 불 관계의 논문들을 남기고 있으며, 그뿐 아니라 15권이 넘는 분량의 한시들도 그의 전반적인 사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몫으로 주목을 요한다. 이 같은 면은 그가 이른바 ‘ 심유천불(心儒踐佛) ’ 이니 ‘ 불적이유행(佛跡而儒行) ’ 이라 타인에게 인식되었듯이 그의 사상은 유불적인 요소가 혼효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는 근본사상은 유교에 두고 아울러 불교적 사색을 병행하였으니, 한편으로 선가(禪家)의 교리를 좋아하여 체득해 보고자 노력하면서 선가의 교리를 유가의 사상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후대에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이황 ( 李滉 )으로부터 ‘ 색은행괴(索隱行怪) ’ 하는 하나의 이인(異人)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때에는 불교 자체를 엄격히 이단시하였으므로, 김시습과 같은 자유분방한 학문추구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의 사상에 대한 정밀한 검토와 분석이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만족할 만큼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 점은 그의 생애가 여러 차례의 변전을 보여 주었고, 따라서 그의 사상체계 또한 상황성을 띠고 있기에 일관한 연구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 신귀설 神鬼說 〉 · 〈 태극설 太極說 〉 · 〈 천형 天形 〉 등을 통하여 불교와 도교의 신비론(神秘論)을 부정하면서 적극적인 현실론을 펴고 있다. 이는 유교의 속성인 현실을 중심으로 인간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면과 맥이 닿고 있다. 잡저 ( 雜著 )의 대부분은 불교에 관계된 논문들인데, 그는 부처의 자비정신을 바로 한 나라의 군주가 그 백성을 사랑하여, 패려(悖戾 : 도리에 어그러짐) · 시역(弑逆 : 부모나 임금을 죽이는 대역행위)의 부도덕한 정치를 제거하도록 하는 데 적용하였다. 이같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은 그의 〈 애민의 愛民議 〉 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혹자들은 그의 성리사상이 유기론(唯氣論)에 가까운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불교의 천태종에 대해 선적(禪的)인 요소를 강조하였다고 한다. 특히, 〈 귀신론 〉 은 귀신을 초자연적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자연철학적으로 인식하여, ‘ 만수지일본(萬殊之一本) ’ · ‘ 일본지만수(一本之萬殊) ’ 라 하여 기(氣)의 이합집산에 따른 변화물로 보았다. 그의 문학세계를 알게 해주는 현존 자료로는 그의 시문집인 ≪ 매월당집 ≫ 과 전기집(傳奇集) ≪ 금오신화 ≫ 가 있다. 지금까지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는 주로 전기집인 ≪ 금오신화 ≫ 에 집중되어왔으며, 그의 시문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시문집인 ≪ 매월당집 ≫ 은 원집(原集) 23권 중에 15권이 시로써 채워져 있으며, 그가 재능을 발휘한 것도 시이다. 그는 문(文)에서도 각 체 문장을 시범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그의 사상편(思想篇)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김시습의 시는 현재까지 그의 시문집에 전하는 것만 하더라도 2,200여수나 되지만 실제로 그가 지은 시편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스스로 술회한 그대로 그는 어릴 때부터 질탕하여 세상의 명리나 생업과 같은 것을 돌보지 아니하고, 마음내키는 대로 산수를 방랑하면서 좋은 경치를 만나면 시나 읊으면서 살았다. 원래 시란 자기실현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역대의 시인 가운데서 김시습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시로써 말한 시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로써 자신의 정신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었기에 그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 시적 충격과,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시적 동기도 모두 시로써 읊었다. 시 말고는 따로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시를 쓰게 된 그는 시를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했기에 시를 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서 유출되는 모든 정서가 시로써 표현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도 고려하지 않았다. 실천적인 유교이념을 가진 그의 지적 소양에서 보면, 그는 모름지기 경술(經術)로써 명군(明君)을 보좌해야만 하였고, 문장으로 경국(經國)의 대업에 이바지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가 몸을 맡긴 곳은 자연이요 선문(禪門)이었으며, 그가 익힌 문장은 시를 일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선문은 이단이요 시작(詩作)은 한갓 여기(餘技)로만 생각하던 그때의 현실에서 보면, 그가 행한 선문에 몸을 던진 것이나 시를 지음에 침잠한 것도 이미 사회의 상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의 행적이 괴기하다든가 그의 시작이 희화적(戱畵的)이라는 평가는 당연하였다. 우리 나라 한시가 대체로 그러하지만, 김시습의 시에서도 가장 흔하게 보이는 주제적 소재는 ‘ 자연 ’ 과 ‘ 한(閑) ’ 이다. 몸을 산수에 내맡기고 일생을 그 속에서 노닐다가 간 그에게 자연은 그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 ’ 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도 그 일부가 되곤 하였다. 평소 도연명(陶淵明)을 좋아한 그는 특히 자연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현실에 대한 실의가 크면 클수록 상대적으로 자연의 불변하는 영속성 때문에 특별한 심각성을 부여하고 비극적인 감정이 깃들이게 하였다. 일생을 두고 별일 없이 살아간 그에게는, 어쩌면 ‘ 한 ’ 그것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인 관심과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가지고 자신과 자연이 함께 평화스러운 상태에 놓이기가 어려웠다. 한의(閑意)가 일어났다가도 세상일이나 다른 사물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흔들어 놓곤 하였다. 때문에 〈 한의 〉 · 〈 한극 閑極 〉 · 〈 한적 閑適 〉 · 〈 우성 偶成 〉 · 〈 만성 漫成 〉 · 〈 만성 亶 成 〉 등 그의 시에서 보여준 그 많은 ‘ 한 ’ 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전한 한일(閑逸)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의 시에 대한 뒷사람들의 비평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집약된다. 첫째는 힘들이지 않고서도 천성(天成)으로 시를 지었다는 점이며, 둘째는 그 생각이 높고 깊으며 뛰어나 오묘한 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이 모두 인상비평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시인 자신이 “ 단지 시의 묘한 곳을 볼 뿐이지 성련(聲聯)은 문제삼지 않는다. ” 라고 하였듯이 그의 시에서 체재나 성률은 말하지 않는 쪽이 나을 듯하다. 그의 시 가운데서 역대 시선집에 뽑히고 있는 것은 20여 수에 이른다. 그의 뛰어난 대표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산행즉사 山行卽事 〉 (7절) · 〈 위천어조도 渭川漁釣圖 〉 (7절) · 〈 도중 途中)(5율) · 〈 등루 登樓 〉 (5율) · 〈 소양정 昭陽亭 〉 (5율) · 〈 하처추심호 何處秋深好 〉 (5율) · 〈 고목 古木 〉 (7율) · 〈 사청사우 乍晴乍雨 〉 (7율) · 〈 독목교 獨木橋 〉 (7율) · 〈 무제 無題 〉 (7율) · 〈 유객 有客 〉 (5율)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 도중 〉 · 〈 등루 〉 · 〈 독목교 〉 · 〈 유객 〉 등은 모두 ≪ 관동일록 ≫ 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관동지방으로 떠났을 때의 작품이며, 대체로 만년의 작품 가운데에서 수작(秀作)이 많다. ≪ 금오신화 ≫ 는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 〉 등 5편이 전부이며, 이것들은 김시습의 사상을 검증하는 호재(好材)로 제공되어 왔다. 그러나 〈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 〉 를 제외한 그 밖의 것들은 모두 감미로운 시적 분위기로 엮어진 괴기담(怪奇譚)이다. 이 전기의 틀을 빌려 그에게 있어서 가장 결핍되어 있던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우리 나라 역대 시인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염정시(艶情詩)를 남긴 시인이 되었다. 그의 역사사상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문제를 풀어 가는 소재로 인식하였으며, 역사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한국 최초의 역사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 고금제왕국가흥망론 古今帝王興亡論 〉 이란 논문에서 역사적 위기도 인간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파악하고, 항상 인간의 마음씀을 중시하였다. 그가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고 한 점은 단순히 성리학적 견해만이 아니라 불교의 근본이론이기도 하다. 또한 〈 위치필법삼대론 爲治必法三代論 〉 에서는 삼대의 군주들이 백성들의 생활에 공헌을 하였기 때문으로 해석하였으며 인간의 고대문화의 발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그는 우리 나라의 역사도 단군조선으로부터 당대인 세종대까지의 역사를 문화사, 사상적으로 파악하여 발전적 역사관을 보였으며, 금오신화 중의 〈 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 〉 는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梅月堂集, 梅月堂集解題(崔珍源, 成均館大學校大東文化硏究院, 1973), 韓國儒學史略(李丙燾, 亞細亞文化社, 1986), 金時習硏究(鄭炳昱, 서울大學校論文集 人文社會科學篇, 1958), 金時習의 佛敎觀(鄭 泄 東, 慶北大學校論文集 6, 1962), 金時習의 鬼神觀과 道敎觀(鄭 東, 趙潤濟博士回甲紀念論文集, 新雅社, 1964), 金時習의 文集과 著述(鄭 東, 慶北大學校語文論集 2, 1964), 金時習攷(林憲道, 人物韓國史, 博友社, 1965), 金時習(鄭炳昱, 韓國의 人間像, 新丘文化社, 1967), 金時習論(閔丙秀, 韓國文學作家論, 螢雪出版社, 1977), 梅月堂의 詩世界(閔丙秀, 서울大學校人文論叢 3, 1978), 金時習의 政治思想의 形成過程(金鎔坤, 韓國學報 18, 一志社, 1980), 금오신화의 사상적 성격 (박혜숙, 한국문학사의 쟁점, 1986), 15세기 후반 이학적 우주론의 대두-매월당 김시습의 천관을 중심으로-(구만옥, 朝鮮時代史學報}7. 1998), 김시습의 역사철학(정구복, 한국사학사학보 2, 2000).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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