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猶豫) / 해설 / 오상원
by 송화은율작자 : 오상원
갈래 : 단편 소설. 심리 소설. 전후(戰後) 소설
배경 : 6·25 전쟁 중의 겨울 어느 마을과 눈 덮인 둑길
시간 - 겨울.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기간인 현재에서 출발하여 과거, 미래를 거쳐 총살 직전의 현재.
공간 - 전쟁으로 폐허가 된 어느 마을의 움막과 눈 덮인 대지
경향 : 실존주의 경향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주인공의 자의식이 깊어질 때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보임, 이 작품은 1인칭과 3인칭 전지적작가 시점을 교차시켜 가면서 주인공의 의식 세계와 독백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문체 : 간결체
제재 : 전쟁과 죽음
성격 : 고백적, 실존적, 비극적, 독백적, 비판적
내용 :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을 사용하여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 처형 당하는 인물의 내면 세계를 생생히 그리고 있다. 차디찬 흰 눈의 이미지와 총살 직전이라는 절망적 상황을 주인공의 내면 의식과 일치시키고 있다.
표현 : 의식의 흐름 수법, 일인칭 화자의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고, 현재형에 의한 진술이 중심이다. 그러므로 박진감 있고 현장감 있는 사건 전개를 가능하게 하고 비극적 종말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구성 :특별한 서사적 사건 없이 주인공이 총살 당하기 직전에 유보된 한 시간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회상을 시간의 순차성을 무시한 채 보여 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발단 - 인민군에게 잡혀 총살당하게 된 그의 심리적 갈등이 제시됨
전개 - 북으로 진격했으나 적의 배후 깊숙이 들어가 몇 차례 전투 후에 6명만 남음
위기 - 인민군의 병사 처형 장면을 보다가 자신의 처지라 인식하고 응사하다 부상당함
절정 - 전쟁에 헛되이 죽는 인간 존재의 비극성이 눈 덮인 들판에 주제로 암시됨
결말 - 죽음 직전의 마지막 의식이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조시킴
주제 :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고뇌와 죽음. 전쟁과 죽음이 무의미하다는 실존적 인식, 전쟁의 비극성과 인간 존재의 허무함
인물의 성격 : 이 작품에는 '나'만이 등장한다. 다른 인물들은 '나'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나'의 시각으로 이해되고 제시된다. 이 작품의 '나'는 전쟁의 의미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고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절망하여 전쟁 속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이 같은 인물 유형은 전쟁을 겪은 세대의 공통된 심리적 양상이다.
그 : 이 소설의 화자이며 패주(敗走)하는 낙오병들의 소대장. 비인간적인 참혹성을 독백과 회상 형식으로 담담하게 표현하며 부하를 아끼고 정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전형적인 군인. 포로가 되어 결국 총살당함.
선임 하사 : '그'의 부하로서 극한 상황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함
참고 자료 - 작가의 말 -> 악연(惡緣) — 나와 나의 인물들
나는 자주 수많은 인물들에 둘러싸여 갖은 협박과 희롱과 저주를 받을 때가 있다. 이들은 모두 불우하고 모순에 가득 찬 인물들이다. 전쟁판에서 육체적으로 장애를 입은 자, 정신적으로 장애를 입어 돌아온 자, 비겁한 자, 패기에 찬 젊은이, 거지, 부랑아 등 별의별 족속들이 떼거리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때 나와 호흡을 같이했고, 피를 나눈 사람들이었다. 확실히 이들은 나의 속에서 잉태되어 어느 날 나의 손을 통하여 현실 사회로 떠나갔다. 활자화되어 비로소 생명을 지닌 이들 인물들은 정치적ㆍ경제적 불안 속에 허덕이던 불우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확실히 한때 나만의 나만이 아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독립된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나 이외의 수많은 사람들과 좋건 나쁘건 사귀어 왔다. 나는 인제 그들을 다시 나만의 것으로 주장할 권리를 상실해 버렸다.
이 불우하고 악귀처럼 얽힌 인연, 나는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런 불행하고 불완전한 인물들을 잉태하고 산기(産氣)의 진통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 “현대 한국 문학 전집 7”(신구문화사, 1966
특징
① 시간의 순차적 진행에서 벗어나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 기법을 사용해서 심리적 갈등을 주로 서술함.
② 호흡이 짧은 문장과 현재형 진술을 사용하여 급박한 분위기를 형성함.
③ 시각적 이미지의 대조를 통해 비극성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함.
④ 휴머니즘적 실존주의 경향의 작품임.
줄거리 :
1. 적군에게 체포되어 움 속에 갇힌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현재) - 의식의 흐름 수법 활용
2. 주인공에 대한 적군의 심문(체포 직후의 상황 회상)
3. 한 시간 후에 처형당할 자신의 운명 상상(미래)
4. 죽음의 순간 상상
- 살해자(적군 병사)의 태연함, 비정함
- 붉은 피 : 인간의 생명을 상징하고 그 피를 흘리는 것은 죽음을 의미함.
- 하이얀 눈 : 전쟁의 비극적 상황 제시,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무관심 상징.
- 색상 이미지 대비
5. 죽음의 무의미함과 전쟁의 비극성
6.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현재의 실제 상황) => 발단의 상황 재연
7. 처형 명령을 내린 적군의 지휘 본부(객관 상황의 압축적 제시)
8. 처형 직전의 배경 제시와 주인공의 의지
9. 처형 순간의 상황 - 죽음의 무의미함
10. 인간의 생명을 무의미하게 하는 전쟁의 비극성 - 휴머니즘의 역설적 옹호
인민군에게 잡혀 죽음을 목전에 둔 심리적 갈등, 죽음의 무의미함과 전쟁의 비극성이 '그'의 의식 속에서 반복되며, 지나온 전투 상황과 패주(敗走) 경로가 떠오른다. 그가 인솔한 수색대는 북으로 진격하면서 몇 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적의 배후 깊숙이 들어간 '그'의 부대는 본대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눈 속에 쓰러진 부하들을 버려 둔 채 여섯 명만이 눈을 헤치며 ××지점에 이르렀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로(大路)를 횡단할 때, 돌연 일발의 총성과 함께 누군가 쓰러졌다. 선임 하사였다. 그는 선임 하사를 부축하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이 가까워진 산 속에서 선임 하사는 슬픈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죽어 갔다. 그는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 속을 헤치면서 남쪽으로 걷다가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불안과 절망, 피로와 굶주림, 추위와 고독 속에 일주일째 되던 날 저녁 험한 준령을 넘었다. 인적 없이 황량한 마을. 그는 이상한 발소리를 들었다. 한쪽 벽으로 몸을 피하고 보니 인민군들이 한 청년을 죽음의 둑길로 내몰고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인민군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두 놈이 쓰러졌다. 일순간이 지나자 인민군이 응수를 해 왔다. 반격을 받은 그는 의식을 잃는다. 이후 몇 번의 심문이 있고 모든 것이 결정된다. 몸을 웅크리고 움 속 감방에 쓰러져서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들에게 끌려가 예정대로 남쪽으로 내닿는 둑길을 걷다가 총살된 것이다.그는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자신의 삶을 끝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둑길을 걸어간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지자 자신은 모든 것이 끝났지만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출전 : <한국일보>(1955)
유예(猶豫)[ 망설여 일을 결행하지 아니함, 일을 결행하는 데 날짜나 시간을 미루고 끎소송 행위를 하거나 소송 행위의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을 둠. 또는 그런 기간. 망설여 일을 결행하지 아니함, 일을 결행하는 데 날짜나 시간을 미루고 끎. 소송 행위를 하거나 소송 행위의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을 둠. 또는 그런 기간. / 전향 요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주어진 한 시간 동안을 가리키며, 인간 실존의 의미를 탐구하는 시간이다.]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인간의 의식 세계를 그리는 소설 기법으로 소설 속 인물의 의식 세계를 통하여 인간 존재의 심층에 접근하므로, 인간을 탐구하고자 하는 경우 효과적이다. /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도 의식의 흐름 수법 사용]
작품 개관
이 작품은 포로로 잡힌 국군 소대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시간 동안 그가 느끼는 여러 가지 상념들을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처리하여 생생한 효과를 보여 주고 있는 소설이다.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 작자의 인식적 관점과 표현 기법상의 특징을 살피면서 주제에 접근하는 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연구
작품의 배경 : 전쟁으로 폐허가 된 어느 마을의 움막과 눈 덮인 대지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한겨울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시간 동안 현재에서 출발하여 과거, 미래를 거쳐 다시 총살 직전의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시점의 특징 : 이 작품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지만, 주인공의 자의식의 깊어질 때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뀐다. 주인공이 처한 현재 상황과 그와 관련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긴박감과 함께 인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교차시켜 가면서 주인공의 의식 세계와 독백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순차성은 거의 무시된다.
표현상의 특징 :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시간의 순차적 진행에서 벗어나고 있다.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 그의 의식 속에서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인간 생명의 무가치성 등이 떠오른다.
지도 방법
의식의 흐름 기법에 유의한다. :
문학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는 특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따라서 이 소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해 보고, 당시의 상황을 가상 체험하여 직접 글로 표현해 보면서 다양한 삶의 상황을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인물의 내적 고뇌가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한다. :
타인을 삶을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름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계층의 인물 군상들과 그 행동을 통해 그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느끼고, 그것을 말로 표현해 보도록 한다.
죽음을 대하는 인물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생각한다. :
이 소설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는 장대한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농촌 공동체의 전통적 삶의 양상이 그려져 있음을 주지시키고 당시의 삶의 모습을 문화사 내지 풍속사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학습 활동 풀이
1. 이 소설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주인공이 적들의 회유를 거부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소설을 이해할 때 우선 주인공의 행위와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의식, 현실에 대한 반응과 태도 등을 파악하면서 감상할 필요가 있다. 전쟁에 대한 주인공의 인식과 태도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예시답안 :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 그의 의식 속에는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가치를 상실한 인간 존재의 비극성 등에 대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적들의 회유가 있은 후, 적들은 남쪽으로 뻗은 길을 걸어가라고 하고 뒤에서 총을 겨눈다. 주인공은 이를 모두 알고 있지만 전쟁의 의미에 대해 이미 절망해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눈 쌓인 둑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2) 이 소설에서는 '그것뿐이다.'라는 말이 자주 반복되어 쓰이고 있다. 이러한 표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소설의 구조적 요소로서 표현과 형태의 측면에서 주목할 수 있는 문학적 기법이나 장치가 무엇인지 찾아 낼 필요가 있다. 작품 속에서 문장 반복의 의미성을 작자의 의도와 연결 지어 살펴보도록 유도한다.
예시답안 : '그것뿐이다.'라는 말에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대해 더 이상의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다는 내면 의식이 담겨있다. 이러한 문장을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작자는 비극적인 현실, 즉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에 절망한 주인공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이 소설의 기법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소설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란 작자의 개입에 의한 전지적 해설이나 직접적 언급 없이 작중 인물의 사상과 정서, 그리고 어떤 소설적 상황에 대한 태도 등을 서술하는 기법을 말한다. 작자가 사용한 의식의 흐름 기법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예시답안 :
이 작품의 제목인 '유예(猶豫)'는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하기까지 미루어진 주인공의 죽음의 시간, 곧 '한 시간'의 유보된 시간을 의미한다. 작품의 서사적 공간은 전적으로 그 한시간에 집중되어 그때 느낀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과 과거의 회상으로 채워진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시간의 순서에 따른 전개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즉 작자는 주인공이 행하는 행위나 그가 겪는 사건을 그리기보다는 주인공의 의식 속에 흐르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의 파편들을 그림으로써,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작중 인물 스스로의 생각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 과거의 상황 등은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주관 속에서 철저히 융해되어 주관화된 채로 드러나게 된다.
(2) 이 소설에서 시점의 변화가 나타나는 부분을 찾아보자. 그리고 이렇게 시점을 바꿈으로써 생겨나는 효과에 대해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소설에서는 시점의 변화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인칭 시점의 주관적 성격과 3인칭 시점의 객관적 성격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예시답안 :
이 작품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이 교차되면서 주인공의 의식 세계와 독백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순차성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 3인칭 시점이 사용된 곳은 '나'가 총살당하는 부분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효과가 있다. 반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사용된 곳은 주인공의 자의식이 깊어져 독백하는 부분으로 인물의 내면 심리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쓰였다.
3. 이 소설에서 죽음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와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보자.
(1) 주인공은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를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작품에 나타난 가치 의식을 학생들 스스로 내면화하는 데 있음을 주지시킨다. 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살펴봄으로써 전후 소설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예시답안 :
이 작품에서 '나'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하여 절망하고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계속 남하하다가 아군이 처형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나'는 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동일시하게 된다. '나'는 적과의 전투에서 잡힌 후 처형 당하기 한 시간 전까지의 유예시간을 거치면서, 전쟁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인간 생명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결국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전쟁이 가져온 비극성보다는 자신의 '실존 의지'를 강조한다. 결말부분에서 죽음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이 지니는 마지막 의지의 신념이 죽음을 앞서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고뇌와 실존적 불안 의식은 전후 세대의 공통된 인식이며 심리적 갈등이다.
(2) 토의 토론
자신이 죽게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자.
이끌어 주기 :
죽음에 대한 태도는 결국 삶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학생들 각자가 자신의 인생관, 가치관이 무엇인지 객관화하여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예시답안 :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마무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무조건 죽음의 상황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3) 구성 창작 :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하여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자.
이끌어 주기 :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하여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는 방식이다. 죽음을 통해 삶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특히 편지글의 형식을 고려하여 보내는 이 나름의 생각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교감을 보여 줄 수 있는 글쓰기가 되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소설 '유예'의 주인공에게
당신의 죽음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한 당신의 삶이 인상적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당신이 그처럼 죽음을 택하게 되었던 것은 결국, 어떤 극한적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당신의 의지 때문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당신의 죽음을 당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삶의 방식으로서 선택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어쩌면 자기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저버리고 비굴하게 살아남는 것이 오히려 비생명의 상태, 곧 죽음의 상태가 아닐까요. 그러므로 반대로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실존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당신의 태도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삶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유예'라고 이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당신은 반대로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을 뒤로 미루어 놓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신처럼 그렇게 강인할 수 있을지 아직 썩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당신처럼 그렇게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내 삶이 더럽혀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죽어서도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미 죽은 당신에게 이렇게 부칠 수도 없는 편지를 쓰는 까닭은, 나 역시 언제 돌아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에서입니다. 제가 이런 다짐을 하고 있는 것도 당신 삶의 한가지 보람이 되겠지요?
이런 생각들을 하게 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년 월 일
이 작품은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된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포로로 잡힌 국군 소대장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시간 동안 그가 느끼는 여러 상념들을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처리하여 생생한 효과를 얻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행위는 둑을 걸어가면서 등 뒤에서 총살을 당하는 것뿐이며 그 동안 벌어진 시간 역시 총살당하기 직전 1시간 동안의 유예에 불과하다. 따라서 총살 직전이라는 절망적 상황과 그 속에서 떠오르는 내면적 의식을 잘 포착하고 있다. '유예'는 전쟁으로 인한 상흔(傷痕)을 다룬 전쟁 문학적 성격도 지니는데, 주인공의 강력한 행동 의지로 말미암아 오상원의 문학 세계의 특징을 행동적 휴머니즘 문학이라고 평가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제목 '유예'의 의미: 인민군 포로가 되어 총살당하기 직전까지의 한 시간의 짧은 목숨을 의미하고, 색깔의 대비: '붉은 피'는 '인간의 생명'을, '하이얀 눈'은 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냄. 두 이미지를 대조시킴으로써 주인공이 총살당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더 비극적으로 선명히 제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여기서 짧은 문장이 '죽음'이란 상황 전달에 주는 효과: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와 단절된 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오상원은 이른바 전후 문학파(戰後文學派)에 속하는 작가이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전쟁에 휘말려 무의미하게 희생되는 인간의 생명, 그로 인하여 파괴되는 개인적 삶 등으로서, 휴머니즘을 돋움으로 한 작품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후 세대가 놓여 있던 회색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 속에 팽배했던 허무의식을 그려 내는 데도 관심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인간 생명과 삶을 옹호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특히, {모반(謀反)}과 같은 작품에서는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 때문에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혼란기의 오도(誤導)된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서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가 정신을 보여 준다.
"유예"도 이러한 문학 정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 그의 의식 속에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가치를 상실한 인간 생명 등에 대한 생각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이 처한 현재 상황과 그와 관련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긴박감과 함께 인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눈'의 의미이다. 흰 눈은 총살당해 흐르는 붉은 피와 시각적으로 대조가 되면서,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비극성이 더욱더 강조되게 한다. 몇 사람이나 걸었을 흰 둑길은 그 위에서 몇 명이 죽어 나갔든지 간에 변함 없이 하얗다. 나는 이러한 흰 눈 속을 걸어가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흰 눈은 총살 직전의 나의 절망적 상황을 강조하면서 그 차가운 순백의 이미지는 전쟁으로 인하여 인간 생명의 중요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차디찬 무관심의 세계를 상징한다. 흰 눈의 이미지는 인간이 하나의 전쟁의 도구가 되어 버리고 만 비극성을 강조하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교차시켜 가면서 주인공의 의식의 세계와 독백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순차성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을 '의식의 흐름'이라 한다.
이해와 감상2
<유예(猶豫)>는 오상원이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포로로 잡힌 국군 소대장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시간 동안 그가 느끼는 여러 상념들을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처리하여 생생한 효과를 얻고 있다.
오상원은 이른바 전후 문학파(戰後文學派)에 속하는 작가이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전쟁에 휘말려 무의미하게 희생되는 인간의 생명, 그로 인하여 파괴되는 개인적 삶 등으로서, 휴머니즘을 돋움으로 한 작품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후 세대가 놓여 있던 회색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 속에 팽배했던 허무의식을 그려내는 데도 관심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인간 생명과 삶을 옹호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특히, <모반(謀反)>과 같은 작품에서는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 때문에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혼란기의 오도(誤導)된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서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가 정신을 보여 준다.
<유예>도 이러한 문학 정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 그의 의식 속에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가치를 상실한 인간 생명 등에 대한 생각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이 처한 현재 상황과 그와 관련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긴박감과 함께 인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교차시켜 가면서 주인공의 의식의 세계와 독백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순차성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출처 : 문원각)
이해와 감상 3
오상원의 대표작이자 등단작인「유예」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작품은 총살을 앞둔 국군포로의 의식의 흐름을 세밀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처럼 극한 상황과 대결하는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상원은 이런 인물들을 통해 극한 상황일지라도 죽음과 정면으로 맞설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인 가치관을 표현해낸다. 이 책은 오영수와 오상원의 대표작품들을 묶어놓았다. 이 땅의 신문학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기획의 일부이다. 오영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아주 개성 있는 단편을 썼고 오상원은 6·25 전쟁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오영수는 특이하게도 지방색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토착적인 한국인의 정서와 풍경을 간결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내었던 오영수는 결국 그 지방색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에 호된 비판을 받고 문단을 떠났다. 표제작이자 그의 대표작인「갯마을」은 향토색 짙은 분위기 속에 갯마을의 풍경을 거의 산문시에 가까운 문장으로 리얼하게 그려낸다.
오상원의 대표작이자 등단작인「유예」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작품은 총살을 앞둔 국군포로의 의식의 흐름을 세밀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처럼 극한 상황과 대결하는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상원은 이런 인물들을 통해 극한 상황일지라도 죽음과 정면으로 맞설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인 가치관을 표현해낸다.
이해와 감상 4
오상원은 앙드레 말로의 영향을 받아 대체로 행동주의 옹호의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는 전쟁이나 전후 혼란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다.
이 작품은 오상원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이다. 그만큼 오상원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이렇다할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다. 사건 대신 이 소설을 채우고 있는 것은 주인공의 회상과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이다. 작자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소설 수법을 사용하여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 처형당하는 국군 소대장의 내면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총살을 앞에 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이며 죽음은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인가를 이 작품의 화자인 '나'를 통해서 계속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화자로서의 '나'만이 등장한다. 다른 등장 인물들도 있으나, 그들은 대개 '나'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전쟁의 의미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고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절망하여 전쟁 속에서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실존주의와 관련된 전후의 인간관,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출처 : 박갑수 외 2인저 지학문학교과서)
이해와 감상 5
이 작품은 전쟁터에 내몰린 한 인간이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 총살을 앞두고,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기간 동안에 느낀, 존재의 고뇌와 실존적 불안 의식을 의식의 흐름 수법을 통하여 생생하게 그려 낸 소설이다.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의 그의 의식 속에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가치를 상실한 인간 생명에 대한 생각의 단편들이 줄지어 나타나는 것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주인공이 처한 현재적 상황과 그와 관련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긴박감과 함께 의미를 상실한 인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의식을 통해 전재의 비인간성, 즉 인간 생명이 무의미하게 내팽개쳐지는 비극적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유예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보여 주는 ‘의식의 흐름’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극한 상황에서의 ‘의식의 흐름’을 치밀하게 그려 낸 작품이다.
주인공은 수색대의 소대장이다. 적의 배후로 침투했다가 본대와의 연락이 끊겨 고립되었다. 추위와 굶주림, 고립감과 싸우며 활로를 찾아 고투하지만 길은 열리지 않는다. 병사들은 하나 둘 쓰러지고 마침내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고 눈이 함빡 쌓인 둑길 위에서의 처형만이 남아 있다.
움 속에 갇혀 처형당하기까지의 ‘유예’의 시간 동안 주인공의 의식은 투명하게 깨어 있어 끝끝내 자신의 실존을 놓치지 않는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 초, 일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잊지 않으려는 이 같은 안간힘은 ‘싸우다 끝내 죽는 것, 그것뿐이다. 그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위한다는 것, 무엇을 얻기 위한 것, 그것도 아니다. 인간이 태어난 본연 그대로 싸우다 죽는 것, 그것뿐’이라는 허무의 사상을 동반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것도 무엇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다만 인간의 본성을 따라 무목적의 싸움을 하다 죽는 것이라는 허무 사상의 중심은 끝내 놓칠 수 없는 자신의 실존이다.
한편 주인공의 이 같은 허무와 실존의 사상은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에겐 평범한 일들이다. 나만이 피를 흘리며 눈을 움켜쥔 채 신음하다 영원히 묵살되어 영원히 묻혀 갈 뿐’이라는 역사에 대한 깊은 적의와 맞붙어 있다.
‘유예’란 실존주의 철학의 개념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한 주체적 선택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어떤 인간을 그로서 규정짓는 것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역사적 상황이나 성장 배경 또는 무의식의 심층 같은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라는 것이 실존주의의 기본 입지이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사르트르의 초월성이란 개념은 이 같은 선택(기투)에 의한 현 상황의 극복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선택에 의해서 끊임없이 현 상황을 넘어 초월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선택과 선택에 의한 초월이 지속되는 한 그는 죽음으로부터 ‘ 예’되어 존재한다. 자유 의지를 상실하고 선택을 포기하는 순간 그는 마치 책상이나 돌멩이 같은 즉자(卽自), 곧 사물의 상태에 떨어져 존재하기를 멈출 것이다.
그러니까 ‘유예’의 주인공이 의식하는 ‘유예’란, 확정되어 있는 죽음을 앞둔 잠깐의 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비록 죽음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내적으로는 자유 의지로써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전쟁의 한복판이기에 개개인의 그 같은 실존적 선택은 외부 세계의 폭력적 개입에 의해 현실화되지 못하고 압살당한다. 외부 세계의 폭력에 압살당하지만 그럼에도 자유 의지에 의한 실존적 선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폭력적인 외부 세계에 대한 강한 적의의 드러냄이기도 한데, 앞에서 살핀 바 주인공의 역사에 대한 깊은 적의는 이 측면에서도 살필 수 있다.
실존 의지 드러내는 긴장된 호흡의 간결체
‘유예’는 주인공의 일관된 의식을 문제 삼는 작품이기에 당연하게도 여기에는 대립이나 갈등이 끼어들지 못한다.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북한군의 회유가 있지만 주인공이 그 같은 회유에 맞서지도 흔들리지도 않기 때문에 그것이 대립이나 갈등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작품 구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바로 앞에 닥쳐온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절박한 상황 속을 꿰뚫는 단호한 실존 의지에 대응하는, 단문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긴장된 호흡의 간결체가 이 작품의 문체적 특성이다.
‘유예’는 맹목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이 압도적으로 군림하고 있던 전후 소설 일반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역사에 대한 깊은 적의를 돋움으로 한 허무와 실존의 사상은 또한 우리 소설사상 처음 제기된 것이니 이 점에서도 이 작품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정호웅, ‘역사에 대한 허무와 실존’] - 중앙M&B 편집부, “한국 대표 중단편 소설 50 1??”(중앙M&B, 1997)
실존주의
제1차 세계 대전 후 독일에서 주창되기 시작한 철학상의 현대적 운동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급격히 파급되어 차차 전 유럽의 철학적 전통의 돋움이 되었다. (중략)
모든 실존주의자들의 관심은 존재의 문제인 본체론(本體論, ontology)에 있으며, 그 출발점은 인간 의식과 심리 과정(mental progress)에서 비롯된다. 실존주의자들은 선험적인 본질이 인간이나 대상의 개별적인 존재보다 선행하고 우월하다고 믿는 전대(前代)의 철학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고 믿는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인간이 자아(自我, self)를 갖고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시점까지 이룩한 생의 총계일 뿐 무(無, nothing)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無)는 인간이 언제라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 자유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하며 실존 철학은 본질보다 실존의 우위성(優位性)을 강조하고 보편보다 개체를 중요시하는 철학인 것이다. 자아(自我)는 오직 자신의 자각적 선택과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서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존재인 것이며, 그럼으로써 자신이 자신의 존재에 본질을 부여하는 것이다. 실존은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과 자각을 가지며, 또한 행동의 자유를 갖는 동시에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실존은 자각ㆍ자 ㆍ선택ㆍ책임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ㆍ추상적 사고를 배격하고 주체적ㆍ실존적 사고를 중시한 키에르케고르와 같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객관주의 철학이 아니라 주체적 자각과 결단 그리고 실천을 강조하는 행동의 철학이다. (중략)
한국 문단에서는 1950년대 전후 문단의 비평에서 인간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놓고 실존주의의 개념이 소개되기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 문학의 사회 참여 문제가 쟁점으로 대두되자 사르트르의 행동적 철학과 참여 의식이 논리적 근거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 권영민, “한국 현대 문학 대사전”(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오상원(吳尙源 1930-1985)
1930∼1985. 소설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49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53년 극협의 작품공모에 응모한 장막극 〈녹쓰는 파편(破片)〉이 당선되었고,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유예 猶豫〉가 당선됨으로써 작가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어 같은 해 〈균열 龜裂〉이 ≪문학예술 文學藝術≫ 8월호에 발표되었다. 그는 계속하여 단편 〈난영 亂影〉(文學藝術, 1959.9.)과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 〈모반 謀反〉, 장편 〈백지의 기록〉(思想界, 1957.5.∼12.), 그리고 중편 〈황선지대 黃線地帶〉(思想界, 1960.4.) 등을 발표하였다.
이 작가의 문학적 특징은 6·25 전후 세태의 사회적·도덕적 문제를 다루어 전후 세대의 정신적 좌절을 행동주의적 안목으로 주제화한 데 있다. 잘 알려진 단편 〈모반〉은 광복 직후 사회적·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서, 정당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청년 당원들 사이에 자행된 테러를 주요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민이 “위대(?)한 하나의 일의 성공보다는 나는 오히려 소박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이 하나라도 더 소중스러워졌단 말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주인공의 인간주의적 각성이 주제임을 알게 된다.
이 작가는 프랑스 행동주의문학과 실존주의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면서, 한국의 전후 세대의 풍토 속에서 독자적인 작품을 이루어 1950년대의 대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밖에 〈피리어드〉(知性 夏季號, 1958)·〈내일쯤은〉(思想界, 1958.7.)·〈부동기 浮動期〉(思想界, 1958.12.)·〈보수 報酬〉(思想界, 1959.5.)·〈표정 表情〉(思想界, 1959.8.)·〈현실 現實〉(思想界, 1959.12.) 등이 있다. 미완성의 장편으로는 〈무명기 無明記〉(1961.8.∼11.)가 있다.
그 밖에 〈훈장 勳章〉(世代, 1964.1.)·〈암류 暗流〉(世代, 1964.9.)·〈거리 距離〉(思想界, 1964.9.)·〈담배〉(思想界, 1965.2.〉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앙드레 말로와 행동주의문학〉(文藝, 1960.6.)이 있다. ≪참고문헌≫ 傷處받은 世代의 後日譚(廉武雄, 現代韓國文學全集 7, 新丘文化社, 196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예"에서 제목과 '흰 눈'이 갖는 의미
이 작품의 제목인 '유예(猶豫)'는 포로가 되어 총살 당하기 직전의 한 시간을 의미하며 동시에 주인공이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의미한다. '흰 눈'은 이 작품 전체의 배경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소재로 총살 직전의 냉혹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제시하면서 인간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얗고 차가운 눈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이 강조되고 있다.
'유예'의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주변 환경에 대한 객관적 묘사나 서사와 묘사를 철저하게 서술자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 진행해 감으로써 주인공의 시선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소설 속에 묘사된 자연 환경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주인공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증폭시키는 상징적 기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전후 문학 중에서도 시기적으로 단연 선구적인 작품으로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 중 이색적으로 전쟁 이야기 그 자체의 성격보다는 전쟁 속에서의 인간의 의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당대 국내의 집중적으로 유행했던 실존주의적 휴머니즘 사상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흔적이 매우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소설의 기법적 특징
1. 심리주의적 리얼리즘
심리주의적 리얼리즘은 무엇보다도 주관적 내면 세계를 그리는 작품 경향으로서, 제임스(Henry James)가 말하는 '마음의 분위기', 프로스트가 말하는 '마음의 간헐(間歇)'을 나타낸다. 흔히 제임스의 말을 빌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표현으로 이 경향을 설명하는 바와 같이, 심리주의 소설이란 곧 객관적 외부 세계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이 소용돌이치는 내면 세계(內面世界)를 그리는 소설을 뜻한다. 어떤 사람은 의식 속에 뛰어드는 잠재 의식과 무의식의 단편을 그리기 때문에 차라리 '무의식(無意識)의 흐름'이라고 표현했어야 옳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논리적 시간 관념은 깨지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뒤섞여 튀어나오기 때문에, 자연주의 소설(自然主義小說)에서 보던 플롯이라든지 스토리가 거의 없고, 험프레이의 '현대소설의 있어서의 의식의 흐름'에 의하면, '의식의 몽타주(montage)'를 꾀할 뿐이다.
라르보(Valery Larbaud)가 듀자딘의 작품 '월계수는 베어지다'의 재판 서문에서 처음으로 썼다는 '내적 독백(內的獨白)'도 심리주의 소설의 특징인데, '의식의 흐름'과 비슷하지만 꼭 같은 것은 아니다. 내적 독백은 셰익스피어 극의 독백(soliloquy)이 의도하고 있는 것처럼 심리(心理)의 내부에서 소리 없이 하는 독백(monologue)으로서, 작자는 나레이터의 개입과 설명이 전혀 없으며, 비시간적(非時間的), 비논리적(非論理的)인 것이 특징이다. 근대 소설 작가 중에 '적(赤)과 흑(黑)'의 스탕달이라든지 '죄와(罪)와 벌(罰)'의 도스토예프스키 등도 인간심리의 묘사와 주인공의 심리적 독백을 아주 잘 쓰고 있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작자의 개입과 설명이 따르고, 특히 논리적인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이스나 프로스트의 그것과 다르다. '율리시즈' 마지막 장에 나온 부룸(bloom)부인의 끊임없는 내적 독백은 유명하며, '델러웨이 부인'이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음향과 분노'에 나타난 의식의 흐름은 너무나도 이름나 있다. 그리고 슐리얼리즘(sur-realism)시(詩)에서 널리 쓴 '자동기술(自動記述)'은 프로스트의 작품 등 현재 속에 뛰어드는 과거의 이미지와 단절(斷折), 즉 '마음의 간헐(間歇)'을 리얼리즘의 수법으로 포착하고 있어, 심리주의 소설의 또 하나의 기법(技法)을 이룬다.
2. 실존적 상황 소설
상황 소설(situation novel)의 작가로는 카프카(Franz Kafka)를 위시하여 사르트르(sartre), 카뮈(Camus) 등을 들 수 있다. 카프카는 '변신', '어느 개의 고백', '시골 의사', '굶는 광대' 등의 단편과, '심판', '성', '아메리카' 등의 장편을 쓴 체코 출신의 유태인 작가로서, 그의 반 자연 주의적(反自然主義的)이요 표현주의적(表現主義的)인 작품 경향은 너무도 유명하다. 특히 카프카는 인간의 실존주의(實存主義)적 한계상황(限界狀況)에 처하게 하여 거기에서 보이는 인간의 반응을 매우 실험적으로 관찰한다. '변신'에서는 주인공이 하룻밤 사이에 벌레로 변모된 극한 상황을 설명하고, 인간이란 얼마나 에고이스트적인 존재인가를 탐구하고 있다. '심판'에서는 주인공인 요젭 K로 하여금 갑자기 정신적, 심리적인 체포 상태에 놓이게 하여, 그 불법의 처사를 시정하고 감금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법(法)에도 호소하고 목사에게도 간청하는 등 별별 수단을 다하지만 결국은 개처럼 끌려가서 죽음을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은 처음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숙명적 존재로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주어진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비극적 주제 의식을 엿보인다. '성'의 경우에는 인간이 절대자를 추구하고 신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되 끝내 갈 수 없다는 실존적인 인간 조건을 주제화하고 있어 매우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고 철학적(哲學的)인 존재 문제를 다루고 있다. 토목기사(土木技士)로서 부름을 받은 K가 성으로 가는 길을 백방으로 찾고 가까이 가려고 하지만 결국 성 밑에 있는 마을에서 빙빙 돌뿐 속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다분히 인간의 한계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프카의 소설은 대개 존재의 문제를 추구하는 상징 소설(象徵小說)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변신'에서 인간의 고독과 소외감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성'에서도 성과 마을은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은 단절된 세계로서 그려지고 있어, 더욱 인간의 존재란 단독자로서의 그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르트르의 '구토'나 '벽', '자유에의 길'에도 나타나 있고, 카뮈의 '이방인'과'페스트'에도 어느 정도 구현되어 있다. 이 두 작가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부조리(不條理)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뒤에 전자는 참여(engagement)라고 하여 사회와 정치 현실 속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후자는 부조리에 대한 반항을 작품화하였다.
또 말로(Andre Malraux)도 '인간 조건', '정복자', '왕성(王城)의 길' 등을 통해서 '인간은 행동의 총화' 라는 그의 주제를 발표하여 소위 행동주의 문학을 전개하였는데, 이것도 하나의 상황 문학(狀況文學)이라고 할 것이다. (출처 : 구인환 구창환 공저, '문학개론')
작자의 작품 세계
오상원은 이른바 전후 문학파(戰後文學派)에 속하는 작가이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전쟁에 휘말려 무의미하게 희생되는 인간의 생명, 그로 인하여 파괴되는 개인적 삶 등으로서, 휴머니즘을 돋움으로 한 작품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후 세대가 놓여 있던 회색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 속에 팽배했던 허무의식을 그려내는 데도 관심이 있었지만 ,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인간 생명과 삶을 옹호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특히 '모반(謀反)'과 같은 작품에서는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 때문에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혼란기의 오도(誤導)된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서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가 정신을 보여준다. '유예'도 이러한 문학 정신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 (意識 ── : stream of consciousness)
소설에서 사용되는 서술기법의 하나로 개인의 의식에 떠올라 그의 이성적 사고의 흐름에 병행하여 의식의 일부를 이루는 시각적·청각적·물리적·연상적·잠재의식적인 수많은 인상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sychology〉(1890)에서 처음 썼다. 20세기에 심리소설이 발전하면서 일부 소설가들은 이성적인 사고에만 국한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 전체를 포착하고자 했다. 풍부하고 빠르며 미묘한 사고의 활동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단속적이고 일관성 없는 생각들과 비문법적인 구문, 언표(言表) 이전 단계에 속하는 사고, 심상, 언어의 자유연상 등을 도입했다.
의식의 흐름 소설은 일반적으로 내적 독백의 서술적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 예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Ulysses〉(1922)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인 레오폴드 블룸, 몰리 블룸, 스티븐 데들러스의 내적 상태를 복잡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그밖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일찍이 의식의 흐름을 사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 전의 빈의 분위기를 재현한 작품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구스틀 대위 Leutnant Gustl〉(1901)와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1929)가 있다. 〈음향과 분노〉는 콤슨가(家)의 세 사람의 의식 속에서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는 여러 사건에 대해 일어나는 단편적이고 인상적인 반응들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현대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하나의 서술 기법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단순한 기법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 방식이나 세계관과 같은 문학의 본질적 문제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수법을 최초로 개척한 것은 헨리 제임스이며, 그는 한 사람의 의식을 통하여 그 인물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도록 작품을 창작했고, 그 인물을 그는 '초점', '거울' 혹은 '의식의 중심'이라고 불렀다. 이 기법이 사용된 소설에서는 작품 속의 모든 내용이 한 인물의 의식(즉, 그의 사상과 감정과 기억과 감각)에 부딪힐 때에만 독자들에게 제시된다. 그러므로 논리적 인과 관계가 없는 담화들이 내용 속에 뒤섞이며, 문체적 양상은 호흡이 급박하며, 작품 전체가 플롯의 발전이라든가 사건의 진전, 인물의 형상화 같은 소설의 전통적 서술 방식으로 기술되지 않는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유예'에서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여러 차례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이러한 반복은 무의미한 반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작중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적절히 포착한 것으로, 죽음 앞에 직면한 인물의 강박관념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예"가 갖는 세 가지 의미
"유예"는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서 오상원을 소설가로 등단시킨 작품이면서 동시에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유종호 교수는 오상원 문학에 있어서 "유예"가 갖는 의미를 다음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첫째, 주인공 '나'가 자신이 놓인 상황과 위치를 명료히 파악함으로써 '의식적 인물'의 전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적 인물은 오상원 문학의 어떤 기본적 패턴을 이룬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위기적 극적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문학의 기본적 정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전쟁을 정치와 일정한 관계하에서 파악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개념으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지적을 염두에 두고 "유예"를 읽어 보자.
이 작품에는 인민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국군 수색대 소대장 '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법과대학 출신으로 인텔리 청년인데 인민군 조사반장은 그에게 사상 전향을 강요한다.
소속 사단은? 학벌은? 고향은? 군인에 나온 동기는?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미국에 대한 감정은? 그럼... 동무의 말은 하나도 이치에 정치 않소. 동무는 아직도 계급 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소. 출신 계급을 탓하지는 않소. 오해하지 마시오. 그 근성이 나쁘다는 것뿐이오.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겠소. 한 시간 후, 동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 지을 거요.
그는 한 시간의 유예를 받고 다시 수감된다. 그는 수감된 그 어두운 공간에서 자신이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회상한다. 여기에서 시점이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의 의식의 추적과정을 보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기술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로 보인다. 그가 수감되어 있는 한 시간은 만약 그가 사상 전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지상에서 그에게 남은 최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절제절명의 순간에 그는 자신이 인솔하던 수색대의 선임하사를 생각한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징집되어 갔다가 팔로군으로, 다시 국부군으로 전전하면서 숱한 전쟁을 치른다. 그리고 해방 후 국군에 들어와 6.25의 현장에서 숨을 거둔다.
사람은 서로 죽이게끔 마련이오. 역사란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 온 기록이니까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오? 난 전투가 제일 재미있소. 전투가 일어나면 호흡이 벅차고 내가 겨눈 총구에 적의 심장이 아른거릴 때마다 나는 희열을 느낍니다. 그 순간 역사가 조각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거든요. 사람이란 별게 아니라 곧 싸우다 쓰러지는 것을 의미할 겝니다.
그에겐 죽고 죽이는 과정이 인간의 삶의 모습으로 인식된다. 거기엔 아무런 비애도 슬픔도 고독도 없다. 그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 상황과 현실 상황에 충실했을 뿐이며 자신의 죽음조차 객관적 상황으로 지극히 담담히 수용한다. 주인공 '나'가 그 선임하사를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는 분명치 않다. 선임하사마저 죽어 버리자 살아 남은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가 마주친 상황은 절대 고독, 바로 그것이었다.
밤이면 눈 속에 묻혀서 잤다. 해가 뜨면 또 걸어야 한다. 계곡, 비탈, 눈에 쌓인 관목숲, 깎아 세운 듯 강파르게 솟은 산마루, 그는 몇 번이고 굴러떨어졌다. 무릎이 깨어지고 옷이 찢어졌다. 피로와 기아, 밤이면 추위와 더불어 고독이 엄습한다. 악몽, 다시 뒤덮이는 악몽, 신음 끝에 눈을 뜨면 적막과 어둠뿐. 자주 흩어지는 의식은 적막 속에 영원히 파묻혀 간다.
적과의 싸움, 자연과의 싸움,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 일주일 동안의 이 무시무시한 싸움을 치러 낸 뒤 한 마을을 발견하고 내려와 보니 그를 휩싸는 것은 황량함뿐이었다. 그토록 인간이 그리웠건만 막상 인기척을 느끼자 또다시 인간이 두려워진다.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것은 황폐함과 불신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마을에서 국군 패잔병으로 보이는 사람을 사살하려는 인민군들을 쏘고, 그는 포로가 된다. '나'는 결국 한 시간의 유예 후 앞서 수많은 국군이 사살되었듯이 죽어 간다. "유예"는 전쟁의 현장에서 극적인 한 순간을 포착하여 의식의 단면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상황적 배경과 의식의 흐름
소설에서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한 작중 인물의 정신을 스치는 인상의 무계획적이고 명백히 비논리적인 흐름을 기록하려는 기술 방법으로서, 소설의 외면적인 줄거리의 발전보다 인물의 내적 독백에 중심을 두고 인간의 복잡한 의식을 보여 준다. '유예'는 배경이 전장의 비논리적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응하는 내면의 의식 역시 단절적이며 비논리적으로 그려 낸 것이다.
작가는 사건을 일인칭 화자의 독백 형식의 현재형에 의한 진술을 통해 진행시킴으로써 작품의 템포를 박진감 있게 전개시키고 있으며, 장면화된 사건 전개와 죽음 직전에 스토리를 끝맺는 방식을 통해 비극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처럼 화자의 의식과 서술이 일치함으로써 화자와 주변 인물의 대화는 화자의 의식 속에서 재편성되어 간접 화법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묘사도 객관적이기보다는 화자가 바라본 주관의 세계, 즉 의식 속에서 재구성된 세계를 대상으로 삼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전쟁의 극한 상황성과 의식 과잉의 인간이라는 두 측면이 결합된 작품 구조야말로 전쟁의 비극성을 문학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서술 및 문체
이 작품은 철저하게 일인칭 화자의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인칭 시점의 경우 과거 회상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작품은 현재 상황의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 즉, 전쟁 상황 속에서 한 인물이 겪는 경험과 그 속에 명멸하는 생각들을 서술해 나가는 의식의 흐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현재형에 의한 진술은 박진감 있고 현장감 있는 사건 전개를 가능케 하며 비극적인 종말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아울러 이 작품은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화자와 주변 인물의 대화는 화자의 의식 속에서 재편성되어 간접 화법으로 진행된다. 묘사 역시 객관적이기보다는 화자가 바라본 세계이며 그의 의식 속에서 의미가 재편성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화자의 의식의 과잉은 실제 비극적인 전쟁의 이야기보다는 전쟁 속에서의 인간의 의식을 드러냄이며, 그러한 의식을 통해 비극적 의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수난 이대'와 '유예'에 나타난 인간에 대한 관점의 차이
'수난 이대'는 구한말부터 6.25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민족의 수난을 아버지와 아들의 불행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유예'가 인간의 보편적 실존의 국면을 문제삼은 데 비해, '수난 이대'는 민족의 아픔을 우리의 시각에서 그려 내고 있다. 서술 방식도 전자가 현대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면 후자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인물의 성격화
소설에서 인물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방법을 흔히 성격화(characterization)라고 부르며, 잘 알려진 것으로는 말하기(telling)와 보여 주기(showing)가 있다. 전자는 직접적 또는 분석적 방법이라고도 하는데, 작가가 인물의 언행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그 결과를 설명하고 때로는 비평을 하기도 한다. 후자는 간접적 또는 희곡적 방법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인물의 언어, 행위에 의하여 성격을 현시(顯示)하거나 그 인물에 대한 다른 사람의 비평을 첨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나은가를 한 마디로 단언하기는 매우 어렵고, 인물로 하여금 우리들의 상상 세계에서 실재의 인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진실하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 성격화의 요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점과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는 성격화는 전지적 시점보다는 객관적 시점이 선호되는 추세에 따라 보여 주기의 방법이 현대 소설로 올수록 보다 많이 목격되는 것도 사실이다.
관례적으로 성격화에 관여하는 요소로서 주목되어 온 것은 외모, 동작, 제스처, 버릇, 말씨, 타인에 대한 행동이나 자신에 대한 태도, 타인들의 반응, 환경, 과거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 작명법(naming)도 의외로 중요하여 경제적인 성격 묘사에 기여함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현대 소설의 경우 영화의 몽타주 수법에 상응하는 의식의 흐름 또는 내적 독백은 인물 제시의 전통적 방법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 서울대학교 국어 교육 연구소, “국어 교육학 사전”(대교출판, 1999)
우리 나라 '전후 문학'과 작가
전후 소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삶의 상황과 문제들을 다룬 소설을 지칭한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허무, 기존의 모랄에 대한 반항 등이 흔히 취급되는 제재들이다. 한국 문학에 있어서 전후 소설은 6.25 전쟁 이후 나타나게 된다. 한국의 전후 소설은 전후의 상황에서 비롯된 허무주의와 실존적 불안감을 근거로하여 출발한다. 즉, 기존의 전통적 모랄에 대한 부정 의식과 극도의 불안과 허무주의가 나타난다. 여기에 서구의 '분노한 젊은이(Angry younng man)'나 '비트 세대(Beat Generation)', 실존주의 등이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장용학의 '요한 시집', '비인 탄생', 손창섭의 '비 오는 날', 서기원의 '이 성숙한 밤의 포옹', '암사 지도', 이범선의 '오발탄'등은 그 대표적 양상들이다.
우리 나라 '전후 문학'의 개관
(1) 시대적 배경 : 1950년 6 25에서 1953년 7 27 휴전까지의 한국 전쟁은 수많은 막대한 전비(戰費)의 지출로 끝이 났다. 이런 물량적인 손실을 차지하고서라도, 동족 상잔의 비극은 문인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가하였다.
(2) 문학사적 특징 및 의의
문학사적 이념 : 전쟁으로 인한 인간 상실의 역사를 체험함으로써 이를 회복하기 위한 휴머니즘 문학을 옹호하였다.
문학사적 특징과 경향 : 인간적인 가치의 파괴자인 전쟁에 대한 엄청난 체험을 문학에 투영하였으며, 전쟁을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했던 문명에 대해 비판하였다.
문학사적 의의 : 문학의 목가적 타성을 타파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으며, 세계 인식의 방법이나 태도, 감수성에 있어서 커다란 정신적인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또한 주제를 심화시키고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였다.
우리나라 '전후문학'의 특징
전후 문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전개되었던 문학 현상을 뜻한다. 간혹 1차대전 후의 문학에 대해서도 이 말을 적용시키기도 하지만, 보통 2차대전 이후의 문학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즉 전후 문학은 1945년에서 1950년대 초까지의 문학을 포함하지만, 한국 문학에서 전후문학의 위치는 6.25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문학 세대에 의해 형성된 문제성 있는 작품을 지칭한다. 한국의 전후파 문학은 외국의 경우와 달리 한국적 숙명에 의한 전체적인 고통을 어떠한 각도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민족적 고뇌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구의 전후 작가들이 관심을 두었던 요인은,
첫째, 극한적 상황에 대치한 인간의 자세,
둘째, 삶의 원형에 대한 탐색,
셋째, 단절된 인간 관계에서 절망하는 인간 등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전후 문학은 서구 전후 문학과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서구 전후 문학이 생명에 대한 탐구, 기존 윤리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항정신에 근거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전후 문학은 이 땅에서 겪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잃어 버린 모든 것에 대한 향수와 자아상실의 허탈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전후 문학은 기성 사회 계급에 대한 저항이라든가, 퇴폐적이며 향락적이고 감각적인 데카당스의 병적인 경향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학에서는 6.25 이후 사회의 부정적 상황과 불의에 대한 고발정신이 선행되었고, 자아에 대한 생존 양상의 번뇌가 중심이 되었다.(출처 : 김윤식 교수의 소설 특강)
실존주의문학(實存主義文學)
1940∼50년대 프랑스에서 전개된 문학 경향의 하나. 존재의 부조리성에 대한 의식(존재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하여 자기의 본질을 완성시키기 위해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하며, <상황(situation)> 속에서 역사나 사회에 <참가(engagement)>하면서 그 상황을 인식, 극복하여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려는 인간을 묘사하려고 하는 문학이다. 실존의식을 돋움으로 하는 문학은 이전부터 있었으나(C.P. 보들레르·G. 모파상·F.M. 도스토예프스키·F. 카프카 등의 작품), 인간의 한 새로운 생활방식으로서 실존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제 2 차세계대전 뒤의 J.P. 사르트르·A. 카뮈·S. 보부아르 등의 문학이었다. 이와 같은 문학의 발생 계기가 된 것은 20세기 전반에 거듭되었던 전쟁과 동란이었다. 특히 제 2 차세계대전에 의해 인간은 자기의 개성과 본질 및 그것들이 형성하는 자유가 역사·사회 및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신이 본질을 만든다고 하는 종래의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본질에 선행하는 <존재(存在)>, 즉 <즉자(卽自, en soi;단순히 존재함)>에서 <대자(對自, pour soi;존재함에 대한 의식)>로 이행하는 <존재>를 중심명제로 한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문학〕
사르트르는 처음에 예술로 존재를 완벽하게 하려고 생각했으나, 전쟁체험을 통하여 진정한 자유의 획득과 함께 진정한 존재의 완성은 역사·사회 및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획득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장편소설 《구토(1938)》에는 실존의식을 자각한 인간이 소설을 쓰는 일(예술)로 생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단편소설 《벽(1937)》에서는 인생을 선택할 수 없고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서의 존재하는 인간을 그렸다. 희곡 《파리떼(1943)》에서는 자기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행동에 의해 자기를 판정하는 인간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실존주의문학이 사회참여의 문학인 이상, 작가는 서재에서의 고독한 창작활동에만 머무르는 일을 중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정치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르트르는 사회·정치·시사 문제(헝가리사건·알제리문제 등)에 정면으로 부닥쳤다. 그러한 참여를 통하여 정치에서의 목적과 수단을 묘사한 희곡 《악마와 신(1951)》 등의 작품을 썼다. 이런 이유로 사르트르의 문학 및 실존주의문학은 새로운 의미에서의 휴머니즘문학이라 일컬어진다.
〔카뮈의 실존주의문학〕
카뮈의 경우 사르트르의 《구토》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 《이방인(1942)》이다. 주인공은 <부조리> 의식을 가진 까닭에 일상성과 양식을 대표하는 사회에 의해 살인죄로 재판받지만, 사실은 재판하는 측도 자기기만죄로 고발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카뮈는 인간에게 허위와 기만을 강요하며 인간의 진정한 존재를 부정하는 부조리와의 싸움이야말로 인간의 의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의무는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항의·반항의 형태를 취하여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1942)》에서는 계속해서 벼랑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절망적인 인간의 반항행위 속에서 존재해야 할 인간의 모습을 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카뮈에게서는 반항이 부조리의식을 가지는 인간의 참여행위가 된다. 이것을 구현한 것이 장편소설 《페스트(1947)》의 주인공으로서, 그는 페스트 때문에 공황이 일어난 도시에서 신이나 악마의 무력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고독이라는 지옥에 빠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습이나 안이한 타협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연대에 의지하여 자기의 직무를 수행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조리에 반항하여 계속 인간성을 추구하는 길은 역시 휴머니즘과 통한다. 그리고 부조리적 인간의 성실한 인간성 탐구의 길이 이와 같은 반항과 행동을 취하는 까닭에 카뮈의 부조리문학도 필연적으로 사회 참여가 된다.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문학〕
보부아르는 학생시절에 사르트르를 만났는데 두 사람의 결합은 격렬한 반순응주의와 출생환경(부르주아지)에 대한 반항에 의해 확고해졌으며, 이 2가지 명제가 그녀의 문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보부아르의 문학활동은 여성의 <본질>과 여성이 되는 <실존> 사이의 모순상극의 고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1943)》는 질투라는 영원한 테마를 새롭게 다룬 것인데, 주인공 프랑수아즈는 자기와 남편 사이에 개입된 <타인>이란 존재, 즉 초대받은 여자 구사비에르를 살해한다. 타인의 행복에 대한 지향과 타인의 존재는 항상 자아의 파괴라는 인식이 묘사되어 있다. 장편소설 《타인의 피(1944)》에서는 레지스탕스의 연대와 책임문제를 다루었고, 방대한 사회학적·심리학적·문학적 여성론인 《제 2 의 성(性, 1949)》은 <여성은 암컷과 거세자의 중간적 존재로서 사회적·심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여성이 타인에 의해 자기를 규정시키는 것은 인간의 타락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여성의 복권을 추구하였다.
〔그 밖의 작가들과 영향〕
J. 주네는 사르트르로부터 <성(聖) 주네>라고 불린 <참여문학자>로서 알려졌다. 《도둑일기(1949)》 《꽃의 노트르담(1944)》 등은 초현실주의 형식의 수법으로 쓴 장편소설인데, 동성연애자, 직업적 범죄자로서의 자기의 굴욕과 반항의 반생을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고 묘사하였다. 사르트르의 친구로 제 2 차세계대전중 전사한 P. 니장은 자기계급에 대한 반항, 사회의 위선을 문학 형태로 고발하였다. 보부아르에게 인정받았던 작가 V. 르뒥의 자전적 소설 《사생아(1964)》는 동성연애자인 자기를 모든 관점에서 더럽고 추한 존재로 규정하며 그 속박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고독의 고리를 스스로 깨려고 하는 이야기이다.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문학은 문학적 의식, 문학의 방법, 작가 및 문학작품의 사회참여 등의 측면에서 이후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의식을 <사물> 쪽으로 소외시키면서 인간의 조건과 형성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누보로망 문학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실존주의문학〕
언제 들어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제 2 차세계대전 뒤 특히 1950년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1940년대에는 사르트르의 《프랑스인이 본 미국 작가(1946)》, 전창식(田昌植) 번역의 《벽(1948)》, 양주동(梁柱東)의 평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1949)》, 김명원(金明遠) 번역의 《흑사병(1950)》 등이 발표되었다. 50년대에는 정명환(鄭明煥) 번역의 《자유의 길(1958)》 《벽(1958)》, 방곤(方坤) 번역의 《구토(1959)》 등의 사르트르의 작품과 김붕구(金鵬九) 번역의 《카뮈의 문학과 사상(1958)》, 정명환 번역의 《현대의 증인》 등의 카뮈의 해설 및 작품번역이 나와 실존주의가 한국의 문단을 주도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손창섭(孫昌涉)·오상원(吳尙源) 등 한국작가들에게도 인간조건의 추구라는 점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이론은 50년대 말 이후 참여문학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
모파상의 '두 친구"
장교가 소리쳤다.
"발사!"
열두 발의 총알이 일시에 나갔다.
소바주는 단번에 코를 박고 쓰러졌다. 그보다 키가 큰 모리소는 비틀거리면서 빙그르르 돌더니, 얼굴을 하늘로 하고 친구 위에 모로 쓰러졌다. 그러는 사이에 뿜어 대는 핏줄기가 가슴의 터진 웃옷에서 스며나왔다.
독일인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의 부하들이 흩어졌다가 밧줄과 돌들을 가지고 돌아와, 두 시체의 발에 붙들어 매었다. 그리고 나서 시체를 강둑으로 운반했다.
발레리앙 산은 쾅쾅 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이제는 연기를 이고 있었다.
두 병정이 모리소의 머리와 발을 잡았다. 다른 두 병정이 똑같은 방법으로 소바주를 잡았다. 시체들은 잠깐 힘차게 좌우로 흔들리다가 멀리 던져졌다. 그것은 곡선을 그리면서, 처음에는 발에 매인 돌들 때문에 선 자세로 강물 속에 잠겼다.
물은 솟구쳐 튀어 올랐다가 거품이 일면서 흔들렸으나 곧 이어 잔잔해졌다.
그러는 동안 자디잔 물결이 강기슭까지 밀려왔다.
피가 약간 물 위에 떠돌았다.
여전히 침착한 장교는 낮은 목소리로
"이제는 고기들의 차례로군"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집을 향해 되돌아갔다.
갑자기 풀 속에서 모샘치가 들어 있는 어망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것을 주워 살펴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빌헴!"
하고 소리를 질렀다.
흰 앞치마를 두른 한 병사가 달려왔다. 그러자 그 프러시아 인은 총살당한 두 사람이 잡은 고기를 그에게 던지면서 이렇게 명령했다.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조그만 고기들을 당장 튀겨 오게나, 맛있을 걸세."
그러고 나서 그는 파이프에 다시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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