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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 / 해설 / 이청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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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 - 이청준



지은이 : 김승옥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감성 소설, 모더니즘 소설

배경 : 시간은 1964년 어느 겨울밤. 공간은 서울(1964년은 군사독재가 시작된 해이자,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해이기도 하다. 이때 겨울밤은 독재와 산업화에 따른 억압적인 분위기를 상징한다. 이와 함께 선술집이나 여관은 정착지가 아닌 떠도는 곳으로서 모두가 고립된 상황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구성 :

발단 - '나'와 '안'이라는 대학원생이 포장마차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나눔

전개 -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자신의 불행을 말하고 동행해도 좋으냐고 간청하고 '나'와 '안'은 승낙하고 같이 술을 마신다.

위기 - 택시를 타고 가던 세 사람은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불안에 빠지고, 돌아가려는 '나'와 '안'에게 혼자 있기가 무섭다며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함.

절정 - 여관에 도착한 세 사람은 '나'는 같은 방에 들어가기를 제안하고 사내 역시 같은 방에 들어가자고 하나 '안'의 주장으로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함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의 자살이 밝혀지고 그 일에 관련되기 싫다고 '나'와 '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 곳에서 헤어진다.

성격 : 현실 고발적, 사실적, 객관적, 상징적, 암시적(60년대 우리 사회의 전형성을 지닌 인물의 제시를 통해 시대의 문제를 극명하게 제시함)

제재 : 연대성이 없는 세 사내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함께 지낸 이야기

 



주제 : 현대 도시인들의 심리적 방황과 인간적 연대감의 상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느끼는 삶의 공동성(空洞性)과 파편적 개인성, 사회적 연대감과 동질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소외. 주체성 없는 현대인의 삶의 현실의 부적응으로 인한 삶의 허무 인간의 거짓 희망과 과장된 절망에 대한 진지한 응시, 현대 사회에서 제기되는 인간의 고독과 소외의 문제를 감각적이고 독특한 문체로 형상화한 작품

인물 : 파편화되고 개인주의화된 인물 유형들이 익명화되어 제시되고 있다. 이는 인간적인 만남이 아니라 익명적인 존재끼리의 비개성적이고도 무덤덤한 만남을 뜻하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화된 인간 관계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 : 작중 화자(話者)로서 25세로 육사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 근무함. 확실한 주관이 없는 회색적인 인물. 시골 출신으로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이들의 표상, 아저씨와 안의 중간적 존재

'안(安)' : '나'와 동갑내기로 25세인 부잣집 장남이며 대학원생. 삶을 냉소하면서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지식인으로 염세주의적이며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물로 당대 지식인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냄

사내(아저씨) : 서른 대여섯 살의 가난한 사내, 죽은 아내의 시체를 팔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에 찌든 서적 외판원으로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한다.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상징하는 인물 / 타인에게 인간적 유대감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하는 인물

줄거리 :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安)'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나'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다. 부잣집 아들인 '안(安)'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明滅)하는 네온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판매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 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셋은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 구경에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나'와 '안(安)'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셋은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안(安)'의 고집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었고, '안(安)'과 '나'는 서둘러 여관을 나온다. '안(安)'은 사내가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나'와 '안(安)'은 "우리는 스물 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나'는 '안(安)'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표현 : 무의미한 대화의 연속으로 독자들에게 오히려 역설적인 충격을 준다. 의미가 사라진 채 기호만 남은 이러한 대화는, 언어적인 진실이 사라져 버린 현대인의 언어 습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특징 : 등장 인물은 '나', '안', '사내'로 익명화 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대 도시인의 속성인 자기 중심주의의 언어 불소통을 암시하는 문학적 의도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문체적 특징 : 모든 사람이 쓰는 상투어를 쓰지 않고 참신하고 인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비관습적인 문체인 인상주의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설명적인 언어가 아닌 상징적, 비유적 언어를 사용하여 입체적인 문장을 만들어 독자가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발휘하고 사고력을 동원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는 이 소설의 비판적 어조에 기여한다.

출전 : <사상계>(1965)

 


내용연구



등장인물의 특징

 이 소설은 '나'와 '안(安)'이라는 25세 동갑내기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들의 진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共有)할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나'와 '안(安)'에게 그 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해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미를 사내가 눈치챘음일까, 화재(火災)가 난 곳을 찾아가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버리는 행위는,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분노요,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즉,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고뇌와 슬픔을 공유(共有)하기를 바라나 '나'와 '안'은 받아 주지 않으며 부담스러워한다. 세 사내가 여관으로 와서도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되고, 또 안씨의 경우 외판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은(못하는) 사실에서 인간적 유대가 없는 소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나', '안(安)', '사내' 등으로 익명화(匿名化)되어 있다. 현대 도시인의 삶이 그 속성으로 지니고 있는 자기 중심주의, 언어 불소통을 암시하는 문학적 의도이다.



'나'와 '안'의 대화의 의미

 이들의 대화에서 나타난 시간과 공간은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두 사람은 이상한 말놀이만 하고, 그들에게 시간은 단절되어 있다. 시간은 다른 시간과 이어지지 못하고, 다른 사건을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공간 역시 사건이나 문체의 의미를 주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이 단절되고 다른 타인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할 때, 사람은 고독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대인의 고독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방법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의 유의하며 읽도록 지도한다.

: 삼십대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다른 두 사람에게 호소한다. 이는 고통의 분배를 통한 인간적 유대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다른 두 사람이 이러한 요구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하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도록 지도한다.

: '나'와 '안'은 이상한 말놀이만을 하고 있다. 그 말놀이의 허무함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배역을 맡겨 번갈아 읽게 해 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허무 개그'와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재미만을 느끼게 하지 말고 그러한 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학습 활동 풀이

1 작품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보자.

(1) 세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만남이 이루어진 '포장마차'라는 공간은 어떤 곳인지 설명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배경의 상징적인 의미를 파악하게 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어떠한 필연이나 약속 없이 포장 마차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맺는 관계란 어떤 것일지 생각하게 한다.

예시답안 :

 이들은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포장마차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필연적인 만남의 계기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익명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계기를 갖고 모이는 곳일 뿐이다. 따라서 '포장마차'라는 공간은 도시적인 삶의 익명성과 만남의 우연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2) 세 사람이 같은 여관에 들어갔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간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배경의 상징적인 의미를 파악하게 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벽'은 실제 여관의 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벽의 이중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게 한다.

예시답안 :

 '벽'은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벽을 의미한다. 작자는 인간적인 유대를 갖지 못하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현대인의 인간 관계를 벽을 사이에 두고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는 행위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며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벽을 사이에 두고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간 등장 인물의 행위에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자살을 예견하고도 '사내'를 혼자 놓아 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을 통해 등장인물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사내의 자살에 대한 나와 '안'의 반응을 통해 역으로 사내를 혼자 놓아 둔 이유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예시답안 :

 '나'와 '안'은 사내의 죽음에 대해 각각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들이 사내를 혼자 둔 이유는 그들이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을 귀찮아하며 고독과 단절에 익숙하고,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며, 거기에 간섭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나', '안', '사내'는 각각 어떤 인물인지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작품에서 인물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생각해 보도록 한다. 작품에서는 그들의 신원(身元)만 단편적으로 제시될 뿐, 개개인의 개성이 서술되지는 않았다. 이는 소외 의식(疎外意識)을 심화시키는 문체적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여 설명할 수 있다.

예시답안 :

 '나'는 육사(陸士)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스물 다섯 살 난 시골출신 사내로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안(安)'은 '나'와 동갑내기로 부잣집 장남이며 대학원생으로 삶을 냉소하면서도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외판원은 서른 대여섯 살의 가난한 사내로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한다. 자살하기 전 '나'와 '안'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미루어, '나'나 '안'과는 달리 '인간적인 유대'를 원하고 있다.

(2) 구체적인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나', '안', '사내' 등으로 익명화(匿名化)시킨 것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소설의 언어적 특성이 갖는 효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활동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게 하기 위한 실마리로 김춘수의 '꽃'의 내용,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나는 하나에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를 생각하게 한다면 이름 부르기의 의미에 대해서 학생들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시답안 :

 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는 한 존재의 의미를 인정하고, 기꺼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작자가 등장 인물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고 익명화시키는 것은 자기 중심적으로 고립된 채,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현대 도시인들의 고독한 삶을 드러낸다.

3. 작품의 대화를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중략> 앞 부분에서 '나'와 '안'이 주고받는 대화는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와 동일한 것인지, 동일하지 않다면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설명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등장인물간의 대화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일상적인 대화는 의사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일상적인 대화와 '나'와 '안'의 대화를 비교해 보도록 한다. 더 나아가 '나'와 '안'의 대화를 번갈아 읽게 시킬 수 있다. 학생들은 쉽게 '허무 개그'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대중 매체의 언어에 반영된 우리 시대의 정신을 반성하게 한다.

예시답안 :

 '나'와 '안'은 이상한 말놀이만을 하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상대방과 소통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반해, 이들의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와는 달리 어떠한 소통적인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2) 마지막 대목에서 '안'의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을 통해 등장인물의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안'의 말은 사내의 죽음을 목격한 후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예시답안 :

 '나'와 '안'은 원래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 자신도 자신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타인의 죽음을 방치하고, 그 죽음을 귀찮아하는 자신들을 보며 자신들의 성향이 타인의 죽음마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것임을 깨닫는다. 많은 세상사를 보았기에 어느 정도 타인의 일이나 세상사에 호기심이 없어지는 것이 '늙음'이라면 이들은 자신들이 말하듯이 '너무 늙어 버린 것'이다.



  이 작품에는 구청 병사계에 근무하는 '나'와 대학원생인 '안', 그리고 월부책 판매원인 30대의 '사내'가 등장한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아 본 것'은 파리밖에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안'과 '나'는 상실과 좌절을 경험한 인물이고, 장례 비용이 없어서 급성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고 4천원을 받은 '사내'는 일상적인 삶에 상실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세 사람의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열려 있는 공동의 광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개인의 폐쇄적인 회로 속에 갇혀 있는, 단절된 인간 관계를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이 작가의 서술이나 묘사보다는 대화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화는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 주는 동시에 작품의 의미를 완성시켜 주고, 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이 작품에 나오는 많은 대화들은 일상적인 효용성을 떠난, 일종의 작위적(作爲的)인 언어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의사 전달이라는 대화의 본질적인 기능은 사라지고 언어의 무상성(無常性)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 때의 언어는 타자 속에 침투하여 들어가기를 포기한, 자기 혼자만의 소유로 남는다. 그것은 고독한 메아리일 뿐이다. 대화의 이 같은 특징은 주제와 연결된다. 동질성을 상실하고 개인의 폐쇄성에 갇혀 있는, 인간 존재의 고독함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해와 감상1

 김승옥(金承鈺)이 지은 단편소설. 1965년 6월 ≪사상계≫에 발표되었고, 1966년 창문사에서 창작집으로 간행되었다. 이 작품으로 196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작가는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는 서울거리의 소시민 셋을 등장시켜 그들의 행적을 통해 시민적 삶의 가치를 따져 보고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고 자조함으로써 우울한 진단을 하고 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 돈으로 밤거리에서 떠돌다 돈을 불구경하는 화재 현장에 던져버리고 여관에서 자살하는 가난한 서적 외판원의 행동을 통해, 주인공인 구청 직원이나 부잣집 대학원생이 느끼는 것은 너무 일찍 나이 먹어버린 한국 시민사회의 자화상이었던 셈이다.

이를 4·19세대가 5·16에 느끼는 내밀한 반발심리라고 할 수 있다면, 조로해 버린 소시민의 자의식이 나아갈 길은 어디였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19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형상화했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19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문학의 경향을 극복하고 19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특히 개인의 존재라는 면에서 지나치게 감각적일 정도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감수성이 뛰어난 언어 표현력이 바탕이 되고 있는 역작이란 평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現代名作解說(金容稷, 冠岳出版社, 1984), 한국현대작가의 문제작평설(윤병로, 국학자료원, 1996), 金承鈺論(김현, 현대문학, 1966.3.), 金承鈺著 ‘서울, 1964년’(鄭常浩, 창작과비평, 1966.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2

 1965년 <사상계>에 발표.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나'와 '안(安)'이라는 새로운 인물 유형이다.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25세의 동갑내기인 이들은 결코 그들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느꼈던 것만을 주고받는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도시적 삶의 파편화(破片化), 곧 개인주의의 심화를 읽어 낼 수 있다.

 이 소설은 '나'와 '안(安)'이라는 25세 동갑내기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들의 진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고 말구요. 시체의 아랫배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 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共有)할 것을 간청한다. 이를테면, 고통의 분배를 통한 인간적 연대 의식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나'와 '안(安)'에게 그 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행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미를 사내가 눈치챘음일까, 화재(火災)가 난 곳을 찾아가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버리는 행위는,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분노요,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즉, 삼십 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고뇌와 슬픔을 공유(共有)하기를 바라나 '나'와 '안'은 받아 주지 않으며 부담스러워한다. 세 사내가 여관으로 와 서도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되고, 또 안씨의 경우 외판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은(못하는) 사실에서 인간적 유대가 없는 소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나', '안(安)', '사내' 등으로 익명화(匿名化)되어 있다. 현대 도시인의 삶이 그 속성으로 지니고 있는 자기 중심주의, 언어 불소통을 암시하는 문학적 의도이다. 또한, 그들의 신원(身元)만 단편적으로 제시될 뿐, 개개인의 개성이 서술되지는 않은 것도 소외 의식(疎外意識)을 심화시키는 문체적 특징일 것이다.



이해와 감상3

  1960년대에 등장한 소설가들의 작품 세계는 대체로 내성적, 실험적 창작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한 모더니즘적 경향과 전통적 사실주의적 수법을 지향했지만 새로운 시대 의식을 보이는 경향으로 분류된다. 김승옥은 전자의 작품 경향을 대표할 만한 작가로서, 현대 사회에서 개체화되고 소외된 인간들을 주로 다루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세 사람의 사내가 우연히 만나고, 교환하고, 헤어지는 풍경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서구와 같이 고립화·개체화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1964년 겨울의 서울을 배경으로 현실에서 소외된 고독한 세 인물이 서로 무심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사회적 연대성을 잃은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사건다운 사건은 세 사람이 갈 데 없어 헤매다가 목격한 화재, 중년 사내로부터 들은 그의 아내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사내의 죽음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나'와 대학원생인 '안(安)'에게는 하등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화재는 화재일 뿐,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밤에 미리 본 것에 불과하다. 중년 사내가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그 주검을 실험용으로 팔고, 또 그 돈으로 술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안'은 "네에에, 그거 안되셨군요."라고 말할 뿐이다. 죽음 자체가 사소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는 그 죽음이 사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처음 만날 때부터 돈에 대한 인식에서 철저하게 개별화되고 있다. '나'와 '안'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함께 술을 마시고 자리를 피할 때에는 각자 계산을 하기 위해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중년 사내가 동행을 제의할 때에도 자기 술값이 동행의 전제 조건이 된다.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 함께 여관에 들었을 때에도 이들은 제각기 다른 방에 들게 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점은 '나'와 '안'이라는 새로운 인물 유형이다.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갑내기인 이들은 결코 그들의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느꼈던 것만을 주고받는다.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도시적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 그리고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일찍부터 이 작품은 19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작품으로 인정받아 왔다. 19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의 행동을 통해 전망 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의도된 어색함의 상황'에 담아 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는 결국 19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대표적) 개인인 셈이다.

 

 



이해와 감상4

 이 작품은 1964년 겨울의 서울을 배경으로 현실에서 소외된 고독한 세 인물이 서로 무심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사회적 연대성을 잃은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나'와 '안'이라는 새로운 인물 유형이다.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갑내기인 이들은 결코 그들의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느꼈던 것만을 주고받는다.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도시적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 그리고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이해와 감상5

 이 작품은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의 행동을 통해 전망 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의도된 어색함의 상황'에 담아 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를 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대표적) 개인이다.


'서울, 1964년의 겨울'의 도시적 인간 관계

 '모든 욕망의 집결지'라고 한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해 정의되어 있는 서울의 밤 풍경을 재현한, 약 광고와 술 광고와 유흥가의 선전지가 고작인 이 대목은 산업화가 시동 단계에 있던 서울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대 지금의 서울 거리와 다르고 이태준이나 박태원이나 이상이 보여주었던 1930년대 서울 거리와도 다르다. 절대 빈곤을 시사하는 겨울밤의 거지들이 수두룩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거리의 포장 친 선술집에서 대학원생과, 육사에 낙방한 후 입대했다가 지금은 구청 병사계 직원이 되어 있는 화자,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판후 자살하게 되는 서적 외판원이 만나게 된다. 아니 부딪치게 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연히 마주쳤고 그 중의 하나가 두 사람의 대화에 자청하여 끼어들었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연줄도 공동 관심사도 공통의 과거도 없다. 익명과 익명의 우연한 부딪치이라는 도회의 항상(恒常)적 경험을 작품은 취급하고 있다. 대학원생 안과 병사계 직원 김은 동년배라는 것과 선술집에 비슷한 시각에 들어섰다는 우연 때문에 대화를 주고 받지만 그것은 피차간에 의미있는 경험의 교환이 되어 주지 못한다. 피차간에 인적 사항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성일 뿐이다.(출처 : 유종호, '슬픈 도회의 어법')

김승옥 문학의 문학사적 의미

 김승옥은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전후 문학과 인식론적 단절을 이룩하고 스스로 새로운 글쓰기의 영도가 되었다. 이처럼 청신한 감수성과 젊음의 순수함만을 갖고 출발한 그의 문학은 그만큼 훼손되기도 쉬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김승옥의 소설은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급격한 퇴락의 기미를 드러내며, 새롭게 등장하는 여러 집단에게 자신이 지켜왔던 자리를 하나씩 물려준 바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통념대로 김승옥의 문학사적 의미는 60년대 후반에 끝나 버렸을까. 한편으로는 그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문학사적 맥락에서 볼 때, 60년대 후반 이후 김승옥이 들어설 자리는 별로 없다. 하지만 김승옥 문학은 문학사적 단명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단편 소설의 모방할 수 없는 규범으로 군림해 왔고, 수많은 추종과 모방과 반역의 대상이었다. 이 점이 가장 가장 중요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고 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김승옥은 모든 문학적 출발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문학에 뜻을 둔 젊은이라면 누구나 김승옥이 걸어간 파괴와 창조의 행로를 되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승옥은 문학적 젊음의 영원한 표상이다. (출처 : 진정석, '글쓰기의 영도 : 김승옥론')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1964년 겨울 서울의 한 포장마차에서 세 남자가 만난다. 김이라는 성을 가진 `나'는 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고, 대학원생 `안'은 부잣집 장남으로 두 사람은 모두 스물 다섯 살이다. 서른 대여섯 돼 보이는 또 다른 사내는 서적 외판원. 처음에 말문을 튼 안과 `나'는 학력과 처지의 천양지차에도 불구하고 바깥 세상과는 겉돌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나중에 합류한 제3의 사나이는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숨지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판 뒤 낙담과 죄책감으로 시체 판 돈을 다 써버리자고 스물 다섯 살 짜리들을 유혹한다. 억지로 돈을 쓰러 돌아다니던 세 사람은 불자동차 뒤를 쫓아가 불구경을 하는데, 상처한 사나이는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남은 돈을 던져버린다. 세 사람은 그날 밤 같은 여관의 서로 다른 방에 투숙하며, 다음날 이른 아침 상처한 사나이가 밤사이 자살한 것을 알게 된 두 젊은이는 몰래 여관을 빠져 나와 기약 없이 헤어진다….

 그러니 어쨌단 말인가.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쓴 것일까. 젊어서 이미 늙은 것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와 상처한 중년의 자살로 채워진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이, 그것도 한국 소설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제목을 `서울 1964년 겨울'이라 단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1964년 겨울로 돌아가 보자.

 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19가 열어 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의 반격이 6·3사태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남자는 사회이면서도 사회가 아닌 독특한 동아리를 이룬다. 그들은 포장마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각자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것이 어떤 유의미한 공동체의 형성에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세 사람은 각자의 고독과 상처로 자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틀어앉아 있을 뿐 고치 밖의 세계로 나올 염을 내지 못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는 지문은 그들이 함께 그러나 따로 든 여관방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몸 부리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개인의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에 눈뜨지 못했었다. 소설이 개인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 개인은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사이비 개인이었다.

 김승옥 소설은 또한 새로운 세대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으로써 두드러진다.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 감수성은 사물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을 거부하고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봄으로써 결국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된다. `무진기행' 중 안개를 묘사한 저 유명한 대목을 읽어보자.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김승옥씨의 소설들이 발아하고 무르익은 곳은 작가가 다니던 서울 문리대가 있던 동숭동 일대였다. 작가에게 서울은 전쟁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폐허 같은 도시였다. 서울 토박이라고는 구렁이 같은 복덕방 영감과 앙칼진 목소리의 셋방 주인 아주머니 정도일 뿐 나머지 서울 주민은 월남 피난민들과 자식들 교육을 위해 상경한 이농민들이었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를 펼치는 살풍경이 서울의 모습이었다.

 “파괴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내 소설의 테마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처럼 작가로서 흥미로운 도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서울이란 평생 그물을 던져도 고갈되지 않는 황금어장과도 같다.”

60년대의 서울이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주었고(`서울 1964년 겨울'), 70년대의 서울은 이상문학상을 주었다(`서울의 달빛 0장'). 그렇다면 96년 여름의 서울 하고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과 대학로는?

 1996년 여름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늦은 오후의 그곳은 저마다 세상으로 열린 숨구멍이라도 된다는 듯 허리께에 호출기를 찬 젊은이들로 채워진다. 관악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서울대가 있던 마로니에 공원이 그들의 주요 집결지다. 이 거리의 명물인 아마추어 화가들과 가수들, 엔비에이(NBA)의 환상을 사고 〔買〕 또 사는〔生〕 아이들, 새 상품 홍보를 위해 목걸이 볼펜을 나누어주는 언니들, 다른 대책이 서지 않아 하릴없이 앉아 있는 연인들, 나름으로는 이곳의 터줏대감인 몇몇 알콜중독자들, 아이스크림 장수, 외국에서 산 장신구와 기념품을 늘어놓고 여행경비를 마련하려는 외국인 배낭여행자…. 이들은 무책임한 구경꾼이자 스스로 남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즐기며 96년 여름 서울의 대학로를 수놓고 있다.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작가가 90년대 소설에 관해 말한다.

“언어에 관한 자의식이 강해졌다는 것은 장점이다. 반대로, 싸워야 할 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개조를 위한 욕구와 절규가 보이지 않는다.”

알다시피 그는 결코 민중문학론자도 실천으로서의 문학의 신봉자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그는 4·19와 6·3을― 그 성취와 좌절, 영광과 수치까지를 포함해 ―청춘의 훈장으로 간직한 전투의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출처 : 블랙박스교과서)



김승옥 작품세계

- 세련된 언어표현 뛰어나-- "6.25이후 혼란 뭔가 정리할 필요" 당시 회상

[서울, 1964년의 겨울]은 65년 [사상계] 6월호에 발표됐다. 당시 김승옥씨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먹물 룸펜]이었다. 그러나 이미그는 60년대 소설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유명 작가였다.훗 날 연극연출가로 이름을 날린 오태석의 신촌 자취방과 이화여대 앞 파리다방을 오가며 65년 봄 완성한 이 소설은 그해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사상계의 청탁을 받은 그는 천박하지 않고, 유머가 있으며, 시니컬한 소설을 쓰기로 했다. 냉소의 대상은 서울. {서울을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보입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본 서울은 생존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 논리만 강요하는 인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원생과 병사계직원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도 실은 대화가 아닙니다. 다이얼로그가 아니라 모노로그지요. 자기의 논리만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그는 대화부재의 근본원인을 공통된 규범의 부족에서 찾고 있다. 동행하던 사람이 죽어도 자신의 불편을 피해 총총히 여관을 떠나는 인물에게 어떤 가치나 질서도 찾을 수 없다. {6.25이후 모든 질서가 사라졌습니다. 어떤 형태의 질서라도 좋으니 혼란을 정리해줄 그 뭔가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6.25이후 무너진 질서의 회복을 꿈꾸고 있었다고 회고했다.[4.19 적경험]이니 하는 부분은 당시 머릿속을 채웠던 질서회복에 비하면 별로 큰 부분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문단에 커다란 감동과 충격을 안겨 주었다. 동세대 평론가 김치수씨는 {기존 가치에 대한 절망감을 엄숙하지 않지만,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김승옥 소설은 오랫동안 문학청년들 사이에서 정전으로 추앙 받았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신경숙씨는 습작시절 김승옥 소설을 대학노트에 그대로 베껴 쓰면서 문장 수업을 했다. 문학의 새 기수로 환영을 받은 그는 그후 영화 [감자]등을 제작하기도 했고, 70년대에는 [겨울여자]등 히트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70년대 말 이후에는 절필과 복귀 등을 거듭하기도 했다. 80년대 이후 신앙 생활에 몰두하면서 창작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지난해 [김승옥 전집](전 5권·문학동네)을 출간, 그동안의 작업을 일단 정리하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문단에선 김승옥문학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하고있다. (출처 : 블랙박스 교과서)



김승옥(金承鈺 1941- )

 소설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나 전남 순천에서 유년을 보냄. 바닷가의 체험은 나중에 그의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됨. 대학 시절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김현, 최하림, 이청준, 서정인 등과 교류하였는데, 이 동인들은 이후 우리 문학의 주된 산맥이 되었다. 그 선두 주자는 물론 그였는데,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생명 연습(生命連習)"이 당선되면서 등단함. 그는 1960년대를 한국 소설의 한 혁명기로 이끌었던 자로, 감수성 짙은 지성의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산문의 길을 열었다.

 이 문체의 확립으로 한국 소설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도시적 삶에 적응하려는 서민들의 애환, 1960년대의 지적 우울 등을 감각적 터치로 그린 작품이 많았는데, 그 대표작이 "서울, 1964년 겨울", "무진기행",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건", "환상 수첩" 등을 잇따라 발표하여 문학적 성과를 쌓았다. 그의 소설은 '섹스' 모티프가 주요한 일면을 가지면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모습을 윤리적 측면과 결부하여 그 내면 의식을 심도 있게 드러내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는 1981년 종교적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기독교의 수도에 몰두하느라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 동아일보에 장편 "먼지의 방" 연재 중단 이후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면서 절필하였으며, 1995년에 <김승옥소설전집>이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자기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작가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한국 소설의 언어적 감수성을 세련시킨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평자들은 흔히 그를 내성적 기교주의자의 대표적 작가로 내세운다.

 최근에 '내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책을 펴냈다.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의 작가 김승옥이 긴 투병생활을 뒤로 하고 신작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 산문집은 1980년 장편 <먼지의 방>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 신군부의 검열에 항의, 절필 선언을 한 후 24년 만에 펴내는 책이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17편의 글이 실린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진다. 1부는 갑작스레 하나님을 만나게 된 작가의 체험적 고백, 2부엔 극본 집필차 떠났던 성지순례 이야기가 담겼다. 3부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과 문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실려있고, 마지막 4부는 김현, 최하림, 김치수, 서정인 등 쟁쟁한 문필가들을 배출한 '산문시대' 동인 이야기이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젊어서 이미 늙은 것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와 상처한 중년의 자살로 채워진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이, 그것도 한국 소설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제목을 '서울, 1964년 겨울'이라 단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1964년 겨울로 돌아가 보자.

  그 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19가 열어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의 반격이 6.3사태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남자는 사회이면서도 사회가 아닌 독특한 동아리를 이룬다. 그들은 포장마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각자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 것이 어떤 유의미한 공동체의 형성에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세 사람은 각자의 고독과 상처를 자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틀어 앉아 있을 뿐 고치 밖의 세계로 나올 염을 내지 못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는 지문은 그들이 함께 그러나 따로 든 여관방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몸 부리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개인의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에 눈뜨지 못했었다. 소설이 개인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 개인은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사이비 개인이었다.

김승옥 소설은 또한 새로운 세대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으로써 두드러진다.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 감수성은 사물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을 거부하고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봄으로써 결국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된다.

김승옥의 소설들이 발아하고 무르익은 곳은 작가가 다니던 서울 문리대가 있던 동숭동 일대였다. 작가에게 서울은 전쟁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폐허 같은 도시였다. 서울 토박이라고는 구렁이 같은 복덕방 영감과 앙칼진 목소리의 셋방 주인아주머니 정도일 뿐 나머지 서울 주민은 월남 피난민들과 자식들 교육을 위해 상경한 이농민들이었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를 펼치는 살풍경이 서울의 모습이었다.

“파괴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내 소설의 테마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처럼 작가로서 흥미로운 도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서울이란 평생 그물을 던져도 고갈되지 않는 황금어장과도 같다.”[최재봉,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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