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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머저리 / 해설 / 이청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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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머저리 - 이청준


작자 : 이청준

갈래 : 단편소설. 액자 소설,

배경 : 내부액자: 시간(6.25 전쟁 때), 장소(강계의 어느 시골)

       외부액자: 시간(1960년대), 장소(화실, 병원)

문체 : 원인을 추적해 가면서 서서히 밝혀 주는 추리적 문체(관념이나 사건을 추적하는 집요함이 돋보인다)

시점: 1인칭 주인공 및 관찰자 시점

성격 : 사변적, 논리적, 심리적, 철학적, 추리적

경향 : 순수 소설

제재 : 전쟁의 체험과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관념

주제 : ①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통하여 '아픔'의 원인과 그 극복 과정을 형상화함.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통한 아픔과 그 극복의 의지 ② 삶의 방식이 다른 두 형제의 아픔과 그 극복 의지

출전 : 1966년 9월 <창작과 비평>

기타 : 제13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제목의 상징성 : '병신'은 정신적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형을, '머저리'는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동생을 의미함. 형은 소설을 쓰면서 능동적으로 극복하고, 동생은 형을 통해 삶을 반성함. 이러한 두 형제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행동하는 두 지식인상인 것임

구성

발단 : 의사인 형이 병원 일을 그만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함

전개 : '나'는 그 소설을 훔쳐보며 형의 아픔의 근원을 찾으려 하다가 형 대신 소설의 결론을 쓰게 됨

위기 : '나'는 혜인으로부터 절교의 편지를 받음

절정 : 형이 다시 고쳐 쓴 소설의 결말을 읽게 됨

결말 : 형이 병원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는 아픔이 없는 환부의 근원을 자문해 봄

줄거리 :

1. 형이 쓴 소설을 통한 형에 대한 이해

- 탈출과 재생의 구조

2. 형수와의 대화

- 불가해(不可解)한 인간관계

3. 형의 귀가와 소설 원고 태우기

4. 원고 뭉치를 태우는 형

5. 형과의 갈등

6. 원고를 고친 '나'에 대한 형의 분노

7. 형에 의해 병신 머저리로 불리워진 '나'

8. 소설 원고를 불태운 것에 대한 형의 변명

9. 형은 소설을 불 태우면서 동생을 욕함

10. 소설을 불 태우며 관모와의 상봉을 이야기하는 형

- 소설이 쓸 데 없이 됨

- 동생을 나무람

11. 형의 아픔을 이해하는 동생

- 형의 관념 파괴 정신과 무서운 창조력(극복 의지)

12. '나'의 아픔이 없는 환부의 근원을 자문(自問)해 봄

- 명료한 얼굴이 없는 '나'의 아픔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형은 6·25 당시의 불행한 체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중, 어느 날 소녀의 수술에 실패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갑자기 병원 일을 소홀히 하고 소설 쓰는 일에 몰두한다. 우연한 기회에 그 소설을 접하게 된 동생 '나'는 형의 소설이 진행되는 것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소설이 진척이 없을 때는 자신의 그림 그리는 일마저 의욕을 상실한다. 결국 형의 소설은 체험의 회고가 아니라, 재구성이었음이 드러나고, '나'는 삶의 허무로부터 벗어나 현실의 세계를 직시하고자 하는 용기와 자기 연민의 극복 의지를 가지게 된다.(교과서 수록 부분 : 형의 어두운 그늘로부터 벗어나 삶의 허무를 극복하는 '절정'과 '결말'부분)

등장 인물 :

형(의사) : 소설 쓰기를 통해 능동적으로 아픔을 극복하는 행동주의적 유형(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믿음). 아픔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고 환부를 치유해 가는 인물 유형

동생(화가) : 자기 아픔의 상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인물로서 형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반성함. 현실 문제에 완벽한 대응이 서지 않으면 실천하지 않고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생각하는 완벽주의자이면서 회의주의적(懷疑主義的) 인간 유형

혜인 : '나'의 애인이었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함

오관모 : 인간의 이기심과 생존 욕구

김 일병 : 암담한 현실에서 고통받으며 사라지는 힘 없는 사람

줄거리

 20년간 환자를 보아온 외과 의사인 형과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화가인 동생의 고뇌를 다룬 이청준의 작품이다. 형이 실상 자신의 전적인 책임도 아닌 수술의 실패(열 살 짜리 어린 소녀의 죽음)를 계기로 고민에 빠지고, 병원 문을 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형은 6·25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괴로워한다. 다름 아닌 전쟁 때 패잔병으로 형과 전우들이 적진의 한 동굴 속에 고립되었을 때, 자신의 생존과 성욕만을 아는 이기적인 이등중사 '오관모'의 위협(입을 하나라도 죽이기 위해 김 일병을 죽이자는 제안) 때문에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채, 팔이 떨어져 나간 부상당한 동료인 김 일병을 죽게 만들었던 사건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관모는 형을 보고 "참새가슴은 구경만 하고 있어."라고 한 기억을…. 결국 형은 관모의 행위에 대해 방관적인 입장만 취했던 것이 결국 자신이 살인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형은 당시 상황을 소설로 재구성해 나가게 되는데 결말을 못 짓고 고민하던 끝에, 오관모를 죽임으로써 일단 결말을 짓고 다시 의사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실수보다도 어차피 수술하지 않아도 죽게 되었을 소녀의 죽음을 자신의 잘못으로 고민하고, 또 하나의 과거 사건을 자기 것인 양 고민함으로써 자기 양심을 확인해 가는 형이었다. 소설의 결말부는 다음과 같았다. 오관모는 김 일병을 끌고 동굴 밖으로 나가는데, 형은 만류한다. 관모는 김 일병을 앞세우고 산을 내려갔는데, 잠시 뒤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와, 놀라 잠에서 깨어난 형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노루'(작품 서두 부분에서 언급된)를 보고야 말겠다며, 산을 내려가 제지하던 오관모를 쏘아 죽인다. 형은 혜인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오관모를 결혼식장에서 만났다며 자신의 소설 원고를 불태운다. 동생(외부 이야기의 서술자 '나')이 우연히 형의 소설을 보고 난 뒤 자신의 고민과 형의 고민이 매우 유사함을 안다. 그런데 동생은 혜인의 편지 내용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환부(患部)를, 어쩌면 환부다운 환부가 없는" 사람이었다. 즉 형은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동생은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조차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동생은 아마추어 미술학도인 '혜인'과 헤어진 후 사람의 얼굴,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후, 끊임없는 의지로 신에게 도전하는 사람의 얼굴을 화폭에 담고자 애를 쓰는 인물이다. 형은 6.25로 인해 정신적인 부상을 입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에 그것을 치료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지만, 동생은 아픔이 어디서 왔는가를 모르는 인물로서 자문한다. 동생은 신념이나 사명감을 완벽하게 펼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아예 시도도 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인 것이다.



감상 2

 소녀의 수술 실패 계기로 돌연 병원의 문을 닫고 매일 술을 마시며 느닷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과, 의지의 모습으로 신을 위협하는 인간의 얼굴을 그리고자 하지만 둥그런 얼굴 윤곽만 그리고 더 이상 그리지 못하는 화가인 동생. 형은 6.25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존재로, 동생은 환부(患部)다운 환부를 갖고 있지 않은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형은 참전 세대로서 6·25의 체험을 생생한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과실치사(過失致死)의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동생인 '나'는 그런 절실한 체험도 없을뿐더러 무기력하게 자신을 포기한 존재이다. '나'는 인간의 원형적 얼굴을 그려 내려고 하지만 늘 진전은 없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얼굴'을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과 까닭 모를 패배감에 젖어 있다.

 이와 같은 기질과 인생관을 지닌 형제는 강렬하게 부딪친다. 혜인을 붙잡지도 못했던, 그리고 그림으로 자신의 억눌린 욕구를 표현하고자 하는 '나'와, 극한 상황의 비인간성 속에서 자신에 대한 극도의 환멸을 맛보았던, 그리고 그 환멸에 대한 분출구로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이 갈등을 빚는 것이다. 우선 형은 동료(김 일병)를 쏴 죽인 상급자(오관모)를 자기가 직접 쏴 죽임으로써, 현실과의 싸움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미리 포기하는 것보다 싸우다 파괴되는 것이 훨씬 성실한 삶이라는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 결국, 형의 소설 쓰기는 체험의 회고가 아니라, 자기 연민을 벗어나고자 하는 완벽한 재구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형이 자신의 전쟁 체험을 소설 쓰기나 상급자(오관모)와의 극적인 상봉을 통하여 해소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참담한 비애를 느낀다. 그에게는 형과 같은 뚜렷한 정신적 상처도 없고 근원이 분명한 심리적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 "나의 아픔은 오는 곳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지금 나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 결국 '나'는 형과 같은 구체적인 갈등 속에서 외부와 싸우기보다는 수동적인 관조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는 가운데 점점 소멸의 시간들을 맞이해 가고 있다. 그러니까 형은 소설 쓰기에 의해서 그것을 능동적으로 극복하지만. '나'는 애인과의 사귐도, 그림 그리기에도 실패한 채 '병신과 머저리'로 패배감만 짙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갈등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실천에 관한 형과 동생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형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행동적 유형의 인물이며, 동생은 완벽한 실천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이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 고민만 하는 회의적 유형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또 다른 핵심은 작품 결말에 오관모가 다시 등장하는 데 있다. 형이 소설에서 죽인 것과는 달리 오관모(이기심과 생존 욕구)는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한 개인이 관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그 문제가 실제 현실에서 해결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은 주장한다.



감상3

 1966년 9월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단편소설로서, 1950년대 전후 소설(戰後小說)의 허무주의적이고 난잡한 작품 세계를 뛰어넘어, 작가의 감정 개입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논리적인 문체와 액자 소설 양식을 통한 형식적 완결성의 추구 등으로 소설 영역의 새로운 경계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직접적인 상처를 받은 형과, 다만 관념으로서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동생간의 갈등과 대립이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갈등과 대립은 그들이 겪은 경험의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환자의 죽음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소설적으로 변형시키는 형과는 달리, 동생은 자신이 지닌 상처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병신과 머저리'인 것이다. 개인의 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경험'과 '관념'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상4

 의사인 형과 화가인 동생의 고뇌를 다룬 이 작품은 형이 실상 자신의 전적인 책임도 아닌 수술의 실패를 계기로 고민에 빠지고 이어 6.25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괴로워한다. 전쟁 때 적진에 고립되었던 형이 자신의 생존과 성욕만을 아는 이기적인 '관모'의 위협 때문에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채 부상당한 김일병을 죽게 만들었던 사건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형은 당시 상황을 소설로 재구성해 간접 체험하게 되는데 관모를 죽임으로써 일단 결말을 짓고 의사 일을 하게 된다. 동생이 우연히 형의 소설을 보고 자신의 고민과 형의 고민이 매우 유사함을 안다. 그러나 관모로 상징된 '부정적 현실의 힘'을 동생은 과도하게 평가하여 형의 소설 중 형 스스로가 김일병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짓는다. 동생은 신념이나 사명감을 완벽하게 펼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아예 시도도 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인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행동하는 두 지식인상인 것이다.



감상5

「병신과 머저리」는 이청준에게 <동인문학상>을 가져다주고, 그의 작가적 위치를 확고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서로 다른 세대에 속하며 서로 다른 삶의 자세를 가진 형과 동생이라는 대립된 두 개의 인간형이 등장한다. 형은 약육강식의 현장이었던 6.25전쟁의 전상자이고, 동생은 전쟁경험을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형의 적자 생존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다.

  의사인 형은 불치의 병에 걸린 소녀를 실수로 죽게 만든 뒤 병원일을 등한시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기이한 사건으로부터 소설이 전개된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형의 소설쓰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형의 소설이 끝나지 않으면 자신도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초조한 마음으로 형의 소설을 찾아 읽는다. 형의 소설이 이 소설 안에 다시 삽입됨으로써 이 작품은 액자(額子) 소설적인 구성을 갖게 된다. 형의 소설 속의 이야기는 6.25를 전후해서  형이 군에서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담고 있다. 지적이며 인간적인 신병 김일병과 무자비하고 냉혹한 직업군인인 오관모 중사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형은 끼어 있었다. 소설은 자신을  포함한 이 세 사람이 패잔병으로 남아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묘사한다. 동굴의 피신처에서 세 사람은 고립되는데,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김일병을 오관모가 학대하는 것을 보면서 형은 김일병을 죽이는 것이 김일병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형의 소설은 여기에서 멈추어 있다.

  다음날 동생은 자기를 떠난 애인의 결혼식날이어서 묘한 흥분을 가지고 그림을 시작하는데, 형이 들이닥쳐 애인을 빼앗긴 동생을 야유하면서 화폭을 찢어버린다. 그 후 동생은 형의 방에 들어가서 형의 원고를 확인한다. 소설은 결국 오관모가 김일병을 쏘아버리는 것을 형이 목격하고 다시 형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오관모를 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 다음 동생은 형이 만취해 들어와 지금까지 써온 소설을 불태우고, 죽었다고 믿었던 오관모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허탈해하는 것을 본다.

  형은 김일병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자신의 실수로 죽은 소녀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만큼 인간적인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혹독한 적자생존의 현실을 경험하면서 이기적인 생존의 본능에 매달리는 사람이다. 오관모를 쏜 것 역시 불의에 대한 응징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본능의 작용이며 더 나아가 그의 내부에 있던 충동적인 살의의 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형이 삼각관계에서 지금의 부인을 쟁취하는 것이나 구걸하는 거지아이의 손을 무심코 짓밟는 것 역시 이러한 삶의 태도의 일부다. 형을  이렇게 현실과의 싸움에 있어 적극적인 인간으로 만든 것은 물론 6.25의 경험이다. 하지만 형은 그토록 끔찍한 현실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동생은 형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며 무기력한 인물이다. 그는 형과 같이 격렬한 생존투쟁의 논리를 멀리하고 애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도 담담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구체적이지 못한 존재론적 아픔을 겪으면서 그림을 통해 예술적인 승화를 이루려고 한다. 하지만 동생에게는 외부세계와의 구체적인 싸움을 벌여나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전쟁 때문에 전상자가 된 형은 구체적인 상처를 가진 '병신'이고, 그런 구체적인 상처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동생은 '머저리'이다. 형에게는 분명한 아픔의 근원이 있고 치유의 몸부림도 있지만 동생의 경우 그것은 불투명하다. 결국 동생은 "나의 아픔 가운데에는 형에게서처럼 명료한 얼굴이 없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동생의 의식은 전쟁 경험 세대와 그 후의 세대간의 정신적 단절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6.25라는 경험을 통한 정신적 질환의 문제를 세대적인 갈등으로 그려냄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상처와 내적인 억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여준다.  < 상처의 두 가지 존재방식 - 이광호 (문학평론가. 서울예전 강사) >



교과서(오세영·서대석 공저, 구인환·김흥규 공저)에 수록된 일부 장면 감상

  이 장면은 '나'가 형이 쓴 소설을 마저 읽고 난 뒤의 생각과 형이 돌아와서 소설을 불태우려 하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형이 쓴 소설―6·25 전쟁 당시 형이 체험했던 것을 기록한 듯한 자서적적인 작품―작을 통해 형이 기존의 극도의 환멸과 죄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되고, 이를 통해 형을 이해할 수 있게 됨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형의 적극적인 자기 극복 의식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서 '나'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그 아가씨 오늘 결혼해 버렸어요'라는 형수의 말에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즉, 사랑하는 여자를 적극적으로 붙잡지 못하고 기존의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자기 연민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장면은 형이 소설을 불태우면서 '나'에 대해 질책하고 있는 부분으로, 형은 '나'를 '머저리 병신'라고 규정짓고 있다. 형의 나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아가씨(혜인)와의 관계를 부각시키면서 제시해 주고 있다. 즉, '나'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귐도, 그림 그리는 것은 실패한 채 패배감만을 안고 사는 무력함에 빠져 있어, 삶에 대한 적극적 의식이 결여된 존재로 규정받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은연중 '나'는 수긍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함에도 '나'는 형이 육이오 전상자라는 체험 속의 피해 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형의 '나'에 대한 이러한 의식에 대해 일종의 반발 의식을 보여주고 잇다, 한편, 형은 자신이 소설을 불태우는 것에 대한 이유의 하나로 '관모'―적진에 고립되어 있을 때에 형의 피해 의식 속에 자리잡은 폭력적 인물―와의 만남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작품 전체에 있어서 형의 내부적 갈등을 해소시키는데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장면은 형이 소설을 불태운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동시에 나의 생각이 드러난 부분이기도 하다. 형은 오관모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소설 속에서 오관모를 죽인 것은 다만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폭력에 굴복한 그 자신의 비굴함은 소설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여전히 엄연하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고통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가를 여기서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관모 또는 폭력에 대한 적의가 그것인데 그는 '참새 가슴'의 소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로 견뎌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생은 어떠한가. 그도 아파하지만 무엇 때문에 아픈지는 모른다. 또는 그는 사실은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다고 엄살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맞서 싸울 대상이 없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생의 의욕을 상실한 무기력한 존재로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중요한 것은 그가 그같은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直視)하고 있으며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에 대한 직시와 정확한 인식이야말로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니, 그 또한 자신의 문제와 적극적으로 대결하는 인간으로 변해 갈지도 모른다.


'형'과 '나'의 차이

형은 현실 지향적, 적극적 대처, 뚜렷한 상처, 관념 극복

아우(나)는 관념 지향적, 수동적 관조, 대상이 없는 아픔. 현실 도피



"병신과 머저리"의 두 개의 대립축

 동인 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1950년대 전후(戰後) 소설의 허무주의적이고 난삽한 작품 세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재척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두 개의 대립이 작품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6·25 세대인 형과 '나'와의 대립이 그것인데, 이 대립은 경험과 관념의 마찰이라는 문제로 나타난다. 작품의 모티프로서 주어지고 있는 6·25 동란 때의 전장에서의 살인 행위는 형에게는 직접의 경험을 이루고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다만 관념인 것이다. 의사인 형은 있을 수 있는 환자의 죽음 이후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데, 그러한 자기 동요는 스스로 쓴 소설이라는 관념을 통해 전장에서의 동료 살해를 확인함으로써 수습된다.

 기존 소설에서 보여 준 두 가지 대립은 한쪽만의 일방적인 승리로써 그 대립은 해소된다. 그러나 이 작가는 항상 복잡한 구성을 통해 그러한 안이한 해소를 방지한다. 바로 이것이 이청준이 같은 세대의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감정 개입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논리적인 문체와 액자 소설 양식 등이 보여 주는 형식적 완결서의 추구가 그 이후의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병신과 머저리'의 인물 '형'에 대한 해석의 문제

 그림과 (형의) 소설, 형과 아우의 관계는 분신의 관계여서 연대 의식과 모방과 반발이 꼬리를 잇는다. 형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자 '나'는 그림에 손이 가지 않고, '형이 김 일병을 죽이기 전에는 나의 일을 할 수가 없다'하고, 형의 소설에 몰래 가필(加筆)하고 나자, 화폭에도 일부 손을 댈 수 있게 된다. 형의 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인데, 거기에 동생이 가필하게 되는 경우를 보자.

 매일 저녁 나는 형의 소설을 뒤져 보고 어서 끝이 나기를 기다렸지만, 관모(형의 작중 이물)는 항상 아직 골짜기 아래서 가물거리고 있었고, 김 일병은 형의 결정을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었다. ……나는 화풀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표범 토끼 잡듯 김 일병을 잡았다. 김 일병의 살해범이 누구인지 확실치도 않은 것을 '나'로 만들어 버렸다.……

 이 때의 '나'는 형이면서도 나[가필자(加筆者)]다. 흉내를 통하여 그 형제의 분신(分身)성이 교묘히 암시된다. 그 소설 속의 소설에 '나'로 나오는 필자 형은 의사이면서도 시인이다. 그의 소설은 매우 감동적인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아우도 형에 끌려들지만, 이것도 저것도 설어서 캠버스는 거의 공백…… 이런 점에서 '형'을 무기력한 '인습의 세대'로 보는 세대론적 견해는 '병신과 머저리'의 알레고리를 간과한 결과다. 형은 의사이면서도 예술가다. 형을 예술가로 보지 않으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형의 소설'을 무시해 버리는 결과가 된다. (출처 : 이보영, '시원(始原)의 모색 : 이청준론'에서)



이청준 소설의 인물형과 주제 의식

 이청준적 인물은 유년 시절에 가족 관계의 비정상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입어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끌어 나가지 못한 인간의 분신들이다. 이들은 사회적·문화적 변동 때문에 그들의 삶을 지탱해 나갈 재래의 관습·질서 체계를 잃는다. 거기에서 그들의 불안은 시작되고, 그 불안은 그들의 사회의 변두리로 내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의 불안은 변동의 의미를 부인하려는 안일주의자들에 대한 뚜렷한 비판이 된다. 즉, 시효가 지난 것 같은 이청준적 인물들의 불안은 아노미 현상 중의 하나여서 과거의 질서 체계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혐오를 동시에 표상한다. 보다 더 문화사적인 표현을 한다면 이청준적 인물들은 몰락해 가는 질서 체계와 새로이 흥기되는 질서 체계 사이에 있어서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자신을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기인으로 만든다. 그 기인은 새로운 체계 속에서 본다면 복고주의자이며, 과거의 체계 속에서 본다면 유일한 생존자이다. 그 기인들은 그들이 서식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한 척도이다. (출처 : '장인(匠人)의 고뇌 : 이청준과 그의 작품'에서)



이청준(李淸俊 1939- )

 소설가. 전남 장흥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65년 제7회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퇴원(退院)" 당선이 되어 문단에 데뷔. "병신과 머저리"로 제13회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이어도", "잔인한 도시", "살아 있는 늪" 등으로 이상문학상 등 수상. 작품의 경향은 지적 방법으로 현실 세계의 부조리, 불합리 정밀하게 해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과 진실에 대해 성찰하는 경향을 보임. 외에도 대표작으로 "매잡이",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자유의 문", "소문의 벽" 등 있음.

 이청준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삶과 현실은 대단히 다양하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첫째 "줄", "매잡이", "과녘", "줄광대"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장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 둘째 "빈 방", "황홀한 실종", "퇴원"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의 어떤 정신적인 상처가 개인의 정신적·생리적 이상현상을 일으킨 삶, 셋째 "서편제", "남도 사람들", "선학동 나그네" 등 남도의 '소리'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세계, 넷째 '언어사회학 서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떠도는 말들", "자서전들 쓰십시다", "지배와 해방", "다시 태어나는 말"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말'의 상실 및 추구의 세계, 다섯 번째가 "개백정", "뺑소니 사고" 등에서 볼 수 있는 폭력적인 현실의 체험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액자 형식과 서술 시점의 특징

 이청준 소설의 기술 양식상 특징은 액자 소설적 방법의 사용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한 인물이 자신의 사고의 질서에 의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타인들에게 관찰당하고, 그 관찰의 결과가 종합됨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는 한 인물에게, 그 인물에게 합당하다고 알려진 의식 체계를 부여하는 대신에 그 인물을 둘러싼 관찰·보고를 종합함으로써 그를 존재하게 한다. 그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그런 의미에서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된다. '병신과 머저리' 역시 이야기 속에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비교적 짧은 내부 이야기를 내포하는 소설 구성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액자 소설은 이야기의 외부에 하나의 서술자의 시점이 설정되는 한편, 내부 이야기에서는 동생인 '나'가 다른 화자의 서술 시점을 대표하여 층위가 다른 서술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형'의 세계관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세계관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출처 : 구인환 김흥규 저 문학교과서)



'병신과 머저리' 이해하기

소녀의 수술 실패를 계기로 돌연 병원을 닫고 매일 술을 마시며 느닷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과, 의지의 모습으로 신을 위협하는 인간의 얼굴을 그리고자 하지만 둥그런 얼굴 윤곽만 그리고 더 이상 그리지 못하는 화가인 동생.

형은 6·25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존재로, 동생은 환부다운 환부를 갖고 있지 않은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형은 참전 세대로서 6·25의 체험을 생생한 아픔과 과실 치사의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동생인 '나'는 그런 절실한 체험도 없을뿐더러 무기력하게 자신을 포기한 존재이다. '나'는 인간의 원형적 얼굴을 그려 내려고 하지만 그림은 늘 진전이 없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얼굴'을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과 까닭 모를 패배감에 젖어 있다.

이와 같은 기질과 인생관을 지닌 형제는 강렬하게 부딪힌다. '혜인'을 붙잡지도 못하고 그림으로 자신의 억눌린 욕구를 표현하고자 하는 '나'와 극한 상황의 비인간성 속에서 자신에 대한 극도의 환멸을 맛보았던, 그리고 그 환명에 대한 분출구로써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이 갈등을 빚는 것이다.

우선 형은 자신이 쓴 소설의 결말을 동료(김 일병)를 쏘아 죽인 상급자(오관모)를 자기가 직접 쏘아 죽이는 것으로 씀으로써, 현실과의 싸움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미리 포기하는 것보다 싸우다 파괴되는 것이 훨씬 성실한 삶이라는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 결국, 형의 소설 쓰기는 체험의 회고가 아니라 자기 연민을 벗어나고자 하는 완벽한 재구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형이 자신의 전쟁 체험을 소설 쓰기나 상급자(오관모)와의 극적인 상봉을 통하여 해소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참담한 비애를 느낀다. 그에게는 형과 같은 뚜렷한 정신적 상처도 없고 근원이 분명한 심리적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은 어디서 온 것인가. 혜인의 말처럼 형은 6·25의 전상자이지만, 아픔만이 있고 그 아픔이 오는 곳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지금 나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

결국, '나'는 형과 같은 구체적인 갈등 속에서 외부와 싸우기보다는 수동적인 관조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는 가운데 점점 소멸의 시간들을 맞이해 가고 있다. '병신과 머저리'는 바로 '나'인 셈이다.



'병신과 머저리'의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6·25라는 전쟁의 한복판을 체험했고, 지금은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형'과, 절실한 체험도 없이 아픔의 껍데기만을 간직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화가인 '나'를 통해 한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다른 아픔을 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형은 소설 쓰기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만 나는 애인도 잃고, 그림도 못 그리는 무기력 속에서 '병신과 머저리'로서의 삶만을 영위한다. 이청준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당대의 역사적 의미나 이념적 성격을 문제삼기보다는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실존적 의미를 날카롭게 질문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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