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캐츠비 / 해설 / 피츠제럴드
by 송화은율
위대한 캐츠비 / 피츠제럴드
이 작품은 일인칭 소설로서 닉 캐러웨이라는 중서부 출신의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나>, 즉 닉 캐러웨이는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제 1 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후에 동부로 나와 뉴욕의 교외 웨스트 에그에 거주하면서 뉴욕의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웃집은 40에이커나 되는 정원을 가진 거대한 저택이다. 주인은 제이 캐츠비라는 사람인데, 저녁마다 많은 손님들을 모아 호화로운 파티를 열고 있다. 풍문에는 그는 살인 전과자요, 독일의 스파이요, 주류 밀매업자라는 것이다.
만(萬)을 건너 대안(對岸)의 이스트 에그에 사는 톰 부캐넌은 시카고의 부호이며 닉 캐러웨이와 예일대학 동창이다. 톰의 아내 데이지는 닉과는 육촌간이며, 여류 골프선수 조던은 데이지와 함께 체류하고 있는데, 그녀는 데이지의 결혼 때에 들러리였다.
닉은 캐츠비 집에 초대를 받고 간다. 거기서 닉은 조던 베이커를 만나고 이어서 개츠비의 비밀을 알게 된다. 개츠비는 노드다코타의 농가 출신인데, 루이스빌의 훈련소에 있을 때 데이지를 알게 된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부(富)와 미모에 매혹되었으며, 마침내 데이지의 사랑을 받게 된다.
개츠비는 프랑스 전선에서 무훈을 세우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 머무른다. 그러나 개츠비가 미국에 돌아왔을 때는 데이지는 이미 톰과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떠난 뒤였다.
개츠비는 돈을 벌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각고 끝에 마침내 거대한 부를 얻게 되자 곧 데이지가 사는 저택의 대안에 있는 대저택을 사서 든다. 그리고 연일 파티를 여는데 그것은 데이지와의 재회를 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츠비와 데이지는 닉의 주선으로 닉의 집에서 만난다. 데이지가 캐츠비 집에 자주 오게 되자 캐츠비는 파티를 중단한다. 이제는 파티를 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츠비와 닉은 톰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개츠비, 닉, 톰, 데이지, 조던 베이커 등 다섯 사람은 뉴욕으로 나간다. 들어간 어느 호텔에서 톰은 개츠비에게 심한 모욕을 주고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양자택일할 것을 강요한다. 드디어 파티는 깨지고 데이지와 개츠비는 먼저 이스트 에그로 돌아오는데 데이지가 개츠비의 차를 운전한다.
도중에 차고(車庫)의 주인 윌슨의 아내 머틀이 느닷없이 이 차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머틀은 톰의 정부였으며, 뉴욕의 아파트에서 밀회를 거듭해 왔다. 머틀은 차에 톰과 데이지가 탄 것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데이지는 사람을 치어놓고 그냥 뺑소니친다.
몹시 흥분한 윌슨에게 뒤늦게 도착한 톰은 사태를 알아차리자 그 차의 주인이 개츠비임을 윌슨에게 알려준다. 윌슨은 그 차의 임자가 자기 아내의 정부라고 단정하고 개츠비를 찾아내어 마침내 그를 쏘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고 만다.
개츠비가 죽었을 때 톰과 데이지는 이미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시골에서 개츠비의 아버지 개츠 씨가 나타난다. 개츠비의 본명은 개츠였던 것이다. 그렇게 많이도 드나들었던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조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닉은 개츠비의 죽음을 측은하게 생각하여 그를 위해서 조객들을 끌어들이려고 애쓰나 아무도 응하지 않는다.
비오는 어느날 개츠비는 땅속에 묻힌다. 우연히 묘지에 들른 <올빼미 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내가 기껏 한다는 소리가 "개새끼 같으니라고!"였다. 아닌게아니라 이 욕설은 개츠비의 헛된 죽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지도 모른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되찾으려는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갔다. 그의 잘못은 그의 꿈을 오직 돈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데 있다. 돈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던 당시 미국의 가난한 청년들의 공통된 꿈은 개츠비에게서 여지없이 깨지고 마는 것이다.
닉은 깊은 환멸에 빠진다. 톰과 데이지가 좀더 인간적이었더라면 개츠비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닉은 홀연히 서부로 돌아간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쓴 후에도 여전히 파리를 왕래하면서 낭비생활을 계속했으며,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잡지에 단편소설들을 팔아야 했다. 이 무렵에 씌어진 단편들을 모아서 된 것이 《모든 슬픈 젊은이들(All the Sad Young Men)》이다.
1927년부터 젤더의 정신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한다. 이듬해에 젤더는 파리에서 댄스 레슨에 열중한다. 이윽고, 젤더에게는 조발성치매증이라는 진단이 내린다. 정신병자인 아내와의 생활은 그를 더욱 불안과 초조 속으로 내몰았다. 그도 이미 알콜 중독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929년 워 가에서 시작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은 30년대 초를 지극히 어려운 시대로 만들었다.
피츠제럴드는 심신이 매우 지쳐 있으면서도 다시 분발하여 과거를 청산하는 대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재즈시대라고 불리는 20년대의 생활상을 기록하려는 작가적 야심에서 20년대의 슬픈 기억에 훌륭한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 바로 그의 제 4 장편 《밤은 정다워라(Tender is the Night)》이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1938년 1월부터 4월까지 <스크리브너즈>지에 연재된 후에 출판되었느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렵에는 미국에 1천 5백만이라는 실업자가 있었고 뉴딜 정책이 실시된 직후인지라 정신병 환자와 알콜 중독자와의 사랑의 파탄 이야기 따위는 부르조아의 잠꼬대와 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점은 이 작품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수정을 거듭하여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낸 그의 투지와 재능에 있다 하겠다.
《밤은 정다워라》 는 주제 면에서는 인생의 좌절과 사랑의 파국을 처절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키이츠의 <나이팅게일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 '벌써 나와 함께 왔구나! 밤은 정다워라'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밤은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는 닉 다이버라는 한 의사의 몰락 과정이 10여 년간에 걸쳐서 추적되고 있다. 알콜 중독자인 남편 딕 다이버와 정신병환자인 아내 니콜워린과의 사랑은 드디어 파탄이 오고 딕과 미모의 여배우 로즈메리 호이트와의 플라토닉 러브도 3년 이상을 못간다. 요컨대 딕은 부자집 딸에게 장가를 들었으나 아내의 계급에 동화되지 못하고 아내가 속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소외자요 고집자요 열등자이다. 딕 다이버는 니콜 워린의 주치의에 불과하며 그 보수로 그는 화려한 낭비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밤은 정다워라》는 <몰락과 파멸의 시>와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딕 다이버는 이러한 파멸 인간의 상징이며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1937년, 30년대의 대공황이 끝나갈 무렵에 피츠제럴드는 헐리웃에 가서 희곡을 써야만 했다. 그는 아내의 입원비와 딸의 교육비를 벌어야 했던 것이다.
그가 홀리웃에서 쓴 희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그는 이 작품을 공동 집필했고, 그밖에 그의 가장 유명한 자작 단편 《바빌론 재방》을 손수 희곡화했다. (이것은 종전 후에《내가 마지막 본 파리》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어 팬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그는 또한 《패트 호비 스토리(Pat Hobby Story)》를 1939년부터 <에스콰이어> 지에 17편을 발표했으며, 《최후의 거물》이라는, 헐리웃을 무대로 한 장편을 쓰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의 질병(심장마비)으로 비록 완성되지는 못했으나, 헐리웃을 무대로 한 소설로서는 가장 훌륭한 작품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1940년 12월 21일, 심장장애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에는 도로시 파커라는 여류작가 한 사람만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개츠비가 죽었을 때 올빼미 눈을 한 사내가 나타나서 개츠비의 죽음에 조의를 표한 것과 공교롭게도 일치했던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의 묘비명에 새길
너의 책은 너의 서람 속에 있을 텐데
너의 머릿속의 어떤 미완성 혼돈은
위대한 운명의 여신 때문에
무(無)로 돌아갔다.
란 시를 남겼는데 아닌게아니라 피츠제럴드는 그의 위대한 재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 파탄 때문에 멸망한 셈이다.
그러나 그의 장편 《위대한 개츠비》와 《밤은 정다워라》. 그리고 몇몇 단편들만으로도 그를 현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을 만하다.
피츠제럴드가 죽기 전에 그를 사랑했던 시러 그레엄이라는 여성은 그의 만년의 생활을 《사랑스러운 배반자》(1958년)라는 전기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의 사후에 친구 에드먼드 윌슨(Edmend Wilson)이 편집·출판한 《붕괴》(1945)에는 작가의 자기 폭로적인 애처로운 작품들을 비롯하여, 에세이·서한문·메모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밖에도 앤드류 턴블 편의 《서한집 》, 아아더 마이즈너 편의 미발표 단편·에세이집 《작가의 오후》등이 간행되었다.
미국의 꿈과 그 퇴락상을 그린 수작
프란시스 스코트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는 1896년 9월 24일 미국의 중서부 미네소타 주 세인트 포올에서 출생했다.
그의 외가 쪽은 부유했으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부터 피츠제럴드는 가난한 소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 때문에 돈과 성공에 대한 꿈은 그의 평생의 집념이 되었다.
외가 덕으로 동부 뉴저지 주의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다니는 뉴먼 가톨릭 스쿨을 거쳐 1913년에 같은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으나, 그는 늘 자신이 <가난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게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학시절엔 그는 대학의 극단 <트라이앵글 클럽>에 들어가 대본을 쓰기도 하고 대학 교지 <호랑이>의 편집부원이 되어, 시·단편 등을 기고하는 등 활발한 문예활동을 했으나, 반면, 학업에는 그다지 충실하지 못했다. 이 무렵, 그는 영국의 시인 존 키이츠에게 경도했다.
1917년, 미국이 마침내 제 1 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피츠제럴드는 대학을 마치지 못한 채 군대에 입대했다. 소위에 입관하여 캔자스 주 포트 레븐워어드의 캠프에 들어갔는데, 그는 당시 매우 시원찮은 무능한 장교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가만 있으면 원고를 쓰는 데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켄터키 주로 옮겨간 그는 원고를 완성하여 스크리브너즈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작품의 제목은 《낭만적 이기주의자》였는데, 이것이 후의 《낙원의 이쪽(The Side of Paradise)》의 초고가 된 것이다.
4월에는 조지아 주로, 6월에는 앨라배마 주로 전속했다. 9월에는 그의 일생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몬트거메리 재판소 판사의 딸 젤더 세이여(Zelda Sayer)라는 남부의 금발미인을 만난 것이다.
그는 곧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약혼까지는 했으나 곧 결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재능이 있고 미남이기는 했으나, 다만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1919년 2월에 제대한 피츠제럴드는 뉴욕에서 낮에는 광고문을 써서 생활하고 밤에는 단편을 써서 돈을 벌고자 했으나, 겨우 단 한편이 <스마트 세트>지에 팔렸을 뿐이다. 그것은 1919년 9월호에 발표된 《숲속의 아기들(Babes in the Woods)》이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겨우 30달러를 벌었을 뿐이니 결과는 비참했으며, 게다가 6월에는 젤더가 약혼을 파기했다.
자포자기가 된 그는 뉴욕에서 3주 동안 마구 술만 퍼마시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서 옛 원고를 석달 도안에 걸쳐서 손질했다.
드디어 탈고하여 스크리브너즈사에 보냈더니 편집자 퍼킨즈 씨로부터 수락한다는 서신이 왔다. 소설의 제목은 《낙원의 이쪽》이었고, 이것은 영국 시인 루퍼트 브룩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1920년 3월 26일, 이 작품이 발표되자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의 명성도 일약 유명해졌다. 그가 쓴 단편의 고료도 껑충 뛰어오르고 돈도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성과 돈이 생긴 피츠제럴드는 젤더와 곧 결혼하였으며, 아내와 함께 뉴욕에서, 그리고 유럽에서는 파리와 남프랑스 해안과 리비에라 등지에서 화려한 낭비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은 그의 두 번째의 장편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Beautiful and Damned)》처럼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이었으며 , 그의 세 번째의 단편집 《모든 슬픈 젊은이들(All the Sad Young Men》처럼 슬픈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가 한낱 미국의 20년대, 즉 재즈시대의 인기 작가에 그치지 않고 미국 소설사의 위대한 작가로서 헤밍웨이, 포크너와 더불어 명성을 같이하게 된 것은 그가 세 번째의 장편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1925년에 발표한 후부터였다.
《위대한 개츠비》가 발표되자 미국의 일류 비평가와 작가들, 즉 멘켄, 거트루드 스타인, 아디스 워튼 등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T·S·엘리어트는 "헨리 제임즈 이후의 미국소설이 내디딘 최초의 일보"라고 절찬했다.
과연 이 소설은 그러한 찬사를 받을 만했다. 이 소설은 기교 면에서 보더라고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고 주제면에서는 미국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돈과 성공>에 대하여 그의 특유한 서정적인 문체로 잘 다루었다. 이것은 헤밍웨이나 포크너의 걸작처럼 미국생활과 미국의 문학적 재능이 잘 나타난 걸작이라 하겠다.
낭비 생활 때문에 재능과 정력을 탕진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던 피츠제럴드는 거의 기적적으로 그의 재능을 십이분 발휘, 훌륭한 작품을 낳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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