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原稿紙) / 본문 일부 및 해설 / 이근삼
by 송화은율원고지(原稿紙) / 이근삼
등장 인물
중년 교수(中年敎授) : 본직(本職) 번역
처(妻)
장남(長男)
장녀(長女)
감독관(監督官)
천사(天使)
막(幕)이 오르기 전, 요란스러운 통속(通俗) 음악이 들린다. 음악이 차차 요란해질 무렵, 스포트라이트[무대를 조명하는 장치의 하나. 볼록 렌즈를 써서 무대의 한 부분만을 특히 밝게 비추거나 햇빛 또는 달빛과 같은 효과를 냄]가 무대 전면(막 앞) 중앙에 서 있는 장녀를 포착한다. 꽉 몸에 낀 화려한 색의 블라우스와 캐프리 팬티를 입고 있다.
무지무지한 젖통이와 뒤로 사정없이 바그라진 엉덩이에, 관중들은 첫 장면에 위압을 느낀다. 입이 보통 여자의 서너 배는 된다. 빨간 칠을 한 아가리[그릇 따위의 물건을 넣고 꺼내는 데. 여기서는 입의 속어]가 전 안면의 삼분의 이는 차지한다[장녀의 천박한 성격을 극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프에 번쩍이는 귀고리, 목걸이, 손목걸이가 관중들 눈에 거슬린다. 나이는 스물 셋쯤, 이야기하는 동안 끊임없이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음악이 멎는다.
장녀 : (멋들어지게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바쁘신 데 이렇게 많이 모여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제 소개를 먼저 할까요? 여러분들은 저한테 소개할 필요가 없어요.
<중략>
(이 때, 서서히 막이 오른다.)
그럼, 저의 집으로 안내하겠어요.
(장녀, 무대 좌측(左側)으로 걸어간다.)
이것이 응접실입니다.
(장녀, 좌측으로 사라진다. 관객석 가까운 곳에 책상과 의자 하나가 전면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책상 위에는 원고지가 그득히 쌓여있다. 소파는 흔히 볼 수 있는 형이지만 씌운 카아바의 무늬는 원고지의 칸 그대로다. 무대 우측에 보이는 벽이 일부분과 후면에 서있는 긴 벽의 모습도 흡사 원고지를 곧추[아래 위가 곧게] 세운 것 같다. 벽의 무늬들도 원고지의 칸 그대로다[무대 배경을 원고지로 가득 채운 것은 사실적인 무대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양상이 표현주의 극의 특성인데, 이처럼 과장된 표현을 통해 현대인의 심리를 극단화시킨다.]. 후면벽 우단에 바깥하고 통하는 도어가 있다. 동물원의 코끼리 우리 같은 철창을 방불케 하는 도어, 형무소의 철문 같다고 함이 좋을지도 모른다. 후면 벽에 큼직한 창이 뚫려있다. 소파 앞에는 신문지가 몇 장 흩어져 있다. 좌측 무대 중간쯤에 푸렛트 이 중앙을 향해 45도 각도로 위치해있다. 푸렛트홈 후면에도 역시 벽이 있지만 이 벽은 화려한 색깔로 칠이 되어있다. 이 푸렛트 홈은 장녀 및 장남의 방이다. 한구석에 역시 고운 색깔의 소파가 있어 이 위에 미끈하게 생긴 장남이 길게 누어있다. 이방에는 라디오, 축음기를 비롯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치품이 여기저기에 늘어져있다. 큼직한 괘종시계도 하나 전체적으로 소왕국 같은 인상을 준다[방 안에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어 하나의 작은 왕국을 방불케 한다.] 우측에 비해 좌측 푸렛트 홈의 방이 굉장히 밝다. 관객들은 우측 방과 좌측방 사이에 벽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이것은 희곡에 있어서 컨벤션(convention)에 해당한다. 극을 전개하기 위해 관객과 극작가 사이에 미리 어떤 약속을 해 두는 것이다. 표현주의 극에서는 무대 배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아도 된다. 외면적인 무대 배경을 단순화하는 대신, 인물의 내면 심리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우측방 즉 응접실 소파 뒤에 굵은 줄이 칭칭 감긴 막대기가 하나 서있다. 장남이 일어선다. 그러고서는 관중에게 이야기한다)
장남 : 전 이 집 장남입니다. 이 쪽 높은 방은 저하고 누이가 함께 생활하는 곳입니다. 아버지를 소개하기 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을 말씀드리겠어요. 아주 간단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됩니다. 밥 세 끼도 제대로 못 먹이고, 학비도 제대로 못 주는 부모들이, 아들딸이 결혼할 때가 되면 아주 귀찮게 간섭을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집이 비교적 행복한 것도 우리 부모님의 열렬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자기 손목 시계를 보며) 지금이 저녁 일곱 시 반이니, 아마 아버지가 곧 돌아오실 겁니다. 아버지는 늘 쾌활한 얼굴에다 발걸음은 참새처럼 가볍지요[장남이 이렇게 아버지의 모습을 소개하지만, 관객이 정작 관찰하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피곤에 지쳐 있는 모습이다.].
(졸음이 오는 지루한 음악과 더불어 철문(鐵門) 도어가 무겁게 열리며 교수 등장. 아래위 양복이 원고지를 덧붙여 만든 것처럼 이것도 원고지 칸투성이다. 손에는 큼직한 낡은 가방을 들고 있다. 허리에 쇠사슬을 두르고 있는데, 허리를 돌고 남은 줄이 마루에 줄줄 끌려 다닌다. 쇠사슬이 도어 밖까지 나가 있어 끝이 없다. 도어를 닫고 소파에 힘들게 앉는다. 여전히 쇠사슬을 끌고다니면서, 가방은 자기 옆에 놓고 처음으로 전면을 바라본다. 중년에 퍽 마른 얼굴,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고, 찌푸린 얼굴은 돌 모양 변화가 없다. 잠시 후, 피곤하다는 듯이 두 손을 옆으로 뻗치면서 크게 기지개를 한다. '아아' 하고 토하는 큰 하품은 무엇에 두드려 맞아 죽은 비명같이 들려, 오히려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장녀가 플랫폼에 나타난다.)
장녀 : 저의 아버지랍니다. 밖에서 돌아오시면 늘 이렇게 달콤한 하품을 하신 답니다.
(교수는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고 있다. 코를 고는데, 흡사 고양이 우는 소리다.)
인제 어머님이 돌아오세요. 어머님은 늘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세요.
(적당한 곳에서 처가 나타난다. 과거에는 살도 쪘지만, 현재는 몸이 거의 헝클어져 있다. 퇴색한 옷을 입고 있다. 소리를 안 내고 들어와, 잠자는 교수의 주머니를 샅샅이 턴다. 돈을 한 주먹 쥐고, 이어 교수의 가방을 턴다. 돈 부스러기를 몇 장 찾아내고 그 액수가 적음에 실망을 한다. 잠시 후, 교수를 흔들어 깨운다.)
장녀 : 제 말이 맞았지요? (플랫폼 방 불이 서서히 꺼진다.)
처 : 여보, 여기서 그냥 주무시면 어떡해요, 옷도 안 갈아입으시고.
교수 : 깜빡 잠이 들었군.(교수 일어선다.)
처 어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처는 교수 허리에 친친 감긴 철쇄를 풀어 헤치고, 소파 뒤에 긴 막대기에 감겨 있는 또 하나의 굵은 줄을 풀어 교수 허리에 다시 감아 준다.)
옷을 갈아입으시니 한결 시원하지 않아요?
교수 : 난 잘 모르겠어.
처 : 김 씨 만나 봤어요?
교수 : 아니, 원체 바빠서.
처 : 그렇지만 김 씨 만나는 일이 제일 바쁘지 않아요? 내일까지 내야 하는데 전 어떡해요?
교수 : 내일 만나, 내일 만나.
처 : 내일 누가 누구를 만난단 말이요?
교수 : 내가 그 이 씨를 만난다니까.
처 : 이 씨는 또 누구요?
교수 : 당신이 만나라는 출판사 주인 말이야.
처 : 그 주인이 왜 이 씨예요? 김 씨지.
교수 : 그래, 김 씨랬어.
처 : 이름도 못 외고 어떻게 해요?
교수 : (화를 내며) 김 씨면 어떻고 이 씨면 어때? 박 씨면 또 어때? 아닌게 아니라 누가 누군지 분간을 못 하겠어. 누굴 만난다고 찾아가다가 보면 영 딴 사람한테 가게 된단 말이야. (잠시 사이) 거 애들보고 음악이나 한 곡 틀라고 하시오.
처 : (순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옆방을 향하여) 얘들아. (잠시 후) 얘들아.(대답이 없다. 여전히 부드럽게) 얘들아.
장남 : (처의 소리와는 정반대로 호령이나 하듯이) 왜 그래요?
처 : 가벼운 음악이나 한 곡 틀어라. 아버지가 피곤하시단다.
장남 : 알겠어요! (옆방에서 축음기 소리가 난다. 시끄럽고 귀가 아픈 곡이면 어떤 음악이건 상관없다. 판이 고장이 난 듯, 똑같은 곡이 되풀이된다. 처는 무표정한 얼굴. 교수는 시끄럽다는 듯이 손으로 귀를 막는다. 참다못해 교수는 손을 흔들며 중지하라는 시늉을 한다. 음악이 멎으며 옆방이 밝아진다. 소파에 앉아 무엇을 처먹고 있는 장남과, 아무렇게나 앉아 화장을 하고 있는 장녀가 보인다.)
교수 : 저런 시끄러운 음악을 무엇 때문에 틀까?
처 : 왜 시끄러워요?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교수 : 좋건 나쁘건 간에 왜 똑같은 곡을 되풀이하느냐 말이오?
처 : 당신이 음악을 몰라 그래요. 애들은 좋다고 하던데.
교수 : 그 곡이름이 뭐지?
처 : "찬란한 인생"이라 나요.
교수 : 찬란한 인생이라. 찬란한 인생이 자꾸 되풀이된다는 말이군.
처 : 그런가 부죠. (교수가 소파 앞에 굴러 있는 신문지를 집어 본다.)
교수 : (신문을 혼자 읽는다.) 참 비가 많이 왔군. 강원도 쪽의 눈이 굉장한 모양인데. 또 살인이야. 이번엔 두 살 난 애가 자기 아비를 죽였대. 참,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히 무너졌군.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고. 이것 봐. 내 '개성을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 책이 착취사(搾取社)에서 다시 나왔어. 이 씨가 또 당선됐군.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는데. 끔찍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맞았군.
(처가 신문지를 한 장 다시 접는다. 날짜를 보더니)
처 : 당신도 참, 그건 옛날 신문이에요. 오늘 것은 여기 있는데.
교수 : (보던 신문 날짜를 읽고) 오라, 삼 년 전 신문을 읽고 있었군. 오늘 신문 이리 주시오. (오늘 신문을 받아 가지고 다시 읽는다.) 참, 비가 많이 왔군. 강원도 쪽에 눈이 굉장한 모양인데. 또 살인이야. 이번에는 두 살 난 애가 자기 아비를 죽였대. 참,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히 무너졌군.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 내 '개성을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 책이 악마사(惡魔社)에서 다시 나왔어. 이 씨가 또 당선됐군.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는데. 끔찍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맞았군.
처 : 참, 세상도 무척 변했군요. 삼 년 전만 해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당신 피곤하시죠?
장녀 : (옆방에서 화장을 하며, 장남에게) 얘, 시계가 좀 늦은데 일어선 김에 밥이나 좀 줘라.(장남, 시계에 밥을 준다.)
처 : 여기 좀 계세요. 저 밥을 좀 지을게요.
교수 : 괜찮아, 밥 먹었어.
처 : 어디서요?
교수 : 여기서 먹었던가? 아니야, 거리서 먹었던 것 같기도 하구.
처 : 언제요?
교수 : 오늘 아침에도 먹었고. 점심도……. 글세…… 그러나 보니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분간을 못 하겠군.
처 : 지금 하시는 번역은 언제 끝나요?
교수 : 지금 하는 번역이 몇 가지나 있지?
처 : 그러니까 밤낮 원고료를 짤리우지요. '자존심의 문제', '예술에 있어서의 창조성', '검둥이와 미녀', '어떤 여자의 고백', ……이렇게 넷뿐인가요?
교수 : 그렇겠지. 아이 피곤해.
처 : 어떤 것이건 빨리 끝내야지, 어떻게 해요. 집도 수리해야겠고, 축음기도 사야겠고, 또 이 달에 아버지 생일도 있잖아요.
교수 : 밤낮 생일을 치르고 있으니 어떻게 된 거요? 어제도 아버지 생일 잔치를 했는데.
처 : 당신두 참! 어제 당신 아버지가 생신이었어요. 이번엔 우리 아버지 생일이고.
교수 : 그저께도 누구 아버지 생일이라고 해서 돈 만 환을 내지 않았소?
처 : 그건 대식이 동생 사촌의 며느리뻘 되는 여자의 아버지 생일이래서 그랬지요.
교수 : 그 바로 전날에도 누구 아버지 생일이라고 해서 돈을 냈는데.
처 : 그건 순자 언니 조카뻘 되는 며느리 시누이의 아버지…….
교수 : 됐어, 됐어.(크게 하품을 하며) 아이 피곤해.
(이 때, 밖에서 시계가 여덟 시를 친다. 교수는 깜짝 놀라 일어선다.)
여덟 시야! 여덟 시! 늦겠군.
처 : 어디 가세요?
교수 : 어디 가긴 어디 가. 나 가는 데 모르시오? 옷 갈아입어야지.
(전번 모양 철쇄를 졸라 맨다. 이어, 도어 쪽으로 가서 철문 같은 도어를 열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온다.)
처 : 왜 또 돌아오세요? 나가시기가 바쁘게.
교수 : 여덟 시를 치기에 아침 여덟 신 줄 알았지. 대학에 강의하러 나간다고 나섰더니 밖이 캄캄하지 않아. 생각해 보니 밤 여덟 시군. (소파에 누우면서) 오늘밤은 좀 푹 쉬어야겠군.
처 : 공부는 안 하세요?
교수 : 공부?
처 : 아, 번역 말이에요.
교수 : 좀 쉬어야겠어.
[처] 그럼 좀 쉬시다 일어나세요 전 옆방에 좀 갔다 오겠어요. 참 당신도 옷좀 갈아입으세요.
(전번 모양 철쇄를 바꾸어 맨다 이어 퇴장)
[교수] 아이 피곤해
(이때 고요한 음악이 들린다. 눈을 감고 자는 교수의 얼굴이 처음으로 미소가 돈다. 잠시후 응접실 불이 서서히 꺼지고 푸렛트 홈방이 다시 나타난다. 쑈파앞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처와 쏘파에 자리잡고 있는 장남, 장녀)
[장녀] (처에게 명령조로) 양말 하이힐!
[장남] (처에게 명령조로) 잠바, 마후라!
(처는 말이 떨어질 때마다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순응한다)
[장녀] 용돈 교과서, 과자
[장남] 떡국, 만두국, 설농탕.
[장녀] 영화값, 연극값, 다방값.
[장남] 교재비, 차비, 동창회비. (장남 장녀 같이 손을 내밀면서)
[장녀] 돈!
[장남] 돈!
[장녀] 자식에 대한 책임!
[장남] 자식에 대한 책임!
(푸랫트홈 방의 불이 꺼지며 다시 응접실이 밝아진다. 쏘파에 누어 철쇠마저 어느 사이에 풀어헤치고 행복하게 잠자는 교수가 보인다. 시게가 아홉시를 친다. 시간이 한시간 경과하였음을 표시한다. 이때 창문을 열고 감독관이 방안을 들여다본다. 얼굴이 흉칙하게 생긴데다 아래 위를 까만 옷으로 차리고 있어 지옥의 옥리를 방불케한다. 긴 횟초리를 든 손을 방안에 밀어 넣더니 잠자는 교수를 횟초리로 때린다. 교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작자 : 이근삼(李根三 1929- ) 극작가. 영문학자.
형식 : 희곡. 단막극. 부조리극
성격 : 반사실적. 서사적
배경 : 현대의 어느 교수의 가정
제재 : 현대인의 상황
주제 :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비판과 풍자.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 버린 현대인에 대한 풍자
내용 :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잊어버린 채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한 중년 교수의 가정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삶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희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구성 : 전통적인 희곡에서 요구하는 인물의 전형적 성격보다는 주제 의식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은 부조리극(인생의 무의미, 무목적, 충동성 등을 표현하는 연극의 한 갈래로서, 1950년대 현대인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고발에서 시작되었다.)의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다.
구성
발단 |
막이 오르고 사건이 전개되려고 하는 첫 부분. 시간ㆍ공간ㆍ인물 제시, 극적 행동이 일어나며, 갈등ㆍ분규의 실마리가 제시되는 단계 |
상승 |
사건이 전개되어 갈등이 점점 분명해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단계 |
절정 |
갈등이 절정에 이르는 단계,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되는 단계 |
하강 |
해결의 국면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지는 단계 |
결말 |
사건이 종결되고 갈등이 해소되는 단계 |
발단 : 장녀, 장남, 교수의 처가 차례로 등장하고 인물과 집안이 소개됨.
전개 :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구속을 받는 교수는 피곤에 지쳐 있으며, 교수가 귀가해서 처와 이야기를 나누고, 처의 추궁으로 착란에 빠지게 됨. 교수가 잘못 알고 출근하려다 다시 잠이 듦. 감독관이 나타나 원고 쓰기를 독촉함. 처가 원고를 돈으로 환산하여 챙김
절정 : 환상에 빠진 교수는 자신의 잃어 버린 자신의 꿈을 천사에게서 다시 찾으려 하나 실패하고, 천사는 사라지고 감독관은 또 다시 번역을 독촉함.
결말 : 다시 아침이 되고 무의미한 생활의 반복이 시작됨 - 교수는 장녀의 손에 든 영자 신문마저도 번역하려 할 정도로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며, 감독관은 또 다시 번역을 독촉함.
전체 줄거리 : 대학 교수인 주인공은 아내의 간섭과 핀잔 속에서 거의 정신 착란 증세에 빠져 있다. 자녀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용돈을 요구하고, 그는 선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도 감독관의 원고 독촉을 받는다. 교수는 환상속에서 젊은 날의 희망과 정열을 상징하는 천사를 만난다. 그러나 천사도 사라져 버리고 자식들과 아내, 감독관의 원고 독촉에 짓눌린 교수는 다시 책상으로 다가가서 원고를 정리한다.
특징 : 특별한 사건의 전개나 갈등, 위기가 없이 극중 상황만을 전개한 실험적 기법을 활용하였고, 인물의 전형적인 성격보다는 주제 의식의 표현에 중점을 둠. 무대 장치, 분량, 소도구 등은 물론이고 등장 인물의 대사와 동작 모두가 짙은 풍자와 반어(反語) 및 희극적 과장의 방법을 쓰고 있다.
출전 : <사상계>(1961)
참고
1. 대사
(1) 대사의 종류
① 대화 : 등장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
② 독백 : 혼자 하는 말
③ 방백 : 옆에 있는 다른 등장인물이 듣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등장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어 자기의 의도나 생각을 말하는 방식 → 독백과 방백은 현대의 사실주의 극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음.
(2) 대사의 역할 :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사건을 진행하며 주제를 형상화함.
(3) 대사의 특성
① 연행될 때의 시간 제약 때문에 경제적이고 함축적이어야 함.
② 현실성 확보를 위해 구어를 더 많이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어야 함.
2 . 무대 지시문
(1) 무대 지시문의 종류
① 해설: 시간적ㆍ공간적 배경, 무대 장치 등을 설명함.
② 지문: 인물의 동작, 표정, 말투, 입장과 퇴장, 조명 처리, 인물의 심리 등을 지시함.
(2) 무대 지시문의 역할
① 인물의 대사, 사건의 전개, 극의 주제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을 제시함.
② 행동이 이루어지는 배경을 지시하고 설명함.
'원고지'의 희극적 과장
무대 장치 : 규격화된 틀 속에서 무의미한 일상생활을 풍자하며,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짓눌린 가장의 모습을 나타냄. - 교수가 사용하는 공간을 원고지의 무늬로 꾸미고, 자녀들의 방과 교수의 방의 분위기를 대조시킴.
의상 및 소품 : 물질만능주의의 모습을 그리며, 삶에 대한 압박과 구속을 받는 모습을 나타냄. - 장녀의 화려한 옷차림과 분장, 교수의 원고지 무늬 양복과 쇠사슬
대사 : 대화 단절과 유대감 상실을 풍자하며, 전도된 가족관계를 풍자함. - 자녀들의 소개 내용과 실상의 불일치, 자녀들의 퉁명스러운 말투.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나타내는 다양한 소품 - 똑같은 음악의 반복, 3년 전과 같은 오늘 신문의 내용
- “이근삼 전집 1”
학습 활동
1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음 인물들의 성격적 특성을 정리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에게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게 하게 한 후 그 이유를 생각하게 하면, 인물의 성격은 인물의 언어 표현(대사)뿐만 아니라 언어 외적인 표현(행동, 외양 등)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인물의 성격은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적 작용에 의하여 형성되는 역동적 산물임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 한다.
풀이 :
처 : ‘교수’와 같은 성격의 인물로 타성적인 의무감에 젖어 자식들의 물질적 욕구에 동조한다. 처와 교수 사이에 진정한 인간적 유대감은 없다.
꼼꼼히 읽기
1 교수가 신문을 읽고 있는 장면이 암시하는 바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제시된 장면이 암시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장면은 이야기의 흐름이나 의미 해석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학생들이 작품 전체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 장면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학생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게 될 것인데,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단서를 제공하고 조언을 해 주어 문학 작품에서의 암시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풀이 : 말도 되지 않는 해괴한 사건이 실린 신문을 읽고 있는 장면은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암시하는 것이다.
2 ‘생일’을 화제로 한 교수와 처의 대화에서 드러난 교수의 가정 내에서의 위상을 설명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인물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인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가를 알기 위한 활동이다. 대화의 장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참가하는 인물들의 상대방에 대한 태도, 인물들의 대화 내용에 대한 사실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돋움으로 학생들은 인물들의 위상을 유추하여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풀이 : 처는 교수에게 물질적 요구를 할 따름이며, 교수는 기계적으로 순응할 뿐이다. 이들의 관계는 다분히 물질 중심적인 계약 관계이다. 나아가, 그들은 각자의 삶이 지켜 나가야 할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잊었을 뿐만 아니라 고뇌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교수는 가정 내에서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이며, 단지 돈을 버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는 돈을 벌지 못하면 존재 의미를 상실하는 인물이다.
탐구
연극과 컨벤션
컨벤션(극적 관습) : 극을 효과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관객과 배우 사이에 맺어진 자연스러운 약속이며 제약이다.
① 배우는 분장한 인물이지만 관객은 이들을 실제 인물로 간주하고, 배우의 행동 역시 실제 행동으로 간주한다.
② 등장인물의 독백과 방백은 다른 등장인물은 듣지 못하고 발화자와 관객만 듣는 것으로 간주한다.
③ 무대는 가공의 장소이지만, 이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지도 방법 : 희곡의 갈래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이 실제로 연극을 보고 느낀 점을 발표하게 하는 가운데 연극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대사와 행동으로만 표현하기 때문에 관객이나 독자들과 일정한 묵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3. 교수가 원고지 무늬의 양복을 입고 있다든가, 허리에 쇠사슬을 두르고 있다는 식으로 처리된 것은 무엇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지 설명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희극적 과장과 풍자의 수법을 이해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에게 작품 속에서 과장되게 표현된 부분을 찾아보게 하고 이러한 과장된 표현이 의도하는바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게 한다. 교사는 작가가 이러한 과장된 표현을 통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풀이 : 희극적 과장과 풍자의 수법이다. 즉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서 무의미한 일상생활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이고 가시적(可視的)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적인 과장이다.
시야 넓히기
다음 영화‘모던 타임즈’의 줄거리를 읽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찰리’와 ‘원고지’에 등장하는 ‘교수’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두 작품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해 보도록 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은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떤 인물을 창조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두 인물의 특징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발표하게 한 후 두 인물의 공통점을 파악하도록 한다.
풀이 : ‘원고지’의 ‘교수’는 아버지로서의 의무감에 짓눌려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상실하고 타성에 의해 살아가는 무성격자로, 자신의 삶을 상실한 인물이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는 정확한 출근 시간을 지켜야 하며, 화장실에 갈 때조차도 타임 카드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의 직업인 나사 조임이 어떤 공정에 속하는지 자본가에 의해서 구상되었을 뿐이다. 사유로부터 완전 분리되어 파편화된 일은 채플린을 정신병으로까지 몰고 간다. 그는 하루 종일, 아니 일 년 열두 달 똑같은 일에 맴돈다. 그의 일은 근육이 물렁뼈에 달려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 의해서도 문제없이 수행될 수 있다. 다른 일을 배울 수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다. 컨베이어 벨트 밑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속도에 의해 그의 팔 근육은 회전될 뿐이다.
이 둘은 모두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채 타성에 의해 살아가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도우미
모던 타임즈(The Modern Times)
유나이티드아티스츠 작품의 흑백영화다. 제작·각본·감독·주연·음악을 C.S.채플린이 담당하였다.
토키영화 도래에 맞서 사이렌트의 아성(牙城)을 지키며, 단 한마디의 대사 없이, 이미 오늘의 오토메이션시대를 60년 전에 간파한 영화이다. 타이틀백의 시계 문자판이 상징하듯, 시계에 지배되는 기계문명에 대한 도전과, 자본주의의 인간성 무시에 대한 분노를 묘파한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벨트컨베이어로 운반되어 오는 상품의 나사를 죄는 동작을 되풀이하는 공원(채플린)은 기계 앞을 떠나도 같은 동작을 계속한다. 정신병원에 가서 정상적인 생활리듬을 찾으면 낫는다. 데모의 주모자로 체포되기도 하고 모범수로 석방되어 조선소 직공 등으로 전전하나 실수투성이 이다. 부둣가에서 먹을 것을 훔친 불행한 소녀(포렛 고다드: 채플린의 부인)와 만나 내일의 희망을 안고 걸어나는 라스트 신은 유명한 장면이다.
결코 새로운 것만 좋아하지는 않았으므로 토키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채플린은 자본주의의 인간성 무시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저력 있게 고발한다.
한 노동자의 삶을 희극적으로 영화화한 이 영화는 사회학적 이론을 돋움에 깔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하여 대단히 통찰력 있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비판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출연자의 역할(노동자, 과학자 자본가 등)을 통해 분석할 수도 있고, 또한 등장하는 제도(국가, 감옥, 공장, 정신 병원 등)를 통해서도 분석할 수 있다.
제작 : 1936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서(미국)
감독 : 찰리 채플린
주연 : 찰리 채플린, 폴레트 고다르
표현하기
현대 사회에서 많은 아버지(또는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온갖 애를 쓰면서도 가정 내에서의 권위를 잃어 가고 있다. 자신의 가정에서 소외되어 가는 아버지(또는 어머니)께 힘과 용기를 북돋워 드리는 편지를 써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편지를 써 봄으로써 문학을 통해서 얻은 정서적 체험을 확인해 보게 하는 활동이다. 정서적 체험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그러나 ‘공감’이 완전한 동일시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문학 작품 감상은 ‘공감’을 전제로 하여 인간과 삶을 새롭게 인식하는 활동임을 알아야 한다. 학생들이 편지글이라는 형식의 틀에 얽매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유의한다.
예시 답안 :
어머니께
달력에는 봄이 벌써 성큼 다가왔는데 밖은 아직도 쌀쌀함이 가시지 않아요. 저희들 걱정하시느라 계절을 잊으시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여읜 지도 올해로 꼭 2년이 됩니다. 그날 아버지 없이는 한시도 못 사실 것처럼 오열하시던 당신의 울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어머니께서는 슬픈 모습을 한 번도 저희에게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을 위해 슬퍼할 겨를이 없으셨다는 것을 저희는 몰랐습니다. 저희들 때문에 자신을 돌보실 여유가 없으셨던 어머니! 항상 저희에게만 좋은 음식, 좋은 옷들을 챙겨 주시고 당신께서는 늘 초라하고 지치신 모습으로 계셨습니다. 저희들은 그런 어머니를 창피해 하고, 또 다른 아이들보다 용돈이 부족하다고 투정을 부리며 어머니를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촌스럽고 말이 안 통한다고 저희들끼리만 쑥덕거리며 어머니를 무시했던 기억이 한스럽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철없이 굴었던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습니다. 제가 그렇게 철없는 행동을 할 때 어머니께서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저의 어리석음에 또 한 번 부끄러워집니다.
어머니!
이제 저도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아직 경제적으로 어머니의 힘이 되어 드리지는 못하지만, 지난 철없던 시절의 모습이 아닌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되어 어머니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약속드립니다.
어머니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이 아들이 어머니와 언제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쌀쌀한 봄날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 아들 올림
참고자료
‘원고지’의 표현상 특징
1. 무대 장치와 소도구 : 벽면과 가구, 교수의 옷이 모두 원고지 무늬로 되어 있는 점과 교수가 쇠사슬을 허리에 감고 다니는 것 등이 두드러진 희극적 과장과 풍자의 수법이다.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서 무의미한 일상생활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이고 가시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적인 과장이다.
2. 대사와 행동 : 대부분의 대사와 행동이 철저히 희극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 가족의 생활과 사회 상황의 비정상성을 표현하는 풍자적 수법의 산물이다.
이근삼의 작품 세계
이근삼은 종래의 리얼리즘적인 극작술을 거부하고 무대 위에서의 연극적 재미를 십분 추구하는 희극 작가다. 따라서 그의 희극은, 셰익스피어류와도 다르고, 몰리에르의 작품과도 다르며, 오영진의 한국적 희극과도 거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 미국 희극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그 나름대로 우리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극술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지나치게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고, 현실 풍자를 위해 작품을 쓰기 때문에 작위적인 데가 있고 경박한 감마저 주며, 그렇기 때문에 풍자 정신도 깊이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관념적 대사라든가 작위적인 것을 많이 극복하고 우리 현실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풍자한다.
- 유민영, ‘인간 해방으로서의 희곡’
더 읽을거리
이근삼, ‘연극개론’, 문학사상사, 1980.
이근삼, ‘제18공화국’, 을유문화사, 1966.
박명진, ‘한국희곡의 근대성과 탈식민성', 연극과 인간, 2001.
이 작품은 어떤 배경이나 특수한 심리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매일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일상사 중의 한 토막을 다루어, 갈등을 느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갈등의 포기를 그리고 있다. 겉보기에는 근엄한 대학 교수와 그 가정의 이중성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소극(笑劇)의 형식으로 처리하여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성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아이러니컬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정한 사건의 전개나 갈등이 없이 하나의 상황을 희극적으로 과장하는 이 작품의 수법은 20세기의 새로운 연극인 부조리극의 대표적 형식이다. 부조리극에서는 전통극의 인과 관계에 의한 플롯을 거부하고 허구적 과장, 희극적 형상화 등의 수법을 통해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며, 극적 몰입을 거부한다.
이 작품에서 유사한 행위가 반복된다든가 무의미한 대사가 반복되는 것은 일상적 삶의 무의미함, 무가치함을 반영한다. 또한, 거대한 조직 사회 속에서 개인의 위치가 축소되고, 인간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과 인간 상호간의 소외를 희화적으로 보여준다. 허리에 쇠사슬을 매달고 원고 뭉치가 든 큼직한 가방을 수의 의상은 물론, 무대 배경까지 온통 원고지 무늬로 채웠다. 똑같은 소리가 되풀이되는 축음기, 하염없이 화장만 하고 있는 장녀, 돈 계산만 되풀이하는 아내의 모습은 무대 배경인 원고지의 무늬와 어울려 현대인의 비인간적인 삶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실제의 현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희극적으로 과장된 허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극적인 형상을 통해 단순한 웃음거리 이상의 교훈을 읽어 내는 데에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이 연극은 등장 인물을 사건의 해설자로 등장시킴으로써, 좀더 서사적인 형식에 근접하고 있다. 서구의 표현주의 극이나 우리의 전통극에서는 이처럼 해설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극문학의 수용과 창작
(1) 구성 취지
이 단원의 준비 학습은 똑같은 상황의 장면을 서로 다른 갈래인 소설과 희곡을 통해서 보여 줌으로써 학생들이 사건이나 이야기의 전달 방식의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으며, 아울러 문학 작품의 표현 방식의 다양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제시된 자료를 읽어 보고, 인물의 성격을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서술자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서술자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소설과 희곡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활동 안내
1. 사건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가)와 (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사건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두 작품을 각각 윤독하게 하고 차이점을 찾아 낼 수 있도록 지도한다. 내용이 같은 두 작품의 특성이나 형식적인 면의 차이뿐만 아니라 느낌의 차이도 발표하도록 하여 적극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지도한다.
풀이 : (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여 서술하고 있다. 반면 (나)는 대사를 통하여 사건의 진행과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2. 위의 결과를 토대로, 소설과 다른 희곡의 특성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도방법 : 이 활동은 위의 활동을 통해 소설과 희곡의 특성을 파악하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에게 앞의 활동을 돋움으로 희곡에서만 나타나는 특성과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하여 생각하고 발표하게 한다.
풀이 :
구분 |
희곡 |
소설 |
|
공통점 |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다룬다. |
||
차 이 점 |
서술자 |
서술자의 개입이 없다. |
서술자의 개입이 있다. |
시제 |
현재형 |
과거형 |
|
등장인물 |
무대 상연으로 인해 제약을 받으며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로 나뉘어 대립, 갈등한다. |
제약 없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킬 수 있다. |
|
시간 공간 |
제약을 받는다. |
제약을 받지 않는다. |
|
전달과정 |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다.(레제 드라마처럼읽히기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있다.) |
읽는 것을 전제로 한다. |
|
표현 |
대사로 이루어진다. |
대화와 지문으로 이루어진다. |
|
인물의 심리 분석 |
대사와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
등장 인물의 직접적이고 세세한 심리 분석, 내면 탐구가 가능하다. |
1. 희곡의 본질과 특성
소단원 길잡이
희곡은 열정과 욕망을 지닌 인간이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하고,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고 투쟁하는 것을 눈앞에서 재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이다. 소설이 서술자의 서술과 묘사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희곡은 대사를 표현 방법으로 하는 문학이다. 희곡의 대사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 주며, 극의 행동과 직접적으로 관련하여 플롯을 진행시키고 주제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또 희곡은 무대 위에서 인생의 모습을 직접 표현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이야기를 현재화하며, 무대라는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기도 한다. 이런 제약은 희곡에서 시간 장소 행동의 일치라는 ‘3일치의 법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단원에 제시한 두 편의 작품은 희곡의 본질과 특성을 이해하기에 적절한 작품들이다. 희곡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기초 지식을 돋움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희곡과 연극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될 것이다.
학습의 주안점
다른 문학 갈래와의 비교를 통해 희곡의 본질과 특성을 안다.
전통적인 극 양식인 탈춤은 서양 연극과 어떻게 다른지를 안다.
희곡과 연극의 관계를 안다.
단원 핵심 정리
1. 희곡의 본질과 특성
(1) 희곡의 본질
①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연극의 대본이다.
② 배우, 무대, 관객과 함께 연극의 한 요소이다.
③ 희곡은 허구적 사건을 다루는 점에서 소설과 같으나, 소설처럼 사건을 묘사하거나 서술하지 않고 대화와 행동을 통하여 제시하는 산문 문학이다.
(2) 희곡의 특성
①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 :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 즉 연극의 각본이기 때문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물론 공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순전히 읽히기 위해서 쓰인 희곡(레제 드라마(lese-drama))도 있다.
② 대사의 문학 : 희곡은 대사를 표현 방법으로 하는 문학이다. 서술자가 이야기를 서술하고 묘사하는 소설과 달리, 희곡에서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③ 행동의 문학 : 희곡은 인간 행동을 표현하는 문학이다. 즉 희곡은 배우의 연기를 지시하여 무대 위에서 인간의 행동을 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희곡에서의 행동은 압축과 생락, 집중과 통일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④ 현재화된 인생 표현 : 희곡은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인생을 표현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를 현재화시켜서 표현하고, 작가와 독자와의 의사소통이 즉석에서 이루어지게 한다.
⑤ 내용이 막(幕, act)과 장(場, scene)으로 구분되는 문학이다.
⑥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 문학이다.
- 내용이 너무 길면 안 된다 : 소설은 읽기를 중단했다가 얼마든지 다시 읽을 수 있지만 연극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그 전부를 보아야 하는 것이므로 내용이 너무 길면 공연하기 곤란하다.
- 각 장면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소설에서는 그 배경이 어느 곳이나 자유로울 수 있지만 희곡에 있어서는 언제나 무대를 염두에 둔, 구체적이고 제한된 것일 수밖에 없다. 또 장면이 빠르게 바뀐다거나 자주 바뀌어서도 곤란하며,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도 공연하기 어렵다.
2. 희곡의 요소
(1) 형식상의 요소
① 해설 : 희곡의 첫머리 부분으로 막이 오르기 전후에 필요한 무대 장치, 인물, 배경(시각적, 공간적) 등을 설명하는 글이다.
② 지문 : 배경, 효과, 조명, 등장인물의 행동, 표정, 심리 등을 지시하고 설명하는 글로 ‘돋움글’이라고도 하며, 현재형으로 쓴다.
③ 대사 : 등장인물이 하는 말로, 모든 극적인 주제와 사건은 대사를 돋움으로 이루어진다.
대화(對話, dialogue) |
두 사람 이상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 |
독백(獨白, monologue) |
상대방 없이 혼자 하는 말로, 내성적 및 설명적 성격을 지닌다. |
방백(傍白, aside) |
관객에게는 들리나 상대역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으로 약속하고 하는 대사, 무대에 서있는 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어 자기의 의도를 말해 주는 수법 |
(2) 내용상의 요소
① 인물 : 의지적, 전형적, 개성적 성격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② 사건 : 하나의 주제를 향하여 갈등과 긴장을 몰고 가는 압축되고 통일된 전개이어야 한다.
③ 배경 : 사건이 전개되는 때와 장소이다.
활동안내(교과서277쪽)
(1) 이 작품에서 다음에 제시된 희곡의 형식적인 요소들을 확인해 보자.
대사 : 지문 : 해설 :
(2) 희곡이 현재화된 인생의 표현이라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아보자.
(3) 인물의 심리가 어떠한 요소에 의해 드러나는지 생각해 보자.
지도방법 : 이 활동은 희곡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활동이다. 제시된 희곡에서 시간적 공간적 배경, 등장인물, 무대 장치 등은 어떤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인물의 동작, 표정, 말투, 입장과 퇴장, 조명 처리, 인물의 심리와 같은 것은 어떤 방법으로 처리되고 있는지에 유의하면서 살펴볼 수 있도록 지도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단서만을 제공할 뿐 일일이 찾아 주거나 설명하지 말고, 학생들이 활동 과정에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예시 답안 :
(1) 대사 : 희곡에서는 간단한 무대 지시나 동작 지시 외에는 전부가 인물들의 대사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에서는 국서의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문 : 등장인물의 동작, 표정, 언어, 무대 장치, 조명 등을 지시하는 글로, 이 작품에서는 국서의 말에서 괄호로 처리된 인물들의 등?퇴장, 인물 묘사 등이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해설 : 희곡의 첫머리에 무대 장치, 등장인물, 때, 장소, 효과 등에 대해 서술한 부분으로, 이 작품에서는 국서의 말 전까지의 글이 이에 해당한다.
(2) 희곡은 무대 위에서 인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를 현재화시켜서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한다. 이 작품에 사용된 ‘들린다, 없다, 피우고 있다, 나온다’ 등의 현재형 용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3) ‘대사’는 사건 진행과 인물의 심리, 성격 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지문’을 통해서 인물의 심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도우미
유치진의 ‘소’
이 작품은 1930년대 일제 강점하의 농촌의 궁핍과 모순을 그린 대표적인 사실극으로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을 가난한 소작농과 마름의 갈등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참고 자료
삼일치 법칙(三一致 法則)
17∼18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연극의 기본 법칙으로 ① 극의 행위(줄거리)는 일관된 단일한 것이어야 한다는 행위의 통일, ② 극의 행위는 지속시간이 l일 24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시간의 통일, ③ 극의 행위가 전개되는 장소는 5막을 통하여 동일한 장소여야 한다는 장소의 통일로 이 3가지 규칙을 말한다. trois unités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삼단일 또는 삼통일법칙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설명한 작극상(作劇上)의 이념을 오해한 데서 생겨난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강조한 것은 극 행위의 통일이며 그 밖에는 시간의 통일에 관하여 약간 언급했을 뿐이다. 이 법칙은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연극에 있어서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고, 코르네유, 라신, 몰리에르의 명작을 이루는 기본이 되었으며 약 2세기 동안 프랑스 연극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연극을 지배했다. 이 규칙의 확립에 의하여 프랑스연극은 외면적인 행위를 보이는 것으로부터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된 갈등을 보여주는 연극으로 되어갔다.
18세기도 왕립극장의 정통파 연극은 이 규칙을 엄수했지만 중소 부르주아를 관객층으로 하여 새로 성립된 불바르극(통속극)의 멜로드라마(음악극)는 처음부터 이런 법칙은 무시했다. 낭만파는 자유를 존중하는 대혁명의 영향도 있고 해서 이 법칙을 부정했으나 행위의 단일만은 문학작품의 불가피한 필연성으로서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삼일치는 확실히 작자가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지만 연극은 소설과는 달리 훨씬 집중되고 긴장된 행위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너무 옹색하게 또한 외면적인 법칙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삼일치는 상당히 필연성이 있는 연극상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근대에 와서 입센은 삼일치 준수를 표방하지는 않았으나 《인형의 집》을 비롯한 사실주의 연극의 걸작에서 연극의 내적 필연성으로 자연히 이것을 지켰다. -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원고지'의 무대 장치와 소도구
벽면과 가구, 교수의 옷이 모두 원고지 무늬로 되어 있는 점과 교수가 쇠사슬을 옷처럼 감고 다니는 것이 두드러진 희극적 과장과 풍자의 수법이다. 이들은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서 무의미한 일상 생활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가시적(可視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원고지"의 실험적 성격
이 작품의 인물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기계적인 순응만 보일 뿐,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가족들 사이의 진정한 의사 소통이나 연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처럼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망각한 채 기형화된 삶을 아무런 자각 없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소외된 삶의 모습을 그린 단막 풍자극이다. 무의미한 일상 생활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사실주의 연극의 극작술(劇作術)과는 전혀 해설을 한다든지 무대 장치와 소도구들을 일부러 비현실적으로 과장한 것도 현대극의 실험적 수법을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극에서는 사실을 충실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주로 사실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反)사실적이며, 반(反)표현적이어서 현대인의 정신적 상황을 대변해 주는 현대 희곡의 한 특징이 된다.
등장인물의 성격
교수 : 아버지로서의 의무감에 짓눌려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상실하고, 타성에 의해 살아가는 무성격자이다.
처 : '교수'와 같은 성격의 인물이다. 타성적인 의무감으로 자식들의 물질적 욕구에 동조한다. 처와 교수 사이에 진정한 인간적 유대감은 없고, 교수와 자식을 잇는 중간적 인물.
장남과 장녀 : 두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나 실은 하나이며, 해설자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 상태도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다. 그러나 꿈과 이상이 결여되어 있고, 사고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며, 오직 즉물적(卽物的)이고 현세적인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현대인의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상징한다.
감독관·천사 : 관념적·비현실적 인물이다. 감독관은 현실의 압력을, 천사는 꿈과 이상을 상징한다.
이근삼의 작품 세계
이근삼은 종래의 리얼리즘적인 극작술을 거부하고 무대 위에서의 연극적 재미를 십분 추구하는 희극 작가다. 따라서 그의 희극은, 셰익스피어류와도 다르고, 몰리에르의 작품과도 다르며, 오영진의 한국적 희극과도 거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 미국 희극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그 나름대로 우리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극술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지나치게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고, 현실 풍자를 위해 작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작위적(作爲的)인 데가 있고 경박한 감마저 주며, 그렇기 때문에 풍자 정신도 깊이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70년데에 들어와서는 관념적(觀念的) 대사라든가 작위적인 것을 많이 극복하고 우리 현실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풍자한다.(출처 : 유민영의 '인간해방으로서의 희곡')
① 리얼리즘(realism) 극에 반발하여 부조리극(不條理劇)을 시도하였다.
② 작품에 비상식적인 인물이나 의식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적(消極的)인 요소를 동원하여 연극적 재미를 유발시켰다.
③ 현대인의 삶의 비극(悲劇)과 모순(矛盾)을 파악하려는 현실적 관심을 보였다.
부조리연극<ThAetre de l'absurde>(不條理演劇)의 성격
부조리란 인생의 무의미·무목적·충동성 등을 총칭한 표현이다.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극(前衛劇) 및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연극으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처한 곤란한 입장에 대해 공통적인 태도를 지닌다. 특히 카뮈나 '부조리에 대한 시론(試論)'이라는 부제를 붙인 '시지프스의 신화'(1942)에 의하면 인간의 형상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존재이며 목적 없는 존재로 파악됨으로써, 부조리 극작가들의 베케트, 이오네스크, 해롤트 핀터 등의 작품 중심 주제인 형이상학적인 고뇌를 창출하였다. 이들의 특징은 기존 사상과
관념에 대한 반격, 불만과 파괴, 유린과 공포의 무의식적 표현, 허무와 방임 등의 정신의 유희화로 요약된다. 요컨대 지적으로 구성되는 논의 속에 함축된 불합리성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옮겨 놓는다는 점에서 부조리극 혹은 상황극이 갖는 주제 의식과 그 표현은 현대인의 정신 상황을 대변하는 현대 희곡의 특징적 경향을 나타낸다.
40년대 사르트르와 카뮈도 세계의 부조리와 그에 대항하는 자유로운 행위자로서의 인간을 묘사하였지만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전쟁 전의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 등의 수법을 빌려 부조리를 재현하여 그 구체적인 이미지를 주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언어를 음절(音節)로 해체도 하고 등장인물의 동일성을 상실시키기도 하여 행위의 뜻과 목적을 박탈하였다. 대표적 작가로 S.베케트, A.아다모프, J.즈네, H.핀터, 올비 등이 있다.
원고지
‘원고지’는 작가가 예견하는 미래의 자화상을 주관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현실의 재현이 아닌 상상의 산물로 극을 만들려 할 경우 사실주의 극의 제약은 무시된다. 그리고 사실주의 연극 사조가 희극과 상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웃음은 현상계의 질서를 준수하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보다는 그 질서가 무시되거나 그 질서를 초월한 지점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희극에서는 인과 관계를 무시한 논리적 비약이나 반사실적 기법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원고지’는 다양한 반사실적 연극 기법이 도입된 희극의 양상을 띤다.
‘원고지’는 극의 구성, 인물 설정, 언어의 구사, 무대 활용, 조명과 음향 장치 등의 여러 측면에서 표현주의, 서사극, 부조리극 기법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중 어느 한 연극 사조에 전적으로 공감하여 완벽한 서사극, 혹은 부조리극의 창작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변화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연극의 창출을 위해 종래의 사실주의 극작술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극작술을 실험했다는 점에서 ‘원고지’의 연극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다음으로 본고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종래의 연구자들 대부분이 ‘원고지’를 표현주의 극 또는 서사극으로 보는 데 반하여, 극의 결말 구조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작가의 세계관이나 극 전체의 희극적 형상화 방식, 그리고 극 전체를 일관하는 비극적 정서에 비추어 볼 때 이 극은 부조리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주제의 효과적인 극화를 위해 다양한 극의 기법들을 도입하고 있으나 작가가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것이 부조리극 정신의 표출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를 채택하면 표현주의 극의 중심 주제인 ‘새로운 인간상의 제시와 미래에 대한 전망 제시의 부재’로 지적되는 이 극의 결함은 깨끗이 사라진다. 하지만 극에서 현실을 다루는 차원이 보편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지 못하고 가족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의 물질적 압박이라는 제한된 것임을 변명할 여지는 없다.
‘원고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간의 기계화를 풍자적으로 보여 주는데 희극적 형상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인물을 극단적으로 유형화하고 자동화된 반복, 주관과 실제 상황의 대비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도입함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 극은 비극적 정서를 표출하며 불확실하고 순환적인 결말을 보이는데 이는 현대적인 희극성의 구현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작가의 냉소적인 세계관 또한 극을 완전한 희극으로 형상화할 수 없게 만든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원고지’에서 살핀 여러 반사실주의의 요소들은 이후의 이근삼 희곡의 특징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사적 수법, 표현주의적 수법, 극적 아이러니의 수법, 소극적(笑劇的) 수법 등의 새로운 극적 제시 방법이 도입되며 연극의 시간과 공간 개념이 확대되는 양상이 이미 나타나는 것이다. 종래의 상투적인 사실주의 극작술을 거부하는 다양한 실험의 시도는 이근삼의 희곡에서 지속적으로 발전되면서 새로운 연극 표현을 위한 실험 정신을 작가적 특징으로 만들었다. 냉소적 세계 인식에 돋움을 둔 희극적 상황의 조성 역시 대부분의 이근삼 희곡의 창작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고지’는 작가 개인의 창작 경향을 분명히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동시에 1960년대 이후 한국 희곡의 창작 경향을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박혜령, ‘이근삼 희곡 ‘원고지’ 연구’] - 한국 극예술학회, “이근삼”(연극과인간, 2010)
희곡 읽기
희곡은 대사와 무대 지시문만으로 기술되어 있어,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성격, 심리 상태나 행위의 동기, 전체적인 구성, 혹은 인물 간의 관계나 갈등 상태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시와 같이 주관적인 정서를 노래하거나, 소설과 같이 꾸며진 이야기를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집약적인 갈등 양상이 행동을 통해 목격되도록 철두철미하게 객관적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작가로부터 설명, 지시, 충고, 해석을 받지 않는다. 희곡에서 작가의 존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희곡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등장인물의 행동이지 작가의 목소리가 아니다.
희곡은 상연을 전제로 한 텍스트, 혹은 연극적 상상력을 위한 텍스트이다. 공연 장소(무대)와 공연 시간이라는 제한 조건에서, 창조적으로 재현될 인간의 행동과 그러한 행동들이 구축해 낼 총체적인 의미를 언어 기호들로 표현하고 있는 기호 체계다. 그러므로 희곡은 기록 문학 텍스트로서 지속적인 독서의 대상이 되는 한편 연극 창조의 대표적인 출발점이 되는 대본 자격으로서 연극의 영역에 기여하고 있다. 희곡은 그 자체로서 전체이지만, 대본은 연극이라는 전체 속의 부분이 된다.
희곡과 연극이 공유하는 것은 연극성이다. 그러나 희곡의 잠재적인 연극성은 독자의 인식과 상상력을 통해 폭넓게 해석되거나 환기되고, 연극에서는 일회적인 상연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거나 창조적으로 실연됨으로써, 그때그때 관중의 인식과 상상력을 확대시킨다. 상연은 희곡의 충실한 해독이 아니며, 단순한 해석도 아니고, 더구나 고지식한 재현도 아니다. 상연은 별개의 예술 행위다. 그러므로 희곡과 상연 및 독서와 관극은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기호 체계이자 다른 차원의 감동의 세계를 구축한다.
희곡은 플롯, 인물의 성격, 주제, 대사, 음악 및 장관, 시간과 공간 등과 같은 요소로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플롯 대신에 구조라는 용어가 자주 쓰이기도 한다. 점층적인 구조, 삽화적인 구조, 상황적인 구조 등이 그 용례들이다. 장관을 형상화하기 위해 무대 미술, 조명, 의상, 소도구 등과 같은 온갖 예술적이고 과학적인 요소 등(약호 체계)의 기여가 집중되어 왔다. 희곡은 이러한 제 요소들을 공연이라는 관점에서 창조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작성한 총체적인 예술품이다. - 서연호, “한국 근대 희곡사”(고려대학교출판부, 1994)
여전히 현역인 노 극작가가 풀어내는 관조의 웃음 - 이근삼
환갑 지난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고, 대학에서도 정년 퇴임한 명예교수 이근삼 선생이 요즘 들어 젊은이의 거리로 일컬어지는 대학로 나들이를 부쩍 자주 한다. 하긴 대학로 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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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계의 대들보’ 이근삼 선생 |
"내 작품이 제일 인기야. 전국 어딜 가나 내 작품 안 하는 데가 없어"라고 뻐기는 (?) 본인의 말처럼 노 극작가 이근삼의 희곡은 작품이 씌여진 지 30년이 넘은 것들도 여전히 우리 무대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60년대 전후에 씌여진 <원고지> <국물 있사옵니다> <거룩한 직업>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등은 최근까지도 '이근삼 연극제'와 같은 개인 극단의 기획공연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 극단들이 기량을 겨루는 '전국연극제', 심지어 청소년들의 연극 축제인 '청소년 연극제' 등의 단골 레퍼토리들이다.
대학로 나들이의 결실은 더욱 풍성하다. 지난해 여름 초연되어 선풍을 일으킨 <엄마 집에 도둑 들었네>가 재공연되고 있고, 신작 <오코치의 화려한 가출>이 7월 3일부터 대학로 인간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또, 올 연말에는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예정인 국립극단 단장을 역임한 '국민 배우' 장민호 선생의 은퇴 공연 작품을 집필 중이고, 그 동안 이 선생 작품의 단골 주역이었던 연극계 중진 윤주상, 역시 국립극단을 5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원로 배우 백성희 선생을 위한 희곡도 의뢰받아 놓은 상태이다. 이근삼 선생의 존재는 국내 연극계에서는 거의 유일한 희극 작가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유치진 · 차범석 등 원로 극작가들이 대부분 어두운 비극에 주력했고, 뒤를 이은 윤조병 ·노경식 · 최인훈 등의 중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작품에는 기득권층을 향한 거침없는 풍자와 함께 소시민들의 애환이 짙게 배어 있어 한참을 웃은 뒤에는 언제나 가슴 저릿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의 이런 특징 탓에 연극학자들은 "빈정거림의 미학,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갈망" 이라는 문구로 그의 작품세계를 압축한다. 그가 창출해 내는 이중적 웃음구조는 지금까지도 연구 대상이 되어 왔고 이 때문에 생존작가임에도 그의 작품세계를 논한 석·박사 논문이 수십편에 이른다.
초기 작품이 60년대적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암시적이지만 통렬하게 비판했다면, 최근 작품들은 늙고 소멸하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그에 대한 관조가 숨겨져 있다. 작품 안에 내재된 쓸쓸한 풍경은 이제 '원로작가의 반열'에 든 그의 내면풍경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막차 탄 동기동창> <이성계의 부동산> 처럼 덧없이 사위어 가는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중심적인 등장인물 역시 황혼녘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덧없음을 관조하는 그의 작품은 감상적이지 않다. 객관적이고 치밀하게 계산된 희극적 장치를 통해, 작가는 나약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인간의 양면성을 제시하고, 죽음과 소멸에 대한 공포를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이근삼 선생의 한국 희극사적 업적은 서사극적 양식을 처음으로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녹여낸 작가라는 점이다. 서사극은 50년 대말과 60년 대초 당시 리얼리즘 희곡이 대부분을 이루던 극계에 획기적이며 신선한 실험의 시도였고 동시대의 여러 현상을 문제시하는데 매우 적절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원고지>는 이런 관점에서 한국 희곡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고 여기에 나타난 서사극적 기법은 한국 희곡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단초였다. 다시 말해, 희곡에 대한 기존관념을 바꾸는 개척의 작품이자 선구적 작품이었다.
최근작 <엄마 집에 도둑 들었네>와 <오코치의 화려한 가출>을 통해 압축되는 이근삼 희곡의 성과에 대해 연극평론가 심정순은 "대중 코미디가 흔히 지니는 피상성을 극복하고 대중성에 돋움을 둔 실존적 희비극으로 작품의 의미를 승화시켜" "한국형 대중 고급 코미디 형식 창출"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또, 연출가이자 이 선생의 대학원 제자였던 정진수는 "노년의 삶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해학과 재치 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연민과 우수마저 깃들여 있어 미국이 낳은 천재적 희극 작가 닐 사이먼의 근년의 면모를 연상케 한다. 감히 비교의 차원을 높이자면 셰익스피어가 말년에 <템페스트> 등의 로맨스 계열의 작품들에 경도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고 극찬했다. 70줄의 '한국 희극계의 대들보' 이근삼 선생의 왕성한 활동은 당분간 계속될 모양이다. 참고자료: 국민일보, 주간동아, 한국극예술연구
(출처 : http://www.infoart.com/paper/paper_artist_leekunsam0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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