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龍仁) 지나는 길에 - 민 영
by 송화은율용인(龍仁) 지나는 길에 - 민 영
* 밸 : ‘배알’의 준말. 창자 또는 마음.
* 가구가락 : ‘코카콜라’의 중국식 표기.
* 소태 : 소태나무 또는 소태껍질, 맛이 몹시 쓰며 한약재로 쓰임.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한국적 의식의 정수를 밀도 높은 서정의 가락에 용해시켜 간결하고 응축된 단시(短詩) 형식의 작품 경향을 보여 주는 민영의 대표작이다. 발음의 동일성에 의한 ‘유음 연상(類音聯想)’으로 주제를 강화시키는 한편,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 1․4연을 유사한 내용과 동일한 각운으로 배치한 수미상관의 구성을 결합시킴으로써 보다 안정된 구조 형태를 갖추고 있다.
화자는 경기도 용인 땅을 지나가다 산등성이에 무리지어 피어난 산벚꽃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는다. 그 벚꽃 풍경은 개화와 낙화에 따라 그에게 휴식을 선택하게 하거나 죽음 이후의 안식에 대한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는 ‘지친 몸을 쉴까’, ‘뼈를 묻을까’ 하는 유혹에 잠시 빠져들기도 하지만, 이내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그것을 물리친다. 고향은 ‘도피안사에 무리지던 / 연분홍빛 꽃너울’처럼 아름다움의 상징인 동시에, ‘먹어도 허기지던 삼춘 한나절’의 유년 시절을 환기시키는 아픔의 표상이기도 하다. 또한, 고향은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오염되어 가는 우리 고유 문화를 뜻하기도 한다. 물밀 듯 밀려 오는 서구 문화로 파괴되고 있는 고향을 생각하면 할수록 화자의 가슴은 ‘소태같이 쓰’기만 할 뿐이다.
‘구국(救國)을 연상하게 하는 멧비둘기의 울음 소리 ‘구국구국’과 서구 문화를 대표하는 코카콜라의 중국식 표기인 ‘가구가락’을 교묘하게 배치시킴으로써 서구 문화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우리 문화의 현재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한편, 이 시의 주제인 ‘나라 사랑’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레 솟구치도록 하고 있다. 화자는 코카콜라를 ‘밸에 역겨운 / 물 냄새’라 힘주어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은 정겨운 우리의 멧비둘기 울음 소리를 ‘소태같이 쓰’다고 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시는 독자들에게 산벚꽃 피고 멧비둘기 우는 들판에 나가 이름 모를 풀잎이라도 씹으며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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