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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랑자전(玉娘子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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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랑자전(玉娘子傳)

명나라 만력 황제가 등극하였을 때에 조선 국 함경도 고원 땅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성은 이씨요. 이름은 춘발이라 일컫더라. 가문이 대대로 빛났으며 가산이 넉넉하나 다만 슬하에 단 한 명의 단 한 명의 자녀도 없는지라 매양 슬퍼하더라.

하루는 그의 부인이 꿈을 꾸니 금강산 부처님이 나타나 이르기를

"그대에게 자식이 없음을 불쌍히 여겨 내 자식 하나를 점지할 터인즉 귀히 키워서 장차 문호를 빛내도록 하라."

하기에 부인이 백배사례하다가 놀라 깨니 남가일몽이라.

 

부인은 즉시 가군을 불러들여 꿈 이야기를 자세히 아뢰고는 서로 기뻐함을 마지아니하더니 과연 부인에게는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이 차매 옥동자를 낳게 되었더라.

출발이 매우 기뻐 서두르며 시비를 재촉하여 향 탕에 씻겨 뉘로 자세히 들여다본즉 몸집이 매우 크며 얼굴은 관 옥 같은데 벌써 사람을 알아보는 듯하더라. 이어서 이름을 시업이라 하고 자를 몽석이라 지어 부르니라.

시업은 차차 자라남에 따라 골격이 비범할뿐더러 기운이 장사인지라 나이 불과 팔세에 능히 백 근 무게를 움직이어 그 힘이 비길 데 없으며 부모들은 아들의 사람됨이 다름을 짐작하여 깊은 산으로 보내어 글을 배우게 할 새 경계하여 일러 주기를

"옛날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나무를 잘 자라게 함은 장인에게 달려 있고 사람이 잘 되기는 시서에 달려 있다 하였으니 내 정성을 다하여 공부를 극진히 하여라." "

그리고 우리 생전에 네가 벼슬에 올라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빛내고 영화를 누리도록 하라."

 

시업이 부모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산중으로 들어가 학식이 높은 스승을 찾아서 글을 배울 새 한 자를 배우면 능히 열 자를 깨달아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지라 스승이 극히 사랑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 주더라. 이리하여 수학한지 수년만에 시업이 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부모는 사랑하는 외아들을 여러 해 그리던 차에 이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지라 그 반가와 함은 이루 형언키 어렵더라.

이 때 시업의 나이 십륙세에 이른지라 부인이 가군께 아뢰기를

"시업의 나이 이미 장성하였으니 저와 같은 배필을 구하여 원앙의 노닐음을 보심이 마땅하오니 가군께서는 바삐 요조한 숙녀를 널리 구하소서."

 

춘 발이 대답하되

"나의 뜻이 또한 그와 같으나 시업의 짝이 될 만한 규수를 구하기가 쉽지 못할까 염려되오."

하니라.

그로부터 춘발 내외는 매파를 각처로 보내어 현숙한 처자를 구하더라.

(중략)

[앞부분의 줄거리] 함경도 경흥에 사는 김 좌수는 길몽을 꾼 뒤 옥랑을 얻는다. 옥랑은 명망이 높은 이시업과 혼약한다. 시업은 혼례 행차 중 영흥 토호 일행과 실랑이 끝에 사람을 죽인 하인 때문에 투옥된다. 이에 옥랑은 시업의 얼굴이나 한번 보겠다며 부모의 허락을 얻어 그를 찾아간다.

옥랑이 이윽하여 다시 들어오더니, 시업을 대하여 앉으며 오열하여 왈,

“첩은 김 좌수의 딸 옥랑이라. 신수가 기박하여 낭군께서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시니 천지 아득하오나 누구를 원망하리오. 첩이 비록 배운 바 없사오나 옛날 절개를 지닌 아녀자의 행실을 듣사오니, 군자를 대신하여 의리에 온전히 하온 자가 많사온지라. 바라건대 낭군께서는 첩의 의복을 입으시고 나아가시면 첩은 군자를 대신하여 죽사와도 유한이 없사올지라. 다만 한 가지 엎드려 바라옵건대 첩의 죽음으로 꺼리지 말으시고 때때로 왕래하시어 저의 늙은 부모의 심회를 위로하여 주소서. 잠시도 머물지 말으시고 속히 나아가소서.”

시업은 그제야 비로소 김 좌수 딸이 분명함을 알고 칼머리를 들고 앞으로 당겨 앉으며 낭자의 손을 잡고 길이 탄식하여 이르는 말이,

“규중의 연약하신 낭자가 소생의 죄로 말미암아 천신만고를 겪으시고 험한 곳에 들어와 외로운 심회를 위로하시니 진실로 생사 간에 잊히기 어렵도소이다. 그러하오나 사람에 대하여 귀중하온 마음이 남녀의 구별이 없삽거늘 어찌 소생의 죄에 낭자가 대신 죽으려 하시느뇨? 이는 만만 불가하오니 그러하온 말씀은 다시 이르지 마시고 빨리 돌아가소서. 만일 타인이 기미를 아오면 재앙이 적지 아니할 것이외다. 소생은 이미 스스로 지은 허물이오라 죽어도 한할 바 없거니와 낭자는 무슨 연고로 따라서 대환(大患)을 당하시리요?”

하니, 낭자는 이 말을 듣고 정색하며 하는 말이,

“군자의 말씀은 가장 의리에 적당치 못하나이다. 옛글에 일렀으되,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하였으니 첩이 군자를 따라 죽는다 할지라도 또한 불가함이 없겠거늘 하물며 군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꾸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이는 만고에 떳떳한 의리오며 당연히 군자께서 용납하실 바이거늘 들어 주시지 아니하니, 이는 필시 군자께서 천첩을 불초한 사람으로 보시와 능히 의를 이행치 못하리라 여기심이외다. 첩의 일편단심이 허사로 돌아감이 어찌 애석하지 아니하오리까? 일이 이미 이 지경에 다다랐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을 대하리요? 차라리 이곳에서 자결하여 그로써 첩의 진정을 표하겠나이다.”

 

깜짝 놀란 시업이 급히 칼을 빼앗으며 위로하여 타이르되,

“낭자의 말씀이 지당하오나 내 어찌 내 죄로 낭자더러 차마 대신 죽으라 할 수 있으리요? 소생의 심회가 매우 어지러워 한마디로 결단키 어려우매 낭자는 잠시 진정하소서.”

하고, 낭자는 다시 재촉하기를,

“옥졸들이 만약 술을 깨오면 두 사람이 한가지로 목숨을 보존치 못하올진대 차라리 한 사람이라도 보전하옴이 낫지 않겠나이까?”

하며 재삼 재촉하는지라.

 

 

(중략)

 

이에 이르러 낭자는 눈빛을 고치며 다시 바삐 나아가기를 재촉하는지라. 시업은 할 수 없이 낭자가 입고 들어온 옷을 바꿔 입고 자기 목에 씌웠던 칼을 낭자에게 씌우니 낭자의 언사는 비록 남자에 못지아니하나 종시 여자의 몸이라 기질이 약하여 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더라. 시업이 그 거동을 보매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라 차마 발길을 돌이키지 못하며 서성거리고 낭자 또한 비참함을 겨우 억제하나 ⓒ목이 메어 차마 말을 못하니 이 어찌 슬프다 하지 아니하리요. 그러나 옥졸들 깨달으면 화를 벗어나지 못하겠기로 낭자는 이를 악물며 시업을 밀쳐 나가게 하니 그 형상은 초목 금수일지라도 감동하겠더라.

시업이 할 수 없이 돌아서 나오니 여느 때나 다름없이 옥졸이 지켜 있으나 처음에 낭자가 들어올 때 있던 옥졸이 아닌고로 아무리 시업의 얼굴이 낭자와는 다르고 눈물 흔적이 있으나 동문수학하던 사이에 생리사별을 당하니 피차에 슬퍼함이 있음직한 일이므로 의심치 아니하고 내보내니 ⓓ시업이 낭자의 말소리로 옥졸을 향하여 무수히 치사하고 나가더라. 시업이 한 걸음에 두 번씩 엎드러질 지경이나 타인이 알까 염려하여 슬픔을 억누르고 호젓한 산길을 더듬어 돌아올새,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러 땅바닥에 주저앉더니 목이 메도록 슬피 통곡하여 멈출 바를 모르더라.

이때 낭자의 종인이 집에 돌아가 좌수께 보이니 이에 좌수가 묻기를,

“아가씨는 어디 가고 네 홀로 돌아오느냐?”

 

종인이 대답하기를,

“아가씨는 이러저러하여 옥졸을 달래어 옥중으로 들어가시며 말씀하시기를 내일에나 돌아오신다 하시더이다.”

하기에, 좌수가 심중에 의아하여 그 날 밤을 겨우 지내고 딸아이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더라.

 

지리한 하룻밤이 지나가고 밝은 날이 다시 지나도록 옥랑의 자취가 없는지라. 모두들 마음에 의혹이 생기어 온 집안이 뒤숭숭하는 중에 부인이 조급한 마음으로 낭자의 침방에 들어가 서안(書案)을 살펴보니 편지 한 통이 놓여 있기에 괴이하게 여겨 들어 보니 겉봉에 쓰기를 ‘불효녀 옥랑’이라 하였더라.

(중략)

[뒷부분의 줄거리] 영흥 부사는 시업이 옥을 빠져 나간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한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듣고는 갸륵한 일이라며 임금께 보고하였고, 이에 임금도 천하의 절행이라 칭찬하면서 시업의 죄를 용서하고 옥랑을 정렬부인으로 봉한다.

세월이 여류 하여 이부사가 과 망이 되매 함흥감사가 부사의 선정을 조정에 조달하니 상이 이를 아름답게 여기시어 다른 고을로 옮기려 하시거늘 이 부사는 부모의 나이 늙음으로 벼슬에 뜻이 없음을 나라에 아뢰니 상이 그 효심을 기특히 여겨 부모의 백세를 마친 연후에 나라를 도 우라 하시며 금은 차단을 많이 상사하여 부모를 보양케 하시더라.

부사는 천은을 못내 기리며 고향으로 돌아와 조석으로 부모를 섬기며 농업에 힘쓰니 가산이 더욱 불어나고 한편 슬하에 자녀를 두매 부모를 닮아 모두가 옥인 숙녀라 자라서 명문거족에 남 혼 여가 하니 부귀는 일세에 극진하더라.

춘발의 부처 나이 팔십 여세를 누리고 구몰하니 부사내외 극히 애통하여 선산에 안장하고 삼년상을 마치니 나라에서 다시 불러 수령방백을 차례로 제수 하시고 다시 내직으로 들어가 여러 벼슬을 거쳐 호조한서에 이르니 그 무궁한 복록을 부러워 아니할 이 없더라.

이해와 감상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활자본. 여주인공 옥랑(玉娘)의 열행(烈行)을 그린 윤리소설이다. 함경도 고원땅에 사는 이시업(李時業)이라는 청년이 영흥지방에 사는 김좌수 딸 옥랑과 혼약을 하여 신행을 가는 도중 영흥지방에 사는 토호 ( 土豪 )의 행차와 마주치게 된다.

토호는 상민인 시업이 양반의 행차 앞에서 하마(下馬)하지 않는다 하여 이를 괘씸히 여겨 시업을 구타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하인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토호의 하인 하나가 맞아 죽게 된다. 토호는 시업을 영흥부사에게 고발하고 시업은 살인죄로 투옥된다. 김좌수의 집에서는 신랑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비탄에 잠긴다.

신부 옥랑은 비장한 각오로 시업 대신 죽을 결심을 하고서 남복을 하고 감옥으로 찾아간다. 옥랑은 간신히 시업을 만나 자신이 신부가 될 사람임을 밝힌 뒤 시업 대신 형벌을 받겠다고 간청하고, 시업에게는 나아가서 시가(媤家)를 상속하여 효도를 다하라고 권유한다. 처음에는 시업이 단호히 거절하지만, 옥랑이 비수를 꺼내들고 자신의 말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자결을 감행하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마지못해 비통해 하면서 옥랑과 옷을 서로 바꿔 입고 옥문을 빠져 나온다.

영흥부사는 죄인이 바뀐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옥랑을 문초하니 옥랑이 사실대로 자백한다. 부사는 옥랑의 절의(節義)에 감동하여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다. 상감은 옥랑의 열행을 칭찬하며 그들의 죄를 사하여주고, 옥랑에게는 정렬부인을, 시업에게는 사반당상(士班堂上)을 제수한다. 이들은 귀가하여 혼례를 치르고 양가의 부모에게 효도를 다한다. 시업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마침내 호조판서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사실상 영흥부사가 시행한 심문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 일관성 및 사건의 현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이, 사법(司法) 관청의 심문기록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소설들을 공안류(公案類) 소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고전소설 중에는 〈장화홍련전〉·〈진대방전〉·〈박문수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옥랑자전〉은 시업의 득죄와 그것의 해결을 위한 옥랑의 열행, 그리고 그 보답으로서의 사면이라는 단일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주목하여 이 소설을 도덕소설로 분류할 수도 있다.

김태준(金台俊)은 이 작품에 나오는 옥랑과 ≪북관지 北關誌≫에 나오는 옥랑의 관계를 추정한 바 있다. 영조 때 함경도 종성의 비녀(婢女) 옥랑이 한 남자와 정을 통하고 혼례하기 좋은 시기를 기다리다가 그 남자가 혼례를 치르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이에 옥랑은 과부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일생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옥랑의 이름이 〈옥랑자전〉의 옥랑과 동일하며, 이들 두 작품이 같은 함경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소설은 실사담(實事談)에 근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朝鮮小說史(金台俊, 學藝社, 1939), 韓國古代小說史(朴晟義, 日新社, 1958), 李朝時代小說論(金起東, 精硏社, 1959), 玉娘子傳(活字本古典小說全集 四卷, 亞細亞文化社, 1976).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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