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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가(五倫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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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가(五倫歌)

 

 

 

사람 사람들마다 이 말씀을 들으려무나,

이 말씀이 아니면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닌 것이니,

이 말씀을 잊지 않고 배우고야 말 것입니다.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부모님이 아니셨으면 이 몸이 없었으리로다.

이 덕을 갚고자 하니 하늘같이 끝이 없습니다.

 

종과 상전의 구별을 누가 만들어 내었던가.

벌과 개미들이 이 뜻을 먼저 아는구나.

한 마음에 두 뜻을 가지는 일이 없도록 속이지나 마십시오.

 

남편이 밭을 갈러 간 곳에 밥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가서,

밥상을 들이되 (지아비의) 눈썹 높이까지 공손히 들어 바칩니다.

(남편은) 진실로 고마우신 분이시니 (삼가고 조심해야 할) 손님을 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형님이 잡수신 젖을 나까지 먹습니다.

아아, 우리 아우야 어마님 너 사랑이야.

형제 간에 화목하지 못하면 개나 돼지라 할 것입니다.

 

늙은이는 부모님 같고, 어른은 형님 같으니,

이와 같은데 공손하지 않으면 (짐승과) 어디가 다른 것인가.

나로서는 (노인과 어른들을) 맞이하게 되면 절하고야 말 것입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주세붕(周世鵬)

갈래 : 평시조. 연시조

성격 : 교훈적, 직설적

성격 : 교훈가

제재 : 오륜(五倫)

주제 : 삼강오륜(三綱五倫)

특징 : 삼강오륜의 유교 사상을 노래함. 교훈적인 의도를 직설적으로 표현함

출전 : <武陵續集(무릉속집)>

 

 

내용 연구

 

[1] 서사

[2] 부자유친(父子有親) : 초장에서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노래하고 종장에서 부모의 은혜가 끝이 없음을 노래하여 훗날 정철의 '훈민가(訓民歌)'와 거의 비슷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3] 군신유의(君臣有義) : '종'은 '백성'을, '상전'은 '임금'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곧 군신(君臣)의 관계는 하늘이 맺어준 것인 바 이것은 마치 벌이나 개미가 여왕벌이나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충성을 다해 일함과 같은 것으로 보아, 신하는 임금에 대해 두 마음을 가지는 일이 없이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4] 부부 유별(夫婦有別) : 아내는 남편을 하늘처럼 정성과 공경스런 마음으로 언제나 손님 대하듯 하라는 교훈성이 깃든 시조다. 중국 후한(後漢) 때 양홍(梁鴻)과 그의 처 맹광(孟光) 사이의 거안제미(擧案齊眉 : 상을 들되 눈썹과 가지런히 되게 높여 든다)라는 고사를 인용하여 남편 섬기는 도리를 얘기하고 있다.

 

[5] 형제우애(兄弟友愛) : 형제가 한 어머니 젖을 먹고, 또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장성한 맡큼 서로 불화하면, 개돼지와 같으니 부디 형제간 우애하고 화목하기를 당부하고 있다.

 

[6] 장유유서(長幼有序) : 웃어른을 부모와 형같이 공손하게 모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표현한 시구이다. 수태(受胎)를 하게 한 것은 아버지의 은혜이며, 이를 태중에서 길러 낸 것은 어머니의 은혜라는 뜻이다.

옷 : 단독의 의미를 나타내는 보조사

 

 

: 부모의 은혜를 헤아려 보니 그 은혜가 하늘처럼 끝이 없다는 뜻이다. 평생을 다 못 갚을 것이니, 부모를 공손히 섬기고 잘 모시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해와 감상

 

모두 6수로 되어 있는 연시조이다. 이 시조들은 유교 사상을 노래하여 무척 유교적 이념이 강하게 드러난 교훈적이고도 도덕적인 설교가 많은 내용으로 오륜가(五倫歌)라 하는 것들이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는 서사의 성격을 갖고 있고, 둘째 수는 '부자유친(父子有親)'으로서 초장에서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노래하고 종장에서 부모의 은혜가 끝이 없음을 노래하여 훗날 정철의 '훈민가(訓民歌)'와 거의 비슷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셋째 수는 '군신유의(君臣有義)'로서 '종'은 '백성'을, '상전'은 '임금'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곧 군신(君臣)의 관계는 하늘이 맺어준 것인 바 이것은 마치 벌이나 개미가 여왕벌이나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충성을 다해 일함과 같은 것으로 보아, 신하는 임금에 대해 두 마음을 가지는 일이 없이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넷째 수는 '부부유별(夫婦有別)'으로서 아내는 남편을 하늘처럼 정성과 공경스런 마음으로 언제나 손님 대하듯 하라는 교훈성이 깃든 시조다. 중국 후한(後漢) 때 양홍(梁鴻)과 그의 처 맹광(孟光) 사이의 거안제미(擧案齊眉 : 상을 들되 눈썹과 가지런히 되게 높여 든다)라는 고사를 인용하여 남편 섬기는 도리를 말하고 있다. 이어 다섯째 수는 '형제우애(兄弟友愛)' 형제가 한 어머니 젖을 먹고, 또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장성한 만큼 서로 불화하면, 개나 돼지와 같으니 부디 형제간 우애하고 화목하기를 당부하고 있다. 여섯째 수는 '장유유서(長幼有序)'로서 웃어른을 부모와 형같이 공손하게 모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오륜가(五倫歌)"는 주세붕 이외에 박인로, 김상용 등이 지은 작품도 있다.

 

 

 

심화 자료

주세붕(周世鵬)

 

1495(연산군 1) 경남 칠원~1554(명종 9). 조선 중기의 문신·성리학자.

성리학 이념의 보급을 통한 교화와 향촌사림(鄕村士林)의 배양을 위해 최초로 서원(書院)을 건립했다.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손옹(巽翁).

생애와 관직생활

아버지는 문보(文)이며, 어머니는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와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관직생활을 시작해 홍문관의 정자·수찬, 공조좌랑·병조좌랑·강원도도사·사간원헌납을 역임했다. 1537년 권신(權臣) 김안로(金安老)의 배척을 피해 어머니 봉양을 이유로 곤양군수(昆陽郡守)로 나갔으나 이듬해 파직당했다. 이후 승문원교리를 거쳐 1541년 풍기군수(豊基郡守)가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 성균관사성에 임명된 후, 홍문관직제학·도승지·호조참판을 역임했다. 1549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뒤에 대사성·동지중추부사 등에 임명되었다. 중앙에 있을 때는 주로 홍문관·성균관 등 학문기관에서 관직을 맡았고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교학(敎學) 진흥에 힘썼다. 지극한 효행과 청빈한 생활로 조야에 신망이 높았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교학진흥

그는 도학(道學)에 힘쓸 것을 주장하고 유교 이념의 보급을 위해 여씨향약(呂氏鄕約)의 시행을 건의했다. 풍기군수 재임시에는 유교윤리에 입각한 교화에 힘썼고 당시 향촌민의 교육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향교를 복구했다. 1542년 순흥(順興) 죽계(竹溪)에 고려말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당인 회헌사(晦軒祠)를 설립했고, 1543년 풍기의 사림 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주자(朱子)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모방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고 안향을 배향했다. 건립 때는 감사 임백령(林百齡)·이언적(李彦迪)·황빈(黃彬)의 도움을 받아 재정을 확보했고, 자주 서원에서 유생들과 강론(講論)하는 등 큰 열성을 보였다. 처음에는 사림의 호응을 크게 받지 못했으나 1550년 이황(李滉)의 건의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의 사액을 받고 공인된 교육기관이 된 후 향촌사림의 정치·사회활동 기구로 자리잡았다. 1551년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해주(海州)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건립하여 최충(崔)을 봉사(奉祀)했다.

저서로는 〈죽계지 竹溪誌〉·〈동국명신언행록 東國名臣言行錄〉·〈심도이훈 心圖彛訓〉·〈심경심학도 心經心學圖〉 등이 있고, 문집으로 〈무릉잡고 武陵雜稿〉가 있다. 〈도동곡 道東曲〉·〈육현가 六賢歌〉·〈엄연곡 儼然曲〉 등 장가(長歌)와 〈군자가 君子歌〉 등 단가(短歌)가 전한다. 칠원의 덕연서원(德淵書院)과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김상용의 오륜가

 

 

제1수

어버이 자식 사이 하늘 삼긴 지친(至親)이라.

부모 곳 아니면 이 몸이 이실소냐

오오(烏烏)도 반포를 하니 부모효도 하여라. - 부자유친(父子有親)

 

제2수

님군을 셤기오데 正한 길로 인도하야

국궁(鞠躬 : 몸을 굽힘) 진췌(盡췌 : 몸이 여위도록 일함)하여 죽은 후의 마라사라

가다가 불합(不合 : 뜻이 서로 맞지 않음) 곳 하면 믈러간들 엇더리 - 군신유의(君臣有義)

 

제3수

부부라 하온 거시 남으로 되어 이셔

여고슬금(如鼓瑟琴)하면 긔 아니 즐거오냐

그러고 공경 곳 아니면 즉동금수(卽同禽獸)하리라 - 부부유별(夫婦有別)

 

제4수

형제 두 몸이나 일기로 난화시니

인간의 귀한 거시 이 외예 또 잇난가

갑 주고 못들어 거슨 이뿐인가 하노라 - 형우제공(兄友弟恭)

 

제5수

벗을 사괴오데 처음의 삼가하야

날도곤 나의 니로 갈헤어 사괴여라

종시(終始)히 신의를 딕희여 구이경지(久而敬之)하여라. - 붕우유신(朋友有信)

삼강오륜(三綱五倫)

 

유교 도덕의 기본이 되는 3가지 강령과 사람이 항상 행해야 할 5가지 실천 덕목으로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는데, 각각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했다. 유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충과 효를 강조했으며,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을 말하고 있다. 이를 공맹의 교리에 입각해 삼강으로 체계화한 것이 한대의 동중서이다. 그는 〈춘추번로 春秋繁露〉 기의(基義)에서 하늘과 땅을 임금과 신하, 양과 음을 남편과 아내, 봄과 여름을 아버지와 아들에 각각 비유하면서 이를 왕도(王道)와 결부시켰다. 삼강은 군신·부자·부부의 3가지 인간관계에 한정되어 있고, 또 전자에 대한 후자의 종속성이 두드러진다. 즉 삼강은 통치기준에 입각한 윤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삼강은 상하가 철저한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윤리의 성격을 가진다. 삼강의 이와 같은 성격은 한대가 유교로써 사상을 통일하고, 군현제에 입각한 중앙집권을 추진하던 때였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삼강의 윤리는 당시의 전제군주권, 가부장적 부권, 남존여비에 입각한 남편의 절대적 권위 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유교가 도입되고 그것이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삼강의 윤리가 통치체제를 지탱하는 기틀이 되었다. 특히 1431년(세종 13)에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를 간행하여, 삼강의 윤리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확대되도록 힘썼다. 그리고 삼강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상죄(綱常罪)라 하여 특히 무거운 벌을 내려 그 실천에 철저를 기했다.

오륜은 동중서가 인(仁)·의(義)·예(禮)·지(智)의 4가지 덕에 신(信)의 덕목을 추가하여 이를 오행에 짝 맞추어 정리한 것이다. 오륜을 또한 오상(五常)이라고 했다.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말하는데 삼강과 더불어 기본적인 실천윤리로 강조되었다. 오륜도 삼강과 마찬가지로 상하관계적 질서의 확립을 통해 봉건적 신분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층의 통치이념으로 기능했다. 즉 부자·군신·부부·장유의 상하관계는 절대적인 것이며, 붕우의 경우도 신분의 차별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유교의 실천윤리들은 봉건적 신분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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