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年輪)-김기림
by 송화은율연륜(年輪) -김기림
무너지는 꽃이파리처럼
휘날려 발 아래 깔리는
서른 나문 해야
구름같이 피려던 뜻은 날로 굳어
한 금 두 금 곱다랗게 감기는 연륜(年輪)
갈매기처럼 꼬리 덜며
산호(珊瑚) 핀 바다 바다에 나려앉은 섬으로 가자
비취빛 하늘 아래 피는 꽃은 맑기도 하리라
무너질 적에는 눈빛 파도에 적시우리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주름 잡히는 연륜(年輪)마저 끊어버리고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춘추, 1936>
작가 : 김기림(1908-?)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북 성진 출생. 니혼[日本]대 문학예술과와 도호쿠[東北]제대 영문과 졸업. 1933년에 이효석 등과 구인회를 창설하고, 1935년에는 장시 <기상도>를 발표. 1945년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활동 주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적 모더니즘 문학 운동을 선언하고, 자연발생적 시를 배격하고 주지성을 강조하였으며, 감상성(感傷性)의 거부하면서 문명 비평의 정신을 앙양하고자 하였다. 이론과 창작을 겸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로서 활약하였다.
시집으로 『태양(太陽)의 풍속(風俗)』(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 등이 있고, 또한 시론집으로 {문학개론}(1946), {시론(詩論)}(1947), {시의 이해}(1950)가, 수필집으로는 {바다와 육체](1948)가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시의 화자는 서른 몇 해의 인생을 `무너지는 꽃이파리처럼 휘날려 발 아래 깔리는' 나이라고 제 1연에서 표현했다. 이는 덧없다는 뜻이다. 제 2연에 이르면 `구름같이 피려던' 뜻을 펼치지 못하고 굳어 나이테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 시에서 연륜은 좋은 뜻이 아니다. 그것은 활력을 잃고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삶의 남은 자욱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제 3연에서 보듯이 시의 화자는 비약을 꿈꾼다. 그 비약의 꿈은 산호 핀 바다에 내려앉은 섬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그곳에는 비취빛 하늘이 있고, 맑은 꽃이 피고, 눈빛 파도가 있다. 육지에서 쌓은, 자랑스럽지 못한 초라한 경력, 곧 연륜은 이곳에서 사라지고, 그곳에서 그것을 태우는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고 다짐한다.
이론과 창작에서 두루 주지적 태도를 견지한 이 시인의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이 시는 낭만주의적이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느끼는 허무를 노래한 시는 그후 많았지만 김기림 시인의 이 작품은 그 효시라고 할 만하다. 뭍에서는 불꽃처럼 살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낭만주의자에게 묻는 현실주의자의 아픈 질문이겠지만, 떠나지 않고는 도리가 없는 것일까. 떠나는 것은 왜 우리에게 한없는 꿈과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역마살, 순화하자면 방랑벽의 발로일 것이다. 정작 훌쩍 떠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드물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 떠남을 꿈꾸는 데서 그치지 않으면 그는 또한 낭만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해설: 이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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