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에밀 / 장자크 루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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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장자크 루소

이 세상의 만물은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에는 선하나 인간의 손에 와서 타락한다. 인간은 억지로 갑의 땅에다 을의 산물을 재배하려 드는가 하면, 어떤 나무에는 다른 나무의 열매를 열리게 하려고 애쓴다. 인간은 기후와 환경과 계절을 뒤섞고 혼동해 버린다. 자신의 개와 말과 노예를 불구로 만든다. 인간은 모든 것을 뒤헝클어 보기 싫게 만들며 기형과 괴물을 좋아한다. 그는 무엇 하나, 자연이 만든 그대로를 원치 않는다. 심지어는 인간까지도 자연 그대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을 승마처럼 구미에 맞게 훈련시키는가 하면, 정원수처럼, 취미에 맞도록 가지를 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라도 안 한다면 인간 만사는 더욱 나빠질 형편에 놓여있다. 우리들 인류는 일단 손을 댄 것은 중도에서 그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현재의 상태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 사이에 그대로 내버려둔 사람이야말로 가장 꼴사나운 인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빠져들기 쉬운 갖가지 편견들이며, 권위, 필요, 모범 등의 모든 사회 제도가 그의 속에 잠재해 있는 자연성을 질식시키기만 할 뿐, 그 대신으로는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길 한가운데 우연히 돋아난 나무처럼 통행인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밟히고 사방에서 꺾여 결국은 시들어서 죽고 말 것이다.


자애롭고 사려 깊은 어머니여! 큰길에서 몸을 피해 방금 돋아난 어린 나무를 인간의 갖가지 편견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줄 아는 어머니여! 나의 이 이야기는 바로 당신에게 하는 것이다. 그 어린 나무가 시들어 죽기 전에 물을 주고 가꾸시오. 그 열매는 장차 당신의 무한한 기쁨이 될 것이외다. 당신의 유아의 영혼 주위에 일찌감치 담장을 쌓으시오. 그 담장을 어디에 쌓아야 할지는 남이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담장을 직접 쌓는 일은 당신 이외에는 누구도 할 수 없는 법입니다. ....
우리는 연약한 상태로 태어난다. 따라서 힘이 필요하다.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난다. 그래서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둔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래서 판단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태어날 때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서 어른이 되면 꼭 필요한 것은 모두 교육에 의해서 얻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육의 원천은 자연이나 인간, 또는 사물에 있다. 우리의 능력과 기관의 내면적인 발달은 자연의 교육이다. 그리고 그 발육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인간의 교육이다. 또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갖가지 사물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경험에 의해 습득하는 것은 사물의 교육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세 가지 교사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그 교사들의 가르침이 서로 어긋나고 있는 경우에는, 그 학생은 교육이 잘못될 것이며, 늘 자신의 생각에 일관성이 없어진다. 반면에 세 가지 가르침이 한 점에 귀착하여 같은 목표로 향해있는 학생만이 자신의 목적을 향해 매진하며 모순 없이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학생만이 잘 자라게 되어있다. .....
그러면 이 목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방금 증명한 바와 같이 바로 자연의 목적인 것이다. 교육의 완성에는 세 가지 교육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는 자연의 교육 쪽으로, 나머지 두 교육을 이끌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


이와 같이 모순 없는 특별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필경 많은 일을 해야할 것이다. 즉, 아무 것도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배를 바람에 거슬러서 띄우기만 하면, 될 때에는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진로를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바다가 거센데 노도 속에 정박하려고 하 때에는 돛을 내려야만 한다. 젊은 안내자여, 주의할지어다. 그대의 돛 줄이 늦춰있지나 않는가? 돛이 바다 밑으로 끌려가지나 않는가? 그대가 모르는 사이에 배가 해안으로 떠내려가지나 않는가?


사회의 질서 내에서는, 모든 신분이 결정되어 있어서 각자는 그 신분에 맞도록 교육을 받게 되어있다. 만일 자기의 신분에 따라 교육받는 사람이 그 지위를 떠난다면, 그는 벌써 어떠한 지위에도 적합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교육은 그 사람의 운명이 양친의 직업과 일치하는 동안에만 유용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교육은 피교육자에게는 유해하다......
자연의 질서에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에, 그 공통의 천직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훌륭히 교육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인간과 관계되는 일을 잘 이행해 나갈 수가 있다. 나의 제자는 군인이 되든, 성직자가 되든, 변호사가 되든 그런 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을 양친의 직업을 따르기 전에 우선 인간의 생활로 불러들인다. 살아간다는 것만이 내가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일인 것이다. 그가 내 손을 떠날 때에는 그는 법률가도 아니요, 군인도 아니오, 사제도 아니라, 우선 한 인간이리라는 것을 나는 보증한다. 그가 누구이건 그는 인간으로서 할 일은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아무리 그의 지위를 변경시키려 해도 그는 의연히 자신의 지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


내 생각으로는 이 인생의 선과 악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은 교훈보다는 실천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즉, 우리의 교육은 우리와 함께 시작되며, 그 최초의 교사는 유모인 것이다. ......


사람들은 자기의 자식을 무사하도록 지키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보호하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의 타격을 감당하고 호사와 빈곤을 도외시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아이슬란드의 얼음 속에서나 말타 섬의 타는 듯한 바위 위에서라도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식이 죽지 않도록 주의를 한다고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도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애써 돌봐준 아이가 죽게 되면 마치 그 원인이 어버이의 간호의 잘못으로 오해될 우려마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에게 죽지 못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관과 감각, 능력, 요컨대 우리가 살아있음을 의식하게 하는 모든 부분을 활동시키는 것이다. 인생을 가장 오래 산 사람은 가장 장수한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가장 많이 느낀 사람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백년의 장수를 하고도 낳자마자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젊어서 무덤으로 간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만은 정말로 살았다고 한다면. .......


<아기가 모태 밖으로 나와 사지를 움직이고 펼 수 있게 되면 이내 세상은 새로운 속박을 가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배내옷을 입히고, 머리를 고정시키고, 사지를 똑바로 펴서 눕혀 놓는다. 전신을 갖가지 천으로 말고 묶어서 몸의 위치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로 졸라매고, 입으로 보내야 할 배출물이 저절로 흘러나올 수 있도록 옆으로 눕혀 주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이다. 왜냐하면, 갓난아기는 배출물을 수월하게 내보내기 위해 고개를 모로 돌릴 자유가 없으니까.>......
이렇게 불합리한 습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부자연한 습관에서 온 것이다. 어머니들이 그 첫 번째 의무를 소홀히 하여 자기 자식에게 젖먹이는 것을 꺼려, 자식을 돈으로 사들인 유모에게 맡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


이토록 가혹한 속박이 어린아이의 체질과 기질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최초의 감정은 아픔과 괴로움의 감정이다. 그들은 필요한 동작을 할 때마다 장해만을 발견한다. ......


어린이를 자유롭게 놓아두면 자세가 나빠지고, 사지의 순조로운 발육을 운동을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그릇된 지식에서 온 터무니없는 추론의 하나이지 결코 경험에 의하여 확증된 것은 아니다. 우리보다 더 양식 있는 국민들 중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사지가 자유롭게 자랐지만 단 한 명도 다치거나 불구가 된 예는 없다. 어린이들은 약하기 때문에 위험할 정도의 힘으로는 운동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격렬한 자세를 취하면 이내 고통이 와서 위험을 경계하도록 자세를 변경시키게 되어 있다. ......


자연의 감정을 잃은 젖먹이를 다정한 아들로 길러보려 하지만, 실은 배은망덕한 아이로 기르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는 자식에게, 마치 유모를 업신여기듯, 자기를 낳아준 생모마저 업신여기도록 가르치는 셈이 된다......


모든 것은 최초의 어머니의 타락에서 속속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도덕적 질서가 교란되고, 자연성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서 사라진다. 가정에서는 활기가 줄어들고, 새가정의 감동적인 광경도 이미 남편의 관심을 끌지 못하며, 외부 사람들의 존경도 받지 못하게 된다. 어린 아이 곁에 있지 않은 어머니는 존경을 잃게 된다. .....


그러나 어머니가 자기 손으로 정성껏 기르게 되면, 사회 풍습은 개선될 것이요, 모든 사람의 가슴에 자연의 감정이 눈뜨게 되고, 국가도 그 인구가 증가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최초의 첫걸음, 즉 어머니의 마음가짐만이 모든 것을 결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가정 생활의 매력은 나쁜 사회 풍속에 대한 최대의 해독제인 것이다. 귀찮게 생각되는 아이들의 극성도 즐겁게 여겨질 것이다. 부모는 점점 더 서로가 필요하게 느껴지며, 부부 사이의 애정도 날로 깊어진다. 그들의 결합은 확고해지는 것이다. 가정 생활에 활기가 있으면, 가사가 아내에게는 가장 즐거운 일이 되며, 남편에게는 가장 즐거운 위안이 된다. 이처럼 단 한가지 병폐가 시정되면 곧 전체의 개혁을 가져오게 되며, 마침내 자연은 모든 권리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여성이 진정한 어머니가 되면, 남성도 선량한 아버지와 남편이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어린이가 그 본래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를 원한다면,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연의 모습을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출생 직후부터 그를 보살펴, 어른이 될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말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참다운 유모는 어머니인 것과 같이, 참다운 교사는 아버지인 것이다. 부모는 그들의 교육 방침에 있어서나 그 직무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린이는 어머니의 손에서 아버지의 손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이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유능한 교사에게서보다는, 시야는 좁더라도 분별 있는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능이 열성을 보충해 줄 수는 없지만 열성이 재능의 부족을 메우어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


아버지란, 자식을 낳아서 기른다는 것만으로는 자식에 대한 의무의 3분의 1밖에는 못하는 샘이다. 그는 인류에게는 인간을, 사회에게는 사회인을, 그리고 국가에게는 시민을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 세 가지 부채를 지불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불하지 않는 사람은 죄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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