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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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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개벽󰡕 19, 1922.1)*


<감상의 길잡이>(1)

 

가난한 나무꾼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날 나무에 치인 요정을 도와준 그는 산신령으로부터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나무꾼은 아내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하고 급히 산에서 내려온다그러나 그들에게는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해가 저물도록 세가지 소원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마침 이웃집에서 순대굽는 냄새가 풍겨오자 아내는 무심껏 순대하나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그러자 순대 한 대가 하늘에서 떨어진다화가 난 나무꾼은 아내를 향해서평생 그놈의 순대를 코에다 달고 살라고 욕을 한다이번에는 순대가 아내의 코에가 붙었다이렇게 되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 소원은 그 순대가 아내의 코에서 떨어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결국 그들이 산신령으로부터 얻게된 것은 먹을 수조차 없는 순대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현실욕망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곧잘 인용되어온 유명한 전래동화이다크든 작든 우리가 현실 속에서 추구하고 있는 욕망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산물이란 대개가 다 이 동화 속에 나오는 허망한 순대와 다를 것이 없다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그 뻔한 이야기의 되풀이가 아니라 그 뒤 나무꾼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그 속편이다만약 그 가난한 나무꾼이 그뒤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속편은 동화가 아니라 시로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동요와도 같은 김소월의 시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를 읽어보면 그 같은 상상이 결코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지 모른다

 

그렇다.『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의 그 시구는 손 안에 싸늘하게 식은 순대 하나를 들고 서 있는 나무꾼의 새로운 소원처럼 들린다.『살자라는 한국말처럼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치열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도 드물 것이다구애를 할 때 한국 사람은 서양 사람들처럼아이 러브 유라고는 하지 않는다그냥 살자라고 말한다그리고 한국인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느냐하는 삶의 문제는 바로 어디에서 사느냐의 삶의 장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청산에 살어리랐다의 고려가요와서울에서 살렵니다의 오늘의 대중가요에는 천년 이상의 시차가 있지만 삶의 욕망을 공간으로 표현해 주는 그 방식은 달라진 것이 없다이렇게살자라는 말 속에는누구어디라는인간공간의 두 욕망이 숨어 있다더구나강변에 살자가 아니라 처격조사마저 빼어 버려강변살자라고 한 이 시구는 하나의 공간이 삶 그 자체의 목적으로 나타나 있다욕망은 결핍과 부재에서 나온다.『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라는 말은 곧 화자가 현재 강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말하자면 강변의 자연 공간과는 정반대인 문명 공간일 것이며동시에 그것은엄마 누나와 대립되는아빠 형님의 근육질의 남성 공간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엄마야 누나야라는 말투에서 드러나 있듯이 그 욕망의 주체자는 어린 아이로 되어 있지만 그 진짜 주체자는 바로 이 시를 쓴 시인 김소월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니까 이 시의 특성은 어른이 어린시절의 시점을 통해서 즉 미래의 시간(살자라는 미래의 바람)을 과거의 시간을 기점으로해서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강변이 현실 공간이 아니듯이 화자로서의 어린이 또한 현실의 주체자가 아니다그러고 보면 엄마와 누나 그리고 강변은 말할 것도 없고 살자라고 말하는 욕망의 주체자마저도 부존한다

 

이 부재하는 욕망의 공간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그것이 시인의 특권인 이미지라는 힘이다거기에서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탄생된다여기의 뜰이 전방성과 수평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뒷문밖에는이라는 대구에 의해서 명확히 드러난다즉 뜰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뒷문 밖에는 산이 솟아 있다앞과 뒤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 그리고은 열려져 있는 세계를 그리고 뒷밖은 닫혀져 있는 세상을 보여 준다그러한 이항적 대립을 더욱 첨예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금모래 빛갈잎의 노래의 대조이다.『반짝이는의 의태어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뜰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래는 시각적인 것이다그래서 모래는 금모래가 되고 빛이 된다또한 모래의 그 물질적 이미지의 뒤에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뒷문 밖 산을 덮고 있는 것은 모래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이파리들이다그리고 그것은금모래빛의 빛과는 달리갈잎의 노래라고 되어 있어 청각적인 것을 나타낸다앞뒤로 분할되어 있던 공간은노래의 시각과 청각의 감각 공간으로 대응관계를 띠게 된다모래에서 태양빛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제갈잎의 노래에서는 숨어 있던 바람소리를 듣게 된다그래서반짝이는의 의태어와 짝을 이루고 있는살랑이는갈잎의 의성어마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앞과 뒤개방과 폐쇄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수평성과 수직성(강과 산) 그리고 시각과 청각음악의 대위법처럼 시의 병렬법(패러랠리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대체 그 살고 싶은 그 공간이란 어떤 것인가.20여자의 이 짧은 시구 안에 상감되어 있는 그 공간은 산의 부동성과 강물의 유동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저 한국 산수화의 공간뒤에는 청산을 지고 앞에는 강물을 끌어 안고 있는 초가삼간몇천년 동안 한국인의 마음에 깊숙이 각인되어 온 그 삶의 원풍경인 것이다그것은 분명 엄마와 누나라는 말로 상징되는 존재의 그 시원적인 모태 공간이다그리고 그것은 모든 경계를 나타내는 중간 공간이기도 하다강변에 있는 모래는 땅과 물의 중간적인 물질이 아닌가모래는 한 알 한 알이 고체이면서도 물처럼 흐르는 유체적 성질을 갖고 있지 않는가

 

김소월은 우리에게 산수화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아버지와 형님의 남성의 생존공간빼앗고 피흘리는 경쟁과 금모래 빛이 아니라 네온사인의 빛이 휘황한 쾌락의 문명공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되풀이 할수록 자동차에 치이며 살아가는 문명의 공해에 살아가고 있는 현존공간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소월의 시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존하는 아버지 형님들의 문명적인 공간과 엄마와 누나의 부재하는 자연 공간의 그 틈사이 강변의 모래와도 같은 경계의 그 문지방 위의 긴장 속에서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이어령 교수>

 

<감상의 길잡이>(2)

이 시는 각 행 모두 3음보의 리듬을 사용하여 자연에 대한 순진무구한 동경을 진솔하게 노래함으로써 서정시의 완벽한 음악화를 이룬 작품이다.

 

강변으로 대유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엄마야 누나야라는 어린아이의 호칭을 사용할 정도로 순수하다. 그가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강변은 그에게 평화와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안식처로서, 가족들과의 단란을 이상으로 하는 보금자리를 뜻할 수도 있고, 당시 현실 상황에 견주어 볼 때는 일제의 모진 압제를 벗어난 어떤 이상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꿈꾸는, ‘갈잎의 노래가 들려오고 금빛 모래가 반짝이는 그 곳은 꿈의 세계만큼이나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서러운 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김소월 시의 출전은 처음 발표지에 따른 것이지만,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시의 경우에는 널리 알려진 대로 시집 󰡔진달래꽃󰡕의 표기에 의거하였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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