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국가 권력의 관계

언론과 국가 권력

 

현대 사회에서 국가는 시민 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실상 국가 없는 삶이란 생각하기 어렵다. 삶의 기본 방식, 공통의 행동 기준, 법률, 관습 등이 국가를 통해 확보되며 사회질서 또한 국가를 통해서 유지된다. 국가를 통해서 어떤 특정한 사회 질서가 시민들에게 강제되고 그러한 규약을 어긴 사람은 처벌을 받게 된다.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권위 역시 국가를 통해 세워지며 그들의 동의를 받아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사회에 대해 어떤 정치적 권위가 확립되는 도구이다. 국가는 그 사회의 독특한 제도, 힘의 관계 등을 유지하고 재생산한다.

 

국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가 되는 것이 언론이다. 국가 권력과 언론은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사실상 언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늘 국가 권력과의 변화가 언론 변화의 주요한 동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언론은 국가 권력과의 상호 견제, 감시, 또는 공존 관계 등을 통해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언론과 국가 권력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언론이 정치, 사회, 문화적인 환경에서 독립하여 그것을 감시하거나 그러한 환경에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율적인 힘의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는 언론이 정치, 경제적 지배 세력에 의해 권력의 자기 보존 및 확대를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발생, 발전해 왔으며 오늘날 통념화된 언론의 여러 가지 규범적 가치 역시 권력과 언론의 그러한 관계 속에서 역사적으로 배태되고 배양된 사회통제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국가와 언론의 관계의 양극의 모습이며 현실은 이 양극 사이에서 다양한 편차를 갖는 양상을 보여준다.

 

일방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언론은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 속성상 긴장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체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공존 관계를 유지한다. 즉 국가는 그들이 행하는 일을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에 언론은 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국민의 '알 권리'를 대행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보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정치적 후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문서상의 자유로 제한되어 있었고 국가 권력도 초법적으로 행사되는 경우가 많아 언론은 기껏해야 허용된 범위 안에서의 비판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강제된 동조 세력으로 안주했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는 초법적인 '언론기본법'에 의해 언론의 재갈이 물려졌던 5공화국 시절에 언론은 정권 유지의 도구로 전락했었다. 이는 5공화국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언론의 성격 내지 언론과 국가 권력과의 관계를 잘 드러낸 뿐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일방적인 성격과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동시에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특수성 속에서 언론과 국가 권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언론과 국가 권력의 관계가 보다 자세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언론과 국가 권력의 관계

 

언론의 역사는 언론과 국가 권력의 관계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언론은 국가 권력의 통제를 받거나 독립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러나 그 관계는 매체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한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언론과 국가 권력의 관계를 살펴보자.

 

서구에서 근대 신문의 형성과 발전 과정은 자본주의 발달과 일치하며 신흥 시민 계급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세의 봉건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로운 사회적 계약과 민주적 정치 원리에 기초한 근대 사상을 신봉하던 세력으로서, 자신들의 사상을 널리 전파시키기 위해 새로운 인쇄 매체인 신문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중세의 종교 권력과 귀족, 절대주의 국가 권력은 이 새로운 언론 출판 활동을 탄압하였다. 당시 국가 권력은 신문 허가 제도와 검열 제도를 통해 신문을 통제하였고 시민 계급은 이에 맞서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더욱이 중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신문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시민 계급은 신문을 그들의 사상적 무기로 활용하여 근대적 사상을 널리 전파하였는데 이것이 결국 시민 혁명의 성공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리하여 근대 시민 사회의 확립과 함께 근대 신문이 싹트게 된 것이다.

 

시민 혁명의 성공으로 언론 자유는 법적인 보장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후 인권 선언은 "사상 및 의견의 자유로운 전달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라고 규정함으로써 언론자유를 천명하였다. 미국의 수정 헌법 제1조도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신문은 정치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더욱이 자본주의화의 진전으로 신문 역시 자본주의적 경영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광고를 재원으로 하는 상업 신문이 발달하는 등 신문의 기업적 발전은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신문은 정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자본의 논리에 통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20세기 이후 후기 자본주의로 들어서면서 신문 분야에서도 집중화와 독점화가 나타났다. 신문은 기술 혁명과 이에 따른 산업화, 도시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등에 의한 시장 확대와 광고의 증가 등으로 인하여 급속히 대기업으로 자랐고, 점차 기업 합병 및 체인화 등을 통해 독점화되었다.

 

한편 방송 매체는 20세기에 들어서 등장하였으며 이제는 가장 대표적인 매체로 기능하고 있다. 방송 초기에 라디오 방송은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고 성장하였다. 특히 라디오가 출현한 미국에서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방송국을 경영함으로써 상업적인 방송제도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국이 여러 개 생겨나자 전파혼선이라는 기술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유일한 전파를 유효적절하게 배분해 주어야 할 사회적 필요가 제기됨으로써 정부는 방송에 규제를 하게 되었다. 기술적인 요인에 의해 국가 권력의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방송을 국가 권력의 규제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제도가 동일하지는 않다. 미국보다 조금 늦게 방송을 시작한 유럽에서는 미국 라디오 방송의 초기 혼란상을 보고 방송을 상업 제도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으며 상업성보다는 고익성을 앞세우는 공영 방송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라도 방송은 규제를 받는 매체로 인식되었다.

 

방송이 규제를 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전파가 공공의 전유물이므로 정부가 전파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개인이나 단체가 전파의 소유권을 갖는 게 아니라 단지 전파 사용권을 공공으로부터 수탁 받는 것에 불과하므로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방송 전파로 이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양은 한정되어 있어서 방송을 규제해야 한다는 희소성의 원칙이다. 따라서 정부는 희소한 자원인 방송 전파를 누가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며, 일단 사용을 허가했더라도 공익 증진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는가를 확인하는 허가 갱신 제도를 확립해 놓고 있다. 이는 방송 내용에 대한 규제를 수반한다.

 

셋째, 정부가 방송 전파의 사용을 관리하지 않으면 전파 혼선으로 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방송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매체들에 비해 크기 때문에 그 내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에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에 대해서는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인해 방송에 대해서도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과거 신문, 출판 등 인쇄 매체 분야에서만 적용되었던 자유시장원리가 방송과 멀티미디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언론은 형식적으로는 점점 국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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