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약을 경계하는 이야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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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경계하는 이야기

홍석주 지음

홍기은 번역

더위를 먹어 병이 든 사람이 있는데, 위로는 기침을 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하며, 양맥(陽?)은 뜨고 흩어지며 음맥(陰맥)은 막히고 약하였다. 진맥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것을 음허(陰虛)라고 하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죽게 된다.”라고 하여 깜짝 놀라 그의 말을 따랐는데, 혈(血)을 넉넉하게 하면 횡격막(橫膈膜)이 막히고 화기(火氣)를 가라앉히면 위(胃)가 차가워서 밥 한 그릇을 다 먹는데도 핼쑥하게 날로 파리해졌다. 그래서 약을 바꾸어 이번에는 따뜻하게 하였더니 열이 올라서 가슴속에 숯불을 태우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세 번이나 치료법을 바꾸었는데도 병은 더욱 깊어지기만 하였다. 이렇게 되자 그 의원이 말하기를, “죽는 것도 명(命)이다.”라고 하면서 끝까지 약이 잘못되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원과 약을 걷어치웠는데 한 달이 지났는데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가 병이 나은 뒤에 나를 보고 탄식하기를, “내가 이번 일을 겪은 뒤로 의약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맹세코 의원을 찾아 약을 복용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작은 병만 걸려서 그렇게 말하는데 만약 큰 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약을 쓰지 않고 나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대의 말이 지나치다. 천하에 중류(中流)의 의원이 없은 적이 없는데 그대는 그런 사람은 찾지 못하고 단지 하류의 의원과 의논하고서 의약이 사람을 죽인다고 허물하는가. 그렇다면 신농씨(神農氏)나 헌원씨(軒轅氏)가 천하 사람에게 해독을 끼쳐 죽이려고 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객이 말하기를, “참으로 그렇다면 그대는 약을 경계하지 않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 나는 의원 택하는 것을 경계하지 약 복용하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다. 의원을 제대로 만나면 파초(巴楚)나 요사(요砂)도 양약이 되고,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인삼(人蔘)이나 창출(蒼朮)도 독약이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일찍이 크게 경계한 것이 있으니, 병을 근심하여 예방하려고 약을 먹는다거나 몸을 보양하기 위하여 보약으로 먹는 약은 유부(兪부)나 편작(扁鵲)같은 신의(神醫)를 만나지 않는 한 나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하였다.

객이 껄껄 웃으며 말하기를, “심하다, 그대의 감상이여. 어려운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로 쉬운 것을 두려워하며, 위태로운 것은 염려하지 않고 편안한 것을 근심하는가. 요원의 불길에서 머리를 태우고 이마를 데는 것 보다는 막 불꽃이 일어났을 때 끄는 것이 쉽지 않겠으며, 창칼을 부딪치고 시석(矢石)을 무릅쓰고서 죽음을 각오하고 일전을 치르는 것 보다는 나라가 태평할 때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편치 않겠는가. 정말 그대의 말과 같다면 주공(周公)이 상두시(桑土詩)를 짓지 않았을 것이고, 《주역(周易)》에 기제(旣濟)의 상(象)이 없었을 것이니 성인이 어찌 참으로 나를 속였겠는가.”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그대는 이른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그대는 미세한 터럭의 끝을 보는 것과 형체가 있는 커다란 산을 보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어려우며, 일에 앞서 헤아리는 것과 일을 당하여 헤아리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쉽다고 생각하는가? 얼음을 보고서 추운 줄을 알고, 불을 보고서 뜨거운 줄을 아는 것은 중간 수준의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리를 밟고서 매서운 추위가 올 것을 느끼고, 달이 필성(畢星)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서 큰물이 질 것을 깨닫는 것은 상등(上等)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중류의 의원은 없은 적이 없지만 상류의 의원은 항상 만날 수 없으니, 내가 경계하는 것이 어찌 부질없이 하는 것이겠는가. 참으로 아는 데 힘쓰지 않고 미연에 구제하려고 한다면 구제하려는 행위가 애당초 재앙을 일으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대는 지난날 정주성(定州城)에서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진압한 일을 보지 못했는가. 당시에 방략(方略)이 모두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 장수와 병사가 모두 지혜롭고 용맹한 것이 아니었으며, 병기가 모두 단단하고 예리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군대를 주둔시킨지 5개월만에 오히려 성공하고 돌아온 것은 공격해야할 곳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만약 한두 해 전에 예방하고 싶은데 참으로 알지 못하는 점이 있어 비슷한 사람을 모두 죽인다고 했다면, 근방의 지역에서 모두들 대비를 하여 무리를 모아 백성을 수고롭히고 재물을 덜어 군량미를 저장해서 난의 형체가 드러나기도 전에 민심이 먼저 동요되어 어느날 갑자기 병란이 일어나면 삽시간에 무너지지 않을 자 있겠는가.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오늘의 승전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객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조리가 있다. 그렇다면 옛 성인이 먼 앞날을 염려하여 미리 대비하는 도(道)는 모두 없애도 좋단 말인가. 도덕과 교화를 수립하여 풍속을 선하게 하고, 요역과 세금을 관대하게 하여 민생을 안정시키며, 어진 수령을 선발하여 목민(牧民)을 부지런히 하게 하고, 훌륭한 장수에게 국방을 맡겨 군비(軍備)를 담당하게 하는 것들이 또 어찌하여 불가하단 말인가.”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는 의약을 놓고 말한 것이 아니다. 몸에 비유하면, 음식을 삼가고 기거를 고르게 하며 기욕(嗜欲)을 절제하여 그 삶을 잘 영위하는 것이니, 어찌 의약을 놓고 말하겠는가. 옛사람 중에 병들지 않았는데도 약을 사용한 사람이 있다. 사마유(司馬攸)가 유연(劉淵)을 제거하려고 한 것이나, 장구령(張九齡)이 안녹산(安祿山)을 죽이려고 한 것이나, 곽흠(郭欽)이 융적(戎狄)을 국경 밖으로 이주시키자는 의론을 창도한 것이나, 가의(賈誼)가 국가의 행정구역을 나누자는 모의를 건의한 것들이 그 예인데, 이들은 국가를 치료할 의술은 터득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자들이다. 진시황(秦始皇)은 참위서(讖緯書)를 얻어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진 나라의 멸망은 바로 만리장성이 불러들였고, 송(宋) 나라 명제(明帝)는 소도성(蕭道成)을 써서 종실(宗室)을 제거하였고, 당(唐) 나라 태종(太宗)은 측천무후(則天武后)를 궁 안에 두었다가 이군선(李君羨)을 죽였다. 태종처럼 명철한 사람도 부질없이 무고한 사람을 죽여 재앙을 키웠으니, 미연에 방비한다는 것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평상시에 보양하기 위해 먹는 보약은 세상의 의원들이 이른바 순수한 왕도(王道)로서 완전하고 폐단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보양을 하면 반드시 치우치는 바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기(氣)가 성하면 혈(血)이 쇠하고 수(水)가 왕(旺)하면 화(火)가 약(弱)하게 되는 것이니, 보양하여 평정을 얻지 못하면 도리어 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수(隋) 나라 양제(煬帝)가 낙구창(洛口倉)을 만들어 저축을 늘리면서 아래에서 백성들이 궁핍한 줄은 몰랐고, 당(唐) 나라 덕종(德宗)이 금병(禁兵)을 철수시켜 하북(河北)을 공략하면서 도성이 비게 된 줄은 몰랐으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천하는 원래 아무 일이 없는 것인데 용렬한 사람이 어지럽게 한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7척의 몸이 믿는 것은 장부(臟腑)와 기혈(氣血)인데, 다행이 큰 병이 없다면 어찌 용렬한 의원이 어지럽도록 하겠는가. 그리고 병이 있어 투약할 경우에는 그 약이 효험이 있는지 해를 끼치는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효험과 해를 그 자리에서 확인하면 취사선택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병이 없는데 보약을 먹는 경우는 약이 비록 몸에 맞지 않더라도 쉽게 해를 당하지 않는다. 그 해를 당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먹는다면, 오랫동안 누적되고 화근이 깊어져 어느날 갑자기 발작하여 다시는 구제할 수 없게 될 줄을 누가 알겠는가. 부귀한 사람들은 평소에 잘 먹어서 보통때 병이 없는데도 인삼이나 녹용을 밥 먹듯 하다가 늙지도 않았는데 골골거리는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이 되고, 심한 자는 까닭없이 갑자기 죽으면서도 끝내 그 원인이 약 때문이며 수십년 전부터 그 해가 잠복해 있었던 것을 모르니 어찌 애달프지 않겠는가.”하였다.

객이 말하기를, “그대의 뜻대로라면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양생(養生)을 잘하는 사람은 마음을 맑게 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부득이하여 약을 먹을 경우에는 신중히 하여 용렬한 의원이 끼여들지 못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쉬게 하는 데 힘쓰고 부득이하여 사건이 있을 때에는 신중히 하여 소인이 끼여들지 못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주>

* 상두시(桑土詩) : 《시경(詩經)》빈풍(빈風)의 치효시(치효詩)를 가리킨다. 이 시는 주(周) 나라 주공(周公)이 조카 성왕(成王)을 깨우치기 위해 지은 것인데 여기에서는 상두(桑土) 부분만을 인용한 것이다. 그 내용은 새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가 미리미리 앞날의 어려움을 대비하면 남들이 감히 업신여기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 기제(旣濟)의 상(象) : 기제(旣濟)는 《주역(周易)》의 괘 이름으로, 64괘 중에서 63번째에 해당하며 이미 성공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미 성공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고 우환이 생길 가능성만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괘상(卦象)에 “군자가 본받아서 환난을 생각하여 미리 예방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미리 예방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 달이 ...... 것 : 《시경》 소아(小雅)의 점점지석시(漸漸之石詩)에 “달이 필성에 걸렸으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리로다[月離于畢 비滂타矣]”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천체의 운행을 보고 일기를 미리 앎을 말한 것이다.

홍석주(洪奭周)

 

1774(영조 50)~1842(헌종 8)의 자는 성백(成伯), 호는 연천(淵泉), 본관은 풍산(豊山),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의 손자, 우부승지 홍인모(洪仁謨)의 아들이다. 1795년(정조 19) 식년 문과에 갑과(甲科)로 급제, 직장(直長)을 거쳐 응교, 교리, 부제학, 병조 판서, 이조 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실록청의 총재관으로 《순조실록(純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성리학에 밝고 특히 문장에 있어서 10대가(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는 《연천집(淵泉集)》, 《학해(學海)》, 《동사세가(東史世家)》 등이 있다. 이 글은 연천전서(淵泉全書) 3, 권24에 수록된 <약계(藥戒)>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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