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훈계
by 송화은율아버지의 훈계
강희맹 지음
정선용 번역
시장통의 후미진 곳에다 관가에서 오줌통을 설치해 두고는 시장 사람들이 급할 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는데, 선비로서 몰래 그 곳에다 오줌을 누는 자는 볼결죄(不潔罪)를 받는다. 시 장 근방에 사는 어떤 양반집에 변변치 못한 아들이 있었는데 몰래 그 곳에 가서 오줌을 누 었다. 그의 아버지가 알고 호되게 야단쳤으나 아들은 듣지 않고 늘상 그 곳에다 오줌을 누 었다. 오줌통을 관리하는 자가 금지시키고자 하였으나 그 아비의 위세에 눌려서 감히 말도 못꺼내고 있었다. 온 시장 사람들이 모두 그르게 여기는데도 아들은 오히려 무슨 수나 난 것처럼 여겼다. 행신을 조심하느라 그 곳에다 오줌을 누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도리어 그를 비웃으면서,
"겁장이 같으니라구. 뭐가 겁난단 말인가. 나는 날마다 누어도 탈이 없는데, 뭐가 겁난 단 말인가."
하였다. 아버지가 그 행실을 듣고 아들을 꾸짖기를,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너는 양반집 자식으로 백주 대낮에 그 곳에 오줌을 누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남들이 천하게 보고 싫어할 뿐만 아니라 화가 따를 지도 모르는데, 뭐 좋을 것이 있다고 그런짓을 하느냐."
하였다. 아들은,
"저도 처음에는 그 곳에다 오줌을 누는 선비를 보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하였는데, 하루는 오줌이 몹시 마려워 그 곳에다 오줌을 누어 보니 몹시 편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는 그 곳에다 오줌을 누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제가 그 곳에 다 오줌을 누는 것을 보고는 모두 비웃더니 차차 비웃는 자가 줄어들고 말리는 자도 없 어졌습니다. 지금은 여럿이 곁에서 보더라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곳에 오줌을 눈다 해서 체면이 깎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아버지는,
"큰일이다. 네가 이미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말았구나. 처음에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던 것은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겨 네가 행실을 고치기를 바라서였던 것이다. 중간에 차 츰 드물어지긴 했어도 그 때까진 그래도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긴 것이다. 지금 곁에 서 보고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너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아 라. 개나 돼지가 길바닥에 오줌을 싸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더냐. 못된 짓을 하는데 도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 것은 너를 개돼지로 보기 때문이다.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니 냐."
하자, 아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고 아버님만 그르다고 하시는데, 대채로 소원(疏遠)한 자는 공정하고 친한 자는 사정을 두는 법입니다. 어째서 남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데 아버님께서는 도리저 저를 나무라신단 말입니까?"
하니, 아버지가,
"공정하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 취급을 안해 아무도 나무라 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미가 너무도 참혹하지 않느냐. 사사로운 정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행여나 뉘우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다. 그러니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롭지 않느냐. 네가 한번 생각해 보라. 세상에 부모 없 는 자에게는 훈계해 주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말뜻을 알게 될 것 이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아들이 나가서 남들에게 말하기를,
"노인네가 잘 알지도 못하고 나만 나무란다."
하였는데, 얼마 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예전에 오줌 누던 곳에 가서 오줌을 누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바람이 일더니 누군가가 그의 이마를 후려쳤다. 한동안 정신을 잃 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후려친 자를 잡고 따지기를,
"어떤 죽일놈이 감히 이런 짓을 하느냐. 내가 여기에다 오줌 눈 지 10년이나 되었는데 도 온 시장사람들이 아무소리 안했는데, 어떤 죽일 놈이 감히 이러느냐?"
하니, 후려친 자가,
"온 시장 사람들이 참고 있다가 이제서야 분풀이를 하는 것인데, 네놈이 아직도 주둥아 리를 놀리는가."
하고는, 꽁꽁 묶어서 시장 한복판에 놓고는 돌을 마구 던졌다. 그 집에서 떠메고 돌아왔는 데, 한달이 넘도록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아들은 그제서야 아버지의 훈계를 생각하고는 슬피 울면서 자신을 책하기를,
"아버님 말씀이 꼭 맞았구나. 웃음 속에 칼날이 숨겨져 있고 성냄 속에 사랑이 담겼다 더니, 이제 와서 아무리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자 해도 들을 길이 없구나."
하면서, 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전의 못된 행실을 고치기로로 마음먹고 마침내 착한 선비 가 되었다.
강희맹(姜希孟) : 1424(세종6) - 1483(성종14).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국오(菊 塢), 운송거사(雲松居士) 등, 본관은 진주. 집현전직제학을 거쳐 이조판서, 좌찬성을 지냈다. 문장과 서화에 능하였고, 문집 외에 <촌담해이(촌담해이)>, <금양잡록(금양잡록)> 등 저서 를 남겼다. 이글은 <사숙재집(私淑齋集)> 권2 잡저 [훈자오설(訓子五說)] 가운데 한편으로, 원제는 [요통설(溺桶說)]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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