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땅 / 요점정리 - 임철우
by 송화은율 작자소개
임철우(林哲右: 1954- )
전남 완도 출생. 전남대 영문과, 서강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 도둑>이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현실의 왜곡된 삶의 실상을 통해서 인간의 절대적 존재 의식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달빛 밟기>, <붉은 방>, <볼록 거울>, <불임기> 등이 있다.
요점정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배경 :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전방의 어느 야영지.
인물 : 나 - 주인공.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군인. 공산주의자로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죄의식을 지 님. 야영지에서 이름 모를 시신의 발굴을 통해 지난 날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해 졌던 폭력의 흔적을 확인하고 갈등함.
주제 : 분단 현실의 실상과 그 극복.
이해와 감상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은 그의 첫 소설집의 제명(題名)이 된 작품으로서, 임철우 소설 세계를 들여다 보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다.
흔히 그는 우리 시대의 현실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리얼리스틱 수법으로 파헤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이 <아버지의 땅>에 드러난 작가 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소설적 관심은 체제와 이데올로기적 폭력,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동요되는 개인의 모습들에 있다. 그래서 그는 분단 체제의 현실과 광주 항쟁 등 일련의 시국 사건들에 직접, 간접으로 관계된 인물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들이 현실의 다양한 폭력 앞에서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를 꾸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 그의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폭력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 개인과 사회, 실존적 고뇌와 공동체적 실천 사이의 문제에 대해 언제나 통찰하고 탐구하는 대상이 된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우리 시대의 폭력적 현실과 과거의 폭력, 개인의 파멸과 사회의 부도덕함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분단 체제와 광주 항쟁 같은 비극적 현실을 원죄(原罪)를 극복하고자 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줄거리
조금 전에 나와 오 일병이 내린 그 트럭은 홀어머니의 초상을 치르러 고향으로 가는 전입병을 싣고 들판 가운데로 난 황톳길을 따라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더블 백을 껴안고 엉거주춤 들어서던 첫날의 모습만 기억할 뿐, 아직 그 전입병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오 일병과 나는 기동 훈련을 대비한 야전 진지를 구축하느라 한 조(組)가 되어 경계용 참호를 파고 있었다. 작업 도중에 오 일병이 갑자기 "억!" 하고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사람의 해골이었다. 눈알이 있던 자리엔 꺼멓게 뚫린 두 개의 구멍이 흙더미 속에 박힌 채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유골이 나온 자리는 유난히 잡초가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 풀섶이었다.
그냥 다시 파묻어 버리라는 소대장의 말에 인사계 김 중사가 아무리 족보 없는 유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계속 파내려 갔다. 몸통 부분을 끄집어내었을 때, 우리는 낮은 탄성을 질렀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에 몇 겹이나 되는 철사줄(피피선)이 감겨 있는 것이었다. 학살 당한 사람이었다. 이때 나는 불현 듯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았다.
"저걸 좀 봐라이. 새들은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올 줄을 아는 법이여."
열 두서너 살 무렵에야 비로소 나는 어머니와 나 둘뿐, 우리집에 아버지가 없음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먼 곳으로 배 타고 나갔다가 영영 못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야 아버지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덤벼들 듯이 묻는 내게 어머니는 간신히 대답했다.
"그래, 아버지는 죄를 지었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떠나신 거여."
바로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그 죄라는 것을 내가 떠짊어지고 만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환영은 저주처럼 내 곁을 따라다녔다.
유골이 나온 야영지에 인접한 마을은 전쟁이 끝나 갈 무렵 밀어닥친 산사람들에 의해 느닷없이 쑥밭이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돌아왔지만, 숱한 시신들을 묻었던 자리엔 해마다 키를 넘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몇 년 동안은 그 누구도 아예 감자니 무를 밭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유해를 묻어 준 후 마을 구멍가게에서 사온 북어와 술로 제를 올려주고 가겟집 노인과 산을 내려왔다. 노인은 산사람들이 마을에 들이닥쳤을 때 길잡이로 한밤중에 끌려 나간 후 소식 없는 형님을 찾고 있었다며 쓸쓸히 웃었다.
어느덧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서서 노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면서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리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화를 내다가 눈물을 흘렸다. 아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그토록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려 왔음을……. 하지만, 그녀가 울고 있는 건 스물 다섯 해의 세월 동안 스스로를 묶어 놓은 그 완고한 기만(欺瞞)이 목에 감기어 어머니는 울고 있는 것이다.
얼핏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나는 얼어 붙는 땅 밑에 새우등으로 웅크리고 누운, 누군가의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였다. 피피선에 손발이 묶이 아버지가 이따금 돌아누우며 낮은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소반 위에 떠서 올리던 바로 그 사기 대접처럼 눈부시게 하얀 빛깔의 눈송이가 세상을 가득 채워 버리려는 듯 거대한 산들을 하얗게 지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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