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시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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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란 진공묘유(眞空妙有)

 

푸른 바다 배 간 자취 찾을 길 없고 滄海難尋舟去迹

청산에는 학 난 흔적 볼 수가 없네 靑山不見鶴飛痕

 

시란 이와 같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무언가 꼬집어 말하려 하면 사라져 버리는 느낌,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노래한다. 효용가치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저편으로 울려오는 떨림, 그 떨림의 미묘함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에게는 단지 입상함으로써만이 진의할 수 있는 묘오(妙悟)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명나라 사진(謝榛)은 그의 사명시화(四溟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지음에 핍진한 것은 마땅치 않다. 마치 아침에 가서 멀리 바라보면 청산의 아름다운 빛이 은은하여 사랑스럽고, 안개와 노을은 변화무쌍하여 무어라 이름하여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 보면 별반 기이한 경치가 아니고, 오직 바위 덩어리와 몇 그루 나무일뿐이다. 멀고 가까움에 본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니, 묘는 어렴풋함에 있어, 그러한 속에서 비로소 솜씨가 드러나게 된다.

 

시에서 입상진의를 귀히 여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막상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놓고 보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몇 줄의 교훈이거나, 아니면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도 없는 미묘하고 추상적인 느낌의 단편뿐이다. 마치 멀리서 본 산이 아름답지만 막상 올라서서 보면 바윗돌 몇 개, 나무 몇 그루뿐인 것과 같다. 그렇다고 멀리서 바라보는 산의 아름다움을 거짓이라고 거부할 일은 아니다. '어부사시사'에서 "강촌의 온갖 꽃이 먼발치 더옥 됴타"고 노래할 줄 알았던 고산 윤선도는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던 사람이다. 소월이 말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도 그 뜻이다. 양파의 껍질은 아무리 벗겨도 알맹이가 나오지 않는다. 시를 낱낱이 해부하여 찢어발기고 나면 남는 것은 언어의 시체뿐이다. 멀리서 바라보이던 은은하고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간 곳 없게 된다. (출처 : 정민, '한시 미학 산책'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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