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손창섭론 / 소외와 허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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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론 - 疏外와 虛無 / 柳 宗 鎬

 

1. 집도 부모 형제도 없다

  연보(年譜)에 의하면 작가 손창섭은 1922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열 네 살에 만주로 건너가 살았고 열 다섯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학을 다녔으며 대학에도 적을 두었으나 '여러 의미에서 학력다운 학력이 없다'고 스스로 토로하고 있다.

 

 1946년에 10년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48년에 월남하여 52년에 단편 <공휴일>이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발표되면서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휴전 직후에서 4.19에 이르는 몇 해 사이에 그의 중요 작품을 연달아 발표해서 한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소규모인 대로 당시의 우리 문학계에서 '새로운 전율'로 받아들여진 그의 '주리고 헐벗은 소외'의 문학은 어쩌면 전후(戰後)의 물질적 결핍과 물리적 황량의 문학적 대응으로서 특히 많은 호응을 얻은 것 같다. 휴전 직후에서 4.19 사이에 작가로서의 특질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작품을 다 써버린 그는 그후 이렇다할 만한 새로운 작품을 써내지 못하고 자기 세계의 복사에 그친 것 같은 느낌이다.

 

 <길> 등의 몇몇 장편소설을 시도하고 슬럼프에 빠진 듯한 그는 <환관> <청사에 빛나리>등과 같은 역사 단편을 시도해서 새 경지를 여는 듯한 폭을 주었으나 70년대 들어서 부인의 조국인 일본으로 건너가 연재 소설을 국내 신문에 쓰고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발전에는 별로 눈에 뜨이는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필의 연보보다도 그의 삶의 도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그의 자전이라고 할 <신(神)의 희작(戱作)>과 같은 단편이다. 뭐 구태여 자기 고백의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약간의 추리적 상상력을 구비하고 있을 독자라면 족히 상상할 수 있는 작가의 비밀이 공식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손창섭 작품에 대한 해설 혹은 주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될수록 숨기거나 언급이나 기억을 회피하려 하는 것만 골라가면서 드러내고 있는 기록은 아마 쉽사리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그의 고백은 아버지 없는 집안의 친할머니와 어머니가 살던 창녀촌의 거리에서 시작된다. 어머니의 성교 장면의 목격에서부터 '콱 뒈져 버려라'는 친모의 저주는 10대의 그로 하여금 최초의 자살 미수극을 벌이게 한다. 곧 어머니의 의붓아버지와의 만주행이 감행된다. 이어 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신문 배달을 하면서 네 군데의 중학교를 전전한다. 그는 번번이 사고를 일으켜 퇴학을 당하거나 스스로 중퇴한다. 어디가나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포근한 애정에 굶주렸던 그는 야뇨증이 있어 그 때문에 늘 전전긍긍했고 두 번째의 자살 미수극을 벌이기도 한다.

 공연한 반항심으로 교사의 미움을 사고 이에 대한 복수로―그는 그렇게 생각했다―교사의 젊은 딸을 강간한다. 사랑에 주렸던 그는 입원실에서 어떤 일본인 모녀가 보여준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해서 상대방을 진정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에 있어 성욕과 폭력은 늘 결부되어 나타난다. 성 충동과 폭력적 충동의 상관성에 대한 그의 실토는 심리학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도 하다.

 

 범속한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흔히 인륜대사라고 호칭되는 짝찾기도 그에게 있어서는 훨씬 예외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의 예외적이란 말은 그 실상보다는 거기에 수반되는 감정과 의식(儀式)상의 진행이 무척 당돌하다는 것이요 그 자체가 예외적이란 뜻은 아니다. 폭력과 늘 동반해서 나타나는 그의 성(性) 충동은 그 실토가 예외적일 뿐 실상에 있어서는 성 충동의 실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기 따르는 의식은 이 폭력성을 은폐하기 위한 허위의식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군대에 나갔던 친구의 안부를 묻기 위해 찾아갔다가 그의 부친의 출입금지의 명령을 받고 역시 복수를 하기 위해 폭력적 성 충동을 폭력적으로 처리한다. 가출한 친구의 누이와 동거 생활에 들어간 그는 아내와 자식을 두고 그러나 해방된 조국으로 되돌아와 몇 해 동안이나 떨어져 살게 된다. 육이오 전쟁 때 부산에서 신파적 우연으로 다시 만난 부부는 그후 어린애를 갖지 않기로 한다. 그의 사랑에 주렸던 반생에서 그에게 사랑의 여운을 감득시킨 것은 겨우 부인의 경우가 있었을 뿐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부모도 형제도 집도 돈도 고향도 조국도 없는 놈이다' 하고 허공에다 대고 소리치는 모습에는 희극적이면서도 처절한 구석이 있지만 이것이 곧 손창섭의 문학을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자전(自傳)을 읽고 나면 손창섭의 중요 작품이 사실은 변형된 자전임을 비교적 정확히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작가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손창섭처럼 강렬하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비교적 단일한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의 경우엔 작품의 전기로의 재구성은 거의 완전하게 달성될 수 있는 것 같다.

 

 가령 우리는 <낙서족(洛書族)>의 박도현에게서 피해망상과 복수심리와 폭력적 성 충동의 폭력적 처리, 비분강개를 일삼은 젊은 시절의 작가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은<고독한 영웅>과 같은 실패작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뒤에서 따라오는 의붓아버지가 꼭 자기의 뒤통수를 쳐죽일 것 같은 생각에 공포에 질려 연거푸 뒤를 돌아보다가 의부의 노여움을 사는 <광야(曠野)>의 인상적인 장면이 자기의 실지 경험임은 분명하다. 그의 작품에서도 빼어난 압권인 <인간동물원초(人間動物園抄)는 8.15이후 미군부대의 통역을 구타하고 군사재판을 받고 유치장 생활을 한 경험을 다루고 있음도 분명해 진다, <잉여인간>에 나오는 비분강개형의 우국인도 갈 데 없는 작가의 분신이다. <소년>도 작자 자신의 어린 날의 자화상일 게 분명하다.

 

 그의 작품을 그의 자전으로 재구성해서 읽으면 그의 작품 세계의 강렬함과 단조함에 대한 이해를 아울러 갖게 된다. 피해와 자조와 반항과 폭력에의 충동과 억울하다는 의식으로 일관된 그의 인간관찰의 단조성이 그에게서 문학세계의 단조성으로 결실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거추장스러운 짐을 꺼리는 그의 심리는 늘 간편하게 혼자 떠돌아다닌 타성과 시국에 대한 불안감의 탓도 있었지만 일방 어떤 막연한 자멸의식에서 오는 심리현상이기도 하였다. 그는 무슨 일에 있어서나 막다른 판에 부닥치면,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와 '그놈을 죽여 버리고 나도 없어지면 그만 아냐?' 살인과 자멸의 충동으로 기울어지곤 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조금도 놀라운 일도, 무서운 일도 아니요, 언제나 무엇에 도취하듯 자신 있게 저질러 버릴 수 있는 자랑스러운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자식이 있으면 아무래도 그러한 가능성이 박약해질 수밖에 없어서 그게 싫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가능성의 약화는 마치 그의 인간 가치가 존재의 의미가 약화되는 것같이 겁났던 것이다.

 

 앞서서 우리는 그의 성 충동이 늘 폭력에의 충동과 겹쳐서 나타남을 유의했지만 이 폭력에의 의지는 타인 지향인 것만이 아니고 재귀적(再歸的)이기도 하다. 이 재귀적인 폭력성이 이러한 자기 파괴에의 성향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자기 파멸에의 충동이 희태 가능성의 파괴로 끝났음을 자신도 의식하고 있는 셈이다.

 

 손창섭의 일본행은 자신의 말이 없어 현단계에선 그 심증을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늘 얘기한 시국의 불안이라든가 <잉여인간>에 나타나는 것 같은 정치적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감을 생각할 때 쉽사리 납득이 가는 국면이기도 하다. 자기 자손은 남기고 싶지 않다는 자기 파멸욕과 일종의 자기 학대벽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측일 뿐, 자기의 실상을 드러낼 만한 '자작(自作)'에의 추가를 그는 아직껏 작품으로서 보여 주고 있지는 않다. 그의 신문소설은 실상 작가로서의 손창섭에 별다른 기여가 되지 않는 작품인 것 같다.

 

2. 주린 사람들 

 손창섭의 작중 인물은 거의 모두가 주린 사람들이다. 먹을 것에 주리고, 사랑에 주리고, 삶을 값있게 하는 모든 것에 한결같이 굶주린 사람들이다. 손창섭의 작중 인물은 그러므로 남루한 결핍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대가족과 같다. 이 대가족의 각 구성원은 설사 이름이 다르고 용모가 얼마만큼씩 다르다 하더라도 한 집안의 형제처럼 엇비슷하다. 결핍을 특징으로 하는 그들은 한결같이 생활을 위한 어느 정도의 안정성 있는 물질적 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고, 먹고 살기에 지쳐 있고,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고 있고, 요컨대 의지할 만한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손창섭의 작품에 친숙한 사람들은 그의 작중인물이 한결같이 주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의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진술은 실증을 요구한다.  그리고 막연히 '주린 사람들'이라는 추상적인 정의는 사회적 인간의 명세(明細)를 사상(捨象) 함으로써 구체성을 결한 논리 전개로 빗나가기 쉽다.

 

우리는 그의 '주린 사람들'의 신분적 명세를 밝힘으로써 이 정의에 보다 구체적 성격을 부여할 수가 있겠는데 편의상 필자는 실직자, 무능자, 병자라는 세 가지 분류를 제안한다.

 

첫째, 실직자는 남성 등장 인물의 많은 반수를 차지한다. <혈서>의 '준석' 과 '달수', <생활적>의 '동주', <미해결의 장>의 '나', <설중행>의 '관식', <유실몽>의 '나', <잉여인간>의 '익준', 등은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둘째, 무능자는 직업이라고 하는 사회적 기반에 간신히 매달려 있으면서도 제 구실을 못 하고 남의 피해만 받거나, 설혹 재산이 있으면서도 생활에의 의지를 상실한 인물들을 망라할 수 있다. <피해자>의 '병준', <광야>의 '동오', <잉여인간>의 '봉우'들을 우리는 그 선량으로 지목할 수가 있을 것이다.

 

셋째, 많은 여성들이 천생의 불구자 내지는 환자로 등장한다. 정신병리학자는 모든 등장 인물을 신경증 환자로 규정하겠지만 많은 남성이 육체적 질환을 안고 있는 경우도 많다.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손을 못쓰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 경우를 제외하곤 무능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혈서>의 '창애', <생활적>의 '순이', <비오는날>의 '동옥', <광야>의 '춘화'등은 간질병, 벙어리 등 천생의 불구나 고질병을 타고났고 <사연기(死緣記)>의 '성규', <미해결의 장>의 '문(文)선생' 등은 작중에서 죽거나 절망 상태에 빠져 있다. 여기에다 우리는 또 준병자(準病者)의 많은 수를 첨가할 수 있으리라.

  실직자, 무능자, 병자의 범주에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던 작중 인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들은 대개 창녀 생활을 하거나 직업이라고 하기엔 그 기반이 너무나도 맹랑한 아편  밀매인이거나 구두닦이거나 뚜쟁이거나 요컨대 뿌리 없는 사회의 부평초들이다. 여기다가 우리는 <치몽> 속의 작중 인물처럼 천애의 고아나 일가 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피난민을 상기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실증적 구체적 명세를 염두에 두고 '주린 사람들'이란 공분모(公分母)를 붙여 본 이들 작중 인물을 다시 사회적으로 구정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손창섭이 한 작품의 표제로 잉여 인간이란 어휘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잉여 인간>은 손창섭의 작품 중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작품이다. '서만기'라고 하는, 유치하게 표현해 본다면 긍정적 인물을 처음으로 창조해서 어느 정도 성공시켜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서만기'라고 하는 유성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위성적 인물을 총칭해서 선택한 잉여 인간이란 어휘는 숱한 그의 작중 인물 전체를 아주 적절하게 사회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쓸모 없이 사회에 남아 돌아가는 부평초들이다. 사회는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들을 버렸다. 그들은 한결같이 쓸모 없는 잉여의 설움을 짓씹으며 그들의 설  자리를  찾지 못해 허위적거리고 있다. "나는 지금 하늘 옷을 잃어버린 선녀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그놈의 찬란한 옷을 찾아 입지 못하는 한 나는 영 다시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말 것이다." <유실몽>의 주인공은 이러한 상념에 잠기면서 방안을 둘러보지만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먹고 남은 저녁 그릇의 지저분한 모양뿐이다. 어찌 그뿐이랴. 모든 작중 인물이 그의 절망을 공유하고 있다.

 

사회에서 버림받고 사랑에 주렸으며 인간의 연대감정에 무연한 그들은 인생의 뜻을 살아가는 보람을 찾지 못하고 참혹한 몰골로 허위적거리고 있다. '소외'란 말은 그들의 존재방식을 규정하기엔 너무나 호사스런 어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처럼 그들의 존재방식을 구정하기엔 너무나 호사스런 어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처럼 그들의 불행과 비참을  환하게 밝혀 주는 말은 없다. 먹고 배설하고 잠자고 교합하는 것은 동물적인 기능이다. 그런데 손창섭의 작중 세계의 압권인 <인간동물원초>에서 작중 인물들은 보람을 느낀다. 그들의 잉여의 정력은 남색대상의 쟁취에 소모된다.

손창섭의 작품은 이 나라 문학에서 가장 강렬한 소외의 현상학의 표현이다.

 

3 평가 절하

'잉여 인간' 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정석적(定石的) 인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푸쉬킨의 '오네긴', 레르몬토프의 '빼초린', 콘차로프의 '오블로모프'를 비롯해서 투르게네프와 체호프의 많은 작중 인물들이 이 '잉여인간'의 범주에 든다. 이들은 비록 기질적으로는 다르다 하더라도 당대 세계에 있어서 비슷한 무능자였으며 사회에 소용 닿지 않고 쓸모 없는 국외자의 구실밖에 떠맡지 못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과 나태에 빠져 있다. 19세기의 러시아 문학이 일거에 유럽에서 크게 환영받은 것은 사회로부터의 소외라는 주제가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사는 '러시아 문학의 많은 주인공들이 잉여 인간이란 사실은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실 19세기 러시아에서 다른 형태의 주인공은 있을 수 없었다'고 한 비평가로 하여금 적게 하고 있다.

 

'잉여 인간'이라는 어휘상의 공통성으로 해서 손창섭의 '잉여 인간'과 19세기 러시아의 '잉여인간'을 동시에 연상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잉여 인간'은 거개가  귀족 출신이거나 지주 출신으로 사회 속으로 내려가지를 못해서 쓸모 없이 된 사람들이다. 혹은 존재와 의식 사이에서 분열되어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치의 '잉여 인간'이다. 혹은 체호프처럼 지식인이나 소시민층 혹은 상속자의 세대를 즐겨 작중 인물로 설정한 경우에도 그들은 최상의 인간이기 때문에 도리어 쓸모 없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무능과 실패의 옹호자로 도스토옙스키나 투르게네프를 체호프가 선인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나 투르게네프는 실패와 고독을 최상의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었다.'

 

손창섭의 잉여 인간들은 모두 사회 속으로 올라가지를 못해서 쓸모 없이 남아 돌아가는 결핍의 인간이다. 천생의 불구나, 질병, 조실부모, 빈궁, 혹은 고향 상실, 무학 등으로 해서 사회의 저변에서 버림받고 있는 의지가지 없는 인간들이다. 요컨대 학대받고 가난한 사람들이다(수많은 작중 인물중 지식인의 풍모를 풍겨 주는 것은 손창섭의 무슈킨 공작이라나 할 <잉여 인간>의 '서만기' <광야>의 '동오' <인간동물원초>의 통역관 정도다). 이 가난한 잉여 인간들은 거의 예외없이 판잣집이거나 겨울에도 불기 없는 냉방이거나 빈민가의 한 모퉁이에서 남루한 생존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손창섭의 작품을 가난과 궁핍을 제재로 한 빈민 소설이라고 규정하길 주저한다. 작중 인물에 대한 손닿는 대로의 분석은 작중 인물의 거의가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가령 염상섭의 후기 단편 몇몇에서 보게 되는 빈곤의 리얼리티조차 감득하지 못한다. '가난'조차도 서민의 사치로 비칠 정도의 밑바닥 생활이 전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작중 인물이 '해방따라지'라는 고향 상실자로 등장하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전쟁 전후의 사회적 격변과 유동성의 시기를 그리고 있는 리얼리즘의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여기에 손창섭 소설의 가장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의 작품 중 인물은 피난민, 제대 군인, 포로 석방자 등 이 나라 사회의 유동적 시기를 반영하는 명확한 사회적 규제를 거친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 사회적 규제를 넘어서서 독보하는 것 같은 환상을 집요하게 독자에게 안겨 준다. 해방 전의 만주 땅을 배경으로 한 <광야>와 전쟁시절 부산 피난지를 배경으로 한 <비오는 날>의 혈연적 친근성 사이에서 우리는 배경과 시대의 차이성을 간과해 버리고 말고 또 그래서 좋은 것이다.

 

 이러한 특수 사정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작가가 작중 인물을 보다 더 본질적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창섭처럼 작중 인물의 신체 묘사를 무시하고 있는 작가도 드물다. 항용 작가들이 자질구레 묘사하는 신체적 특징의 디테일은 대담히 사상되어 있으며 단지 그들의 언동과 추태에 의해서 마술적인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존재론적으로 포착된 그의 작중 인물 즉 인간은 기껏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 동물에 지나지 않으며 인생은 무의미한 낙서나 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꿈이라는 것도 한갓 덧없는 치몽이며 돌이켜보면 유실몽에 지나지 않는다. 손창섭처럼 인간을 모멸하고 인간의 평가 절하에서 유머를 찾는 작가는 참으로 드물다. 그의 작품 세계는 극언하면 인간 덤핑의 세계인 것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어이없는 공상에 취해 보는 것이다. 그 공상에 의하면 나는 지금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병리학자인 것이다. 난치 피부병에 신음하고 있는 지구덩이의 위촉을 받고 병원체의 발견에 착수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박테리아에 의해서 발생되는 질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직도 그 세균이 어떠한 상태로 발생 번식해 나가는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법에 있어서는 더욱 캄캄할 뿐이다. 나는 지구덩이에 대해서 면목이 없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다. 아직은 활동은 못 하지만 그것들이 완전히 성장하게 되면 지구의 피부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야금야금 갉아먹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병균에 침범당해 그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지구덩이를 상상하며 나는 구멍에서 눈을 떼고 침을 뱉었다.

 

―<미해결의 장>

인간 모멸의 극치인 이 행문에서 '침을 뱉었다' 는 구절은 작가 손창섭의 상징적 행위라고 본다 하더라도 망발은 아닐 것이다.  

 

십년 전 <모멸과 연민>의 결어에서 필자는 그의 작가적 시각의 단조성을 지적하고 '그의 심리적 인간상을 사회적 인간상과 합류시키지 않는 한, 그 단조성은 외곬으로만 흘러갈 위험성이 많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필자는 이 말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손창섭의 본질적 인간 파악이 보여주는 인간의 우열하고 끔찍한 모습은 실상 작중 인물의 거의가 먹고 배설하고 자는 동물적 기능을 수행할 때에만 보람과 자유를 느끼게 된다는 인간적 기능이 절연된 소외의 인물이라는 데서 온다. 인간의 회복과 가치의 복권은 이러한 소외의 극복과 지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아마도 손창섭 소설이 간직하고 있는 여백의 의미를 터득할 때 비로소 손창섭이라고 하는 하나의 우수한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행위가 뜻깊은 경험으로 완성될 것이다. 대중들은 그들의 고통을 사랑하며 고통에 의해서 그리고 고통을 통해서 고결성을 얻게 된다는 기묘한 논법으로 도스토옙스키는 대중의 생활상태를 개선하는 일체의 기도에 반대하였다. 성년 후의 그는 반 유태주의를 공공연히 선동하고 전제를 광신적으로 지지하고 전쟁을 부채질한 과격 반동가였다. 그럼에도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돼지의 신음 소리와는 달리 인간의 고뇌에는 의미가 있다는 신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동물원초>의 통역관을 통해서 '저 하늘을 차지하고 싶거든 용감해져야 합니다. 강해져야 한단 말입니다.' '약자끼리의 싸움이란 언제나 강자를 위한 자멸입니다' 라고 토로하고 있는 작가는 아마도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4. 새 가능성

4.19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남겨 놓지 못한 그는 60년대 말에 중요한 변화의 징조를 보여 주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것은 <환관>과 <청사에 빛나리>라는 역사 취향의 단편을 통해서이다.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다는 것은 그의 작품 전체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그외 범작(凡作)이 우리 문학 전체의 수준에서 볼 때 늘 우수한 축에 속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환관>은 고려시대의 얘기라는 것을 가정하여 권세와 재물의 획득을 위해서 거세의 고통을 사양치 않는 사람됨의 설움과 웃음을 마음껏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 철저한 냉소와 인간 경멸의 사상은 이 작품 일급의 얘기이면서 동시에 그의 초기 작품의 연장선상에 옮겨 놓게 하고 있다. 그러나 <청사에 빛나리>는 조금 다르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새로운 해석을 계백(階伯)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가하고 있다. 세습 권력의 정당화를 위해 봉사한 봉건적·왕조적 이데올로기의 결정 작용에 의해서 미화되어 온 황산벌의 결사대장은 그 아내의 입을 통해 오히려 졸장부로 드러난다.

 

 "지금의 백제만이 나라가 아닙니다. 이 썩어 문드러진 백제가 깨끗이 망해 버리고 언젠가 새로운 백제가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요. 한편 신라와 고구려가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삼국이 통일이 되는 날도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것들이 자라서 신생 백제의 충신이나 삼국 통일의 공신이 될지 뉘 압니까. 장군,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내버려둔 사람들이 누구시오? 장군도 그 중의 한 분, 일찍이 나라를 건질 선책엔 목숨을 걸려 않으시고  망국의 위기에 닥뜨려서야 무고한 장정과 가족까지 희생시켜서 청사에 이름을 남기려 하시니 그러고도 떳떳하시오."

 

이 작품이 보여준 새로운 작가적 가능성은 그것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했다는 사실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 작품이 사실은 대담한 정치적 알레고리를 시도한  것이며 과거를 얘기함으로써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현재를 발언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중 인물을 다루는 작자의 어조와 관점에 있어서의 변화다. 세상의 권위, 잘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의 희화화는 물론 백제 말년의 영웅 계백을 용렬한 위인, 위급한 경우에 당해서 처자나 처리하는 위인으로 물구나무를 세워 놓았다는 점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관점은 결코 냉소적인 관점이 아니다. 작가가 초기 작품에서와 같은 냉소 일변도의 관점을 유지했다면 계백의 아내도 장군의 권위에 도전하는 용기 있고 슬기로운 부인상으로 부각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부인에 의해서 졸장부라고 공격받는 계백도 손창섭의 여느 작품에 나오는 경멸과 동정에 값하는 보기 딱한 졸장부는 결코 아니다. 그는 의젓하고 근엄하고 과시 고전극에 나오는 왕후장상에 어울리는 품위의 인간이다. 졸장부라는 규정은 계백의 아내의 탁월한 이론에 의한 논리적 차원의 정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실상 나라를 건질 선책, 즉 백성들의 참다운 복지를 위한 노력보다도 군사적 측면만 강조하는 풍조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장소를 계백의 집, 시간을 여섯 시간, 가족 처치의 갈등이란 단일한 주제에 두어서 엄격한 고전주의적 삼일치의 법칙을 준수한 이 극적인 단편의 새로움은 그러니까 그 고전적 격조와 극적 갈등의 주제에 있는 것이다. 작품의 고전적 격조의 분위기는 이 작가의 전혀 새로운 경지다. 예컨데 초기의 작품에서 폭력에의 충동과 함께 폭력적으로 생물학적 차원에서 그려진 성행위가 이 작품에서 품위 있고 간결하게 거의 서정시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진지함과 사람살이의 설움에의 무한한 회포를 자아내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손창섭에 있어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가 정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계백의 아내를 통해서 표명하고 더구나 생명의 고귀함을 그 근거로 삼았다는 것도 그에게 있어서는 큰 변화였다.

 

그러나 그는 이 변화를 징후로서만 보여 주었을 뿐 지속적인 발전의 계기로서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는 곧 나라를 등지고 마는 것이다.

 

그후 그는 작가로서의 성장의 자취를 보여 주고 있지 않다.

 

5. 역  설

손창섭 문학의 역설은 그가 삶을 신의 희작이라고 보고 또 낙서라고 보면서도 그 나름의 진지함을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보아온 것처럼 그는 지구에 떼지어 사는 사람들을 차라리 지구의 병, 지구의 질환이라고까지 보았다. 그는 인간의 이상에 관해서, 보다 나은 삶의 양식에 관해서, 질환적인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엮어질지도 모르는 공동체에 관해서 단 한번의 공상도 해본 적이 없다. '당신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 이란 그의 아내의 말은 과시 맞는 소리다.

삶을 낙서라고까지 하면서도 그는 삶의 기록, 자기 삶의 부끄러움과 괴로움의 반영일 터인 문학은 결코 낙서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의 단편이 발휘한 호소력을 그 '괴팍한 주에'에다 두려는 사람도 있었지만(예컨대 시인 김현승(金顯承) 같은 분) 그가 치밀하고 단정한 문체의 소유자이며 구성에 있어서도 군더기가 없는 훌륭한 단편 소설의 기술자였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는 저 50년대의 오문(誤文) 및 악문(惡文)의 범람시대에 자기 스타일을 마련하여 문학의 위의(威儀) 수립에 기여한 소수의 문학자의 한 사람인 것이다. 이 점은 되풀이 강조해 두어도 좋다.

 

그러면 삶을 낙서로 치부하면서도 문학을 정서하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진지성에 대한 집착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활 신조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그리고 진지한 생활상의 지도 원리가 그의 문학의 청서(靑書)의 내적 동력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지함과 자기 나름대로의 결벽이 그의 문학을 한때의 '새 전율'로 올려놓을 수가 있고 빈곤 묘사가 타부시되던 풍토에서 소외와 가난의 극치를 담은 문학을 낳게 했을 것이다. 한편 모든 것을 '우수개' '희화(戱畵)'로 보는 관점 자체가 어떤 이상의 원형(原型)을 전제로 해야 성립된다. 따라서 그의 '희작'도 좌절된 이상에의 행진이라는 의식에서 나온 관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극도의 궁핍과 절망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재미있게 읽힐 수 있었다는 비밀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마 그의 문학은 가난을 다루면서도 재미있다는 점에서는 김유정과 함께 우리 근대 문학 속의 희유한 예외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과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소외와 가난의 현상적 묘사는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소망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면 작자는 구제되었을지 모르지만 독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값싼 모랄리스트의 설교나 현실감 없는 인정미담이나 삶에 대한 감상적 접근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은 보다 높은 것으로 고양을 시키지 못하고 고양에의 노력을 포기하고, 고양 자체를 우습게 여기는 문학이 무엇이란 말인가? 손창섭은 우리 근대 문학이 낳은 우수한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비약하고 삶의 고양(高陽)을 위해 넘어서야 할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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